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때 학생 운동을 같이 한 동기가 이번에 전주 보궐 선거에 출마한다고 한다. 며칠 전 출마 기자회견을 했다. 평소 비슷한 길을 걸은 동기들 모임에 거의 안 나오다보니 그리 친한 편은 아니다. 하지만 질풍노도의 시대에 ‘소수 극렬 불순 학생’으로 살았고, 또 비슷한 시기에 징역도 살았기에 오랜 만에 만나도 흉허물이 없다. 성품이 시원시원하고, 이른바 품성이 좋은 친구다. 뚝심이 있고 실속이 있는 친구다. 석사에 기술사니까 같은 코스를 거친 공대 동기 중에는 가방끈이 비교적 긴 편이다. 학생운동 동기들 대부분은 징역 갔다 와서, 공장에 위장취업하고, 나와서는 노동단체나 재야단체를 하고, 뒤늦게 학원강사를 하거나, 회계사 자격증을 따거나, 한의대를 가거나, 기업에 취직을 하는 코스를 밟았다. 그런데 이 친구는 상대적으로 일찍 전공을 파고들었고, 몇 년간 취직한 후 창업을 해서, 비교적 성공적으로 소기업을 운영하고 있다. 지금 둘러보니 비슷한 코스를 거친 동기들 중에서 기업 CEO를 하는 친구들이 몇 명 되는데, 비교적 견실한 기업의 오너는 이 친구 하나 밖에 없는 것 같다. 1985년 가을이던가? 이 친구 옥바라지하던 여동생을 학교(일명 공대깡통 식당)에서 잠깐 봤는데, 토목공학 전공책을 넣어달라고 해서 넣어준다는 얘기가 인상 깊었다. 그 때 많은 다른 징역 친구들은 공장 갈 생각을 하고, 주로 인문사회과학 책(주로 마르크스 경제학, 철학 책)을 넣어달라고 했는데……. 그러고 보면 공학도로서 궁극적으로 가야 할 길이 어떤 길인지 뚜렷하게 느끼고 있었던 것 같다. 확실히 견실한 친구다.
어쨌든 내가 그 곳 유권자라면 아마도 이 친구를 찍지 않을까 한다. 아는 놈이어서 그런 것도 있지만, 민주당과 범진보 세력에 만연한, 실물과 유리된 인문사회계 특유의 편향성을 시정하는데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 것 같아서다. 하지만 그리 흔쾌하게 찍지는 않을 것 같다. 참여정부와 범진보 세력의 동반 몰락이라는 대사건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어 뵈고, 또 건강한 정치생태계 내지 정치적 기풍 형성에 역행하는 것 같아서다.
내가 뜨악해 버린 것
내가 이 친구 출마(공천신청) 의사를 알게 된 것은 2월 말이던가 3월 초던가? 다른 한 친구에게서 전화를 받고서다. 용건은 이 친구의 공천을 지지하는 사람들 서명을 받는데, 이름 좀 빌려 달라는 것이었다. 지지하는 사람이 많아 보여야 된다나……. 좀 황당하고 마뜩찮았지만 그래도 20여 년 전에 같이 투쟁한 친군데, 값도 얼마 안 나가는 내 이름 석 자 못 빌려주랴 해서 잠깐 머뭇거리다가 OK했다. 물론 공천에 거의 영향을 주지 못한다는 것쯤은 알고 있다.
사실 내가 다닌 대학에서 그 친구가 나온 토목과는 공대치고는 정치인이 많은 과이다.(뒤에 알았는데 토목과는 정부를 상대로 하는 사업이 많아서 그 과 출신들은 전혀 일면식이 없어도 정치를 하겠다는 사람이 있으면, 당에 상관없이 흔쾌히 물심양면으로 밀어주는 것이 전통이라고 한다. 이를 진작 알았다면 나도 토목과 갈 걸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농담))
그런데 2004년 열린우리당 총선(경선)에도, 2008년 총선에도 적어도 이 친구보다는 나와 술 많이 마셔보고, 얘기도 많이 해 보고, 학생운동, 노동운동도 꽤 열심히 한 토목과 선배, 후배가 있었으나 지지자 명단에 이름 넣어달라는 부탁을 받은 적이 없다. 2008년 총선, 경선에 나간 내 지인들이 수십 명은 족히 되었으나 아무도 이름 빌려달라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좀 황당했다. 2년 쯤 전에 그 친구 회사에도 가봤고, 또 지난 몇 년간 그 친구의 근황도 좀 알다 보니 전격적 출마선언이 더 황당하게 느껴졌다. 어쨌든 출마선언문을 보니 이런 내용이 큰 글씨로 씌어있다.
