화약은 준비하지 않고, 기폭제만 준비하는 진보개혁

화약은 준비하지 않고, 기폭제만 준비하는 진보개혁

  -출마선언문(초안) 몇 개를 보고-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지난 12월부터 서울시장, 경기지사 후보 출마선언문들을 유심히 읽었다. 최근에는 광역과 기초 자치단체장 후보 출마 선언문도 몇 개 읽었다. 첫 느낌을 거칠게 얘기하면 이렇다.

 

사람은 생각이 참 안 바뀌는구나!

2006~8년의 진보개혁의 동반 좌절로부터 배운 것이 없구나!

 

진보개혁 동네의 망조가 참 깊다는 느낌이 들었다. 왜 영국 노동당이 18년을 광야에서 헤맸는지, 왜 칼로 일어난 자 칼로 망한다고 했는지 알 것 같았다. 과거의 빛나는 성공신화로부터, 또 과거의 역사적 상처가 남긴 트라우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힘들다는 것을 느꼈기 때문이다.

 

여태 진보개혁 동네서 나온 출마선언문을 보면, 대체로 반MB, 친노무현, 지역균형발전, 진보개혁연대 등을 고창하고 있다. 지역민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어 그들을 행복하게 해 주겠다는 자기 고유의 비전과 가치를 강조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좀 긴 출마선언문에는 정책이 좀 언급되어 있는데 대체로 보육, 교육, 복지, 일자리 관련 정책이 대부분이다. 일자리 정책은 대체로 재정에 기반을 둔 사회적 일자리(사회적 기업)나 사회서비스 일자리 정책이 주다. 보육(국공립 보육시설 확충), 교육(무상급식, 교육예산 증대), 복지 정책은 보편적 복지라는 이념을 기반으로 제시 된다. ‘북유럽 등 선진국은 국가가 이런 것까지 보장하는데, 너희는 그것도 모르냐’ ‘대중은 복지 맛을 몰라서 복지 세력을 지지하지 않는다’는 식의 대중을 우습게 보는 계몽주의를 강하게 내비친다. 당연히 감동과 기대를 불러일으키기에는 역부족이다. 예산의 절대 부족과 허술한 복지전달체계와 방만한 공공부문으로 인해 결코 쉽게 해소되지 않을 거대한 사각지대(특히 차상위 계층)에 대책이 없고, 전달체계와 공공부문의 지독한 모순.부조리에 대한 분노가 없다. 무엇보다도 현실을 직시하려고 하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2010 지방선거를 바라보는 진보개혁 진영에는 2006년 지방선거 참패의 트라우마가 작동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2006년에 집권여당으로서 생활밀착형 공약을 그런대로 잘 다듬어 제시했지만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 바람에 맥도 못 추고 쓸려나갔다는 아픈 상처가 2010년에는 생활밀착형 정책을 경시하게 하는 듯하다.  2006년의 충격은 ‘선거는 오로지 구도다’라는 신념을 강화하고,  지적 나태를 정당화한다. 결국 진보개혁 진영 전반에 반MB 구호로, 친노무현 이미지로, 거칠게 말해 노무현 영정 사진으로 승부를 보려는 풍조를 조장하는 듯하다. 

 

그런데 냉정하게 따져보면 2006~8년에 한나라당의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이 먹힌 것은 한나라당이 지방자치단체를 보다 잘 운영 할 것 같고, 결과적으로 주민을 더 행복하게 해 줄 것 같다는 이미지를 갖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주노동당의 반노무현, 반열린우리당은 그것이 뒷받침되지 않았다. 그래서 열린우리당에서 이탈한 표심이 민주노동당으로 가지 않은 것이다.

 

2010년의 광범위한 반MB, 반한나라당 정서를 실제 투표행위로 연결하려면, 과거 한나라당처럼 진보개혁 진영이 주민을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줄 능력이 있어 보여야 한다. 그런데 진보개혁 진영은 반MB, 반한나라당은 선명하지만 그 폭발력 내지 흡인력을 담보하는 '유능 이미지’는 약하다. 어떻게 보면 (자유롭고 정의롭고 풍요로운 나라를 잘 만들 수있을 것 같은) '유능 이미지'가 폭탄의 본체인 화약이고, 반MB, 반한나라당은 기폭 장치라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MB와 한나라당에 맞서 잘 싸울 사람을 뽑는다면 왜 40대, 50대, 60대의 경륜가가 필요하겠는가? 차라리 물불 안 가리고 대의에 헌신할 혈기왕성한 20대~30대가 낫지! 그런데 40대, 50대, 60대 예비후보의 출마선언문에는 반MB-친노무현만 선명할 뿐 자신의 고유 가치도 경륜도 보이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진보개혁 진영의 정서와 시각은 과거 운동권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한 것처럼 보인다. 평범한 국민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모르고, 그들의 관점에서 정치와 선거를 보지 않기 때문이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이렇다.

 

예비후보 당신은 국민의 욕망을 충족시키는 도구이자 종이다. 자신의 희생을 무릅쓰고 선봉에서 서서 싸우는 투사? 솔직히 지금은 선봉에 서서 싸우는 (정치인) 투사가 별로 손해 보지 않는다는 것을 모르는 사람이 없다. 자기희생 없는 투쟁의 선봉은 아무런 감동이 없다. 국민은 뭔가를 반대하겠다 내지 저지하겠다는 사람보다 돈 벌게 해 주겠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사회를 정의롭게 만들겠다는  사람을 선호한다.  저 혐오스런 MB가 40~50%대의 높은 지지율을 보이는 것은 말이 되든 안되든 뭔가를 획기적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강력하게 발산하기 때문이 아니겠는가? 또 하나 진보개혁이 믿음직한 대안 세력으로 보이지 않기 때문 아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MB와 한나라당을 반대하고, 그 정책을 저지하는 것은 두 번째나 세 번째다. 첫째가 있어야 둘째도 살고, 노무현도 산다. 제발 지역민들의 행복 비전과 정의로운 사회에 대한 비전을 맨 앞에 내세워라! 평범한 국민의 세속적인 욕망과 정서를 직시하라!-끝-

by 김대호 | 2010/02/03 23:13 | 정치와 통계 | 트랙백 | 덧글(0)

두번은 읽을 펌글)알라스카와 인문학

알라스카와 인문학 / 김윤상

조회수 30 추천수 0 2010.01.29 12:46:28

 


알라스카와 인문학


김윤상 / 성토모 자문위원


졸업을 앞둔 인문학 전공 학생들이 읽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면 당연히 사회진출과 취업에 온 관심을 쏟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진로에 도움을 줄만한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미국 알라스카주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 볼까요. 알라스카 주민은 매년 일정한 배당금을 받습니다. 무슨 투자의 대가도 아니고 일을 한 대가도 아닙니다. 주민이기만 하면 무조건 받습니다. 2008년에는 1인당 3,269달러를 받았고,  2009년에는 1,305달러를 받는다고 합니다. 금액이 매년 다른 이유는 아래에서 언급하는 ‘영구기금’의 운용수익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알라스카 정부가 무슨 돈으로 ‘퍼’주는지 의아하지요? 석유가 많이 나는 알라스카에서는 원유 파이프라인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던 1976년에 주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석유 관련 광권 수입의 4분의1 이상을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에 넣고 이 기금의 운용 수익을 주민에게 무조건 나누어주자는 내용이지요.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은 특정인이 생산한 것이 아니므로 그 수익 역시 당연히 모두의 것이라는 취지입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드는 좋은 세상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요? 상상력입니다. 인간은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에 매여 너무나 당연한 것을 못 보고 삽니다. ‘천연자원은 모두의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도 상상력이 있어야 겨우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먹고사는 데 급급하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학문 중에서,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를 강조하는 학문, 먹고사는 현실과 가장 무관한 학문, 인간의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 상상력이 생명인 학문이 무엇일까요? 물론 인문학입니다. 알라스카의 배당금 제도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비슷한 예로, 유럽에서는 기본소득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란 미성년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자격조건이나 의무사항 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알라스카 배당금과 비슷하지만 재원이 일반 조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노총에서 이 아이디어를 받아 2009년 초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안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청장년기에는 연 400만 원, 55세가 넘으면 연 600만 원 이상을 지급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재원이 일반 조세라는 점이 개운치 않습니다. 조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국민의 소득에서 나옵니다. 갑은 열심히 노력해서 소득이 높고 을은 빈둥거리다가 소득이 낮은 경우에 갑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똑같이 나눈다면 갑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소득은 본인의 노력 외에, 타고난 능력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고 인생살이의 각종 행운과 불운에 의해서서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니까 소득 중에서는 징수해도 억울할 것이 없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미의 소득을 떼어 베짱이에게 주는 경우도 적지 않게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민 공동자산으로 사회보장을 하면


반면, 알라스카 배당금에 대해서는 개미-베짱이의 비유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평등한 생존권을 가진다면, 생산자가 따로 없는 천연자원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동등한 지분을 가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민 공동자산의 가치를 재원으로 하면 아무도 억울해 할 일이 없습니다.


석유처럼 누구도 생산하지 않은 국민 공동자산의 사례는 많습니다. 각종 천연자원, 토지 등 자연 일체가 국민의 공동자산입니다. 휴대전화 등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희소해지는 전파 대역도 공동자산입니다. 깨끗한 환경도 국민의 공동자산이므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에게서 그 대가를 징수하면 역시 훌륭한 재원이 됩니다. 나아가서, 정부가 정책상의 필요에 의해 일부 국민에게 특권을 부여한다면 그 대가 역시 국민 공동자산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민 공동자산의 금액이 얼마나 될까요? 토지만 해도 연간 100조 원 정도의 임대가치가 있으며 이는 국민 1인당 200만 원 꼴입니다. 토지 외의 가치를 모두 합한다면 두 세 배도 넘을 것입니다. 알라스카 배당금이나 기본소득처럼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나누어주는 대신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만 지원한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훨씬 많은 금액을 보장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일단 혜택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잘 살게 될 경우에 수령액을 상환하도록 한다면 공동자산 기금의 크기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생활고 없는 세상의 모습


국민 각자가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 아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생활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십시오. 빈둥거리는 사람이 넘쳐날 것이라는 걱정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제일 못 참는 게 심심한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대부분은 막연히 빈둥거리기보다는 무언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할 겁니다. 좋아하는 일은 자꾸 하게 되고, 자꾸 하면 잘 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생계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인생이 행복해질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취가 이룩될 것입니다.


고흐는 평생 예술을 위해 살았고 위대한 작품을 수없이 남겼지만 생전에는 자기 그림을 단 한 점 팔았을 뿐입니다. 동생 테오가 주는 생활비로 근근이 살았지요. 마르크스도 엥겔스가 주는 돈으로 살면서 인류사를 바꾼 업적을 남겼습니다. 누구나 기본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면 모든 국민이 테오나 엥겔스와 같은 후원자를 두는 셈입니다.


국민 공동자산에 대해서는 모두가 평등한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는 결국 자기 돈으로 자기 생활을 보장하는 겁니다. 세금으로 빈곤층에게 사회보장을 하는 현재의 복지제도와는 아주 다른 개념입니다. 그러면 먹고사는 데 급급해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잠재적 고흐, 마르크스는 떳떳하게 자기 돈으로 생활하면서 인류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일만 하고 경제적인 일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농사는 누가 짓고, 공장에서는 누가 일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특히 3D 업종의 일은 아무도 안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험한 일의 임금이 낮습니다. 그러나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임금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도 많이 나타나겠지요. 또 지금도 사람들이 하는 돈벌이 중에서 의식주 해결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이승엽과 김연아, 유재석과 소녀시대가 하는 일은 국민의 경제적 생존과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고흐나 마르크스가 일생을 바쳤던 일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인문학이 꽃 피는 세상


생계 걱정 없는 세상이 되면 사람들이 물질적 생존보다 인간의 내재적 소질을 발휘하는 쪽에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 결과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좋은 세상이 되면 인문학도의 경제적 전망도 밝아진다는 겁니다.


졸업을 앞둔 인문학 전공 학생 여러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좋은 세상, 인문학이 저절로 꽃 피는 좋은 세상은 가능합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전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졸업 후에도 인문학도로서의 긍지를 잃지 마십시오. 알라스카 배당금보다 훨씬 더 좋은 제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십시오.

by 김대호 | 2010/01/30 11:33 | 두번은 읽을 펌글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

정치 혁명의 기폭제, 메니페스토(Manifesto) 제조 및 활용법

정치 혁명의 기폭제, 메니페스토(Manifesto) 제조 및 활용법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2008년 2월 29일, 지방자치단체장 선거의 (예비)후보자를 엄청 괴롭히는(?) 공직선거법 조항이 하나 추가됐다. 제60조4항(예비후보자공약집)이다. 이는 지난 가을부터 지금까지 사회디자인연구소를 꽤 바쁘게 하는 조항이자, 한국 정치를 소리 없이 껑충 발전시킬 수도 있는 조항이다. 이 조항은 우리가 많이 보아온 12면(기초단체장), 16면(시도지사), 32면(대통령)짜리 ‘선거공약서’외에 책(예비후보자공약집) 한 권을 낼 수 있도록 한 조항이다. 이 책은 1000페이지도 좋고, 30페이지도 좋다. 흑백도 좋고, 칼라도 좋고, 그림, 사진, 만화가 가득해도 좋고, 검은 활자만 가득한 보고서라도 좋다. 손바닥 만해도 좋고, 그림책 만해도 좋다. 다만 자신이 하겠다는 사업=약속의 목표, 우선순위, 이행절차, 이행 기한, 재원조달방식이 들어가야 한다. 그리고 이 공약집은 통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하여야 한다. 방문판매가 안 된다는 얘기다. 물론 원가 보다 싸게 팔면 증여에 해당하니 최소한 원가 이상으로 팔면 된다. 당연히 종이 값과 인쇄비 수준이니 책값은 쌀 수밖에 없다. 후보자 입장에서는 엄청난 고역이지만 유권자와 우리 사회 입장에서는 엄청난 축복이다.

 

이 조항에 따라 만들어진 최초의 예비후보자공약집은 2008년 6월4일 치러진 남해군수 보궐선거에서 압승한 정현태 군수의 작품이다. 이번 지방선거에서는 꽤 많은 예비 후보들(단체장 후보가 아니면 해당되지 않는다)이 예비후보자공약집을 흔들며 나올 것이다. 당연히 명함만 달랑 들고 나온 후보와 확연히 비교될 것이다. 만약 이번 선거에서 멋진 공약집으로 선풍을 일으켜 당선이 되는 사람이 몇 명이라도 나온다면 이 조항은 한국 정치의 조용한 혁명의 기폭제가 될 것이다. 이 조항은 2003년부터 본격화된 일본의 메니페스토 정책 선거운동이 일으킨 신선한 바람이 한국에 상륙한 것이다. 참고로 제60조4항은 다음과 같다.

 

제60조의4(예비후보자공약집) ① 대통령선거 및 지방자치단체의 장선거의 예비후보자는 선거공약 및 이에 대한 추진계획으로 각 사업의 목표·우선순위·이행절차·이행 기한·재원조달방안을 게재한 공약집(도서의 형태로 발간된 것을 말하며, 이하 "예비후보자공약집"이라 한다) 1종을 발간·배부할 수 있으며, 이를 배부하려는 때에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하여야 한다. 다만, 방문판매의 방법으로 판매할 수 없다.

② 제1항의 예비후보자가 선거공약 및 그 추진계획에 관한 사항 외에 자신의 사진·성명·학력(정규학력과 이에 준하는 외국의 교육과정을 이수한 학력을 말한다)·경력, 그 밖에 홍보에 필요한 사항을 예비후보자공약집에 게재하는 경우 그 게재면수는 표지를 포함한 전체면수의 100분의 10을 넘을 수 없으며, 다른 정당이나 후보자가 되려는 자에 관한 사항은 예비후보자공약집에 게재할 수 없다.

③ 예비후보자가 제1항에 따라 예비후보자공약집을 발간하여 판매하려는 때에는 발간 즉시 관할 선거구선거관리위원회에 2권을 제출하여야 한다.

④ 예비후보자공약집의 작성근거 등의 표시와 제출, 그 밖에 필요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2008.2.29]

 

사회디자인연구소는 2006년 출범한 이래 양질의 정치 컨텐츠-사상이념에서부터 기초단체장의 정책공약까지-를 생산, 확산하는 것을 첫 번째 사명으로 삼아왔다. 당연히 이 조항은 사회디자인연구소라는 물고기에게 주어진 물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4년 마다 한 번 만나는 물이긴 하지만…….물론 대통령선거판도 (가장 큰) 물이긴 하지만 그 때는 대한민국의 수많은 전문가(학자, 관료, 시민운동가), 기업가, 정치가들이 비장한 정치컨텐츠가 자연스럽게 대선캠프로 집결되기에 사회디자인연구소가 그리 바쁠 것 같지는 않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제60조4항에 기대어 만든 연구소는 아니지만, 어쨌거나 정치컨텐츠에 관심과 애정을 오랫동안 쏟아 온 곳이 별로 없기에 좀 바쁘다. 새로운 상근 연구원도 들어오고, 연구소의 (비상근) 인적 네트워크도 활발히 가동하고 있다. 이를 계기로 그 동안 본의 아니게 거시담론(국가경영 담론)에 치중하느라 비어있던 미시담론(자치단체 경영 담론)을 열심히 채우고 있어서 다소 고생스럽지만 기쁘다.  

 

숲과 나무 보기

정책공약(메니페스토=manifesto)의 골격은 현재 우리 지역의 상태(status)가 이러하니 이것을 이렇게 바꾸겠다고 공개적으로 약속하는 것이다. 한마디로 지역 주민의 요구, 기대, 고통, 불만에 대한 자신의 견해(목표, 방법, 시한 등)를 밝히는 것이다.

 

그런데 지역 주민의 요구, 기대, 고통, 불만이 좀 많은가! 게다가 사람마다 처지, 조건, 가치관에 따라 그 양태나 우선순위가 무한히 다르다. 물론 비현실적이거나 상호 모순적인 요구, 기대도 수두룩할 것이다.

 

후보자는 기본적으로 보다 많은 사람(유권자)에게, 보다 깊은 감동과 기대를 주는 공약을 만들고 이를 적절한 방식으로 어필(광고, 마케팅)해야 한다. 공약의 백화점을 만들어 내놓는다고 해서 많은 유권자가 감동하지 않는다는 것은 상식이다. 先後强弱 혹은 우선순위가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후보의 인생 역정으로 뒷받침되지 않는 공약은 깊은 감동을 주는데 한계가 있다.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옷이 있듯이, 자신에게 잘 어울리는 공약이 있다는 얘기다. 모든 것이 좋아도 대중의 뇌리와 가슴에 꽂히지 않는 공약은 힘이 없다. 광고. 마케팅 기법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또한 밑도 끝도 없는 거창한 '뻥‘ 공약과 단순한 소망 공약이 판을 쳐온 역사로 인해, 정확한(수치화된) 현실진단과 전문가도 끄덕일 수 있는 절차, 방법, 기한, 재원 산출이 절실하다. 그런데 이건 정말 보통 일이 아니다.

 

정치는 종합(가치의 우선순위 설정)의 예술이자, 단순화/대중화(광고. 마케팅)의 예술이자, 적절한 ’뻥(꿈)‘과 냉철한 ’과학(구체성, 과학성)‘의 조화의 예술이다. 한마디로 정치인은 숲과 나무를 둘 다 놓치지 말아야 한다. 그런데 숲을 보는 것도, 나무를 보는 것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현실적으로 후보자의 경험, 인맥, 지식은 지극히 제한적이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가치체계(우선순위)는 후보자의 살아온 배경을 잘 뛰어넘지 못한다. 단적으로 오세훈은 2006년 서울시장 선거 때 ‘맑고 매력 있는 세계도시 서울’을 내세웠다. 이는 지금까지 지속되는 오세훈 시정의 골조인데, 청정 공기(환경), 외관 가꾸기(디자인 서울, 랜드마크 집착, 도시 마케팅 강화), 외국 관광객 유치라는 핵심 가치로 전개된다. 물론 강남 중산층의 가치체계와 많이 부합된다. 오세훈은 이런 가치관을 갖고 시정을 힘차게 펼치다가 벽에 부닥치면서 새롭게 중시해야 할 가치(복지와 일자리)를 발견한 듯하다. 그래서 예산 구조를 조정하고(복지 예산을 많이 늘렸다), 일자리 담당 조직도 만들었다.

노무현 전대통령이 중시한 가치도 그의 개인적인 체험과 배경에 큰 영향을 받았다. ‘당당한 대한민국’, ‘반칙.특권 일소’ ‘원칙.상식 회복’ ‘탈권위주의’ ‘지역균형발전’ ‘언론 개혁(정상화)’ 등이 그것이다. 대한민국은 외과적 대수술이 필요한 부위가 많았지만, 외과수술은 지역균형발전에 집중되었다. 재벌대기업(공정거래와 소비자 보호), 공공부문, 고시제도, 교육제도, 사법제도, 보건의료복지 제도 등 외과적 대수술이 필요한 부분이 많았지만, 외과적 대수술은 시행되지 않았다. 이는 참여정부의 중대한 오류의 하나이다. 어떤 정부도 마찬가지겠지만, 참여정부의 한계나 오류도 노전대통령의 개인적 가치체계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메니페스토 작성의 어려움은 후보자가 지역민 다수와 눈(높이와 방향)을 맞추는 일의 어려움이다. 도대체 어떻게 해야 눈높이를 잘 맞출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숲을 잘 볼 수 있을까? 어떻게 해야 나무의 생김새를 자세히 볼 수 있을까? 거리를 열심히 싸돌아다니면 될까? 통계를 열심히 들여다보면 될까?

 

地理를 알아야 한다.

지역 또는 지역민이라는 숲을 조망하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지도를 보는 것이다. 얼마 전부터 daum.net이 제공하는 지도 서비스 중에서 스카이뷰 서비스가 특히 도움이 된다. 지역의 교통, 환경, 주거, 개발 관련 요구, 불만과 그 해소 방향은 이 지도를 크게, 작게-이렇게 하면 주변 다른 시, 군과 관계도 보인다- 해 가면서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으면 비교적 잘 보인다. 구할 수만 있으면 지목(대지, 공원, 전답, 임야, 학교부지 등)이 표기 되어 있는 (부동산 중개소에 가면 볼 수 있는)지도를 보면 더 좋다.

 

인구 주택 통계를 알아야 한다.

지리와 더불어 자신이 바꾸고자하는 지역의 인구 통계학을 아는 것은 기본 중의 기본이다.

연령별, 성별 분포가 어떻게 되어 있는지는 핵심 중의 핵심이다. 더 나아간다면 가구. 가족 구성을 아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된다. 이는 대체로 주택 관련 통계와 같이 붙어 다닌다.

 

일자리와 가계부를 알아야 한다.

지역민의 요구, 불만의 핵심 내지 윤곽을 파악하기 위해서는 자산(stock), 소득(flow), 소비를 살펴야 한다. 지자체 주민들의 자산 관련 상세 통계는 없는 것으로 알고 있다. 다만 한국에서 주택은 가구 자산의 70~80%를 차지하므로 주택 관련 통계로부터 자산 상황을 유추할 수 있을 뿐이다. 소득은 사실 산업/일자리 구조를 의미한다. 이와 관련된 통계는 지자체들이 많이 생산하고 있다. 소비는 지역민들의 가계부를 뒤져 보면 좋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다만 통계청 가계 조사로부터 유추할 수는 있다. 이 통계에는 인간의 ‘생로병사’라는 생애주기 상의 요구, 불만도 녹아있다. 하지만 수많은 사람(가구)의 평균이기에 요구, 불만은 아주 어렴풋하게 밖에 알 수 없다. 그래서 소득과 소비 관련된 요구, 불만은 지역에서 많은 사람을 만나면서 알아간다. 분명한 것은 공약은 유권자의 가계부 주름을 펴준다고 생각하면 크게 헛발질은 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지리, 인구, 주택, 소득(산업), 소비 구조만 파악해도 그 도시의 핵심 특징은 대략 파악할 수 있다. 이를 10개 정도로 단순화 해 본다면 공약의 우선순위를 잡는데 꽤 도움이 된다고 생각한다. 예컨대 서울에 대해 말하면 이렇다.

 

1)한강이 중심을 관통하고 내사산과 수많은 야산이 산재하는 도시다. 2) 600년이 넘은 역사도시이자 40년 된 신도시가 공존한다. 3) 젊은 도전자들(25~49세)의 도시이다. 4) 교육도시이자, 3차 산업이 압도적인 도시이다. 5) 날림으로 건설해서 정상적인 도시로 다시 태어나고 있는 도시다. 6) 부동산 불로소득이 엄청나게 발생했고, 서울의 대부분의 중산층은 이를 깔고 있다. 또한 토건족의 이해와 요구가 강하게 관철되는 도시다. 7) 생활비가 비싼 도시이다. 8) 엄청난 문화적 다양성(아시아 최고)의 도시이자 과밀도시다. 9) 한국의 거의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이다. 서울 접근성은 주변 지역민들의 로망이다. 10) 커뮤니티가 형성되지 않는 고독한(원자화된) 도시다.

 

이처럼 도시의 핵심 특징을 서술하는 작업을 SWOT 분석과 곁들여 해 보면 지역 특성 파악에 매우 도움이 된다. 지역민들의 핵심적인 요구, 불만도 보이고, 도시가 어디로 가야 할지도 보인다.

 

지역 민원과 지난 선거 후보자들의 공약을 살펴야 한다.

이전에 치러진 국회의원선거와 단체장 선거의 공약을 살피는 것도 매우 도움이 된다. 사실 한국의 국회의원선거 공약은 대체로 지역민의 요구, 불만을 반영하는 공약이 많기에 단체장 공약과 그리 다르지 않다. 더불어서 민원 게시판이나 (통계청과 기초자치단체가 행한) 사회조사 통계를 통해서도 지역민들의 다양한 요구, 불만을 알 수 있다.

 

단체장이 활용 가능한 핵심 자산을 살펴야 한다.

단체장의 핵심 지렛대는 예산(재정)과 공무원(조직)이다. 더불어서 동사무소, 문화회관, 복지관, 도서관, 경로당 등 공간 자산이다. 어떻게 보면 지리, 인구, 주택 등을 살피는 것은 바로 재정, 공무원, 조례 등을 지렛대로 활용하여 지역민의 요구, 불만을 해소하기 위해서다. 그런데 예산을 먼저 살피지 않는 것은 예산과 각종 자산의 늪에 빠져서 자칫 숲을 보지 못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예산은 일종의 나무에 해당된다.

 

타 지역의 모범 사례를 살펴야 한다. 

사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 230여개 자치단체장과 수많은 공무원들이 지역 발전을 위해 끊임없이 머리를 굴려왔다. 그래서 다른 지자체의 모범을 섭렵하다 보면 적용 할 만한 좋은 아이디어가 부지기수다. 이제 한국도 민선 4기에 이르는 만큼 상당한 모범 사례가 축적되어있다. 멀리 외국을 나가지 않아도 국내 모범 사례만 잘 살펴도 좋은 공약을 많이 만들 수 있다. 외국 지자체에서 벤치마킹을 한다면 일본 지자체가 좋다. 일본 자치단체장의 공약이나 치적을 살펴보면 한국과 별 시간차가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와 관련된 책, 자료는 의외로 많고, 접근하기도 쉽다.

 

먼저 스스로 지역이라는 숲과 나무를 섭렵하지 않고, 또 자치단체가 만든 다양한 모범을 살피지 않고, 기존 시장/군수/구청장의 치적부터 살펴보면 자신이 차별화 할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안하는 것이 없는 것처럼 느껴진다. 정책도 멋진 말로 잘도 포장했다. 하지만 먼저 자기 나름대로의 개념(우선순위)을 잡고, 모범을 살핀 후 현 단체장의 치적(사업)을 살펴보면 허점투성이다. 차별화 할 것이 정말 많다.

 

전문가들과 커뮤니케이션과 신기술.기법

유권자들의 감동과 기대에 불을 지를 수 있는 참신한 아이디어는 전문가들에게서도 많이 나온다. 민선 4기를 거치는 동안 단체장이 아주 게으르고 둔감한 사람만 아니라면 비전문가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정책 아이디어는 웬만큼 구현되어 있다. 물론 소소한 개선 여지야 항상 있지만 좀 독창적 아이디어는 전문가에게서 나오는 경우가 많다. 원래 정책 아이디어는 사람의 요구, 불만(트렌드)이 변하고, 기술과 기법이 발전하면서 나온다. 전문가는 대체로 얼음장 밑으로 흐르는 미세한 물소리를 듣고, 수면 아래 잠행하는(부상을 준비하는) 아이디어와 기술을 안다. 하지만 보통 사람들은 모든 것이 수면위로 올라와야 변화를 느끼고 추세를 안다. 지자체 경영에 적용할만한 신기술에 대해 말한다면, 신재생에너지 분야, 수돗물 저감(빗물 활용) 분야, 에너지 저감 분야, 신교통수단(CNG와 전기버스, 자기부상열차, 경전철, 자전거 등), IT분야, 폐수 저감, 재활용 분야 등에 적용할 만한 신기술이 많다. 물론 행정은 기업보다도 더 확실히 검증된 기술, 기법만 적용해야 하는 만큼 새로운 기술, 기법에 대해서 보수적이다. 어쨌거나 이명박은 ‘버스중앙차로제’라는 브라질 구리찌바시의 교통관리 기법을 도입하여 대박을 쳤다. 사실 이는 고건 시장시절부터 도입 되었는데, 이명박 특유의 추진력으로 이를 대폭 연장하여 대박을 친 것이다. 그런 점에서 단체장의 추진력은 엄청나게 중요한 덕목이다. 기획이나 아이디어는 5%에 불과하고 실행력이 95%라는 얘기는 결코 빈말이 아니다. 다만 이 5%가 정책공약집을 통해서 명기되면 상당한 실행력=이행 강제력이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런 점에서 좋은 정책 아이디어가 있는 시민, 전문가들 입장에서는 메니페스토 선거는 엄청난 기회이다. 좋은 정책(공약)을 찾느라 혈안이 된 후보들에게 잘 다듬어 먹여주면 실행될 가능성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어쩌면 오랜 대중 운동과 집요한 로비로 해야 할 일(좋은 정책이나 법안 입안)을 한방에 해치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

 

 전문가, 기업가에게 현혹되지 말아야 한다.

일반적으로 지자체 경영 관련된 전문 분야는 교통, 주택, 보육, 교육, 복지, 에너지, 환경 등이다. 물론 이 분야를 꿰고 있는 전문가를 만나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이런 전문가들의 식견은 꽃꽂이 할 때처럼 손쉽게 얻어지는 것은 아니다. 그래서 연구소와 전문가 포럼에 대한 장기간의 투자가 필요한 것이다.

사실 지자체장이 받아먹기 좋은 노하우를 가장 많이 가지고 있는 곳은 기업이다. 하지만 기업들은 자신의 비즈니스의 연장으로 정책(공약)을 제안하기에 우선순위를 교란할 소지가 크다. 이는 사실 학자, 관료, 시민운동가 등 전문가들도 마찬가지다. 돈벌이 생각은 없다 해도 자신이 중시하는 가치를 실현하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경향을 적절히 필터링하는 것이 단체장의 경륜이 아닐까 한다. 서울시정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세훈 시장은 디자인을 지나치게 강조하는 누군가(재벌계 연구소?)에게 홀리지 않았나 생각된다.

 

그래도 메가 트렌드를 놓치지 말아야

한국 사회에 커다란 변화를 초래하는 큰 흐름은 있다. 예컨대 세계화(영어, 관광, 경쟁력), 지식정보화(참여민주주의, 지식사회화), 중국의 부상, 북한의 개혁. 개방과 남북 간 경제협력, 에너지자원위기, 환경위기(녹색 선호), 민주화(참여, 거버넌스), 문화예술 선호, 양극화, 사회적 활력저하(20~30대의 구매력 문제), 노령화, 소자화, 도시화, 수도권 집중 등이다. 이는 추상수준이 너무 높은 흐름이긴 하지만 이들이 초래할 변화를 곰곰이 생각해 보면 놓칠 수도 있는 큰 숲의 조망이 보인다.

 

핵심은 현재의 상태

일반적으로 항해를 하려고 하는 배가 알아야 할 핵심 중의 핵심 정보는 현재의 위치(status)이다. 이 위에다가 해류, 바람, 선체의 상태, 선원의 상태 등에 대한 정보를 얹어야 한다. 그런데 현 위치를 파악하는 것이 의외로 어렵다. 수치화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사람은 앞으로 갈 방향(소망과 비전 등)에 대한 관심은 높아도 현재 위치 파악은 등한시 하는 경향이 있다. 절차, 방법은 말할 것도 없다. 그래서 한국 정치판에 메니페스토가 못들어 온 것이다.(사실 아직도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에게는 적용되지 않는다. 국회의원들은 선거 때는 단체장과 다름없는 공약을 하면서도, 집행기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메니페스토 적용을 배제하였다. 자신들을 엄청 피곤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현재의 위치 파악의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리고 모든 아이디어와 공약은 가설인 이상 심층면접, 선호도나 중요도 조사, 여론조사 역시 마찬가지다. 

 

이번 지자체장 선거에서 메니페스토가 얼마나 선풍을 일으키는 지도 놓치지 말아야 할 관전 포인트이다.-끝-

 

참고(정당의 정책공약집)-예비후보공약집과 달리 내용(절차, 방법, 기한, 재원 등) 관련 규정이 없다-

제138조의2(정책공약집의 배부제한 등) ①정당이 자당의 정책과 선거에 있어서 공약을 게재한 정책공약집(도서의 형태로 발간된 것을 말하며, 이하 "정책공약집"이라 한다)을 배부하고자 하는 때에는 통상적인 방법으로 판매하여야 한다. 다만, 방문판매의 방법으로 정책공약집을 판매할 수 없다. 

②정당은 제1항의 규정에 따른 통상적인 방법에 의한 판매 외에 해당 정당의 당사와 제79조에 따라 소속 정당추천후보자가 개최한 공개장소에서의 연설·대담 장소에서 정책공약집을 판매할 수 있다. 이 경우 정당의 당사에서 판매할 때에는 공개된 장소에 별도의 판매대를 설치하는 등 정책공약집의 판매사실을 공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방법으로 판매하여야 한다. <개정 2008.2.29, 2010.1.25> 

③정당이 제1항 및 제2항의 규정에 따라 정책공약집을 판매하고자 하는 때에는 발간 즉시 「정당법」의 규정에 따라 해당 정당의 등록사무를 처리하는 관할선거관리위원회에 2권을 제출하여야 하되, 전자적 파일로 대신 제출할 수 있다. <개정 2010.1.25> 

④정책공약집에는 후보자의 기호·성명·사진·학력·경력 등 후보자와 관련된 사항 및 다른 정당에 관한 사항을 게재할 수 없다.

