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정보1) 40년 성찰이 담긴 1만 페이지 by 김대호

40년 성찰이 담긴 1만 페이지가 넘을 국가경영 방략을 펼칠 기회를 주십시오.

 

1월27일(금) 오후에 관악구(갑) 선관위에 국회의원 예비후보로 등록했습니다. 무소속입니다.

 

조만간 입당 절차를 밟아서 민주통합당 당적을 가질 생각입니다. 언론에 보도된 대로 김두관 지사, 신정훈 전나주시장 등과 같이 입당을 하기로 얼마전 합의를 봤습니다.

http://media.paran.com/economy/view.kth?dirnews=261832&year=2012

 

하지만 저는 민주통합당 경선에 참여해야 하는 만큼, 관악갑 유권자들에게 혼란을 일으키지 않도록 하기 위해, 그 보다 빨리 입당 절차를 밟을 예정입니다.

 

민주통합당을 포함한 야권에 MB심판-정권교체를 넘어 “비전정치”와 “실력정치”의 바람을 불러일으키겠다는 당찬 구상은 많이 쪼그라들었습니다. 필요성과 포부가 쪼그라든 것이 아니라, 위력과 모양새가 다소 초라해졌다는 얘깁니다. 이제는 당내 경선과 본선 승리를 통해서 저와 “희망코리아 정치연대” 출마자들이 19대 국회에 최대한 많이 들어감으로서 “비전 정치" "실력정치"의 불씨를 살려보려 합니다.

 

저는 국민 다수의 지지를 받아 “3연속집권”을 할 수 있을 정도의 비전, 정책, 실력을 갖추는 것이 대한민국 선진화의 관건이자, 정치집단의 의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현재 수준의 비전과 실력으로는 누가 집권하더라도 2~3년 만에 식물정권이 될 것 같아 걱정입니다. 그러면 집권 세력만 불행한 것이 아니라 대한민국과 한민족이 불행하게 됩니다. 저는 민주진보 세력이 먼저 3연속집권 하는 기록을 세웠으면 합니다.

 

제가 그 많은 선거구 중에서 하필이면 관악구를 선정한 이유는 경험적으로 볼 때 저의 철학, 가치, 비전에 대한 공감대가 상대적으로 크고, 당내 경선의 승패를 가를 모바일 투표에 친숙한 사람들이 밀집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연령대로 보면 관악구민은 25~29세 인구가 13.2%입니다. 서울 평균은 9.5%, 전국 평균은 7.8%입니다. 30~34세는 11.3%(서울 평균 9.0%)입니다. 당연히 1인 가구의 비중이 46%로 서울지역 평균 35%에 비해 월등히 높고, 저소득 가구가 특별히 많습니다. 가구 소득 100만원 미만이 서울 평균은 5.9%지만 관악구는 12.4%입니다. 가구 소득 100~200만 원대는 서울시가 13.7%지만 관악구는 19.1%입니다.

 

관악구는 가정을 형성하기 직전의 사회 초년생의 밀집 지역이자, 배우고 익히는데 열심인 젊은 학습자(도전자)들의 지역이자, 영유아를 낳아 기르는 젊은 부부들이 많은 지역이자, 도심과 강남으로 출퇴근하는 사람이 많은 지역입니다.

 

제가 관악구를 비교적 잘 아는 것은 지난 지방선거 때 유종필 구청장의 95페이지짜리 공약집 작성 작업에 깊숙이 관계 했고, 그 이후 정책 특보와 구정 자문위원(사람중심 관악특별구 교육분과 위원)으로 실행에도 일정 정도 관계했기 때문입니다. 물론 이 공약집은 책상에 앉아서 만든 것이 아니라, 사회디자인연구소 연구원들과 관악구를 발로 뛰면서 만들었습니다. 여기에다가 서울시, 인천시, 경남도, 고양시 등과의 인연으로 쌓은 저의 지방경영 아이디어를 많이 녹여 넣었습니다.

 

부러진 희망의 사다리를 복원 하겠습니다

 

저의 7번째 경세서 의 1부 제목이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입니다. 지금 한국이 그렇다는 것입니다. 공평, 중향평준화, 중규직, 연대임금제, 시장사다리, 가치생태계, 고용률 70%-임금근로자비율 85%, 중소기업•비정규직이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 고용보험 강화, 은행설립 규제 완화, 연대보증제 폐지, 현역사병 처우 현실화, 청년인재의 블랙홀 개혁, 무학년 학점제-단계별 수준별 맞춤형 수업-절대평가제 등은 이 체제를 혁파하는 해법의 키워드들입니다.

 

그래서 라는 저의 핵심 슬로건이 조금은 더 잘 먹히지 않을까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관악갑 출마를 망설였습니다. 민주통합당 후보가 되기만 하면 당선 가능성이 매우 높은 지역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무소속 김성식 의원의 경쟁력을 아는 사람들은 이런 판단에 별로 동의하지 않더군요)

 

솔직히 저는 새로운 정치, 그것도 비전정치, 실력정치의 바람을 일으켜, 그 상징 인물의 하나가 되어 한나라당 거물이 나오는 지역, 민주당이 전통적으로 어려운 지역에 출마하고 싶었습니다.

 

그런데 새로운 정치의 큰 바람을 일으키지 못했습니다. 당연히 지역구에서 대면 접촉 활동을 거의 하지 않은 무명의 경세가(?)의 경선 통과 가능성은 거의 없지요.  MB심판 정치-연대・통합 정치-참여・동원 정치 바람이 너무 강했기 때문이겠지요.

물론 이 역시 필요한 가치들이지만 정말로 중요한, 본질적 가치는 여전히 빠져 있습니다. 이것을 채워 넣는 것이 “정권 교체 그 너머”를 준비해 온 저의 소임의 하나입니다. 이것을 채워넣기 위해  민주통합당에 입당 하려는 것입니다. 이것을 더 확실하게, 위력적으로 채워 넣기 위해 여태 입당을 미룬 것입니다. 민주통합당의 주류적 노선, 정서, 문화는 저와 맞지 않는 것이 적지 않습니다. 하지만 그래도 제대로된 비전과 실력이 있는 비주류가 열심히 노력하면 주류가 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정당인 것 같습니다.    

 

어쨌거나 지역구민들과의 대면 접촉이 태부족인 상황에서 관악갑 지역을 제외하고는 경선 통과 가능성이 조금이라도 있는 지역을 찾지 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제가 무소속으로 출발하는 것은 실패에 대한 응분의 책임이자, 초라해진 “비전정치”에 대한 마지막 1인 시위인 측면이 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습니다. 어차피 관악구 갑 지역에 4.11 밤에 국회의원 한명이 나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 한명이 누가 되는 것이 좋은가? 김성식? 유기홍? 한광옥?.......김대호? 저야 당연히 김대호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출마 하는 것입니다.

 

이 생각에 공감하는 분은 제가 발송하는 각종 선거정보를 전하기를 해 주십시오. 그리고 이메일과 핸드폰 번호를 페북 메시지나 이멜, 핸드폰으로 주십시오. 주소까지 주시면 더 좋습니다. 예비후보 홍보물 때문입니다.

 

관악갑 주민들과의 대면 접촉 부족은 저의 분명한 약점입니다. 보완하겠습니다. 하지만 국회의원은 어디까지나 국민대표 이고, 선거구는 국민들이 “후보자가 국가발전을 위해 國事를 잘 다룰 실력이 있는지”를 얼굴도 직접 보고, 손도 만져보고, 얘기도 시켜보고, 욕도 좀 먹여보고, 평소 행실도 알아보는 등 정밀, 밀착 검증을 위해 설정한 구획“입니다. 그래서 국회의원은 지자체장과 달리 주소지를 이전하지 않아도 서울 사는 사람이 서귀포에서도 출마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국회의원의 4/5(243명)가 지역구 의원이고, 지자체 선거의 역사가 짧기 때문에 국회의원이 중앙정부에서 예산 따오는 지역 개발 일꾼인지, 국민을 대표하여 양극화, 일자리, 교육, 복지, 세금, 통일 등 국가대사를 해결할 국민 대표인지를 많은 사람이 헷갈리는 것 같습니다. 낙후한 지방이야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부동산 개발 일꾼)적 성격이 강한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하지만 서울의 선거구들은, 특히 관악구는 국회의원이 국가적 현안을 해결할 수 있는 능력이 빼어나야 구민들의 삶의 질이 획기적으로 개선된다고 확신합니다. 서울 시정과 관악 구정을 꼼꼼히 살펴본 후 내린 결론입니다. 관악구 국회의원은 그야말로 국민대표적 성격이 강해야 합니다. 진정한 정치가, 경세가여야 합니다.

 

40년에 걸친 성찰과 반성의 기록이 있습니다.

 

저는 20대 중반에 한국 사회의 약한 고리인 (구로독산지역) 중소기업에 위장취업을 했고, 노조운동을 지원했고, 중소기업주와 노동자들의 고단함을 몸으로 느꼈습니다. 세계의 공장으로 부상한 중국의 위협도 느꼈습니다. 30대는 대우자동차에서 구매 담당자로, 연구소 엔지니어로 일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중소하청협력업체 문제, 일자리 문제(산업, 금융, R&D, 노사) 등을 풀기 위해 그 누구 못지않게 치열하게 연구, 노력해 왔습니다. 40대는 여의도에서 사회디자인연구소를 만들어 양극화, 일자리, 교육, 복지, 보건의료, 지자체 경영 문제 등을 연구했습니다. 제가 거쳐온 곳곳 마다 그 현장의 문제점과 발전 방안을 연구하고, 토론하고, 글을 쓰고, 책을 쓰고, 모순부조리를 타파하기 위해 작은 행동들을 조직 했습니다. 이 결과가 7권의 책과 그 보다 더 많은 숫자의 보고서로 응결되어 있습니다.

 

누가 시켜서 한 것이 아니라, 꼭 필요한 일인데 아무도 하는 사람이 없어서 “의병의 심정”으로 한 것입니다.

 

저는 40년 전 초등학교 3학년(1972년 3월 23일)부터 일기를 써왔습니다. 40년에 걸친 성찰과 반성의 기록입니다. 제가 혹시 용기와 강단이 좀 있다면, 그것은 전적으로 기나긴 성찰과 실사구시, 역지사지 습성에서 나오지 않나 싶습니다.

 

저는 국회의원 떨어져도,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 문제 해결의 중심고리가 무엇인지”를 연구하고 또 해결하려고 노력할 것입니다. 하지만 제가 국회의원이 되면 40년 성찰이 담긴 1만 페이지가 넘을 국가운영 방략이 “희망코리아 정치연대”와 더불어 훨씬 빨리, 제대로 구현될 것입니다.

 

1960년대 사실상 초선의원에 불과했던 젊은 김대중이 했던 수준의 빼어난 의정활동을 2010년대에 보여 줄 것입니다. 50년의 간극이 있는 만큼 훨씬 업그레이드 된 버전으로 보여 줄 것입니다.

 

 

저에게 기회를 주십시오. 일백 번 고쳐 생각해도 19대 국회는 저 같은 사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이메일, 휴대폰 번호, 주소를 주십시오. 언제든 어디서든 불러서 국민대표 “깜냥”이 되는 놈인지 검증해 주십시오.

 

010-3224-4819 itspolitics@naver.com  www.socialdesign.kr 관악갑 국회의원 예비후보 김대호 拜


최대의 후원은 <2013년 이후>에 대한 서평 by 김대호

공감과 격려에 감사드립니다. 현재로서는 저에 대한 최대의 후원은 <2013년 이후>에 대한 서평 입니다. 메시지를 이멜(포워딩), 블로거, 페북, 트위트로 확산하는 것도 있습니다. 앞으론 염치 불구하고 도움 청하려고 합니다. 손가락으로, 말로 도와 달라고. 후원계좌를 틀려면 예비 후보 등록을 해야 하는데, 지역과 당 문제가 해결되지 않아 못했습니다. 예비후보 등록하면 계좌번호까지 알려야죠.

e-mail로 출마선언하려고 했더니 많은 사람이 말렸습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식구들도 말렸습니다. 지역구도 밝히지 않고 출마선언이라니!!!……”이건 아니다”고 했지만 강행했습니다. 설 연휴 때 새로운 정치, 우리 시대의 과제, 4.11이후, 2013년 이후 등에 대한 얘기가 수많은 술 안주의 하나가 됐으면 해서.......

사실 당적이 없으니 자동으로 무소속이 되니 이건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염두에 둔 지역구는 밝힐까도 했습니다. 그런데 제 가치, 비전이 당 지도부의 노선 내지 정체성과 충돌해 버리면 아주 난처하게 됩니다. 아주 우습게 될 수도 있죠. 그래서 안했습니다. 반면에 비전과 정책과 미래가 실종되는 상황은 시간이 가면 더할 것 같아서 내 질렀습니다. 제가 이렇게 내지르면 아마도 많은 예비 후보들이 처박아 놨던 비전과 정책을 한두개 꺼낼 것입니다. 한미fta폐기, 이명박 처벌, 보편적 복지 같은 것 말고.......비전과 정책이 폼 나보이니까요.

민주당이 이념정책과 공천제도의 혁신을 하게 되면 민주당 경선에 참여 못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FTA폐기 등을 공천의 조건으로 한다면, 또 정치신인에게 너무 불공정한 게임규칙을 강요한다면 무소속으로 출마하거나 (가치, 비전을 공유하는 사람들과 함께) 창당으로 갈 수밖에 없겠지요......아마도 많은 괜찮은 정치신인들이 저의 stance와 크게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이렇게 되면 지역구가 바뀔 수 있지요. 경쟁 후보는 후지고, 제가 유리한 지역으로....... 그래서 지역구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정치 전문가, 컨설턴트의 80~90%가 제 행보를 어리석게, 답답하게, 안타깝게 생각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김대호는 이젠 끝났다고 생각하는 선수들이 대부분 일 것입니다. 그래서 작년 여름과 가을에 충고와 조언 많이 받았습니다. 요지는 작년 12월 초라도 시민통합당에 슬그머니 들어가서 민주통합당에 입당하고, 당대표 출마자에게 빨리 줄서서 선거운동하고, 지역구에 사무실 내서 예비후보 등록하고 명함 뿌리고 이름 알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경선에서 이겨서 일단 배지 달고나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저는 이런 상황이 100번 와도 지금처럼 행보할 것 같습니다. 주류적 정서(한미fta 폐기나 무효화)와 충돌하는 얘기는 입 다물고, 슬그머니 당에 들어가, 구구절절 헛소리나 늘어놓는, 유력한 당대표 선거운동을 하는 것은 제 가치와 소명과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타협하고, 숙일 것은 따로 있죠.
저는 배지의 가치를 절감하지만, 그 자체가 목표가 아닙니다. 냉철하게 생각해 봐도 분명합니다. 유효기간이 다 된 진보와 보수가 합작하여 만든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를 혁파하는 것이 목표 입니다. 제대로 된 2013년 체제를 설계하고, 구현하는데 일조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저에게 정말로 필요한 것은 수십 수백만명의 지지와 성원입니다. 이것이 있으면 배지는 쉽게 달 수 있고, 못단다 하더라도 상관없습니다. 그 자체로서 세상을 바꿔 나갈 수 있으니까요. 저는 제 가치와 비전을 쉬임없이 말해야 하는 운명을 타고 났습니다. 책으로, 글로, 소리로, 화면으로…… 안되면 할 수없죠. 정치적으로 빛을 보지 못해도 할 수없죠. 그러다 죽어도 할 수 없습니다. 역사에는 이런 사람 너무 많습니다.

제가 출마를 하려는 것도, 배지를 달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도 깨어있는 시민의 힘을 개발, 결집하고 이를 업어서 세상을 바꾸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가치, 비전을 꺾을 수 없는 것입니다. 수백 만명의 지지와 성원이 없는, 간절히 하고 싶은 것도 없으면서, 그저 공사석에서 예우 받는 재미로 다는 배지는 의외로 무력 하더군요. 아니 사회 악이더군요.

출마선언문을 신문기자 500명 가량에게 이메일로 보냈는데 딱 한군데 조선일보에서 관심을 보이더군요. 전화 인터뷰를 했는데 제 문제의식과 비전에 상당한 관심을 보였습니다. 기자의 질문 수준이 높더군요. 국회의원의 실력의 절반은 질문 수준이고, 기자 실력의 2/3는 질문 수준인데, 조중동 기자들의 질문 수준 하나는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더군요. 사주와 데스크의 마인드가 좀 거시기해서 그렇지…그나저나 어떤 말을 “야마”로 잡을 지는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제가 아는 기자가 훨씬 많은 “한경오프”는 아무런 시그널이 없습니다. 일관되게 모르쇠입니다.

조국, 장하준, 복지 담론, 희망버스, 한미fta반대담론 등을 크게 다루고, 나 같은 류를 아주 작게 다루는 것이 한경오프의 철학이고 수준이겠지요. 물론 제가 틀릴 수도 있는데, 아무래도 한경오프는 편식한다는 느낌은 지울 수 없습니다. 다양한 시각을 소개하는 차원에서, 적어도 현실 정치 판에서 상당한 반향이 있는 문제제기를 하면 좀 다뤄 주는 것이 상식인데.......우리나라 신문들은 대체로 (진보와 보수) 당파성이 너무 강하고, 거칠어서 문제 인 것 같습니다.

김대호, 4.11 총선 출마 선언 by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4.11 총선에 출마합니다.



정권 교체를 넘어, 청년에게 기회와 희망이 있는 “젊은코리아”를 건설하기 위해 19대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하고자 합니다. 저의 비전과 포부를 우리 청년들과 공유하고, 지역구민들에게 직접 호소하여 신임을 받으려고 합니다.



19대 국회는 이전 국회와는 다름니다.



4.11 총선을 통해 구성되는 19대 국회는 그 이전 국회와는 차원이 다른 소명을 부여 받고 있습니다. 19대 국회는 1987년 이후 25년간 유지된 낡아빠진 국가 시스템을 재건축 수준으로 리모델링하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대한민국이 청년에게 희망이 있는 나라, 사회적 약자가 살만한 나라가 되기 위해서는 남북관계, 헌법, 선거제도, 고용, 금융, 산업, 복지, 조세재정, 교육, 공공 등 거의 모든 제도와 관행의 대전환을 이뤄내야 합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힘센 이익집단들이 20여 년에 걸쳐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추구하면서, 아니 정치 집단의 혼미, 무능으로 인해 사회적 약자와 청년・미래세대에게 최악의 체제가 되고 말았습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절규와 너무나 소모적인 교육시험 경쟁과 세계 최악의 출산율은 대한민국의 위기를 알리는 비상벨입니다. 한 해에 7~8천명(자살자 1만5천명의 절반가량)이 사회적 타살을 당하고 있고, 태어나야할 생명 수십만 명이 태어나지 못하고 있습니다.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를 가진 이런 나라가 어찌 집권 세력의 도살장으로 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대통령들의 불행한 말년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집권 초기에는 메시아처럼 추앙받다가 집권 중후반으로 오면 만악의 근원으로 여겨져 왔습니다. 압승한 정치세력이 견제와 심판의 대상으로 바뀌는데 1~2년, 대량 살처분 대상으로 바뀌는데 3~4년 밖에 걸리지 않습니다. 그 어떤 나라보다 큰 폭의 국회의원 물갈이가 계속되어 왔지만, 4년 뒤에는 동일한 양상이 반복되고 있습니다. 국회의원 조롱하기가 국민 오락으로, 대통령 때리기가 국민 스포츠로 되고 있습니다.



국민이 이상한 것이 아니라 정치가 이상한 것입니다.



국민들의 절망, 분노, 스트레스의 원인을 찬찬히 뜯어보면, 국민이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정당과 국회의원과 대통령과 말께나 하는 식자층이 이상한 것입니다. 고용 문제가 정리해고 요건 강화하고, 청년고용 할당제 하면 풀리나요? 재벌대기업의 매출이익이 늘어나면 풀리나요? 비정규직 문제가 비정규직 사용 사유 제한하고, 망할 염려가 없는 공공기관이 정규직화 모범(?)을 보이면 완화되나요? 저임금 문제가 최저임금 대폭 인상하면 풀리나요? 폭등하는 전세금이 인상 폭 상한제를 도입하면 진정되나요? 이미 심화될 대로 심화된 양극화가 한미FTA 폐기하면 완화되나요? 지역주의, 종북주의 타파하면 한국 정치의 고질적인 문제가 해결되나요?



정치인들과 식자층은 천의 얼굴을 가진 대한민국을 균형감 있게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자신이 보고 싶은 것만 봅니다. 신자유주의, “1%”, 종북좌파 등을 세워 놓고 허수아비 때리기를 하고 있습니다. 바닥을 기어 보지 않았고, 실물을 다뤄보지 않은 사람이 많아서인지 대한민국의 바닥 현실과 깊은 속살을 잘 모릅니다. 순진한 의도를 나쁜 결과로 되갚는 복잡 미묘한 시장질서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할지 모르고 있습니다. 양극화, 고용, 교육 등 수많은 민생 문제를 깊이 있게 다각도로 천착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모순부조리의 절반이 바로 자기 자신과 자신이 속한 진영에 있다는 것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보수 정당이나 진보 정당이 정권을 오래 못 잡아서가 아닙니다. 좌클릭이나 우클릭을 제대로 못해서가 아닙니다. 대통령 한 명 잘못 뽑아서도 아닙니다. 만악의 근원으로 종종 지목되는 신자유주의, 지역주의, 종북주의, 재벌, “1%”, 관료, 독과점 언론, 노조와 직능협회 등은 유령이거나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문제의 핵심은 양극화, 일자리 불만과 불안, 절망과 삶의 스트레스 등은 강고한 뿌리와 강력한 확대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이를 책임 있게 해결할 정치집단의 마음가짐과 국가경영 실력은 수준 이하라는데 있습니다. 바로 이 때문에 “압승->견제와 심판->환멸과 대량 살처분”이라는 동일한 패턴이 4~5년 마다 되풀이되고 있는 것입니다. 정권 교체를 넘어서 양극화, 고용문제, 불만, 불안, 불신 등 민생 문제와 평화·통일 문제를 해결할 숙성된 비전, 정책, 실력이 없다면 이 지긋지긋한 다람쥐 쳇바퀴로부터 벗어날 수 없습니다.



우리 시대의 진보, 우리 시대의 상식이 있습니다.



저는 한진중공업 정규직 400명 정리해고 문제를 보면서도, 그 해고의 정당성 여부와 더불어, 조선산업과 영도조선소의 경영 상황을 살폈습니다. 회사로부터 퇴직위로금으로 최대 22개월 치 월급과 자녀 대학 등록금 지원도 받고, 고용보험으로부터 6~8개월 치를 받는 400명 보다는 고용보험의 혜택도 거의 못보고, 단 1개월 치의 퇴직위로금도 받지 못하고 “악”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일자리를 잃은 3~4천명의 협력업체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 것인가를 중심에 놓고 해법을 생각했습니다. 비정규직 등 고용 문제 해법을 고민하면서도, 1700만 노동자 전체, 2500만 경제활동인구 전체, 비경제활동인구 속에 숨어있는 300만 명의 사실상 실업자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어 하는 청년 세대의 눈물과 한숨을 놓고 고민했습니다.



또한 고용을 안고 있는 산업과 기업의 다양한 처지와 조건을 살폈습니다. 삼성, 현대차, 포스코 같은 우량 기업뿐만 아니라, 적자를 내는 수많은 기업들을 어떻게 살릴지, 망해야 할 기업을 어떻게 망하게 하고, 거기에 매여 있는 노동자를 어떻게 보호할지를 고민했습니다. 창의와 열정이 넘치지만 파산하여 연대보증 등으로 고통을 받다가 일가족 동반 자살로 내몰리는 기업주와 자영업자들에게 재기와 인생 역전의 기회를 주는 시스템을 연구 했습니다. 500~800만 명의 민간중소기업의 비정규직과 대기업 비정규직 보다 못한 민간중소기업 노동자들을 어떻게 보호할지, 500~600만 명의 영세자영업자들의 고통과 억울함을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방안을 고민했습니다. 저는 이런 시각이 우리 시대의 진정한 진보의 관점이자,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저는 한미FTA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보여준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행태에 우려를 금할 수 없습니다. 이명박FTA와 노무현FTA 그렇게 많이 다르지 않습니다. 이익균형 그렇게 많이 깨진 것이 아닙니다. 한미FTA 폐기론 꼼꼼히 뜯어봤지만 설득력이 없습니다. 노무현 정부가 비록 한계와 오류가 많았어도, 제2을사늑약을 체결할 정도로 바보는 아니었습니다. 저는 한미FTA를 일관되게 반대한 분들의 견해에 동의하지는 않지만 존중합니다. 그러나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의 사진을 걸어놓고, 납득하기 힘든 이유로 FTA찬성에서 반대로 돌아선 분들에 대해서는 유감을 금할 수 없습니다. 저는 한미FTA는 위기・피해 극소화, 기회・효과 극대화의 관점에서 후속 조치를 취하는 것이 책임있는 정당의 태도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한나라당과 민주당은 2007년 이후 4년 동안 책임있는 정당의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저는 복지 지출을 2배 이상 늘리고, 효율성과 효과성을 제고하여 개인・가족에 대한 책임성을 몇 배로 강화하면서도, 시장을 10배, 20배 키울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FTA와 복지국가는 전혀 충돌하는 것이 아닙니다. 저는 이것이 우리 시대의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돈을 쫓으면 돈이 달아나고, 고객의 마음을 쫓으면 돈이 따라옵니다. 유권자의 표도 마찬가집니다. 야권 연대도 그 자체를 쫓으면 야권 연대가 달아나지만, 자신의 지지층의 기대와 요구에 충실하면 야권 연대가 따라옵니다. 정권 교체와 선거 승리조차 잊고, 국민의 극심한 고통과 불만을 어떻게 해결할지를 치열하게 고민하여 실효성 있는 대안을 내면 정권 교체와 선거 승리는 따라옵니다. 이것이 저의 소신이자, 우리 시대의 상식이라고 믿습니다.



저에게는 지도와 나침반, 네비게이션이 있습니다. 악보가 있습니다.



올해 총선과 대선을 통해 구성될 국회와 정부는 험난한 지형에 길고 긴 희망의 레일, 통일의 레일을 까는 작업을 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지도와 나침반과 네비게이션이 있어야 합니다. 시대가 요구하는 종합적인 국가 비전이 있어야 한다는 얘깁니다. 저에게는 지도가 있습니다. 나침반도 있습니다. 네비게이션도 있습니다. 바위산의 어디를 뚫어야 할지, 어디부터 뚫어야 할지 압니다. 바위를 뚫을 집중력과 끈기가 있습니다.



개별 연주자의 기량이 뛰어나고 지휘자가 있어도, 공통된 악보 없는 악단의 연주는 그저 소음에 불과합니다. 마찬가지로 시대가 요구하는 가치, 비전, 정책을 공유하지 않는 정당, 국회의원, 대통령은 너무 비싼 “쇼맨”이자, 소모적 대립 갈등원에 불과합니다. 저에게는 지난 25년 간 노동현장, 산업현장, 정치・행정 현장에서 수천 명의 전문가, 활동가, 기업인, 관료, 정치가들과의 오랜 토론과 각고의 노력을 녹여내어 만든 악보가 있습니다.



19대 국회에서 이런 일을 하겠습니다.