○○○이 걸어온 길
**에서 초중고를 졸업했습니다.
민주화운동을 했습니다.
1등 토목기술사가 되었습니다.
(**사건으로 2년여 옥고......)
10년간 CEO로 일했습니다.
(아름다운 재단 아름다운1% 100인 위원, 주)**대표이사)
젊고 참신한 기호2번 ○○○
출마선언문 내용을 보니 이런 내용이 씌어있었다.
저 ○○○은 이공계 전문가로서 전국 52개 대학의 토목공학 관련 교수 300여명, 토목분야 전문가(기술사, 박사, 대기업 임원) 1300여명, 이공계분야의 대표적인 전문가 조직인 한국 기술사회가 저의 공천과 당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저 ○○○은 80년대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으로 2년여의 옥고를 치렀으며 2년여에 걸친 도피 생활을 하였습니다. 동시대 학생운동 선후배 900여명이 저의 출마와 당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이재정 전통일부장관, 박형규목사,이해학목사, 지선스님등 대표적인 재야 지도자들도 저의 출마와 당선을 지지하고 있습니다. (중략)
이명박 정부의 잔여임기동안 엄청난 예산이 토목관련 사업에 투입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할 전문역량을 가진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한계에 부딪힌 한국 경제의 유일한 활로는 남북관계의 획기적 개선을 바탕으로 한 대북SOC 투자입니다. 민주당의 전통적 노선에도 부합하며 민주당 재집권의 핵심 전략이라고 생각합니다.
내 이름도 학생운동 선후배 900여명에 들어 있을지 모르겠다.
출마선언문은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이름들과 사건들과 친구들을 상기시켰다.
이재정, 박형규, 이해학, 지선 참 오랜만에 들어보는 이름이다. 그런데 이 친구의 출마선언문 내용에서 내가 ‘이거 괜찮다’고 끄덕인 것은 “이명박 정부의 잔여임기동안 엄청난 예산이 토목 관련 사업에 투입될 것입니다. 이에 대해 비판하고 견제할 전문역량을 가진 정치인이 필요합니다.” 이 구절이다. 나머지는 대체로 뜨악하고 씁쓸했다.
성조기, 태극기, 해병 복장의 노인들과 386세대
그것은 무엇보다도 너무나 빛바랜 훈장을 쩔렁이면서 나타났기 때문이다. 20여 년 전의 옥고-그 때 같이 했던 선후배들의 지지선언-재야 어른들의 지지 서명이라는 민주화투쟁의 훈장을 단 ○○○과 성조기와 태극기를 들고 무공훈장을 달고 해병 복장으로 나타나 서울 시청 앞에서 반미친북좌파 척결을 외치는 노인네들과 무엇이 다를까 하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물론 그 훈장을 인정하고 감동하는 사람은 동시대 사람들 중에는 적지 않을 것이다. 한때나마 대한민국의 시대정신을 온 몸으로 받아 안은 징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의 젊은 사람들의 눈으로 보면, 또 상대방의 눈으로 보면 소련 해체 후 레닌, 스탈린 초상화를 앞세우고 훈장을 주렁주렁 달고 모스크바 붉은 광장을 행진하는 노인네들의 한국판으로 보일 것이다.
그런데 가장 결정적으로 나를 뜨악했던 것은 참여정부와 범진보 세력의 동반 몰락이라는 대사건으로부터 배운 것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20여년 전의 민주화운동과 지금의 세속적 성공(토목전문가+ CEO) 정도면 충분히 새로운 정치를 할 수 있는 자격이 있다고 자부하는 태도가 그것이다. 
대선, 총선은 소련 붕괴와 같은 대사건
나는 지난 대선과 총선, 그리고 촛불사태와 이명박 지지율의 격심한 요동은 1990년을 전후한 시기의 소련, 동구권 붕괴와 같은 대사건이라고 생각한다.
언뜻 보면 대선, 총선을 계기로 진보에서 보수로 권력이동이 일어났기에, 민주개혁진보 세력의 철학, 가치, 정책, 문화, 헤게모니만 파산한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찬찬히 뜯어보면 1961년, 1987년, 1997년을 계기로 형성된 대한민국의 진보와 보수가 구축한 시스템과 이념, 문화, 리더십이 같이 파산한 것이다. 보수는 운 좋게도 정치사회적 지각 변동기에 정치권력을 담당하지 않았기에 정치권력을 주웠을 따름이다.