⑤정책공약집의 작성근거 등의 표시, 제출 그 밖의 필요한 사항은 중앙선거관리위원회규칙으로 정한다.

 [본조신설 2007.1.3]

by 김대호 | 2010/01/28 09:22 | 정치와 통계 | 트랙백 | 덧글(2)

흘러간 옛 노래를 듣다

흘러간 옛 노래를 듣는 심정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나는 음악 취향이 약간 독특하다는 소리를 듣는다. 한마디로 후지기 이를 데 없다는 것이다. 특히 가족들이 내 취향에 질색한다. 그래서 내가 듣고 싶은 음악은 오로지 나 홀로 운전할 때만 듣는다. 그 음악은 1930년대~1960년대 유행했다는 '뽕짝'이다. 30대 초반 이후 지금까지 변함없이 좋아하는 조용필 노래는 가족들이 질색할 정도는 아니어서 간혹 같이 듣곤 하지만, 흘러간 옛 노래는 오로지 혼자만 듣는다. 이 같은 음악 취향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내 기억으로는 40줄에 들어선 이후부터 뚜렷해진 것 같다.



(목포의 눈물, 대지의 항구 등)흘러간 옛 노래는 노랫말이 한편의 시다. 전주(반주)나 간주도 아름답다. 선율도 가사도 전반적으로 애잔하다. 이별, 상실, 실연, 좌절의 슬픔과 한을 노래하고 있기 때문이다. 아마 그래서 내가 좋아하는 것일 게다. 물론 내 노래 취향은 내 기분이나 情調를 반영하는 것이 분명하다. 분노와 증오, 그리고 혁명적 열정과 승리감이 거세게 흐르던 1980년대는 대학 때 불렀던 노래와 김호철 노래가 입에 잘 붙었다. 시는 박노해의 '노동의 새벽'류가 잘 붙었다. 잔치가 끝났다는 1990년대(30대)에는 차만 몰면 내 정조와 상관없이 유치원 다니는 우리 애들이 좋아하는 동요를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듣고 또 들었다. 그 때는 내 취향이 없었다. 40줄에 들어서면서 비로소 내 취향을 찾은 것 같다. 물론 이 취향 역시 얼마나 오래 갈지는 모르겠다.



1930~50년대 노래를 들으면 늙은 아버지 생각이 난다. 1960년대 노래, 특히 이미자 노래를 들으면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어렴풋이 들은 것 같은, 뜨개질 하며 나지막이 부르던 어머니(지금 생각하니 그 때는 어머니가 20대였다)의 노래가 생각난다. 그런데 이것이 내 어릴 때 기억인지, 약간 컸을 때 집에 놀러온 어머니 친구들을 본 기억인지는 모르겠다. 어쨌든 기억이 선명해진 지난 40년 동안은 어머니가 그 때 그 노래를 부르는 것을 본적이 없다.



또한 구성진 옛 노래를 들으면 1930년대 20~30살이었을 내 할아버지 세대들의 삶과 고뇌와 선택을 생각한다. 해방공간에서 과감히 북을 선택했던 지식인들과 독립운동가들, 지리산과 한라산 등으로 빨치산 투쟁하러 들어갔던 사람들, 어느 갱도나 구덩이에서 풍화된 뼈 더미로 무차별 학살을 증언하는 사람들, 감옥에서 인생을 거의 다 보낸 장기수들, 1920~30년대 중국이나 만주로 간 사람들, 조선에 남아 지하 공산주의 운동을 하던 혁명가들, 당시 좀 덜떨어진 사람 취급을 받았던 기독교인들이 생각난다. 님 웨일즈가 장지락을 인터뷰하여 쓴 소설(?) '아리랑'과 이회성.미즈노 나오끼가 쓴 '아리랑 그 후'는 1920~30년대 중국으로 간 혁명가들의 삶과 사고방식과 고뇌를 생생하게 보여주기에 책장의 잘 보이는 곳에 꽂아두고 종종 들춰본다. 그 외에도 해방공간의 격동에 뛰어들었다 처참하게 짓이겨진 사람들의 수기(회고록)도 좋아한다. 소설 보다 더 드라마틱한 수기 류가 많다 보니, 나는 소설을 거의 읽지 않게 되었다. 그러다 보니 책장에는 현대사(1.2대전사, 스페인내전, 일본사, 미국사, 공산주의 운동사 등)나 현대사 인물 관련 책(수기와 평전)들이 계속 늘어나고 있다. 물론 옛 노래를 들으며 60~80년 전만 생각하는 것이 아니다. (김대중을 우습게 여기던) 1960~70년대 지하 혁명(조직) 운동을 하던 사람들의 선택과 역시 비슷한 정서를 가진 1970~80년대 운동권의 선택도 생각한다. 그리고 아옹다옹 다투던 1980년대의 혁명(운동) 노선의 말로와 보잘 것 없는 유산도 생각난다.



가만히 보니 나는 흘러간 옛 노래를 들으며 그 때 그 사람들과 인터뷰를 하는 것 같았다. 왜 당신은 그런 선택을 했는지? 불가피한 한계와 피할 수도 있었던 오류는 무엇이라 생각하는지? 북한과 남한, 그리고 좌파/민족/민주 세력의 당시 전망(기대, 예상)과 의도와 선택(노선)과 실제 경로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는지? 그리고 2010, 2012, 2014, 2016, 2017년 등 한민족과 대한민국과 우리 세대의 명운을 가를 주요한 도전에 대해서 어떻게 응전해야 하는지?



옛 노래를 들으며 이런 저런 상념을 이고 있는 내 모습을 보니 마키아벨리(1469~1527)의 독서 소감이 생각났다. 메디치 가문의 복귀로 인해 모든 지위를 잃은 마키아벨리는 시골집에 은거하여 수많은 책을 읽었다고 한다. 그는 자신의 독서 습관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저녁이 오면 나는 집으로 돌아와 서재로 들어가네. 문 앞에서 온통 흙먼지로 뒤덮인 일상의 옷을 벗고 관복으로 갈아입지. 예절에 맞는 복장을 갖추고 나서 옛사람들이 있는 옛 궁정에 입궐을 하는 셈일세….그곳에서 나는 그들(옛 정치가, 군인, 학자 등)의 따뜻한 영접을 받고, 오직 나만을 위해 차려진 음식을 맛보면서, 그들과 스스럼없이 이야기하지…..이 네 시간 동안만은 나는 전혀 지루함을 느끼지 않네. 모든 고뇌는 잊혀지고, 가난도 두려워하지 않게 되며, 죽음에 대한 공포도 느끼지 않게 되지. 그들의 세계에 전신전령으로 들어가 있기 때문이라네."



내가 옛 노래를 들으며 잠깐 잠깐 나누는 인터뷰는 마키아벨리의 독서습관과 비슷한 것이 아닌가 한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중요한 역사의 현장에서, 결단과 선택을 했던 사람들과 인터뷰 아닌 인터뷰를 하게 된 것은 나와 내가 잘 아는 사람들의 결단과 선택이 역사의 물줄기를 이리저리 돌려놓는 중차대한 어떤 것이라는 느낌이 확연하기 때문이다. 내가 관여하거나 관여했거나 관심 있게 지켜본 일이나 조직들; 2010지방선거-연합정치-국민배심제 운동, 신당 창당 혹은 민주당 개혁 운동, 진보개혁 세력의 (이념, 조직, 문화, 리더십의 총체적) 혁신운동, 내공 있고 자립 가능한 싱크탱크와 지식인 소사이어티 운동, 노무현, 김대중의 유산 계승. 발전 사업은 누가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일의 모양새가 크게 바뀌고, 향후 수십 년에 걸쳐 진보개혁 세력과 한민족의 명운이 바뀔 수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물론 지난 대선과 총선, 열린우리당, 참여정부, 민주노동당, 한겨레신문, 민주노총과 전교조 등도 주체들이 어떤 행보를 하느냐에 따라 역사의 물줄기를 지금보다는 훨씬 좋게 돌릴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집에 비유하면 99간 기와집을 지을 수도, 초가삼간 오두막을 지을 수도 있었는데 대체로 후자를 선택했다고 생각한다.



내가 현대사 책만 들춰봐도 될 것을, 애잔한 옛 노래까지 좋아하게 된 것은 아무래도 지금 남한도 북한도, 그리고 진보개혁 세력도 뭔가 크게 잘못 가고 있다는 느낌이 완연하기 때문이다. 거꾸로 도는 역사의 수레바퀴가 지난 5월 부엉이 바위발 지진으로 인해 잠깐 멈칫 하다가 계속 거꾸로 돌 것 같기 때문이다. (물론 보수의 입장에서 보면 역사의 진보가 거침없이 계속 된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진보개혁 동네가 2002년과 2004년의 승리 이후 날개 없이 추락하는 것은 계절의 변화 같은 자연법칙 때문이 아니라 인간의 잘못된 선택의 결과이다. 이 근원은 결국은 과거의 빛나는 성공신화가 낳은 강고한 (이념, 정책, 조직, 문화적)관성과 지도자들 및 주도세력의 정치사회적 기득권이다. 하나 덧붙인다면 유럽, 미국, 일본과도 다르고, 아시아 아프리카 후진국과도 확연히 다른, 독특한 한국 사회에 대한 일면적인 이해이다. 이는 한국 사회를 지탱하는 지주인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장경제 등에 남아있는 엄청난 외상값, 즉 2만 불대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전근대성을 간과하도록 한다.



사실 나는 이른바 민족해방(NL)파의 노선-특히 미국 혹은 미국에의 예속을 만악의 근원으로 보는 시각-에는 별로 공감하지 않았지만 식민지반봉건사회라는 통찰은 그 때나 지금이나 깊이 음미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를 개혁하는 것은 노무현의 언어로 얘기하면 상식과 원칙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가치로 얘기하면 공정과 공평(합리적인 게임규칙 혹은 기여. 부담. 의무와 권리. 이익. 혜택의 균형)을 바로 세우는 것이다. 이미 정식화된 이념으로 얘기하면 자유주의 개혁을 제대로 하는 것이다. 그런데 한국의 자칭 진보는 자유주의 개혁을 보수주의 개혁으로 간주하거나, 적어도 진보주의와는 대립되는 어떤 것이라고 생각한다. 전혀 자유주의적이지도, 시장주의적이지도 않는 보수 세력에게 과분하기 이를 데 없는 자유주의자, 시장주의자 딱지를 붙이지 못해 안달이다. 어리석은 짓이다.



최근에는 연합정치가 화두가 되면서, 합해서 지지율 35%를 넘지 않는 (오래된 버전(version)의) 민주대연합노선과 잘해야 지지율 10%인 진보대연합노선이 풍미하고 있다. 그 와중에 지지율 51% 전략, 즉 한때 노무현을 지지했다가 이명박으로 돌아섰다가 지금 어디에도 마음을 주지 못하는 수백 만 표를 다시 끌어오는 전략이 실종되었다. 열린우리당, 민주당이 찌그러져도 여기서 이반한 표심이 자칭 진보 정당이 아니라 한나라당으로 가는 것이 문제의 핵심인데, 이는 뒷전으로 밀리고, 파리 날리는 진보개혁 가게들의 연합, 통합 문제가 전면에 와 버렸다. 지난 대선, 총선 결과 깊은 성찰이 필요한 문제로 각인된 문제를 이명박의 폭정으로 인해 얼렁뚱땅 덮어 버렸다는 얘기다.



그 결과 교육문제로 말한다면, 보수는 비록 해법은 후질지언정, 다수 국민들이 가려워하는 '공교육의 무능'을 화두로 쥐고 있다. 그에 반해, 우리(진보개혁)는 좌파답긴 하지만 국민들이 그리 가려워하지는 않는 '무상'(교육, 급식)과 '학생 인권(체벌금지, 두발 자유화 등)'과 '교육 예산 증액(교사 1인당 학생 수 감축 등)'을 화두로 쥐고 있다. 또한 경쟁이 치열할 밖에 없는 경제, 사회, 문화적 조건(학력, 학벌, 학과, 자격증, 소속으로 인한 엄청난 차별)을 해소하는 혁명적 방안 없이 그 증상에 해당하는 과도한 경쟁과 사교육을 문제 삼는다. 이런 기조가 변하지 않으면 보수의 패악이 극에 달하지 않는 한 소수 비판세력으로 남는다고 해도 조금도 놀라운 일이 아니다.



설상가상으로 세종시 문제를 둘러싼 박근혜의 단호하고 현명한 차별화 전략으로 인해, 이명박이 망하더라도 박근혜는 동반몰락하지 않을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이명박 실패로 인한 반사이익을 진보개혁이 챙기기가 쉽지 않게 된 것이다.



생각만해도 끔찍하지만, 2030~2050년경에 한참 뒷걸음질 친 코리아 현실에 분노하며, 역사의 궤적에 관심이 많은 나 같은 류의 사람이 완전히 노인이 된 우리세대와 진보개혁 지도자들의 2010년 전후한 시기의 역사적 선택에 대해서 인터뷰를 요청할지 모르겠다. 그 때 과연 무어라고 답할까? 한민족 현대사에 지천으로 널린 실패한 혁명가/활동가들처럼, 우리의 짧은 호흡, 좁은 시야(일천한 국제감각), 얕은 생각, 얍삽한 행태에 대해서 통한의 반성을 하지나 않을까? 이대로 가면 그런 비극적 사태가 올 가능성이 매우 높다고 생각한다. 보수라도 제대로 한다면 이런 걱정은 좀 덜텐데 암만 봐도 보수 아저씨/아줌마들도 그리 잘 할 것 같지 않다.



나를 포함한 이른바 386세대는 드물게도 부모 세대를 거역하고, 공적 가치에 청춘을 바치는 바보 같은 친구들을 높게 쳐주던 세대다. 고난의 길을 걸어간 사람들을 또래 집단에서 먹어주던 특이한 세대다. 물론 지금은 아무도 386세대를 특별한 세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스스로도 그렇게 생각한다. 당연히 386세대의 민족사적 사명 내지 의무를 의식하는 사람도 거의 없다. 역사에서 항시 있어왔던 그저 그런 40대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피폐한 대한민국을 물려받은 후세대는 이 질풍노도 세대의 무책임하고 저렴한 자평에 동의해 줄 것 같지가 않다. 틀림없이 386 세대와 민주. 노동 투쟁에 앞장섰던 세대의 너무 빠른 조로 내지 (역사적 의무) 망각 현상을 의아해 하지 않을까 한다.



하여간 사고의 시공간을 키워서 지난 100년의 한 많은 민족사(남북한. 해외 동포사)를 반추하고, 역사로부터 배운 것이 별로 없는 것 같은 한국의 주류 정치사회세력들의 행태를 보고, 별로 밝아 보이지 않는 미래를 조망해 보면 흘러간 옛 노래라도 듣지 않으면 견딜 수 없을 것 같다. -끝-

by 김대호 | 2010/01/21 08:45 | 철학과 가치 | 트랙백 | 덧글(3)

대가의 어깨 위에서 서울을 보다

대가의 어깨 위에서 서울을 보다 (곽영훈-김대호 대담)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국에서 도시 디자인(계획)은 주로 건축학과, 도시공학과, 조경학과에서 다룬다. 이 학과(특히 조경학과)들은 대학에 따라 속한 단과대가 다르다. 어떤 곳은 농대, 어떤 곳은 공대, 어떤 곳은 미대 소속이다. 그만큼 종합(복합) 학문이라는 얘기다. 종합 학문이라는 것은 ‘종합의 정수(최고봉)’인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치가(단적으로 알렉산더, 카이사르, 정조 대왕 등)는 도시 디자이너였다. 요즈음은 거꾸로 가는 케이스도 좀 있다. 서울의 버스 중앙차로의 모델이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꿈의 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장들이 대표적이다.

 

 

큰 토목‧건축 공사가 주요하게 포함된 도시 디자인(계획)은 압도적으로, 재정과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 의존한다. 이는 토목건설 업체나 도시 디자인 전문가들의 명줄을 사실상 정부가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도시 디자인 전문가가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거대 토목건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의 주류도, 사학 재단의 대부분도, 서울시와 경기도의 수장도 하나같이 보수 층(반참여정부 층)이었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도시(국토) 디자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가혹한 폄하의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는 전문가들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 않다.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했다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고 느낀다고, 나는 평소 도시 디자인의 대가들이 서울과 역대 서울 시장들이 주도한 서울 도시계획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도시건축가인 곽영훈 박사와 인연이 닿아 그의 어깨 위에서, 서울과 오세훈이 주도한 서울 디자인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담은 2009년 12월 중순께 이뤄졌다. 발언 요지만 전달하기 위해 경어는 생략했다.

 

 

가의 어깨 위에서 서울을 보다 (곽영훈-김대호 대담)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국에서 도시 디자인(계획)은 주로 건축학과, 도시공학과, 조경학과에서 다룬다. 이 학과(특히 조경학과)들은 대학에 따라 속한 단과대가 다르다. 어떤 곳은 농대, 어떤 곳은 공대, 어떤 곳은 미대 소속이다. 그만큼 종합(복합) 학문이라는 얘기다. 종합 학문이라는 것은 ‘종합의 정수(최고봉)’인 정치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는 얘기다. 사실 역사적으로 정치가(단적으로 알렉산더, 카이사르, 정조 대왕 등)는 도시 디자이너였다. 요즈음은 거꾸로 가는 케이스도 좀 있다. 서울의 버스 중앙차로의 모델이자, 수많은 사람들로부터 꿈의 도시로 불리는 브라질의 꾸리찌바 시장들이 대표적이다.

 

 

큰 토목‧건축 공사가 주요하게 포함된 도시 디자인(계획)은 압도적으로, 재정과 인허가권을 쥐고 있는 정부에 의존한다. 이는 토목건설 업체나 도시 디자인 전문가들의 명줄을 사실상 정부가 쥐고 흔들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서 한국에서 도시 디자인 전문가가 중앙 정부나 지방 정부가 의욕적으로 밀어붙인 사업을 전문가적 식견으로 날카롭게 비판하는 것은 대단한 용기가 필요하다.

 

 

김대중-노무현 정부 시절만 하더라도 거대 토목건설회사는 말할 것도 없고, 언론의 주류도, 사학 재단의 대부분도, 서울시와 경기도의 수장도 하나같이 보수 층(반참여정부 층)이었기에 김대중-노무현 정부가 주도한 도시(국토) 디자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과 가혹한 폄하의 소리를 심심찮게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는 전문가들의 묵직하고 날카로운 비판의 목소리를 듣는 것이 쉽지 않다. 귀에 거슬리는 얘기를 했다가는 다양한 방식으로, 때론 상상을 초월하는 불이익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는 만큼 보고 느낀다고, 나는 평소 도시 디자인의 대가들이 서울과 역대 서울 시장들이 주도한 서울 도시계획을 어떻게 보는지 궁금했다. 그런데 다행스럽게도 세계적인 도시건축가인 곽영훈 박사와 인연이 닿아 그의 어깨 위에서, 서울과 오세훈이 주도한 서울 디자인을 조망할 수 있게 되었다. 대담은 2009년 12월 중순께 이뤄졌다. 발언 요지만 전달하기 위해 경어는 생략했다.

 

 

광화문광장에 대하여

 

김대호: 광화문 광장은 아무리 봐도 이상하다. 교통량을 우회시킬 주변 도로가 없다 해도 도로 중앙에 그리 넓지 않은 섬 같은 광장을 만든 것은 이해가 안 된다. 백보 양보해도 광장은 최소한 세종문화회관과 연결되어야 제 기능을 할 것 같다. 도대체 거리 중앙에 공원을 만든 곳이 있긴 있나?

 

곽영훈: 보스턴 마라톤을 잘 알텐데, 결승구간 가기 직전에 ‘Commonwealth Avenue’ 라는 큰길이 있다. 그 중앙에 대형가로수로 조성된 띠 모양의 거리 중앙공원이 있다. 이 거리 중앙공원은 동상이나 조각물 이외에 다른 지저분한 시설이 전혀 없이 보스턴 중심공원과 연결되어 있으며 보행자 도로가 끊김 없이 띠 중간에 설치되어 도시 녹지네트워크의 좋은 사례로 볼 수 있다.

 

두 번째 사례로 일본의 나고야에 가면 100m 정도 넓이의 중심 거리가 도시 중앙에 길고 넓게 공원으로 만들어져 있다. 이 중심 가로공원은 지하의 많은 통로와 연결되어 있고 횡단보도를 통해서 도로 위로도 연결되어 있다. 이 중앙 가로공원은 워낙 넓어서 여러 가지 형태로 도시공간이 꾸며져 있다. 지표광장으로 쓰이는 곳도 있고 어떤 부분은 지하공간이 크게 뚫려 있어 시민들의 입체적 사용이 가능하다. 특이하게 눈에 띄는 것은 이곳 지하공간에서 국제회의 같은 큰 모임을 하는 것이다.

 

대부분 국제회의는 호텔 안의 보이지 않는 연회장에서 하고 심지어 시민의 세금으로 열리는 회의조차도 시민들이 쉽게 접근할 수가 없다. 바로 이런 문제의식을 배경으로 나고야는 시민들이 자연스럽게, 때론 우연스럽게 회의를 방청하거나 참여할 수 있게 열린 지하광장도 만들고 지표면과의 연결은 물론 지상 5층 정도까지 연결되어 다이내믹한 보행공간이 연출되어 있는 것이 특징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르셀로나의 람블라스라는 거리는 보스턴과 나고야 같은 공원형태는 아니고 쇼핑과 보행중심의 공간이다. 우리 황영조 마라토너가 뛴 몬주익 언덕 옆에 콜럼버스 광장이 있는 지중해와 직각으로 배치되어 있으며, 길다란 람블라스 광장에는 말린 생선가게, 꽃가게, 카페, 일상용품 가게, 채소 가게 등이 있어서, 시민들의 일상생활에 재미와 활기를 불어 넣는다. 보스턴의 Commonwealth Avenue와 달리 보행자 중심의 활발한 가로광장으로 92년 바르셀로나 올림픽 때, 관광객들이 즐겨 찾았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과 같이 각광을 받았던 거리이다.

 

쿠리치바 도심의 중심도로는 명동거리가 좀 넓게 펼쳐 있는듯한데 완전히 보행자 천국이다. 이런 가로공원은 유럽도심에서 흔히 볼 수 있다. 도심 가로광장은 무엇보다도 시민들의 보행공간과 그 연변 도시기능과 잘 어우러져야 한다. 광화문광장 주변에 무엇이 있나? 세종문화회관, 미대사관, 정부종합청사 등 인간 척도와 거리가 먼 거대한 건물들이 주로 있어 미리 약속하고 검열을 받고 들어가는 곳들이라 도시민의 흐름이 끊기는 역기능을 하고 있다. 파리 샹젤리제 거리의 연변은 극장, 카페, 자동차 매장, 호텔, 음식점, 패션 매점 등으로 시민들이 쉽게 사용하는 건물들로 형성되어 있다. 이점에서 우리 광화문 거리와 확연히 대조된다.

 

지금 조성된 광화문 거리와 광장은 세종문화회관을 제외하고는 연변의 관청기능과 별로 관계가 없다. 또 은행나무를 뽑아내고 무슨 박쥐 날개모양의 파라솔을 설치한 것을 보고 분개하는 시민들이 많다. 도시 미학이 있는 유능한 디자이너들이 공공 공간의 조형물에 대한 좋은 안들을 분명히 냈을텐데 ⋯

 

김대호: 오 시장은 관광객 유치를 위해 볼거리를 만든다는 생각을 많이 한 것 같은데?

 

곽영훈: 뉴욕, 파리, 로마 등 관광객이 많이 찾는 대도시를 가보라. 관광객에게만 보여주기 위해 만든 시설이 어디에 있는가? 그 도시 사람들이 일상생활을 편리하고 즐기게 하기 위한 시설뿐이다. 그런 시설들이 그 도시의 명물이기에 관광객도 보러오고, 같이 이용하는 것이다. 예컨대, 케이블카 같은 시설은 관광을 위한 것으로만 생각하지만 이탈리아 나폴리 에는 산위로 올라가는 케이블카가 관광객용이 아니라 나폴리 시의 산동네 사람들을 위한 것이다. 이 도시를 찾는 관광객들은 도시 전체를 조망하기 위해 이 케이블카를 재미있게 이용한다.

 

홍콩의 산위로 가는 철길도 산 위에 사는 시민들을 위한 것이고 관광객도 함께 즐기는 것이다. 서울 시민들의 일상생활과 무관하게 관광시설을 별도로 외국 사람들을 위해 특별히 만드는 것은 기본적으로 넌센스다. 서울시민들의 일상생활을 위한 시설을 잘 만들면 관광객이 저절로 보러, 체험하러 오는 것이다.

 

도시를 쾌적하게 잘 만들고 오래가게하면 문명도 꽃피게 된다. 무슨 철학을 가지고 지금 서울시에 꼭해야 될 일이 무슨 개념으로 출발해야 되는지 분명해야 한다. 장난이 아니다.

 

김대호: 광화문 광장을 제대로 만들려면 지하차도를 만들어 차를 지하로 넣어야 할 것 같은데…..가능할까? 5호선이 교보문고 앞을 지나가고, 3호선이 광화문 앞을 지나가는데 ⋯

 

곽영훈: 가능하다. 어떻게 보면 가능하게 해야 한다. 처음부터 입체적으로 보고 도시 기본계획을 하지 않아 어려움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래도 광화문광장의 일부 구간이나마 지하차도를 만들 공간은 있다고 본다. 세종문화회관 옆 차도는 지하로 보내고 생겨난 지표면을 광화문광장과 하나로 연접시키도록 처리해야 한다. 구상만 잘하면 광화문 광장과 보도와의 안전한 연결성이나 보행자들의 이용 편의도가 훨씬 높아지게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명실상부한 시민광장이 생길 것이다. 워싱턴의 펜실베니아 애브뉴처럼, 의전 차들의 안전통행 문제가 있어 지하계획을 무산시킨 경우도 있지만 광화문의 경우는 가끔 있을 수 있는 의전 차들에 한해서 지하 차도가 아니라 광장의 일부분을 잠시 거치도록 하면 되기 때문에 크게 걱정할 것 없다.

 

서울광장에 대하여

 

김대호: 서울광장은 2가지 문제가 있는 것 같다. 하나는 (애초 당선작인 서현 교수의 안을 뭉개어) 잔디광장으로 조성한 것이다. 이 때문에 잔디 보호를 명목으로 이를 열었다 닫았다 할 수 있는 관리자=서울시장의 광장이 되었다는 것이다. 또 하나는 바로 옆 덕수궁과의 연결성이다. 굳이 덕수궁과 서울광장이 차단되어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

 

곽영훈: 지금의 서울광장의 모습은 과거 자동차 통로로 되어 있던 것을 고쳐서 그래도 다행인 셈이다. 오랜 숙원이었는데 어렵게 해낸 것에 먼저 찬사를 보내고 싶다. 그런데 시장이 광장을 쓸 수 있게 했다가, 못쓰게 했다가 한다면 공공 공간의 본래 취지를 어긋나게 하는 것이 아닌가? 그리고 덕수궁 돌담은 여러 번 헐렸다 다시 축조했다를 반복했는데 서울광장과 시각적인 연결을 꾀하고자 했던 사람들과 조용하게 옛 모습을 찾고자 하는 사람들 간에 의견이 아직도 분분하기 때문이었다. 덕수궁 내로 시각적인 열림과 닫힘의 문제보다는 질문한 바대로 덕수궁 담 옆의 보행도로와 어렵게 이루어 논 서울광장을, 광화문광장과 세종문화회관이 서로 넓은 차도로 차단되지 말아야 하듯이, 연결하는 것은 참으로 좋은 생각이다. 2002년 월드컵 때 ‘붉은 악마’ 응원단들이 모였을 때를 보면 그때 이미 연결되어 있었으면 얼마나 좋았겠는지 쉽게 알지 않겠는가?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김대호: 박사님의 구상은 동대문운동장이나 야구장을 보존하자는 것이었다고 알고 있다. 도대체 어떻게 하자는 것이었나?

 

곽영훈: 운동장과 야구장을 전혀 손대지 말고 그대로 두자는 얘기는 아니었다. 왜냐하면 구자춘 시장 때부터 진행되어온 성곽복원이야말로 이 번 기회에 동대문 구간에 꼭 복원시켜야 하기 때문이다. 성곽을 복원하려면 운동장과 야구장을 부분적으로 허물어 낼 수밖에 없다. 다 알다시피 로마에 가면 콜로세움이 부분이라도 기념비적으로 잘 존치되어 있는 것처럼 될 수 있지 않겠나? 성곽을 연결하는 것이 우선적이라 보았고 그래서 야구장과 축구장의 중요한 부분을 어떻게든지 남겨 보존하자는 제안을 했던 것이다. 야구협회와 축구협회도 그런 정도라도 역사를 남기자는 뜻에 동의했었고 ⋯ 제1차 경‧평 축구대회도 있었던 서울운동장이, 그 역사적 흔적이 남아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겠는가? 도시행정과 결정은 관계된 시민과 조직들의 생각 있는 분들과 대화를 해서 합의된 모습으로 결과가 나타나야 한다.

 

또한 인근에 이순신 장군이 말 타고 훈련하던 사적도 있다고 하므로 정확히 찾아내 복원하는 것이 보행이나 녹지네트워크를 전 시가지에 확대해 나간다는 측면에서 바람직한 것이다. 그리고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에서 명동까지도 보행전용도로를 연결하는 구상도 있었는데 지금 계획에는 어떻게 되었는지 전혀 보이지 않는다.

 

어떤 건축가의 말로 종합해보면 디자인 수도 건물이라고 운동장을 모두 허물어 버리고 지금같이 국적 불명의 비싼 건축으로 새롭게 짓는 일을 ‘터무니’ 없는 짓이라고 하더라. 시민 세금 낭비하고 운동장의 역사적 흔적이 영원히 사라지고, 나중에 또 허물 수 있게 지으면 되겠는가? 그래서 도시행정은 공익성의 승화에서만 정당성을 찾을 수 있고 유난히 윤리의식이 중요해지는 것이다.

 

김대호: 내 느낌에 오세훈은 20세기 서울의 역사는 역사로 취급하지 않는 것 같다. 동대문운동장과 야구장은 20세기 중요한 역사의 현장이자, 40대 이상인 세대에게는 청춘의 추억의 장소이다. 일본은 1924년 고시엔(甲子園)구장을 만들었는데 기본 틀을 바꾸지 않고 사용하고 있다. 고시엔구장은(일본 전역 4,119개 고교 야구팀 가운데 각 지역의 49개 우승팀만이 고시엔의 흙을 밟을 수 있기에) 일본 고교생들의 꿈의 장소라고 한다. 한국의 20세기는 선진국의 200~300년을 압축해 놓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서울은 근대문명의 유입 통로이자, 식민통치-좌우갈등-분단, 산업화, 민주화의 진원지다. 이런 역사의 현장들을 애정을 가지고 보존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용산공원

 

김대호: (용산공원 관련 기본 설계가 벽면에 붙어 있어서) 용산 공원 관련 박사님의 구상을 자세히 들어 보고 싶다.

 

곽영훈: 1970년대 원래 서울 녹지와 공원의 구상은 동서 한강녹지축과 더불어 남북 산악녹지축을 열십자로 만드는 것이 기본 골격이었다. 그래서 남산과 용산공원을 연결해야 하는데 해방촌이 있기 때문에 진지하게 합의를 보아야 할 과제가 있었다. 해방촌 사람들에게는 현재 정든 위치보다 더 좋은 곳이 어디 있겠는가마는 그러나 노력해서 그 보다 더 좋은 지역으로 인정받고 합의해줄 대체 부지의 대안들을 마련해 주는 시도가 필요하다. 도시계획에서 시민참여는 마땅히 있어야 하고, 도시 재생사업을 할 때 원주민이 억울하게 진행되는 것은 계획분야의 존재가치가 없다는 것이므로 절대 있어서는 않된다.

 

어쨌든 용산부지가 일부 팔려나갈 수 있는 것을 막아야겠다는 생각에서 그 지역의 진영 의원과 여러 차례 협의를 거쳐 한 평의 땅도 팔지 못하게 입법화된 것은 다행이다. 용산과 남산을 북악산과 관악산으로 남북녹지축이 형성되고 동서를 한강의 수변녹지축이 연결되는 구상이 이 도면에서 볼 수 있다. 도면에서 보듯이 이 열십자의 녹지축은 사실상 먼 훗날 내사산과 외사산으로까지 모두 연결되도록 계획되어 있어 언제고 그렇게 하므로서 세계에서 가장 멋진 도시 환경조경의 사례를 이루어내기를 소망한다.

 

 

 

 

 

 

 

노들섬과 주변

 

김대호: 서울의 상징이 한강이기에, 노들섬에 멋진 건물을 짓고, 접근성도 좋게 만들면 굉장한 명물이 될 것 같다. 그런데 제 머리로는 접근성을 어떻게 좋게 할지 상상이 안 된다. 북으로는 강변북로, 남으로는 올림픽대로와 노들길이 차단하고, 전철역이나 버스정류장을 만들기에는 좀 좁다. 게다가 제1한강교가 노들섬을 두 동강내고 있다. 이런 문제를

해결하지 않고 노들섬에 오페라 하우스를 짓는다면 이건 광화문광장처럼 또 하나의 보기만 좋은 조각품 비슷한 것이 될텐데⋯무슨 좋은 방법이 없을까?

 

곽영훈: 무엇보다도 노들섬 디자인은 한강변 용산 지역과 흑석동 재개발과 같이 처리해야 접근성도 그렇고 걸작품이 태어날 수 있다고 본다. 사실 88올림픽을 준비하는 과정에서 88도로와 강변북로를 입체적으로 처리하도록 했었는데 많은 시간을 놓쳐 그냥 지금처럼 양안이 모두 접근성이 완전히 봉쇄된 상태로 건설되었다. 두 동강 난 노들섬은 다시 붙여 원래 모습을 찾아 놓은 자리에, 세계 어느 도시에도 찾아볼 수 없는, 이 시대의 가장 기념비적으로, 의미 있는 걸작품을 꼭 만들어야 한다. 철교가 거창한 수직요소로 되어있어 완전히 없애는 대안부터 시작해서 전혀 새로운 구상을 해내야 한다.