차기 국회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만들어야 할 국가 시스템은 우리의 지경학적 조건과 역사, 문화에 조응해야 합니다. 더 이상 북유럽, 독일, 영국, 미국, 일본 토양에서 자라난 시스템과 철학으로는 우리 사회에 짙게 드리운 절망과 고통을 해결할 수 없습니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 아니라, 정리해고 있어도, 비정규직이어도 억울하지 않고, 큰 충격 받지 않고, 자기 계발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세상을 만들어야 합니다. 튼실한 고용보험으로 기업・산업 구조조정의 충격을 완충하고, 새로운 취업기회를 많이 만들고, 노동의 양, 질이 같다면 근로조건이 거의 같도록 하면 됩니다. 노동의 양, 질이 같다면 오히려 비정규직(단기계약직)의 보수가 정규직 보다 더 높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이것은 선진국에서는 이미 상식으로 정착되어 있습니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는 대기업과 공공기관의 고용은 확실히 보호하여 평균 연령을 40대, 50대로 만들고, 그곳의 종사하는 비정규직 몇 만 명에게 정규직이라는 행운을 제공할 뿐입니다. 비정규직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민간중소기업에 대해서는 사실상 대책이 없습니다. 이것은 진보가 아닙니다. 보수에게 진보가 지는 이유 중의 하나입니다.



중국발, 신기술(IT)발, 기후변화발 산업구조조정 압력이 거센 것이 현실이라면 기업의 부담과 노동의 부담을 동시에 줄여주어야 합니다. 이 부담을 국가가 보다 많이 떠안아 주어야 기업도 살고, 노동도 살고, 나라도 삽니다. 너무 경직된 곳은 유연하게 하고, 너무 유연하고 불안한 곳은 적절한 보호, 완충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보수 체계나 근로조건이 기업의 수익성, 노조의 교섭력, 이익집단의 로비력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의 양, 질에 비례하도록 해야 합니다. 직무, 직능급을 확대해야 합니다. 10~20%의 양반과 80~90%의 상놈으로 나눠진 한국 특유의 노동시장의 이중구조를 혁파해야 합니다. 부당한 차별을 없애고, 기업이 고용을 겁내지 않도록 제도와 문화를 바꿔서 고용률(7%p)과 임금근로자 비율(15%p)을 올려야 합니다. 중향평준화로 가야 합니다. 노동과 자본의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것과 더불어 자본과 자본, 노동과 노동의 분배 구조를 개선해야 합니다. 재벌대기업과 예산과 규제권을 쥔 관료의 동물원처럼 된 산업생태계를 정상화해야 합니다. 제2의 벤처 중흥시대를 열어야 합니다. 벤처 기업 때문에 대기업과 공공부문이 인재 확보에 전전긍긍 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돈(금융)과 인재가 보다 생산적인 곳으로 흘러가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부동산, 재벌대기업, 토건으로 돈이 흘러가는 것을 막고, ‘공’자와 ‘사’자 직업이 인재의 블랙홀이 되는 것을 막아야 합니다. 공무원이 최고 선망의 직업이 되는 나라는 망조가 짙게 드리운 나라입니다. 창의와 열정이 뛰어난 청년인재가 민간기업 영역으로, 글로벌 경쟁 영역으로, 세계로 가도록 유인체계를 만들어야 합니다. 공적 책임 의식이 뛰어난 유능한 청년이 정치에 매력을 느낄 수 있도록 제도와 문화를 만들어야 합니다. 그러면 새로운 산업 수십 개, 새로운 직업 수천 개, 새로운 일자리 수백만 개를 만들 수 있습니다.



노령연금을 붓지 않는 수백만 노인들은 국가가 더 적극적으로 보호해야 합니다. 주40시간에 월 200~300만원을 받는 이른바 “중규직” 수백만 개를 만드는 것이 중심이 되어야 하지만, 연금을 붓지 않는 노인들을 위해서는, 도시와 농촌에서 주당 10시간에 50~60만원 받는 일자리도 수백만 개를 만들어야 합니다. 병역 의무를 이행하는 청년 사병들의 보수는 월 50만 원 이상이 되도록 해야 합니다. 군대에서 1~2년의 학비를 모을 수 있어야 합니다. 직장 생활을 하다가 직업적 필요성에 의해, 혹은 진정으로 공부의 필요성을 느껴 늦깎이 대학생이 되는 것을 권장하고 지원해야 합니다. 10대 후반에 집중된 교육시험 사다리 타기 경쟁을 분산해야 합니다. 동시에 교육시험 사다리 타기의 승자에게 주어지는 너무 큰 특권, 특혜를 적정화 해야 합니다. 이것이 반값등록금 보다 선행되어야 합니다.



중고등학교는 이제는 무학년 학점제-절대평가제-단계별·수준별 맞춤형 수업체제로 가야 합니다. 학생을 중심에 놓고 학교의 벽, 자격의 벽, 평가제도의 벽을 허물어야 합니다. 학교 밖에서 이뤄지는 대안교육이 더욱 활성화되도록 해야 합니다. 교사는 학습 지도와 인성 지도에 전념하게 하고, 이를 잘하는 교사가 우대 받고, 존경 받도록 해야 합니다.



사회적 약자는 단결․연대․자조하게 하고, 강자는 불의를 저지르지 못하게 더 치밀하게 감시해야 합니다. 공급자의 혁신을 낳는 경쟁은 촉진하고, 자기 파괴적 경쟁이 일어나는 경쟁에는 규제를 가해야 합니다. 패자부활전을 활성화하기 위해서는 승자재신임전도 필요합니다. 소비자, 유권자, 납세자에게는 더 많은 정보가 제공되게 하고, 더 강한 주권을 행사할 수 있게 해야 합니다.



결선투표없는 5년 단임 대통령제는 근본적으로 재검토해야 합니다. 국회의원을 지역개발 일꾼으로 만들어 버리는 선거 제도 등을 뜯어 고쳐야 합니다. 국회의원을 비롯한 선출직과 정무직을 더 늘리고, 이들이 직업 관료를 실질적으로 이끌어 나갈 수 있도록 실력을 키우도록 제도적 장치를 만들어야 합니다. 정치인과 정당을 유능하고, 청렴하고, 강건하게 만들어야 합니다.



이는 대한민국의 지경학적 조건과 독특한 역사, 문화적 조건에 맞는 수많은 제도적 대안들의 일부로서, 에 544면에 걸쳐 그 근거와 대안을 상술했습니다. 이는 제가 19대 국회에서 정치 생명을 걸고 추진할 일입니다.



상식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있습니다.



대한민국이 집권 세력의 도살장처럼 되어 버린 것은 지도와 나침반이 나빠서만은 아닙니다. 만약 이것이 문제라면 저 같은 사람은 굳이 출마까지 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 좋은 지도, 나침반, 내비게이션을 만들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불행히도 지금 대한민국은 좋은 비전, 정책이 없어서 이리도 혹독한 고통을 겪는 것이 아닙니다. 태어나야할 생명 수십만이 태어나지 못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은 지식과 지혜의 결핍 때문만은 아닙니다.



청년을 살리고, 약자를 살리고, 나라를 살리는 올바른 길이어도 잘 조직된 이익집단의 오래된 기득권을 침해하면 거센 반발이 있습니다. 분단 건국, 산업화, 민주화 신화를 창조했지만 지금은 유효성이 다한 이념과 정서를 건드려도 사나운 저항이 있습니다. 지금 대한민국은 상식을 말할 때도, 더구나 불편한 진실을 말할 때는 상당한 용기와 강단이 필요한 나라입니다. 소소한 개혁을 위해서도 종합적인 국가 비전이 있어야 하고, 작은 개혁도 자신의 정치 생명을 거는 진정성이 요구 됩니다.



그래서 연구소에 앉아 “소”를 키워야 할 사람이 19대 국회만은 들어가려고 하는 것입니다. 닥치고 복수・심판 정치, 2년 후 (지방선거에서) 역심판 정치, 반사이익 독점 정치, 목전의 승리만 목표로 하는 정치공학 정치가 비전 정치와 실력 정치를 좇아내면 “소”키우는 사람이 존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보다 더 중요한 것은 진정한 응징도, 심판도 안 되면서 나라는 계속 몰락의 길로 간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생각의 힘을 믿습니다.



한명의 국회의원이 얼마나 무기력할 수 있는지 모르는 사람이 없습니다. 심지어 헌법과 법률이 허용한 권능만 행사하는 대통령도 별거 아니라는 것도 알 만한 사람은 압니다. 하지만 위대한 생각의 힘은 강합니다. 담대하고도 정교한 비전과 피부에 와 닿고 가슴을 뛰게 하는 정책의 힘과 올바른 소신과 원칙을 견지하는 한명의 힘을 동서고금의 역사는 숱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정치인과 정당이, 커피 자판기 옆에 서서 커피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직장인들에게 화제가 될 정도로 생활에 밀착하고,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비전과 정책이 있어야 이 저주 받은 쳇바퀴로부터 벗어날 수 있을 것입니다.



저는 국회의원 배지를 떼면 무력한 건달, 로비스트에 불과한 정치인이 되지 않을 것입니다. 국회의원 배지와 상관없이 사회디자이너로, 경세가로 남아 공공의 일을 할 것입니다. 한국 정치가 발전하면 국회의원만큼이나 큰일을 하는 전문가, 활동가, 경세가들이 원외에 수십 수백 명이 존재할 것입니다. 제가 19대 국회의원이 되면 그런 세상을 훨씬 앞당길 수 있습니다.



가치와 원칙을 훼손하는 입당과 당선을 거부합니다.



많은 출마자들이 김대중, 노무현과 함께 나라를 경영할 때 저는 구로독산지역에서 노동현장을 기었습니다. 대우자동차에서 사무직으로, 엔지니어로 기었습니다. 그 이후 여의도에서 수백 수천 명의 학자, 활동가, 기업인, 관료, 정치가, 경세가들과 나라의 길과 정치의 과제를 연구하고 토론하고 글을 썼습니다. 지난 지방선거를 전후하여 인천시, 관악구 등에서 지방자치단체 경영에 참여해 보았습니다. 저는 김대중, 노무현이 좌절한 자리에서 더 앞으로 나가려고 합니다. 김대중,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하고, 20여년에 걸쳐 저와 저의 네트워크가 다듬은 정치적, 정책적 지혜를 결합시키려고 합니다.



저는 가치와 원칙을 훼손하는 입당과 당선을 거부합니다. 수십 명의 국회의원의 신뢰를 받고, 그들과 힘을 합치고, 동시에 수백만 명의 지지와 성원을 받지 않으면, 19대 국회에서 시대가 요구하는 변화를 이뤄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저는 정치를 4년이나 8년만 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가치와 원칙을 견지한다면 4년은 긴 시간이 아닙니다.



저는 4.11 총선에서 비전과 정책에 대한 반응성이 높은 서울에서 출마하겠습니다. 저의 비전과 삶에 대한 공감이 클 것 같은 지역구를 선정하여 무소속으로 출발하여, 가능한 黨人이 되려고 노력하겠습니다. 저는 청년들의 새로운 정치에 대한 기대와 변화의 열망을 믿습니다. 깨어있는 시민과 행동하는 양심들의 판단력을 믿습니다. 오직 젊은 코리아, 희망코리아의 비전을 품고 국민만 바라보고 가겠습니다.



2012.1.19 사회디자인연구소장 김대호

미디어 워치 기사- 잘 써줘서 고맙긴 한데....... by 김대호

민통당과 한나라당, 2030 정치꾼들만 양성
청년세대의 잠재력 무시, 오직 표만 노린 파퓰리즘


2012년 01월 14일 (토) 16:42:23 변희재 pyein2@hanmail.net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이 의욕적으로 추진한 2030 청년정치 프로젝트가 좌초될 위기이다. 한나라당의 27세 이준석 비대위원은 전여옥, 강용석 등 자당 의원들과 불필요한 말싸움을 벌이다 결국 병역비리 혐의로 고발당했다. 반면 민주통합당의 경우 35세 이하 청년비례대표 경연 대회가 수준 이하의 지원자들, 소송 등의 벽에 걸리고 있다. 양 당 모두 의욕적으로 추진한 청년 정치 참여 프로젝트가 왜 이리 쉽게 좌초되고 있는지, 원인 분석을 철저히 해볼 필요가 있다. 거기서 바로 청년 정치의 새로운 길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역대 총선에서 나이가 젋다는 이유로 특혜를 주겠다고 양 당이 나선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물론 매번 총선 때마다 약 50%의 물갈이를 해온 한국 정치의 특성 상, 젊은 정치 지망생에 유리한 측면은 있었다. 이 때문에 386세대의 경우 1996년 총선 때 김민석을 필두로 2000년 총선 당시 민주당의 임종석, 송영길, 한나라당의 원희룡 등등 다수가 30대 시절 국회에 진출하는데 성공했다.

이 기준이라면 현재의 30대, 즉 70년대생들은 이미 2008년 총선 당시 최소 10여명 이상은 국회에 입성했어야 했다. 그러나 이 당시 아버지의 후광을 뒤에 업은 한나라당의 김세연 의원 한 명 정도만 뜻을 이룰 수 있었다. 1970년생인 강용석 의원과 1971년생 이두아 의원까지 합쳐도 세 명이다. 그러나 이들이 70년대생 이하 세대의 가치와 비전을 대변하고 있지는 않다. 대부분 자신의 전문성을 바탕으로 국회에 입성했다. 세대론을 전면에 내세운 386세대와는 전혀 다른 상황이다.

비단 정치 뿐만 아니라, 언론, 문화예술, 기업에서조차 70년대생 이하 세대는 산업화 세대나 386세대의 그 나이 때보다 크게 뒤떨어져있다. 이들 영역에서 20대는커녕 30대 스타도 찾아보기 어려운 실정이다. 문제는 여기서 시작되는 것이다.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 2030세대의 무능함을 전제로 나팔수와 앞잡이들만 양성

친노 386논객 진중권은 “386 이하 세대의 가능성은 없다”고 선언한 바 있다. 진중권의 지적대로 386 이하 세대가 앞세대보다 능력면에서 현저하게 떨어진다고 하다면, 더 이상 논의할 필요조차 없다. 무능한 후세대를 위해 산업화 세대와 386세대가 은퇴하지 말고 더 열심히 뛰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세대교체란 더 유능한 젊은 세대가 무능하지만 기득권을 쥐고 문을 걸어잠근 앞세대의 벽을 무너뜨리는 과정이다. 즉 무능한 후세대가 유능한 앞세대를 앞선다는 것은 권력관계 상 불가능하다.

현재까지 양 당은 30대 이하 세대의 무능함을 고려하여, 세대 간의 자유경쟁이 불가능하니, 이들에게 특혜를 주어서라도 균형을 맞추겠다는 발상을 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특혜에는 불평등 시비가 따를 수밖에 없다. 한나라당 내의 대학생조직과 청년조직에서는 대체 자신들보다 이준석 비대위원이 무슨 능력이 뛰어나서 선택되었는지 모른다. 자신만의 생각을 밝힌 저서를 출판한 바도 없고, 유의미한 기업을 성공시킨 것도 아니다. 한 가지 있다면 오직 카이스트와 하버드대를 졸업했다는 학벌이다. 그러나 바로 이 때문에 학력차별 사회에 시달리는 젊은층으로부터 한나라당은 더 큰 외면을 받게 된다.

민주통합당의 경우는 더 심각하다. 이들은 20대와 30대의 정책능력은 전혀 고려하지 않고, 오직 연예인 수준의 공개 오디션만 강요하고 있다. 민주통합당의 기획은 남녀 두 명씩 금배지로 유혹하여, 이들에게 거짓선동의 앞잡이 노릇을 시키겠다는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바로 2030세대의 가치나, 비전이나 미래는 안중에도 없이 오직 금배지에 눈이 돌아간 나팔수들 내세워 이들의 표만 얻어가겠다는 것이다.

386세대는 대학시절부터 집단적 정치행위를 해왔다. 이들은 졸업한 이후에도 대학시절의 운동권 인맥을 가동하며, 영역을 키워왔다. 이 때문에 386세대는 기본적인 정치적 기술과 화법 등은 충분히 익힐 수 있었다. 세대 리더로서의 겉모습은 나름대로 닦아온 것이다.

30대 70년대생, 고재열식 권력추종형과 허지웅 등 전문 마니아형으로 구분

반면 386 이하 세대, 특히 30대는 크게 두 가지 부류로 나뉜다. 386세대가 구축한 운동권 시스템의 끝자락에 걸쳐서, 오히려 이들의 앞잡이 노릇하며 출세를 노리는 기회주의 인간형이다. 이들은 스스로 가치를 찾지 않기 때문에 전문 학습을 할 이유가 없다. 전문적인 공부를 할 시간에 인터넷 정치에 매달릴 뿐이다. 대표적인 인물이 시사인의 고재열 기자와 같은 시사인의 나꼼수 주진우 기자이다. 이들에게 주어진 것은 거짓선동을 일삼다 팽당할 운명 뿐이다.

두 번째 부류는 90년대 중반 이후 글로벌화, 대중문화, 인터넷 흐름 속에서 정치 이외의 정보들을 취득하며 자기 자신만의 데이터 베이스를 쌓아온 인물형이다. 이른바 마니아나 오타쿠 형이다. 이들은 해당 분야의 전문적 지식은 획득했으나, 이를 현실에 구현하기 위한 정치력 혹은 정책 기획력 훈련을 받지는 못했다. 이들은 결국 전문실력에 비해 형편없는 대우를 받으며 장외의 전문가 역할에만 머물러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영화비평전문 프리랜서 허지웅이다.

이 두 가지류 부류의 인물형은 현실에서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다. 고재열의 경우 권력이 던져주는 찌꺼기나 주워먹으며 살아갈 수밖에 없는 운명인 반면, 허지웅의 경우도 절대 장내로 진입할 수 없다. 30대 이하 세대의 마니아들이 386세대와 달리 명문대학 출신이 아닌 경우가 더 많은 것도 하나의 장애가 된다. 종편에 출연한 수많은 인물들 중 오직 허지웅만 집중 타격을 받았다는 것은 그가 사회적 네크워크 권력을 갖고 있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측면을 고려한다면 고재열의 허지웅 죽이기는 같은 70년대 생이라 할지라도, 실력없는 권력추종형 인간형이 실력은 있지만 사회적 네트워크가 부족한 인간형에 대한 사보타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사회디자인연구소 김대호 소장, 대기만성형 비주류 386세대의 대표적 인물

386세대의 경우는 워낙 많은 인력풀이 정치 및 사회에 진출해있기 때문에 꼭 하나로 규정하기가 쉽지 않다. 분명한 것은 김민석, 이인영, 원희룡 등 운동권 스타들이 먼저 무대에 올라선 반면, 묵묵히 실력을 쌓아온 또 다른 비주류 386세대도 존재한다는 점이다. 이에 가장 대표적인 인물인 사회디자인연구소의 김대호 소장이다. 김대호 소장은 정치와 사회 영역에 일찌감치 진출했지만, 화려한 언변이나 스타성을 포장하는 대신, 꾸준히 사회, 기업 노동 정책만 연구해왔다. 초기에는 김민석, 원희룡 등에 비해 뒤떨어졌으나, 2012년 대한민국의 방향을 결정할 수밖에 없는 중차대한 시기엔 더 큰 역할이 기대되는 이른바 대기만성형 인물이다.

인터넷만 검색해봐도 30대와 20대 중에는 386세대와는 비교도 되지 않은 수준으로 한 분야를 전문적으로 연구해온 인물들을 찾아볼 수 있다. 세대론의 핵심은 바로 여기에 있다. 묵묵히 자기 개발을 해온 비주류 386세대와 정치력은 갖추지 못했지만 한 분야만 집중해온 30대와 20대 마니아들이 손을 잡는 것이다. 이들이 연대하여 각 분야, 특히 2030세대의 비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청년창업, 미디어, 콘텐츠, 대중문화, 인터넷 등등에서 효과적인 정책들을 기획하고 집행하는 것이다.

권력참여형 386과 달리 2030세대는 정책참여 해야

386 주류들의 정치 참여가 사실 상 권력참여인 반면, 2030세대의 정치 참여는 정책참여일 수밖에 없는 근본적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386 주류들은 그 후세대들이 마음껏 뛰어놀며 세계로 진출하는 통로가 되어야할 미디어, 인터넷, 대중문화를 완전히 정치 권력화시켰다. 2030세대의 비전을 위해서는 이러한 퇴행 권력을 타파하고 이 영역을 개혁하는 것이 최대 급선무이다. 그와 더불어 효과적인 청년창업, 등록금도 교육정책 등도 따라오는 것이다.

이런 점을 고려한다면 한나라당과 민주통합당의 2030 정치 참여 프로젝트는 처음부터 실패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권력화 된 인터넷과 미디어 기반 위에서 앞잡이 혹은 나팔수 역할이나 하는 인물들만 늘어놓는 방식이기 때문이다.

이명박 정권 4년 기간 내내, 실크로드CEO포럼, 프리보드기업협회, 다양성영화협회, 콘텐츠유통기업협회, 다문화콘텐츠협회 등등에 참여한 2030세대는 각종 다양한 정책을 쏟아냈다. 이는 단 한 가지도 정부 정책에 반영되지 않았다. 2030세대의 총선과 대선 참여는 이들이 직접 고안한 정책을 정부에 반영하는 수단이 되어야 한다.

그 점에서 2030세대의 입장에서는 체질에도 맞지 않는 정치인이 되기보다는 비주류 386세대와 손을 잡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다. 40대가 하든 60대가 하든 대한민국을 20대와 30대가 비전을 펼칠 수 있는 공간으로만 만들면 되기 때문이다.




모처럼 99% 공감 가는 기사-최재천의 88만원 세대론- by 김대호

최재천 교수 "말 잘 듣는 학생이 제일 싫다"
대한민국 대표선배가 '88만원 세대'에게 <13>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
대담=유병률 기획취재부장, 정리=최우영 이현수 기자 |입력 : 2012.01.16 05:30|조회 : 224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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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재천 교수의 어릴 적 꿈은 시인이었다. 습작노트를 끼고 살았다. 하지만 그는 지금 시인과는 정반대인 것 같은 과학자의 길을 걷고 있다. 그는 오히려 "시인의 꿈이 나를 훌륭한 과학자로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그의 과학 글쓰기에는 아름다움과 감성이 배어있다. 오히려 그것이 과학자로서 최재천을 더 돋보이게 한다. "이 세상에 쓸모 없는 꿈은 없습니다. 그래서 방황이 아름다운 겁니다." /사진=최준필 기자 choijp85@
세계적 진화생물학자 최재천 이화여대 석좌교수가 우리사회에 쏟아내는 주장은 범상치 않다. 교육부 회의에 가서는 "제발 문과와 이과로 나누지 말자. 문과·이과는 청소년들에게 다양한 기회를 박탈하는 폭력이다"라고 하고 교수회의에 가서는 "대학 1학년 들어오면 무조건 휴학시키자. 세상에 나가서 뭘 배워왔는지, 그걸로 학점을 주자"고 줄기차게 강조한다. 강의실 학생들에게는 "제발 정자세로 앉지 마라. 좀 삐딱하게 앉으면 안되나. 교수한테 좀 기분 나쁘게 하는 놈이 없는 게 너무 기분 나쁘다"고 한다.

지난 10일 서울 대현동 이대 공학관 연구실에서 만난 최 교수는 통섭(統攝)의 석학답게 자연과학과 인문학, 그리고 예능까지 넘나들며 대한민국 대표선배로서 이야기를 풀었다. 왜 문과와 이과로 나누는 게 폭력인지, 왜 무조건 휴학이 필요한지, 왜 말 잘 듣는 학생이 그토록 싫은지, 이해가 갔다. "생태학자는 생활도 자연친화적이어야 한다"며 연구실 난방도 안 켜는 바람에 2시간여 덜덜 떨면서 인터뷰했지만 88만원세대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백열등 100개보다 따뜻했다.

◇"세상은 최상위 1명만 남고 다 떨어지는 게 아니다"
다윈 진화론의 세계적 권위자인 그의 눈에는 승자가 대부분을 차지하고, 수많은 젊은이들이 승자가 되기 위해 발버둥치는 현실이 어떻게 비쳐지는지 궁금했다. "제일 잘난 놈이 살아남아 번식하고 다음 세대에 또 그 중에서도 제일 잘난 놈이 유전자를 퍼뜨린다는 '최적자생존'(Survival of the fittest)은 다윈 선생이 쓴 말이 아니에요. 후세대 사람들이 다윈의 이론을 알리는 과정에 나온 말인데, 다윈 선생이 들었으면 엄청 섭섭했을 겁니다. 다윈의 진화론은 '최적자'(the fittest)가 아니라 '적자'(fitter) 정도면 생존한다는 겁니다. 골프로 치면 언더파만 안 하면 다음 라운드로 넘어가는 거예요. 같이 살고 돕고 그러다가, 최하위로만 밀리지 않으면 살아남는 거예요."

그러면서 최 교수는 "'나가수'가 기가 막히게 진화론을 설명한다"고 말했다. "제일 아래 1명만 떨어지잖아요. 1명을 뺀 '적자'들은 다 살아남는 거예요. 한 사람만 떨어지니까, 다들 떨어진 친구가 안타까워 끌어안고 보듬는 거예요. 만약 1명만 살아남고 6명이 떨어지는 최적자생존 게임이라면 서로 모함하고 피 튀길 겁니다. 세상은 우리 가운데 거의 대부분 멸종하지 않고 공생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아쉽게 은메달을 땄다'고 쉽게 얘기하는데, 이런 얘기하면 안됩니다. 은메달, 기가 막힌 메달이잖아요. 동메달, 기가 막힌 메달 아닙니까." 최 교수가 설명하는 다윈의 진화론대로라면 우리 사회생태계의 현실은 자연생태계보다 훨씬 덜 진화하고, 야만적이다.

◇"방향성을 가진 진화는 없다"
생태계의 진실이 그렇다면 세상의 최적자가 되기 위해 미래를 완벽하게 계획해놓고, 그 설계도면대로 하루하루를 밀어붙이는 삶은 어떻게 봐야 하나? "방향성을 가진 진화라는 것은 생태계에서 있을 수 없어요. 진화는 그냥 벌어지는 겁니다. 현재에 충실해서 막~ 하다가 그게 돌이켜보니 성공했네, 삶이란 이런 것이죠. 그래서 지금 현재 최선을 다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이렇게 하면 다음에 어떻게 된다'고 확신을 가지고 기대하는 것은 있을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지구온난화가 뚜렷한 현상으로 보인다고 제가 유전자조작까지 해서 제 자식들을 더위에 잘 견디는 놈들로 하겠다? 하루아침에 빙하기가 오면 어떡할 겁니까? 쫄딱 망하는 거예요." 이미 승자의 길을 걷는 선배들의 커리큘럼 그대로, 스펙 그대로 따라 한다고 해서, 승자의 대열에 합류할 수 있다는 생각은 오산이라는 경고로 들렸다.