물론 더 심하게, 더 확연하게 파산한 것은 민주개혁진보 쪽이다. 이들은 그야말로 혁명을 당했다고 할 수 있다. 대중들은 누구나 다 아는 상식, 징후, 분노를 지배적 정치사회 세력과 전문가들이 대격변이 있고 나서야 비로소 아는 것은 혁명기의 특징이다. 단적으로 진보 쪽의 상당수 정치인과 전문가들은 한국 대선은 결국에는 51 vs 49 게임으로 간다고 자신했다. 민노당은 가짜 진보 망하면 진짜 진보가 득세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말 지난 수십 년간 유지되어 온 진보(민주개혁진보 총칭)의 이념, 간판상품, 주도적으로 구축한 시스템, 성공신화는 확실히 파산했다.
지난 수십 년 동안 진보의 간판상품 중의 하나는 노조와 노동운동이었다. 진보의 비전은 노동의 힘을 강화해서 자본과 시장과 권력의 폭력을 완충, 제어하여 살만한 세상으로 만드는 것이었다. 그러나 현실은 한국 노조운동의 주력인 대기업, 공기업 노조는 그 강력한 힘으로, 때론 자본과 담합하여, 전후방 가치생산사슬을 약탈하여 가치생산 생태계의 건강성을 위협하는 존재에 불과하다. 촌지 거부, 낡은 학교 문화 청산 등을 내세우고 찬란한 성공신화를 쌓은 전교조도 지난 10년간 신자유주의 반대 투쟁, 교원의 물질적 권익 옹호 투쟁, 내신제도를 지렛대로 한 학생에 대한 장악력 강화 투쟁으로 일관하다가 공교육을 황폐화시키는데 적지 않은 기여를 하였다. 전략, 전술적 무능함으로 인해 공교육 피폐에 가장 책임이 작음에도 불구하고 가장 큰 책임이 있는 존재처럼 되어 버렸다.
참여정부 초기에는 나중에 참여정부를 신자유주의 정부로, 진보의 배신자로 비난하는데 열을 올린 노조운동 출신 인사들이 많이 참여하였다. 12대 국정과제, 100대 정책과제에는 이들의 체취가 많이 남아있다. 단적으로 이들은 12대 국정과제의 하나로 (엄청나게 높은 우선순위로)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을 집어넣었다. 그 주요 내용은 ‘필수공익사업 범위 외국수준으로 축소’, ‘노사분규 관련 법위반자 불구속수사’, ‘평화적 쟁의행위 업무방해죄 신중 적용’, ‘노동사건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 남용방지’,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동자 참여 제도화’ 등이다. 전반적으로 경제활동인구의 6% 내외, 전 임노동자의 10% 내외 수준인 조직노동자, 그것도 강력한 교섭력을 가진 대기업.공기업의 조직노동자의 이해와 요구(특히 단체행동권 보호)를 주로 반영했을 뿐이다. 물론 얼마 안 있어 화물연대 파업, 철도파업, NEIS반대 투쟁 등을 계기로 참여정부는 이들 조직노동자 집단 전반과 상당한 긴장관계를 형성했다. 물론 이들은 노무현이 진보를 배신했다고 그때부터 지금까지 길길이 뛰고 있다. 그러나 지금 보면 누가 민주개혁진보의 대의를 배신했는지는 설명이 필요 없을 것이다. 노무현이 진보개혁에 가깝고, 길길이 뛰는 그들은 진보를 참칭하는 수구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그 외에도 12대 국정과제와 100대 정책과제를 뜯어보면 대기업, 공기업 조직노동의 협소한 안목의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 단적으로 참여정부 중반 이후 가장 심각하고도 중요한 국정현안이 된 일자리 문제가 12대 국정과제에는 빠져있다. 단지 ‘사회통합적 노사관계 구축’ 항목 아래 약간 터치되어 있을 뿐이다. 또 참여정부 출범 초기만 하더라도 (4% 내외의 실업률이 아니라) 낮은 고용률 문제, 영세자영업 문제, 청년실업 문제, 청년인재의 비국제 경쟁부문으로의 쏠림 문제 등은 그리 중요한 현안으로 부상해 있지 않았다. 비정규직 문제도 대기업, 공기업 조직 노동의 단체행동권 제약 문제에 밀려있었다. 일종의 시한폭탄이었던 부동산 문제도 마찬가지였다. 그만큼 초기 참여정부가 민생 문제에 둔감했다는 것이다. 물론 이 문제들은 그 때도, 지금도 , 보수도 진보도 그럴 듯한 답이 없다.(공기업, 대기업 초임 삭감이 일자리 창출에 크게 보탬이 되지 않는다는 것은 긴 말이 필요 없을 것이다)
지방 분권, 균형발전도 진보의 간판 상품이었다. 참여정부는 균형발전 관련해서는 좌파 소리를 들어가면서 행복도시, 혁신도시, 공기업 본사 이전 등 꽤 과감한 정책을 폈다. 그러나 지방 땅값만 올려놨다는 비난을 듣고 있다. 높이 평가할 소지도 있지만 적어도 더 이상 다수 국민들을 감동시킬만한 , 진보의 간판 상품은 아니다. 한편 참여정부는 지방분권의 기치아래 중앙정부 vs 지방 자치단체 간의 재정 비율을 역전시켜 지방에 더 많은 재정을 배당하였다. 지방자치단체가 복지수요층과 더 밀착해 있으니 더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복지를 제공할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복지 재정의 경쟁적 늘리기가 아니라 복지 재정의 경쟁적 감축이 일어났다. 자치분권 운동도 10년~20년 전의 기대, 예측과 비교하면 실패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지방의회나 지방자치단체는 지방토호의 손에 떨어져 끊임없는 부정부패 추문을 양산하는 것이 현실이다. 토건족이 주력인 지방토호들의 영향력은 점점 커져만 가고 지방분권 정치세력의 입지는 이전에 비해 훨씬 좁아졌다. 기초자치단체 정당 공천제는 그것을 더욱 악화시켰다.