 

이렇게 주옥같은 노들섬에 동대문 디자인플라자처럼 또 터무니없는 짓을 하면 가만히 두는 것보다 죄를 후손들에게 크게 지는 것이다. 우리나라 건축건설 기술이 세계에서 으뜸가게 성장했기 때문에, 파리의 에펠탑, 시드니의 오페라 하우스, 런던의 의사당을 능가하는 건축안이 만들어진다면, 멋지게 건설해 낼 수 있을 것이다. 이때 단지 하드웨어와 이미지만을 생각하는 것이 아니라 21세기 동북아의 중심, 글로벌 도시로서의 문명 컨텐츠를 가지고 창안을 해서 서울시민들의 영혼의 빛이 천년 이상 가게 했으면 좋겠다.

 

김대호: 한강과 더불어 서울의 매력은 내사산과 야트막한 야산, 언덕이다. 자전거를 타고 반포와 여의도를 오가다 보면 흑석동(명수대 아파트) 주변은 꽤 수려할 수도 있는 절벽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올림픽대로가 다 가려버린 것 같다. 꼭 이렇게 했어야 했는지 의문이다.

 

곽영훈: 물론 그렇지 않다. 흑석동 주변 한강변은 노들강변이라고 부르는데 올림픽대로를 놓고, 대단위 명수대 아파트를 지으면서 매력 있는 아까운 풍광을 망쳐버렸다. 과거 올림픽대로 기본계획을 할 때는 흑석동 길을 지하와 지표를 입체적으로 처리해서 지역간 간선도로와 일반도로를 구분 시켰었다. 그 목적은 노들강변을 살리는 것이었는데, 공사기간, 비용, 미관에 대한 시간 부족과 미학 부족으로 지금처럼 되어 버렸다.

 

원래 계획구상대로 설계를 발전시켰으면 지금 명수대 아파트 단지와 인근 언덕부지는 한강변을 내다보는 유일한 화랑과 음악실을 비롯한 예술인들의 아기자기한 공간이 생겨 세계적 명소가 될 수 있었다. 파리의 언덕은 오로지 몽마르뜨 언덕 하나이고 그것도 쎄느강과는 멀리 있다. 이 하나 가지고 구경 가느라고 난리인데 ⋯ 서울은 그보다 훨씬 아름다운 자연 조건이 수백 곳은 되는데 거의 살리지 못하고 있는 이유는 누구 때문이라고 할 수 있나? 철학의 빈곤이 이렇게 무서운 차이를 가져온다.

 

서울의 5대 흉물

 

김대호: 과거 서울 도시계획의 5대 흉물로 널리 회자되는 것이 있었다. 내 기억으로는 3.1고가도로, 세운상가, 남산 외인아파트, 여의도광장, 국회의사당(불확실함) 이는 대체로 천박한 과시욕이 느껴진다. 세운상가는 그에 해당되는지 모르지만, 3.1고가도로, 남산 외인아파트, 여의도광장은 확실히 천박한 과시욕의 산물이 맞는 것 같다. 도시 디자인은 그 시대 돈과 권력을 쥔 사람들의 심리랄까 영혼이 드러난다는 느낌이다. 요즈음 지어지는 빽빽하게 지은 고층 아파트를 볼 때, 그리고 뉴타운, 동대문 디자인플라자, 광화문광장, 한강르네상스 프로젝트 차원에서 지어진 건축물을 볼 때 오시장의 천박한 과시욕, 낮은 미적 감각과 건설 회사들의 앞뒤 가리지 않는 이윤 추구 욕망이 물씬 풍겨나온다. 몇 십년 후에는 또 남산 외인아파트나 여의도광장처럼 흉물로 되어 철거되지 않을까 한다.

 

곽영훈: 서울에 지어진 많은 고층 아파트들을 닭장이나 비둘기 집에 비유하며 계획된(?) 막개발이라고 부르는 전문가들이 최근에 들어 부쩍 많아졌다. 공산주의 나라가 몰락하기 이전에 건설해놓은 흉물스러운 도시주택건설을 지금 열심히 하고 있는 형국이다. 현재 아무데나 빽빽하게 고층 아파트를 마구 짓고 있는데 방위, 에너지, 환경은 물론이고, 사회계층의 적절한 혼합이나 여러 가족이 같이 살 수 있도록 하는 사회 경제적 측면에서 봐도 도시 공동생활에 대한 본질적인 욕구에 반한다. 이런 것들을 건설해서 과시욕이라면 코미디이고 인간 경시의 산물로 보이는데 가까운 미래에 철거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물론 역세권 같은 곳에는 고밀도 고층도 필요 하겠지만 그로부터 먼 곳에는 기본적으로는 산세와 지형도 감안해서 어울리게 지어야 한다. 여러 세대(노인세대, 1인 가구, 2인 가구 포함)가 같이 살아 가족의 행복을 증대시키는 주택양식이 개발되어야하고 불필요한 복지제도에만 의지하게 되거나 여러 계층이 비슷한 평수에서 살아 同而不和처럼 천박하게 경쟁하지 않도록 계획해야 할 것이다. 자주 철거해야 되는 식으로 도시가 만들어지면 문화가 생성될 수 있는 시간까지 모두 잃어버린다.

 

한강 하구둑 개방

 

김대호: 한강 하구둑(신곡보)을 개방하자는 얘기가 있다. 그래서 임진강과 만나는 교동도 등과 교통을 터자고 한다. 그래도 될까?

 

곽영훈: 신곡보는 트지 않을 이유가 없는 것 같다. 바닷물이 제법 많이 들어오니까 ⋯ 한강종합계획을 구상했을 때 한강은 갈수기에 온통 바닥이 드러나고 마치 작은 개천 같았기 때문에 서울 중심부에 호반화를 위해 행주산성 근처에 보를 제안하였던 것이다. 파리, 테임즈, 캔버라, 비쉬, 보스턴 등 도시중심의 강들은 모두 넓은 수면을 확보하기 위해하구에 보를 만들었다.

 

김대호: 오 시장은 용산에 5천톤급 국제 크루즈선이 들어오게 하여 그 배로 중국을 가겠다고 한다. 어떻게 생각하나?

 

곽영훈: 용산과 여의도 근방에서 어디를 통과해서 황해로 운항이 되는지 좀 더 내용을 알아봐야 할 것 같다. 신곡보가 있고 교하리 쪽으로 해서 황해로 간다면 가능하겠나? 굴포천 운하계획이 어떻게 되는지 잘 밝혀지지 않아 혹시 그 곳을 이용하려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그런데 몇 노트로 황해를 건너 가나?

 

김대호: 일단 바다로 나가면 어느 정도 속도를 내겠지만, 강과 운하에서는 결코 빠른 속도를 낼 수가 없다. 한 전문가의 예측으로는 용산에서 경인운하를 거쳐서 인천까지 가는데 5시간 가량 걸린다고 한다. 그리고 관광용 크루즈선은 각종 편의시설 때문에 10만톤 내외이다. 황해를 오가는 국제 여객선은 가장 작은 것이 1만 6천톤, 큰 것은 3만톤 가까운 것으로 알고 있다. 용산에 들어오는 5천톤급 크루즈선은 강과 운하를 할행하기에는 너무 크고, 황해를 오가기에는 너무 작지 않나?

 

곽영훈: 인천항에서 서울까지 열차로 오면 1시간이 안되는데, 무엇하러 배를 타고 인천을 가나?

 

김대호: 세종시 문제로 시끄럽다. 행정기관의 분리로 인한 비효율이 세종시 수정의 주요 논거다. 박사님 생각을 듣고 싶다.

 

곽영훈: 임시행정수도 도시설계를 했고 5공 초에도 계룡대와 둔산 정부청사지구를 설계한 사람으로 지금 이 세종시 현상을 보면 간단치 않아, 다른 기회를 가지고 별도로 이야기 하는 것이 좋겠다. 도시는 문명을 담는 그릇이다. 그릇 자체도 문명이고. 그래서 말을 하면 길어진다. 무슨 문명을 담아 세종시를 성장 발전시키려고 하는지, 그렇지 않으면 무슨 문명을 융성시키려고 하는지 잘 모르겠다. 도시설계 도면이 너무 짧은 시간에 그려내져서 그런지 문명이야기와 우리 국민에게 무슨 희망을 줄 수 있는지에 대한 의견을 이야기하기에는 자료가 충분치 않다. 무엇보다 본질을 떠난 정치 갈등으로 국론분열과 국민의 세금이 낭비될까봐 걱정된다. –끝-

 

 

영훈 박사는 2008년 가을, 사회디자인연구소 포럼에 오셔서 강연을 한 적이 있다. 그 인연으로 나는 도시 디자인이나 국토 디자인 관련 의문 사항이 있으면 종종 전화로 여쭈어 본다. 1943년생인 곽영훈 박사는 경기중‧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도미하여 MIT공대 대학원에서 건축학을, 하버드 대학원에서 교육학을 전공했다. 그는 이미 1970년대 말과 1980년대 초에 서울의 대동맥이라고 할 수 있는 88 올림픽대로 기본계획(설계), 한강종합개발, 지금의 서울지하철 2호선, 3호선, 9호선 기본계획을 했다. KTX도 그의 정책 작품이다. 대학로와 88 서울올림픽공원 마스터플랜을 짰고, 대전 계룡대 종합계획과 대전 EXPO 마스터플랜을, 여수 여천 신도시 계획, 제주도 종합개발계획 및 관광개발 계획을 했고 지금은 제주대학교의 석좌교수이다. 북한쪽에서는 유엔개발계획(UNDP)의 두만강개발계획과 백두산 환경보존계획을, 해외에서는 나이지리아 新수도 아부자 계획, 이집트 시나이반도 유역도시계획, 알제리 신도시 시디 압둘라 마스터플랜, 네팔 룸비니 평화시 구상을 했다.

 

2012년 여수 EXPO 여수시 유치위원장을 역임했고, 현재 비단길세계연맹 Silk Road Global Alliance 의장이자 [사람과 환경] 그룹의 회장이다. 1962년에는 케네디 대통령과 미국 적십자사의 초청을 받고 한국대표 단장으로 반기문 현 유엔사무총장을 대동하였으며 미국을 함께 방문한 인연으로 지금껏 친한 친구로 지내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과는 꼬마 민주당을 같이 했고(당시 국가경영기획단장), 1997년에 꼬마 민주당이 양분될 때 이부영, 제정구 등과 함께 한나라당에 입당했다. 1998년 4월 20일자‘시민의 신문’에는 노무현 당시 국민회의 부총재와 나란히 서울시장 출마 인터뷰가 실려 있다. 물론 둘 다 비주류였기에 본선에는 나가지 못했다. 노무현 부총재는 고건에게, 곽영훈 박사는 최병렬에게 밀려서 주저앉았다. (관련 기사 아래)

 

 

 (관련 신문기사, 클릭 하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by 김대호 | 2010/01/14 14:47 | 서울.코리아 디자인 | 트랙백 | 덧글(2)

2010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길

2010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길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해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좀 머쓱하게 되었다. ‘집권 가능한 진보 정당 건설’이라는 당찬 포부가 무색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특히 좋은 정치와 좋은 정당을 꿈꾸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북적될 것을 기대하고 ‘좋은 정치 포럼’이라는 공공의 광장을 열었는데 오는 사람들이 없어 결국 우리 연구소의 안마당처럼 되어 버렸다. 그래서 홈피 간판을 왜 사회디자인연구소로 하지 않고, 좋은 정치 포럼으로 했는지 의문을 갖는 사람이 적지 않다. 당연한 일이다. 이런 식이면 굳이 좋은 정치 포럼이라는 간판을 사용해 할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내걸었던 포부와 간판이 무색하게 된 것은 담대한 꿈을 어느 정도는 담보할 수 있는, 정당 활동에 비교적 친숙하고 질량도 좀 되는 전국적 네트워크가 (당초의 암묵적 합의 내지 기대와 달리) 연구소의 컨센서스와 무관한 행보를 하였기 때문이다. 2008년 늦봄쯤, 일부지만 이 네트워크의 몇몇 주요 인물들과 의기투합하여 같이 사회디자인연구소를 출범시켰다. 하지만 이 네트워크는 2008년 가을 경부터, 2010년 지방선거를 대비하여 독자적인 정당(국민참여당) 건설 행보를 시작했다. 이로 미루어 볼 때 애초부터 이 네트워크의 중심적 컨센서스와 현재 연구소의 중심적 컨센서스는 상호 융합(침투)되지 않았던 듯하다. 물론 2008년 말부터 2009년 초까지 몇 개월 동안 양쪽의 컨센서스를 융합해보려는 시도는 있었으나 별무신통이었다. 상당한 질량과 함께 2002~2004년 개혁당, 열린우리당 시기에 형성된 조직 유전자(기본 컨셉, 문화, 정서)를 가진 이 네트워크는 거칠 것이 없었다. 물론 중간에 지체 서행도 있었다. 하지만 노대통령의 비극적 죽음이 이른바 ‘친노’에 대한 국민적 신뢰를 높이고, ‘친노’에 애정이 있는 사람들의 분노와 행동의지를 촉발시켜 독자 정당의 자양분이 되었다. 지난 11월에는 진보개혁 진영의 슈퍼스타 유시민의 참여에 힘입어 더욱 큰 힘을 받은 것처럼 보인다. 연구소 네트워크가 그리던 모양도, 방식도 아니지만 잘 되기를 빌 뿐이다. 연구소가 그리던 모양과 방식도 검증이 되지 않는 가설일 뿐이다.

 

 

물론 2007년 ‘성찰과 모색을 위한 토론 모임’-2007년 5월 ‘후보가 아니라 가치다’, 2007년 8월 ‘통합이 아니다 가치다’를 슬로건으로 한 토론회를 개최했다-과 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대선, 총선에 대한 평가 반성을 통해서 공고해 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중심적 컨센서스를 실천(실험)하는 것도 여전히 가치가 있다고 믿는다. 하지만 국민참여당과 사회디자인연구소를 공히 아끼는 많은 사람들에게 죄송스런 마음을 억누를 수 없다. 이유야 어떻든 2008년 연구소 출범시의 소박한 기대를 저버렸기 때문이다.

 

2009년은 국민참여당 네트워크가 빠져나가면서 휘청대던 연구소를 복구, 정상화시킨 한해였다고 할 수 있다. 그리하여 사회디자인연구소도 국민참여당처럼 2010년을 거대한 도전과 희망의 해로 생각한다.

 

 

아픈 만큼 성숙해진다고, 의견 대립이 생기면서 양쪽의 컨센서스의 차이가 무엇인지 선명하게 인식하게 되었다.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컨센서스가 무엇인지, 2010년, 2011년, 2012년 아니 그 이후에도 사회디자인연구소가 무엇을 해야 할지 명확해졌다. 이 글은 이것을 밝히기 위함이다. 2009년을 거치면서 보다 선명해진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컨센서스는 다음과 같다.

 

 

1.진보개혁 세력이 다시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관건은 국가경영 능력(경륜)이다. 위대한 생각, 사람(선수), (조직)문화이다. 다시 말해 그 수명이 다한 박정희, 김대중 플랫폼을 뛰어넘는 새로운 플랫폼(가치, 비전, 정책)과 이를 공유하는 다양한 부문/층위의 두터운 선수층(인재 풀)과 선진적인 조직 문화가 진보개혁 세력 사활의 관건이라는 것이다.

 

 

2.국가경영 능력은 일조일석에 만들어지지 않는다. (촛불 시위 일으키듯이) 바람으로 권력을 잡고, 사방에 널린 교수, 관료 등 전문가들을 잘 발굴, 배치하면 되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하면 (어차피 교수들은 관료의 상대가 안 되니) 또 한 번 관료 정부가 될 수밖에 없다. 요컨대 진보개혁을 표방하는 집권 세력의 준비가 미약하면 대한민국은 비교적 잘 준비된 기업연구소와 관료가 깔아놓은 레일을 달려갈 수밖에 없다. 큰 수술과 더불어 침, 뜸, 식이요법, 운동요법이 동시에 필요한 중환자 대한민국에게 단지 침, 뜸, 식이요법, 운동요법만 처방하는 의사가 될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로 인해 환자의 고통이 극심하면 기존 의사를 내치고 성질은 더러워도 뭔가 확실히 다르게 할 것 같은, 유능해 뵈는 의사에게 몸을 맡기는 법이다. (진실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게 만드는 언론 지형도 상수이다)

 

 

3.국가경영 능력은 꽃꽂이하는 마인드가 아니라, 거대한 숲을 가꾸는 마인드가 있어야 생겨난다. 촛불시위 조직 마인드 및 유통 벤처 마인드(떴다방 마인드 등)와 더불어 제조업 벤처 마인드가 필요하다는 얘기다. 대체로 제조업 벤처는 오랫동안 숙성시킨 비장의 기술이 있고, 우직한 농경적 마인드가 있다.

 

 

4.진보개혁 성향 사람들을 주된 기반으로 하여 정치를 하려면, 무엇보다도 김대중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리고 열린우리당, 민주노동당, 개혁당(참정연), 한겨레, 경향신문, 민주노총, 전교조, 참여연대 등의 성과, 한계, 오류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 한마디로 이 시대 진보,개혁이 무엇인지, 과거의 진보,개혁과 (세계관, 가치관, 정치노선, 조직노선에서) 어떻게 다른지를 정리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얘기다.

 

 

5.사회디자인연구소는 좌파신자유주의라는 비아냥거림을 받았던 참여정부의 정책의 큰 방향이 틀렸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엄청나게 많이 남아있는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외상값(바닥현실)을 바로 보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대한민국이 인체라면 뇌 깊숙한 곳부터 말초까지 그 핵심 문제와 급소와 선수를 알지 못하고 요란한 치료에 임했다고 생각한다. 또한 한비자, 마키아벨리, 박정희, 등소평과 달리 작은 권력을 휘두르는 존재들의 행태에 대한 통찰도 미흡했다고 생각한다. 특히 자칭 진보 세력의 이념적, 문화적 지체가 얼마나 심한지, 참여정부를 포함한 진보개혁 세력이 그 포부에 비해 얼마나 가진 것(이념, 정책, 조직, 문화, 물적 기반 등)이 없는 집단인지 알지 못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진보개혁 세력 전체가 자신의 역량을 냉철하게 타산하지 못하고, 엉뚱한데서 변죽을 올렸기에 너나 할 것 없이 좌익맹동주의라는 비판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고 생각한다.

 

 

6.소정의 당비 내고, 활동하면 1/n의 주인 자격 준다는 원리로 일단 정당을 만들고 나서, 강령, 정책을 얘기하고, 사회가 먹어주기를 기대하는 것이 언감생심이다. 오히려 평소 자신의 직업, 직능을 통해, 또는 대중 운동(활동)을 통해 먼저 사회(주변)가 먹어 주는 사람이 되고 나서 자신이 참여하는 정당이 먹어주기를 기대해야 한다는 얘기다. 마치 기독교 신자들이 전도를 할 때, 성경 말씀을 전하기 전에 (스스로 복음대로 행동하여) 불신자들의 신뢰를 얻어야 것처럼! 기독교계의 상식은 ‘세상 사람들 100명 중 1명 정도가 성경을 읽고 하나님을 알게 되며, 나머지 99명은 하나님을 아는 사람들의 평소 행실을 보고 하나님을 알게 된다.’는 것이다. 정치인과 정당도 다를 리 없다. 사람들은 정당에 열성적으로 참여하고, 주도하는 사람들의 평소 행실을 통해서 그 정당의 강령, 정책, 비전을 보기 때문이다. 따라서 민주당이나 국민참여당 강령, 정책이 아무리 참신해도 그 지도자들, 중간 간부들, 구성원들의 평소 행실이 국민들에게 믿음을 주지 못하면 지지율이 오를리가 없다.

 

 

(하지만 소선거구제 하에서는, 그것도 국민적 증오와 분노가 넘쳐날 때에는 양대 정당이나 간판급 정치지도자에 대한 지지율은 좀 다르다. 더 미운 놈을 혼내주기 위해서 평소 지지율은 낮아도 투표 때는 껑충 뛰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과거 촛불시위에서 보았듯이 시위라는 것은 그 주동, 주체가 누구인지 묻지 않고, 옳으면 힘을 보태주곤 한다. 아마 이 때문에 정당을 할 때 평소 행실의 중요성을 간과하지 않나 생각된다.)

 

 

7.이념, 정책적 측면의 컨센서스는 식상할 정도로 많은 얘기를 하였다.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이렇다. 거대하고 복잡한 대한민국을 깊숙하게, 그러면서도 종합적, 균형적으로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는 것, 대한민국은 오른쪽으로 확 굽은 사회이자, 왼쪽으로도 꽤 굽은 사회라는 것, 이는 개인과 이익집단은 유능하고 강성한데 반해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이 무능하기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결합, 병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또한 분단, 냉전, 국가 주도의 경제개발로 인해 국가의 권능이 과도하고 재벌.대기업 역시 결코 시장 질서를 자신이 유리한 곳에서만 받아들이기에 자유주의 시장주의적 개혁이 한국에서는 여전히 진보, 개혁적이라는 것, 국가질서와 시장질서(게임규칙)를 창조하고 규율하는 정치가 제 역할을 다하도록 제도(헌법,선거법 등 정치관계법)를 만들고, 훌륭한 인재들이 정치 분야로 모여들도록 하는 것이 대한민국의 명운을 가른다는 것이다. 또한 한국에는 제대로 된 정치가 층=국가경영전문가 층이 없고, 구조적으로 이 층이 형성되기 힘들다는 것, 미국, 유럽, 일본에서 성장한 경제사회 개혁이론은 한국에 잘 맞지 않는 다는 것(이데올로그들이 독특한 한국 현실을 천착하지 않으면 사상.이념의 오퍼상이 되기 십상이라는 것) 등이다.

 

 

이런 컨센서스 하에서 사회디자인연구소의 2010년 주력사업은 다음과 같다.

1. 기본 사업을 지속하고 발전시키는 것이다. 일찍이 <노무현 이후>를 통해 개괄적으로 제시한 진보개혁의 새로운 플랫폼(가치, 비전, 정책 대강)을 잘 다듬고, 이 플랫폼 위에 올려놓을 세부 정책들을 개발하는 것이다. 이를 위해 여러 전문가들과 소통, 교류하는 것이다. 특히 올해는 새로운 컨텐츠 생산에 투자를 아끼지 않을 작정이다.

 

 

2.긴 호흡으로 정책 마니아 집단 내지 ‘30Society’ 형성에 기여하는 것이다. 과거 30년을 돌아보고, 미래 30년을 내다보면서, 한국 사회가 아직도 해법 자체를 갖고 있지 못한 30개의 주요 Agenda를 1년이고 2년이고 물고 늘어져 해법을 내는 30개의 전문가(연구자, 시민운동가, 정치가) 연구,토론 모임을 만들겠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한국은 아직도 진보와 보수의 정책적 아이디어를 유기적으로 통합한 일자리 해법이 없다. 가장 잠재력이 뛰어난 청년들이 시장으로부터 먼 쪽(국가의 규제산업인 의,법,관)으로 달아나는 현상을 제어할 해법도, 이왕 투입된 청년인재들을 활용할 해법도 없다. 대학 진학률 84% 문제, 대학 구조조정 문제, 시장/사회와 대학/지식인집단이 따로 노는 문제, 수명을 다한 행정체계와 헌법 문제, 보건의료복지 문제, 거대한 3비층 문제, 벤처중소기업 육성 문제, 유연안정성과 사회연대성 적용 문제 등등 해법은 아는데 실행할 힘이 없는 것이 아니라, 한국 사회가 해법 자체를 모르는 문제가 숱하게 많다. 이 대부분은 전공을 뛰어넘고, 부문(이론, 실물, 강단, 관료, 정치 등)을 뛰어넘는 연구, 토론이 필요하다. 물론 곳곳에서 이런 문제를 다루는 세미나, 심포지엄은 많이 열리지만 이런 Agenda를 질기게 물고 늘어져서 해법을 내겠다는 집단은 거의 없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올해 몇 개나마 남들이 잘 안하거나 못하는 과제를 다루는 Task Force Team을 만들려고 한다.

 

 

3.지방정부용 컨텐츠 생산 사업이다. 이는 연구소의 재정사업이기도 하다. 단적으로 서울시를 놓고 보면 오세훈 시정의 문제가 무엇인지, 우리가 서울시를 경영하면 오세훈과 어떻게 다를 수 있는지 자신 있게 얘기하기 어렵다. 지난 1년간 서울시를 연구해 보니, 지금 서울시장을 뛰겠다는 사람들의 서울시정에 대한 비판 수준이 매우 얕다는 느낌이 든다. 진보개혁 진영 어디서도 서울시를 깊이 연구하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도 그럴 것이 이명박 정부는 국회와 언론과 시민사회가 깊숙이 파헤치고 신랄하게 비판하지만 오세훈의 서울시정은 (등잔 밑이 어둡다고) 비판의 무풍지대이자, 자신의 치적을 침소봉대하는 광고마케팅의 광풍지대이다. 서울시가 이럴진대 다른 지자체는 더 말할 필요가 있겠는가? (드물게도 진보개혁 성향의 지방정부가 있는 곳은 주로 토건족이나 토호들이 경영하는 언론아닌 언론들이 말이 되든 안 되든 집요하게 물고 늘어지니 비난, 음해는 풍성하다)

 

 

4. 연합정치 관련 사업이다. 이는 최근에 몇 개의 글로 표현하였다. 이는 잘 되면 깨어있는 시민들 수십만 명이 정치적으로 조직되고, 동시에 2010년 지방선거도 압승하겠지만, 무엇보다도 2012년 대회전의 승리 가능성이 높아진다. 연합정치, 통합정치가 활성화되면 지금 쪼개져 있는 수많은 정치사회 역량들이 하나 또는 두 개의 제대로 된 정치조직으로 모이지 않을까 한다. 수많은 지류들이 한강에서 만나듯이…….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기원한다. -끝

by 김대호 | 2010/01/06 18:28 | 철학과 가치 | 트랙백 | 덧글(1)

지난 30년, 큰 아들에게 배반당한 역사

지난 30, 큰 아들에게 배반당한 역사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오늘은 2009년 12월 30. 2010년이 코앞이다. 대체로 연말연시는 사람들의 시야가 넓어지고, 깊어진다. 지난 1년을 돌아보고, 앞에 펼쳐진 1년을 구상해 보며, 삶의 의미를 물어보고, 남은 인생과 짊어진 짐을 헤아려 보기 때문이다. 1980, 1990, 2000년 즈음에 그랬듯이, 2010년을 전후한 시기는 사람들의 시야가 더 넓어지고, 더 깊어진다. 아무래도 좀 더 길게 보고 좀 더 멀리 내다보고, 근본을 보기 때문이다.

 

지난 30년을 돌아볼 때 우리 한국민의 주체적 결단과 의지로서 이룬 양대 역사는 산업화와 민주화일 것이다. 고등교육의 보편화, 도시화, 정보화, 개방화와 자유화, 저출산고령화, 재벌공화국화 등은 양대 역사의 원인이자 결과 일 것이다. 물론 지난 30년은 우리의 의지와 상관없이 해외로부터 거대한 변화/도전의 파도가 밀려왔다. 사회주의권 붕괴(탈냉전), 세계화와 자유화, 중국의 정치경제적 비상, 자주.자립을 기치로 내건 제3세계 발전노선의 좌절, 북한위기 등이 그것이다. 외환위기와 양극화, 지금의 MB/조중동발 거친 역풍은 외부로부터 밀려오는 거대한 도전에 대한 응전 실패의 소산이자, 민주화 세력이 주도적으로 만든 빛나는 역사의 그늘에 대한 둔감의 소산일 것이다.

 

돌이켜보면 한국의 가난한 집안이 일어나는 방식은, 대체로 집안의 똑똑한 ()아들 놈 대학 공부와 출세를 위해, 소 팔고, 밭 팔고, 딸 자식들은 중학교만 졸업시켜 공장으로 보내는 방식이었다. 그렇게 출세시킨 아들 놈이 나머지 동생들과 집안을 돌볼 것을 기대하면서…… 산업화 전략도 비슷했다. 똑똑한 큰 아들 격인 수출기업과 대기업에 자원/특혜를 몰아주어, 즉 출세시켜 나머지(하청 중소기업 등)를 돌보게 하는 방식이었다. 민주화 전략도 비슷했다.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똑똑한 큰 아들 격인 민주당, 총학생회장 출신 386, 대기업 노조 등을 평등사회, 정의사회, 민주사회의 견인차로 간주하고 많은 자원을 몰아주었다. 물론 이렇게 출세시킨 큰 아들 놈들은 대체로 집안의 기대에 무심하였다. 기회를 박탈당한 누나, 동생들의 기대를 배반하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점에서 지난 10년은 한국 사회의 출세한 큰 아들 놈들; 재벌.대기업, 민주당, 대기업.공기업 노조, 사법엘리트, 조중동 등의 배반이 확연하게 드러난 시기다. 그들은 자신 만의 이익을 쫓아서 약진하는 모습이 선명하게 드러났기 때문이다.

 

1960년부터 1990년대 중반까지 한국 민주화 운동의 주력부대는 학생운동이었다. 오랫동안 학생운동은 미국, 군부와 더불어 한국 사회의 3대 세력의 하나로 간주되었다. 이 중심은 이른바 명문대 대학생 중심의 학생 운동이었다. 과거 학생운동이 정치사회적 위상이 엄청나게 높았던 것은 기본적으로 짙은 어둠을 밝히는 횃불이었기 때문이다. 사회의 다른 부문이나 조직이 진실과 정의를 몰라서 외면하거나, 알고도 외면하는 상황에서 학생들이 먼저 떨쳐 일어났기 때문이다. 이들은 부모 세대의 평균 학력이 중학교 졸업에서 고등학교 중퇴 어디 쯤 있을 때 대학생이었다. 대학생들은 실체적 진실에 접근하기 쉬웠고, 이를 빠른 속도로 공유했다. 그래서 나라가 가야 할 방향에 관한 한 ‘부모세대 보다 우리가 더 잘 안다’는 지적 자부심 내지 지적 헤게모니가 있었다. 단적으로 1980년대만 하더라도 국제 정치.경제적 동향이나 한국 경제 구조와 관련된 문제 제기는 학생운동이 먼저 했다. 지금은 오히려 조중동이나 재벌.대기업이 공세적으로 제기하지만……

 

뿐만 아니라 혹독한 역사가 각인시킨 피해의식으로 인해 대체로 일신의 안위와 영달을 당부하던 부모세대에 대해 대학생들은 행동하는 양심으로서의 도덕적 자부심도 있었다. 그래서 1980년대는 부모와 똑똑한 대학생 자식간의 충돌이 그 어떤 시기보다 격렬했을 것이다. 당연히 대학생을 가르치는 교수들의 정치사회적 위상도 높았다. 그래서 교수들의 시국선언의 파장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높았다. 또한 또래 집단에서 운동권 학생들의 헤게모니도 해방 직후의 독립지사들만큼이나 확고했다.

 

이제 학생운동과 교수들의 시국선언을 대단한 무엇으로 만들었던 대부분의 조건이 사라졌다. 물론 이는 한국 사회의 성숙(고학력화) 내지 정상화의 징표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떤 정치사회세력이 정치사회적 헤게모니를 행사하기 위한 핵심 조건이 지적 헤게모니와 도덕적 헤게모니라는 것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그런데 지금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큰 아들 행세를 하는 존재들인 민주당,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국민참여당, 민주노총, 한국노총 등이 과연 어떤 지적, 도덕적 헤게모니를 갖고 있을까? 기회만 있으면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진정한 대표가 자신이라고 자임은 하는 것 같던데 과연 수백만 실업자/반실업자, 수백만의 영세자영업자, 천만이 넘는 임시일용직과 중소하청 기업 노동자, 미조직 노동자 등 못난 동생들의 처지와 요구, 불만을 알기는 알까? 중국, 인도, 동남아, 북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이 도전에 어떻게 응전해야 할지, 그리고 인간의 자유와 행복의 토대인 일자리 전략 및 산업 경쟁력 강화 전략과 관련해서 과연 지적 헤게모니를 쥘 수 있을지 회의스럽지 않을 수 없다.

 

한국 사회는 정보 선택의 자유가 흘러 넘치는 사회다. 이는 자신이 원하는 정보만 취하면서, 즉 자신이 보고 싶은 현실만 보면서 살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남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숱하게 알아도, 자신에 대한 불편한 진실은 전혀 모를 수 있다는 것이다. 집안의 장자로서 의무는 하나도 이행하지 않으면서, 장자가 행사하는 권리만 배타적으로 행사하는 아주 싸가지 없는 놈이 되기 십상이라는 얘기다. 단적으로 민중의 대표성을 전혀 행사할 수 없는 존재(민주노총 등)들이 민중을 사칭하면서 민중경선제 운운하고, 미조직 노동자의 권리(재산)인 복수노조 문제를 조직노동이 자신의 권리처럼 경총과 바터(주고받기) 대상으로 하는 것이 그것이다. 이런 행태가 어디 한국노총, 민주노총,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만의 일 일까? 김대중과 민주화 운동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음에도 불구하고 민주화 세력의 장자임을 자임하는 호남(네트워크) 기반 정치 세력이나 노무현의 정신은 온데 간데 없음에도 불구하고 그 후광을 등에 업고 이를 팔아먹고 있는 정치 세력도 이와 얼마나 다를까?