최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약간 위험한 메시지가 전달될지도 모르겠지만, 삶은 어쩔 수 없이 그렇다"며 말을 이었다. "4년 전 (서울대 교수에서) 이대로 옮기고 나서 2명의 학생 어머니가 이 방을 다녀갔어요. 딸들이 4년 동안 수강할 과목 로드맵을 만들어서 '이렇게 짜면 되겠냐'며 말이죠. 막 화가 나고 욕을 하고 싶더라고요. 방문 열고 등 떠밀어서 내보냈습니다. 돈이라는 것도 그렇습니다. 돈을 좇아가면 굶어 죽을 확률이 있지만, 돈이 나를 좇아오게 하면 절대 굶어 죽지 않습니다. 미래학자들이 지금 20, 30대는 평생 직업을 대여섯 번 바꾼다고 예측합니다. 이것도 지극히 보수적으로 잡은 거죠. 게임의 룰이 바뀌는 거예요. 지금 내 의지가 10초 후에, 10년 후에 나타날 환경에 적합하다는 보장은 없는 겁니다." 그의 말처럼 모두가 다 가는 길, 세상이 가라는 길로 가는 것이 오히려 더 위험한 길인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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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반에 좀 뒤쳐져도, 그거 아무것도 아니다"
그래서인지, '석학'이라는 호칭에 어울리지 않게 그의 청춘은 무정형 방황의 연속이었다. 초·중학교 시절에는 시인이 되고 싶어 습작노트를 끼고 살았고, 고3 때는 미술반 활동을 하면서 조각가를 꿈꾸었다. 아버지 뜻에 따라 서울대 의예과를 지원했지만 2차례나 낙방하면서 당구장, 음악다방을 전전하기도 했다. 할 수 없이 서울대 동물학과에 입학했지만 원하던 학과도 아니었기 때문에 공부는 뒷전이었다. 대학시절 아나운서가 되고 싶어 당시 유명 아나운서였던 봉두완씨를 무작정 찾아가기도 했고 외교관이 되고 싶어 주한 외국인대사들을 종일 따라다니기도 했다. 문예부장, 사진동아리 회장 등 정신 없이 살다가 4학년 어느 날 과학철학서 <우연과 필연>이라는 1권의 책을 읽고 나서야 긴 방황을 끝내고, 생물학에 인생을 바치기로 했다.

"내 길을 찾는 데까지 시간이 너무 오래 걸려서 처음 뛰기 시작할 때는 엄청나게 뒤쳐져 있었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뛰다 보니까 비슷해지더라고요. 초반에 좀 뒤진 것, 그거 아무것도 아니에요. 그러니 젊은 친구들도 한번 사는 인생인데 악착같이 하고 싶은 일 찾아보라는 거죠. 그러다 보면 언제가 딱 찾게 되는 것이고, 한번 찾게 되면 그 길이 일직선 고속도로처럼 크게 보이는 거에요. 그때부턴 좌우가 안보이고 막 달리는 겁니다. 그래서 제발 방황 좀 해라, 방황은 여러분의 특권이다, 쭈그리고 앉아서 무기력하게 있지 마라, 가서 뒤져보고 찔러보고 열어봐라, '저런 거 재미있을 텐데'라고 생각만 하고 있지 말고 하루 종일 쫓아다녀 보라고 말하고 싶은 거죠. 그러다 보면 어느 날 상상하지도 못했던 길이 보이게 됩니다."

◇"88만원세대는 기성세대보다 진화한 세대"
최 교수는 그러면서 "88만원세대가 스펙에 집착하는 것은 이들의 본연의 모습이 아니라 오히려 기성세대가 강요하고 만들어낸 것"이라고 말했다. "지금 젊은이들은 이미 최적자(the fittest)가 아니라 적자(fitter)의 개념으로 살고 있어요. 기성세대는 젊은 세대가 '헝그리정신'도 부족하고, 뭐도 부족하다며 못마땅해하지만, 젊은 세대는 무슨 일이 터지면 (스마트폰 두드리는 시늉을 하며) '나 간다. 조금만 기다려'하면서 도와주러 가잖아요. 내가 도우면, 도움을 받는 그들도 언젠가 날 돕는다는 확신이 있는 세대입니다. 공유하고 공감을 할 줄 아는 세대라는 것이죠. 기성세대는 '내가 기획하지 않으면 죽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강냉이죽 세대입니다. 강냉이죽 세대의 눈에 젊은 세대는 생각도 없고, 자기 삶에 대한 기획도 없는 세대 같지만, 이미 이들은 '세상은 'Survival of the fittest'가 아니다'는 것을 알고 살아 가고 있는 거에요."

그래서 최 교수는 "기성세대의 역할은 청년들이 이리 저리 잘 옮겨 다닐 수 있는 멍석만 깔아주면 된다"고 강조했다. "피터 드러커가 말했듯이 21세기 대부분의 직업은 비정규직입니다. 지금 젊은 세대는 삼성에 들어가 목매겠다는 생각도 없고, 2~3년 하다가 더 재미있는 것이 생기면 때려치우고 가서 덤벼들 준비가 돼있어요. 기성세대는 이들이 옮겨 다닐 수 있는 판만 만들어주면 됩니다. 어른들은 좋은 대기업 정규직 취직을 강요하며 묶어놓을 게 아니라 자유롭게 옮겨 다니는 생태계만 깔아주면 됩니다."

◇"박쥐처럼 살지 마라. 나무늘보처럼 살아라"
30여 년 영장류와 곤충, 새를 연구해온 최 교수에게 88만원세대가 벤치마킹할 동물을 하나 소개해달라고 했다. 1999년 첫 과학대중서 <개미제국의 발견>을 출간했던 그는 "개미는 자기를 죽이면서 조직에 충성하는데, 그건 절대 배우면 안 될 것 같고"라며 잠시 주저하더니 박쥐와 나무늘보 얘기를 꺼냈다.

"우리나라는 전세계에서 제일 박쥐처럼 사는 나라에요. 박쥐는 신진대사가 굉장히 빠르거든요. 생물학자들이 관찰을 하려고 3~4시간만 만져도 죽어버리죠. 능숙한 사람이 얼른 링 달고, 피 뽑고 날려보내야 돼요. 그 반대쪽에 있는 동물이 바로 나무늘보죠. 무지하게 느리잖아요. 어제도 거기, 오늘도 거기 있잖아요. 우리는 (살아가는) 속도를 지금보다 반으로 줄여야 해요. 그래도 절대 안 죽어요. 옆 사람이 너무 빨리 달리니까 나도 할 수 없이 달리는 것 뿐이에요. 이게 바로 머리 좋은 동물이 헛똑똑한 짓을 하는 대표적 사례죠. 젊은 세대는 절대 그렇게 살지 않았으면 합니다."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모른 채 살아가는 기성세대 눈에는 88만원세대가 걱정되는 세대이지만, 젊은이들과 늘 부대끼고 살아가는 최 교수의 눈에는 88만원세대가 공감하며 공생할 줄 아는 세대였다. '내가 필요로 할 때 누군가 나를 도와줄 것'임을 본능적으로 알고 있는 더 진화된 세대. 이들에 대한 그의 메시지는 좀 더 삐딱해질 것, 더 많은 방황을 즐길 것, 강요된 줄에 서지 말 것, 그래서 기성세대의 논리로 퇴화하지 말라는 것이었다.

먼저 이념의 ‘앙시앙 레짐’을 타도하는 쪽이 이긴다. by 김대호

먼저 이념의 ‘앙시앙 레짐’을 타도하는 쪽이 이긴다.


나이가 들면 몸이 노화(老化) 된다는 것만큼이나 확실한 것은 생각이 경화(硬化)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사람들은 몸의 노화에 대해서는 엄청나게 우려하면서도, 생각의 경화에 대해서는 별로 우려하지 않는다. 생각은 보이지도 만져지지도 않기 때문일 것이다. 생각은 도시와 닮은 점이 많다. 도시에 큰 도로가 뚫리고 사람이 모여들면 굵은 나무 가지에서 잔가지와 잎이 생겨나듯이, 작은 골목들과 건물들이 생겨난다. 인구 집중이 심화되어 도로와 골목이 미어터질 즈음에, 과감한 도심 재개발이나 대화재를 계기로 구도심을 정비하지 않으면 사람이 살기 힘든 슬럼이 된다. 사람의 생각도 비슷하다. 청소년기나 청년기에 구도심의 큰 도로에 해당하는 생각의 기본 틀이 형성되고, 이후 들어오는 지식과 정보는 대체로 작은 골목과 건물이 된다. 생각의 기본 틀은 세계관과 가치관을 말하는데, 여기에는 선과 악, 아군과 적군,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 등이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것이 새로이 들어온 지식, 정보와 격렬하게 충돌할 경우, 명민한 자나 젊은이는 생각의 기본 틀을 과감히 바꾼다. 하지만 둔감한 자와 늙은이는 그렇지 않다. 생각의 경화는 바로 이런 현상을 말한다.


한국사회는 식민, 전쟁, 기아, 정치적 폭압 등 잔혹한 억압, 박탈, 결핍의 경험과 개인적, 집단적 성공 신화(산업화, 민주화, 자유화 등)로 인해, 또 분단으로 인해 1950년대와 1980년대에 형성된 생각의 기본 틀이 의외로 강고하다. 그래서 선진국에서는 볼 수 없는 특이한 대립, 갈등이 많다. 한국 보수를 떠받치는 열성 지지자와 주력 세대들의 뇌리에 박힌 생각의 기본 틀은 좌익과 우익, 북한과 남한, 안정=독재와 혼란=민주, 개방 경제와 폐쇄 경제의 대결 구도가 주요하게 자리잡고 있다. 이렇게 생각이 경화된 노인들은 현재의 야권과 여권, 진보와 보수의 대립 구도를 과거의 연장선 상에서 바라본다. 야권 및 진보와 과거 좌익과 유사점을 적지않게 찾아낸다. 적화 통일이나 연북 통일에 대한 공포도 잦아들지 않았다. 시도 때도 없는 친북, 종북, 좌파 시비의 근원은 이것이다. 이 중에서 생각의 경화가 좀 심한 분들이 바로 태극기, 성조기를 휘두르고, 애국가를 부르며, 진보 단체의 집회를 폭력적으로 훼방 놓는 사나운 노인들이다. 물론 이들의 엽기적인 행위는 1950년대를 전혀 알지 못하고, 지금의 대한민국이 북한보다 천만 배는 나은 나라라고 생각하는 중년, 청년 좌파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그런데 오래 전에 유효성이 다한 생각의 기본 틀을 재개발, 재건축하지 않으므로 서 일어나는 패악은 일부 노인들만의 얘기가 아니다. 이들과 동렬에 놓을 정도는 아니지만, 1970년대 중반에서 1990년대 중반까지의 꽤 성공적인 학생운동, 노조운동, 농민운동, 교수•교사•언론 운동 등을 통해 생각의 기본 틀이 형성된 중년 세대들의 문제도 여간 심각하지 않다. 1987년 6월항쟁과 노동자대투쟁의 신화를 창조하였고, 지금도 민주•진보를 든든하게 떠받치는 중년들의 뇌리에 박힌 주된 대결 구도는 친일, 친미 부역세력과 그 후예들인 독재, 매판재벌 세력과 민주, 민중, 자주 세력의 대결이다. 자본과 노동의 대결도 바로 그 뒤에 있다. 이렇게 생각이 굳어진 사람에게는 노조가 주창하는 가치, 즉 정리해고 반대, 노동 유연화 반대, 고용안정, (여건이 허락하는 한) 신의 직장 만들기는 정의고 선이다. 노동자, 농민, 빈민, 여성, 장애인 등 모든 억눌린 자들의 권리•이익추구도 선이다. 탈권위, 분권, 자율, 참여 등 민주적 가치들도 다 선이다. 시장, 개방, 경쟁, 유연화, 친미 등에 전향적인 태도는 보수의 것이고, 그 반대는 진보의 것이다. 이런 생각들은 청년들과 상식인들을 아연실색하게 한다. 그래서 지금은 많이 약화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조금도 약화되지 않은 생각의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도 있다. 그것은 선과 악, 아군과 적군, 대한민국의 성장과 통합을 가로막는 원흉이 자명하다고 보고, ‘문제는 힘’이라는 사고방식이다. 이는 '99%' 혹은 ‘선’ 들간의 연대, 연합, 통합과 대중 참여를 최상위 가치로 놓게 한다. 실제 이명박 정부 출범 이래 야권을 관통하고 있는 핵심 가치는 바로 이것이다. 총선, 대선 승리를 위한 전략전술(주로 투쟁노선)은 치열하게 고민하지만, 5천만이 사는 거대한 국가를 어떻게 운영해야 할지, 단적으로 고용률을 어떻게 올리고, 산업경쟁력을 어떻게 제고할지 등은 뒷전이다. 실제 내놓는 대안(비전)도 너무나 부실하다. 하지만 심각하게 고민하지 않는다. 야권은 은연 중에 저들이 하는 나쁜 짓만 안하고, 권능은 아래로 내리고(탈권위, 분권, 자율), 도덕적 신뢰 위에서 각계각층과 널리 소통하고, 공무원의 양심과 능력을 믿고, 복지와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개선하면 진보의 태평성대가 열린다고 생각하는 것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대한민국의 고용, 산업, 교육, 공공, 부동산, 남북관계 문제 등이 그렇게 만만할까?


양극화, 일자리부족, 과도한 경쟁과 불안 등을 15년 전부터는 신자유주의에 돌리는 것이 유행이었고, 작년 월가 점령 시위 이후에는 "1%"에 돌리는 것이 대유행이다. 하지만 그 실체가 모호하긴 마찬가지다. 1%와 99%를 대립시키는 논법은 모순부조리를 너무나 피상적으로 바라본다. 단적으로 고단할 수 밖에 없는 산업구조와 크고도 불합리한 근로조건 격차(노동시장의 이중구조)라는 구조적 모순을 보지 못한다. 조선 말기로 치면 물질적 문화적 생산력을 총체적으로 억누르는 전근대적 신분 제도와 후진적 사상, 문화, 리더십 전반이 문제의 핵심인데, 단지 세도정치를 일삼는 왕실 외척만 문제 삼는 격이라고나 할까? 그래도 왕실 외척은 실체가 분명하고, 이들을 타도하면 대원군 같은 새로운 정치 리더십이라도 들어설 수 있는데, "1%"는 그 실체도 불분명하고, 기껏해야 변칙편법 상속과 불공정거래 엄단하고, 세금 좀 더 걷는 수준의 대안을 내장하고 있을 뿐이다. 물론 이 역시 필요하지만, 역대 대통령들을 하나같이 불행하게 만든 대한민국의 강고한 모순부조리가 "1%"를 때려잡는 정도의 개혁으로 해결이 될까?

따지고 보면 사회주의의 몰락, 북한의 참상(체제 경쟁의 완전한 승리), 노조운동의 짙은 그늘, 나름대로 민주적 가치를 견지하려던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정부와 일 하나는 잘 하리라 믿었던 CEO 출신 이명박 정부의 좌절과 실패는 구도심 재개발을 요구하는 이념적, 정치문화적 대화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흉물이 된 구도심을 새로운 도시로 변모시키려는 움직임은 약하다. 이들의 한계, 오류에 대한 깊은 성찰은 빈곤하다.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는 여전히 오리무중이다. 2012년 한국 진보진영(야권)의 핵심 화두는 반MB, 반FTA, 통합, 참여, 연대, 승리일 뿐이다. 지난 25년에 대한 깊은 성찰과 반성, 새로운 국가비전과 국가경영 실력은 전혀 화두가 되지 못하고 있다. 이것이 대한민국 진보와 보수의 핵심 문제다. 먼저 이념의 '앙시앙레짐'을 재건축하는 쪽이 이겨야 하고, 이길 수밖에 없다. 안철수 현상을 낳은 심상찮은 민심이 그 뚜렷한 징표이다.

※ 앙시앙 레짐(ancien regime)은 원래 프랑스혁명 이전의 구체제를 일컫는 말인데, 19세기 이후로는 혁명을 부를 정도로 모순이 심화된 낡은 체제를 가리키는 보통명사처럼 되었다.당시 프랑스에서는 2%에 불과한 제1, 2계급인 성직자와 귀족이 전체 토지의 40%를 소유하고 있었다. 나머지 98%가 60%를 소유하고 있었다. 성직자와 귀족은 누리는 권리에 비해 의무는 너무 적었다.


<2013년 이후> 출판사 보도자료 by 김대호

2013년 이후 - 희망코리아 가는 길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하는지에 대한 응답

이 책은 토크빌 이래 정치의 핵심 화두인 “우리 사회가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치열한 응답이다. 동시에 “원인과 결과, 주된 원인과 부차적 원인 등이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가운데서 문제 해결의 중심고리와 급소”에 대한 통찰이다. 그 핵심 방법론은 크게 보고 세밀하게 살피는 ‘大觀小察’과 ‘실사구시’이다. 그래서 인용하는 통계가 정말 많다. 현실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도 여럿 있다. ‘공평’, ‘사회적 유인체계’, ‘가치생태계’, ‘이중 왜곡사회’, ‘화전민’, ‘앙시앵 레짐’, ‘1950년대의 화석과 1980년대의 화석’, ‘공진현상’ 등이 그것이다. 또한 사고의 시공간이 특별히 큰 역사가의 눈으로 1987년 이후 25년을 성찰하면서, 우리가 당연시해 온 많은 것들, 즉 철학, 가치, 제도, 이념 등을 ‘앙시앵 레짐’이라고 단언한다. 그래서 엄청난 격론을 촉발할 소지가 있다.

원래 당대를 제대로 평가하려면 일정한 역사적 거리와 (그 시대의 어떤 요구에 화답하는) 독특한 관점이 필요하다. 그런데 저자는 여러 경계를 넘나들면서 양쪽을 객관적으로 살필 기회가 많아서인지, 바닥현실과 속살을 많이 살펴 시대의 요구를 예리하게 포착해서인지 몰라도, 시간을 껑충 뛰어 역사적 거리 두기에 성공한 것처럼 보인다. 독특한 관점도 있다. 책의 행간마다 담론 생산자로서는 특이한 경력인 이공계 운동권 출신으로 노동현장, 산업현장, 정치현장(정치 콘텐츠 생산업)을 거친 사람의 경험, 성찰, 사고방식이 진하게 묻어난다.

2013년 이후 대한민국과 코리아의 제도적․이념적 기본 설계도

이 책은 ‘나라의 길’과 ‘진보의 혁신’을 화두로 잡고 10여 년에 걸쳐 6권의 저서를 낸 저자의 7번째 저작으로, 개인적으로는 지적 모색의 총화 내지 최고봉인지 모른다. 무엇보다도 이 책은 저자가 연구실에 혼자 앉아 책과 자료를 뒤져서 쓴 것이 아니라, 코리아포럼, 사회디자인연구소, 공평사회포럼 등에서 이루어진, 강단(이론)과 현장(실물) 전문가들의 수백 차례에 걸친 집단적 토론의 총결산이기에 더욱 무게감이 있다.

저자는 지금 한국의 정치․사회발전을 위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대관소찰과 산업현장 등의 경험, 지혜를 종합한 질 높은 정치 콘텐츠”와 “이를 법안과 운동으로 구현하는 진정한 정치가와 경세가”라고 강조한다. 이런 생각을 바탕으로 “유효기간이 다한 진보의 철학, 가치, 비전을 해체․재구성하여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지지와 신뢰를 받는 정치․사회세력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이 책을 썼다고 한다. 그런데 나이 들면 좀체 안 바뀌는, 그것도 분단건국, 산업화, 민주화의 신화를 창조한 경험에 뿌리박은 사고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다 보니, 한 줄 한 줄이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하였다고 한다.
이 책은 크게 3부 총16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제1부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는 현재의 정치․경제․사회시스템(1953년 체제와 1987년 체제)이 초기의 건강성을 잃고, 이제는 청년과 사회적 약자들에게 최악의 체제, 즉 앙시앵 레짐이 되었다는 것이 핵심 내용이다. 제2부 “거대한 착각”은 진보진영에게 널리 퍼진 관념(신자유주의 프레임)과 경향성에 대한 비판이다. 제3부 “희망 코리아의 비전”은 일자리, 복지, 교육, 조세재정, 정치개혁 문제에 대한 진단과 대안이다. 2013년 이후 대한민국과 코리아의 제도적․이념적 기본 설계도라고 할 수 있다.

보석 같은 통찰과 논쟁을 발화시킬 폭탄이 지천으로 널린 책

서문과 에필로그를 포함하여 총 44개의 절에는 만만찮은 논란을 불러일으킬, 보석 같기도 하고, 폭탄 같기도 한 통찰과 제안이 즐비하다. 깊이 음미할 탁견과 논쟁해 보고 싶은 대목에 대해 붉은 줄을 긋는다면, 페이지가 온통 붉게 변할지도 모른다.
저자는 지금의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

“지금 시대는 1987~88년의 국가 주요 질서에 대한 거친 수술과 1997년 이후 몇 년간의 시장경제에 대한 거친 수술의 후유증이 악조합되어 합병증이 극도로 심화된 상태이다. 이 합병증은 단지 진보와 보수 정치세력의 수술(개혁), 수습 미숙 탓만은 아니다. 급격한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세계의 공장화, 분단체제의 재편 실패 등이 가세하면서 병세가 더욱 악화되었다. 이 모든 것의 중심에는 국내외 환경변화에 조응하여 시스템을 제대로 바꾸지 못하는 남과 북, 진보와 보수의 정치적․정책적 무능이 자리하고 있다. 노무현 정부와 이명박 정부는 그 전 10~20년 동안 행해진 거친 대수술의 깊고 다양한 후유증을 제대로 인지하지도, 치유하지도 못하였다. 양극화와 불공정의 원천인 강고한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 구조를 거의 바로잡지 못하였다. 이명박 정부는 한술 더 떠 남북관계, 민주주의, 중소기업 활성화 등에서 완전히 역주행하면서 모든 것을 더 악화시켜 버렸다.”(2부 5장 2절)

1987년 체제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1953년 체제(분단체제)와 더불어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규율하는 1987년 체제를 저자는 다음과 같이 규정한다.

“1987년 체제는 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대통령제를 핵심으로 한 헌법개정, 소선거구제 상대다수득표제를 채택한 1988년의 선거법, 영호남 지역주의에 뿌리박은 정치적 대립구도, 억눌린 내 권리 찾기와 빼앗긴 내 몫 찾기가 곧 사회정의라는 믿음을 기저에 깔고 있는 노동자 민중의 투쟁, 그리고 외환위기와 김대중 정부의 4대(기업, 금융, 공공, 노동)개혁 및 복지개혁이 얽히고설켜서 만들어진 질서이다.”

저자는 1987년 체제를 정치적 교착・무능 체제이자, 정치집단의 비전과 실력 부재로 인해 결과적으로 보수․진보 기득권의 담합 체제로 규정하고 있다.

“1987년 체제는 양김씨 및 재야민주화 세력과 군부권위주의 집권세력 간의 정치적 대타협에 의해 탄생했다. 그 핵심은 대통령이나 다수당이 전횡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대통령의 권능을 약화시키고 국회의 권능을 강화하였다. (중략) 1987년 체제는 정치세력들이 대승적 견지에서 타협․절충하지 않으면 아무 것도 하지 못하게 만드는 정치적 교착 체제이자, 정치적 무능을 구조화한 체제라고 할 수도 있다.”

“1987년 체제는......군부 독재세력과 3김씨, 민주․노동세력 등의 불가피한 타협으로 인해 공공(정치)이 취약할 수밖에 없는 체제이다. 그런데 그 중심세력들이 국가비전(경제사회 모델)도 취약했고, 국가를 책임질 주인(중심) 형성 문제에도 깊이 천착하지 않다 보니 시간이 가면서 그 그늘이 짙게 드리울 수밖에 없었다.(중략) 노태우의 말대로 민주화가 개인과 집단의 욕구분출을 의미한다면, 아무래도 힘센 개인과 집단이 더 많은 욕구를 분출하고 더 많이 실현하게 되어 있다. 자신의 욕구를 좇아 각개 약진하는 존재들, 즉 재벌, 관료․공무원, 토건회사, 전문직능, 노조 등은 강한 국가나 정치에 의해 제어되든지, 경쟁자나 소비자에 의해 제어되든지, 하다못해 사회적 책임의식에 의해 제어되지 않으면 가치생산생태계를 피폐하게 만들기 십상이다.

안철수가 우려한 한국 IT생태계의 ‘삼성․LG동물원’화가 바로 그런 현상이다. 사실 법원, 검찰을 포함한 관료사회의 전관예우 현상도, 전현직 관료(부처) 커뮤니티가 민간업자들과 결탁하여 일종의 ‘마피아’처럼 되는 것도, 대․공기업 조직노동의 일자리가 대물림하고 싶을 정도로 엄청 좋은 일자리가 되어 버린 것도, 국가의 규제(면허증 발급 수, 독점적 권능)에 커다란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일부 전문직능이 청년인재의 블랙홀처럼 되어 버린 것도, 국토계획이나 도시계획이 엉망진창이 되어 버린 것도, 가계자산의 80%가 부동산인 상황에서 부동산 개발이익의 환수 메커니즘이 지극히 허술한 것도 하나같이 취약한 정치와 공공의 산물이다. 그러므로 애초부터 가치․자원분배의 균형을 깊이 의식하지 않은 1987년 체제의 모순은 이익집단들의 권리․몫 찾기 투쟁이 이미 사회적 강자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지속적으로 전개되면서 점점 극심해진다.(중략) (1987년 체제의 짙은 그늘에도 불구하고) 극복 문제가 깊이 고민되지 않는 것은 우리 시대 정치와 지식사회의 혼미를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1부 4장)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

저자는 현재 대한민국을 보수와 진보의 담합에 의해 청년과 비기득권자에게 최악의 체제가 되었다고 진단한다.

“선진국과 비교할 때 한국은 “GDP에서 차지하는 복지지출이 너무 적고, 평균 근로시간이 길다”는 사실만큼이나 명백한 모순부조리가 수두룩하지만, 진보와 보수의 기득권자들은 이를 철저히 외면한다. 단적으로 각국의 생산력(1인당 평균 GDP)을 기준으로 각 부문, 직능이 누리는 근로조건과 그 상대적 격차를 살펴보면 한국은 합리성이 너무 없다. 근로조건과 격차가 노동의 양, 질이 아니라 노동의 힘(파괴력)과 수익에 비례한다. 경제활동인구(2,500만 명)의 10~20%가 붙어 있는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 등이 사는 ‘귀족’(城안) 노동시장과 나머지가 사는 ‘평민’(城밖=외부) 노동시장으로 양분되어 있다. 은행, 공공부문, ‘士’자 직업, 대기업 조직노동 등 힘 있는 쪽은 너무 과보호되고, 경쟁도 적고, 기여(노동의 양, 질)에 비해 처우수준도 높고, 고용도 경직되어 있지만, 힘없는 쪽은 그 반대다. 성밖에서 성안으로 들어가는 사다리가 교육시험 사다리 외에는 거의 끊어져 있다. 청년세대는 성안으로 들어갈 기회가 너무 적고, 중장년세대는 성밖으로 한번 밀려나면 재진입이 불가능하다. 그래서 해고는 살인처럼 여겨진다. 해고비용이 워낙 크기에 기업은 기존 고용의 유지에 진력하면서 신규채용은 가뭄에 콩 나듯이 한다.