대화와 타협도 진보의 간판 상품이었는데 이는 진작 파산하였다. 2001년을 전후하여 일어난 ‘구조조정 동의서’ 거부로 인한 대우자동차 부도와 1752명의 정리해고 사태는 대화와 타협의 어려움을 일찍이 보여주었다. (그런데 실제 이보다 10배 이상의 국내외 협력업체 노동자들이 ‘악’ 소리도 못 지르고 회사를 떠났고, 보수적 평가로도 자산이 9조 5천억의 기업을 GM에 불과 4000억 원에 넘어갔지만 진보는 오로지 정리해고에만 광분하고 있다. 이것을 보면 진보와 진보 언론의 세계관, 가치관이 얼마나 조직노동 편향적인지 알 수 있다) 대화와 타협의 어려움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준 것은 탄핵사태와 국회파행(법사위, 본회의장 점거)일 것이다. 그 외에도 부안방폐장 관련 민란 수준의 갈등, 김근태 뉴딜의 파탄(아무도 동의하지 않았다),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정규직와 비정규직의 엄청나게 큰 불합리한 격차도 빼놓을 수 없을 것이다. 이는 진보의 간판 상품인 ‘연대’정신의 파산이기도 하다. 언론에 진보의 대표처럼 소개되는 교수들과 노조지도자들은 자기 발 아래서 벌어지고 있는 모순과 부조리에 대해서 입을 다물고 있다. 아마도 현실적 해법도 없을 것이다. 개인은 몰라도 집단 전체는 기득권을 내놓을 수 없으니까!
복지솔루션의 파산과 계속되는 혼미
진보의 또 하나의 간판 상품인 복지솔루션은 어떨까? 그것은 양재진 교수(연세대 행정학)가 잘 정리하고 있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했고, 이로 인한 양극화 문제는 4대 보험의 전국민적 확대적용을 통해 1차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속에 퇴출당한 직장인들이 퇴직금을 털어 자영업자로 대다수 변신하여 영세사업장이 늘어나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사회보험이 제 기능을 할 리가 없다. 사회보험의 수혜자격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일정기간 보험료를 납부할 때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보험료 지불 능력이 있는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인 경우, 큰 문제없이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전과 달리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에 빠지고, 청년실업과 실망실업자가 늘어나며, 소득격차도 늘어만 가는 부조리에 대해서도 무기력하기만 했다. 경제와 노동시장의 구조가 급변하는데 이에 걸맞은 사회보장체제를 고안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노무현시대의 좌절, p 112)
양재진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맥도 못 추고 무너진 이유를 ‘산업화 시기 발전국가시대에 형성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체제와 복지체제의 패러다임적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여, 인상적인 경제성장도 사회양극화 대체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나는 여기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당연히 지금 진보 일각에서는 보험료 납부와 상관없이, 아니 의료보험처럼 능력에 따라 부담하고, 필요에 따라 수혜를 입는 보편적 복지주의를 진보의 대안으로 제시하는 사람들이 있다. 한마디로 높은 세금-큰 공공부문-보편적 복지-높은 평등도(적은 격차)의 북유럽을 모델로 삼자는 얘기다. 필요하면 엄청난 적자재정도 감수하여 먼저 복지 맛을 보여주자는 것이다.