 

나는 민주, 진보, 개혁 세력이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전제는 자신을 알고, 적을 아는 것(知彼知己)이 아닐까 한다. 다시 말해 자신의 (학생운동 만큼이나)변화된 위상을 알고, 역사적 국면을 알고, 한국 사회의 모세혈관(후미진 뒷골목)과 세계의 큰 흐름을 아는 것이 아닐까 한다. 자신의 변화된 위상을 안다는 것은 곧 국민의 눈, 자영업자의 눈, 미조직 노동자의 눈, 영세하청 기업 등 취약한 자본 위에 서 있는 노동자의 눈, 영남 민주세력의 눈, 수백만 깨어있는 시민들의 눈으로 자신을 보고, 세계를 본다는 것을 의미한다. 역사적 국면을 안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총체적으로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아는 것을 의미한다. 선진국의 경우 사회주의 혁명 운동과 파시즘 운동이 잦아든 20세기 중반 이후부터는 정치, 입법, 행정, 사법, 언론 등 ‘공공’이 바로 선 바탕 위에서 진보와 보수 정치사회 세력이 비교적 생산적으로 경쟁해 왔다고 할 수 있다. 당연히 노조운동 등 사회운동도 사회의 기본 질서(정치. 경제. 사회 정의)를 바로 잡는 운동에 대체로 열성적이지 않았고, 열성적일 필요도 없었다. 정치, 언론, 사법 등이 제대로 작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본 질서가 혁명집단이나 소수 이익집단에 의해 크게 흔들리던 20세기 초 중반에는 그렇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한국 사회의 본질을 드러내는 말로 토건 국가, 삼성(재벌) 공화국, 검찰 공화국, 헌재공화국, 밤의 대통령, 모피아(재경부 마피아), 세피아(국세청 마피아) 등이 널리 회자된다. 변칙 상속, 불공정거래, 각종 특권. 특혜 시비도 잦아들지 않는다. 노동의 양과 질에 따라 처우가 결정되는 것이 아니라 소속(자리)에 의해 결정되는 측면이 크다. 당연히 좋은 자리를 차지하기 위한 고시, 공시 열풍과  사교육 열풍이 극심하다. 양극화는 자본과 시장만이 만든 것이 아니라, 사익집단 편향적인 국가와 더 많은 몫, 더 적은 경쟁(시장)을 추구하는 사회운동도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 의미에서 2010년대 한국 사회는 기본 질서에 관한 한 선진국의 20세기 초 중반-그것도 혁명운동이 잦아든 미국의 20세기 초 중반-에 해당한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국가와 시장이 정상적으로 작동하도록 기본 질서(공공)를 바로 잡는 정치와 사회운동이 절실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요컨대 지금 한국은 국가와 시장을 진보적으로 혹은 보수적으로 바꾸기 전에 이를 정상적으로 작동하게 하는 것이 핵심적인 역사적 과제라는 얘기다. 이는 최소한 국가만은 힘센 이익집단 혹은 엘리트 집단이 아니라 미조직 노동과 3비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과 벤처중소기업 편향적으로 움직이도록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노조운동에 관해 말한다면 핵심적인 역사적 과제는 진정한 연대 전략을 구사하는 것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대자본, 대정부 투쟁할 때 채택하는 그런 연대 투쟁 전략이 아니라, 훌륭한 복지국가를 만든 스웨덴 사민당 및 노총(LO)이 수 십 년간 구사했던 그런 연대 전략-이는 노동계급 차원의 自助전략이 기본이었다- 말이다. 자신의 변화된 위상을 알고, 역사적 국면을 안다면 한국 민주, 진보, 개혁 동네의 큰 아들들의 역사적 책무가 보이지 않을까 한다.

 

100년을 부쳐 먹을 울창한 숲을 불살라 3~4년간 높은 소출을 뽑아먹고 떠나는 화전민 같은 작풍이 팽배한 한국 사회에서는 연말연시 만이라도 더 길게 보고, 더 멀리 보고, 근본을 보고, 입장 바꿔 생각하는 작풍은 너무나 소중한 것 같다. --

by 김대호 | 2009/12/30 18:53 | 정치와 통계 | 트랙백 | 덧글(11)

2010 희망의 새바람을 불러올 [국민배심제 연합공천] 운동 제안

2010 희망의 새바람을 불러올 [국민배심제 연합공천] 운동 제안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 글은 지난 11월 초 [희망과 대안] 회원들께 최초 제안했고, 지난 12월 17일 [경남사랑21(준)]이 개최한 '지방자치 연합정치 간담회'(창원 민주노총 강당, 부제: 연합정치의 새바람을 경남에서부터)에 참석하여 발제, 토론한 내용을 종합한 것입니다. 물론 이 아이디어를 입안하고, 진화시키는 전 과정은 사회디자인연구소 네트워크가 함께 했습니다.

 

이 제안의 핵심 문제의식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MB 및 한나라당과 지역 독점 정치에 반대하는 건강하고 다양한 힘을 2010 지방선거를 앞두고 어떻게 묶어낼 것인가? 특히 훌륭한 무소속 후보를 포함한 진보개혁 후보 단일화와 공동의 이념.정책적 컨센서스를 어떻게 이뤄낼 것인가?

 

둘째, 기존의 정당 틀에 담겨 있지 않지만 반역의 역사를 끝장내기 위한 진보개혁세력의 강력한 연합정치를 갈망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기대, 열정, 의지(정치적 지하수)를 어떻게 개발, 결집할 것인가?

 

셋째, 현행 미국, 영국식 선거제도(소선거구제-양당제)가 유지된다고 전제 했을 때, 다양한 진보개혁 정치세력들이 소모적으로 다투는 군소정당의 형태가 아니라, 정파로서 경쟁하는 미국 민주당 같은 단일한 민주진보개혁 정당의 이념적, 문화적, 조직적 토대를 (2012년까지) 어떻게 구축할 것인가? 특히 심각한 이념적, 문화적 지체(얄팍, 얍삽함과 아집)와 깊게 파인 감정적 앙금(불신)을 어떻게 해결할 것인가?

 

넷째, 진보개혁 진영 전체의 발전과 ‘51% 이상의 국민지지 획득’으로 집약되는 통 큰 정치 기획(김대중, 노무현적 고민)에는 관심이 없고, 오로지 자기 밥그릇에 더 많은 밥을 퍼 담을 생각만 하는 진보개혁 정당, 정파, 정치인들의 퇴행적 작풍을 어떻게 억제할 것인가?  

 

아래는 이상의 문제의식에 대한 나름대로의 해법입니다. 그 핵심은 깨어있는 시민 수십 만 명(기존 정당원 포함)을 시민배심원단으로 조직하고, 이들을 대상으로 무소속 포함 여러 선수들이 유세하고, 이들의 투표 혹은 점수매기기 행위(on-off 투표) 등을 통하여 후보단일화와 공동의 이념적 컨센서스(공동의 강령적 선언)를 형성하자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말하겠습니다.

 

1.  먼저 故노무현 대통령의 언어로 말하겠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조직된 힘”을 어떤 그릇에 담을 것인가?

촛불 광장으로? 정당이나 정치인 후원회로? 시민사회단체로? 노동조합으로? 생활협동조합으로? 좋은 교회, 성당, 사찰로? 좋은 친목회, 동호회로? 다 필요하지만 제각기 한계가 뚜렷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시다시피 시민들은 대체로 최선을 추구하지만, 현실 정치와 정당은 대체로 차악을, 잘해야 차선을 추구합니다. 지정.지경학적 조건으로 보나, 정치.경제.언론 지형으로 보나, 진보개혁세력의 지적, 조직적 역량으로 보나, 국민들의 높은 기대수준으로 보나 현실 정치가 시민들에게 매력 있게 보이기는 힘들 것입니다. 어찌 보면 한국에서 진보적 개혁은 케익 자르는 플라스틱 칼로 고기를 자르는 것만큼이나 어려운지도 모릅니다. (정치,언론 지형상 진보개혁의 칼이 플라스틱 칼이라면, 보수의 칼은 무딘 구리칼 정도는 될 것입니다. 진보 보다 조금은 낫지만, 서로 시원치 않기는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도구가 시원치 않으니 고기를 자르지 말자는 것이 아닙니다. 고기의 미세한 단층을 잘 보고, 과욕 부리지 말되 정교하고 빠르게 손을 놀려서 잘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필요하면 묘수를 발휘해서 뼈도 잘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한국 진보개혁 정당의 후진성은 시민들의 기대 수준이 너무 높아서 크게 보이는 것이 아닙니다. 상식의 눈으로 봤을 때 너무나 기형적입니다. 너무나 허접하고, 너무나 위선적입니다. 그래서 서로 손가락질하며 새로운 당이 계속 생기는 것 아니겠습니까?   

 

요컨대 지금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힘의 결집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해서 현실의 정당이라는 그릇에는 다 담길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민주노동당에? 진보신당에? 창조한국당에? 국민참여정당에? 민주당에? 정치운동체에? 안됩니다. 제각기 이념.정책적 한계, 조직문화적 한계, 지배구조의 한계, 리더십의 한계 등이 뚜렷합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일수록 이 한계 내지 후진성이 더 선명하게 보일 것입니다.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쪼개지고, 창조한국당, 국민참여정당이 만들어진 것은 다 이유가 있습니다. 이들 당이 하나 같이 조직적으로 왜소하고, 이념정책적으로 부실한 이유도 있습니다.

대충 비슷한 곳에 들어가거나 지지하는 것도 가능하고 좋은 일이지만, 깨어있는 시민들의 의무 사항이 될 수가 없습니다. 이를 무슨 의무처럼 강요한다면 일종의 독점 공급자 폭력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정당과 정치를 혐오하는 것은 건강한 정치와 사회의 동력인 측면이 있습니다. 혐오가 지나쳐서 외면과 기피로 치닫는다면 사회 발전의 질곡이겠만......

 

정말 한국 정치와 정당은 깨어있는 시민들이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존재인 측면이 있습니다.

지난 3월 4일 故노무현 대통령이 쓴 ‘정치 하지 마라’라는 글은 건너기 힘든 큰 강의 존재를 말해 줍니다. 

 

“‘정치, 하지마라.’ 이 말은 제가 요즈음 사람들을 만나면 자주 하는 말입니다. 농담이 아니라 진담으로 하는 말입니다. 얻을 수 있는 것에 비하여 잃어야 하는 것이 너무 크기 때문입니다. 정치를 하는 목적이 권세나 명성을 좇아서 하는 것이라면, 그래도 어느 정도 성공을 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래도 성공을 위하여 쏟아야 하는 노력과 감수해야 하는 부담을 생각하면 권세와 명성은 실속이 없고 그나마 너무 짧습니다. 이웃과 공동체, 그리고 역사를 위하여, 가치 있는 뭔가를 이루고자 정치에 뛰어든 사람이라면, 한참을 지나고 나서 그가 이룬 결과가 생각보다 보잘 것 없다는 것을 발견하게 될 것입니다.(중략) 정치를 하는 사람은 모든 것을 정치에 바쳐야 합니다. 정치를 위하여 무엇을 바쳐야 하는지를 헤아리는 것보다, 그가 가진 것 중에서 정치에 바치지 않은 것이 무엇인가를 헤아려 보면, 아닌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그 중에서도 사생활, 특히 가족들의 사생활을 보호할 수 없는 것은 참으로 치명적인 고통입니다. 그러나 이 정도까지는 스스로의 선택이니 감당해야 할 것입니다.

 

문제는 정치인이 가는 길에는, 미처 생각하지 않았던, 그리고 스스로 감당하기 어려운 난관과 부담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거짓말의 수렁, 정치자금의 수렁, 사생활 검증의 수렁, 이전투구의 수렁, 이런 수렁들을 지나가야 한다는 것입니다. 특별히 좋은 조건을 가진 정치인이 아니고는 이 길을 회피하기가 어렵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수렁에 빠져서 정치 생명을 마감합니다. 살아남은 사람도 깊은 상처를 입은 사람이 많습니다. 무사히 걸어 나온 사람도 사람들의 비난, 법적인 위험, 양심의 부담, 이런 위험 부담을 안고 살아야 합니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말년이 가난하고 외롭습니다"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힘’을 기존의 정당이라는 그릇에 담으려는 노력은 분명히 의미가 있지만(그래서 저도 꽤 노력하는 편입니다), 한계가 명확하기에 새로운 그릇을 한번 생각해 보자는 것입니다.  

 

2. 상층 정치협상으로 연합정치가 잘 되겠습니까? 시민사회의 원로들의 중재로 연합정치가 잘 되겠습니까?

 

한국 보수 진영은 ‘선수’로 뛸 의사는 별로 없지만 재벌, 조중동, 거대한 종교권력, 사학권력 등 연합정치를 강제할(합의를 파기하는 존재를 응징할) 힘있는 후견인(큰 손)들이 있습니다. 하지만 진보.개혁은 없습니다. 김대중, 노무현 전대통령이 떠난 이후는 확실히 없습니다.

 

진보.개혁 세력 내의 이념.정책적, 감정적 골은 매우 넓고 깊습니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한 말;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는 실개천이 놓여있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는 큰 강이 놓여 있다’는 말은 빈말이 아닐 것입니다. 적어도 감정적 간극이 엄청나게 큰 것은 분명할 것입니다.

 

이는 지지층이 겹치는 관계로 ‘저 놈이 살면 내가 죽고’ ‘저놈이 죽으면 내가 사는 관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나라당, 선진당, 친박연대 와는 이런 관계가 성립하지 않지만, 진보개혁 정당들 사이의 관계는 그렇습니다.

 

또한 모든 출마는 개인이나 정당 입장에서는 미래의 정치적 지분 및 자산을 쌓는 것이기에,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해서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진보개혁 후보의 손을 잘 들어주지 않습니다. 깨놓고 말해서 자신의 출마로 인해 유력한 진보개혁 후보가 떨어져야 지분이 커집니다. 게다가 대통령 자리라면 몰라도, 그 이하 자리는 양보의 대가로 나눠 줄 것이 별로 없습니다. 따라서 진보개혁 진영 전체는 망해도 개인과 자기 정당의 입지만 강화되면 얼마든지 그런 선택을 할 가능성이 있습니다. 놀랄 일도, 분노할 일도 아닙니다. 정치적 유통기한이 얼마 남지 않은, 할게 정치 밖에 없는 인간의 人之常情적 행태 입니다.(사람 별거 아니잖습니까?)

 

사실 정당 지도자들은 ‘참여를 말하지만’ (자기를 지지하는 당원들이라면 몰라도) 당 밖의 국민들이 공천과정이나 정치협상에 끼는 것을 바라지 않습니다. 이런 권능들을 독점하고 싶어합니다. 그런데 밀실의 상층 정치협상은 가능성도 낮고, 재미도 감동도 없습니다. 이는 공급자들이 담합하여 일종의 독점 상품 만들어 진보개혁 소비자들에게 구매를 강요하는 일이나 마찬가지 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가장 큰 문제는 진보개혁 진영 전체가 절실히 필요로 하는 국민적 감동과 기대의 바람을 불러일으키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3. 연합정치를 사생결단의 제로섬 게임이 아니라, 선수가 멋진 플레이를 하면 져도 엄청나게 남는 포지티브 섬 게임으로 만들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파이 자체를 키워야 합니다. 파이는 일차적으로 더 많은 지방권력이고, 이차적으로는 양적으로 질적으로 크게 늘어난, 기존 정당 틀에 담기지 않았던 깨어있는 시민들의 오래도록 식지 않는 지지와 신뢰 입니다. 이는 멋진 플레이를 한 선수와 정당의 두터운 정치적 자산이 될 것입니다.

 

지구상에는 강.호수에 흐르는 물(지표수)보다 지하수가 100배 이상의 수량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이는 한국의 진보개혁적 정치 역량에도 해당된다고 생각합니다. 기존 정치조직으로 결집되어 있는 역량보다 훨씬 많은 역량이 마치 지하수 형태로 한국 사회 저변을 흐릅니다. 한국 진보개혁 진영이 반역의 역사를 끝장내려면 수량도 많고 수질도 좋은 이 엄청난 지하수를 퍼 올려 강을 만들고, 이 강이 수량과 수질이 변변찮은 기존 지표수와 합류시켜야 합니다.

 

그러나 현재 보이고 있는 분열의 정치, 위선의 정치, 희망과 대안이 실종된 정치에서는 민주, 개혁, 진보, 자유, 평화를 염원하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적극적인 정치 참여(후보로, 정당원으로, 금전적 후원으로, 자원봉사로……)는 너무나 제한적인 일 것입니다.

 

4. 정치적 지하수를 개발하려면, 한마디로 물심 양면으로 성원을 아끼지 않는 (최소 1만원을 낸) 관중=배심원 자원자를 구름처럼 불러 모으려면 좋은 경기장과 경기규칙과 심판과 참신한 광고마케팅이 필요합니다. 물론 훌륭한 선수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지 않으면 관객과 경기장을 만든 사람들이 좀 뻘쭘해지겠지요. 하지만 무명선수나 자유계약선수들(무소속), 지방리그(영남 등), 2부 리그, 3부 리그(시의원 등) 선수들이 있기에 경기가 열리긴 열릴 것입니다. 하지만 흥행이 좀 안되겠지요.

 

흥행이 잘 되려면 구단(정당) 및 선수(후보)들과 경기장, 경기규칙을 만들고 심판을 보고 관중을 불러 모을 사람들의 공모.협력이 필요합니다. 그리고 심판권은 명망 있는 시민사회 인사들과 전문가 패널들과 추첨으로 선발된 오프라인 배심원단(100인 위원회 등)과 경기장에 들어온 수천, 수만, 수십만의 관중이 적절히 나눠서 행사해야겠지요. 국민배심원단은 법적 구속력이 있는 판결을 하는 판사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투표 등으로 의사를 표현할 뿐입니다. 다만 선수들과 구단들이 협약을 통해, 마치 여론 조사 결과를 존중하듯이, 배심원단의 집약된 의사를 존중하는 형식입니다. (만약 후보 선출을 당내 행사로 제한해 놓고, 사전 선거운동 금지의 미명하에 일반 국민들의 정치 관여를 막고 있는 후진적인 선거법만 아니라면 국민배심원단은 사실 국민경선단(일종의 오픈 프라이머리)이라는 이름을 쓸 수 있을 것입니다)

 

국민배심제 연합공천은 모든 지역, 모든 선거(구)에서 다 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관중(심판)과 선수(구단)들이 해 볼만하다고 느끼는 곳에서만 일단 해보자는 것입니다. 이것이 흥행이 되면 87년 7~8월 투쟁이 울산, 창원에서 발화하여 북상했듯이, 수도권으로 북상할 수 있겠지요. 그리고 가장 먼저 이뤄져야 할 일은 선수(구단)들의 결단이 아니라, 감동과 기대를 불러일으키는 새로운 연합정치를 갈망하는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관중들)의 결단과 참여겠지요. 

 

5. 이 국민배심원단은 단순히 단일후보 만을 가리는 것이 아니라, 각 정파나 논객들이 제출한 140자 정도로 집약한 새로운 진보개혁의 컨센서스(정책 개요 내지 강령적 선언)도 가릴 수 있을 것입니다. 단일 후보 선출 과정처럼 국민배심단(전문가 패널, 추첨으로 뽑인 100인 위원회 포함)의 선호.공감 투표를 통하여 새로운 진보의 컨센서스(10대 정책 혹은 20대 정책)를 각각 140자 내로 정리해서 수많은 국민배심원단에게 (온.오프라인으로) 공개하고, 평결을 구해야 할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진보개혁 동네는 여태까지 그래왔듯이 스님과 목사의 논쟁 비슷한 논쟁이 끝없이 계속 될 것입니다.

 

진보개혁 정치지도자들 및 논객들의 의도.예상과 전혀 다르게 전개된 2004~2008년의 정치적 격변은 그들의 지적, 이념적 지체 현상 내지 현실감각의 상실을 의미한다고 봐야 합니다. 정치지도자들과 논객들이 대중보다 더 현실을 못 읽는 것은 대체로 급격한 패러다임 전환기의 특징입니다. 그런 점에서 이념의 틀에 구애받지 않고 현실을 정확하게 읽는 수많은 깨어있는 시민들로 구성된 국민배심원들의 판단에 많은 권능을 부여하는 것은 현명한 처사라고 생각합니다.

 

6. 좋은 경기장 및 경기규칙과 좋은 심판을 통해서 뽑으려는 후보는 '희망후보(가칭)' 입니다. 호남에서는 민주당의 부실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범 진보개혁 단일 후보이자,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범 진보개혁 단일후보이자, 나머지 지역에서는 한나라당을 이길 수 있거나, 최소한 민주당과 각축할 수 있는 후보 입니다.(아무래도 현실 정치지형을 반영하여 민주당 후보가 반한나라당 단일후보로 결정 되는 경우가 월등히 많겠지요) 반MB.반한나라당을 중심 기치로 할지, 반독점 정치를 중심 기치로 할지는 중지를 모아 결정하면 됩니다. 반독점 정치를 기치로 내세우면 호남에서 민주당과 대립각이 설 뿐 나머지 지역에서는 반한나라당과 크게 다를 수 없겠지요.

 

7. 국민배심원단을 통한 연합정치운동은 좋은 후보를 발굴하고, 검증하고, 단일화하고, ‘희망후보’로 추천/인증하는 것입니다. 이는 현재 당적을 가진 후보 가운데서만 하는 것이 아닙니다. 기존 정치와 정당에 환멸을 느낀 훌륭한 무소속 후보들도 적극적으로 발굴하여, 기존 정당 추천 후보들과 경쟁시켜 보자는 것입니다. 이들은 이런 틀이 아니면 현실 정치의 장에 들어오기 힘듭니다. 그런데 진보개혁 연대를 외치는 정치조직들은 훌륭한 무소속에게 기회를 준다는 것은 머릿속에 없습니다.

 

8. 요컨대 연합정치 운동이 받드는 시대정신은 반독점 정치-반한나라당 연합정치-좋은 후보(실력 있는 후보, 희망후보) 발굴, 검증, 인증(가이드라인 제시)-정책과 대안을 중시하는 정치 문화-감동 있는 정치(희생, 봉사)-정치적 지하수 개발-연합정치 수준 제고(거대 단일 정당의 사상 이념적 기초 형성, 합의 가능한 경쟁 규칙 개발, 정당의 저변 심화. 확대 등) 입니다.

 

9. 긴 얘기 짧게 줄이면 2010년 대회전의 승리를 위해 누군가 지하수맥을 뚫어 남(기존 진보개혁 정당과 약간의 무소속 후보) 좋은 일을 하자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자신의 당파적(서클적) 이해관계를 접고 철저하게 범 진보(민주, 개혁, 진보, 자유, 평화, 미래) 진영 전체의 발전에 복무하자는 것입니다. 이런 차별화된 행보는 국민적 감동의 태풍을 불러일으킬 것입니다. 수십억 원의 돈(선거자금)과 수백 만 표의 표심을 결집하도록 해 줄 것입니다. 이를 배경으로, 즉 민노당, 진보신당, 참여당 브랜드 보다 훨씬 먹어주는 “희망후보(가칭)” 브랜드 사용권(범 진보 단일후보 혹은 민주당을 제외한 나머지 범 진보의 단일후보)과 적지 않은 선거자금 및 자원봉사자 지원권을 둘러싼 경쟁을 연출하자는 것입니다. 이 경쟁에는 군소 정당 후보들과 적절한 검증 절차를 밟은 무소속 후보들이 뛰어들 것입니다. 물론 경쟁규칙이 군소정당 및 무소속이, 심지어 상당수 민주당 후보들도 승부를 걸어 보고픈 느낌이 들도록 합리적이어야 할 것입니다. 동시에 참신하고, 의미도 있고, 흥행이 되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이를 추진하는 주체는 2010년에는 자신을 비워야 겠지요. 하지만 성직자 마인드를 가질 필요는 없겠지요. 남 좋은 일, 진영 전체의 발전에 복무하는 일이 자신에게도 얼마나 도움이 되는 일인지는 길게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거대한 규모의 국민배심제를 통해 성과있는 연합정치를 구현한다면, 2012년에는 반역의 역사를 끝장낼 수 있는, 새로운 진보의 컨센서스와 실력 있는 공공인재풀을 가진 차원이 다른 강력한 연합정치를 선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국민배심제 연합공천(정치)] 운동과 관련하여 혹시 제가 간과하고 있는 맹점, 헛점이 있으면 지적해주시고, 공감하면 아낌없는 지지, 성원 부탁드립니다.-끝-

 

사족 하나.

진보개혁 정당과 정파들은 생존 전략이 아니라 집권 전략을 중심에 두어야 합니다. 지지율 3~5%짜리가 7~10%로 되는 전략이 아니라 합쳐서 35%짜리가 55%가 되는 전략을 중심에 놓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진정한 생존 전략입니다. 하지만 민주대연합론도 진보대연합론도 이런 안목과 포부가 보이지 않습니다. 이는 진보개혁 세력이 제시하는 일자리 전략 하나만 보아도 알 수 있습니다. 진보개혁의 일자리 전략의 대부분은 교육, 의료, 주거, 복지 관련 표준(스펙) 상향과 재정 포트폴리오 조정(토건->복지로)과 증세 입니다. 물론 이는 필요한 일이지만 55% 전략으로는 부족합니다. 출산율 2.1전략으로도 부족합니다. 거대한 3비층에게 감동과 기대를 줄 수 없습니다. 55% 전략은 이와 더불어 시장질서를 바로 잡는 것, 금융, 재정, 인재, 노동력 등 사회적 자원의 흐름을 바로 잡는 것(불합리한 특권, 특혜를 조정하는 것), 스웨덴 노총(LO)이 구사했던 진정한 연대전략과 유연안정 전략을 구사하는 것, 미래학(에너지, 자원, 환경, 의료, 인구변동, 6T 등)에 입각한 선택.집중 전략을 제대로 구사하는 것, (검찰공화국, 재벌공화국, 헌재공화국, 모피아, 밤의 대통령이라는 말이 나오지 않도록) 국가 기본질서를 바로 세우는 것 등을 포함해야 합니다. 이는 가임 여성 출산율만 높이는 것이 아니라 기업 출산률(창업률)과 성장률을 획기적으로 높일 수 있습니다. 그래야 벤처중소기업, 지식노동자(화이트 칼라), 청년세대 등 건강한 도전 세력의 뜨거운 지지를 받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 55%를 넘길 수 있습니다. 이것이 진정한 진보개혁 혁신의 내용이 될 것입니다. 물론 이 역시 국민배심원단의 평결을 받았으면 하는 수많은 강령적 아이디어 중의 하나 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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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 연합정치 방법은 '남 좋은 일' 하는 것"
경남사랑21(준), 17일 저녁 김대호-하승창 초청 '지방자치 연합정치 간담회'
출처 :
"2010 연합정치 방법은 '남 좋은 일' 하는 것" - 오마이뉴스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284493

 

by 김대호 | 2009/12/23 12:52 | 정치와 통계 | 트랙백 | 덧글(0)

연합정치의 핵심은 남 좋은 일을 하는 것

지난 12월 17일 경남 창원의 토론회에 참석해서 발제와 토론을 했습니다. 40여명이 참석한 토론회인데 오마이뉴스가 상당히 자세하게 소개했네요.

2010 연합정치 방법은 '남 좋은 일' 하는 것"
경남사랑21(준), 17일 저녁 김대호-하승창 초청 '지방자치 연합정치 간담회'
09.12.18 10:15 ㅣ최종 업데이트 09.12.18 11:56 윤성효 (cjnews)

"2010년 대회전의 승리를 위해, 누군가 지하 수맥을 뚫어 남 좋은 일 내지 진보개혁 전체를 위해 좋은 일을 확실히 하자는 것이다. 자신의 당파적 이해관계를 접자." (김대호)

 

"각 정당 대표들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연합정치'를 이야기한다. 경기장은 만들어졌다. 지금은 어떻게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심판을 만들 것인지가 숙제다." (하승창)

 

내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야당과 시민사회진영이 '연합정치'를 논의하기 시작했다. 한나라당과 1대1로 맞서야 '반한나라당' 내지 '반MB'를 내세운 후보가 승산이 있다고 보고 고민하기 시작한 것이다.

 

이 같은 논의는 이름은 다르지만 비슷한 형태로 서울과 부산 등 일부 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데, 경남에서도 전국 어느 곳 못지않게 활발하게 논의되고 있다.

 

민생민주경남회의는 지난 11월 11일 창원대에서 "2010 지방선거의 의미와 반MB연대 실현"이란 주제로 토론을 벌인 적이 있다. 이어 경남사랑21(준)은 17일 저녁 창원노동회관에서 "지방자치 연합정치, 연합정치의 새바람을 경남에서부터"라는 주제로 간담회를 열었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오른쪽)과 하승창 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왼쪽)은 경남사랑21(준)이 17일 저녁 민주노총 경남본부 강당에서 연 "지방자치 정치연합-연합정치의 새바람을 경남에서부터"라는 제목의 간담회에 참석해 발제했다.
ⓒ 윤성효
연합정치

 

경남사랑21(준)은 진해 덕산성당 김영식 신부가 대표를 맡고 있는 단체인데, "풀뿌리 민주주의 강화를 위하여 2010년 지방선거에서 좋은 지방일꾼이 많이 탄생되기를 희망"하고 있다. 이날 간담회에는 경남지역 민주당·민주노동당·국민참여당(준), 시민사회단체들이 참석했다.

 

신석규·임영대 마창진환경연합 공동의장, 김종대 자치분권전국연대 대표, 이기동 자치분권전국연대 집행위원장, 이흥석 전 민주노총 경남본부장, 허연도 민주노총 경남본부 정치위원장은 간담회에 참석했다. 또 박기병 민생민주경남회의 상임집행위원장, 장성국 민생민주창원회의 집행위원장, 전기식 교수, 김정광 우리겨레하나되기운동 경남본부 집행위원장, 민호영 국민참여당 경남창당준비위원장, 김은호 민주노동당 경남도당 조직국장, 진광현 민주당 경남도당 정책실장 등의 모습도 보였다. 김영만 6.15공동선언실천 남측위원회 경남본부 의장과 백남해 열린사회희망연대 공동대표는 다른 일정으로 참석하지 못했지만, '함께한다'는 입장을 냈다.

 

신석규 대표는 이날 인사말을 통해 "어렵게 민주주의를 이루어내서 제대로 민주주의를 시작하는가 싶었는데, 이명박 대통령의 '노가다 정권'이 들어서서 절차와 법도 없는 안하무인 상태가 되었다"면서 "영남, 특히 경남에서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지 않으면 안 되겠다는 것에 공감했다. 한나라당에 맞서 후보 단일화를 해야 한다. 정파를 뛰어넘어 새로운 정치지평, 선거지평을 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대호 "남 좋은 일, 진보개혁을 위해 좋은 일을 해야 한다"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은 '남 좋은 일'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현행 선거법에 저촉되지 않으면서 후보 단일화를 이룰 수 있는 방법으로는 '국민배심원제'가 있을 수 있고, 그런 방법을 통해 '희망후보'을 내세우면 된다는 것이다.

 

그는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힘의 결집이 절실한 상황이라고 해도 현실의 정당이라는그릇에 다 담길 수가 없다"면서 "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쪼개지고, 국민참여당이 만들어진 것은 다 이유가 있다"고 말했다.

 

"정치협상으로 연합정치가 가능하겠느냐"거나 "시민사회 원로들의 중재로 연합정치가 잘 되겠느냐"는 질문을 던진 그는 "한국 보수 진영은 '선수'로 뛸 의사는 별로 없지만, 재벌, 조중동, 거대한 종교권력, 사학권력 등 연합정치를 강제할 힘 있는 후견인(큰손)들이 있다"면서 "하지만 진보개혁은 없다. 김대중·노무현 전 대통령이 떠난 이후엔 확실히 없다"고 자답했다.

 

그러면서 그는 "진보개혁 세력 내의 이념·정책적, 감정적 골은 매우 넓고 깊다"며 "과거 민주노동당이 했던 '한나라당과 열린우리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놓여 있고, 열린우리당과 민주노동당 사이에는 큰 강이 놓여 있다'는 말은 빈 말이 아닐 것이다. 적어도 감정적 간극이 엄청나게 큰 것은 분명하다"고 설명했다.

 

"이는 지지층이 겹치는 관계로 '저놈이 살면 내가 죽고 저놈이 죽으면 내가 사는 관계'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한나라당, 자유선진당, 친박연대와는 이런 관계가 성립하지 않지만, 진보개혁 정당들 사이의 관계는 그렇다. 또 모든 출마는 개인이나 정당 입장에서는 미래의 정치적 지분과 자산을 쌓는 것이기에, 당선 가능성이 낮다고 해도 당선 가능성이 높은 진보개혁 후보의 손을 잘 들어주지 않는다."

 

이같이 진단한 김대호 소장은 "진보개혁이 나눌 '파이' 전체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파이를 키우기 위해서는 감동과 기대의 바람을 불러일으켜야 한다"면서 "이 관건은 정치적 지하수 개발이다. 기존 정당에 소속되어 있지 않은 깨어있는 시민들의 정치적 힘을 분출, 결집시키는 것"이라고 제시했다.

 

  
경남사랑21(준)은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과 하승창 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이 참석한 가운데 "지방자치 연합정치, 연합정치의 새바람을 경남에서부터"라는 제목의 간담회를 열었다.
ⓒ 윤성효
연합정치

방법은 있다고 했다. 그는 "정치적 지하수를 개발하려면 좋은 경기장과 경기규칙, 심판이 필요하고, 좋은 선수들이 경기장 안으로 들어와야 한다"면서 "심판은 명망 있는 몇몇 재야․시민사회 인사가 아니라 경기장에 들어온 수천, 수만, 수십만의 관중이다"고 설명했다. 그는 그런 관중을 일종의 '오픈 프라이머리'인 '국민배심원'이라 불렀다.

 

현행 선거법상 '국민배심원'은 합법적이라고 소개했다. 그는 "단일후보를 가리는 과정이나 진보개혁의 이념·정책적 컨센서스를 가리는 과정은 수많은 국민배심원단에게 온·오프라인으로 공개되고, 평결을 구해야 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대호 소장은 "좋은 경기장과 경기규칙, 좋은 심판을 통해서 뽑으려는 후보는 '희망후보'(가칭)로 부를 수 있을 것"이라며 "호남에서는 민주당의 부실 후보를, 영남에서는 한나라당 후보를 이길 수 있는 범진보 단일후보이다. 괜찮은 후보들의 숫자가 너무 많지 않으면 민주당이 연합정치 차원에서 '희망후보'를 공천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군소 정당과 무소속, 심지어 상당수 민주당 후보들도 승부를 걸어 보고 싶은 느낌이 들도록 경쟁 규칙이 합리적이어야 할 것"이라며 "동시에 참신하고, 의미 있고, 흥행이 되도록 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그는 "2010년 지방선거 승리를 위해서는 남 좋은 일 내지 진보개혁 전체를 위해 좋은 일을 확실히 하자"고 강조했다.