그래서 외부노동시장보다 처우수준이 매우 높은 곳은 평균연령이 40대 중반을 넘어 50세로 접근한다. 잘나가가는 곳의 추가고용 수요를 기득권 노동의 연장근로, 휴일근로로 처리한다. 당연히 많은 사람이 노동시장에 들어오지 못하였다. 임금근로자가 되고 싶은데, 못 되는 사람이 너무 많다. 이는 낮은 고용율과 임금근로자 비율로 나타난다. 요컨대 성밖도 비정상, 성안도 비정상이지만 진보도 보수도 이런 개념이 없다. 공히 구부러진 동전의 볼록한 면(불합리한 기득권과 게임규칙)은 그대로 두고, 오목한 면만 펴려고 한다. 낮은 고용률 및 임금근로자 비율, 과도할 뿐 아니라 불합리한 격차, 낮은 복지지출 등으로 집약되는 오목한 면에 대해서는 진보는 노동계급의 힘과 복지지출의 문제로 보고, 보수는 투자, 수출, 성장의 문제로 본다. 그러면서 상대에게 모든 책임을 돌린다. 이렇게 하여 진보와 보수가 합작하여 만든 청년과 비기득권자에게 최악의 체제가 탄생한 것이다.”(1부 2장)

“지금 한국은 보수 정치집단, 매체, 논객과 그 수혜집단(재벌, 부동산 부자 등)이 1계급이라면, 이들의 대항마로 행세하는 진보 정치집단과 그 수혜집단이 2계급이나 다름이 없다. 운 나쁘게 3계급이 된 청년세대와 비기득권층은 이들 보수․진보 주류 기득권의 담합으로 인해 극심한 기회 부족과 불공정, 불공평에 신음하고 있다.”(1부 1장)

진보 진영에게 매우 불편한 얘기

저자는 연대, 연합, 통합을 통한 정권 탈환에 여념이 없는 진보진영에게 불편한 얘기를 쏟아 놓는다.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보수나 진보가 정권을 오래 못 잡아서가 아니다. 좌클릭이나 우클릭 혹은 친자본(시장)이나 친노동을 확실하게 하지 못해서도, 대통령 한 명을 잘못 뽑아서도 아니다.(중략) 문제의 핵심은 양극화, 민생불안, 절망과 불신 등은 엄청나게 강력한 확대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집단의 지적 수준과 마음가짐(영적 수준), 국가경영 실력은 형편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국가시스템과 정치리더십, 이념으로는 중국과 북한(급변사태), 자연환경의 도전을 이겨내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평화, 복지를 이룰 것 같지가 않다.”(서문)

한미FTA에 대해서는 민주당과 한나라당에 공히 비판적이다.

“민주당과 한나라당이 한미FTA 처리과정에서 보여준 모습은 구태정치의 전형이다. 민주당은 실사구시적 태도와 중소기업 및 국리민복의 관점을 견지하면서 ‘위기 최소화, 기회 최대화’를 선도하는 신뢰할 수 있는 ‘집권세력’의 풍모를 보여주지 못했다. 한나라당 역시 ‘위기 극소화, 기회 극대화’의 관점에서 영향을 치밀하게 분석하지도 못했고, 예상되는 피해대책도 차분히 마련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다수당이자 집권세력으로서 인내도 충분히 보여주지 못하고 강행 처리해 버렸다.”(2부 9장 3절)

안철수 현상은 왜 일어났는가?

저자는 안철수 현상을 2011년 7월 초 일어난, 39층 테크노마트를 흔들리게 만든 공진현상과 흡사하다고 하면서, 안철수가 발산한 공진주파수를 ‘시장 사다리’의 복원 내지 ‘산업생태계의 건강성 회복’에 대한 열망으로 해석한다.

“사전에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안철수 현상은 종종 엄청난 괴력을 발휘하는 공진(共振)현상과 닮았다. 공진현상은 물체의 고유진동수(固有振動, proper vibration)와 외부에서 가해지는 진동수가 일치할 때 일어난다.(중략) 2011년 7월 초 서울의 39층짜리 테크노마트 건물 전체를 10분 동안 흔들어 댄 것도 지진이나 강풍이 아니라 12층 피트니스 센터의 20여 명의 집단 뜀뛰기 운동(‘태보’운동)이었다. 이처럼 안철수 현상은 국민들이 절실히 열망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가치―고유진동수―와 안철수가 발산한 은은한 매력이 완벽히 일치하면서 일어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 매력은 성공한 벤처 창업자, 유능한 경영자, 사회적 책임을 깊이 의식하는 기업인, 반듯한 생각과 행동, 청년층의 고통에 대한 깊은 공감과 적극적 소통, 부드러움과 정당한 분노 등일 것이다. 이 매력의 핵심은 아마도 위로 올라갈 수 있는 ‘시장 사다리’의 복원 가능성을 안철수가 인생을 통해서 보여준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또한 새로운 물질적․문화적 생산력의 체현자라는 이미지가 아닐까 생각한다.”(1부 2장 2절)

왜 2013년 체제인가?

저자는 총・대선이 있는 해인 2012년이 아닌, 2013년을 역사의 분수령으로 삼는 이유를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다.

“2012년 총선과 대선에서 향후 수십 년 동안 대한민국을 끌어 갈 신질서가 탄생한다면, 2012년 이후 수십 년 동안 유지될 정치사회 체제는 2012년 체제로 불려야 마땅할 것이다. 그러나 (중략) 2012년 총․대선이 역사의 분수령이 되기엔 역부족이다. 국민들은 안철수 현상을 통해 현재의 정치적 대립구도, 이념, 리더십 등 정치질서 전체를 일종의 앙시앵 레짐으로 간주한다는 신호를 보냈다. 하지만 이 염원을 받아 안아 선거로, 정책논쟁으로, 시민운동 등으로 이를 구현하여, 새로운 질서를 건설할 정치적․사회적 역량은 태부족이다. 주인(민심)은 뭔가 혁명적 변화를 원하지만, 이미 실력이 검증된, 낙제점을 받은 대리인들이 두 패로 나뉘어 과거에 대한 성찰도, 미래에 대한 비전도 내팽개쳐 놓고, 단지 국회 의석과 대통령 자리만을 놓고 다투는 비극적인 양상이 펼쳐지고 있는 꼴이다. 그런 점에서 대한민국의 수명이 다한 낡은 질서를 바꾸는 큰 힘은 2013년 혹은 2014년에 있을 남북관계를 획기적으로 바꿀 역사적 합의에서 올지도 모른다. 백낙청 선생은 애초부터 이런 가능성을 높게 보고 2013년 체제라는 말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나는.......그 못지않게 지금 꿈틀대는 청년과 비기득권층의 앙시앵 레짐에 대한 분노와 혁파의 의지가 2012년에 약한 지진을 일으킨 후, 2013년 이후 점점 더 강한 지진을 불러올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아니, 그렇게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2013년에 설사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되지 않는다 할지라도, 수명이 다한 헌법, 선거법만 개정되어도 2013년 체제는 시대의 이정표나 역사의 분수령으로 삼을 만할 것이다. 그것이 수많은 변화를 연쇄적으로 불러올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 역시 2013년 체제라는 조어에 전폭적으로 공감한다.”(1부 1장)

2013년 체제의 핵심 가치

저자는 “2013년 체제가 우선시해야 할 가치는 1987년 체제가 경시하거나 간과한 것들이 대부분”이라면서 다음과 같은 가치 내지 과제를 중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분단체제의 재구성, 고용률과 임금근로자 비율의 제고, 우리의 생산력수준(1인당GDP)에 맞고 노동의 양과 질에도 상응하는 보상체계 구축, 조세․재정․복지를 통한 재분배와 더불어 노동 간 재분배(연대임금제, 중향평준화), 유연안정 시스템 구축, 기업의 국내투자 및 고용에 대한 공포 저감, 청년인재의 흐름 건전화, 수출 및 매출의 국내고용과 부가가치 유발효과의 제고, 금융시스템의 선진화, 부동산 불로소득 최소화, 중국발 구조조정 압력에 대한 대응, 기후변화와 에너지자원 위기 시대에 대한 대비 등.”(3부 14장 2절)

그러면서 향후 한국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치의 실력, 즉 국정현안을 잘 처리할 수 있는 국가경영 능력”과 “관료 및 이익집단으로부터의 강건성”이라고 한다.

“이는 독재의 위협 앞에 굴하지 않고 신념과 양심을 지켜 낸 민주투사의 덕목과는 다른 것이다. 또한 탈권위, 서민성, 소신과 원칙(지역주의, 기회주의 반대), 도덕적 신뢰로 집약할 수 있는 노무현적 덕목과도 다른 것이다. 또한 저돌적 추진력으로 집약되는 이명박적 덕목과도 전혀 다른 덕목이다.(중략) 2013년 체제는 정치집단으로 하여금 국가경영에서 덕장(德將)이나 용장(勇將)이 아니라 지장(智將)이 될 것을 요구한다.(중략) 국가경영에 관한 한 잘 훈련된 엘리트적인 면모를 보일 것을 요구한다.(중략) 2013년 체제의 핵심 정신은 정의(공평, 복지, 강건)와 실력(정치적․정책적 유능)이다.”(3부 14장 2절)

왜 유독 한국만 고통과 갈등이 극심할까?

저자는 양극화와 민생불안에 대해서도 질문을 다음과 같이 바꿔야 한다고 주장한다.

“세계화, 지식정보화, 민주화, 자유화, 중국의 부상으로 인해 이들 나라가 받는 충격은 비슷할 텐데, 왜 유독 한국만 이렇게 고통과 갈등이 극심할까? 미국과 FTA를 하는 나라가 한국 외에도 많은데, 왜 한국만 이렇게 극심한 내홍을 겪는 걸까?(중략) 요컨대 다른 나라(선진국과 중국 인접국)와 무엇이 다른지, 과거 한국과 지금 한국은 어떻게 다른지, 지금보다 더 나은 미래를 어떻게 만들 수 있는지를 따져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이공계적 기질을 발휘하여, 1부 3장에서 산업연관표와 2,500만 경제활동인구를 정밀 분석하여 한국사회의 물질적 재생산구조의 핵심적 특성을 ‘고단한 산업구조’와 ‘양반․상놈으로 나누어진 고용구조’로 집약하였다. 이것이 ‘양극화, 민생불안, 절망과 불신 등을 확대 재생산하는 핵심구조’라는 것이다.

“산업연관표에서 나타났듯이, 한국은 세계 최상위권이 되지 않으면 생존을 장담할 수 없는 제조업=수출산업 의존도가 너무 높다. 이는 제조업이 세계화, 자유화, 중국의 부상이 제공한 거대한 기회를 잡아 일취월장하고, 다른 부문은 상대적으로 굼뜨게 발전하기 때문일 텐데, 문제는 제조업 의존도가 높다고 해서 제조업 발전을 내리 누를 수도 없고, 눌러서도 안 된다는 것이다.(중략) 한국은 선진국에서 개발된 기술과 상품을 싸게 빨리 만들어 전 세계를 대상으로 파는 방식으로 산업화를 이루었기에, 수출은 아무래도 거대한 생산능력과 판매망, 마케팅 능력을 갖춘 재벌대기업이 주도할 수밖에 없었다. 이들은 대체로 수요를 독점하기에 하청협력업체나 언론에 대한 지배력이 강하기 마련이다. 이는 주요 언론들의 광고 의존도가 높고 언론시장이 콘텐츠 외적인 것으로 경쟁하는 구도이다 보니 더욱 악화되었다.

재벌대기업의 압도적으로 우월한 지위는 허술한 내부 감시․견제시스템과 외부(공정거래위, 언론, 소비자단체 등) 감시․견제시스템의 방조 하에 문어발식 확장, 내부자거래, 가혹한 부품가 인하, 중소기업의 기술․인재 약탈 사태를 초래하였다. 게다가 한국은 금융의 핵심인 은행이 안정성에 치중한 나머지 벤처중소기업 육성에 매우 인색하였다. 설상가상으로 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능과 중소기업의 근로조건 격차가 워낙 크다 보니 벤처중소기업 사활의 관건인 핵심인재를 중소기업이 오래 보유하기가 쉽지 않았다.(중략) 노조운동도, 진보 정치운동도 공히 양극화와 민생불안을 완화하거나 극복할 현대적 사상 내지 국가비전을 가지고 있지 않다 보니, 노조는 수익성과 교섭력이 허용하면 신의 직장을 만드는 쪽으로 일로 매진하였다. 당연히 재벌대기업은 매출은 늘리되 직영인력은 늘리지 않는 방식의 생산성향상에 매진하였다. 인력보다는 설비, 장비를 너무 많이 쓰고, 공정분할을 통한 외주하청화에 적극 나서고, 생산기반 역시 너무 빠른 속도로 세계화(글로벌 소싱)하여 국내 산업연관관계를 매우 약화시켰다. 한편 공무원, 공기업 등 공공부문은…… 근로조건을 노동시장의 최상층에 속하는 100인 이상 민간기업의 근로조건을 기준으로 개선하다 보니, 완전히 귀족시장으로 들어가 버렸다.(중략) 한국은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부상 등으로 인한 충격을 힘 있는 ‘갑’들, 즉 재벌대기업 내지 수요독점의 원청대기업, 공공부문, 전문직(자격증) 등은 너무 적게 부담하고, 대체로 힘없는 ‘을’들이 거의 전담한다.”(2부 6장 3절)

비전 2030, 뉴 민주당 플랜, 뉴 비전에 대한 분석 비판 위에 선 대안

이 책은 제3부에서 참여정부의 ‘비전 2030’ ‘뉴 민주당 플랜’과 2011년 7월에 나온 한나라당의 ‘뉴 비전’에 대한 상세한 분석, 평가 위에서 대안을 제시하였다.
한국사회 최고 최대의 난제인 일자리 문제와 관련해서도 주목할 만한 주장을 한다. 저자는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타도해야 할 지적 앙시앵레짐이라고 규정하면서 “고용률 70%, 청년고용률 40, 임금근로자 비율 85%, P90/10 3.5배 이내”라는 목표의 전환을 제시한다. 또한 ‘2013년 체제’의 일자리 창출의 방향의 대강을 밝혔다.

“가장 기본적인 것은 시장과 국가, 사회를 관통하는 사회적 동기부여(유인) 체계(incentive-penalty system)를 바로 세워 자본, 노동, 인재, 금융 등 자원들이 위험(risk)과 보상(return)에 따라 적절하게 배분되도록 하는 것이다. 경제주체별 자산소유 구조, 노동소득분배율 등 GDP 분배구조, 1인당GDP의 배수로 환산한 부문․직업별 평균임금 수준, 각종 양극화 지표(P90/50, P50/10, 지니계수 등) 등을 종합하면, 한국의 힘 있는 존재들이 너무 많은 몫을 차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본 간 재분배와 노동 간 분배 둘 다가 필요하다. 물론 자본과 노동 간 분배구조(노동소득분배율) 개선도 필요하다.(중략) 자본 간 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공정거래를 정착시키고, 능력 있는 중소기업이 순조롭게 성장할 수 있도록 정부의 규제, 금융시스템, 조달시스템 등을 합리화해야 하고, 창업과 창직의 장벽을 무너뜨려야 한다. 노동 간 분배구조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연대임금제, 직무․직능급제,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와 파트타임 고용 활성화, 사회임금 상향, 최저임금 상향 및 근로장려세제 강화, 비정규직법 개정(사용기간 제한 철폐, 차별시정 기능 강화) 등이 필요하다.”(3부 11장 3절)

보편주의 vs 선별주의는 엉뚱한 전선

복지문제에 대해서는 주목할 만한 주장이 한 둘이 아니다. 예컨대 저자는 보편주의와 선별주의를 대립시키는 것을 거부한다.

“복지프로그램 전체를 놓고 보면, 보편주의․선별주의의 전선은 ‘지금’ ‘한국’의 복지국가 논쟁에서 결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보편주의를) 진보의 대표상품으로 삼기에는 너무 옹색하다. 복지 영역에 국한해서 봐도 그보다 중요하고 시급한 문제가 너무 많다.(중략) 지금 한국이 절실히 필요로 하는 것은 복지프로그램별 우선순위, 혜택의 대상(보편, 선별), 급여 두께, 재원대책과 로드맵이다. 선별주의와 보편주의는 혜택의 범위(대상), 두께, 여론, 정치적 판단을 종합하여 얼마든지 선택할 수 있는 정책으로 결코 이념화․교조화할 것이 아니다. 그런데 진보는 보편주의를 신앙처럼 만들었고, 오세훈 전 시장은 이를 포퓰리즘이라고 폄하하면서 선별주의를 신앙으로 만들었다.”(3부 12장 3절)

또한 현역 사병들의 보수를 대폭 올려 21개월 복무 후 제대 시에 대략 1,200만원(교육 바우처 형태라도)을 지급하는 정책이 반값등록금 정책보다 훨씬 정의롭고 효율적이라고 주장한다.

모순부조리의 킹핀

책의 맨 뒷부분에는 격렬한 논란이 예상되는 모순부조리의 킹핀들이 죽 나열되어 있다.

“(하나를 쓰러뜨리면 나머지 10개가 다 쓰러지는 볼링의 5번 핀 같은 존재인) 킹핀은 문제의 연관구조 전체를 파악하여, 문제를 단순화해야 찾아낼 수 있다. 하지만 분절적․일면적 인식이 구조화되어 있고, 과도한 공포와 엉뚱한 증오 등에 의해 눈과 귀가 자주 흐려지는 한국사회에서 이것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따라서 한국사회가 한 단계 발전하기 위해서는 정치, 경제 등 다방면에서 문제의 복잡한 연관구조와 힘을 집중할 ‘킹핀’이 무엇인지, 언제 어떤 방식으로 문제를 제기해야 할지, 어떻게 대중을 ‘공진’시킬 수 있는지 등을 놓고 갑론을박하는 지적 풍토가 조성되어야 한다.”(3부 16장)

저자는 다양한 분야(문제)의 킹핀을 제시하였다. 예컨대 알 권리, 말할 자유를 막고, 정치 기득권을 과보호하는 선거법이 안고 있는 모순부조리의 킹핀은 ‘선거운동 기간제한’을 폐지하는 것이란다. 사법개혁의 킹핀은 ‘지검장 직선제를 통한 지검끼리의 견제’이며, 전력 대란 및 녹색산업 부흥의 킹핀은 ‘전기요금 현실화’(환경세 부과)이며, 부동산문제의 킹핀은 정책의 기초인 ‘부동산 관련 통계’를 내실 있게 갖추는 것이란다. 물론 킹핀 중의 킹핀은 정치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라고 한다.

“지금 남한 국민과 북한 인민이 겪고 있는 수많은 고통과 불만의 대부분은 나쁜 정치 혹은 부실한 정치에서 온다. 부실한 정치를 혁파하는 정치혁명이 젊은 코리아, 희망 코리아, 행복 코리아의 킹핀이다.”

정치 콘텐츠 생산 시스템의 부재가 국가적 위기

정치 부실 문제를 해결하는 킹핀으로 헌법(대통령 연임제)

  
및 선거제도(결선투표제) 개혁과 국회의원 정수 500명으로의 증원을 포함한 선출직, 정무직의 확대․강화를 제시한다. 저자는 “지금 한국은 대통령(후보), 국회의원(후보), 정당의 지도부(후보) 등 핵심 정치인의 눈높이에 맞춰 정치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면서, 이것이 심각한 국가적 위기라고 말한다.

“정치 콘텐츠는 개인적 연구와 고민, 집단적 토론, 현장 확인 등을 통한 오랜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나중에 전문가나 경세가에게서 빌려 쓸 수 없는 것이다. 정치 콘텐츠는 정치가의 영혼이다. 건강과 영혼은 원래 빌릴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을 빌리려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위하는 것이다.”

총 16장, 44개 절, 수백 개의 소항목마다, 아니, 544쪽에 이르는 페이지마다 깊이 음미할 만한 통찰과 논쟁할 만한 정책 아이디어가 정말 많다. 2012년은 물론이고, 2013년, 2014년, 2015년에도 수많은 논쟁을 불러일으킬 문제작이다. 한국정치와 지식사회의 키를 한 뼘은 키울 역작이다.

김대호
1963년 경남 사천에서 태어나 진주고를 거쳐 서울대 공대를 졸업했다. 뒤틀린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워 보겠다던 청년 시절의 초심을 잃지 않고, 노동현장, 산업현장, 정치현장 경험을 녹여 내 ‘나라의 길’을 주제로 저술 활동을 해 왔다. 주요 저서로는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사회평론, 2001), <한 386의 사상혁명>(시대정신, 2004), <진보와 보수를 넘어>(백산서당, 2007), <노무현 이후-새 시대 플랫폼은 무엇인가>(한걸음더, 2009) 등이 있다. 현재 사)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이거리를 바꾸자(fixmystreet.kr) 공동대표, 사)인천광역시도서관협회 이사를 맡고 있다.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 간사, 단결의길 편집장, 대우자동차 기술연구소 차장, 인천광역시장(송영길) 경제사회특보를 역임했다.


<2013년 이후> -건강과 영혼은 빌릴 수 없다- by 김대호

에필로그
  
이 책의 두께와 주제의 광범위함에 놀라는 사람이 있을지 모르겠다. 나는 우리 시대의 주요한 쟁점 사안과 주류 정치집단이 갈피를 못 잡는 것 같은 정책 현안에 대해 최대한 응답하려고 노력하였다. 그러다 보니 코리아의 명운을 좌우하지만, 진보진영에서 쟁점은 비교적 적은 외교․안보․통일문제와 부동산문제는 거의 다루지 않았다. 이렇게 두꺼운 책을 낸 것은 내 주장이 유일하게 올바른 노선이라는 확신이 있어서가 아니다. 종합적 통찰이 너무 빈곤한 한국의 정치와 지식사회의 수준 향상을 위해서는 이런 정도의 디딤돌이나마 필요한 것 같아서였다.
 
정부 부처와 국회 상임위는 수많은 현안을 다루고 있겠지만, 지난 몇 년간 우리의 관심을 집중시킨 정치적․정책적 쟁점은 열 손가락으로 셀 수 있을 것이다. 용산참사, 미국산 쇠고기 수입협상 파동, 방송법(종편) 관련 국회 파행, 무상급식 파동, 한진중공업 정리해고와 희망버스 관련 갈등, 한미FTA 관련 국회 파행 등. 역사가 전진하려면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의 갈등은 있기 마련인데, 이러한 대립, 갈등에서 무슨 생산적․미래적 요소가 있는지 나는 모르겠다. 이 대립, 갈등 사안들이 야당 측의 주장대로 (해결)된다 하더라도 5대 불안(보육․교육, 일자리, 주거, 건강, 노후)과 평화․통일, 지속가능성(환경․생태) 문제 등으로 집약되는 우리 시대의 가장 절박한 문제가 얼마나 완화될지는 정녕 모르겠다. 그런 점에서 지금 형성된 쟁점들은 한국의 정치와 지식사회의 혼미의 징표가 아닌가 한다.
 
가만히 보면 지금 한국은 대통령(후보), 국회의원(후보), 정당의 지도부(후보) 등 핵심 정치인의 눈높이에 맞춰 정치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 자체가 없다. 이것은 여간 심각한 국가적 위기가 아니다. 정치 콘텐츠는 각 분야의 전문가, 학자 수십 명을 모아 그들의 정책적 정수를 뽑아 (한나라당 ‘뉴 비전’ 같은) 자료집을 만들면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드라마는 배우만으로 만들어지지 않고, 집은 건축자재와 기능공만으로는 지어지지 않는다. 초막이라면 몰라도 번듯한 집은 개별 자재의 특성과 쓰임새를 알고, 사양(스펙)을 정하는 설계자의 설계가 있어야 지어진다. 건축 자재상과 기능공이 추천하는 최고급 자재와 유행하는 디자인을 다 가져와서 조립한다고 해서 멋진 집이 지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와 마찬가지로 지금 한국에서 부족한 것은 여러 분야 전문가들의 대관소찰과 산업현장 등의 경험, 지혜를 종합한 질 높은 정치 콘텐츠다. 또한 이를 법안과 운동으로 구현하는 진정한 정치가와 경세가이다.
 
진정한 정치 콘텐츠는 우리 사회가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를 통찰하고, 그 위에서 복잡한 모순부조리 구조를 파악하여 문제 해결의 킹핀을 도출해야 한다. 또한 여기에 누군가가 정치생명을 걸고, 끈기 있게 물고 늘어져야 한다. 역사를 진전시키는 정치 콘텐츠는 거의 예외 없이 정치생명을 끊어 버리겠다며 분노한 반대자들을 만나게 되어 있다. 방향이 있고 동력이 있는 배는 물살의 저항을 받는 것처럼! 자신의 인생을 걸어야 하는 사안 혹은 정치생명이 오락가락하는 사안은 남에게 의존하지도 않고, 의존해서도 안 된다. 자기 확신 없이는 정치생명을 걸 수 없다. 그러므로 정치 콘텐츠는 개인적 연구와 고민, 집단적 토론, 현장 확인 등을 통한 오랜 숙성의 과정이 필요하다. 우선 국회의원이나 대통령이 되고 나서, 나중에 전문가나 경세가에게서 빌려 쓸 수 없는 것이다. 정치 콘텐츠는 정치가의 영혼이다. 건강과 영혼은 원래 빌릴 수 없는 것이다. 영혼을 빌리려는 사람은 정치를 하지 않는 것이 사회를 위하는 것이다.
 
이 책은 연구실에 홀로 앉아 책과 자료 보고 쓴 것이 아니다. 그렇게 써서는 안 되는 책이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내가 참여한 몇 개의 포럼, 결사, 조직에서 있었던 수백 차례 토론의 결과물이다. 아무래도 가장 크게 도움이 되었던 토론은 2006년 출범하여 주식회사, 임의단체, 사단법인으로 성격을 바꿔 가면서 5년여 동안 굴러 온 사회디자인연구소의 토론이다. 연구소 회의실과 근처 식당에서 김두수, 이범재, 홍용표, 최창환, 김진욱, 정창교, 김태현과 나눴던 토론이 특히 도움이 되었다. 더불어 27차에 걸친 공평사회포럼의 조찬토론에 크게 도움을 받았다. 공평사회포럼은 전적으로 김병준 전 청와대 정책실장님의 덕이다.
 
그리고 2004년에 출범하여 지금도 질긴 인연을 유지하고 있는 코리아포럼 ‘선수’들과의 토론과 2011년 여름에 출범하여 발전적으로 해체한 ‘젊은 코리아 정치연대’의 학습, 토론도 크게 도움이 되었다. 또한 사무실이 국회 주변에 있음으로 해서 수많은 의원실 주최 토론회를 공짜로 방청할 수 있다는 것이 얼마나 큰 도움이었는지!
 
이 책은 주석에서 알 수 있듯이 많은 전문가, 학자들에게 빚지고 있는데, 특히 정대영, 양재진, 이기정, 권태현, 김수현, 김진욱, 이성호, 최윤재에게 많이 빚지고 있다. 그리고 눈이 갑작스럽게 나빠진 엄마를 대신하여 군 입대를 며칠 앞두고 아빠 책의 품질 향상에 많은 시간을 쏟은 아들 태헌에게 감사한다. 그리고 필자의 너무나 촉박한 출판 요구에 몸 고생, 마음고생 각오하고 응해 주신 백산서당의 이범, 김철미 사장님께도. 감사한다.-끝-
 

좀 색다른 출판기념회를 하기로 했다. 저자 띄우기, 덕담하기 행사가 아니라, 저자와 저자의 정책적 스승들을 모셔서 청년의 기회, 진보의 미래, 코리아의 희망을 말하는 토크쇼 형태의 정책 제안 행사 말이다.

행사명: <2013년 이후> 출판기념 [희망코리아 비전 연주회]

일시 : 2012년 1월 10일 (화), 오후 7시

장소: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서울 중구 태평로 1가 25번지)


'2013년 이후' 출간 by 김대호

2013년 이후
- 희망 코리아 가는 길 (백산서당)

서문

부끄럽고 미안하다.