그런데 이 사람들은 평균 소득의 50% 내외의 실업수당을 몇 년간 보장한다면 거대한 3비층(비경제활동인구에 숨은 실업자, 비임금근로자=자영업자, 비정규직)으로부터 나온 500만~1000만 명이 실업수당을 받는 줄에 설 것이 확실한데 이에 대한 대책이 없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실현하려면 한국의 생산력(평균소득) 대비 너무 높고 안정적인 처우를 누리는 대기업, 공기업, 공공부문 노동자와 전문직의 처우는 큰 폭으로 떨어뜨려야 할 텐데 그에 대해서는 입도 벙긋하지 않고 있다. 조세, 보험료 부담의지를 결정적으로 떨어뜨리는 방만한 공공부문에 대한 대수술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논리의 실천적 귀결은 결국 이미 좋은 자리를 차지한 존재들, 대표적으로 공무원, 공기업, 전임교수들은 먼저 유럽 수준의 삶을 살고 나머지는 너무 적은 복지 혜택을 누리면서 대책없이 기다리는 것이다. 그나마 유럽 같으면 좋은 자리를 차지한 사회적 강자들이 어느 정도는 유연한 고용에, 소득도 그 나라 평균소득의 1~2.5배 정도지만, 한국은 노동시간도 길고, 고용은 경직된채, 사회적 강자들의 소득은 2~5배 정도기에 사회적 약자, 후발자, 청년세대의 고통이 더욱 클 수 밖에 없다. (그 외에도 은행중심 금융시스템, 공동결정제, 똑똑하고 착한 박정희 모델의 부활 등 자칭 경제발전 담론도 얘기하는데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에 다루려고 한다) 요컨대 김대중, 노무현 정부가 구축한 복지시스템도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기에는 너무 미흡하지만, 유력한 대안이라고 자처하는 진보의 솔루션도 대기업, 공공부문의 조직노동이 듣기 좋은 소리는 많이 있지만, 대중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이 너무 많다.
민주화 투쟁의 훈장이 빛을 잃었다.
오랫동안 진보의 간판 상품이었던 도덕성(특히 대통령의 도덕적 신뢰), 진정성, 탈권위, 탈지역주의, 참여, 분권, 자율 등도 참여정부의 거친 실험을 통해서 빛을 잃었다. 그로 인해 국가경영은 자신의 기득권을 과감히 내 던질 줄 아는 도덕성, 진정성의 문제가 아니라 일종의 의술이나 엔지니어링처럼 여겨지게 되었다. 의사나 엔지니어 노릇을 하려면 상당한 교육, 훈련 과정이 필요하다. 그래서 의사나 엔지니어 하는 짓이 마음에 안든다고 휴지, 생리대 공장 사장이 훈련과정도 없이 뛰어나와 직접 하겠다고 설치면 곤란하다는 인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이는 참여정부가 -어쩌면 문국현과 의사, 약사 같은 전문가 출신 정치인들이- 남긴 정말로 소중한 경험적 유산이다. 노무현 대통령의 우직한 실천이 아니었다면 진보진영에서는 아직도 정치인의 도덕성과 진정성이 전가의 보도처럼 여겨졌을 지 모른다. 그래서 민주화 훈장이 담보하는 도덕성과 진정성있는 사람이라면, 아무나 의원 뱃지만 달아주면 할 수 있는 어떤 것으로 여겨질런지 모른다. 그러나 민주화 투쟁의 훈장은 빛을 잃었다. 반미친북좌파라는 분칠 때문이 아니다. 대중의 눈으로 볼 때 명확한 근거가 있는, 진보의 무능(나이브함, 무사안일, 비현실성, 관념성), 집단 이기주의, 근거 없는 우월감, 2007년에 보여준 한탕주의, 얍삽함 때문이다.
진보의 수십 년 동안 유효했던 집권 전략인 민주대연합(호남 + 민주개혁진보) 노선도 파탄났다. 민주당은 호남 기득권 대변 정당으로 각인되어-이는 진실이기도 하다- 과거에 주었던 감동과 기대가 거의 증발해버렸다.
지금 민주개혁진보는 사회주의, 민족주의, 전투적 노조주의, 생태주의 등 도무지 이해하기 힘든 이념에 근거한 세력(민주노동당과 진보신당)이 하나, 사민주의를 기조로 한 세력이 하나, 그리고 자유주의를 기조로 한 세력으로 세개로 분화하고 있다. 노무현이 진보를 분열시켰다고 분노하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는 진보의 이념적 균열이 얼마나 심한지, 또 진보 울타리내에 얼마나 시대착오적인 분파가 있는 지 모르고 하는 소리다. 이념적 분열은 참여정부가 남긴, 의도하지는 않았지만 꽤 소중한 유산이다. 물론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통합민주당을 거치면서 일어난 분열(콩가루 집안화)은 이념의 차이도 작용했지만, 의원들의 대선, 총선 전략(정략)도 크게 작용했다. 아름답기는 커녕, 구역질이 나는 추태로 일관한 분열은 변명할 수 없는 노무현의 정치적 실패이다. 물론 이를 주도한 민주? 개혁? 진보? 정치지도자들의 실패이기도 하다.