 

하승창 "유럽에선 연합정치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

 

하승창 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은 '희망과대안'이 만들어진 계기, 지난 10월 재보선 때 '안산상록을'의 야권 후보 단일화 시도와 무산 과정에 대해 설명하면서 2010년 지방선거를 전망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 들어 촛불이며 1인시위, 집회, 기자회견 등 그동안 운동권이 알던 거 다 해봤다. 그래도 안 된다. 심각한 민주주의 불균형 상태를 야기하고 있다. 이명박 정권의 독주가 심각한 민주주의의 후퇴를 가져오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금까지 시민운동은 '정치적 중립'이라고 해왔지만, 지난 2년간 정치가 중요하다는 인식을 갖게 됐다"면서 "경제학자들도 이명박 정부의 경제정책에 아무리 문제제기를 해도 안 되는 것은 문제가 경제에 있는 게 아니라 정치에 있다는 인식을 했다. 그런 차원에서 희망과대안이 만들어졌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4월, 10월 재보선에 대해, 그는 "한나라당이 졌지만 누구 하나 이긴 정당이 없었다"면서 "투표율이 평상시보다 10% 넘게 높았고,  20~30대의 투표율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 특징이다. 유권자들이 보여주는 변화다. 그것은 두 전직 대통령의 죽음 때 방명록에 '투표하겠다'고 했던 자기 약속을 지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지난 4월 재보선에서 민주노동당이 호남에서 선전한 것은, 한편에서는 새로운 세력을 키워야 한다는 선택이 담긴 것"이라며 "대안적 선택을 할 수는 없지만 이명박 독주를 막아야 한다는 요구와 새로운 흐름에 대한 요구가 담겨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연합정치'의 담론을 강조했다. 그는 "이명박 정부의 독주를 견제하는 것은 후보 단일화다. 민주당과 군소정당의 단일화 가능성은 어렵다. 그러나 '연합정치'나 '정치연합'이라는 담론을 사용하면 된다"고 말했다.

 

  
경남사랑21(준)이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과 하승창 전 '함께하는시민행동' 사무처장을 참석시킨 가운데 연 "지방자치 연합정치"라는 제목의 간담회에는 야당과 시민사회단체 관계자 등 50여 명이 참석했다.
ⓒ 윤성효
연합정치

 

그는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가 '이명박 정부의 국정운영에 대해 단순히 이기기 위한 전술이라면 안 한다'고 했는데, 진보정당으로서는 당연히 할 말이다"면서 "지금 우리는 단순하게 이기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 공동체에 가치를 부여해야 한다. 연합이 우리 사회의 가치를 높이는 길이다"고 설명했다.

 

유럽과 비교했다. 그는 "유럽은 연합정치가 일상적이고 자연스럽다. 우리는 'DJP연대'와 '노무현-정몽준 단일화' 경험이 있다. 그것은 선거에 이기기 위한 연대였고, 상대를 이기기 위한 술수로만 여겨진 것"이라며 "이기기 위한 소극적 대응이 아니라 우리 사회는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한 적극적인 자세로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그는 "최근 각 정당 유력인사 내지 대표들은 언론과 인터뷰에서 연합정치를 이야기한다. 그러면 경기장은 만들어지는 것이다. '심판'이나 '규칙'은 없지만, 지금은 어떻게 선수들을 경기장 안으로 들어오게 하고 심판진을 만들 것인지가 숙제다"고 제시했다.

 

유권자운동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그는 "'경남사랑21'도 하나의 틀이고, 서울에서도 '희망과대안'에서 원탁회의 등에 대해 논의하고 있으며, 부산에서도 비슷한 모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으로 안다"면서 "시민운동은 지난 2년간 이명박 정부와 나름대로 열심히 싸운다고 했지만, 기존 관성대로 해왔다. 싸우면서도 잘되지 않았다. 워낙 이 정부가 한꺼번에 많은 일을 저질러서 그렇기도 하다. 우선 시민사회 진영의 소통부터 필요하다. 시민사회 진영 실무자 간의 소통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누군가 치고 나가며 바람을 일으키면..."

 

질문이 쏟아졌다. 임영대 공동의장이 "정권이 바뀔 때마다 시민운동도 달라져야 할 것 같다"고 하자, 김대호 소장은 "자연스러운 것이다"고 말했다.

 

김 소장은 "참여정부가 타협하거나 차악을 선택할 때 시민운동은 최선을 이야기했다. 국가보안법이나 사학법 등이 그랬다. 최선이라는 잣대를 갖고 차선이나 차악을 선택하는 것에 대해 경고를 하기도 했다"면서 "지금은 최악이다. 그래서 긴 이름의 '공동대책위'나 '연대회의'를 하는 것이고, 그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고 말했다.

 

김종대 대표가 '연합정치에 있어 불리한 결정이 나더라도 받아들이겠다는 생각들이 있어야 하고, 추진 세력이 있어야 한다"고 말하자 김 소장은 "연합정치는 가운데가 비어 있어야 하고, 남 좋은 일 하겠다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지금까지는 가운데가 꽉 차 있었고, 자기가 후보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진짜 가운데는 종교인의 마인드를 갖고 있는 사람이 있어야 한다"면서 "그렇지 않고 현실 정치인이 중심이 되면 다른 사람들은 안 온다. 그런 점에서 연합정치는 아무나 하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또 그는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은 갈 때까지 가봤다. 노회찬 대표나 유시민 전 장관은 자기들이 해서 통합해 버리고 싶어 할 것이다. 서울시 구청장 선거에서, 민주당은 연합하면 20~25개는 먹을 수 있는데, 연합하지 않으면 5개도 못 먹는다"고 말했다.

 

"민주당이나 민주노동당은 연합을 간절히 바랄 것이다. 그러나 새로 생긴 진보신당과 국민참여당은 간절하지는 않은 것 같다. 자기들이 치고 올라간다고 생각하니까 그렇다. 민주노동당과 민주당이 상당히 간절하게 갈구하기 때문에 연합정치의 조건들이 잘 갖추어져 있다. 누군가 과감하게 바람을 일으키며 치고 나가면 상당한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이다."

by 김대호 | 2009/12/21 18:09 | 트랙백(4) | 덧글(2)

이 사람에게 당신이 해줄 말은 무엇인가?

이 사람에게 당신이 해줄 말은 무엇인가?

-우리의 소박한(?) 꿈을 의심하지 않고 두 개의 대한민국을 통합할 수 있을까?-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한 공무원 시험 준비생의 글

 

아래 글은 격월간 잡지 <삶의 보이는 창> 71(2009.11~12월호)에 실린, 한 공무원 시험준비생(임철환)의 글이다. 당신은 이 분에게, 아니 수 백만 임철환에게 무엇이라고 할 것인가?

 

“나는 문헌정보학과(Library & Information Science) 졸업생이다. 우리 학과는 취업 입지가 매우 좁은 학과다. 2004년에는 모 일간지에서 실시한 전국 대학 학과별 취업 조사 결과 가장 낮은 취업률을 기록한 학과로 신문에 오르기도 했다. 나는 그 기사를 군복무 시절 부대에서 접했는데 가슴이 답답하고 미래가 암울하게 느껴졌다. (중략) 주변의 동기나 선후배를 둘러보면 일반 기업체나 연구소 등 다른 길을 모색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대우가 좋은 대학 도서관 교직원이나 공공 도서관 공무원 등은 합격하기가 매우 어렵고, 유사 중소업체들은 사서에 대한 처우가 매우 열악했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계약직 형태가 많고 급여가 80~90만원에 불과한 곳도 많았다. 사회에 만연한 도서관에 대한 천박한 인식이 사서들의 열악한 처우를 당연시하게 만들었고, 갈 곳 없는 졸업생들은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아무 데나 들어가 이러한 처우를 감내하며 무기력하게 일하고 있다.(중략) 거리에 나와 처우 개선을 위해 시위하는 인원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그 중 사서 교사 임용 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이 투쟁에 열심이다. 배움의 터전인 학교에는 당연히 도서관을 만들어야 하고, 도서관에는 전문 사서가 있어야 하므로 사서 교사를 임용해서 배치해야 하며, 사서 교사도 엄연히 교사이므로 그에 맞는 처우를 해달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다. (중략) 문헌정보학과를 나와 다른 길을 모색한답시고 일반 기업체에 취업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왜냐하면 경영학이나 법학, 이공계를 나온 사람들과 경쟁해야 하기 때문이다.

 

취업을 못한 채로 졸업한 나는 소수 인원만 선발하는 사서 공무원이라도 되기 위해 경기도 고시원에 머물며 수험 생활을 했다. 인턴, TOEIC, 학점, 자격증, 수상 실적, 어학연수 등 기업체에서 요구하는 조건들을 한 가지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던 나는 그것들을 하나도 요구하지 않는 공무원 채용 시험에 끌릴 수밖에 없었다. 다섯 과목만 열심히 암기하여 순위 안에 들면 공무원이 될 수 있었다. 공무원을 왜 그런 방식으로 선발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단순 명료해서 마음에 들었다. 나는 커트라인이 낮은 경기도 전방 지역을 목표로 삼았다. 공무원이 될 수 있다면 대한민국 어디라도 가겠다고 다짐했다. (중략) 고시원 입실을 위해 경기도 전역을 물색했는데 가는 곳마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교도소처럼 늘어선 창문 없는 방들, 머리 하나 간신히 들어가는 창문이 달린 방, 공동 화장실 변기 시트 위에 묻은 타인의 누런 변. 하지만 나는 저렴한 방세 때문에 고시원에 거주하기로 했다. (중략) (어렵게 구한 성남의 한 고시원에 입실하고) 휴대전화를 없애고 잠적했다. 그 고시원에는 나이 지긋한 사법고시생이 있었는데 늘 방문을 열어놓고 담배를 피며 공부했다. 복도를 지나가다 보게 된 방안에는 컴퓨터를 중심으로 두껍게 쌓인 법전과 서류, 옷가지가 차곡차곡 쌓여있었다…..고시원에서 살아온 청춘을 소비하는 사람들이 어딘지 쓸쓸해 보였다. 공부하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용직 노동자들, 업소에 다니는 여종업원들까지 섞여 주방과 화장실, 복도를 힘없이 오고 갔다. 옆방에는 가난한 20대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자는 주간, 여자는 야간에 일을 했다. 혼자 누울 수 있는 좁은 침대를 교대로 쓰는 셈이었다. 힘겨워 보이는 삶이었지만 그래도 둘이 조우하는 시간에는 항상 웃음이 떠나지 않았다. 어떤 방에는 임용 고시를 준비하는 딸과 그 뒷바라지를 위해 매일 식당에 나가 돈을 버는 어머니가 살고 있었다. 그 방은 늘 침묵이 흘렀다.(중략) 도서관 민영화 바람이 불어 사서 공무원 선발 인원이 한 자릿수로 급격히 감소했고 나는 할 수 없이 행정직으로 바꿔 공부를 계속했다. 하지만 적성에 맞지 않아 공부를 접고 고향에서 무작정 돈벌이에 나섰다. 그러나 쉽게 들어 간 곳은 인격적 대우가 열악했고 까다로운 사람들 때문에 정신적 고통을 겪었다. (중략) 두 군데 공장에서 주야 12시간씩 2 2교대제로 일하기도 했다. 주행성 동물인 인간의 자연적인 생체 리듬을 무시하고 24시간 가동되는 기계의 리듬에 인간을 부속품처럼 끼워 맞춰 이윤 창출의 극대화를 노리는 교대제의 비인간성에 분노해 뛰쳐나오고 말았다……그렇게 사회 경험을 하고 다시 행정직 공무원을 준비하고 있다. 이 사회를 헤쳐나가기 위해 지금 내가 택할 수 있는 것이 이것밖에 없는 것일까?

 

이 글에는 수많은 청춘들이 결혼과 출산을 미루고, 고시, 공시에 하염없이 매달리는 이유가 대략적으로 서술되어 있다. 공무원 선발 방식이 이해하기 힘들 정도로 단순명료 하다는 것, 따라서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다는 것이다. 또한 공무원이 아닌 사람들이 사는 세계의 처우가 너무 열악하여, 그 곳에서는 행복한 인생을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는 뒤집어 말하면 한국의 공무원 세계가 너무 매력적이라고 할 수 있다. 공무원 스스로는 박봉에 격무에 팍팍한 근무기강으로 못해먹겠다고 아우성이겠지만……

 

 

임철환의 도전은 합리적이다.

 

각종 통계를 뜯어 보면 볼수록, 중소기업이나 자영업의 현실을 뜯어보면 볼수록 임철환 등 수십만 고시.공시족들의 도전은 이해가 간다. 아니 개인입장에서는 너무나 합리적이다. 국가 전체적으로 보면 지극히 낭비적인 현상이지만……

 

단적으로 서울시 예산서 상의 2009년 공무원 인건비는 9,0583613만원으로 적혀있다.  이를 대상 공무원 숫자 16,000(오세훈 시장부터 9급까지 전원, 구청 공무원 빼고, 본청 3460+시 직속기관 및 사업소 12,390)으로 나누면 대략 57백만 원 가량 된다. 여기에 퇴직 충당금이 포함되어 있는지, 복리후생비가 어느 정도 포함되어 있는지 알 수는 없지만 약간 있다 쳐도 꽤 후하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국민연금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좋은 공무원 연금과 정년 보장은 별도다.(오세훈이 변죽을 올린 3% 퇴출제는 유야무야 되었다. 공무원 신분을 보장한 헌법 위반이니까!)

 

한국고용정보원은 바로 어제(12 15), 전국 75000가구 중 취업상태에 있는 만 15세 이상 가구원을 대상으로 조사한 통계- '2008산업•직업별 고용구조 조사'-를 발표했다. 그 통계에 따르면 임금근로자는 주당 47.1시간 일해서 월 평균 202.7만원을 번다. 이는 공무원, 공기업, 대기업, 정규직 등 근로조건이 좋은 부류와 영세기업, 비정규직, 임시직 등 근로조건이 나쁜 부류가 한데 뭉뚱그려진 평균이다. 한국 특유의 근로조건 격차를 감안하면  후자는 평균 보다 훨씬 낮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자영업자는 주당 53.7시간 일해서 월 평균 161.7만원 버는 것으로 나와있다. 그나마 자영업자의 소득은 월 52.5시간 일하는 무급가족종사자의 노동이 합해져서 나온 것이다.

 

< 1> 고용 및 근로형태별 결과

 

 

통계청이 운영하는 e-나라지표(http://www.index.go.kr/egams/default.jsp)에 들어가서 경제>재정>분야별재정규모 항목을 살펴보면 2000~2008년 기간에 공무원 인건비는 총 12.5조원에서 23.4조원으로 1.87배 올랐다. 지난 같은 기간 피용자(임금노동자) 보수 증가율(1.82 )이나 원화표시 명목 GDP 증가율(1.70)보다 약간 높은 수준이지만, 자영업자 소득증가율(1.07)과는 비교조차 할 수가 없다.

  

< 2> 임금 소득(피용자 보수) vs 자영업자(개인 영업 잉여) 비교(기준연도: 2005)

 

 

## 그런데 공무원 인건비 계상 대상에 교원(지방교육재정교부금으로 지원)은 제외되고,  군인(직업군인, 사병, .의경)과 기타직(청원경찰 등)은 추가되어 공무원 1인당 인건비는 많이 감소한 것처럼 보이지 않을까 한다. 일부러 물타기 한 것인지, 국제 규정이 그런 것인지는 알 수 없다. 어쨌든 서울시청에는 진짜 박봉을 받는 사병과 전.의경이 없으니 국가 공무원 전체 평균보다는 높게 나올 것이다.

 

e-나라지표에는 공무원 봉급 인상 목표치 및 인상률의 근거가 (100인 이상) 민간 기업의 보수 수준 및 인상률이라고 적혀있다. 2000년 발표된 “공무원 보수 현실화 계획”에 따른 목표치는 인상률 5%, 민간접근율은 대략 구십 몇%인 것처럼 보인다.(2004 97.7%로 최고치였고 2007년은 91%로 나와있다) 그런데 한국에서 100인 이상 민간기업 종업원 수는 아무리 많아도 300만을 넘지 않는다. 총 취업자 2300만을 기준으로 하면 꽤 상층이다. 이런 사정을 종합하면 닭장 같은 고시원에서 고시(임용고시 포함)와 공시를 준비하는 청년들의 행위는 확실히 합리적이라고 할 수 있다. 비록 99%는 실패하겠지만…… 통계청이 발표한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을 보면 나이가 들수록 국가기관 및 공기업을 선호한다. 우리 청년들은 현명하다.

 

 

< 3> 청년이 선호하는 직장

 

자료: 통계청, 2009년 사회조사 결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공무원이 (보수 수준과 권능과 안정성 측면에서) 조선 시대 양반과 같은 지위를 누리는 상황에서 공무원의 대폭적인 증원과 획기적인 증세(공무원이 관할하는 돈의 증대)는 결코 쉽지 않을 것이다. 실제 공무원 인원은 거의 변동이 없다. 퇴직도 별로 없다. 서울시를 살펴보니 2008년 현재 16,000명 중 1,027명이 퇴직했는데, 사유는 정년퇴직 449, 명예특진 239, 타부처 전출 163, 의원면직 113(원래 철밥통이 아닌 전문직과 별정직 대상), 명예 퇴직 23, 사망 23, 해임 4명 등으로 민간기업의 퇴직사유와 너무나 다르다. 유럽 복지국가들의 (인구 천명당) 공무원 비율 등을 근거로 공무원 증원을 아무리 부르짖어도 한국 땅에서는 별로 먹히지 않는다. (공무원 증원과 증세를 부르짖는 통계는 유럽 복지국가의 1인당 GDP대비 공무원 보수 수준을 말하지 않는다. 결론만 말하면 한국은 2~3배 수준이면, 이 나라는 1~1.5배 수준이다.) 오히려 신자유주의라 비난해도 공무원 수 줄인다는 공약이 더 먹힌다. 복지 서비스를 줄이지만 않는다면……

 

요컨대 임철환씨에 대해 자칭 진보가 해 줄 얘기(제시할 비전)가 별로 없다는 것이다. 북유럽처럼 실업수당을 후하게 주면 이는 고시.공시 자금으로 전용되기 십상일 것이다. 대기업은 고용 창출 의지가 없고, 중소기업은 임철환 같은 사람이 매력을 느끼지 못하는 상황에서 평생 교육은 공염불일 뿐이다. 노동운동을 통해서 개별 자본의 몫을 개별 노동 쪽으로 더 가져와서 처우를 개선하는 진보의 전통적인 비전은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에도 위배되지만, 그나마 넉넉한 자본(공공부문 포함)에 업혀있는 노동만 혜택을 볼 수 있는 해법이다. 사실 이런 식으로 20여 년 흘러오면서 생긴 것이 노동 내부의 엄청난 양극화(부문간, 기업규모간, 산업.업종간, 원청.하청간 격차 등)이다. 총 자본(기업 및 재산소득)의 몫을 총 노동(피용자보수=비임금근로자 제외)으로 이전시키는 또 하나의 오래된 진보의 비전은 국민계정상 부가가치 구조로 보면 가능한지도 바람직한지도 의문이다. 설사 소폭 올리더라도 노동 내부의 엄청난 격차를 합리화 하는 것이 훨씬 생산적이고 진보적이다. 하지만 이는 20여 년에 걸쳐서 구축된 진보의 기득권을 조정해야 하기에 (자칭 진보가) 함부로 뱉을 얘기가 아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이명박이 명백한 예산 낭비 행위(4대강 사업 등)를 하기에 진보의 복지 비전을 설명하기 정말 좋을 뿐이다. 진보는 이 얘기만 입에 침 튀겨가며 할 수 있을 뿐이다.

 

임철환씨의 글은 또 하나의 불편한 진실을 말하고 있다. 지나치게 높은 대학진학률(84%) 문제와 대학(교육)과 시장(수요) 혹은 산업의 수급불균형(mismatching)이다. 임철환의 고통의 저변에는 이것이 면면이 흐르고 있다. 이로 인해 학생과 학부모들은 엄청나게 소모적인 (시간과 돈) 투자로 ‘죽을 고생’을 하지만 그 수혜자인 교수와 대학은 이들의 고생을 줄이기 위해 무엇을 하는지 알 수 없다. 도서관학과만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대학, 학과들에게 하는 얘기다.

 

임철환씨의 글은 사서 교사 임용시험 준비생들의 주도로 국가를 상대로 하는 투쟁은 계속 일어나고 있는 현실을 말해 준다. 이는 국공립 도서관 증설, 전문 사서의 배치, 사서 교사 증원, 사서 교사 처우개선 요구 등은 봇물처럼 터져 나오는 교육, 의료, 복지의 스펙(spec) 상향 요구의 일환이다. 물론 한국 특유의 재정 구조와 본원적 한계(낮은 담세율과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가 산처럼 버티고 있기에 이 봇물은 산을 넘지 못한다. 선진국 사람들의 품위 있는 삶을 뒷받침하는 사회 제도의 가치를 모른다며, ‘천박한 인식’을 탓하는 목소리는 크고 높지만 현실은 꿈쩍 않는다.

 

사실 도서관 이해관계자들이 정말로 정치사회적 힘이 있었다면, 아니 한국 정치가 현명했다면 세금을 더 걷지 않아도, 단지 재정의 포트폴리오(portfolio)를 바꿔서 지금 보다 훨씬 많은 재정을 도서관 하드웨어와 특히 소프트 웨어에 투자를 했을 것이다. 만약 도서관 관련 이해관계자들이 한국 유수의 ‘士(변호사, 의사, 약사, 세무사 등)자’들이나 토건족처럼 영악했다면, .제도.명령.조례 등을 슬그머니 주물럭거려서 국공립 도서관 관련 스펙(spec)-인구 당 도서관 숫자, 도서관 당 사서 숫자 등-을 올렸을 것이다. 더 영악했다면 배타적 독점권을 가진 전문 사서 고시를 만들고, 고시 출신 전문 사서 공급을 제한하고, ‘야메’ 사서를 써는 도서관을 엄격하게 처벌했을 것이다. 이런 식의 지대(자리세) 추구가 한국의 힘있는 ‘士자’들과 강자들의 일반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아니 노조, 공무원, 기업, 언론, 정치인과 정당 등 한국의 거의 모든 힘센 존재들의 일반적 행태이기 때문이다. 따지고 보면 세계 최고 수준의 사교육 열풍 및 대학진학률-고학력 청년 취업난-고시.공시 열풍-중소기업의 피폐는 바로 ‘士자’들과 강자들의 소박한(?) 꿈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한다.

  

협소한 안목과 편향된 관심사

 

내가 임철환씨의 글을 통해서 특별히 강조하고 싶은 것은 한국의 진보와 보수 여론 주도층의 협소한 안목 내지 편향된 관심사다. 사실 과거에는 글에 나오는 ‘가난한 20대 부부’처럼, 수많은 청춘들이 단칸방(구로동 벌집)에서 출발하여 조금씩 재산을 늘려나가는 것을 자연스럽게 생각했고, 실제 숫자도 많았다. 하지만 언제부턴가 한국 진보와 보수를 대표하는 정치.사회 세력의 머리 속에는 이렇듯 낮은 곳에서 출발하는 수많은 사람들의 한숨, 눈물, 분노, 비원이 사라졌다. 정규직 노동과 대기업.공기업 조직 노동 바깥에 존재하는 열악한 중소기업에 주로 존재하는 비정규.임시 노동과 미조직 노동의 존재가 잘 포착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더구나 평균적으로 노동 보다 더 열악한 영세자영업자로 대표되는 비임금근로자와 최소 200만 이상으로 추정되는 숨겨진 실업자인 비경제활동인구의 존재-임철환은 여기에 있다-도 마찬가지다. 노숙자를 제외하면 가장 열악한 주거 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부동산 투기 문제도, 전세.월세 문제도 일으키지 않는 고시원 생활자들의 존재는 말할 필요가 없다.

 

사실 1980년대만 하더라도 혁명적 열정에 불타는 수많은 대학생 출신 활동가들이 저임금 노동자들과 함께 했다. 하지만 20년이 흐르면서 대부분 이들과 멀어졌다. 나 역시 멀어졌다. 지금 살아남은 기업들은 대체로 중국발 산업 구조조정 압력을 견뎌낸만큼 세계적 경쟁력을 가지고 있다. 따라서 그 종사자들이 꽤 높은 처우를 누리고 있다. 이들 강한 기업에 둥지를 튼 강한 노조들(민주노총 등)과 함께한 활동가들(한국노총, 민주노총 상근자 등)의 처우도 함께 개선되었다. 물론 노조원들이 누리는 처우의 절반도 안 되는 사람이 대부분이겠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들의 관심사와 이해관계는 노조와 같이 갔기에 ‘임금인상-노조인정’을 거쳐, ‘위장 폐업(?) 분쇄’를 거쳐 1990년대 후반부터는 ‘고용 안정’과 ‘인력.사업 구조조정 반대’로 변화하였다. 공공부문 노조 비중이 점차 증가하면서 ‘민영화 반대’ ‘공공성 사수’도 추가되었다. 이렇게 변화한(변질된?) 노동운동의 이념을 정식화한 것이 ‘신자유주의 반대’일 것이다.(2000년 전후한 시점만 하더라도 ‘신자유주의 세계화 반대’ ‘신자유주의 구조조정 반대’ 목소리가 컸는데, ‘세계화’와 ‘구조조정’이  거스를 수 없는 요구라는 것이 널리 확산되면서 ‘세계화’와 ‘구조조정’이 빠지고, 신자유주의만 남았다.)

 

기독교의 경우 대부분의 민중교회는 몰락하다시피 하였다. 월계동, 상계동, 삼양동, 봉천동, 사당동, 목동, 구로공단 인근의 대규모 달동네, 벌집촌들이 재개발되면서 여기에 살던 빈민들은 엄청난 부동산 불로소득을 얻거나 경기도로 쫓겨갔다. 중소 규모 공장도 없어지거나 이전하고, 수많은 하층 일자리를 품고 있던 ‘재래식 동네’도 없어졌으니 민중교회의 터전 자체가 없어져버린 것이다. 한편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낮은 곳으로 임하는 선교 역량은 대체로 해외로, 이주노동자 및 탈북자 선교로 빠졌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과거 민중 교회 혹은 노동/빈민 선교의 경우 상당수가 교회 신자(장로, 권사, 집사)인 기득권층과 불편한 관계를 유지하는 경우가 많았다. 도시산업선교회가 대표적이다. 하지만 지금 해외 선교나 탈북자 선교는 선교사는 고생하지만, 그를 파송한 교회가 기득권층과 불편한 관계인 경우는 거의 없다. 이래저래 운동권에도 기독교에도 한국 사회의 낮은 곳을 바라 보던 눈길, 그늘진 곳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사라졌다. 엄청난 지대(자리세)를 향유하는 진보.보수 기득권층과 불편한 관계를 초래하는 사회정의를 바로 세우자는 외침은 미약한데, 사회복지를 강화하자는 외침은 강성하다. 획기적인 증세 대책은 없어도 기득권층을 별로 불편하게 하지 않기 때문일 것이다.

 

고용 창출의 요체인 벤처.중소기업의 창업과 성장을 촉진할 정공법-이는 친시장 정책이 대부분이기에 재벌.대기업, 은행, 관료와 조직노동의 기득권을 건드리기에 이들을 불편하게 하는 측면이 있다-과 미래학(에너지, 환경, 신소재, 의료 등)에 기반한 선택.집중 전략과 금융 및 청년 인재 흐름의 정상화 관련 외침은 미약한데 반해, 교육, 의료, 복지 스펙 강화, 사회적 기업 육성, 미소금융, 자원봉사 등 진보에는 익숙하지만 어디까지나 보조적 해법만 대유행이다.

 

한국 진보와 보수 정치세력의 비겁 내지 혼미로 인해 고시원과 도서관 등에서 수 백만의 임철환들은 정상 생활을 꿈꾸며, 지독하게 비정상적인 생활을 하고 있다.

 

 우리의 소박한(?) 꿈은 실현가능한가?

 

나는 우리 사회의 생산력(소득수준)과 제대로 된 직장, 직업의 고용 구조와 소득 수준과 기업 환경 등을 종합해 볼 때, 우리의 오래된 소박한(?) 꿈을 버리지 않고 답이 나올 수 있을지 의심스럽다.

 

예컨대 은행이 갖고 있는 휴면예금 1조원과 삼성, 현대ㆍ기아차, SK, LG, 롯데, 포스코 등 대기업들이 10년에 걸쳐 조달할 1조원을 합쳐 도합 2조원으로 미소금융재단을 만들기로 하였다. 그런데 2009년 가을 국정감사에서 의원들이 공개한 자료에 따르면, 미소금융재단 이사들은 회의를 서면으로 대체하고도 회의비 명목으로 30만원씩 챙겨갔다. 금융기관에서 파견 나온 직원들-그리 높은 직급이 아니었다-의 연봉은 평균 7300만원이었다. 이는 파견 나온 금융기관 직원들과 대기업.공기업 직원과 공무원들에게는 너무나 자연스런 일이지만 사업의 취지, 재원의 성격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것이었다. (사실은 금융기관이 하면 안 되는 사업이다. 빈민, 서민들과 오랜 인적 네트워크가 있는 단체에서 해야 할 사업이다. 나는 그래서 이명박 정권을 도적 정권이라고 한다.) 이렇듯 한편에서는 수백만의 임철환이 있고, 다른 한편에서는 대단한 노하우도 없이 은행 직원이기에 연봉 7300만원을 당연시 여기는 300만을 넘지 않는 금융기관 직원, 공무원, 대기업.공기업 직원과 ‘士’자 직업이 있다. 한마디로 두 개의 대한민국이 있는 것이다. 좋은 대한민국에 사는 이들의 처우와 기대는 우리의 생산력(평균 소득)에 비추어 높아도 보통 높은 것이 아니다. 그래서 한국에서 제대로 된 직장이나 직업을 가진 사람들은 선진국에 가서 비슷한 부류의 직업, 직장인들과 소득 수준을 비교해 보고 놀란다. ‘대한민국이 의외로 잘사는 나라’임을 실감한다. 하지만 그렇게 잘사는 대한민국을 향유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는지, 좋은 대한민국을 얼마나 확대할 수 있을지, 좋은 대한민국을 자식들에게 대물림 할 수 있는지는 묻지 않는다. 다만 엄청난 사교육과 조기유학을 통해 좋은 직장.직업 대물림 확률을 높이기 위해 발버둥친다. 그러면서 자녀 교육비 때문에 먹고 살기 힘들다며, 거액 연봉이 결코 아니라고 소리친다. 너무나 불합리하고 어리석은 구조가 아닐 수 없다. 진보든, 보수든 역사의 주도권을 쥐고 싶다면, 수백만 임철환의 꿈, 도전, 좌절, 고통에 대해 제대로 응답해야 한다. 설득력 있는 대안을 내놓아야 한다는 말이다.

 

두 개의 대한민국을 세밀하게 종합적으로 살펴보면, 일자리의 질-세계 최장시간 노동 포함-의 조정 없는 일자리 양의 획기적 증대는 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재벌.대기업, 관료, 은행, 부동산 부자, 유수의 학교 재단 등 힘 센 자의 기득권 조정 없이는 엄청난 불로소득 문제도, 지대추구를 위한 과잉 경쟁 문제도, 벤처중소기업의 과감한 도전(창업과 투자)문제도 해결불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당연히 청년세대, 벤처중소기업, 비기득권층, 도전자들의 희망도, 사회적 활력도 있을 수 없다고 생각한다. 미래학에 입각한 선택.집중 전략를 구사할 수 있는 기업가, 정치가, 관료가 두텁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또한 에너지, 자원 등을 엄청나게 과소비하는 행태를 개선하지 않고는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을 만들 수 없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타고난 강골로서 젊었을 때 몸을 무리하게 사용하여 이룬 것이 많지만 이제 중년에 접어들어 오만가지 성인병이 일거에 들이닥치는 중환자 대한민국을 대수술도 하고, 명약도 처방하고, 식이 요법, 심리 요법, 운동 요법 등 온갖 건강 요법을 처방할 수 있는, 다양한 분야의 유능한 공공인재가 있지 않으면 한민족의 세계사적 사명을 다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고등학생을 둔 학부모들과 임철환씨처럼 꿈이 큰 수백만 청년들은 개인적 돌파를 위해 사교육 등을 통해 좋은 대학, 좋은 학과를 진학하고, 고시.공시에 매달리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이제는 그와 더불어 너무 많은 불로소득을 담보하는 불합리한 특권.특혜(정치적, 경제적 지대=자리세)를 철폐하고, 다시 말해 불공정하고 불공평한 (정치적, 경제적)시장을 바로 잡기 위해 약간의 에너지라도 쏟아야 한다.

 

위너의 대한민국, 루저의 대한민국

 

이제 위너(winner)가 된 당신의 머리 속에서 은연중에 사라진 거대한 루저(loser)들의 대한민국을 바로 보아야 한다. 100 1의 경쟁을 뚫고, (미소금융 재단 운영 인력과 공무원과 자 직업 등으로 상징되는) 위너들의 대한민국에 들어가는 것은 북한 인민이 남한으로 넘어오는 것만큼 힘든 일이다. 길은 열려있으나 구조적으로 너무 적은 수만이 들어올 수 있다는 얘기다. 총 노동의 힘을 키워 자본의 몫을 더 가져온다고 해서 위너들의 대한민국이 커지는 것이 아니다. 증세를 하고 재정 포트폴리오를 바꾼다고 해도 명백한 한계가 있다. 그러므로 이제는 진정한 연대가 필요하다. 한국 민주노총이 연대 투쟁할 때 채택하는 그런 연대 전략이 아니라, 훌륭한 복지국가를 만든 스웨덴 사민당 및 노총(LO)이 수십년간 구사했던 그런 연대 전략-이는 노동계급 차원의 自助전략이 기본이었다- 말이다. 한마디로 이제 대한민국은 앞과 위만 볼 것이 아니라, 뒤를 보고, 옆을 보고, 아래를 보아야 한다. 쪼개진 두 개의 대한민국을 통합해야 한다. 상체와 하체의 균형을 잡아야 한다. 그래야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기 때문이다. 이 관건은 힘센 이익 집단의 이해관계에 의해 왜곡된 사회정의, 다시 말해 한국 사회의 만악의 근원인 사악하고 무능한 공공을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닐까? 좋은 정치의 거대한 숲을 가꾸기 위해 수십년의 호흡으로 지금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것이 아닐까?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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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 2009/12/17 11:02 | 정치와 통계 | 트랙백 | 핑백(3) | 덧글(20)

대한민국은 비상사태다

대한민국은 비상사태다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보고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직장인들 사이에서는 머리 나쁘고 부지런한 상사가 최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 상사가 독선적인데다가 자신감까지 겸비한다면? 최악의 제곱이라고 해야 할까? 최악 킹왕짱이라고 해야 할까? 지난 11월 27일 밤 35개 채널을 통해 방영된 <대통령과의 대화>를 본 나의 종합적인 소감이다. 청와대 직원들에게 대통령이 내복 입은 것을 슬쩍슬쩍 보여준다는 얘기 등에서는 중간중간 박장대소를 하기도 했지만, 웃음이 허탈로, 또 위기의식으로 바뀌는 데는 몇분이 걸리지 않았다. 대한민국은 진짜 큰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송을 보니 이대통령이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말을 재미있게, 특히 보통 사람들의 피부에 와닿게 잘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국정운영에 대한 자신감도 느껴졌다. 시쳇말로 드디어 자기 페이스(pace)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때문에 내 위기의식이 더 커졌다. 물론 위기의식의 뿌리는,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정보와 지식을 흡수해야 할 대통령직에 어울리지 않는 그의 지적 능력과 파당적(서울·공무원·청와대 중심적) 사고이다.