사람은 대개 자식의 성장을 보면서 세월을 느낀다. 지나온 세월만큼 수십 년을 껑충껑충 건너뛰면서 세월의 두께를 실감한다. 1982년에 나는 대학에 입학했고, 학생운동을 시작했고, 지금의 아내를 만났다. 2012년과 1982년에는 30년의 간극이 있다. 30년을 한번 뛰면 1952년으로, 한 번 더 뛰면 1922년으로 간다. 반대쪽으로 뛰면 2042년으로 간다. 그 땐 내 나이 만 79세가 된다. 완전한 황혼이다. 1922년은 1차 대전과 러시아혁명의 여진이 유럽과 시베리아를 진동시키던 시기였다. 1952년은 한국전쟁 중이었다. 그때 나는 태어나지도 않았지만, 총성, 포성, 울부짖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학살, 추위, 굶주림의 공포가 몸을 오싹하게 한다. 아득해 보이지만 야만의 시대가 1982년에서 불과 30년 건너편에 있다. 그만큼 그 30년은 엄청난 역사적 성취를 이루었다고 볼 수도 있다.

세월을 껑충껑충 건너뛰면서 30년간의 정치․경제․사회발전을 천칭 저울에 달아보게 된다. 그런데 아무래도 1952~1982년의 역사적 성취에 비해, 1982년 이후 30년의 성취가 작아 보인다. 극미한 역할을 했지만 나 역시 주체적 행위자로 참여한 30년이기에, 이전 30년을 책임진 부모세대와 이후 30년을 책임질 자식세대에 대해 여간 부끄럽고 미안하지 않다. 물론 지난 30년은 1987년 6월 항쟁과 문민정부,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를 연달아 출범시키며 민주화의 신화를 창조한 시기이자, 5천 년 역사에서 드물게도 물질적․문화적 생산력이 중국을 능가하는 시기이다. 그래서 자랑스러워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무어라고 해도 이 시기는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과 교육 스트레스로 상징되는 민생문제가 악화일로를 걸었다.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청년의 절규가 터져 나오고, 진보와 보수 기득권의 담합에 의해 양반·귀족과 상놈으로 갈리는 신계급사회의 징후가 완연해졌다. 독재와 배고픔(hungry)은 사라졌지만, 배 아픔(억울함, 박탈감), 가슴앓이(절망, 고독)와 불안, 불신, 분노(angry)가 홍수처럼 흐르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주류 정치권과 지식사회는 이렇다 할 해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한미FTA를 폐기하고 복지예산을 지금의 2배로 증액한다고 해도, 무역 1조 달러를 2조 달러로 늘린다고 해도, 남북관계가 획기적으로 개선된다고 해도, 이 심각한 민생문제가 OECD 평균수준으로나마 완화될 것 같지가 않다. 이는 수출과 성장과 재정(복지)의 ‘모자람’에서 생긴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 대한민국이 겪는 갈등과 고통은 보수나 진보가 정권을 오래 못 잡아서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좌클릭이나 우클릭 혹은 친자본(시장)이나 친노동을 확실히 못해서도, 대통령 한 명을 잘못 뽑아서도 아니다. 소통, 참여, 신뢰부족도 심각하지만, 그 조차도 후순위다. 문제의 핵심은 양극화, 민생불안, 절망과 불신 등은 엄청나게 강력한 확대재생산 구조를 가지고 있으나,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국가를 경영하겠다는 집단의 지적 수준과 마음가짐(영적 수준)과 국가경영 실력은 형편없다는 데 있다. 그러므로 현재의 국가 시스템과 정치 리더십과 이념으로는 중국과 북한(급변사태)과 자연환경의 도전을 이겨내고, 지속가능한 성장과 평화와 복지를 이룰 것 같지가 않다.

한국전쟁과 60년 가까운 휴전 상태, 처참한 실패 국가로 전락한 북한의 오늘을 보면, 1920~40년대 중국대륙과 한반도에서 좌파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의 실패는 의심할 여지가 없어 보인다. 그들이 목숨 바쳐 만들려고 하던 나라는 이런 나라가 전혀 아닐 것이기 때문이다. 또한 한미FTA와 관련된 저열한 대립과 졸속적 처리 과정을 볼 때, 양극화와 청년세대의 한숨과 눈물에 대해 사실상 무대책인 한국정치를 볼 때, 1970~80년대 대학에서, 거리에서, 공장에서, 교단 등에서 민주, 민중운동을 했던 나 같은 부류의 사람들 역시 절반은 실패한 것처럼 보인다. 역사로부터 지난 30~40년의 성과에 대해 성적표를 받는다면 낙제를 면할 수 없을 것 같다. 한민족이, 대한민국이, 우리 세대가 이것밖에 안되나 하는 부끄러움과 미안함이 엄습한다.

1982년 이후 30년을 돌아보니, 내 비록 한 번도 공직선거에 출마해 보지 않았고, 정당에도 가입해 보지 않았으나, 내 인생은 결국 정치를 바로잡으려고 몸부림친 인생이었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30년 전에는 상상조차 해 보지 않은 인생이다. 오히려 소련과 동구의 몰락을 보고, 중국과 북한의 속살을 보고, 노동운동 판에서 내가 할 일이 별로 없다는 것을 깨달은 1992년 즈음에는 ‘운동가’, ‘혁명가’의 인생에서 벗어나기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황당하기 짝이 없는 한국정치와 과거에 화려했던 기억만 되새기는 386세대의 노인증후군이 내 발길을 돌려세웠다.

국내외 환경 및 국민의 요구와 낡은 이념, 제도, 리더십이 격렬하게 충돌하는 상황을 지켜보면, 2012~13년은 1945~53년처럼, 1987~88년처럼, 1997~2000년처럼 커다란 역사의 변곡점이 되리라 생각한다. 아니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 시기에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혁명이 일어나지 않으면, 사랑하는 자식세대와 청년세대와 북한 동포에게 더 각박하고 팍팍한 미래가 펼쳐질 것 같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2012~13년은 지난 30~40년 동안, (비록 허술하고 편향되었을지라도) 나름대로 공적 가치를 위해서 청춘을 불사른 사람들이 역사의 제단에 자신의 농익은 경험, 지혜, 열정을 온전히 바칠 수 있는 ‘적절한 때’이기도 하다. 육체적 능력, 지적 능력, 관계망으로 볼 때 2012년의 앞뒤 10여년, 합쳐서 20여년이 나와 우리 세대의 역사적 사명을 이행하는 최고의 시기가 아닐까 한다. 당연히 향후 10여년 우리 세대가 역사적 소임을 다하지 못한다면 절반의 성공조차 실패로 되어 완전한 실패 세대로 기록되지 않을까 한다.

뒤틀린 역사와 정의를 바로 세우겠다고 청춘을 불살랐고, 지금은 ‘시대의 혼미’를 깨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는 사람이라면, 이 중차대한 시기에 시대의 무지와 착각을 깨치는 책 한권쯤은 제단에 바쳐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시작했다.

지난 10여 년 동안 ‘나라의 길’을 주제로 쓴 책이 6권이지만, 뼈를 깎고 피를 말리는 고통을 겪지 않은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물론 단 한 번의 예외 없이 ‘2~3개월쯤이면’ 하고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해서 호되게 당했다. 이 책은 더 그랬다. 이 책은 짧게는 10여년, 길게는 30여년의 내 지적 활동의 총화이다. ‘현대 사회의 왕’으로 불리는 주류 정당과 그 열성 지지자들, 특히 민주, 개혁, 진보, 평화, 복지로 자신의 정치적 정체성을 표현하는 사람들의 오래된 사고방식에 의문을 제기하고자 썼다. 유효기간이 다한 진보의 철학, 가치, 비전을 해체, 재구성하여 국민들로부터 두터운 지지와 신뢰를 받는 정치사회세력으로 거듭나게 하고자 썼다. 나이 들면 좀체 안 바뀐다고 하는, 그것도 분단건국, 산업화, 민주화 신화를 창조한 경험에 뿌리박은 사고방식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려다 보니 한 줄 한 줄이 시를 쓰는 것만큼이나 많은 고민을 요구하였다.

2011년 5월경, (기존에 써놓은 글이 엄청 많으니) 길어도 2개월만 집중하면 원고를 완성할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뜨거운 여름을 온전히 쓸어 넣어 8월31일에 1차 탈고를 하는 쾌거를 이룩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때가 시작이었다. 결국 이 놈의 원고는 12월 초순까지 내 지적 에너지, 아니 생체에너지의 대부분을 빨아먹었다. 게다가 사회디자인연구소 운영과 새로운 정치운동이라는 녹녹챦은 짐까지 지워져 있어서 더더욱 힘들었다. 지난 6개월간은 이 책 집필에 거의 바쳐졌다. 아마 앞으로는 이렇게 무리해서 책을 쓸 것 같지가 않다.

낮 시간에 다니는 시내버스나 지하철이야 놓치면 다음 차를 느긋하게 기다리면 된다. 하지만 막차나 예약된 비행기를 놓치면 엄청난 낭패를 겪게 된다. 그래서 때로는 체면 불구하고 지하철 역사나 공항 터미널을 뛰어야 한다. 나는 무거운 배낭을 지고 맨발로 혼신의 힘을 다해 뛰었다. 그 어떤 세대보다 많은 기회, 도전, 희망을 누렸던 40대 후반의 민주화운동 세대가, 우리 세대가 사실상 가불해 써버린 기회, 도전, 희망을 청년세대와 자식세대에게 조금이라도 돌려주고자!

2011년 12월 여의도에서.               (12월 28일 출간)


[김 대호 소장 출판기념회]

◆ 일시: 2012. 1. 10(화), 오후 7시

◆ 장소: 한국 프레스센터 20층 국제회의장


진보의 이념·정책적 내공을 키울 4권의 책 by 김대호

 한국 진보의 이념정책적 내공을 한 뼘은 키울 또 한권의 책이
  
출간됐다. 책 이름은 <스웨덴 패러독스>이다. 일본학자인 ‘유모토켄지’와 스웨덴에서 10년을 산 ‘사토요시히로’가 공저했다. ‘김영사’가 11월14일자로 출간했고, 번역은 박선영이 했다. 나는 올해의 책 5권을 꼽으라고 한다면 주저 없이 3권을 꼽을 것이다. 한권은 바로 이 책이고, 또 한권은 정대영이 쓴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한울)고, 다른 한권은 김수현이 쓴 <부동산은 끝났다>(오월의 봄)이다. 내 책이 출간 됐으면 4번째쯤은 됐을 것 같은데 유감스럽게 내년 1월초로 밀렸다.


<스웨덴 패러독스>를 자신있게 꼽은 것은 진보의 롤모델로 꼽히는 스웨덴이라는 국가의 상세한 작동 메카니즘--정치, 경제, 사회(노동, 복지), 문화의 총체--을 그 어떤 책 보다 깊게, 구조적으로 터치했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어 보면 그 동안 ‘노동강화’와 ‘보편적 복지’를 진보의 간판 상품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이 스웨덴을 얼마나 일면적으로 인식하고 있었는지 알게 된다. 출판사는 책의 부제를 ‘선진복지 대한민국을 위한 단 하나의 롤모델’이라고 달았다. 하지만 스웨덴과 한국의 정치, 경제, 사회(노동, 복지), 문화 시스템을 상세하게 비교하고 나면, 스웨덴 시스템은 한국이 끊임없이 비춰보아야 할 거울인 것은 맞지만, 체질이 독특한 한국의 국가비전은 우리의 지혜로서 새로이 설계해야 할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일본 학자가 쓴 책이지만 스웨덴, 일본, 한국을 비교한 수치가 매우 많다. 한국이 일취월장한 탓이리라. 내가 과문해서인지 과거에는 일본 학자의 머릿속에는 한국은 없었다. 미국과 유럽 대국들은 있었을지라도. 어쨌든 책을 읽어 보면 한국 학자가 스웨덴과 일본을 비교 분석한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책의 핵심 내용은 앞 20여 페이지(15~36)에 집약되어 있다. 하지만 그 동안 한국에서 소개된 스웨덴 시스템이 주로 노동, 복지 시스템의 한 측면만 소개되었기에 시간 내서 전체를 독파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한다. 사실 나는 스웨덴을 다녀 온 사람들을 적지않게 만났는데, 산업, 노동 분야에 대해 제대로 터치한 사람이 없어서 갈증이 심했다. 그래서 시간이 나면 직접 가서 한번 파헤쳐 보고 싶었다. 그런데 이 책으로 인해 갈증의 상당 부분이 풀렸다.

스웨덴 시스템의 7대 지주

저자가 요약한 스웨덴 시스템의 핵심 7가지를 살펴보자.

1. 개방경제와 건전한 거시경제,재정운영
스웨덴은 GDP에서 수출이 차지하는 비중이 54%란다. 일본은 18%. 그래서 스웨덴 정부와 국민들은 제조업을 중심으로 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와 국내시장이 외국자본에게 매력적인 대상으로 보이도록 노력한다. 그 결과가 과감한 법인세 인하다. 1980년대 50%대 였는데, 2009년에는 26.3%로 일본의 39.5% 보다 낮다.(한국은 22%라고 한다) 저자가 일본인 이어서인지 물가안정목표제(1993년)와 3개년 탑다운 방식의 예산제도(1997년)도 눈에 띠는 모양이다.

2. IT 인프라의 정비와 혁신을 탄생시키는 전략적 연구개발
저자들은 전자정부, 전국민 e-ID카드, OECD 1위인 GDP의 3.75%(2008년)의 연구개발비, 지자체/산업/대학/연구소 등의 연계 혁신 활동 등을 주목했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한국도 (적어도 외형은) 최상위권이기에 대수롭지 않게 여겨진다. 하지만 두 일본인 저자들은 부러운 모양이다.

3. 높은 여성노동(경제활동)참가율과 양육지원체제
이것은 한국에 너무나 많이 소개되어 있다. 육아휴직 수당이 480일간 지급되고, 16세 미만자에 대해서는 아동수당이 보편적으로 지급되며, 그것도 다자녀 가산제도가 있고(첫아이는 1050크로나(1크로나=150~170원), 다섯째는 2100크로나를 지급), 가족관련 지출이 GDP의 3.2%로 일본의 4배고.......

4. 포괄적이고 대담한 환경정책과 높은 국민의식
1995년 대비 2008년은 GDP는 44%증가했으나 이산화탄소는 9% 감소했고, 1991년에 세제개혁을 할 때, 소득세와 법인세는 감세하면서도 환경세를 부과했다고 한다. 배울 점이다.

5. 연대임금제도
이것은 한국에 많이 소개된 것 같으면서도 그 실체와 정신은 소개되지 않은 것이다. 저자는 이를 ‘생산성 격차에도 불구하고 같은 직종이라면 같은 임금을 지불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으로 구현되었다고 한다. 얘긴 즉, 스웨덴에서는 ’노동조합과 경영자연맹의 중앙교섭에 따라 임금과 노동조건을 협의하고 결정하기 때문에 연령, 성별, 정규・비정규직의 임금 격차가 크지 않다‘는 것이다. 저자들은 스웨덴의 77%(2006년)에 이르는 노동조합 조직률도 부러운 듯이 소개한다. 일본은 18%, 한국은 10.1%(2009년)에 불과하다고 하면서......

그런데 한국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한 라인에서 오른쪽 바퀴를 조립하는 정규직과 왼쪽 바퀴를 조립하는 비정규직의 임금차별을 문제 삼을 때 부르짖는 가치이다.(지금은 거의 사라진 것으로 알고 있다. 변칙은 넘치겠지만......) 그런데 원래 이 가치는 노동의 양, 질은 거의 같아도 소속(원청대기업이냐 하청 중소기업이냐)에 따라 근로조건이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부당한 현실을 타파하자는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한국에 들어와서는 너무나 협소하게 해석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연대임금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노동간 自助적 재분배를 통해 격차를 해소(중향평준화)하는 것인데 한국에서는 거의 개념 실종상태다. 연대에서 자조 개념은 사라지고, 합심=공동 개념만 살아남았다. 그래서 ‘연대’는 ‘투쟁’과 한쌍을 이룬다.

6. 적극적 노동시장정책과 실용성 지향의 교육제도
이는 저자들의 글을 직접 인용하는 것이 나을 듯싶다.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청년세대, 미래세대, 중소기업에게 최악의 고용노동 비전에 대해 노동단체(조합)도 아닌, 집권하겠다는 정당들이 맞장구치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기업의 도산과 노동자의 해고가 당연시되는 엄격한 경쟁사회인 스웨덴에서 고용의 책임은 기업이 아니라 정부에 있다. 스웨덴의 복지,사회보장 정책은 ‘고용과 직업을 지킨다’는 유럽 대륙형의 이념이 아니라 ‘사람을 지킨다’는 이념을 기본으로 한다.(중략) 스웨덴의 적극적 노동시장정책에 대한 지출규모는 GDP대비 약 1.0%인데 이는 다른 나라의 3배 이상에 달하는 매우 높은 수준이다”

“스웨덴에서는 낡은 산업에서 새로운 산업으로 원활하게 노동이동을 촉진시키기 위해서 ‘Social Bridge'라는 이념이 제창되었다. 이것은 1)충분한 실업보험(종전임금의 8할), 2)적극적 노동시장정책 3)평생학습의 보장이라는 3종 세트의 조합으로 구성된다”

실업보험이 종전임금의 8할이라는 것을 보고, ‘그럼 그렇지’ 하면서 ‘정리해고・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비전은 진보의 비전이 맞다고 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스웨덴은 평균임금 자체가 1인당 GDP수준(한국으로 치면 월 200만원=2010년 1인당 명목 소득 연2400만원)에 아래 위에서 근접하고 있기에 두터운 실업보험을 구축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7. 노동인센티브와 기업 활력을 배려한 과세 제도 및 사회보장제도
스웨덴의 부가세율은 25%다.(한국은 10%) 또한 국민의 80%가량이 평균 30% 내외의 지방소득세를 낸다. 하지만 한국은 경제활동인구의 50%이상이 단 한 푼의 소득세(과표 1200만 원 이하는 6%, 4600만원까지는 15%)도 내지 않는다. 스웨덴에서 지방소득세는 노동소득 뿐 아니라 연금이나 실업수당, 질병수당과 육아휴직수당까지 과세표준으로 삼아 징수한다. 소득세에 추가로 20%, 25%의 2단계로 된 국세를 낸다. 그래서 상위 20%는 최고세율 56%의 세금을 낸다. 한편 개인이 부담하는 사회보험료는 7%에 불과하다. 반면에 기업의 사회보험료 부담은 31.42%라고 한다. 하지만 복리후생비, 부양수당, 통근수당 같은 기업 복지 혜택은 거의 없다고 한다.

스웨덴 시스템의 핵심
저자들은 의식하는지 안하는지 모르지만 스웨덴 시스템의 핵심은 이 책 123페이지에 있는 ‘직종별, 연령계층별 평균 월급여액’ 그래프다.(수치가 들어있는 표가 있으면 정말 좋겠는데 없다) 이는 스웨덴의 사민당과 노조가 주도적으로 만든 것이다. 스웨덴의 직능별, 연령별 임금 그래프를 살펴보면 공평성과 연대성이 어떻게 조화되어 있는지를 알 수 있다. 2006년 기준 스웨덴의 1인당 GDP는 34,902달러(월 2,909달러)로 스웨덴 화폐(크로나=SEK=Kr)로 환산하면 257,227Kr(월 21,436Kr, 1달러=7.37Kr)에 해당된다. 그래프 A를 살펴보면, 
 

  
 
사서, 소방관, 건설노동자, 금속공, 조립공은 18~24세 초임이 대략 2만~2만5천Kr인데, 35~44세에서 대체로 임금 피크(2만5천 Kr 내외)에 도달한 후, 이 임금이 55~64세까지 유지된다. 우리로 치면 2010년 가격으로 초임 월 180만원을 받고, 임금피크시 250만원을 받는 것이다. (사회임금은 이와 별도로 나오는 것이 아니라, 여기서 세금 30%이상 떼서 나중에 돌려받는 것이다) 하지만 경찰관의 경우 초임은 2만 Kr 정도지만, 비교적 가파르게 상승하여 임금 피크는 45~54세(약 3만1천 Kr)이고 55~64세에서는 소폭 떨어진다.

그래프 B를 살펴보면 의사, 치과의사, 약제사는 교육과정이 길어서 25~34세에 노동시장에 들어오고, 초임이 의사는 4만Kr, 치과의사 및 약제사는 3만Kr 수준이다. 이후 이 직능은 가파르게 상승하여 의사는 은퇴 직전에 6만5천 Kr까지 상승하고, 치과의사 약제사는 4만 Kr 내외까지 상승한다. 하지만 나머지 직능인 보육사, 교원, 간호사(정식 간호사) 등은 18~24세에 초임 2만 Kr 내외로 출발하여 은퇴시기에는 2만5천 Kr 내외를 받는다. 간호사와 고등학교 교원이 약간 높아 3만 Kr에 근접한다.

  
 
그래프 C를 살펴보면 은행원 상급직은 6만 Kr 내외를 받고 임금피크는 45~54세이다. 변호사는 25~34세에 3만5천 Kr에서 시작하여 45~54세에 임금피크(5만 Kr 초반)에 도달한다. 전자통신 기술 엔지니어는 18~24세에 초임 2만5천 Kr로 시작하여 55~64세까지 계속 임금이 올라 임금이 거의 5만5천 Kr에 육박한다. 프로그래머 및 시스템엔지니어는 2만5천Kr로 시작하여 35~44세에 임금 피크(4만Kr)에 도달한다. 55~64세에서는 은행원(상급직), 검찰관, 전자통신 기술 엔지니어가 5만5천 Kr로 근접한다. 하지만 변호사는 5만Kr에 미치지 못한다.

  
 
이 같은 임금체계를 보면 알 수 있듯이 대체로 18~24세 때 받는 초임과 45세 이후 피크 임금의 차가 그리 크지 않다. 특히 블루칼라에 해당하는 조립공, 금속공, 건설노동자, 소방관, 사서는 초임과 피크 임금의 격차가 정말로 작다. 조립공은 그 생산성이 최고에 달하는 25~44세가 임금피크이다. 또한 노동 연수에 따라 그 기량(생산성)이 계속 상승하는 직능인 전자통신기술 엔지니어, 의사, 치과의사 등은 55~64세까지 임금이 계속 상승한다. 긴 교육기간으로 인해 노동시장에 늦게 들어오는 의사, 치과의사, 변호사, 약제사 등은 초임이 높고, 임금도 대체로 가파르게 상승하는데, 직능 중에서 최고 임금을 기록한 은행 상급직과 의사조차도 6만5천 Kr수준이다. 이는 2006년 스웨덴 GDP(21,436 Kr)의 3배 수준에 불과하다. 한국으로 치면 2010년 기준 연봉 7200만원 수준이다. 그 다음으로 임금이 높은 직능인 전자통신 기술 엔지니어와 검찰관은 5만5천 Kr 수준이고, 변호사는 5만 Kr에 미치지 못한다. 전반적으로 스웨덴의 임금체계는 연공서열을 무시하고, 비정할 정도로 생산성을 중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스웨덴의 임금체계가 이렇듯 노동생산성을 반영하면서도, 전반적으로 평등한 구조를 갖게 된 것은 직능별, 업종별로 조직된 약 40개 정도의 노동조합과 50개 정도의 경영자 단체의 오랜 단체 교섭의 성과이다. 이 교섭에서는 직무내용, 경험, 교육수준, 직계(직급)별 세부 임금수준을 노사가 협의하고 근무시간과 휴가규정, 노동환경 등 노동에 관한 다양한 규칙을 자주적으로 결정하고 단체협약을 체결한다. 그러므로 법정 최저임금 제도는 없지만, 단체교섭에 의해 제일 젊고 경력이 짧은 종업원의 초임이 사실상 최저임금이 된다.

스웨덴에서 기업의 해고 부담도 거의 없다. 저자들은 이렇게 말한다.

“기업은 원자재를 조달하는 감각으로 노동자를 고용하며……기업은 임금의 31.4%에 해당하는 상당히 무거운 사회보험료를 부담하지만 대신 노동자에게는 임금만 지불하고 일이 없으면 해고하기도 쉽다”

“(스웨덴에서) 해고하려면 '정당사유'가 필요하다. 그 사유는 수요감소로 인한 생산량 감축, 기업의 수익감소로 잉여인원 발생 혹은 업무태만이나 능력부족처럼 노동자 자신에게 문제가 있을 경우로 제한된다”

스웨덴에서라면 쌍용자동차와 한진중공업의 정리해고는 전적으로 정당하며, 해고의 충격을 근로자 개인과 국가가 분담하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해고 규정이 근속연수가 짧은 사람 우선이다 보니, IT산업처럼 정작 젊은 사람들이 필요함에도 불구하고, 구조조정 과정에서 중년 노동자만 남는 불상사를 막기 위해 직원수가 10명 이하인 중소기업은 임의로 2명의 직원을 선별해서 남길 수 있도록 하였다. 이렇듯 노동시장이 유연하기에 시장(경기) 상황에 따라 실업률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금융위기가 터진 2008년 9월부터 일 년 동안 실업률 변화를 보면 일본은 4.1%에서 5.5%로 1.4%p 상승한 반면, 스웨덴은 5.9%에서 8.3%로 2.4% 상승하였다. 또한 거품 붕괴에 따른 1990년대 스웨덴 대공황 때 불황직전인 1990년 1.7%였던 실업률은 1994년 9.4%로 급상승했다.

스웨덴에서는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고용유연성이나 임금 격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무리하게 공정을 분할하여 외주, 하청화 할 필요가 없다. 당연히 대기업 고용 비중이 매우 높다. 그러나 한국은 근로자들의 임금 및 근로조건은 기업의 규모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노동의 양과 질이 같아도 어디에서 일하느냐에 따라 임금 및 근로조건은 천양지차가 된다. 당연히 근로조건이 좋은 대기업은 구조조정이 거의 불가능하다. 그 곳을 나와서 비슷한 근로조건을 보장해 주는 곳으로 옮겨갈 수가 없기 때문이다. 북유럽 국가들은 교사 임금 수준에서 보듯이 임금 및 근로조건이 기업 규모(수익성)나 직능이나 부문과 상관없이 비슷하다. 대체로 노동의 양과 질에 비례한다고 볼 수 있다. 앞에서 근로자들의 임금 상위 10%가 하위 10%의 몇 배 인지를 따졌을 때, 스웨덴(2.33배), 덴마크(2.64배), 핀란드(2.42배), 노르웨이(2.21배)가 매우 작게 나온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2008년 기준 한국은 5.4배였다(노동사회연구소 통계). 상식적으로 부문, 직업, 직능, 기업 간 임금과 근로조건이 비슷하면 괜찮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이 결코 치열할 수가 없다. 입시위주 교육이나 사교육이 발붙일 자리가 없다. 스펙 쌓기, 고시, 공시 열풍도 발붙일 자리가 없다. 고용에 대한 부담이 덜한 만큼 고용률이 높다. 결국 한국 수많은 사회문제의 핵심 원인은 과도할 뿐 아니라 불합리한 자산, 소득 격차다. 낙차가 큰 데서 격류와 폭포가 생기듯이 직업, 직장, 부문에 따른 격차가 너무나 크고 불합리하면 격렬한 경쟁과 대립,갈등이 일어나는 것은 물리 법칙이다.

취약한 고용보험의 수수께끼
2011년12월 초 발표된 OECD '고용전망 2011(Employment Outlook 2011)' 보고서에 따르면, 2009년 기준 평상시 급여 대비 실직 1년차의 실업수당(보전율)은 한국이 30.4%이다. OECD회원국의 중간값은 58.6%이며, 가장 낮은 체코가 29.7%이다. 이 값는 장기 근속한 40세 노동자를 기준으로, 독신, 홑벌이, 자녀 유무 등 4가지 유형별 실업수당을 평균한 세후 소득보전율이다. 평상시 소득 대비 실업수당 비율이 가장 높은 나라는 룩셈부르크로, 실업 1년차 때 통상 임금의 85.1%를 지급받는다. 그 다음으로 스위스(80.7%), 포르투갈(79.3%), 노르웨이(72.9%), 덴마크(72.6%), 네덜란드(72.6%), 벨기에(71.2%)가 70% 이상을 기록했고, 50%를 밑도는 나라는 호주(49.1%), 이탈리아(46.7%), 헝가리(45.9%), 일본(45.5%), 터키(45.3%), 미국(44.9%), 폴란드(44.1%), 영국(33.0%)이다.