진보의 간판 상품 중에서 그런대로 지금까지 살아남은 것은 부동산 불로소득 척결 정책과 대북화해협력 정책 정도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른바 햇볕정책은 북한이 기대만큼 변하지 않고, 남북간 협력도 기대만큼 진척되지 않았기에 그리 위력적인 간판 상품은 아니다. 부동산 정책은 다시 한번 폭등이 일어나지 않는 한-그런데 이 가능성은 거의 없다- 참여정부와 진보세력을 칭송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물론 보수의 간판 상품인 재벌대기업 위주의 성장 전략은 오래전에 파탄났다. SOC투자 및 건설투자의 고용창출 효과와 경기부양 효과은 설득력이 전혀 없다. 3비층과 고용의 88%를 담당하고 있는 중소기업을 살리고, 공교육을 살릴 수 있는 정책적 솔루션도 없다. 토건족 위주의 재정할당도, 토호들에 의해 놀아나는 지방자치제도도, 사학재단들도, 보건.의료.복지 제도도 개혁 할 수 없을 것이다. 그외에도 언론, 모피아, 공무원들이 누리는 유무형의 특권, 특혜(연금 제도 등)도 마찬가지 일 것이다. 이 모든 것이 다 핵심 정치적 기반을 이루는 보수세력의 기득권을 건드리기 때문이다. 물론 잘 할 수 있는 것은 공기업을 재벌대기업에 팔아넘기는 것 정도가 아닐까 한다.(지나치게 폄하하나?) 어쨌든 누적된 모순이 폭발적으로 터져나오는 대한민국을 성공적으로 경영하기에는 이명박정부와 보수세력은 진보만큼이나 부족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냉정하게 보면 파탄난 것은 이 뿐 아니다. 진보와 보수를 떠받치고 규율하는 제반 질서가 파탄났다. 헌법, 선거법, 정부조직 형태, 공무원 임용제도, 사법제도, 교육제도, 연금제도, 조세재정제도, 재정할당 행태, 정당제도, 정치행태 등이 그것이다. 이와 관련된 모순과 부조리가 이전에 비해 훨씬 격렬하고 선명하게 드러나고 있다.
사실 언제, 어느 사회나 모순과 부조리는 있고, 기존 시스템과 환경의 충돌은 있다. 그러나 지금 한국 사회는 이 충돌이 여간 극심한 것이 아니다. 각종 통계수치를 보면, 불행하게도 참여정부 시절부터 환경과 시스템의 충돌로 인한 문제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왔다. 신용카드 사태와 부동산 폭등이 대표적이다. 그 외에도 자살률과 출산율 추이, 교육과 시험(고시, 공시 등)으로 인한 고통과 낭비, 청년 실업 문제, 주력 사업장의 고령화, 공무원 연금 적자 등도 그 전에 오랫동안 누적된 모순이 폭발한 것이다. 마치 지각 깊숙한 곳에 축적된 엄청난 에너지가 때가 되어 지진이나 화산으로 폭발하듯이......
지진과 화산은 이명박 정부하에서도 계속되고 있다. 촛불사태는 그 중의 하나이다.
민주화 시대가 끝났다는 것은 민주주의 과제가 다 해결되었다는 의미가 아니다. 한국 민주화 세력이 고창한 핵심 구호와 정책들이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또한 민주화세력의 문화적, 인간적 매력도 빛을 잃었다는 것이다. 물론 민주화 투쟁의 정신, 특히 역사와 공동체를 위한 자기 헌신 정신은 아직도 유효하다. 아니 더 절실하다. 뿐만 아니라 민주주의 과제는 우리가 협소하게 해석해서 그렇지 여전히 절실하다. 단적으로 주권재민의 원칙에 입각해서 본다면, 검찰, 법원, 헌재 등 사법 권력은 고시를 합격한 사법엘리트들의 손아귀에 들어있다. 지방자치단체나 지방의회도 민주적 통제력이 너무 약하다. 이런 곳이 어디 한두 군데인가! 하물며 지난 20여 년 동안 이룩한 이른바 절차적 민주주의의 성과도 이명박 정부에 의해 허물어지고 있으니 민주주의 과제가 더 절실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거 삼민투, 애학투, 전대협, 한총련에 대한 대중적 지지와 신뢰가 올라가는 것이 아니다. 대중은 과거의 단순 복귀가 아니라 한 차원 높은 진화, 발전을 원하기 때문이다. 
메이지 유신 전야? 갑신정변-갑오경장 전야?