 

부실한 '팩트'로 진솔한 대화 가능할까

 

이번 방송을 통해서 다시금 확인한 것은, 이대통령의 지적 능력이 실제 나이나 얼굴보다 훨씬 퇴락한 노인의 그것이라는 사실이다. 고정관념과 아집이 강하여 새로운 정보나 지식이 잘 흡수되지 않는 것 같고, 주변의 '현명한' 참모들의 보좌도 거의 먹히지 않는 것 같아서다. 이는 2008년 9월 멜라민 파동이 일어났을 때 식약청을 전격 방문하여 '(한참 대화를 나누고도) 분유에 왜 멜라민 함량 표시가 안되어 있느냐'고 묻던 YTN <돌발영상>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느낌이다. 이번 방송은 이대통령의 발언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런 느낌을 주는 장면이 수두룩했다.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기본적인 사실(fact) 파악에서 문제가 많았다는 얘기다.

  

단적으로 4대강사업 설명이 그랬다. 홍수 예방을 위해서라는데, 우리나라에서 대부분의 홍수는 22조원을 투입하겠다는 4대강 본류가 아니라 지천에서 일어났다. 한강의 수질이 개선된 것도 잠실, 신곡 수중보 때문이 아니라 하수처리율이 100%에 이르고 경안천, 왕숙천 등 지천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게다가 높이가 10m가 넘어 댐이나 마찬가지인 4대강사업의 보(洑)와 잠실, 신곡 수중보는 비교대상이 될 수 없다. 이대통령이 TV 화면을 통해 보여준 문건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2007년 당시 건교부, 농림부, 소방방재청 등 9개 부처가 국가방재의 틀을 예방 위주로 짜기 위해 마련한 로드맵으로, 하천 재해예방 사업비는 14조여원이다. 이 역시 본류보다는 상류나 지천 정비에 주안점을 둔 예산이다.

  

세종시 건설로 인한 행정 비효율이란?

 

내려야 한다고 말한 법인세율도 2009년 현재 24.2%로서, OECD 30개국 중 22위로 낮은 편이다. 미국, 일본, 독일, 영국, 프랑스 등 주요국은 하나같이 우리보다 법인세율이 높다. 일찍이 대전으로 이전한 11개 행정기관 공무원도 서울에서 출퇴근하는 것이 아니라 89% 이상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그밖에도 사실 시비를 할 이대통령의 발언은 많다. 내가 특별히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는 대통령의 취약한 통치자 마인드와 디지털 마인드다. 이대통령은 행정부처의 상당수가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세종시로 이전해 생기는 비효율과 불편에 특별히 예민한 것 같다. 이는 디지털 기술·문화와 권한 위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인 듯하다.

 

대리, 과장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시로 각료(부하)들을 불러 세세한 것을 캐묻고, 깨고, 지시하고, 결재판에 붙어온 종이문서에 결재를 하는 이대통령의 스타일을 생각한다면 그가 느낄 불편이 얼마나 크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 국회 역시 행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하릴없이 국회에 장시간 대기시키는 것이 다반사 아닌가! 그렇기에 애국적 일념으로 행정부처를 청와대와 서울 인근에 집중시키려 하는지도 모른다. 행정부처의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불편은 보통 사람들에게 확실히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블랙홀 같은 중앙집중 해소하려면

  

그런데 세종시는 극심한 서울·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는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다. 대통령과 세종시로 내려갈 공무원의 불편을 몰라서 만든 정책이 아니다. 한마디로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온 특단의 조치인 것이다. 굽은 것을 펴기 위해 역으로 구부린 정책이라고도 할 수 있다. 주요 선진국에서 그 유례를 거의 찾아볼 수 없는 것은 그 나라의 수도권과 중앙권력이 한국만큼 강력한 블랙홀이 아니기 때문이다. 세종시로 내려간 공무원 대다수가 저녁에는 서울로 올라와버릴 것이라는 이대통령의 우려는 9개 행정부처를 내려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내려보내야 하는 이유다. 그만큼 서울의 흡인력이 강하다는 방증이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 행정써비스의 핵심 문제는 지리적 근접성이 보장하는 풍부한 면대면(面對面) 소통이 없어서 생기는 문제가 아니다.

 

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관련 논란도, 대운하-4대강-세종시로 이어지는 오락가락 행보에서도 행정부처간 소통의 문제는 한참 후순위다. 분명한 것은 9개 행정부처 공무원은 서울에 살아야 할 인간이고, 내려보내려는 기업, 교육, 과학 부문의 종사자는 지방에 살아도 좋을 인간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들도 서울에 본사 본원 본교가 있고, 나름대로의 불편과 비효율이 있고, 강력한 서울·수도권 선호도가 있다. 만약 힘있는 행정부처 대신 떠밀리다시피 세종시로 내려간다면 그들의 가슴에는 2등국민이라는 자괴감이 흐르지 않을 수 없다.

   

결과적으로 이대통령의 뒤집기 한판으로 인해 망국병인 '묻지 마'식 서울·수도권·공무원 선호도는 더 강해질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서울·수도권 주민의 이기주의와 공무원의 편의주의는 잦아들지 않는다. 아파트값 하락을 우려하는 강남과 과천 민심도 마찬가지다. 바로 그렇기에 전 국민을 보고, 전 국토를 보고, 미래를 보는 대통령의 안목과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공무원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자신이 서울, 수도권, 강남 주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의식하는 것 같지 않다.

 

"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 없다"

 

한국은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과 냉전, 그리고 국가주도의 경제·사회 발전전략으로 인해 중앙권력, 특히 행정권력(규제·촉진권, 재정조달·할당권, 처벌권 등)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의 상당부분이 세종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업, 연구소, 대학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없이, 즉 공무원의 솔선수범 없이 국가균형발전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여야가 오래전에 합의했고, 이대통령 스스로 누차에 걸쳐 확약한 국가대사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다면, 도대체 누가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겠는가?

 

2천년 동안 동양 정치사상의 정수로 여겨져온 <논어>에는 이런 얘기가 있다. 제자 자공이 스승 공자에게 "정치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공자는 "무기와 식량을 풍족하게 하고 백성들이 믿도록 해야 한다"고 대답했다. 자공이 또 물었다. "하나를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가 대답했다. "무기를 버려라." 자공이 다시 물었다. "남은 둘 중 하나를 또 버려야 한다면 무엇을 버려야 합니까?" 공자는 말했다. "식량을 버려라. 믿음을 잃으면 정치는 설 수가 없다."

 

이대통령은 정말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혼동하고 있다.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불편과 비효율은 대통령과 국회가 마인드를 약간만 바꾸면 상당부분 해결할 수가 있다.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깨어 있는 시민이라면 대한민국 최고권력자의 지적 유고상태와 통치자 마인드의 유고상태에 어떻게 대처할지 고민하며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비상사태다.

 

* 이 글은  창비주간논평에 실린 글입니다.

by 김대호 | 2009/12/12 11:02 | 정치와 통계 | 트랙백 | 덧글(2)

<노무현 이후> 서평- by 이광백(Daily NK 논설위원)

시대정신 2009년 겨울호 서평입니다. Daily NK 논설위원이신 이광백님이 쓰셨네요.
서평들을 읽어 보면, '아! 이분은 이런 측면을 주목하는구나!' 하는 생각이 듭니다.
독자에 의해 책이 다시 태어난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읽기가 녹녹치 않는 제 책 읽고 평하느라 고생 많이 하셨겠습니다. 저자로서 감사드립니다.  
원문은 아래
 http://www.sdjs.co.kr/read.php?quarterId=SD200904&num=337

[서평] 사회민주주의를 버리고 공평한 보상이 가능한 사회를 설계하자



[이광백 | DailyNk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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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대호 지음,『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한걸음더, 2009)

1

386 세대라면 기억할지도 모른다. 5년 전이었다. ‘386진보’의 시대착오時代錯誤를 반성하고 새로운 길을 모색해온 자신의 이념적 진화進化 기록을 담은 책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을 조심스럽게 내놓던 40대 초반의 젊은이가 있었다. “수백만 진보성향의 청·장년들의 혈관에 흐르는 민족사적民族史的으로 너무나 소중한 에너지가 사회 발전에 별로 도움이 안 되는 방향으로 소진消盡될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든다며, 사회발전단계와 시대정신에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사상과 이념에서 빨리 벗어나라고 호소했던 그는 지금은 40대 후반으로 접어든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이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역사 속으로 사라진 후 무겁고 답답한 공기가 온 나라를 뒤덮고 있던 지난 여름, 그가 또 한권의 책을 냈다. 『노무현 이후 : 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한걸음더, 2009). 『한 386의 사상혁명』 이후 한결 성숙해진 자신의 정견政見과 자신이 소장으로 있는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연구 성과를 모은 책이다.

사회디자인연구소는 지난 1년 동안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작업을 진행하고 그것을 바탕으로 한국사회와 정치를 위한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을 연구해왔다. 김대호 소장은 연구를 주도하면서 연구소 웹사이트에 관련 글을 발표해왔다. 『노무현 이후』는 김대호 소장이 발표한 글을 둘러싸고 연구소 회원들과 온․오프라인 논객들의 열띤 토론을 거친 내용을 다듬고 정리한 것이다.

김대호 소장은 '서언序言-노무현의 죽음과 유산有産'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자살을 선택한 것은 '치졸한 정치보복의 비극을 증거證據하기 위한 것'이라고 봐도 과언過言이 아니라고 썼다. "노무현은 부엉이바위에서 몸을 날리면서 부활했다. 마치 예수의 십자가처럼 이 시대의 속죄양이 되어 민족의 등불로 활활 타오르고 있다"는 말로 서언을 끝맺고 있다. 또 노무현이 남긴 정치적, 정신적, 지적 유산을 나열하고 있다. 어떤 사람들은 서언에 드러나는 김대호 소장의 다소 감정적이고 격앙된 표현 때문에 이 책을 '노무현 찬양서讚揚書' 쯤으로 성급하게 미루어 짐작할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다. 본문을 읽어 나가기 시작하는 순간, 『노무현 이후』는 이념 정책서적이라는 것을 또렷하게 알게 된다.


2

『노무현 이후』는 노무현과 참여정부가 남긴 숙제를 크게 다섯 가지로 요약하고 남겨진 숙제를 해결하는 데 초점을 맞추어 내용을 전개했다. 눈에 띠는 것은 세 가지다. 첫째, 대통령 탄핵, 행정수도 건설, 호주제, 직업선택의 자유(맹인 안마사), 새만금 개발과 천성산 터널 문제 등 정치와 사회에 파급력이 큰 사건들이 법원이나 헌법재판소에서 최종 판결됨으로써 사법부의 막대한 권한이 확인되었고, 사정査定기관, 대기업, 언론 등 이른바 '선출되지 않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가 없어 문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노무현은 검찰, 국세청 등을 정치적으로 중립화시키고, 정경유착을 단절하며, 언론에 대한 통제를 줄이는 각종 민주화와 자율화 조치를 실행했으나 선출되지 않는 권력에 대한 자율적이며 민주적인 통제장치가 정착되지 않은 상태에서 이러한 조치는 시기상조였다고 말한다. 이와 같은 현상들은 한국사회의 민주주의와 공화주의에 대한 새로운 설계를 요구한다고 주장한다.

둘째, 열린우리당의 탄생誕生, 분란紛亂, 소멸消滅을 통해서 정당과 정치 생태계生態界 문제에 대한 숙제를 남겼다는 것이다. 정경유착을 근절하고 정당 운영에서 이권 개입을 차단하고 나니, 선출직 및 정무직 공무원의 급료가 낮아지고, 정당 운영에 필요한 정치자금 조달조차 어려워졌는데, 이것이 정치인과 정당의 생존에 커다란 장애가 되고 있다고 말한다. 또 퇴임하거나 낙선한 정치인은 폐인이 되고 마는 정치적 토양에도 문제가 크다고 지적하고, 퇴임이나 낙선 후 정치적 경륜을 축적하고 공유하고 발전시켜 나갈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정치인과 정당을 발굴하고 육성하고 활용할 수 있는 정치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셋째, 진보의 분열分裂을 다양한 이념과 정책적 자산으로 만드는 과제가 중요한 숙제로 남았다는 것이다. 노무현 대통령 재임 중 범진보凡進步로 뭉뚱그려져 있던 세력의 갈등과 분열이 일어났는데, 이는 1987년 양김 분열처럼 정치공학적인 분열이 아니라 정치 노선과 정책의 차이에 따른 건강한 분열이었으며, 새로운 진보를 고민하고 모색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고 말한다.


3

『노무현 이후』는 새로운 진보 이념과 정책에 대한 모색摸索의 일환으로 이른바 진보를 표방하는 세력이 내세우고 있는 사회민주주의가 현 단계 한국사회의 진보 이념과 정책으로 적절한가를 진단하고 있다. 김대호 소장은 '제3부 노무현의 숙제에 답하다' 편에서 '사회민주주의'는 박정희의 선先성장 후後복지 패러다임과 김대중(노무현)의 생산적 복지 패러다임을 대체할 수 있는 패러다임이 아니라고 잘라 말한다.

사회민주주의를 주창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적자재정을 편성해서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고, 생사를 다투는 기업에게 고용이 불안한 비정규직 말고, 정규직 일자리를 많이 만들라고 말하며, 이를 위해 대폭적인 증세를 하자고 말하지만, 한국의 전반적인 기업 능력과 학부모들의 교육비 부담 능력과 국가의 재정 능력은 이런 좋은 일자리 수백만 개를 추가로 만들지 못한다는 것이다.

또 사회민주주의는 보육, 교육, 의료, 주택, 노후 관련 재화 등을 정부가 재화를 필요로 하는 사람에게 배급하는 방식인데, 그와 같은 시스템을 가능하게 해주는 조건이 한국사회에는 형성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이 세금을 많이 내고, 정부와 사회지도층에 대한 신뢰가 높고, 국회, 노사정위원회 등 갈등 사안을 처리하는 기구가 잘 작동하며, 개인이나 이익집단의 기회주의 행태를 사회 말단에서 감시하는 문화적 풍토가 크게 부족하다는 것이다. 정치, 경제, 사회 주체들 간의 상호 불신이 높아 대화와 타협으로 갈등을 조정하기 어려운 사회에서는 전쟁이나 독재권력, 또는 소비자의 자유로운 선택을 보장하는 시장, 유권자의 의지를 확인하는 투표가 사회적 자원과 가치를 배분하는 주요 장치가 될 수밖에 없으며, 전쟁과 독재 권력이 활용 가능한 수단이 아니라면 시장과 투표기능을 주요하게 활용할 수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또 사회민주주의 패러다임을 떠받치는 주요 지주支柱 가운데 하나인 획기적인 증세增稅는 거의 불가능하다고 꼼꼼한 통계자료를 근거로 들며 주장하고 있다. 2004년 현재 한국의 GDP 대비 조세부담률은 25.3%인데, 이는 미국의 25.6%와 비슷하며, 한국처럼 면세점 이하 인구 비중이 매우 높은 나라에서 추가로 대폭적인 세원稅源을 찾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또 복지수요 측면에서 북유럽처럼 실업수당이 커지면 한국에서 실업자 대열에 설 가능성이 있는 사람이 아무리 적게 잡아도 500만 명은 될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너무 많다는 것이다. 결론적으로 한국은 조세와 사회보험료를 조달하고 부담하는 능력은 작고, 잠재적 복지 수요는 너무 커서 보편적 복지주의를 실현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결론이다.


4

『노무현 이후』는 박정희 플랫폼과 김대중 플랫폼을 대체하여 대한민국을 생존 번영시킬 수 있는 새로운 정책 플랫폼의 기본틀에 대한 나름의 구상을 담고 있다. 첫 번째로 강조하는 것은 시대인식이다. 우선 세계화, 지식정보화, 과학기술혁명으로 집약되는 문명사적 변화에 대한 이념적, 제도적, 정책적 응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21세기 인류가 맞이하고 있는 기후환경 변화와 화석에너지 위기 역시 중요한 응전 대상이라고 말한다. 한국사회가 정책 플랫폼 설계에서 특별히 고려해야할 문제도 제시하고 있다. 첫째, 중국의 정치, 경제적 비상으로 인한 여파餘波에 대응해야 한다. 둘째, 북한에서 시작될 위기와 기회에 대처해야 한다. 셋째, 정치, 경제, 사회적 게임 규칙 내지 사회적 평가보상체계의 위기에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두 번째로 제시한 것은 새로운 정책 플랫폼 설계가 반영해야할 시대적 요구를 꿰뚫는 핵심 가치다. 첫째는 경쟁 기회, 조건, 출발선의 평등을 의미하는 공정公正이다. 둘째는 경쟁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을 의미하는 공평公平이다. 공정이 경쟁의 입구를 관리하는 기준이라면 공평은 경쟁의 출구를 관리하는 기준이다. 『노무현 이후』는 특히 공평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공평은 사회적 상벌체계의 핵심으로, 승자의 이익 수준과 패자에 대한 배려 수준을 결정하는 가치다. 공평해야, 다시 말해 사회적 격차나 차별이 합리적이어야 승자는 나태하지 않고, 패자는 재도전 의지를 잃지 않는다. 김대호 소장은 공평이란 사회적 기여와 사회적 이익의 균형이며, 이것이 정의의 핵심 지주라고 말한다.


5

『노무현 이후』는 나름대로 제시한 새로운 정책 플렛폼의 기본틀을 바탕으로 한국 정치의 5대 과제를 내세우고 있다. 정책 패러다임 측면에서, 제도개혁 측면에서, 정치 생태계 측면에서, 지식과 여론의 측면에서, 정치적 매력의 측면에서 각각의 과제를 나열하고 있다. 이미 나왔던 주장들과 커다란 차이를 발견할 수는 없었다. 다만, 정치 생태계 측면에서 제시하고 있는 과제는 개념과 내용이 신선하여 눈에 띠었다.

“한국 사회에서 정치는 '고위험 저수익' 직업이다. 천신만고 끝에 의원이나 단체장이 된다 할지라도 부정을 저지르지 않는다면 그 처우는 대기업의 부장급 내지 이사급에 불과하다. 수도권 대학의 웬만한 전임교수보다 훨씬 못하다. 게다가 의원이나 단체장이 되지 못하면 집안의 천덕꾸러기 백수가 되기 십상이다.……한국에는 낙선했거나 집권하지 못한 정당 주변의 고급 정치 엘리트들이 국가 경영 경륜을 발전시키면서 먹고 살 수 있는 구조가 거의 없다. 결국 이런 구조에서는 상당한 특권과 특혜가 보장된 자격증(특히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있거나 아니면 부모에게 물려받은 재산이 많거나 든든한 배우자가 있는 사람이 아니면 감히 정치에 도전할 수 없다. 따라서 정신이 건강한 청년이 정치를 할 이유는 정말 없다. 결국 권력욕과 명예욕이 이상 비대한 사람, 투기주의와 한탕주의를 체화한 건강하지 못한 청년, 부모나 배우자 잘 만난 사람, TV에 얼굴을 비칠 행운을 잡은 방송인들의 비중이 점점 높아질 수밖에 없다. 공공적 마인드가 강하고, 국제 감각이 있고, 가치생산 사슬 전반의 균형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기업 엘리트들에게는 너무나 진입 장벽이 높다.” 『노무현 이후』, 276~7쪽

위 인용문처럼 한국사회의 정치 생태계를 신랄하게 비판하면서 강력하고 유능한 정치라는 꽃을 피우기 위해서는 그 뿌리가 되는 생산적인 선거제도, 정치 인재 영입, 교육, 훈련, 배치 시스템, 정치자금 공급 시스템 등 다양한 사회적 평가보상체계를 살피는 것이 중요한 과제라고 주장한다. 관건은 국가 경영 노하우를 지속적이고 체계적으로 축적하고, 정치 엘리트를 훈련시키고, 순환시키는 정치 생태계를 건강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6

이 책은 전체 4부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노무현도 잘 몰랐던 나라, 대한민국 바로 보기'는 작가의 이념적 직관과 다양한 통계자료를 통해 한국사회의 현실을 진단하고 있다. 제2부 '노무현과 참여정부'는 사회디자인연구소가 지난해부터 진행한 노무현과 참여정부에 대한 평가 작업을 종합해 놓았다. 제3부 '노무현의 숙제에 답하다'는 노무현이 남긴 숙제를 제시하고 그에 대한 김대호 소장 나름의 답을 정리해 놓았다. 제4부 '새로운 진보의 길'에서는 지난 100년에 걸친 진보의 발자취를 성찰하고 새로운 진보에 대한 몇 가지 문제의식을 담고 있다.

이 책이 그리는 국가 비전은 정치, 경제, 사회, 문화 등 모든 부문에서 도전이 장려되는 나라,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 보상이 합리적으로 이루어지는 역동적인 나라다. 김대호 소장은 영남과 호남을 뛰어넘고, 진보와 보수를 뛰어넘고, 성장과 통합을 상생 결합하고, 임박한 기후, 환경, 에너지, 자원 위기와 북한 위기를 효과적으로 타개해 나가는 중도의 길이 진정한 진보라고 말한다. ‘길’을 찾는 사람들, 특히 한국사회의 방향과 정치적 진로를 연구·모색하는 정치인이나 학자, 우리 사회가 추구해야할 사상과 이념에 관심이 있는 사회운동가나 청년학생에게 권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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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대호 | 2009/12/07 18:30 | 책 비평 | 트랙백 | 덧글(1)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적, 심리적 유고(有故) 사태

대한민국 대통령의 지적, 심리적 유고(有故) 사태

-특별생방송 '대통령과의 대화'를 보고-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이명박 대통령의 인상과 목소리와 말투를 놓고 좀스럽고 약삭 빠른 어떤 동물과 닮았다는 얘기가 널리 회자되어 왔다. 그런데 나는 TV를 통해 이대통령을 접할 때마다 사람들이 잘 보지 못하는 어떤 비범성, 이른바 용안(龍顔)을 보려고 노력해 왔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후진 구석이 많다고 해도 이대통령이 거친 자리; 현대건설 사장, 재선의원, 서울시장, 대한민국 17대 대통령은 결코 요행으로만 차지할 수 없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난 11 27일 밤, 2시간에 걸쳐 35개 채널을 통해서 중계된 대통령과의 대화-대통령의 담화인지 대화인지 잘 모르겠지만-를 보고서, 비범성을 찾으려는 노력을 완전히 접었다.  2시간의 대화는 이대통령의 사고 아니 영혼은 정말로 소시민적, 아니 속물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든다지만 이대통령은 그 중요한 자리에 올랐음에도 불구하고 만들어지지 않았고, 만들어질 것 같지도 않았다. 국가사회적 이익을 사적 이익 및 편의에 종속시키는 성향이 농후한 사람이 앞으로 3년은 더 대한민국 호를 몰 것을 생각하니 대한민국이 큰 일 났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 방송을 보니 이대통령이 이전에 비해 확실히 말을 재미있게 잘했다. 무엇 보다도 보통 사람들의 정서에 맞게, 피부에 와 닿게 말을 잘했다. 비록 듣는 사람이 그 진위를 즉각 밝혀내지 못하는 수많은 허구에 근거하긴 했지만…… 어쨌든 이대통령의 발언에서 국정 운영에 대한 자신감이 느껴졌다. 시쳇말로 자기 페이스(pace)를 찾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바로 이 때문에 국가사회적 위기 의식이 더 커졌다.

 

관점의 문제가 아니라 사실과 진실의 문제

이대통령이 자신의 주장을 뒷받침하기 위해 제시한 수많은 사실의 허구성은 언론에 의해서 낱낱이 까발려지고 있다. 단적으로 4대강 사업의 주요 근거 중의 하나인 홍수도 대부분 4대강 본류에서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천에서 일어났다. 잠실과 김포 신곡 등에 보를 만들어서 한강 수질이 개선됐다고 하지만, 실은 한강은 하수처리율 100%에다가 경안천 등 지천 관리를 잘했기 때문이다. 그나마 높이가 10m가 넘어 댐이나 마찬가지인 이명박의 보(?)와 잠실, 신곡 수중보는 비교 대상이 될 수가 없다. 이대통령이 이전 정부에서도 계획한 사업이었다며 TV화면을 통해 보여준 문건 ‘신국가방재시스템 구축방안’은 2007년 당시 건교부, 농림부, 소방방재청 등 9개 부처가 국가 방재의 틀을 예방 위주로 짜기 위해 마련한 로드맵으로, 하천 재해예방 사업비는 14조여 원이다. 그나마 이 역시 강 본류 보다는 상류나 지천 정비용 예산이다. 이전 정부에서 홍수를 막으려고 해마다 썼다는 4조원은 태풍 피해 복구액 전체이다. 이대통령이 낮춰야 한다고 말한 법인세율도 2009년 현재 24.2%로서 OECD 30개국 중 22위이다. 우리보다 낮은 나라는 스위스, 체코, 헝가리, 터키, 폴란드, 슬로바키아, 아이슬란드, 아일랜드 인데 우리와 비교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 한국은 외국인 투자자들에게 세금 인하, 즉 비용 경쟁력으로 매력을 느끼게 할 만한 나라가 아니다. 미국, 일본, 영국, 프랑스 등이 외국인 투자자를 끌어당길 때처럼 다른 매력으로 외국인 투자를 끌어당겨야 하는 나라이다. 세종시 원안도 9개 행정 부처 14백 명만 내려가는 것이 아니었다. 힘있는 행정 부처가 견인력을 발휘하여, 많은 기업, 연구소, 교육 기관 등을 세종시 혹은 인근으로 모이게 하는 안이었다. 또한 일찍이 대전으로 이전한 11개 행정기관 공무원도 서울에서 출퇴근을 하는 것이 아니라 89%이상 가족과 함께 이주했다. 수질감시 물고기 로봇도-이걸 대화에서 왜 방영했는지는 수수께끼다- 비용 대비 편익이 너무 낮아서 기술적으로 가능하다 할지라도 실용화 하기에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이런 식으로 사실(fact) 시비를 할 대통령의 발언은 그 외에도 더 있는데, 이는 여러 언론들이 상세하게 다뤄줄 것이다.

 

길게 허구성을 지적하긴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대통령의 학습 능력은 같은 나이의 보통 노인 보다는 많이 높을 것이다. 하지만 대통령이라는 자리는 엄청나게 많은 새로운 정보, 지식을 빠르게 흡수해야 하는 자리다. 추구하는 가치는 단단히 움켜쥐어야 하겠지만 생각은 유연해야 하는 자리다. 사실이나 진실 앞에는 겸허해야 하는 자리다. 고정 관념을 깨는 새로운 정보, 지식이 홍수처럼 쏟아져 들어오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머리가 꽤 굳어있는 것처럼 보인다. 고정 관념이 너무 강한 것처럼 보인다. 이는 2008 9월 멜라민 파동이 일어났을 때 식약청을 전격적으로 방문하여 ‘(한참 대화를 나누고도) 분유에 왜 멜라민 함량 표시가 안되어 있냐’고 묻던 YTN 돌발영상을 보면서 처음 들었던 느낌이다. 이번 방송은 이대통령의 발언 시간이 길었던 만큼 이런 느낌을 주는 장면이 수두룩했다. 위에서 열거한 사례가 그것이다.

 

두개의 충격

내가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은 이대통령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저열한 학습 능력과 더불어 취약한 공인 마인드 내지 통치자 마인드를 다시금 확인했기 때문이다. 이는 작고, 사적인 이해를 앞세운다는 의미에서 강한 소시민 마인드라고 할 수도 있다. 좋게 봐주면 강남, 서울, 수도권의 표심을 배타적으로 대변하는 작은 정치인(이른바 政商輩) 마인드라고도 할 수 있다.

 

단적으로 대화 끝 무렵에 특전사에서 군복무를 하고 있는 아들을 두고 있다는 한 40대 후반 시민패널이 아프카니스탄 파병 관련 질문을 했다.

 

"국민의 생명을 최우선으로 해야 하는 정부가 우리와 아무 관계도 없는 지역에 젊은이를 보내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이해하지 못하겠다.제 아들도 혹시나 파병되지 않을까 걱정된다"면서 대통령의 생각을 물었다.  

 

이에 이대통령은 "강제로 가는 게 아니라 지원하게 돼 있는 만큼 아드님 문제는 안심해도 된다고 하였다.

 

이는 특전사에서 복무하는 아들을 둔 아버지의 개인적인 우려에 대해서는 적확하게 명쾌하게 답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이 이대통령의 힘이다) 하지만 40대 후반 시민패널의 질문은 파병의 가치에 대한 의구심을 포함하고 있다. 사실 질문의 핵심은 이것이었다. 이대통령은 이렇게 답했다.

 

"우리도 이제 테러를 막는다든가, 평화를 유지하는 일에 참여해 국제적 의무를 다 해야 한다…….우리는 세계 모든 나라에 물건을 팔고 있지 않나……물건만 팔고 남의 일에 전혀 관심이 없다고 할 수는 없다. 그래야 제품 값도 올라간다" 또 이대통령은 "싸우는 전투병이 가는 것도 아니다"면서 "후방에서 의료시설도 만들고 농사짓는 법도 알려 줄 (재건팀) 150명을 지키기 위해 300명 내외의 군대가 가는 것"이라면서 "젊은이들은 생명의 위험이 없는 위치에서, 전투도 전혀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제적 의무를 다해야 제품 값이 올라간다는 단순 논법은, 이대통령의 오랜 회사 생활 경력의 산물로서, 일반 소시민의 피부에 와 닿는 설명이라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생명의 위험이 없는 위치에서 전투도 전혀 하지 않게 될 것이라는 것은 사실과도 다르고, 논리에 맞지도 않다. 생명의 위험이 없는 위치에 군인 수 백 명만 파병하면 제품 값이 오르는데 그 어떤 나라가 파병을 하지 않겠는가? 위험은 없고, 이득(제 품값 상승)만 있는 일-이는 기업인들이 가장 바라는 일이다-이라면서 파병을 옹호하는 논법은, 필요하면 엄청난 희생을 무릅쓰고라도 수많은 젊은이들을 전장으로 나가게 해야 할 군 최고통수권자인 대통령이 구사할 논법이 아니다. 논법이 하류 장사치의 그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얘기다.

 

내가 방송을 보다가 가장 박장대소한 부분은 이대통령의 내복 관련 발언이다. 이 대통령은 내복을 입으므로 서 청와대 실내 난방 온도를 3도 가량 낮췄다고 하였다. 그러면서 "남들에게 내복을 입고 다니라고 직접 얘기하기보다는 (강요로 보이지 않도록) 가끔 바짓단을 걷어 올려 내복을 입었음을 슬쩍 보여준다"고 하였다. 솔직히 나는 이 대목에서는 이대통령이 참 친근하고 귀엽게 느껴졌다. 하지만 이대통령의 이런 행태가, 노무현 전대통령을 죽음으로 몰아간 야비한 검찰 수사에서 드러난 뿌리깊은 이중성과 변칙(얍삽함)의 발로이기도 하다는 생각이 들자, 박장대소가 허탈과 우려로 바뀌는 데는 몇 분이 걸리지 않았다.

 

소시민적 심성의 정수

이대통령의 소시민적 심성 및 정서의 정수는 세종시 관련 발언에서 극명하게 드러났다. 이대통령은 주요 각료들을 120km 밖에 둔 대통령의 불편을 얘기했다. 또한 공무원들이 커피 자판기 옆이나 포장마차에서 소주잔을 앞에 놓고 할 법한 얘기를 했다. 14백 명이 내려간다 하더라도 서울로 출퇴근할 것이기에 밤이면 텅 비게 될 것이고, 점심때 식당만 좀 될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이대통령은 공무원들이 서울에 출장 와서 3 일 끝나고 나면 다시 세종시로 내려가겠는가?" 하고 물었다. 확실히 이는 공무원, 강남, 서울, 수도권 사람들의 솔직한 정서 인 것처럼 보인다. 피부에 와 닿는 논법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엄청난 서울.수도권 집중 및 지방의 피폐로 몸살을 앓는 나라의 대통령으로서 할 얘기는 아니다.

 

이대통령은 행정부처의 상당수가 청와대에서 멀리 떨어진 세종시에 있어서 생기는 비효율과 불편에 특별히 예민한 것 같다. 이는 이대통령이 상대적으로 디지털 기술.문화와 권한 위임에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더할 것이다. 이대통령은 대리, 과장 소리를 들을 정도로 수시로 각료(부하)들을 불러서 세세한 것을 캐묻고, (숫자를 잘 모르면) 깨고, 지시하고, 결재 판에 붙어온 종이문서에 결재를 하는 스타일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렇기에 그 불편이 얼마나 크게 느껴지겠는가! 게다가 대한민국 국회 역시 행정부 고위 공무원들을 하릴없이 국회에 장시간 대기시키는 것이 다반사다. 그렇기에 애국적 일념으로 행정부처를 청와대와 서울 인근에 집중시키려 하는 지도 모른다. 행정 부처의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대통령과 공무원들의 불편은 보통 사람들에게 확실히 호소력이 있어 보였다.