한편 실직 2년 차를 기준으로 비교하면 한국은 사실상 전무한

  
수준(0.6%)이지만 OECD 중간값은 40.4%였다.실직 2년 차에 소득보전율이 10% 미만인 나라는 한국, 일본, 룩셈부르크, 이탈리아 등이다. 실직 3~5년차의 OECD중간값을 보면, 실직 3년차 15.5%, 4년차 12.9%, 5년차 9.3%이다. 그런데 실직 5년차에도 불구하고 벨기에(64.6%), 아일랜드(58.8%), 오스트리아(58.7%) 등은 평상시 급여의 절반 이상을 보전 받는다. 이런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또 높은 제조업 및 수출 의존도와 중국발 구조조정 압력이 그 어떤 나라 보다 심한 나라에서 수혜조건도 까다로운 ‘언발에 오줌누기’ 수준의 고용보험을 획기적으로 강화하자는 목소리가 별로 없는 것은 여간 이상한 일이 아니다. 이는 기본적으로 해고 자체를 부정하고, 구조조정이 불가피할시 엄청난 해고(희망퇴직) 수당을 받아낼 수 있는 한국 조직노동의 독특한 처지, 조건, 이념과 밀접한 관련이 있을 것이다.

나는 재벌대기업의 불공정거래와 변칙편법 상속 근절, 부자 증세,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 등을 강력히 지지한다. 하지만 그 정도 가지고는 스웨덴은커녕 유럽 근처에도 못 간다고 생각한다. (경영 잘해서, 전세계 시장에 물건 잘 팔아서 많이 버는 것은 법인세 등으로 환수 하는 방법 밖에 없다) 노동간 재분배 없이는 유럽 근처에도 못 간다고 생각한다.

2013년에 새로운 대한민국과 코리아를 만들어 보겠다는 분들은 <스웨덴 패러독스>, <한국경제의 미필적 고의> <부동산은 끝났다>와 곧 출간 될 김대호의 저작을 꼭 보시길. 선거운동으로 아무리 바쁘시더라도! 새로운 정치를 정말로 하시겠다면! 

**아예 유권자들이 후보자들에게 묻는 것이 더 나을 것 같다. 고용률 어떻게 올릴것인지? 청년실업 어떻게 해결 할 것인지?........


노동시간 단축을 통한 일자리 해법은 정녕 불가능한가? by 김대호

우리가 일손이 부족한 국가라면 쓸 해법이 못되지만 그런 나라가 아닌 이상 검토해 볼만하다고 생각한다.  산업연관표 상에서는 우리나라 8시간 기준 노동인구는 2000만명이 안된다. 총취업자는 2400만명, 비경활인구 속에 숨어있는 사실상 실업자 300만명이다. 그나마 정규직 근로자는 1100만명 내외. 그래서 이런 해법을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이건 단지 현대자동차에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다.

수요는 많지만 노사의 이해관계와 비정규직법 때문에 24시간 가동할 수 없는 고가의 설비, 장비—예컨대 병원의 MRI(자기공명영상촬영장치) 등—를 돌리는 곳에도 다 적용 가능하다. 현대자동차 노사는 2011년 가을 노사 합의를 통해 2013년 경부터 밤샘근무를 없애고 주간 연속 2교대를 시행하기로 하였다고 한다. 현행 주간조(오전 8시~오후 7시)와 야간조(오후 9시~다음날 오전 8시)가 10시간씩 주야로 맞교대하는 시스템이, 주간 1조는 8시간(오전 6시30분~오후 3시10분), 2조는 9시간(오후 3시10분~밤 12시50분) 일하는 시스템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로인해 연간 가동시간이 4,178시간에서 3,699시간으로 연간 479시간 줄고, 생산량은 연간 164만대에서 145만3천대로 18만7000대 가량 감소할 것으로 예상된다.

 그런데 내가 제안하는 것은 새벽 1시부터 오전 6시30분까지 5시간 30분을 파트타임 고용으로 공장을 돌리는 시스템이다. 나는 파트타임 근로자들의 근속기간과 숙련도 등을 감안하여 시간당 임금(통상급)은 현재 정규직 근로자의 60~80%를 지급하고, 2년 고용에 따른 자동 정규직 전환 조항을 유보하고, 생산 물량 감소시 우선 고용 조정을 허용하는데 대해 당사자를 포함한 사회적 합의가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물론 사회적으로 보면 8시간씩 3교대 또는 4조3교대제가 최선일 것이다. 하지만 시장(경기) 상황과 소비자의 변덕과 제품 경쟁력 등에 따라 차종 별로 주문 물량이 요동치는 것이 현실이고, 또 한국에서 대기업 정규직 고용조정은 ‘살인’으로 여겨지는 것도 또한 현실이라 기존 정규직의 기득권(일정한 연장근로와 정년보장)을 존중해야 한다면, 이런 특단 내지 변칙적 대책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생각을 하는 이유는 이 같은 근로조건(월 150만원~200만원 수준의 임금)을 수용할 용의가 있는 사람이 수백 만명이 있기 때문이다. 이들의 존재는 기존 노조원들 입장에서 분명히 불편한 존재이다. 차별(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위배)이라는 따가운 시선도 부담스럽고, 노조원이 아닌 존재들이 공장을 돌리는 것 자체도 부담스럽다. 기업 입장에서는 향후 터져나올지 모르는 정규직화 요구가 부담스러울 수 있다. 그래서 주문도 밀려있고, 설비•장비는 놀고 있고, 정규직 임금의 60~80%라도 준다면 일하겠다는 사람은 넘쳐남에도 불구하고, 일자리가 안 만들어지는 것이다. 지난 200년 동안 전세계 노동운동이 추구해 온 핵심 가치인 노동시간 단축이 전혀 기쁘지 않은 것은, 평균연령 45세가 넘는 현대차 생산직의 체력이 주야 맞교대를 감당하기 힘들 지경으로 갔고, 기업은 주문 물량은 넘쳐나도 고용에 대한 공포 때문에, 젊은 생산인력을 채용하기 보다는, 이윤을 포기하는 쪽(심야 노동 폐지)으로 가버리기 때문이다. 이 모든 문제는 결국 고용의 10~20%를 차지하는 좋은 직장과 고용의 80~90%를 차지하는 민간 중소기업의 엄청난 격차 때문이다. 노동의 양, 질이 아니라 수익성과 교섭력과 힘에 따라 근로조건이 정해지는 현실이다.

 

어쨌든 이런 방식은 근로시간 단축을 통하여 수십 수백만명의 신규 파트타임 고용을 늘리는 전략의 일환이다. 한국에서 근로시간 단축이 신규(파트타임) 고용으로 연결되지 못하는 것은, 노조의 고용불안과 고용은 반드시 8시간 이상 일하는 정규직이어야 하고, 2년 고용하면 의무적으로 정규직을 전환하도록 한 비정규직 법의 영향이 크다고 보아야 한다.

 

한국에서 노동시간 단축은 변형된 임금인상도, 대상자의 건강과 행복 때문만도 아니다. 이는 신규 일자리 창출 전략의 일환으로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임금감하를 수반하는 노동시간 단축과 효율성이 크게 훼손되지 않는 일자리 쪼개기(근무시간 변경, 파트타임제 도입 등)는 이제는 실행해 봐야 하는 것 아닌가 싶다.

그리고 인류의 일자리 문제는 결국에는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것 아닌가? 8시간을 6시간으로, 더 간다면 하루 5시간이 될지도 모른다.  OECD평균보다 연 500시간은 더 일하는 한국은 더 더욱 노동시간 단축의 필요성이 크다. 그리고 이를 1인당 GDP(2010년 기준 월 200만원) 수준의 일자리의 확대로 연결해야 한다. 그런데 이게  노사의 기득권과 명분에 집착하는(비정규직을 현실로 인정하지 않는) 법과 문화 때문에 잘 안되니......의견은 어떠신지??


현역사병 제대자에게 1200만 원짜리 교육바우처를 주자. by 김대호

현역사병 제대자에게 1200만 원짜리 교육바우처를 주자. 

--반값 등록금 보다 백배 천배 효율적이고 정의롭다--

 

21개월간 군 복무를 하고 나면 한국 1인당 GDP     

(2010년 기준 2400만원) 50%에 해당하는 금액을 교육 바우처(쿠폰)로 주면 어떨까? 이는 21개월 근무기준 1200만원이니까 월 57만원에 해당한다. 이 바우처는 대학등록금으로 쓸 수도 있고, 학원 수강료로도 쓸 수 있다. 제대 후 바로 쓸 수도 있고, 5~10년 뒤에 쓸 수도 있다. 물론 이 바우처를 받을 수 있는 교육 프로그램 및 기관은 별도의 위원회가 엄격히 심사하여 인증하면 될 것이다. 그리고 군복무 성적에 따라 약간의 차등(10% 범위 내에서 가감)을 줘도 좋을 것이다. 물론 이 금액은 좀 더 늘릴 여지가 있다. 만약 1(12개월) 1인당 GDP 50%를 지급한다면, 21개월 복무후 제대시에는 거의 1인당 GDP 90%( 2100만원)를 지급할 수 있다.

 

왜 이런 생각을 하는가? 그것은 아무리 국방의 의무가 신성하다 하더라도 한국에서 사병으로 군복무하는 것은 여러 가지로 억울한 점이 많기 때문이다. 2010년 현재 우리 군의 병장 월급은 102,300(하루 3410), 상병은 92,400, 일병은 83,500, 이병은 77,100(2570)이다. 그런데 2010~11년의 최저임금은 1시간에 4,320원이다. 군복무를 하지 않는 자가 최저임금을 받는 알바를 해도 하루 34,560원을 번다. 나머지 시간에 자기계발을 할 수 있다는 것은 접어두고라도! 장교 등 직업군인과 비교해도 징집사병의 처우는 너무나 불합리하다. 1950~60년대는 그렇게 차이가 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지난 40년 동안 직업군인의 급여는 지속적으로 인상하고, 징집 사병의 그것은 그대로 묶어두면서 엄청난 차이가 나버린 것이다. 노무현 정부에서 이를 개선한다고 했으나, 개선한 것이 겨우 10만원(병장) 수준이다.

 

한국과 소득수준도 비슷하고, 안보위협도 심각하여 징병제를 채택하고 있는 대만, 이스라엘과 비교해도 우리 징집사병들은 분통을 터뜨릴만 하다. 2009년 현재, 미국 달러화로 환산한 1인당 명목 GDP는 대만이 16,392달러, 한국이 17,074달러, 이스라엘이 21,570달러이다. 그런데 대만은 복무기간 10개월인데, 상병은 월10,780 TWD(한화 40 7천원), 소위는 15,545 TWD(58 7천원)을 받는다. 이스라엘은 복무기간이 18~24개월(2011년부터)인데 훈련병은 150USD (한화 18 2천원), 상병은 약400 USD (한화 48 6천원)을 받는다. 그런데 이스라엘의 사병 전역자에 대한 지원은 이뿐 아니다. 전역 보너스도 있고, 대학 등록금도 전액 지원한다. 공무원 공채 및 국가시험에서 가산점도 준다. 그리고 예비군 훈련기간에는 대중교통을 무료로 제공하고, 예비군 훈련시 개별 당사자의 평균임금의 1.5배에 달하는 훈련급여도 지급한다.

 

한국에서 징집 사병으로 근무하는 것을 대개 썪는다고 표현하는데 이는 결코 과장이 아니다. 물론 징집 사병들의 이런 억울함 때문에 공무원 시험 등에서 군가산점이 있었다. 그러나 여성에 대한 차별 시비가 일면서 2001년에 폐지되었다. 물론 다시 부활시키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군제대자에게 1인당 1,200만 원가량의 교육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정의로우며, 우리의 재정 규모로 볼 때 결코 큰 부담도 아니다. 2010년 현재 20세 남자는 총 341천명이고, 우리 군은 총 232,214(징집 147,695, 모집 84,519)을 입대시켰다.    

 

매년 같은 수가 제대를 한다고 가정하면 총 예산은 23*1200만원=2 7600억 원이다. 기존에 이미 지급되는 돈이 있기에 실제 소요예산은 이 보다는 더 적을 것이다. 2011년 현재 공무원 연금으로 지출되는 액수가 92천억 원이며, 기초노령연금으로 지출되는 액수가 28천억 원이다. 이런 예산에 비해 군 전역시 1인당 GDP 50% 가량 되는 교육 바우처를 지급하는 것은 훨씬 가치가 있고, 정의롭고, 생산적이다. 지식기반 사회에서 군복무자가 교육을 통한 자기계발을 통해 중장기적으로 우리 사회의 성장잠재력을 키울 것이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4~5조원이 소요될 반값 등록금이 과잉 대학진학률을 뒷받침하여 청년들의 시간을 낭비하게 하고, 무엇보다도 대학에 진학하지 않은 사람을 합리적인 이유없이 차별하는 것이지만, 사병 급여 현실화는 전혀 그렇지 않다. 적어도 세금에 의한 반값 등록금 보다 백배 천배 효율적이고 정의롭다. -끝-


한미FTA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대화, 타협의 문화다. by 김대호

한미FTA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대화, 타협의 문화다.

-2013년 이후의 국정 운영을 생각하라-

 

1. 1990년을 전후한 시기의 국내외적 대격변의 충격으로, 386(현장파)들이 인생의 로드맵을 새로이 설정할 때 나는 30~50대를 엔지니어·전문 경영인으로 설정했다. 그 이후에는 공공의 일을 하러 나올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그 로드맵과 달리 공공정책담론 내지 정치콘텐츠를 아예 업으로 삼게 된 계기는 몇 번의 황당한 경험 때문이었다. 첫 번째 경험은 1990년대 후반 대우자동차-대우그룹-한국 자동차산업 구조조정과 관련된 한국 사회의 황당한 대응이었다.  김우중도, DJ정부도, 은행도, 노조도, 목소리 높이는 논객들도 하나 같이 어이없는 행동을 하는 것을 보고 경악했다. 지금도 세계로 뻗어가는 현대기아차의 기세와 브랜드마저 상실한 대우자동차(쉐보레)를 보면 2000년 전후한 시기의 대우그룹과 대우자동차에 대한 엉망진창의 구조조정은 천추의 한으로 남아있다. 어쨌든 나는 이 과정을 지켜보면서 느낀 분노와 위기의식을 기반으로 2001년에 내 첫 번째 책을 펴냈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대응은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DJ정부의 4대 개혁을 볼 때도, 이를 신자유주의 운운하며 비판하는 진보 세력을 볼 때도 마찬가지였다. 2004~8년의 열린우리당/대통합신당과 참여정부의 대응은 더 황당했다. 물론 이명박 정부라고 예외는 아니었다. 아니 더 했다. 천인공노할 방식의 노무현 죽이기, 대북정책, 천안함 관련 대응이 그것이다.  각설하고, 나는 지금 한미FTA에 대한 민주 진보 진영의 대응을 보면서 동일한 느낌을 받는다.

 

2. 한미FTA에 관한 한 나는 담론 소비자이다. 그래서 나는 협정문 원문을 한 번도 뜯어 본 적이 없다. 나는 단지 이 분야를 깊이 연구한 논객들이 쓴 찬성론과 반대론 글을 읽고, 전문가들의 TV토론을 보고, 라디오 인터뷰를 듣고 상식에 입각해서 판단할 뿐이다. 물론 담론 소비자라고 해서 담론의 품질과 진위를 가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자동차를 만들지 못한다고 해서 자동차의 품질 성능, 고장 여부를 모르는 것이 아니다. 안경을 만들지는 못하지만 안경을 써 보면 그 품질을 안다. 참된 지혜는 상식의 그물망으로 허위사실, 침소봉대, 장님코끼리 만지기식 해석 등을 걸러내는 것이다.

 

머리털 나고 나서 내가 접한 반대담론 중에서 한미FTA만큼 성격과 지향이 다른 것은 없었다. 제2을사늑약이라며 결사반대하는 사람, FTA를 원칙적으로 찬성하되 순서를 문제 삼는 사람(한중-한일FTA부터 먼저), 우리 보다 산업 발전 수준이 낮거나 같은 나라와 해야 한다는 사람, 절대 폐기해야할 독소 조항을 몇 개 들먹이며 재협상을 주장하는 사람, ISD만 문제 삼는 사람 등. 한미FTA 찬성론자들과는 민주통합당을 같이 할 수 없다는 사람도 있다. 나는 이런 중구난방 자체가 반대담론이 가진 근원적인 취약성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배우는 사람의 심정으로 다양한 반대론, 재협상론을 살펴보았다. 혹시 2006~7년에 비해 세련되거나 정교해진 반대담론이 있나 해서 살펴보았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하나 같이 근거가 너무나 허술하였다. 내 상식의 필터를 통과하는 반대론이 거의 없었다. 그래서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부탁한다. 자신이 읽은 반대담론 중에서 말이 좀 된다고 생각하는 글을 소개 좀 해 달라.  최모, 정모, 이모씨 글, 노무현 재단 글 다 보았지만 도저히 납득이 안 된다. 솔직히 한미FTA 관련하여 민주 진보가 취한 스탠스를 보니 아무래도 퇴행하면서 왼쪽으로 가 버렸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3. 한미FTA관련해서 먼저 내 얘기를 해야겠다. 민주 진보의 한미FTA반대론과 외통위점거로 상징되는 극단적인 반대 방식은 나라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고, 집권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 사실 정치가 본래 진영 간 패싸움이고, 나와 친하게 지내는 분들, 진보 진영의 지도급 인사들이 반대나 재협상 관련해서 목소리를 높이기에 웬만하면 이해해주고 싶다. 하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아닌 것은 아닌 것이다. 지난 십 수 년의 경험으로 볼 때 비슷한 경우가 많이 있었는데, 민주진보가 우르르 몰려가는 길은 망하는 길이었고, 국민적 상식과 내 상식이 일치하는 길은 적어도 망하지는 않는 길이었다.

 

내가 아는 지식과 상식에 입각해서 볼 때 2008년 금융위기와 이명박 정부의 재협상(자동차 분야 양보)과 미국 의회가 통과시킨 한미FTA 이행법안은 민주당이 외통위까지 점거하면서 결사반대할 근거가 못된다. 참여정부 시절부터 크게 논쟁이 된 ISD, 역진불가조항, 서비스업 네거티브 방식 개방 등은 지금 다시 뜯어봐도 참여정부의 해명이 역시 설득력이 있다. 괴담 수준의 비판은 참여정부 시절에 거의 논박이 되었다.

 

가장 그럴듯한 재협상 근거는 노전대통령도 언급한 ‘2008년 금융위기의 경험과 교훈을 반영’하는 것이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2007년에 마무리한 협상 자체가 워낙 방어적으로 해 놓았기 때문에 금융위기를 계기로 변경할 금융서비스 관련 조항이 거의 없다. 미국은 한미FTA와 상관없이 스스로 바꿀 것이 많고, 많이 바꿨지만....... 이는 비유하자면 미국 금융은 시속 150KM로 달리는 자동차라면 우리는 소달구지 수준이고, 한미FTA를 하면서도 미국 금융이 한국에서 영업하려면 한국의 도로 환경(규제 환경)에 맞게 움직이도록 조치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손 볼 조항이 거의 없는 것이다. 실제 금융 관련 조항의 어떤 부분을 손봐야 하는지 구체적으로 얘기하는 사람을 본 적이 없다. 2008년 위기를 들먹이며 세상이 변했다면서 한미FTA를 하지 말자는 사람들은 분석에 도통 구체성이 없다. 예를 들면 이런 식이다. “한미FTA는 신자유주의 수용인데, 2008년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파탄 났으니 근본적으로 재검토 하자.” 솔직히 논리의 마디마디가 허술하기 짝이 없고, 단어 하나하나가 그 의미가 모호하기 짝이 없다.

 

이명박 정부는 미국의 재협상 요구를 받아들여 미국산 쇠고기 수입 조건과 자동차 관세 철폐 시한, 그리고 개성공단 관련 부분을 양보한 것은 유감이다. 하지만 협상은 상대가 있고, 어차피 현재의 조건도 우리에게 큰 이득이 있다면 양보 좀 했다고 협상을 파기해서는 안 된다. 솔직히 재협상이 정말로 절실했으면 지난 4월 한-EU FTA 비준을 전후해서 미리 강력하게 제기 했어야 하는 것 아닌가? 적어도 민주당은 그래야 하는 것 아닌가?

 

4. 나는 한미FTA 보다 더 중요한 것은 국회의 대화·토론 문화, 갈등조정 능력, 법안의 품질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외통위(나중에는 본회의장) 점거 농성이 초래할 길고 긴 패악이 정말로 걱정스럽다.

 

물론 상임위, 본회의장 점거 농성은 ‘절대악’은 아니다. 할 수도 있는 것이다. 2004년 대통령 탄핵과 같은 사태가 터지면 나라도 할 것이다. 그러나 한미FTA가 과연 그런 정도 사안인가? 만약 한미FTA가 을사늑약과 같은 반열의 악법으로, 야당이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막아야 할 악법이 맞다면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에서 고위직을 한 사람들이 모조리 석고대죄하고 공직에서 물러나야 마땅하다고 생각한다. 그 땐 잘 몰랐다는 정도로 넘어갈 일이 아니다. 이명박이 재협상을 통해 바꾼 부분이 1%--그것도 협상의 질적 성격을 바꾸는 것이 아니다--도 안 되는 상황에서 이명박 탓을 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뿐만 아니라 한미FTA와 그 정신과 내용이 그렇게 큰 차이가 없는 한-EU FTA를 주도한 자들(여기서는 개별 유럽 국가들과 ISD를 맺었다)과 이를 비준한 의원들과 지금처럼 적극적으로 저지 하지 못한 의원들도 석고대죄해야 한다. 그리고 지금 반대의 선봉에 선 재야인사들도 대국민 사과 정도는 해야 마땅하다. 물론 나는 한미FTA도, 한-EU FTA, 한-칠레 FTA도 우리 경제와 사회에 결코 나쁘지 않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과 국운 융성의 결정적인 계기라고도 생각하지 않지만, 적어도 안하는 것 보다는 훨씬 낫다고 생각한다. 경제성장에도 사회통합에도!

 

정말로 걱정스러운 것은 이런 식으로 상임위-본회의장 점거농성이 정치 관행으로 될 경우 2012년 총대선을 통해 구성될 국회와 정부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백낙청 선생이 2013년 체제를 얘기할 정도로 차기 국회와 정부는 기존의 대한민국 시스템을 재건축 수준의 리모델링을 해야 한다. 차기 국회와 정부가 주도적으로 바꿔야 할 시스템이 부지기수다. 헌법, 선거법 등 정치관계법과 조세재정, 보건의료복지, 행정체계, 공공부문, 교육 시스템 등 너무나 많다. 이들은 정말로 심도 깊은 숙의가 필요한 사안이다. 또한 엄청난 갈등 사안이기도 하다. 분명한 것은 아무리 찌그러져도 100석을 넘길 거대 정당이 똘똘 뭉쳐 반대하면 통과시킬 수 있는 법안이 하나도 없다는 사실이다. 사람들은 이명박정부와 한나라당이 1987년 이후 최강의 힘을 보유했다는 것을 잊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80석 남짓의 민주당이 결사반대하자 제대로 통과 시킨 것이 별로 없다. 방송법 정도를 날치기 통과시켰을 뿐이다. 4대강은 대체로 기존의 권능으로 했을 뿐이다. 그런데 차기 국회와 정부가 통과시켜야 할 법은 국가보안법, 사학법, 과거사법과 방송법 보다 훨씬 파급력이 큰 것이 대부분이다.

 

상임위, 본회의장 점거농성은 민주진보의 전유물이 아니다. 국민은행 앞 촛불시위도 마찬가지다. 어쩌다 날치기 통과 한번 하고 나면 그 후환이 만만치 않다. 1년에 재보궐선거 2번 있고, 2년 있으면 지방선거가 돌아온다. 진보는 보수에 비해 이념정책적 스펙트럼이 더 다양하고, 조중동과 재계, 사학, 종교계 등 후견그룹이 약하기에 일사불란할 수도 없다.  따라서 한나라당처럼 날치기를 할래야 할 능력이 없다. 그러면 한나라당이 버티면 할 수 있는 일이 정말 하나도 없다. 당연히 민주진보는 콩가루 집안에 무능하기까지 한 놈들로 각인된다. 그래서 2012년 총대선에서 요행히 이긴다 하더라도, 2013년 재보궐선거부터 기나긴 진보의 죽음의 시대가 계속된다. 한나라당은 이기겠지만 청년세대와 비기득권층은 계속 죽어나고, 나라는 계속 망가질 수밖에 없다.

 

5. 2006년 말 국회에는 3000개 넘는 법안이 쌓여 있었다. 전효숙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관련한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말도 안 되는 딴죽 걸기가 주효했기 때문이었다. 물론 지금은 그 이상의 법안이 쌓여 있다고 알려져 있다. 한나라당은 준만큼 되돌려 받는 것이다. 이런 문화가 정착되다 보니 제출되는 법안은 양적으로는 많아도 대부분은 면밀하게 검토가 안 될 수밖에! 그 중에 옥이 좀 섞여있겠지만, 지금의 국회는 뭐 하나 심도 깊은 심의를 못하니 옥석구분이 제대로 될 리가 없다. 옥석구분이 안 되면 몽땅 석으로 취급되기 마련! 부실 심사, 부실 감시가 필연이라는 얘기다. 이 과정에서 이익집단의 기득권을 침해하는 법안은 사전에 거의 다 걸리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익집단의 기득권은 강화하고 소비자와 국민 다수의 권리, 이익을 침해하는 법안은 무사통과할 것이다.

 

다른 나라는 비교적 무난히 처리하는 FTA협상을 놓고 온 나라가 애국과 매국을 들먹이며 결사적으로 싸우고, 정작 필요한 FTA관련 정교한 대안들은 거의 내 놓지 못하는 나라가 어떻게 굴러가겠는가? 이것은 국가적 위기이자, 민족적 위기이다.

 

6. 순전히 2012년 총대선의 유불리 관점에서 한미FTA를 한번 생각해 보자. 민주당은 한나라당이 날치기 통과를 해 주기를 기다리는 것 같다. 하지만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한나라당이 그렇게까지 하면서 조속히 처리할 이유가 있겠는가? 그러면 당연히 총선 쟁점으로 가게 되어 있다. MB실정에 대한 심판 구도가 한미FTA 찬반으로 희석 될 수밖에 없다. MB와 한나라당은 한미FTA를 통해서 민주당의 뒤집기, 무책임성, 반대론의 시대착오성을 계속 부각시킬 것이고, 상당한 표심의 변화를 일으킬 것이다.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매체 영향력 때문이 아니다. 진보도 SNS가 있으니까! 문제는 한미FTA반대론 자체가 대단히 허술한 논리적, 사실적 토대위에 서 있기 때문이다.