21세기를 전후한 남북한 사회는 1961년, 1987년, 1997년을 기점으로 형성된 질서의 모순들이 폭발적으로 터져 나오는 시기이다. 조선 역사에서 비슷한 시기를 찾는다면 19세기 말, 개항-갑신정변-갑오경장을 전후한 시기가 아닐까 한다. 일본 역사에서는 흑선 출현(1853년)에서 메이지 유신(1867년)까지 시기이며, 고대 로마 역사에서는 카이사르와 아우구스티누스가 활동했던, 공화정에서 제정으로 넘어가던 시기가 아닐까 한다. 지금 남북한은 주류 정치 리더십이 기존 패러다임(앙시앙레짐과 그 이념적 틀)에 갇혀 갈피를 못잡는 가운데 환경과 시스템(체제, 제도)의 충돌이 격렬한 시기이다. 환경에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부상 같은 메가트렌드부터 한국인의 성정, 거대한 3비층의 고통과 불만, 사회적 강자와 노블레스들의 몰염치(지대추구)와 나태, 과소시장과 과잉시장의 극명한 대비, 고등교육 보편화에 따른 높은 기대수준과 비판의식, 4.19, 광주항쟁, 유월항쟁, 촛불시위 등을 연출한 높은 행동성 등 쉽게 바꿀 수 없는 요소들이 다 포함된다. 시스템에는 헌법, 선거법, 노동법, 보건의료복지 제도, 재정할당 관행, 정당, 정치생태계, 지식사회생태계까지 다 포함된다. 리더십에는 대통령, 정치지도자, 언론인, 시민사회지도자, 나아가 정치세력까지 다 포함된다.
이들을 종합적으로 조망하면 지금 한국은 정치, 경제, 사회적 지각변동 시기이자,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의 패러다임 교체기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양재진의 통찰은 탁견이 아닐 수 없다. 참여정부는 4대 국정원리(원칙과 신뢰,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 공정과 투명)와 12대 국정과제를 정립한 집권 초기에는 역사적 상황의 특징과 시대적 과제를 정확하게 인식하지 못하였다. 또한 진보의 철학, 가치, 정책 패러다임의 문제점도 정확하게 인식하지도 못하였다. 그런데 국정을 운영하면서 진보 패러다임의 문제점은 아주 선명하게 인식하였고, 역사적 상황과 시대적 과제는 어렴풋하게 감을 잡았다고 생각된다. 비전2030, (선거제도 개편을 전제로 한) 대연정, 개헌, 유연한 진보론, 한미FTA는 이런 감과 그 특유의 거친 계몽적 리더십이 결합한 결과가 아닐까 한다. 물론 이런 많은 시도들이 정치적 성과로 응고된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역사를 들춰보면 노무현은 거대한 정치사회적 지각변동기에 빠짐없이 등장하는 지도자이다. 인간적 매력이 넘치고, 그로 인해 큰 기대를 모으고 집권했지만, 위기의 심각성, 모순의 폭발성을 알지못하고 낡은 질서, 문화, 리더십을 의욕적으로, 저돌적으로 개혁하다가 별 성과를 거두지 못하고, 대중들의 실망과 지탄을 한몸에 받으면서 권좌에서 내려온 사례가 부지기수다. 현대사 인물로는 소련 사회의 심각한 위기를 인지하고,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 글라스노스트)을 의욕적으로 추진하다가 실패한 고르바초프가 노무현과 가장 닮은 지도자가 아닐까 한다. 반면에 등소평은 지각변동기를 성공적으로 넘긴 아주 드문 지도자가 아닐까 한다.
어쨌든 나는 노무현 대통령이 가려고 했던 방향은 자유주의, 시장주의에 기초한 개혁이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자유주의, 시장주의라는 원래 다루기 힘든 야생마를 제대로 다루지 못하고 많은 상처를 입고 권좌에서 내려왔다. 하지만 범진보 진영의 정치인 중에서는 큰 틀과 방향에서 가장 옳았다고 생각한다. 물론 그 정도 가지고는 대한민국을 제대로 끌어갈 수도 없고, 진보의 재집권도 택도 없지만...... 