 

세종시는 고육책

그런데 세종시는 원래 극심한 서울.수도권 집중을 해소하려는 고육책으로 나온 것이다. 대통령과 세종시로 내려갈 공무원의 불편을 몰라서 만든 정책이 아니다. 지극히 비정상적인 상황에서 나온 특단의 정책이자 굽은 것을 펴기 위해 역으로 구부린 정책이라고 할 수 있다. 요컨대 세종시 문제는 서울.수도권의 지속가능한 발전조차 위협할 정도로 심각해진 지나친 집중 및 불균형 문제와 강력한 중앙 권력의 문제이다. 수 십 년에 걸쳐 이것이 해소되면 세종시로 내려간 행정부처가 다시 서울로 올 수도 있다. 또한 관습헌법의 수도 조항(?)이 확실히 개정(성문화) 되면, 세종시로 청와대와 잔존 행정부처가 갈 수도 있다. 또한 연방제 수준으로 획기적인 지방분권이 이뤄져도, 남북 연방제가 되어도, 행정권력의 분산에 따른 불편과 비효율이 해결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현재 세종시 같은 특단의 해법이 필요하다고 보아야 한다.

 

주요 선진국에서 그 유례를 거의 찾아 볼 수 없는 것은 그 나라의 수도와 중앙권력이 한국만큼 강력한 블랙홀이 아니기 때문이다. 수도의 소재지를 관습헌법의 이름으로 못 박는 나라가 없기 때문이다. 민의의 대표기관인 대통령과 국회가 합의한 안을 선출되지 않은 사법 엘리트가 헌법 제정권까지 행사하여 깔아뭉개는 나라(헌재 공화국)가 없기 때문이다.

 

세종시로 내려간 공무원 대다수가 저녁에는 서울로 올라와 버릴 것이라는 이대통령의 우려는 9개 행정부처를 내려 보내지 않아야 할 이유가 아니라, 오히려 무리해서라도 내려 보내야 하는 이유이다. 그만큼 서울의 흡인력이 강하다는 것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지금 우리나라 행정 서비스의 핵심 문제는 지리적 근접성이 뒷받침하는 풍부한 오프라인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단적으로 미국산 쇠고기 관련 협상도, 4대강과 세종시 관련 극심한 혼미와 갈등도 대통령과 행정 부처간 소통의 문제가 아니다. 문제가 있다 하더라도 한참 후 순위 문제다.

 

짓다 만 영화세트장이 될 것인가?

분명한 것은 9개 행정부처 14백 명 공무원은 서울에 살아야 마땅한 인간이고, 내려 보내려는 교육, 과학, 기술 부문 종사자는 지방에 살아도 좋을 인간이 아니다. 그들도 서울에 본교, 본원, 본사가 있고, 그 나름대로의 불편과 비효율이 있고, 강력한 서울, 수도권 선호도가 있다. 만약 이대통령의 뒤집기 한판으로 인해 이들이 떠밀리다시피 내려온다면 이들과 지방민들의 가슴에는  2등 국민이라는 자조감도 생길 것이다. 문제는 이 뿐 아니다. 이대통령의 말대로 이미 확정된 지방(혁신도시) 이전 대상 기업, 연구소, 대학, 공공기관 등은 세종시로 오게 하지 않는다 할지라도(그렇게 믿어 주자), 세종시를 채울 기업, 연구소 등은 지하수처럼 땅에서 솟아나거나 운석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기존 지역에 있던 것이거나 확장하려고 하던 것들이다. 이는 국가 재정은 늘리고, 부자 감세하면, 부자 아닌 사람들의 세금부담이 늘어나는 것과 같은 이치다. 게다가 행정부처라는 견인력 내지 앵커가 없는 세종시로 기업, 연구소 등을 밀어넣으려면 엄청난 특혜를 주어야 한다. 이는 역차별 논란을 불러일으킬 수 밖에 없다. 개방화되고 민주화된 한국 사회는 특혜를 오래 용납하지 않을 것이기에 세종시는 오래지 않아 짓다만 영화 세트장처럼 되기 십상이다. 쥐가 파먹은 빵덩어리처럼 되기 십상이다.

 

한국은 오랜 중앙집권의 전통과 냉전, 그리고 국가주도의 경제사회 발전 전략으로 인해 중앙권력, 특히 행정권력(규제.촉진권, 재정 조달.할당권, 처벌권 등)이 강하다. 따라서 이들의 상당 부분이 세종시에 있다는 것 자체가 기업, 연구소, 대학을 끌어당기는 강력한 힘이 아닐 수 없다. 이것만으로는 국가균형발전이 되지는 않겠지만, 이것도 없이, 즉 행정부처와 공무원들의 솔선수범 없이 국가균형발전을 하겠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게다가 여야가 오래 전에 합의했고, 이대통령 스스로 누차에 걸쳐서 확약한 국가지대사를 손바닥 뒤집듯이 뒤집는다면, 도대체 그 누가 대통령과 정부의 말을 믿겠는가? 2천년 동안 동양 정치사상의 정수로 여겨져 오던 논어가 무기와 식량보다 (통치자에 대한) 믿음을 강조한 것은 예사로이 볼 일이 아니다.

 

대통령의 존재 이유

서울, 수도권 민심은 집중의 패악이 극에 달할 때까지 (아마 나라가 망할 지경까지) 서울, 수도권에 모든 것을 쓸어 담고 싶어할 것이다. 2등 국민 위에 군림하는 1등 국민이 되고 싶어할 것이다. 행정부처, 기업, 대학의 이전으로 인한 공동화로 인해 아파트 값이 떨어지는 것을 그 무엇보다도 두려워할 것이다. 이는 서울, 수도권 주민들의 자연스런 욕망이기에 바람직하지는 않지만 성토할 일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전국민을 보고, 전 국토를 보고, 미래를 보는 대통령의 안목과 결단이 필요한 것이다. 대의제 민주주의나 공화제가 필요한 것이다. 또한 공무원의 솔선수범이 필요한 것이다. 그런데 이대통령은 자신이 서울, 수도권, 강남, 과천 주민들의 대통령이 아니라 대한민국의 대통령이라는 사실을 깊이 의식하는 것 같지가 않다. 그런 점에서 이대통령은 정말로 중요한 것과 덜 중요한 것을 혼동하고 있다. 지리적 분산으로 인한 불편과 비효율은 대통령과 국회가 행태와 마인드를 약간만 바꾸면 상당부분 해결할 수가 있다. 그래도 여전히 해결하지 못하는 불편과 비효율은 있겠지만 국가균형발전의 편익이 이를 상쇄하고도 남을 것이다.

 

건국 이래 공인 의식이 가장 박약한 대통령을 어이하리!

이대통령은 대한민국 건국이래 공인 의식 내지 통치자 마인드가 가장 박약한 대통령이 아닐까 한다. 이대통령은 몇 년 전 자신 소유 건물 관리인으로 아들, 딸을 서류상 등재시켜 물의를 빚은 적이 있다. 이는 대한민국 상류층에 흔한 일이긴 하지만 일종의 좀도둑질임이 분명하다. 이 때문에 자신의 전 재산을 청계 재단-이 역시 자신의 아주 가까운 지인에게 관리권을 맡겼지만-에 기부하였다. 그런데 이번 특별생방송을 보니 얄팍한 변칙, 편법을 밥 먹듯 구사하며 좀도둑질을 한 이명박이나 이대통령이나 다른 사람이 아니었다. 자리가 사람을 만들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러므로 보수와 진보를 초월하여, 대한민국을 사랑하는 깨어있는 시민이라면 대한민국 최고 권력자의 지적 유고 및 통치자 마인드 유고 사태의 폐해를 시정하기 위해 손을 맞잡고, 머리를 맞대야 한다. 지금 대한민국은 진짜로 큰 일 났다. --

by 김대호 | 2009/12/02 13:51 | 노무현.참여정부 | 트랙백 | 덧글(19)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미래의 지방자치 "아! 로체스터"

 

                                                                                                                          정보연(한국청년연합회 공동대표)

 

 

로체스터시는 뉴욕주 북부의 주요 도시이다. 5대호의 하나인 온타리오호(Lake of Ontario)에 접한 아름다운 도시이지만 1990년대 이후 도시의 생존과 관련된 중대한 위기에 봉착한다.

아래 표1에서 보듯 1970년 이후 로체스터시의 인구는 줄곧 줄어 2003년에는 1970년 대비 28%가 감소했다. 반면 로체스터시와 그 주변을 포함한 전체 도시권은(Metro Rochester) 인구가 지속적으로 늘었다. 로체스터시에서 빠져나간 주민들이 도시 주변의 교외에 자리를 잡은 것으로 추정된다.

 

표1 : City라고 써있는 부분은 로체스터시의 인구 변화이고, MSA라고 써있는 부분은 로체스터시를 포함한 전체 도시권의(Metro Rochester) 인구 변화이다. 마지막 칼럼은 전체 도시권에서 로체스터시가 차지하는 인구비율의 추이이다.

 

 

인구만 줄어든 것이라면 “도시의 생존과 관련된 중대한 위기”라고 보기는 어렵다.

표2는 로체스터시의 빈곤문제와 관련된 통계이다.

1969년부터 1999년까지 30년 동안 로체스터시의 빈곤율은 두배, 실업율은 2.3배로 뛰었다. 중산층의 소득변화는 좀 더 적나라한 상황을 보여준다. 1969년 로체스터시의 중산층 평균소득은 $33,365이었는데(1999년 달러가치로 환산) 1999년에는 $27,123로 줄어들었다. 같은 기간 미국 전체 도시의 중산층 평균소득이 $43,180에서 $44,014로 증가한 것과 비교하면 소득액수에서나(전체 도시 평균의 62% 수준) 감소추세에서나 심각한 상황임을 알 수 있다.

 

특이한 것은 같은 기간 로체스터 전체 도시권은(Metro Rochester) 1969년의 평균 소득을 유지했으며 빈곤율이나 실업율도 미국 도시의 평균 수준이라는 점이다. 인구의 변화도 그렇고 빈곤율의 변화도 그렇고 로체스터시는 급격히 쇠락하고 있는 반면 주변 도시권은 인구가 늘거나 평균 소득을 유지했다.

전형적인 도시 슬럼화가 진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로체스터시의 곳곳에서 빈집이 생겨나고, 부랑자가 늘어나고, 범죄율도 높아졌다.

 

 

표2 : 첫 칼럼은 로체스터시와(City라고 써있는 부분) 로체스터시를 포함한 전체 도시권의(MSA라고 써있는 부분) 빈곤율 변화이고, 두번째 칼럼은 1999년 달러로 환산한 중산층의 소득변화이다. 마지막은 30년 동안의 실업율 변화이다.

 

 

당연히 시의 전체적인 경제력도 약해졌다. 로체스터시의 재생을 이끌었던 존슨시장은 언젠가 시정 연설에서 점점 나빠지는 경제 사정에 대해 다음과 같이 표현했다.

“예를 들어볼까요? 20년 전 우리시는 다운타운의 요지마다 주요 33개의 금융기관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의 상황은 어떻습니까? 단지 한줌이 남았을 뿐입니다.(Today, only a handful is left.)”

이렇게 사람들과 주요 사업체가 도시를 빠져나가면서 남아 있는 주민들은 견디기 힘든 조세부담 압력에 직면하게 되었다. 1990년대 동안 시는 9억불의 세수를 잃었다.

 

쉽게 말해 로체스터시는 망해가고 있었다. 그 도시에 사는 사람은 누구나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진흙 수렁에서 연꽃이 피듯, 최악의 상황이 새로운 미래를 만들기도 한다.

그로부터 10년, 로체스터시는 다시 꽃을 피웠다. 부활의 무기는 “거버넌스”였다.

 

 

최악의 상황이 만들어낸 새로운 미래

 

미국의 금융위기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던 2008년 10월 컬럼비아대학의 한 교수님은 사석에서 “부모님에게 듣던 그 대공황을(Great Depression) 내가 당하게 될 줄은 꿈에도 몰랐어요.”라고 말했다. 미국 사람들은 대공황에 대해 특별한 느낌을 가지고 있는 듯하다. 미국 역사상 가장 어렵고 힘든 한 시절이랄까? 한국 사람들이 6.25전쟁에서 느끼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다.

3년 새 GDP가 56%로 감소하고, 실업자가 1,300만명에 달했던 그 어려운 시기를 루즈벨트는 금융에 대한 규제 강화, 국가의 적극적인 시장 개입, 국가가 주도하는 대규모 공공사업으로 요약되는 뉴딜 정책으로 극복했다. 그 이후 루즈벨트의 해법은 하나의 모델이 되었고 사회 전반에서 전통적 자유방임주의가 케인즈적 방식으로 전환되었다. 그렇게 한 시대가 창조되었다.

 

1941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참전 문서에 서명하고 있는 루즈벨트 대통령. 그러고 보니 루즈벨트 시대는 대공황에, 2차 대전에 큰 일이 참 많았다.

 

나사를(NASA) 방문한 레이건 대통령. 그의 시대를 규정하는 두개의 키워드는 “신자유주의”와 “힘의 외교”이다. 그에 대한 최종 평가는 역사의 몫이겠지만 2009년 지금의 상황으로 보자면 그의 두가지 정책은 모두 파산한 것 같다.

 

 

1980년대 대부분의 미래학자들은 미국이 추락하고 있으며, 곧 일본에 추월당할 것이라고 예언했다. 태양이 떠오르듯 일본이 부상하고 “미국식”이란 단어가 비효율의 상징이 되어버린 당시의 상황을 풍자한 숀 코너리 주연의 “떠오르는 태양(Rising Sun)”이란 영화도 기억난다.

그 즈음, 미국을 이끌던 제조업은 점차 경쟁력을 잃기 시작했고, 재정 적자는 속도를 더해 갔으며, 공공서비스의 낮은 질에 실망한 국민들은 곳곳에서 조세저항운동을 벌였다. 실제로 캘리포니아주에서는 주민이 스스로 발의한 “재산세 제한을 위한 주민구상”이(일명 주민발의안 13호) 주민투표에서 통과되면서 지방정부의 재산세 수입이 57% 감소되기도 했다.

레이건은 “아홉 단어로 된 영어 중 가장 끔찍한 말은 ‘정부에서 당신을 도와주러 나왔소.(I’m from the government and I’m here to help.)’ 이다.”라고 비아냥대며 정부 기구와 사회복지를 축소했고, 금융 중심으로 경제를 재편하는 등 전형적인 신자유주의 처방을 내어 놓았다. 그렇게 지난 30년 미국은 번영을 구가했다. 필자가 좋아하는 방식은 아니었지만 여하간 그가 하나의 세상을 연 것만은 분명하다.

 

루즈벨트와 레이건은 전혀 다른 방향으로 최악의 상황에서 새로운 시스템을 만들어냈다.(2007년 갤럽조사에 의하면 가장 존경하는 미국 대통령으로 루즈벨트 1위, 레이건 3위를 기록했다.) 그리고 지금 미국은 또 하나의 위기에 봉착했다. 그나마 다행스럽게도 그들은 작년 말 대담한 변화를 이야기하는 젊은 대통령을 선택했다. 미국이 이 위기를 어떻게 극복할지, 또 어떤 새로운 시대를 열어나갈지 자못 궁금하다.

 

하지만 필자가 여러분과(이글을 읽고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진보쪽에 가까울 것이다.) 진짜 나누고 싶은 이야기는 한국에 관한 것이다. 한국이 지금 봉착한 것은 어떤 종류의 위기인가? 이 전환의 시기에 진보는 무엇을 만들어 낼 것인가? 필자는 왜 로체스터시의 거버넌스 사례를 들고 나왔을까? 거버넌스는 우리에게 어떤 의미가 있을까?

 

 

한국의 진보가 맞닥뜨린 상황

 

상황1

우리는 1987년, 많은 젊은이들의 죽음과 6월의 뜨거운 항쟁으로 대통령 직선제를 쟁취했다. 우리 손으로 대통령을 뽑을 수 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대단한 것이었다. 대통령 선거를 위시하여, 국회의원 선거, 지방 선거를 통해 한국의 정치적 에너지는 뜨겁게 분출되었고 우리는 민주주의를 맛보았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그 모든 것이 시들해졌다. 정치에는 감동이 없어졌고, 후보들은 고만고만하고, 선거도 귀찮아졌다. 20대의 선거 참여율은 20%대이다.

 

2008년 6월의 촛불. 거 참 이상하다. 5분도 안 걸리는 투표는 하지 않으면서 얻어맞고 물대포 맞는 촛불집회에는 나온다. 거기에 뭔가 시대적 함의가 있는 것 아닐까?

 

 

사회의 에너지가 떨어진 때문인가? 그렇지는 않다. 2002년 월드컵에서, 2004년 탄핵에서, 2007년 태안에서, 2008년 촛불에서 우리는 시민참여의 역동을 경험했다. 미국에서는 상상하기 힘든 에너지이다. 그 에너지가 정치와 만나고 있지 못할 뿐이다.

그렇다. 한국의 민주주의가 어딘가 막혀있다. 국민은 에너지를 발휘하지 못해 답답하고 정치는 에너지가 없어 무기력하다. 1980년대에 우리가 쟁취한 것이 “민주주의 1.0”이라면(정치인을 우리가 직접 뽑는 대의민주주의의 달성), 이제는 “민주주의 2.0”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게 뭔지는 모르겠지만.

 

상황2

1980년대 전두환대통령 시절, 어떤 사회문제에 대해 국가가 처방을 내리면 비교적 간단하게 해결되고는 했다. 국가는 힘이 셌고 국민은 잘 따랐다. 무엇보다도 사회가 단순했다.

하지만 지금 세상은 10차원 방정식처럼 복잡해졌다. 더 이상 하나의 문제를 하나의 처방으로 해결할 수 있는 시대가 아니다. 마치 모자이크를 맞추듯 다양한 처방을 구상하고, 그 처방들 사이의 상호관계를 고려하여 얼개를 맞춰도 효과를 보지 못하기 십상이다. 안타깝게도 이런 복잡한 방정식을 푸는데 국가는 과거처럼 효율적이지 않다.

 

예를 들어 볼까?

과거의 빈곤문제는 밖에 나앉지 않게 하고, 굶지 않게 하는 것 즉 최저생활을 보장하는 것이었다. 그건 비교적 간단했고 국가도 그 역할을 잘 수행했다.

하지만 지금의 빈곤문제는 복잡하다. 비정규직의 문제이기도 하고, 성인지적 관점에서도 바라봐야 하며, 외국인노동자라는 새로운 이슈와 관련이 있기도 하다. 더구나 생활비를 지원해주는 문제를 넘어서서 경제적, 심리적 자활의 문제로 접근하면 상황은 더욱 복잡해진다. 이런 복잡한 문제의 해결은 국가 혼자서는 불가능하다. 시민사회, 지역사회가 가진 다양한 자원과 네트워크를 활용할 때만 가능하다.

복잡해진 문제를 해결할 새로운 솔루션이 필요한 상황이다.

 

상황3

얼마전 한 여성운동가로부터 “Backlash”란(사전적으로는 역회전, 반발을 뜻함) 말을 처음 들었다. 지난 20년 진보적 여성운동 덕분에 한국의 여성문제는 많은 진전을 보았다. 하지만 최근 군가산점 이슈에서 보듯 그 동안 이룬 성과에 대한 강력한 반발에 직면하는 경우가 왕왕 발생하고 있다. 그 여성운동가는 “여성단체가 입법 과정에 적극 개입하면서 제도를 바꾸는 것은 상당히 진척되었지만, 시민의 삶과 의식을 바꾸는 데는 상대적으로 소홀하여 이런 지체현상이 발생한 것 같다.”고 진단했다.

 

제도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제도가 사람을 바꾸기 때문이다. 하지만 사람을 바꾸는 것도 정말 중요하다. 사람이 제도를 만들기 때문이다. 87년 민주화 투쟁을 통해 폭발한 시민사회의 힘이 금융실명제, 선거공영제, 호주제 철폐, 집단소송제, 사법제도 개혁 등 굵직한 제도변화를 이끌어 내었다. 이제 그런 제도변화가 좀 더 구체적인 삶의 변화로 연결될 때가 되었다. 삶의 변화에 기초하지 않은 제도의 변화는 불안하고 또 공허하기 때문이다.

 

상황4

얼마전 G20 정상회담이 열렸다. G20으로 대표되는 “세계 정치체제”가 그 동안 사실상 어떤 간섭도 받지 않았던 “세계 금융체제”를 규제하는 상징적 조치들이 몇가지 취해졌다.(금융안정위원회 설치, 조세회피처 규제 등) 많은 언론들이 새로운 세계질서의 첫 걸음이었다고 평가했다. 나도 그런 조짐을 보았다. 지난 30년 신자유주의 시대가 종말을 고하고 이제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다. 뭐라고 이름 짓건 간에, 그 새로운 시대가 또 30년을 갈 것이다.

 

G20 정상들이 4월2일 영국 런던에 모였다. 우리가 교과서에서 얄타회담, 리우회담 등을 배우듯 어쩌면 이 런던 회담도 역사가 기억하지 않을까? 평소 “한국의 금융감독위원회 같은 기능을 하는 세계적 금융감독기구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온 터라 필자에게 더욱 의미 있게 느껴지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신자유주의가 우파가 고안한 체제였다면 이제 공은 다시 진보로 넘어왔다. 진보가 세상 사람들 앞에 새로운 세상에 대한 구상을 꺼내 보일 때가 되었다. 그것이 구태의연한 과거의 것은 아니기를 바란다. 다시 1930년대 루즈벨트 방식을 꺼내 보일 것인가? 그것이 “새로운” 세상인가?

당신에게 묻는다. 당신은 진보주의자인가? 그렇다면 지금 어떤 세상을 구상하고 있는가?

 

 

시민 이니셔티브

 

루즈벨트의 시대에는 자본주의건, 사회주의건 국가가 세상을 이끌었다. 레이건의 시대에는 시장이, 특히 금융이 바톤을 이어 받았다. 그리고 도래하는 시대에는 시민사회가 세상을 이끌 것이다.

시민이 주도하고(Initiative) 국가가 지원하는 사회.

그게 필자의 구상이다.

 

시민 이니셔티브는 두번째 민주주의이다.

링컨은 게티스버그 연설에서 민주주의 정부는 “Government OF the People, BY the People, FOR the People”이라고 언급했다.

우리는 선거로 대리인을 뽑고 그들이 정부를 구성한다. 그건 “BY the People”이다.

1942년 비버리지 보고서 이후 대부분의 정부는 사회복지를 자신의 본질적 과업으로 받아들였다. 그건 “FOR the People”이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의 민주주의는 “OF the People”을 성취하지 못했다.

민주주의! 말 그대로 시민이 사회의 주인이다. 그러면 주인답게 한번 나서보자.

시민 이니셔티브는 그걸 목표로 한다.

 

시민 이니셔티브는 가장 훌륭한 사회적 연대이다.

개인의 선택과 경쟁을 강조했던 신자유주의의 시대가 가고, 사회적 연대의 시대가 다시 도래하고 있다. 사람들의 배려와 협력에 기반해서 공공적 영역을 구축하는 것이 사회적 연대의 핵심이다. 그걸 가장 잘 할 수 있는 것은 시민이다.

국가가 사회복지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시민과 시민 사이의 연대를 만들지는 못한다. 그건 시민사회의 몫이다.

국가가 노인들에게 연금을 지급할지는 몰라도 약자와 소수자에 대한 시민적 배려와 책임을 대신할 수는 없다. 그것은 성숙한 시민들이 역할이다.

이 사회를 공동체로 만들고, 사회적 연대를 강화하는데 국가의 역할은 막중하다. 그러나 49%의 역할이다. 51%는 시민사회가 스스로 수행해야 한다.

 

시민 이니셔티브는 이 사회가 가진 자원을 가장 효율적으로 활용하여 문제를 해결하는 시스템이다.

국가는 많은 돈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어떤 국가도 문제를 해결할 만큼 충분히 많은 돈을 가지고 있지는 않다. 하지만 이 세상의 모든 시민사회는 문제를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다. 참여하는 시민이 있고, 시민과 시민 사이의 연결망이 있기 때문이다.

바로 그것으로 노스캐롤라이나주 캘드웰 카운티는 “도움의 손길 병원(Helping Hands Clinic)”을 설립했다. 지역의 큰 병원들-의학회-카운티 건강부와 사회복지부-시민단체-재단-기업-종교기관이 모여 만든 이 병원은 민간 의료보험에 가입할 형편은 안 되고, 메디케이드의(65세 미만의 저소득층, 신체 장애자를 대상으로 하는 국민 의료 보조) 혜택을 받을 조건도 되지 않는 사각지대의 주민들을 대상으로 의료 서비스를 제공한다.

 

정부가 이런 병원을 운영하려면 엄청난 재원이 투입될 것이다. 그러면서도 원래의 취지를 잘 살릴 수 있을지 의문이다. 하지만 이 병원의 일꾼들은 “모든 사람은 동등하게 의료혜택을 받을 권리가 있다.”는 사명에 따라 끊임없이 지역의 자원을 찾아내어 연결하고 또 연결한다.(그들은 얼마 전부터 정신과 치료까지 새로 시작했다.)

 

“도움의 손길 병원(Helping Hands Clinic)”의 진료 모습. 문득 안성, 안산, 원주 등지의 의료생협이 생각난다. 난 그곳에서 병이 나지 않도록 돕는 의료, 환자와 대화하는 의료, 환자를 고깃덩이처럼 다루지 않는 의료의 모습을 보았다.

 

 

이런 말이 있다. 공무원이 하면 일이고, 사업가가 하면 돈이지만, 시민이 하면 운동이 된다고.

시장은 공적인 문제를 해결할 의사가 없다.(시장의 실패)

국가는 공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효율적이지 않다.(국가의 실패)

시민사회는 공적인 책임감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효율적이다. 이제 그들이 본격적으로 나설 때이다.

 

시민 이니셔티브는 사람의 변화와 제도의 변화가 통일되는 과정이다.

국가는 입법과 조세라는 강제적 권위를 가지고 문제를 해결한다. 그래서 강력하지만 그 만큼 위험하기도 하다. 시민사회는 국가처럼 위임받은 권한이 없기 때문에 시민의 각성과 자발적 참여에 기초한다. 따라서 사람들의 의견을 모아 의사를 결정하고, 주체를 발굴하고, 재원을 마련하고, 사업을 시행하는 전 과정이 그 자체로 사람의 변화 과정이다.

그렇기 때문에 혹여 실패해도 괜찮다. 작고 가볍기 때문에 충격이 덜할 뿐더러 최소한 그 과정에서 사람은 변하기 때문이다.

 

필자는 시민 이니셔티브 사회의 핵심 수단으로 Home Rule, 거버넌스, 사회적 기업 스타일을 구상하고 있다. 물론 더 많은 수단들이 있겠지만 두번째 민주주의를 기획하고, 새로운 유형의 사회적 연대를 만들고, 여러 사회구성원들이 연결되어 있는 문제해결망을 짜고, 사람과 제도의 변화를 동시에 끌어내는데 이 3가지 수단은 매우 효과적이다.

각각의 수단에 대해서 독자들과 자세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싶다. 하지만 오늘은 새로운 시대가 도래하고 있으며, 진보의 새로운 구상은 시민 이니셔티브여야 한다는 것을 말씀드린 것으로 만족하고 자세한 설명은 다른 글에서 하기로 하자.

이제 로체스터시가 시민 이니셔티브의 중요한 수단인 “거버넌스”를 통해 도시를 재생한 이야기로 돌아간다.

 

 

NBN(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 이웃 공동체를 만드는 이웃들)

 

1994년 존슨시장이 당선되기 이전부터 로체스터시는 여러 각도에서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별반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그 과정에서 시의원과 고위 공무원 등 시 정부의 핵심적 관계자들도 서서히 깨닫게 되었다.

“시 정부만으로는 현재의 위기를 타개할 수 없다.”

“우리는 이제 시민의 에너지와 만나야 한다.”

그렇게 의견이 모아질 즈음 존슨의 임기가 시작되다.

 

존슨은 우선 로체스터시를 10개의 구역으로 나눴다. 당시 로체스터 인구가 20만 정도였으니까 대략 2만 단위로 구획한 것이다.

필자는 이 “10개 섹타로 구획하기”에 상당한 중요성을 부여한다. 거버넌스란 것은 사실 그 구역의 넓고 좁음과 별 상관이 없는 개념이다. 즉 지역단위의 거버넌스가 있을 수 있고 국가 전체의 거버넌스가 있을 수 있으며 이론적으로는 어느 것이 더 잘 작동한다고 말하기 어렵다.

 

하지만 거버넌스와 관련된 여러 경험들은 그 단위가 좁을 때, 그리고 문제 상황이 구체적일 때 더 유기적인 거버넌스가 구성됨을 알려 준다. 아무래도 거버넌스란 것이 “여러 사회구성원이 협력하여 통치함”을 의미하기 때문에 협력에 필요한 신뢰를 쌓고 통치에 필요한 연결망을 구성하기 위해서는 단위가 작은 것이 유리하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이 지방자치의 새로운 틀을 짤 때도 유의해야 할 대목이다. 가능하면 작게, 특히 서울과 같은 거대도시에서는 꼭 작게 첫 단위를 짜야 한다.

로체스터시를 10개의 섹타로 구획한 그림. 존슨시장은 이 10개의 섹타마다 NBN을 구성했다. 추진 과정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했던 한 고위공무원은 “시민은 문제를 해결할 능력이 있으며, 그 과정에서 필요한 핵심적 자원을 이미 가지고 있다.”는 믿음이 NBN을 구상하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말했다.

 

 

그렇게 구획된 섹타마다 NBN이란(Neighbors Building Neighborhood. 이웃 공동체를 만드는 이웃들) 과정을 운영한다. NBN은 “지역에서 활동하는 자원봉사자들, 시민단체, 종교기관, 기업, 학교, 재단과 각종 관공서들 그리고 일반 주민들을 조직하여 그들이 스스로 자기 섹타의 비젼, 전략, 활동을 계획하고(Action Plan) 그 계획에 따라 지역의 다양한 자원들을 최대한 활용하여 실행하는 과정”이라고 정의할 수 있다.

 

각 섹타는 자율에 따라 NBN 과정을 가장 효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위원회의 조직구조를 짠다. 그리고 회의, 공청회, 서베이 등 각종 과정을 거쳐 액션 플랜(Action Plan)을 만들어 낸다.

섹타 10의 액션 플랜을 한번 보자.

 

섹타 10의 액션 플랜 중 “8개의 목표(Goal)"

1. 섹타 10의 아이들이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교육을 받도록 한다.

2. 섹타 10의 청소년들이 지역의 다양한 네트워크를 통해 생활에 필요한 기술 훈련을 받을 수 있도록 한다.

3. 시민-경찰의 팀워크를 강화하여 “지역을 바라보는 경찰”이 되도록 한다.

4. 종교기관들과 우호적인 협력 관계를 만들어 섹타 10의 다양한 활동에 참여토록 한다.

5. 8개 정도의 새로운 혹은 확장하려고 하는 소기업을 지원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한다.

6.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도시농업을 진흥하고 “지역먹거리사업구상”를 추진하여 자립적 기업으로 만든다.

7. 지역의 장기적 경제발전을 위해 필요한 기반을 조성한다.

8. “지역사회를 위한 토지재산”을 구매하고 그것의 개발을 시작한다.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목표1”은 전반적으로 가난한 로체스터에서도 저소득층이 많은 섹타 10의 고민을 반영한다. 가난하니 교육을 잘 받지 못하고 교육을 잘 받지 못하니 가난이 대를 잇는다. 존슨시장의 후임인 듀피시장은 최근 인터뷰에서 로체스터시 고등학교 졸업율이 39%에 불과하다고 밝혔다.

이런 상황이기에 섹타 10은 아이들의 교육과 관련된 목표를 가장 윗줄에 올린 것이다. 이렇게 8개의 목표는 지역의 구체적인 상황과 고민을 생생하게 반영하고 있다.

 

각 목표마다 그 목표를 수행하기 위한 전략과 활동내용, 그리고 함께 실행할 파트너 그룹이 구체적으로 명시된다. 목표1의 전략을 살펴보자.

 

전략1

“NENA(NorthEast Neighborhood Alliance. 북동부 이웃연합. 그 지역에서 활발하게 움직이는 시민단체이다.) 지역 차터스쿨”을 설립한다.

 

전략2

섹타 10의 초등학교들 그리고 “프레디 토마스 교육센타”와 소통하면서 우호적인 협력관계를 만들어 나간다.

 

차터(Charter)스쿨은 위기의 미국 공교육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해 만든 제도로, 일종의 “공립 대안학교”이다. 다른 공립학교와 마찬가지로 국가의 지원을 받기 때문에 학비는 무료이지만 교사임용, 커리큘럼, 학교 운영은 차터 스쿨을 맡은 기관에서 자신이 작성한 차터에 따라 독자적으로 한다. 따라서 일반 공립학교에서 하기 어려운 대안적 시도들이 자유롭게 이뤄진다. 차터스쿨은 비영리 시민단체나 대학 등에서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섹타 10의 주민들이 열악한 교육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차터스쿨을 유치하자는 특단의 카드를 빼어든 것이다. 차터스쿨은 섹타 10에서 활동하는 신망받는 시민단체인 NENA가 운영을 맡기로 하였다.

차터스쿨이 지역교육에 활력이 될 좋은 자극제이기는 하지만 역시 일반 공립 초등학교가 변하지 않으면 안 되기 때문에 지역학교들과 우호적 관계를 맺으면서 좋은 교육 여건을 만들어나가는 것으로 두번째 전략을 짰다.

 

NBN 로고이다. 로체스터시는 NBN의 성공을 위해서 여러 가지 장치를 세심하게 마련했는데 그 중에는 “NBN에 대해서 알리고, 참여를 독려하고, 좋은 이미지를 심어주기 위한 마케팅” 활동도 포함된다. 위는 NBN 로고이다. 이 로고는 티셔츠, 배너, 포스터, 마우스 패드에 실려 20만 주민에게 홍보되었다.

 

 

이렇게 목표, 전략, 활동내용, 실행 파트너가 자세하게 명시된 액션 플랜이 6개월에 걸친 조사, 의견 수렴, 토론을 통해 만들어진다.

로체스터시는 이런 과정을 현재까지 3회 거쳤다. 즉 NBN 1기,2기,3기가 있는 것이다. 위에서 소개한 것은 NBN 2기의 계획이다. NBN 2기는 2000년 시작해서 6개월 동안의 계획수립 단계와 18개월 동안의 실행단계를 거쳤다. NBN 1기,2기,3기를 통해 세워진 각 섹타의 계획은 시의 포괄적인 발전 계획인 “로체스터 2010 : 부흥(The Renaissance)”의 내용으로 삽입된다.