 

한나라당은 속으로 쾌재를 부를 것이다. 대통령 국회 방문, 대국민 호소, 관계장관들 담화, 상임위 소집 시도, 본회의 직권상정 용의 표명, TV토론 등을 통하여 국민들이 잊을 만하면 한미FTA를 국정 현안과 쟁점으로 부각시킬 것이다. 문제는 한미FTA가 국민들의 큰 관심사가 되면 될수록 민주당이 불리하다는 것이다. 그 누가 뭐라 해도 한미FTA는 99%가 참여정부의 작품이다. MB가 재협상으로 바꾼 것은 1%도 해당되지 않는다. 2008년 금융위기, 미의회의 이행법안을 빌미로 외통위점거농성까지 하면서 협정을 파기하라? 재협상 하라? 명분상 너무 구차하다. 도대체 참여정부가 통상 관료들에게 놀아나서 나라 팔아먹을 짓을 했다는 선동이 먹히겠는가? 한미FTA가 나라 망친다고 하지만 중국, 일본, 유럽연합, 아세안 등 많은 나라들이 하고 있거나 하려고 하고 있다. ISD 조항 있지만 FTA로 인해 고유의 경제사회 정책이 거의 흔들리지 않는다는 것은 확실하다. 그리고 한국은 멕시코와 너무 다른 나라이다. 전문가들이 나와서 하는 TV토론(시청률 5~10%나 되나 모르겠지만)을 보니 반대론이 확실히 밀린다. 나는 민주당이 공천 과정에서만 배심원 제도를 활용할 것이 아니라, 한미FTA 관련한 당론 결정 과정에도 배심원제도를 한번 활용해 봤으면 한다. 요즘 유행하는 원탁토론--300명이 참여한 충남도민 정상회의식--을 여기에 적용해 봤으면 한다.

 

7. 한미FTA반대론과 재협상론이 가장 심각한 독소조항이라고 지적하는 ISD관련 유명한 소송 사례를 살펴보았다. 결론은 ISD가 있든 없든 상식에 비추어 볼 때 투자자에게 배상할만한 사례였다. 현재도 우리나라는 민간이 정부의 행정 조치로 권리, 이익이 침해당하면 정부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다. 그래서 법원 판결에 의해 국가가 응분의 보상 혹은 배상을 하기도 한다. 우리나라 법원은 절대 정부의 하수인이 아니다. 몰상식하지도 않다. 이로 인해 공무원들과 정치인들은 정책과 사업을 집행할 때, 또 규제를 만들 때 민간의 정당한 권리, 이익 침해 사태가 일어나지 않도록 주의한다. 나는 한국 법원이 판결을 하든, 외국의 어떤 기구가 판결을 하든 정부 정책으로 인한 배상 수준이 얼마나 다를지 의문이다.

 

게다가 ISD에 대한 극도의 우려 때문에 참여정부는 공공정책에 대해서는 외국인 투자자가 함부로 소송을 걸 수 없도록 치밀한 장치를 해 놓았다. 그나마 ISD는 기회비용 전체를 배상하지 않는다. 실제 일어난 소송도 많지 않고, 그 내용도 결코 심각한 것이 아니다. 제소 당할 만 한 것이 제소 당했다. 황당한 제소는 투자자가 거의 승소하지 못한다고 알고 있다. (필립모리스사가 호주정부 금연 정책(캠페인)에 대해 홍콩법인을 통해 호주 정부를 제소하였고, 이 때문에 미국-호주FTA에서 ISD조항이 빠진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승소 가능성은 거의 없다는 것이 정설이다.)

 

ISD는 이미 80개국이 넘는 나라와 체결되어 있지만 별일 없지 않는가? 나는 ISD는 우리의 규제의 품질을 높이는 계기라고 생각한다. 어차피 모든 일은 위기적 측면과 기회적 측면은 있는데 ISD는 우리의 대응 여하에 따라서 기회적 측면이 더 클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된다. 내가 걱정되는 것은 미국도, 한국 법원이 민간기업이나 투자자의 권리, 이익을 충분히 옹호해 주는 것을 알기에, 한미FTA에서 ISD를 일정 기간 유보하거나 심지어 폐기하는 것도 수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꼭 소송이 필요하면 다른 80개국의 현지 법인을 통해서 얼마든지 할 수도 있다. 문제는 미국이 ISD 관련해서 한국 정부의 입장을 들어주면서 요구할 반대급부이다. 그런 점에서 ISD관련 거의 의미도 없는 양보를 미국에 받아내고, 미국에 엄청난 실리를 주는 것이다. 구체적인 기억은 지워졌지만 김영삼정부 때 우루과이라운드에서 김영삼의 쌀관련 언명--대통령직을 걸고 쌀 개방 막겠다-- 때문에 다른데서 상당히 많은 양보를 한 것으로 알고 있다. 아무래도 ISD는 이렇게 흘러갈 것 같다.

 

8. 나에게 있어서 한미FTA의 의미 내지 기회는 이런 것이다. 잘못된 생각이 있으면 지적해 달라.

 

1) 한미FTA의 최대의 의미는 관세장벽의 인하겠지만, 그 못지않게 큰 의미가 있는 것은 미국의 일방적이고 갑작스런 무역 장벽 혹은 보복에 재갈을 물린 것이다. 한중 마늘파동때 경험했듯이 한국과 중국, 한국과 미국은 시장 규모가 너무나 차이가 나서 상호 무역 보복시 충격이 비교가 안 된다. 한국이 입는 충격이 월등히 크다. 내가 아는 한 현대기아차 등이 한미FTA에 대해 거는 기대의 핵심은 2.5% 수준의 관세율 인하가 아니다. 미국이 과거 일본차의 일취월장 시절에 종종 휘둘렀던 수입 규제를 한국차에 대해서 함부로 휘두르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솔직히 한국에서 팔리는 현대차의 옵션 감안한 차 가격과 미국에서 팔리는 그것을 비교해 보면 미국은 현대차에 대해 언제라도 덤핑 제소를 할 소지가 있다고 생각한다. 슈퍼301조 같은 카드가 언제라도 튀어 나올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FTA 환경이라 하더라도, 긴급 수입제한 조치를 아주 못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까다로운 절차(사전 통보, 협의 등)를 밟아서 할 수 있을 뿐이다. 이렇게 되면 업계로서는 물량조절, 로비, 법적 대응 등 다양한 조치를 취할 수 있는 시간을 벌 수 있다. 한국은 자동차 외에도 대단한 잠재력을 가진 재화들이 많기에 한미FTA틀 내에서 거침없이, 안심하고--한참 잘 나갈 때 수입 제한에 걸려서 엄청난 재고부담으로 기업이 도산할 수도 있다--미국 시장을 질주할 수 있다.

 

미국의 통상관련 규제에 재갈을 물렸다는 것은 한국도 재갈을 물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ISD, 역진방지 등은 그런 재갈의 일종으로 볼 수 있다. 이런 것을 주권 침해라고 하면 맺을 수 있는 국제 조약이 어디 있을지 의문이다.

 

2) FTA는 기본적으로 서로 최혜국 대우를 하는 것이다. 이는 다른 국가를 상대적으로 차별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칠레와 FTA를 맺으면서 교역 조건이 좋아지자, 과거에는 다른 나라에서 수입하는 것을 칠레로 돌렸다. 그래서 칠레로부터 수입이 늘어났다. 게다가 구리 값이 폭등하면서 무역적자가 많이 늘어났다. 하지만 대칠레 무역적자의 대부분은 FTA와 상관이 없는 것이다. 또한 무역적자가 났다 하더라도 그것은 다른 데서 수입하던 것을 (더 싸고 좋은 것을 공급하는) 칠레로 수입선을 돌렸기에 나쁜 것도 아니다. 한미FTA는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최혜국 대우하면서, 중국, 일본 등을 상대적으로 차별하는 것이다. 중국, 일본이 한미FTA에 대해서 떨떠름하게 보는 이유이다.

 

3) 서비스산업에서 네가티브 방식 개방에 대해서도 나는 생각이 좀 다르다. 한국직업사전에 따르면, 2005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직업의 숫자는 대략 8천개(통상적으로 1만2천개) 정도 된다고 한다. 그런데 조사 기관이나 방법에 따라 숫자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일본 대략 2만5천여개(1987년 기준)와 미국의 3만여개(1991년 기준)라고 한다. 이 대부분은 서비스업 일 것이다. 이것이 사실이라면 한국의  양극화 해소 전략이자, 일자리 창출 및 서비스 산업 비중을 올리는 핵심 전략은 벤처중소기업 친화적인 제도 정책과 더불어, 불합리한 創職•創業 장벽(법, 제도, 기술, 금융, 인지도)을 제거하는 것이다. 단적으로 내가 있는 여의도에서도 바로 변호사 기득권 때문에 ‘로비스트’라는 직업 창출이 안되고 있다.

 

미국의 경우 1791년에 제정된 수정헌법 제1조로 로비를 합법화 하였다. “의회는……불만의 시정을 위해 정부에 청원할 권리를 제한하는 어떤 법률도 제정할 수 없다”는 조항이 그것이다. 한국은 로비를 직접 규제하는 법률은 없으나 공무원의 직무나 정치 풍토의 청렴성 보장을 명분으로 변호사법, 정치자금법, 특정범죄가중처벌법 등을 통하여 사회적 약자의 청원권(로비)을 옥죄고 있다. 정확히 말하면 로비를 음성화하거나, 변호사 혹은 김앤장 같은 로펌이 독점하도록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정치생태계가 피폐하게 되다 보니 한국은 변호사, 돈 잘 버는 배우자를 둔 사람, 갑부(자식) 아니면 직업 정치를 하기 힘들게 만들어 놓았다. 한미FTA반대의 선봉에 선 변호사들이 그 에너지의 10%만 돌려도 새로운 직업이 만들어질텐데.......

 

아무튼 한미FTA가 되면 미국의 다양한 서비스업이 들어올 것이다. 아니 들어오도록해야 한다.(물론 그렇게 해도 로비스트라는 직업은 못들어오겠지만.....) 이는 바로 새로운 직업과 고용의 창출로 연결될 것이다.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는 서비스 중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던 금융서비스의 경우, 미국에 회사를 차려놓고 (야동처럼) 인터넷을 통해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한국에서 돈만 빨아가는 방식의 서비스는 틀어막았다. 또한 한국의 금융 규제로 칭칭 감아놓았다. 그래서 한미FTA가 비준되면 미국의 발달된 금융서비스 업체가 한국에 지점을 내지 않고는 영업을 못하게 만들어 놓았다. 이는 바로 고용으로 연결된다. 기존에 땅짚고 헤엄치기 장사로 엄청난 돈을 번 금융기관들의 수익이 줄어들겠지만 그게 무슨 대순가? 이것이 한국의 청년 백수와 미국의 발달된 금융서비스 업체에 가는 것이 왜 나쁜가? 무엇보다도 소비자가 좋다. 어차피 한국 고용의 76.6%, 피용자 소득은 75%, 부가가치는 69.7%는 서비스업에서 나온다. 앞으로도 고용의 대부분은 여기서 나올 수밖에 없다. 물론 핵심은 사회서비스를 늘리는 것이겠지만, 좋은 일자리는 미국이 강세를 보이는 금융서비스나 생산자 서비스에서 나온다. 바로 이런 서비스업이 한미FTA를 계기로 한국에 많이 들어올 것이고, 우리는 이것을 배워 빠른 속도로 따라 잡고 결국은 해외로 진출할 것이다. 문제는 한미FTA협상 과정에서 서비스업에 워낙 방어장치를 튼실하게 만들어 놓아서 미국이 한국 시장에 별 메리트를 느끼지 못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 나는 대단히 걱정하지만 사람들이 별로 거론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한국의 산업, 고용의 이중구조다. FTA는 기본적으로 비교우위론에 기초해 있다. 비교우위 부문은 성장하고, 비교열위 부문은 위축되는 것이 정상이다. 문제는 한국은 산업연관효과, 수출의 고용계수 등이 약화되어있고, 노동시장 역시 귀족시장과 평민시장의 이중구조를 갖고 있기에, 비교우위 부문이 창출한 가치(고용, 부가가치)가 널리 확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는 한미FTA의 최대의 수혜주인 현대기아차에서 전형적으로 나타난다. 현대기아차는 늘어난 물량을 신규 고용이 아니라 잔업, 특근으로 소화해 버린다. 늘어난 수익도 노조와 임직원들의 고임금과 복리후생비로 가져간다. 전후방 협력업체에 대해서는 아주 조금은 나눠 줄 것이다. 자동차 산업이 입지한 지역도 좋을 것이다. 물론 법인세, 소득세, 부가세도 많이 징수될 것이다. 물론 주주 배당과 특수 관계 회사로 이윤 빼돌리기도 일어날 것이다. 나는 비교우위 부문이 신규 고용 창출과 부가가치를 확산하는데 인색한 이런 현상은 한국 최대의 고질병으로 , 한미FTA와 관계없이 고쳐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미FTA 반대 전선이 아니라, 한미FTA로 인한 위기를 최소화하고 기회를 극대화하는 쪽으로 중지를 모으는 것이 진정한 진보의 모습이자 국회의 모습이 아닐까 한다.

 

5) 한미FTA 관련 최대의 우려는 FTA로 인해 각종 장벽이 제거되어 결과적으로 경제가 상당 부분 통합되어 미국적 모순부조리가 한국에 그대로 이식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우려이다. 이는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를 동일시 하면서 생긴 우려이다.  ‘1%의, 1%에 의한, 1%를 위한 사회’로 통칭되는 미국적 모순부조리는 의료, 금융 등 너무 많은 것을 자유시장, 소비자 선택권, 대외 개방에 맡긴 결과라는 것이 중평이다. 그 결과 CEO, 금융자본과 금융전문가, 성공한 벤처기업가들이 엄청난 부를 거머쥐게 되었고 대다수는 실질임금이 늘어나지 않았다. 한편 조세재정 정책을 지렛대로 한 국가의 재분배 정책도 후퇴하고, 외교안보 측면에서는 과도한 개입주의까지 가세하여 이를 악화시키는데 큰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그러나 양극화와 청년세대의 3피(연애, 결혼, 출산 기피)로 통칭되는 한국적 모순부조리는 기본적으로 보수∙진보 기득권의 담합의 산물이다. 미국같이 자유롭고 공정하고 소비자선택권을 철저히 보장한 시장 시스템의 산물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다. 독과점, 내부자거래, 허술한 소비자보호, 이익집단 편향적 규제정책과 재정정책 등의 산물이라는 얘기다. 한국에서 힘센 자들은 시장, 경쟁, 개방, 유연화 등이 대충 비껴가고, 이것은 오로지 힘없는 자들에게만 강제된다. 지금 한국의 노동시장,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자동차 및 유류시장, 통신서비스 시장, 민간보험 시장, 보건의료시장, 유통 시장, 대학과 공공부문, 정치시장, 언론(종이 신문 및 방송)시장 등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핵심 영역은 대체로 소비자선택권과 공급자 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다. 이는 공공성의 원리에 의해 그리 된 것이 아니다. 공공적 의도, 이익집단과 관료의 농간, 발전국가의 잔재, 한국적 특수성(부동산, 교육) 등 오만가지가 뒤섞여 있다.

 

한국의 소극적인 재분배 정책도 지난 30년간 미국 사회를 풍미한 어떤 철학, 가치(신자유주의)의 산물이 아니라, 천민자본주의, 분단국가, 성공한 발전국가 등의 합작품이다. 그런데 한미FTA 반대론의 토대를 형성하는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시장, 경쟁, 개방 등이 과잉인 영역만 주로 보게 하기에, 미국적 모순부조리와 한국의 그것을 구분하지 못하도록 만든다. 무엇보다도 양극화, 청년 실업, 비기득권자에게 기회와 도전의 죽음의 시대에 대한 책임을 전적으로 자본(기업), 시장, 경쟁으로만 돌린다. 그러면서 규제, 복지, 노조강화라는 일종의 진통제만 대안으로 제시한다. 시장의 폭력성에만 주목하다 보니 시장이 가진 건강한 힘을 활용할 비전도 대안도 없다. 한미FTA는 시장을 10배 이상 키우고, 동시에 경쟁과 개방의 건강한 힘을 살리며, 그러면서도 국가와 사회(공동체)도 자신의 역할을 더욱 충실하게 하도록 만든다는 것이 기본 전략이다. 그런데 사물을 평면적으로 사고하는 사람은 시장 영역이 커지면 국가와 사회 영역이 쪼그라든다고 생각한다. 이는 전혀 사실도 아니고 논리적으로도 맞지 않다.

 

9.  나는 한미FTA갈등과 1990년대 후반 이후 지금까지 한국이 겪었던 소모적 갈등을 뜯어보면, 천혜의 자연자원을 보유하고도 내전 상태를 극복하지 못하여 국민을 도탄에 빠뜨리는 아프리카, 중남미 국가들이 한국과 그리 멀지 않다는 것을 느낀다. 소말리아, 북한 같은 실패 국가들을 보면 그 사회에서 통하는 상식이 우리와 너무 다르다는 사실에 경악한다. 해적질, 도둑질, 뇌물이 일상이고, 상식이니까. 그런데 소말리아, 북한을 보고 비웃을 상황이 아니다. 선진국의 눈으로 보면 지금 한국에서도 도통 이해 못할 철학, 가치, 행태가 상식처럼 통용되니까! 단적으로 노동의 양, 질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 교섭력을 따르는 임금체계와 그로 인한 노동시장의 이중구조,  "정리해고, 비정규직 없는 세상"이라는 구호, 고용률이 화두가 되지 않고 비정규직 문제가 핵심 노동 현안이 되는 현실, 9급 공무원 공체에 대졸자들이 몰여 100대 1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월등한 공무원의 근로조건, 심의도 제대로 하지 않는 수천 건의 국회 계류 법안들, 그리고 합법적으로 선출된 정부를 무슨 매국노 집단처럼 여기는 작태와 물리적 의사진행 방해 등이 그런 것이다. 이런 꼴을 보고 있으면 우리 민족이 1945~53년에 그렇게 많은 피를 흘리고, 60년이 넘도록 휴전상태조차 해소하지 못하는 것이 확실한 이유가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차이와 갈등을 해결하는 방법의 극단성과 저열함을 극복하지 못하는 한, 우리의 비참한 노년과 자식 세대의 암담한 청년기는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나는 세계 최악의 출산율과 자살률과 청년세대의 3피(연애, 결혼, 출산 기피) 사태는 환경 변화에 맞춰서 법,제도를 변화시키지 못한 정치에 결정적인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2012년 총대선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있는 민주 진보는 이제부터는, 국민들에게 국가를 믿고 맡길 수 있는 정치집단이라는 느낌을 주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리고 차기 국회와 정부의 생산성을 생각해야 하는 것 아닌가? 악순환의 고리를 누군가는 끊어야 하는 것 아닌가? 언제까지 이럴건가? 백보 양보하여 이것이 당내 경선과 총선(본선)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가? 김대중, 노무현 초상화를 당사 곳곳에 걸어 놓은 정당이 이럴 수는 없다. 백번 천번 고쳐 생각해도 이것은 두 대통령의 정신과 방법이 아니다.-끝-


나는 왜 한미FTA, 한진중공업, 장하준 등에 대해 진보와 생각을 달리할까?(1) by 김대호

 
며칠 전부터 한미FTA, 한진중공업(김진숙, 희망버스 등), 장하준의 지론 등에 대해서 왜 많은 진보 논객및 식자들과 내가 의견을 크게 달리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또한 왜 이리도 우리사회는 선진국이라면 겪지 않을 것같은 소모적인 갈등에 휩싸일까를 고민하고 있다. 그래서 나를 포함한 논자들이 딛고 서 있는 사실, 개인적 경험, 논리 구조, 배경에 흐르는  정서, 핵심 문제의식(주된 대립물 이나 핵심적인 모순부조리) 등을 관조하고 있다. 물론 나 역시 분석 대상이다. 황당감, 당혹감, 낭패감, 분노는 이젠 저 밑바닥으로 가라앉았다. 앞으로 한 동안은 이런 차이와 갈등에 대해 생각을 많이 할 것 같다. 그 동안 내 뱉은 거친 언사들에 대해서 반성한다. 거친 언어를 쓰지 않아도 소모적인 갈등이나 일으키고, 대중을 오도하는 요설들에 대해서는 천둥과 번개 같은 충격을 줄 수 있는데……이거야 말로 내 부덕의 소치다.

 

먼저 장하준 얘기부터 하면. 

내가 왜 장하준의 지론에 대해서 이렇게 격한 반응을 보이는지 생각해 봤다. 그것은 2004년도 부터 장하준 책을 볼 때마다 나는 솔직히 단 한페이지도 그냥 넘어갈 수 없었다. 이 책이 일으킬 패악이 손에 잡혔다. 그런데 많은 사람들이 환호하고, 이 책의 문제점을 잘 알 것 같은 학자들이 아무런 비판글을 안쓰는 것을 보고 당혹스러웠다. 분개했다. 문제의식과 분노는 엄청 쌓였는데 이를 책으로 쏟아내지 못하다 보니 엉뚱한데서 거세게, 거칠게 뿜어져 나와 버렸다.(올 초 장하준 비판서 출판 계약을 해 놓고, 더 가치있는 일을 한답시고 내가 펑크 내버렸는데, 지금 와서 보니 그게 훨씬 더 가치있는 일이었다. 뒤늦게 후회하면 뭐하나 흘러간 시간과 기회는 다시 오지 않으니!!!)  

아무튼  속으로는 분노가 치밀어도 사람들이 감정적 거부감을 느끼지 않게 쓸 수가 있는데…… 이러다 나는 글로 일어난 것도 아니지만, 글로 망할 수는 있겠다는 느낌이 들었다. 

 

장하준에 대한 내 비판글을 읽고도 비판을 위한 비판 글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사람의 논지를 뜯어 봤다.

 

이랬다.

“장하준의 일련의 저작들은 비교우위론에 근거한 자유무역 일반의 효익에 대한 통념에 대해 "꼭 그런 것만은 아니다. 국가간의 격차를 무시한 채 자유무역이 좋다는 것은 선진국들이 자국의 역사적 발전 과정을 덮어준 채, 사마리아인으로 꾸미고 나타나 약소국의 발전 가능성을 훼손하는 악의 손길일 수 있다"는 메시지를 구체적인 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래서 저는 이 책의 모든 내용을 공감할 수는 없었지만 주요한 메시지는 유의미한 것으로 받아들였구여….(중략) 그런데, 선배님의 비판에서는 장하준의 "풍부한 사례" 외에는 받아들일 것이 하나도 없고, 장하준이 경제나 역사나 무역에 대해 무지와 논리적 궤변으로 일관하고 있다는 식으로 비판을 하고 있어서... 일반적으로 건전한 비판이 갖는 정-반-합의 변증법적인 선순환의 궤를 완전히 무시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내 비판의 요지는 장하준의 논지는 멋진 헛스윙이라는 것이었다. 이론적 정합성은 있으나 현실적 정합성이 없다는 것이다. 장하준은 지금 한국 현실이 아니라 그가 만든 가상현실 속에서 살고 있다는 것이다. 학계에서는 이것을 허수아비 때리기라고 하는 것 같았다. 그런데 한국의 현실(핵심 모순부조리)을 장하준과 동일하게 보는 사람에게는 김대호야 말로 “(장하준은) 손가락으로 달을 가리키는 데,  손톱이 길다느니 저 손가락으로는 달을 가리킬 수 없다느니 하는”식의 비판을 일삼는 형편없는 놈이다.

 

내 생각을 정리하면 이렇다.

경제학 교과서에 있는 '비교우위론에 근거한 자유무역의 효익'이 항상 성립한다고 믿는 사람, 시장만능주의자가 있다면, 장하준처럼 몇가지 사례를 들어 "꼭 그렇지 않다"고 얘기 하면 된다. 그것은 정곡을 찌르는 진리다. 그런데 내가 아는 한 한국의 경제사회 정책(한미fta포함해서)은 자유무역에 대한 교과서적 가설을 믿어서 나오는 것이 아니다. 훨씬 복잡하고 다양한 고려를 한다. 과거에도 지금도 미래도. 그래서 오만가지 보호완충 장치를 한다. 한미FTA에서처럼 적응, 응전 기회를 준다. 당사자들은 충분치 않다고 아우성이겠지만..... 사실 인간 사회에 흐르는 믿음 치고 "꼭 그런 것"은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장하준은 허수아비 때리기를 한 것이 맞다. 문제는 장하준이 아니라 장하준이 때리는 허수아비(시장에게 다 맡기면 모두가 잘 살게 될거다는 믿음으로 장하준의 머리 속에서만 존재하는 가상현실)가 진짜 공공의 적이라고 믿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내가 장하준 선풍에 대해 우려한 것은 한국 사회가 여전히 필요로 하는 시장, 경쟁, 개방이 갖고 있는 건강한 힘을 활용하는 개혁에 알레르기 반응(신자유주의다!)을 일으킨다는 것이다. 그 단적인 예가 한미fta에 대한 장하준의 얘기가 먹혀드는 현상이다. 그래서 나는 얼마전 한국의 가계소비 지출 항목을 분석하여 한국사회는 시장, 경쟁, 개방 과잉의 미국사회(1%사회)와 다른 사회라는 것을 논증했던 것이다. 다시 말하지만 지금 한국의 노동시장,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자동차 및 유류시장, 통신서비스 시장, 민간보험 시장, 보건의료시장, 유통 시장, 대학과 공공부문, 정치시장, 언론(종이 신문 및 방송)시장 등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대부분의 영역은 대체로 소비자선택권과 공급자 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물론 이는 공공성의 원리에 의해 그리 된 것이 아니다. 공공적 의도, 이익집단과 관료의 농간, 발전국가의 잔재, 한국적 특수성(부동산, 교육) 등 오만가지가 뒤섞여 있다. 이는 의료 등 너무 많은 것을 자유시장에 맡겨버린 미국사회와 너무 다른 특징이다. 한국적 모순부조리를 개혁하기 위해서는 사민주의, 사회주의의 합리성 핵심 뿐 아니라 자유주의, 시장주의의 합리적 핵심도 필요하다. 규제 강화도 필요하지만 규제 완화도 필요하다. 장하준 선풍은 이런 유연하고 실용적인 정책 행보를 막는 측면이 분명히 있다.

 

그리고 장하준을 비롯한 많은 사람들이 어떻게 한국이 산업대국이 되었는지 잘 모른다는 느낌을 받았다. 장교수 등은 경쟁력이 취약한 산업을 성장, 발전시키는 것은 과거에도 지금도 보호주의라고 믿는 것 같다. 이는 한미FTA반대 논거의 중요 근거다. 

물론 1960~70년대는 많은 산업이 캐치업 단계였다. 당시 선진국은 산업구조조정(사양산업 이전)에 돌입했다. 미국은 후발개도국(특히 반공의 전초기지 한국)에 소비재 시장을 호의적으로 열어주었다. 그 땐 전세계가 사실상 보호주의 정책 기조를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보호주의가 가능했고, 또 효과적이었다. 하지만 그나마 한국 같이 높은 교육수준과 치열한 근로문화와 수출입국 노선(해외 시장에서는 무한경쟁이다)을 가지고 있는 나라만이 그 기회를 잡았다. 남미는 그렇지 못했다.

 

그런데 지금의 통상환경은 1960~70년대와 완전히 다르다. 한국의 산업역량 수준도 다르다. 가장 결정적인 차이는 국제통상환경이 아니라, 우리가 적극적으로 키우고자 하는 신수종 산업이 선진국과 그대로 겹친다는 것이다.  IT, BT, NT, 문화콘텐츠, 전기차, 로봇, 신재생에너지, 소형원전, 신약 등. 그런데 더 큰 문제는 이 산업들이 보호주의를 한다고 해서 성장, 발전하리라는 보장이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선진국도 한국도 간접적인 방식(대학, 국방 등)으로 기초기술 연구를 지원할 뿐이다.

 

지금 한국이 정말로 주시해야 할 것은 유치산업이나 신수종산업과 관련된 보호주의적 규제가 아니다.

지금 한국의 산업과 사회를 발전시키는 관건은 인재, 돈(금융), 관심의 흐름을 바로잡는 것이다. 그 다음이 정부의 조달정책, 재정정책,  wto나 fta가 허용하는 규제정책 등을 잘 구사하는 것이다. 보호주의가 아니라, 인재와 돈이 벤처중소기업으로만 가도록 해도, 한국은 워낙 창의와 열정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서 곳곳에서 세계 일류 상품,서비스를 만들어 낸다. 현재의 시스템은 IT산업(스마트폰 관련 규제, 인터넷 실명제 등)에서 보듯이 오히려 세계 일류에 근접한 분야의 다리를 걸고 있다. 그것도 산업 보호라는 명분으로! 그래서 나는 장하준은 경제, 산업이라는 실물을 잘 모르는, 자기 전공 분야(경제사?)에서만 꽤 인정 받는 학자라는 것이다.

이렇듯 내가 장하준의 지론의 문제점을 매우 날카롭게, 또 심각하게 느끼는 것은 내 전공(?)이 자동차 산업의 역사, 현실—장하준이 많이 인용한다--이기 때문이 아닐까 한다. 내 첫번째 책이자, 내 인생을 바꾼 책이 2001년에 쓴 "대우자동차 하나 못살리는 나라"(사회평론)다. (계속)


우리 시대의 앙시앙레짐, 신자유주의 프레임 by 김대호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우리 시대의 지적 앙시앙레짐이다.

진짜 이적행위?

내가 아는 한 어느 나라든지 FTA나 다자간 무역협정으로 인해 손실을 볼 가능성이 있는 이익집단(특히 농민)들은 격렬한 시위를 한다. 그런데 지금 한국은 히안하게도 FTA로 큰 타격을 받는 특정 상품∙서비스 생산자(특히 농어민, 각종 무역장벽으로 재미보는 재화 생산자)가 반대의 선봉이 아니다. 이들에 대해서는 비교적 후한 보상책이나 충격완화책이 마련됐기 때문일 것이다. 지금 한미FTA 반대의 선봉은 내가 알기론, 1980년대의 철학, 가치, 정서를 그대로 가지고 있는 왕년의 운동권 출신들이다. 이들이 결사 반대의 기치를 높이 드는 핵심 명분은 한미FTA도 을사늑약처럼 불평등조약이라는 것, ISD(투자자 국가소송제)는 규제 주권 상실을 초래한다는 것이다. 이면에는 한국은 법대로, 미국은 멋대로 할 것이라는 우려가 깔려 있다. 이는 결국 한국 좌파가 신자유주의의 전형으로 여기는 미국적 경제사회시스템이 한국 사회에 불가역적으로 이식 된다는 것이다. 물론 나는 이 모든 판단들은 오버도 보통 오버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한미FTA는 그 내용도, 추진 과정도, 재협상 과정도 비판적으로 검토할 요소가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비판, 반대 행위 자체를 뭐라 하는 것이 아니다. 다만 민주당식의 반대 행위, 즉 궁색한 말 바꾸기, 전형적인 뒷북치기(그나마 제대로 치지도 못하지만.....), 여전히 결여된 실사구시, 과도한 침소봉대, 이완용이니 매국이니 하는 폭언, 상임위 점거농성 등이 정말로 잘못됐다는 것이다. 나는 민주당의 이런 후진적 저지 행위야 말로 한나라당에 등 돌리고 민주당을 기웃거리는 민심을 두들겨패서, 결국 미워도 다시 한번 한나라당과 박근혜를 대안으로 삼게 만드는 그야말로 이적행위라고 생각한다. 이런 대치 상태는 하루에 대충 1% 정도의 민심을 민주진보로부터 이반하게 할 것이기에 대치가 길어질수록 한나라당은 쾌재를 부르지 않을까 한다.


 한미FTA 반대의 뿌리

물론 민주당 의원들도 속 깊은 사람들이니만큼 이런 과격한 행위를 하는 이유가 분명히 있을 것이다. 그 핵심은 민주당과 민노당 지지자들의 상당수,즉 1970~80년대 운동권의 정서적 영향력하에 있는 지지층들이 ‘한미FTA반대’를 강하게 요구하기 때문일 것이다. 이 층이 한미FTA를 반대하는 이유는 기본적으로 직관과 정서 때문일 것이다. 사실 역사를 바꾸는 다수 국민들의 투표 행위도, 대중시위도, 심지어 폭력 혁명도 기본적으로 대중적 직관과 정서로 한다. 따라서 한미FTA에 대한 찬성이든 반대든, 한나라당에 대한 지지든 반대든 대중적 직관과 정서로 하는 것은 이상한 일이 아니다.

내가 오늘 비판적으로 검토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 직관과 정서이다. 어떤 사람은 이 직관과 정서의 핵심을 반미, 반자본주의 정서라고 본다. 또 어떤 사람은 우리는 (미국이 강요한) 법대로 해야 하고, 저들은 (그나마 합의한 법도 지키지 않고) 멋대로 할 것이라는 시대착오적, 위상착오적 피해의식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어른이 됐고, 미국도 국제적 경제(무역) 규범을 함부로 어기지 못하는 상황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이 원조를 받던 수십년 전의 의식에서 헤어나오지 못하고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이런 직관과 정서가 주된 요소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가 볼 때 한미FTA반대 투쟁에 가장 많은 에너지를 공급하는 원천은 1%에 의한, 1%를 위한, 1%의 사회를 불러온다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두려움이다. 다시말해 그렇지 않아도 한국에는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고 있는데, 한미FTA로 인해 그것이 되물릴 수 없는 초강력 태풍으로 변하여 주권과 공공성을 뿌리채 뽑아버리지 않을까하는 우려이다. 그러므로 '이 시대 한국사회의 모순부조리의 핵심은 신자유주의다'라는 통찰, 아니 거대한 착각이야말로 소모적 대립, 갈등의 주된 원천이라고 생각한다. 이런 거대한 착각을 벗어던지지 않으면 대한민국의 미래도, 진보의 미래도 없다고 생각한다.


우리는 시장에 너무 많이 맡긴 사회인가?

한국 진보(좌파) 성향 지식인들이 너무나 많이 채택하는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우리 사회의 수많은 모순부조리는 개인과 기업의 이익•이윤•탐욕 추구의 자유를 너무 풀어놓은데서 연유한다고 본다. 바로 여기서 승자독식, 양극화, 과도한 경쟁, 고용불안, 비정규직, 인색한(잔여적) 복지 등이 연유한다고 본다. 따라서 대안의 핵심은 개인의 탐욕과 이것이 자유롭게 날뛰는 시장, 경쟁, 개방, 자유화, 유연화에 규제라는 고삐를 채우고, (보편적) 복지로 이 충격을 완화하는 것이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과연 한국은 시장과 경쟁(소비자선택권)에 너무 많은 것을 맡긴 사회일까? 우리의 가계부를 가지고 검증해 보자. 통계청이 내 놓는 가계의 평균 소비지출은 일종의 국민 가계부의 종합(평균)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20년 동안 가계(도시, 2인이상)의 평균 소비지출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먼저 평균 가구원수는 4.00명에서 3.29명으로 줄었다. 가구주 평균 연령도 39세에서 48.52세로 거의 10세가 늘었다. 총 소득은 94만에서 367만원으로 3.9배 가량 늘었고, 그 중 근로소득은 58만원에서 240만원으로 4.1배가량 늘었다. 한국은 전반적으로 격차가 큰 사회다 보니 평균이 현실을 속이는 경우가 많아서 한꺼플 더 벗겨보면, 이 통계도 ‘근로자 가구’와 ‘근로자 외 가구’의 격차가 심하다. 근로자 가구는 평균연령 45.31세에 월 소득은 401만원이고, ‘근로자 외 가구’는 53.46세에 월 315만원이다. 한국에서 중요한 차이를 뭉뚱그려 표현하는 평균값은 현실을 오판하게 하는 경우가 무척 많지만, 여기서는 그 차이가 그리 중요한 것이 아니기에 전체 가구 평균만 살펴보자.

 

  

 

 평균적 가계 지출은 75만원에서 300만원으로, 가계 소비지출은 60만3,126원(1990년)에서 231만2540원(2010년) 으로 3.83배 늘었다. 지출 비중 순으로 보면 식료품˙비주류음료(총소비지출의 13.8%, 31만9704원, 1.99배 증가), 교육비(13.3%, 6.18배), 음식,숙박비(12.8%, 6.00배), 교통비(11.6%, 5.63배), 주거수도광열비(10%, 3.85배), 기타상품서비스-민간보험, 이미용서비스 등-(8.8%, 4.79배), 보건비(6.6%, 4.05배), 의류신발비(6.4%, 2.50배), 통신비(6.0%, 10.55배) 순이다.

요금(비용)에 대한 강력한 공공통제가 행해지는 항목은 주거비를 제외한 수도, 광열비, 보건비(6.6%), 담배 정도이다. 물론 세금, 연금, 사회보험 등이 주요하게 포함된 비소비지출에도 강력한 공공통제가 가해진다. 따라서 이 쪽 지출은 수요의 양적, 질적 증가(고급화)를 감안하면 별로 늘어나지 않았다고 보아야 한다. 단적으로 전기요금처럼 올려야 할 것을 너무 올리지 않아서 문제다. 1982년~2010년 기간에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240% 였지만 전기요금은 18.5% 상승했을 뿐이다. 이는 가계와 산업현장에서 엄청난 전기 과소비(낭비)를 부르고, 2008년 이후부터는 한전의 천문학적 적자를 초래하였다. 물론 이 적자는 세금으로 메워주고 있기에, 전기를 많이 사용하는 순으로 국민 세금을 많이 지원 받는 황당한 일이 펼쳐지고 있다.

한편 거의 완전경쟁 상태로서 무한한 소비자 선택권을 누리는 분야는 음식.숙박비(12.8%), 의류.신발비(6.4%), 오락.문화비(5.6%), 가정용품.가사서비스(3.8%)--가전기기, 가사소모품, 가구 및 조명--관련 분야다. 이 시장들은 완전(글로벌) 경쟁 시장이다. 그런데 음식.숙박비의 98%(290,943원)를 차지하는 식사비=외식비는 20년 동안 6.06배 증가하였는데, 이는 소비의 양적, 질적 증가와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하지만 그와 더불어 애초부터 시장원리가 잘 통하지 않는 상가임대료 인상과도 관련이 있다. 도심 요지 토지, 상가 소유자들에게 과세도 잘 안되는 엄청난 지대(자산 소득)을 선사했다는 얘기다. 

평균 30만7천원을 차지하는 교육비는 학원및 보습학원비 181,112원(7.69배), 고등교육비(대학교육 이상) 69,517원(8.93배), 중등교육비 23,756(1.91배), 초등교육비 18,716(4,34배)로 구성되어 있다. 증가를 주도한 것은 지난 20년 동안 7.69배 오른 학원 및 보습학원비와 8.93배 오른 고등교육비다. 단독으로 가계지출의 7.8%를 차지하는 &lsquo;학원 및 보습학원비 관련 시장은 거의 완전경쟁 시장이다. 이로 인해 한국 학원(사교육)은 세계 최고의 경쟁력을 가지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기본적으로 교육시험 사다리 외에 다른 사다리(특히 시장/산업 사다리)가 무너지고, 교육시험 사다리에 너무 많은 프리미엄이 제공되면서 생긴 제도적 실패의 산물이다. 다시 말해 고시,공시출신자, 국가공인자격증(의사, 약사, 한의사 등) 소지자, 전임교수, 박사, 유학경력자 등 교육시험 사다리의 승자들에 대해 국가와 사회가 너무 많은 권리, 이익을 주었기 때문이다. 뒤집어 말하면 교육시험 사다리를 타고 높이 올라가지 못한 자를 너무 배제하고 차별했기 때문이다. 아무튼 한국에서는 사법고시에 패스한 1만여명의 엘리트가 대한민국의 행정부(대통령), 입법부, 대법원, 헌법재판소, 중앙선관위 등 5부 요인과 유력 정당 대표의 대부분을 장악하며, 정치 신인의 상당수도 이들이다.

  

 
고등교육비를 팽창시킨 사회구조는 이 외에도 대학진학률 상승, 강고한 대학 서열체제, 지방대의 전반적 2~3류화 및 서울 및 수도권대학의 전반적 1류화, 물가상승률을 훨씬 상회하는 일방적인 등록금 인상 등을 초래하였다. 그리고 고등교육 전반에 대해 소비자선택권과 공급자 경쟁원리가 잘 통하지 않도록 만들었다. 단적으로 높은 서열의 대학과 서울소재 대학은 별다른 노력없이 우수한 학생을 쓸어가고, 낮은 서열 대학과 지방소재 대학은 여기에 대항할 방법이 별로 없다. 학생과 학부모들은 수도권 명문 사립대학의 일방적인 등록금 책정에 저항할 방법이 없다. 한번 선택하면 되물림(편입학이나 자퇴) 비용이 너무 크다. 정보의 비대칭성도 심하다. 수시 입시가 시작되면 모집정원의 100~200배가 5~10만원 수준의 입시 전형료(원서대)를 낼 수 밖에 없지만 그 원서대의 적정성을 물을 방법이 없다. 대학들은 그야말로 가을에 낙엽쓸듯이 돈을 쓸어담는다. 교육 분야에서 시장원리가 안통하는 곳은 이 뿐이 아니다. 아무리 우수한 시간강사도 그 실력만으로 전임교수가 되기가 쉽지 않다. 최근에는 아무리 우수한 기간제 교사도 비슷한 운명이 되어가고 있다. 


식품안전(검역 등) 관련 규제가 많은 식료품;비주류음료(13.8%) 관련 품목은 육류 46,479원(2.17배), 채소및 가공품 39,183원(1.8배), 과일및 가공품 38,503원(2.58배), 유제품 및 알 29,250원(2.31배), 당류및 과자류 22,006원(3.24배), 빵및 떡류 20,266원(3.78배), 곡물 18,774원(0.65배) 등이 주요한 품목이다. 그런데 이 제품들은 생산, 수입, 유통 과정에서는 상당한 독과점 이익이 발생한다고 알려져 있다. 선진국의 경우 이를 국내 생산자 대부분이 참여하는 협동조합에 이 이익이 가도록 하는데 한국은 이를 소수(대기업, 농협 중앙회)가 가져가도록 하였다. 게다가 최근 들어서는 대형 할인점, 백화점, 대형마트, SSM 등이 재래시장과 동네슈퍼를 초토화시키면서 지역별로 유통망 독점이 발생한 곳이 많다. 이래저래 대형 유통업자의 힘이 강해지면서 중소규모 입점자(생산자, 수입업자)에 대한 약탈이 극심하다고 알려져 있다. 그 와중에도 제일제당 등 재벌계 3개 회사가 근 30년간 시장을 과점해 온 설탕은 각종 규제(과거에는 설탕공장이 있어야 판매할 수 있었다)와 고율의 관세장벽에 힘입어 오랫동안 독점 이익을 누려왔다. 2011년 9월에야 비로소 35%의 관세가 5%로 인하되었는데, 3개 회사는 산업이 붕괴된다고 아우성이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곳이 한 두곳이 아닐 것이다. 아마 이런 분야를 깨뜨리는 해머가 바로 한미FTA일 것이다.


한편 세상이 다 아는 독과점 품목도 있다. 단적으로 교통비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자동차와 운송연료이다. 자동차는 현대기아자동차가 국내시장의 70~80%를 차지하고, 운송연료는 SK에너지, GS칼텍스, 현대오일뱅크, S-Oil의 4개 기업이 98%의 시장을 점유하고 있다. 이들 간에 시장 점유율 변화는 별로 없다. 정유 4사는 1997년 이후 공정거래법 위반을 22차례나 하였지만 소액의 과징금을 물고 끝냈다고 알려져 있다.(공정거래위는 거액의 과징금을 때리지만, 결국 소송을 통해서 이 금액이 대폭 줄어든다) 1990년대 말 석유수입 관련 규제 완화로 타이거 오일 등 몇 개의 석유수입 업체들이 출현하여 2002년에는 9.2% 가량의 시장점유율을 기록하였지만, 기존 업자들이 완제품 수입관세를 올리고, 품질 기준, 생산 및 유통 기준 등을 올리는 바람에 이들 업체들을 대부분 고사하였다. 이 역시 한미FTA가 비준되면 규제를 가지고 신규 진입자를 축출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무튼 소비량의 증가와 독과점 가격(환율 변동시 극명하게 드러난다)에 따라 지난 20년 동안 가계의 운송연료비 지출은 무료 18.07배 늘었고, 자동차 구입비는 4.24배 늘었다.


지난 20년 동안 11.2배가 늘어난 통신서비스 시장도 만인이 아는 독과점 영역이다. 8.6배 늘어난 민간보험 분야는 정보의 비대칭성이 심하여 소비자보호-공공개입이 정말로 필요한 영역이지만 정부의 단호하고도 세심한 규제의 손길은 아직 나타나지 않고 있다. 이 역시 한미FTA 협상 과정에서 규제가 합리적으로 정비되었을 것이다.

한편 토지, 토지이용 계획, 금융, 자가구매 수요(소득) 등이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돌아가야 형성되는 부동산(토지, 주택, 상가) 시장은 애초부터 생산자가 자유롭게 경쟁하고, 소비자가 무한한 선택권을 누리는 그런 시장이 아니다. 그런데 국가의 공공규제 실력은 시원치않고, 경기부양 욕심에 눈이 멀어서 엄청난 패악을 거의 주기적으로 연출하였다. 금융서비스 중 제1금융권(은행)은 안정성을 빌미로 인위적으로 만든 독과점 구조에 힘입어 너무나 쉽게 많은 이익을 올리고 있다. 정말 한국 금융(은행, 감독관료 등)의 부조리함은 점거시위가 벌어지는 미국 월가(Wall street) 보다 결코 뒤지지 않을 것이다. 노동시장은 10~20% 귀족 노동시장(대기업, 공공부문)과 80~90%의 평민노동시장으로 구분되어 있다. 이는 노동의 양, 질을 반영한 것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 안정성과 공무원의 이해관계, 힘을 반영한 것이다.


요컨대 지금 한국의 노동시장, 금융시장, 부동산시장, 자동차 및 유류시장, 통신서비스 시장, 민간보험 시장, 보건의료시장, 유통 시장, 대학과 공공부문, 정치시장과 언론(종이 신문 및 방송)시장 등 우리의 삶을 규율하는 대부분의 영역은 대체로 소비자선택권과 공급자 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다. 노동의 양, 질과 처우가 맞지 않는다. 전반적으로 기여, 부담과 권리, 이익의 균형이 맞지 않는다. 불로소득(권리)가 너무 많다. 이것은 미국과 확연히 다른 것이다. 한국은 신자유주의가 좋아한다는 과잉시장, 과잉경쟁 상황 보다는 오히려 그 반대가 주된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독과점과 불공정 거래가 판을 치고, 소비자 보호가 너무 미흡하여 소비자 약탈이 극심하다는 얘기다. 당연히 이 영역 바깥에서는 그야말로 글로벌 경쟁의 파도가 거세게 밀려오고 있다. 경쟁이 너무 극심하다. 보호 규제도 너무 적다. 너무 유연하다. 정말 신자유주의 광풍--정확한 개념인지는 의문이지만--이 불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문제는 10~20%의 높고 안정적인 처우와 80~90%의 낮고 불안정한 처우가 별개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동전의 양면이라는 얘기다.

  

 
문제는 이중구조 사회

한국 사회는 거의 모든 분야가 이중구조로 되어 있다. 진보와 보수를 초월하여 힘있는 존재들이 사는 곳은 시장, 경쟁(소비자 선택권), 개방화, 유연화가 너무 적다. 보호규제(진입장벽, 경쟁제한장벽)가 너무 튼튼하다. 당연히 기여, 부담에 비해 너무 큰 권리, 이익을 누린다. 전후방 가치생산생태계를 약탈한다는 얘기다. 노동시간도 너무 길다. 우리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 및 외부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처우를 누린다. 당연히 이곳에서는 해고가 살인으로 된다. 때문에 기업은 고용(직영)에 대한 공포가 극심하다. 힘없는 존재는 완전히 그 반대다. 중소기업 노동자, 식당아줌마, 건설노가다를 보면 알 수 있듯이 사회적 약자들의 노동시장은 너무 개방되어 있다. 너무 불안하고, 유연하고, 보호규제는 적고, 노조의 보호도 적다. 해고를 살인이라고 하는 사람은 없다. 그것을 편안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없지만......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용에 대한 공포, 긴 노동시간, 종업원들의 우리의 생산력(1인당 월 200만원, 년 2400만원, 2010년 기준) 수준에 비해서도, 외부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훨씬 높고 안정적인 처우 요구 등은 괜찮은 일자리 창출을 가로막을 수 밖에 없다. 이는 고용률을 낮추고, 임금근로자 비율을 낮추고, 불완전 고용인력을 늘릴 수 밖에! 그 결과 한국은 근로소득세 면세자들이 너무 많다. 사회보험의 사각지대도 너무 크다. 중위 소득 기준 저임금 노동자도 너무 많다. 요컨대 한국의 과잉 시장(경쟁)-과소 시장(경쟁), 과잉 개방-과소 개방, 과잉 보호-과소 보호, 과소 유연성-과잉 유연성 등은 기본적으로 동전의 양면이다.


평균의 사기

이중구조인 한국 사회는 평균을 내면 대체로 너무 유연하고, 너무 개방되어 있고, 보호규제도 적고, 노조 조직률도 낮게 나온다. 특히 힘없는 사람의 눈으로 보면 그렇다. 그래서 평균에 속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평균의 베일을 벗겨버리면 공정, 공평, 공생(연대과는 담쌓은 진보와 보수가 합작한 이중구조 사회가 나온다.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한국 사회의 맨얼굴이 나온다. 당연히 좌파적 개혁과 우파적 개혁의 결합 병진이 필요하다. 한국 사회를 평균 값으로 만 파악하는 자들, 실물을 모르는 강단 좌파들은 펄쩍뛴다. 신자유주의 광풍이 불고 있는데 시장, 경쟁, 유연화, 자유화 등 우파적 개혁이 왠말이냐고! 이들은 한국의 조직노동과 유럽의 조직노동의 차이를 모른다. 실물을 접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유럽 조직노동은 계급적, 산업적 연대성과 공평성을 내면화하여 노동의 양, 질이 비슷하면 처우가 비슷하도록 만들었다. 하지만 한국의 조직노동은 기여, 부담과 권리, 이익의 균형을 생각하지 않는다. 외부노동시장과 좋은 곳의 엄청난 격차를 당연시한다. 수익성, 교섭력이 허용하면 신의 직장을 만드는 것을 이상으로 생각한다. 자본과 손잡고 양극화를 심화시키기 위해 치열하게 노력한다. 자신의 위상도 모르고, 자신이 만들고 있는 사회가 어떤 사회인지 모른다. 

한국 사회가 황당한 것은 가해자들이 피해자의 피눈물을 근거로 자신의 기득권을 더욱 강고하게 옹호한다는 것이다. 평균적으로 한국 노동시장은 너무 유연하고, 노조 조직률도 너무 낮으니,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철밥통은 절대로 건드리지 말고, 정부는 친노조--대기업, 공기업은 삼성과 포스코 빼고 거의 다 조직되어 있다--정책을 취하라는 식이다.


신자유주의 프레임을 타도하라!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한국 사회에서 시장영역만 주시하게 만들며, 특히 시장, 경쟁, 자유화, 유연화, 민영화의 과잉으로 인한 패악에만 예민하게 만든다. 당연히 이 가치들의 과소로 인한 패악에는 둔감하게 만들어, 이들이 가진 건강한 힘을 제대로 활용할 수가 없게 만든다. 그런데 가계부(가계지출 구조) 창을 통해서 보면 알 수 있듯이, 한국 사회는 자원을 최적으로 배분하는 시장원리, 경쟁원리, 소비자선택권이 안통하는 곳이 너무 많다. 자유화, 유연화가 필요한 곳도 너무 많다. 그런데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시장, 경쟁, 자유화, 유연화가 가진 힘을 활용하려는 제반 움직임을 신자유주의로 낙인을 찍어 거부감을 폭풍처럼 불러일으킨다. 또한 개입 지점, 시기, 정도를 정하여 신축자재하게 운용해야 할 공적규제를 아주 경직되게 운용하도록 한다. 물론 신자유주의가 풍미하던 1980년대 영국, 미국에서는 아마도 정반대의 편향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한국은 관료와 이익집단의 이해와 요구에 복무하는 수많은 불필요한 규제를 혁파하는 것과 꼭 필요한 규제는 적절하게 운용하는 문제를 고민해야 하는 상황이다. 한편 신자유주의 프레임은 시장이 아닌 국가와 사회가 해결해야 할 모순부조리를 제대로 보지 못하게 한다. 단적으로 헌법, 선거법 등 권력 자원을 배분하는 문제와 사회적 연대로 풀어야 할 문제(연대임금제 등)를 경시하게 만든다. 물론 신자유주의 프레임도 국가(민주주의)의 기능과 역할에 관심이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장 규제와 조세재정(복지) 관련된 것 뿐이다. 
 

 '앙시앙레짐'은 원래 프랑스혁명 전의 구체제를 지칭한다. 그냥 구체제가 아니라 혁명을 부르고, 혁명적으로 타도해야 할 구체제를 말한다. 신자유주의 프레임으로 한국 사회를 진단하는 자들은 우리 시대 최악의 앙시앙레짐을 신자유주의라고 생각한다. 미국적 모순부조리와 한국의 그것이 비슷하다고 생각하는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나는 이들이야말로 앙시앙레짐이라고 생각한다. 반신자유주의를 핵심정체성으로 한 낡은 철학, 가치, 비전과 이를 전파하는 진보 매체들과 지식사회가 바로 우리 시대의 '앙시앙레짐'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신자유주의 빼놓으면 정치적 문장 구성이 안되는 자들, 신자유주의 반대를 고창하는 자들이라고 생각한다. 거칠게 말하면 이들은 지적 외눈박이나 좌반신만 쓰는 중풍환자다. 실물을 모르는 자, 한국과 미국의 차이를 모르는 자들이다. 이중구조를 사상하고 뽑아낸 평균에 현혹당한 멍청이들이다.  그렇다고 해서 나는 시장에 대한 적절한 규제와 복지의 획기적인 강화 마저 반대하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한국은 우파적 개혁이 잘돼야 좌파적 개혁이 잘되고, 좌파적 개혁이 잘되야 우파적 개혁이 잘되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은 좌파적 개혁 하나면 되는 대충되는 1%사회(?) 미국과는 전혀 다른 사회다. 그러므로 한미FTA는 양극화를 촉진하는 것이 아니라 완화할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하지만 시장, 경쟁, 자유화, 유연화의 한계를 보지 못하고, 끝없이 계속 가면 지금 미국이 앓고 있는 모순부조리가 재연될 수 밖에 없다. 아침에 등산 하러 갔는데, 일찍 올라간 사람들이 내려와서 등산로 입구 막걸리 집으로 간다고 덩달아 막걸리 집으로 갈 수는 없다. 우리의 발전단계, 우리의 과제, 우리의 역량, 우리의 길이 있다. 위기와 기회는 우리 하기 나름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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