 

미국이건 한국이건, 대체로 시의 발전계획은 공무원이나 외부 전문가에 의해서 만들어진다. 그리고는 캐비넷에 처박힌다. 하지만 긴 토론을 거쳐 주민이 직접 만든 계획은 잊혀지지 않았다. NBN 1기에서 만들어진 859개의 계획들은 시와 지역단체, 주민 그리고 기타 이해관계자들의 공동 노력으로 78%의 달성율을 기록한다.

 

 

섹타 10의 두가지 사례

 

이제 섹타 10의 액션 플랜들이 어떻게 추진되었는지 살펴보자. 8개의 목표 중에 6번째가 재미있다.

“관련 시민단체와 함께 도시농업을 진흥하고 『지역먹거리사업구상』을 추진하여 자립적 기업으로 만든다.”

이 목표는 과연 성공했을까?

 

섹타 10의 주민들과 위에서 이미 언급했던 지역단체인 NENA는(NorthEast Neighborhood Alliance. 북동부 이웃연합) 정부의 농업관련 기관과 재단들의 도움을 받아 일련의 도시 소농장을 만들기 시작한다.

GRUB로(Greater Rochester Urban Bounty. 더 나은 로체스터를 위한 도시 운동) 알려진 이 사업은 “도시농업 활성화를 목표로 설립된 자립적 벤쳐사업”으로 “번영하는 북동부지역을 만들기 위해 모든 이익은 지역사회로 재투자한다.”는 원칙을 세웠다.

 

이런 취지에 공감한 지역 식당과 기관에서 먹거리를 구입하기 시작하였고 시도 공공시장에 판매대를 설치해 주었다. 또 지역 프로그램의 일환으로 학교들과 협력하여 학생들이 매주 8시간씩 농장에서 자원봉사를 하는 프로그램도 마련하였다. 이미 NBN를 통해 형성된 지역 네트워크가 힘을 발휘한 것이다. 그렇게 사업은 조금씩 틀을 잡았고 2002년에는 12,000 파운드의 유기농 생산물을 수확했다. 이즈음 켈로그재단으로부터 100만불의 보조금을 받게 되었고 그 후로는 원래의 목표인 도시농업의 근거지로서, 또 자립적 벤쳐사업으로서 확고히 자리를 잡게 되었다. 성공한 것이다.

 

이 과정에서 큰 역할을 한 지역단체인 NENA는 켈로그재단의 보조금이 결정되자 이런 성명을 발표했다. “이 보조금은 임파워된 주민들이 지역 상황을 개선시켜보자고 적극 나선 결과이다. 우리는 NBN을 통해 주민을 임파워해 준 존슨시장의 비젼에 깊이 감사한다.”

 

또 다른 사례를 볼까?

섹타 10의 액션 플랜 마지막 목표는 “지역사회를 위한 토지재산을 구매하고 그것의 개발을 시작한다.” 이다. 이건 또 뭘까? 어떻게 추진되었을까?

 

한국도 그렇지만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택문제는 항상 중요한 이슈이다. 로체스터시도 적절한 가격의 좋은 주택을 공급하는 것이 중요한 행정 목표였다. 하지만 달성하기가 매우 어려운 목표이기도 했다. 많은 재정이 들고, 많은 이해관계자가 관여하기 때문이다.

 

섹타 10을 비롯한 저소득층 지역의 섹타들이 함께 시 정부, 관련 시민단체, 재단, 기업체와 은행을 끌어들여 2000년 6월 RCDC를(Rochester Community Development Collaboretive. 로체스터 지역개발합작) 설립한다. 이 RCDC는 이후 몇 년 동안, 약 450만불을 저소득지역의 관련 주민그룹들에게 제공하였고, 이 주민그룹들은 350개의 버려진 집을 개조하여 150개는 시장에 팔고, 200개는 저소득주민들이 구매할 수 있도록 비축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그것은 공공적 행정의 성격도 있었고, 투자자와 주민그룹이 함께 만드는 비즈니스의 성격도 있었다. RCDC는 이 주민그룹들에게 돈 뿐만 아니라 기술, 운영 노하우를 지원하였고 필요하면 특별한 프로젝트 파이낸싱도 하였다.

로체스터시 곳곳에서 볼 수 있는 버려진 집들. 이런 집들이 도시를 슬럼화하는 중요한 요인이다. 지금은 점점 줄어들고 있다.

 

그리고 지금은 일반 투자자들이 RCDC의 계획에 관심을 보일 정도로 성장하였다. 이 사례는 활동력을 갖춘 지역조직들과 외부의 물적 자원이 결합하여 지역사회를 변화시킨 좋은 성공사례이다.

또 한가지 의미있는 것은 RCDC로부터 지원을 받은 주민그룹들의 3/4이 NBN의 파트너로 결합하였다는 것이다. 지역사회의 도움을 받아 성장한 주민조직들이 다시 지역사회에 기여하는 순구조가 만들어진 것이다.

 

이쯤 되면 로체스터시의 재건은 순풍에 돛 단 듯 나아가는 일만 남았다. 그후 몇년, 로체스터시는 도시 재생의 대명사가 되었고 숫한 상을 받게 된다.

 

 

촛불아! 동네로 와라. 새로운 세상 그만 외치고 직접 만들어 보자.

 

정말정말 그렇게 제안하고 싶다.

로체스터 같은 것 우리도 한번 해보자고. 함께 지역에서 새로운 세상을 직접 만들어보자고. 요즘은 좋은 세상을 외치는 것보다 자기가 좋은 삶을 사는 것이 사람들을 더 감화시킨다고. 시청 앞에는 가끔만 나가고 이제는 동사무소로 나가자고.

하지만 안타깝게도 한국의 동네에는 촛불의 지역참여를 막는 방해물들이 많다. 그걸 없애는 것이 조금 먼저 동네에 들어와 있는 필자와 같은 사람들이 할 일이다.

 

지금까지는 미국의 지방자치를 소개하는 글이었다. 다음 연재부터는 한국의 이야기, 특히 촛불을 지역으로 초대하기 위해 필요한 것들에 대해서 이야기하겠다.

지금 한국의 지방자치는 변화를 필요로 한다. 그것도 혁명적 변화를!

 

 

후기

 

필자는 아직도 로체스터에 대해 궁금한 것이 너무너무 많다.

 

이런 정도의 변화를 일구려면 대단히 능숙한 지역 조직가가 몇십명은 필요할 것 같은데 공무원들이 그런 역할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주민과 함께 협치한다는 것이 시장, 시의원, 기타 고위공무원들에게는 자기 권한을 빼앗기는 것처럼 느껴질텐데 그걸 어떻게 극복했을까?

계획만 있고 예산이 없으면 말짱 꽝이다. 그래서 주민들이 만든 계획에 쉽게 반응하는 예산 시스템을 만들었다고 하는데 그건 뭘까?

시 정부는 주민들이 액션 플랜을 짜는 동안 가이드 라인만 제공할 뿐 전혀 개입하지 않았다고 하는데 그 가이드 라인이라는 것은 또 도대체 뭘까?

각 섹타와 우선위원회가(Priority Council. 시의 국장급과 교육위원회의 간부들로 구성된단다. 주민들의 다양한 아이디어에 대해 그 타당성, 사업 추진의 방법, 예산의 상황 등을 조언한다.) 만나서 액션 플랜을 조정한다고 하는데 그 실제 회의 모습은 어떨까?

NBN 연구소란 것이 있어서 주민들이 NBN 과정에 잘 참여하도록 다양한 교육 워크샵, 훈련 코스를 제공한다고 하는데 그 구체적인 내용은 뭘까?

NBN에서 859개의 계획들이 만들어졌고 78%가 달성되었다고 하는데 실패한 사례에는 어떤 것이 있을까? 왜 실패했을까?

 

이런 것들은 관련 문헌만 봐서는 알 수가 없다. 직접 봐야 한다. 필자는 5월중에 직접 로체스터시를 찾아갈 예정이다. 가서 보고, 사진 찍고, 인터뷰하겠다. 그리고 더 생생한 모습을 다시 글로 쓰겠다.

그때 여러 가지 이야기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지만 무엇보다도 NBN의 과정에서 성장하고 자기 삶의 비젼을 찾은 보통 사람들의 이야기를 쓰고 싶다. 로체스터시가 변한 것도 대단하지만 사실 변화라는 것의 백미는 그렇게 스스로 변한 사람들의 이야기니까.

 

이글은 “내일의 지방자치” 세미나에서 KAVC(한인유권자센타) 박재진변호사가 발표한 “21세기 지방자치에 대하여”라는 글에 기초하였다. 이런 좋은 사례를 발굴한 그에게 정말로 감사한다. 필자는 그가 발굴하고 분석한 것을 옮긴이에 불과하다. 필자와 박재진변호사는 현재 거버넌스와 로체스터 사례에 대해 좀 더 심화된 연구를 기획하고 있다.-끝-

11월 30일(월요일) 오후 7시 사회디자인연구소 회의실에서 정보연님 초청 강연이 있습니다.
관심있는 분들의 참여 바랍니다. (참석 확인, 02-6333-7077, 김태현)
미국 로체스타시 방문은 내년 6월경 기획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글에 대한 약간의 아쉬움을 말한다면, 시민사회의 주도성=새로운 거버넌스는 국가주도 50년, 시장주도 30년의 합리적 핵심(경험과 지혜와 성과)을 온전히 계승하고, 그 짙은 그늘 내지 빈 구석을 해결하는 솔루션으로 자리매김 되도록 서술 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글이 시민사회와 새로운 거버넌스를 강조하려다 보니 아무래도 기존 패러다임과의 단절성을 너무 부각시키는 듯 합니다. 한국 진보의 지적 풍토 내지 심리는 지난 30년간 아니 지난 80년 간의 합리적 핵심-여전히 한국 사회가 창조적으로 수용해야 할 것이 많은데-을 너무 부정, 폄하 하고, 새로운 것으로 기존의 것을 깡그리 대체하려는 '극단성'이 있어서 하는 말입니다.

by 김대호 | 2009/11/28 09:06 | 두번은 읽을 펌글 | 트랙백 | 덧글(3)

집권하고 싶은가? 한국 사회의 얼개를 그림으로 그려보라!

집권하고 싶은가? 한국 사회의 얼개를 그림으로 그려보라!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지난 10여 년의 내 중심적 화두가 국가경영 내지 진보 혁신이었다면, 지난 몇 개월의 내 중심적 화두는 서울시정이었다. 서울, 경기 등 지자체 경영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아마 앞으로 한 동안은 그럴 것이다. 실은 연구소 차원에서는 작년 연말쯤부터 서울시 경영을 중심적 화두로 삼기로 되어 있었으나 몰입이 되지 않았다. 특히 올 상반기에 참여정부 평가 작업,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와 <노무현 이후> 집필 작업이 있었기 때문이다.

 

서울시정을 연구하면서 수많은 책과 자료를 들춰보았다. 서점에 나와있는 도시 관련 책과 서울시정개발연구원에서 생산된 방대한 보고서를 들춰 보면서 질리기도 했다. 수많은 연구자, 공무원, 서울 시민의 경험, 지식, 지혜를 결집하여 기획, 실행한 이명박-오세훈의 시정 성과를 뜯어보면서도 질리기도 했다. 이명박 정부의 국정이야 그 철학, 가치, 비전의 특이함으로 인해, 또 권능이 큰 만큼 정책적 선택지(큰 그림)도 많아서 비판하기도 쉽고, 차별화된 진보적 대안을 제시하기도 쉽다. 그런데 서울 시정은 원래 그 누가 하더라도 정책적 선택지가 많지 않고, 또 오시장도 그렇게 독단적이지도, 무리수를 구사하지도, 게으르지도, 부정하지도 않아서 비판도 차별화된 대안 제시도 쉽지가 않다. 혹시 대심도 지하차도를 밀어붙인다거나 용산에 5천 톤 급 관광선을 들어오게 하여 황해를 건너겠다면 몰라도……물론 시민 다수가 공감하기 힘든 환경.생태적 가치를 최상위에 올려 서울시정을 재단한다면 비판과 대안 도출은 쉬울지 몰라도 서울시정을 접수하는 것은 어려울 것이다.

 

하지만 서울 시민의 요구, 기대, 불만, 고통을 찬찬히 뜯어보면 오세훈 시정의 심각한 문제가 적지 않다. 진보적 대안 역시 그리 빈약할 것 같지도 않다. 이는 서울의 (곁가지 문제가 아닌) 핵심 문제를 짚어야 도출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서울 시정에 대한 나의 비판과 대안은 충분히 숙성, 검증되면 조금씩 공유할까 한다.

 

우선 서울시와 서울시정을 연구하면서 느낀 점 한 조각만 공유할까 한다. 이는 문제의 핵심을 짚는 일의 중요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너무나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와 서울시를 연구하면서 절감한 일이다.

 

<도시 읽는 CEO>

서울시를 연구하면서 읽은 꽤 많은 책 중에서 특별히 인상 깊은 책의 하나가 김진애 의원이 쓴 <도시 읽는 CEO>(21세기북스)라는 책이다.

 

내가 아는 한 김진애 의원(헌재판결에 힘입어 얼마 전 민주당 비례대표 의원이 되었다)은 서울, 특히 서울 공간디자인에 관한 한 대가다. 서울과 도시계획에 관한 한, 또 인문학적 통찰에 관한 한 그 폭과 깊이를 견줄 사람이 별로 없는 것 같다. 김의원은 서울대 건축학과를 나와 1988년 미국MIT에서 도시계획학 박사를 받았다. 산본 신도시, 인사동 길 등을 설계했고, ‘사람, 사회, 건축, 도시’를 주제로 20여 권의 책을 저술했다. 1970년대 말, 대학원생 시절 임시행정수도 건설에도 관여했고,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 하에서 서울 도시 계획에 깊이 관여했다. 1994년 시사잡지 <타임(TIME)>에 의해 차세대 리더 100인에 선정된 바 있다. 비례대표의 취지에 비추어 보면 아마 가장 부합되는 사람 중의 한 사람이 아닐까 한다. (그런데 김진애 의원은 2004년에 열린우리당 공천으로 서울 용산에 출마했다)

 

김진애는 <도시 읽는 CEO>에서 독자들에게 이렇게 물었다.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를 얼마나 잘 알고 있나?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를 그릴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의 역사를 설명할 수 있나? 당신은 당신이 사는 도시를 이방인에게 어떻게 표현하나?

 

사실 나는 1982년 대학 입학 이후 거의 서울에서 살았다. (40여 년 전에는 집에 칼라풀한 책이 없던 관계로) 어릴 때부터 칼라풀한 지도 보는 것이 취미였다. 지금은 각종 통계를 보는 것이 취미이자 업이다. 관악산, 북한산, 인왕산, 남산, 아차산도 수없이 올라가 보았다. 관악, 영등포, 동작, 서초, 은평, 구로, 금천 등 서울 곳곳에서 살아 보았다. 게다가 지금은 서울시정을 연구 하고 있다. 하지만 김진애의 이 질문에 제대로 답할 수가 없다. 나는 아직도 서울의 지리, 도시계획, 경제, 교육, 문화, 복지의 핵심 문제를 찾아내기 위해 골싸 메고 있다. 

 

김진애는 도시 지리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의 중요성을 깨달은 경험을 이렇게 얘기한다.

 

번쩍 하던 그 순간을 생각하면 지금도 떨린다. 유학 첫 학기였다……나는 한 강의에 완전히 넋을 잃어버렸다. 강의는 ‘도시형태이론(Theory of City Form), 교수는 줄리앙 바이나트…...90분 강의는 독특했다. 세계의 도시들을 넘나들며 도시의 형태 속에 숨은 이론들을 짚어내는 구성이다……첫 60분은 논리를 펴나가고 학생들에게 의문을 던지고 칠판에 단순한 다이어그램(개념도)을 그려간다. 근사한 이미지에 눈이 먼저 팔리면 본질을 잃어버릴 위험이 커지는데, 의문을 선명히 하고 구조를 알고 난 후에 그림을 보면 ‘아!’하게 된다. ……처음으로 그 도시들이 내 머리에 그려졌다. 조각조각 알고 있던 파편들이 갑자기 짜임새 있게 전체 그림으로 맞춰졌고 이 엄청난 크기의 도시가 갑자기 하나의 그림으로 다가 온 것이다. 어떻게 런던은 런던이 되었나, 어떻게 파리가 파리가 되었나, 그 까닭이 한 편의 소설처럼 들어맞는 것이었다. 그 파워는 바로 통찰력에서 나온다……전체를 통찰하는 힘, 구조를 파악하는 힘, 핵심을 파악하는 힘, 개념을 세우는 힘, 전체와 부분의 연관성을 이해하는 힘, 통찰력은 우리 모두 지향해야 할 파워다. MIT에 있는 동안 나는 그 강의를 세 번 더 가서 들었다……가슴을 뛰게 하기 위해서……다시 지적 감동을 느끼기 위해서.(P66~68)

 

김진애는 유학 시절 이런 깨달음을 간직하고, 1988년 몇 개월 동안 서울에 푹 빠졌다고 한다. 1988년 서울 올림픽을 앞두고 열린 ‘밀라노 트리엔날레’(3년에 한번씩 열리는 디자인 전시회)에서 서울이라는 도시를 홍보해야 할 임무를 맡았기 때문이다.  김진애는 그 때 잠자는 시간 빼고 서울에 대한 역사 자료, 문화 자료, 도시계획자료, 통계자료, 사진자료, 지도 자료에 푹 빠졌다고 한다. (군사안보상 이유로 여간 해서 서울 상공을 날 수 없던 시절) 헬리콥터를 타고 서울 영공을 누비고, 고층 건물 옥상에 올라가 사진 촬영을 하고, 달동네, , 강변 등 서울의 구석구석을 누볐다고 한다.

 

거대 도시 서울 그리기

김진애는 이처럼 치열한 모색 과정을 거쳐서 파악한 서울 지리의 핵심을 이렇게 설명한다.

 

수없이 서울을 그려보고 수없이 많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에 나는 서울을 다음과 같은 차례로 그린다.

 

1. W자 모양의 한강을 그린다. 한강은 서울의 가장 강렬한 얼개다.

2. 외사산(外四山)과 내사산(內四山)을 그린다. 서울의 커다란 영역에 대한 감이 잡힌다.

3. 강북의 사대문 안에 달걀형 동그라미를 그린다. 서울의 시작은 동그라미다.

4. 강남의 격자형 구조를 그린다. 강북과 대비되는 구조다.

5. 서울의 동서남북을 팽창하는 동네 영역을 그린다. ‘달동네’도 빼놓지 않는다.

6. 사방팔방으로 뻗어가는 큰 도로와 철도를 그린다. 서쪽 인천 방향, 남쪽 경부 방향이 큰 줄기다. 간선도로 중심의 방사상 도로와 순환도로가 주요 뼈대가 된다.

7. 수도권의 주요 도시들과 계획 신도시들을 점 찍는다.

8. 수도권으로 뻗는 방사상 도로와 수도권 순환도로를 그린다. 이제 외사산 밖까지 포함되는 거대도시 서울이 그려졌다. (중략)(P88~90)

 

이것이 <도시 읽는 CEO> 89페이지에 있는 그림이다. 한번만 보면 아무나 그릴 수 있는 그림이다. 하지만 아무나 그릴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콜롬부스의 달걀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김진애가 말하려고 하는 핵심은 서울이 이렇다는 것이 아니다. 김진애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것이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그 무엇을 설명하려고 할 때, 가장 쉽게 설명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떻게 하면 그 사람의 호기심을 끌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가장 중요한 것에 대해서 소통할 수 있을까? 이런 작업은 필연적으로 통찰력을 필요로 한다. 물론 그 통찰력이 아무 때나 나오는 것은 아니다. 성의를 기울인 작업 과정이 필요하고, 끈질기게 핵심을 물고 늘어지는 끈기가 필요하고, 상대편의 호기심의 입장에 서보는 역지사지가 필요하며, 개념을 파악하고자 하는 호기심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통찰이란 복잡하게 보이는 전체의 핵심을 파악하는 작업이다. 통찰을 추구하는 과정 중에 나의 경우는 ‘그려보기’가 크게 도움이 된다.(중략) 그려보기를 사용하는 것은……그려보기가 입체적인 사고, 핵심적인 사고, 관계적인 사고, 총합적인 사고, 개념적인 사고를 촉발하기 때문이다. (중략) 한 조직의 CEO라면 자신이 운영하는 조직, 또한 자신이 일하고 있는 분야에 대해서 조직의 체계, 시장의 판도, 기술 혁신의 방향 등 그 핵심을 함축하는 개념도를 그려낼 수 있어야 한다. (중략) 지적 감동, 즉 생각의 파동을 일으키는 것은 어떻게 핵심에 다가가느냐이다. 보이는 현상에 현혹되지 않고 본질을 흐리는 곁가지에 흔들리지 않으면서 개념과 구조와 본질을 꿰뚫고자 하는 끈기가 필요하다.(<도시읽는 CEO> p88~93) 

 

자 이제 본론을 말하려고 한다.

김진애가 이 그림을 통해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서울이 이렇게 생겼다는 것이 아니라 복잡하게 보이는 대상의 핵심을 파악하는 일, 이를 간단한 도식으로 표현하는 일의 중요성과 어려움이라고 할 수 있다. 나는 한국 사회와 진보(개혁)의 복잡다단한 문제의 핵심을 파악하기 위해 노심초사하는 수많은 진보 지도자들이, 김진애가 서울을 볼 때 쓴 눈을 그대로 빌려와야 한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보수의 문제도, 한국 진보(개혁)의 문제도 거대하고 복잡다단한 한국 사회의 핵심 문제를 제대로 짚어내지 못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나친 경쟁인가? 공교육의 무능인가?

단적으로 한국 중.고등 교육의 핵심은 무엇인가? 이기정(창동고 국어교사)은 이렇게 말한다.

“과거에는 학생.학부모의 불만의 핵심은 촌지였다. 촌지에 의한 차별 이었다. 그래서 촌지 거부를 선언한 전교조가 칭송을 받았다. 그런데 지금의 핵심 문제는 무엇인가? 나는 공교육의 무능이라고 생각한다”

 

한국 보수는 무능의 문제를 적확하게 파악하고 있다. 다만 보수적인 방식 내지 후진적인 방식으로 대처할 뿐이다. 그것이 학생.학부모의 학교 선택권 강화, 평준화 폐지, (0교시, 우열반, 방과후 수업 등)수업시간 연장, 일제고사 등 평가 강화, 학생간/학교간 경쟁 강화, 교육관료와 학교장의 교사에 대한 지배력(교원 평가) 강화 등이다.

 

그런데 진보는 학생.학부모의 요구, 불만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한마디로 무능의 문제에 대해 제대로 응답하지 못하고 있다. 학력, 학벌, 학과, 직능(자격증), 직장에 의한 극심한 차별이 엄존하기에 중고교 차원에서는 뾰족한 대책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지나친 경쟁’을 주적으로 삼는다. 그것도 경쟁의 무풍 지대에 있는 교사들이!  또한 개인.가족에 대한 국가.사회의 책임성 강화라는 미명하에 ‘공짜’(무상) 카드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두른다. 급식 무상, 고교 무상, 유치원 무상, 18세 이하 무상의료…… 뿐만 아니라 무능의 문제를 돈과 교사 수를 늘려서만 해결하려고 한다. 학교에서 사무행정과 수업을 분리한다든지, 평가보상(상벌)체계를 바로 세우는 등의 방식(교장과 교육관료에게 집중된 권력을 학생과 학부모에게 옮기는 방식)으로 기존의 재원과 인력으로 교육의 효과성과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올리려는 시도를 백안시 한다. 경쟁을 강화하는 측면이 있기 때문이다. 이렇듯 진보가 교육에 대한 학생, 학부모의 불만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니 형편없는 보수에게 깨지는 것이다.

 

시대정신이랄까, 다수 국민들의 요구, 불만의 핵심을 파악하지 못하는 일은 어디 중.고교 교육 분야뿐이겠는가?  사실 나는 몇 권의 책과 정치통계 등 수많은 글을 통해서 김진애가 던진 질문과 유사한 질문을 무수히 던져 왔다.

 

‘당신은 당신이 사는 이 나라를 얼마나 알고 있나? 한국 사회가 인체라면 CT, MRI, Xray, 혈액검사, 대소변 검사를 해 본 적이 있나? 수많은 데이터=통계를 (시계열로) 그 추이를 분석하고, 다른 나라와 비교해 본 적이 있나? 다양한 통계를 종합해 본 적이 있나?

 

나는 국가경영의 관건도, 진보 혁신의 관건도 이런 의문에 답하는 것이라고 외쳐왔다. 그래서 김진애가 서울 그림으로 강조한 핵심 파악, 단순화, 개념화의 중요성에 깊이 공감하는 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를 바로 보기 위해서는 수많은 연역과 귀납, 가설과 검증을 거쳐 정립된 간명한 사회 모델(인식 틀)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는 거대한 코끼리이고 우리는 하나같이 그 한 부위를 만지는 장님이나 다름없기에, 코끼리의 전체상을 포착하기 위해서는……간명한 모델이 필수 불가결하다. 이 모델은 핵심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잘 드러내고, 동시에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 현상을 잘 설명할 수 있어야 한다. 이런 모델이 없으면 아무리 체험이 풍부하고, 가진 통계 정보가 많아도 그 전체상을 제대로 포착할 수가 없다. 따라서 핵심적인 모순과 부조리를 파악할 수가 없고, 가치, 정책의 우선순위와 기조를 제대로 잡을 수가 없다. 총론적 개혁 담론과 각론적 개혁 담론을 묶어주는 철학도 정립할 수 없다. (<노무현 이후>)

 

오른쪽으로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사회

나도 지난 20여 년 간 수많은 경험, 자료(통계), 연구를 집약하여 한국 사회의 모순.부조리 개념도를 그려 보았다. 이 핵심 개념은 한국은 보수 이익집단에 의해 오른 쪽으로 확 구부러진 사회이자 진보 이익집단에 의해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사회라는 것이다. 구부러진 것은 정의(지속가능한 사회 발전 원리)와 상식과 원칙이다.

한국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은 때로는 보수와 때로는 진보 이익집단과 협력한다. 이 그림은 한국 사회의 수많은 굵직한 모순.부조리와 수수께끼 같은 현상을 다 설명한다. 이 모든 왜곡이 생긴 것은 결국 공공이 무능하거나 스스로 이익집단화 되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가 정의와 상식을 바로 세우는 쪽으로 힘을 기울인 것이 아니라, 자신(조직된 이익집단)의 영역으로 더 많은 잉여를 쓸어 넣고, 더 적은 경쟁(시장)을 추구했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현 세대 자신에게만 유리한 불합리한 게임규칙을 밀어붙였기 때문이다. 이런 이중 왜곡 구조를 자신들이 주도적으로 만들어 놓고 오로지 상대방에게만 손가락 하는 것이 서구와 확연히 다른 한국 진보와 보수의 특징이 아닐까 한다. 그래서 보수는 좌파, 친북 타령을, 진보는 시장, 경쟁 타령을 끊임없이 해 댄다.

 

다시말해 정의 실현이 본령인 공공이 부실한 환경에서는 유능한 개인 및 집단은 자신이 서 있는 분야로는 시장원리(소비자 선택권/심판권)나 경쟁이 밀어닥치지 못하도록 한다. 이들은 예외 없이 정치적, 이념적으로 과잉 대표성을 행사하고, 거대한 정치, 경제, 사회적 지대(특권,특혜)를 누린다. 신자유주의 반대를 고창하는 존재들, 공공부문, 토건족, 은행, 독과점 기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은 자신에게 유리한 게임규칙을 통해 엄청난 불로소득을 누린다. 재정과 가계를 소리 소문 없이 약탈한다. 당연히 이들의 처우는(고용, 임금, 수익성 등) 한국 평균 소득 수준에 비추어 세계 최고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당연히 한번 들어온 사람은 떠나는 사람이 없기에, 이곳의 평균 연령은 급격히 상승하고, 구조조정은 거의 불가능하며, 신참자들의 입사(진입) 경쟁률은 살인적이다.

 

다른 한편 공공이 부실한 환경에서는 유능한 개인 및 집단은 타인에 대해서는 지대(특권, 특혜) 일소를 요구한다. 자유로운 선택권. 심판권과 각종 규제(최저 기준 포함) 완화를 요구한다. 따라서 3비층(비경제활동인구, 비임금근로자, 비정규직), 청년세대, 하청 협력업체 등 대다수 비기득권 층은 공적 규제(공정거래법, 소비자 보호법 등)나 사회안전망의 보호를 받지 못하고 엄청난 경쟁과 심각한 기회 부족에 신음한다. 청년 실업, 3비층, 각종 고시, 공시 열풍과 그 낭인 문제, 공기업 입사 경쟁률과 중소기업 인재기근, 시간강사, 사교육.유학 광풍 등의 사회적 진앙은 바로 이것이다.

 

한국 진보(개혁)가 이중 왜곡 사회를 연출 내지 방조한 것은 진보의 이념.정책적 한계와 힘의 한계가 결합되어 있을 것이다. 이념.정책적 한계는 북한이 미.일 제국주의로부터 자주.자립을 추구하는 것을 최상위 가치로 놓듯이, 남한 진보는 대체로 시장, 자유, 경쟁, 개방을 대단히 불편한 마음으로 바라보고, 이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것을 최상위 가치로 놓기 때문이다. 또한 공동체 전체와 3비층과 중소기업과 미래 세대를 깊이 고려할 만한 정신적, 사상적 품이 없었기 때문이다. 또는 A이익집단으로 B이익집단을 견제하는 이이제이(以夷制夷) 책략에 서툴렀기 때문이다. 예컨대 1987년이 낳은 큰 아들이나 마찬가지인 조직노동이 보수이익 집단을 효과적으로 견제하지도 못하고, 3비층과 중소기업을 제대로 배려하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물론 둘째, 셋째 아들 격인 진보 정당들과 진보 언론도 이미 철 지난 철학, 가치, 시스템, 리더십으로부터 자유롭지 않기 때문이다.

힘의 한계라는 것은 경제, 언론, 사법, 사학, 종교 등을 장악한 보수 권력이 너무 세다 보니 공무원이라도 자신의 편으로 만들기 위해 선심을 너무 썼기 때문이다.

 

어쨌든 오른 쪽으로 확 구부러진 현상(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 토건 위주, 경제개발 위주의 재정 할당=빈약한 복지 재정, 개인.가족에 대한 국가.사회의 무책임성, 사법엘리트의 전횡, 부정부패, 냉전적 문화 등)은 그 연원이 오래 되었다. 왼쪽으로 확 구부러진 현상(노동의 양.질과 무관한, 단결력(파괴력)과 기업 수익성에 연동된 처우 체계, 광범위한 시장.경쟁의 무풍지대, 공공부문의 양반관료화 등)은 그 연원이 오래 되지 않았다. 전체적인 구조를 뜯어보면 구악(보수가 만든 악)이 훨씬 심각하다 해도 신악(진보와 공공이 만든 악)이 최근에 생긴만큼 비슷한 악으로 치부되는 것은 인지상정이다. 게다가 여간 해서는 바꿀 수 없는 상수인 언론 지형으로 인해 구악은 축소지향의 오목렌즈로, 신악은 확대경으로 바라보니! 뿐만 아니라 보수는 민간주도의 확대 재생산 의지와 국제 경쟁력 강화 의지가 충만한데 반해, 진보는 현 상태 유지 의지(고용 안정 등)는 선명하나 나머지는 모호하니! 더구나 성장에 의한 고용창출과 소비(내수) 확대 외에는 그 답이 없어 뵈는 3비층이 너무나 거대한 상황에서는! (이 그림의 통계적 근거와 이 그림으로 설명할 수 있는 정치사회 현상과 이 그림에 근거한 대안을 집약한 책이 <노무현 이후>라고 자부한다.)

 

어쨌든 불쌍한 민초들은 신악이 너무 커 보이면 구악 친화적이라 할지라도 보수의 손을 들어주고, 구악이 너무 커 보이면 신악 친화적이라 할지라도 진보의 손을 들어 줄 수 밖에 없다. 이것이 지난 몇 년간의 엄청난 정치변동의 원인이다. 이 그림으로 보면 보수든 진보든 역사의 주도권을 쥐는 비법은 명확하다. 자신이 싼 똥을 열심히 치우면서 상대가 싼 똥의 패악을 열심히 지적하는 것이다.  이것을 이념으로, 그것도 좀 섹시하게 정식화 하면 좌파신자유주의 2.0(노무현의 그것이 1.0이라면), 우파 사민주의 1.0이 되는 것이다. 그리고 이념 정책적 우위를 확보하는 것은 김진애가 그랬듯이 무수히 많은 정치, 경제, 사회 현안들을 그림으로 그려보는 것, 즉 핵심의 도식화가 아닐까 한다. 또 하나 덧붙인다면 좋은 공공정책을 이곳 저곳에서 파 와서 잘 조합하면 되는 꽃꽂이로 보는 것이 아니라, 나무들이 즐비한 큰 숲으로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좋은 지형, 토양, , 묘목, 관리인을 갖추고 오랜 시간 가꾸어야 하는 그런 숲 말이다. 공공정책을 한 순간의 반짝이는 아이디어로 만드는 포장지나 광고 카피가 아니라, 피부이자 얼굴이자 영혼으로 보는 지적 태도 말이다. 이런 관점이 없다면 이기정이 지적하였듯이, 진보의 교육정책을 얘기하라고 하면 경쟁 자체를 주적으로 삼고, 공짜(무상)와 친환경-2008년 서울시 교육감 선거 때 주경복의 대표 공약이 "광우병, 아토피 걱정없는 친환경 직영급식 실현"이었다- 등 후순위 가치를 대안으로 삼는 식의 우를 계속 범할 것이다. 2012년 대선은 2007년 대선처럼 한탕주의, 투기주의, (문국현에 대한) 비이성적인 기대감이 횡행하고, (정동영이 보여준) 진정성도 감동도 없는 공약이 난무하고, 진보는 또 한번 지리멸멸 콩가루 집안이 되어 망할 것이다.–끝-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276

by 김대호 | 2009/11/18 22:07 | 정치와 통계 | 트랙백(1) | 덧글(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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