나는 노무현의 방향에다가, 과소시장, 과잉시장을 겨냥한 우파적 개혁과 좌파적 개혁을 결합시키고, 또 거친 야생마를 다룰 노하우까지 겸비한다면 역사적 대전환기를 성공적으로 넘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영국 신노동당이 비판한 전통적인 사민주의에 기초한 개혁노선 - 신자유주의를 빼버리면 논리 구성이 안되는 노선- 은 구부러진 동전을 앞면은 그대로 두고 뒷면만 피려는 식이기에, 제대로 개혁 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사민주의 수준에도 못 온 정치세력은 역사의 퇴물들을 매립지로 실어 나르는 트럭에 탄 것이나 다름없다고 생각한다. 민노당, 진보신당을 하는, 한때 내가 사랑하고 존경했던 수많은 선후배들이 이 차에 타고 있는 것을 보면 안타깝기 짝이 없다. 물론 시간이 흐르면 그 중 상당수는 내려서 사민주의 달구지나 자유주의, 시장주의 차로 옮겨타긴 하겠지만....... (그런데 내가 탄 차는 비록 방향은 정확하게 잡았을 지라도 기름을 못 구해서 주저앉은 채, 비바람과 태양빛에 녹슬어 버릴지도 모르겠다)
정치생태계의 문제
지난 2003년부터 2008년에 이르는 시기에 행해졌던 거대한 정치적 실험-참여정부, 열린우리당, 대통합민주신당, 창조한국당, 이명박정부의 역주행, 촛불사태-이 나에게 가르쳐 준것은 이것이다.
첫째, 지금 한국 사회는 일본의 메이지 유신 전야처럼 환경, 시스템, 리더십의 충돌이 격렬한 거대한 지각변동기라는 것. 따라서 지금 한국은 메이지 유신 추진 세력 같은 그런 정치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둘째, 이 정치세력 주도의 획기적이고 대담하고 정교한 대수술과 한방요법, 식이요법, 운동요법이 다 필요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이 대수술의 목표는 양재진의 말대로 한강의 기적을 연출한 박정희 모델 이후의 새로운 경제사회 모델을 만드는 것이다. 그러나 이 대수술을 담당할 실력 있는 의료팀은 불행하게도 보수에도 진보에도 없는 것처럼 보인다. 이들은 하나 같이 도쿠가와 막부라는 낡은 틀 내에서 뭔가를 해보겠다는 세력이기 때문이다.
셋째. 한국 정치가 유능한 외과의사 노릇을 하려면 정치생태계가 건강하게 형성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사실 나는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정치인에 걸맞은 훈련이나 정치생태계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지난 5~6년에 걸친 진보와 보수의 거대한 헛발질을 보면서 비로소 정치적 경륜을 축적, 공유하고, 정치리더십을 훈련시키는 정치생태계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유능한 정치지도자는 건강한 정치생태계라는 토양위에 핀 꽃이라는 것도 깨달았다. 그런데 일반적으로 대통령제에서는 정당에 국가경영 경륜(컨텐츠)가 잘 축적 되지 않는다. 대선 캠프와 그 외곽의 연구소나 시민단체에 주로 축적이 되기 때문이다. 미국은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다양한 연구소가 있고, 이것이 회전문 역할을 잘해서 컨텐츠가 잘 축적된다고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오바마 정부에서 핵심적 역할을 하는 30대, 40대라도 거대한 미국을 끌어갈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한국은 연구소라 해봤자 관료가 주문하는 정책을 생산해 주는 국책연구소와 현실과 너무 멀리 있는 대학연구소 뿐이다. 실로 정당과 정치인이 필요로 하는 컨텐츠를 생산하는 시스템 자체가 너무나 취약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은 공천이 곧 당선인 지역이 많기에 정치인들이 컨텐츠 고민할 시간에 유력자와 관계 형성을 돈독히 하는 것이 더 낫다. (그래서 정치신인은 돈 많이 벌어서 공천권자에게 줄서는 것이 장땡이다) 나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으면 정치발전도 사회발전도 없으리라 생각한다.
기업가 출신들에 대한 우려
살면서 보니 노조 운동 오래한 친구는 뭐든 기업에 요구하는 것이 체질화 되어 있고, 비즈니스 오래한 친구는 가치생산생태계의 건강성에는 관심이 적고, 자신이 경영하는 기업의 생존과 발전에만 관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개인적 차원의 투입 대비 높은 산출(이득)을 따지는 것이 체질화되어 있었다. 문국현이 창조한국당을 유한킴벌리 여의도 분점 식으로 운영하는 것도 이해 되었다.
앞으로 내 친구처럼 비즈니스를 통해서 경제적 기반을 마련한 친구들이 정치를 하러 많이 나올 것이다. 그래서 걱정스러운 것이 많다. 이들은 대체로 오랜 비즈니스 관성으로 인해, 시대적 과제를 해결 할 수 있는 정치리더십과 제대로 된 정당을 자라나게 할 토양(정치생태계)을 비옥하게 만들려는 생각이 너무 적기 때문이다. 한마디로 공천=당선인 지역을 잡고, 자신의 공천을 보장하는 유력자에게 줄 대려고 하기 때문이다. 물론 개인적으로는아주 효율적인 방식 일런지 모르지만, 정치생태계의 시각에서 보면 구태 정치 그 자체다.
운동권의 영혼은 정치적 가치든 경제적 가치든 그것을 생산하는 생태계의 건강성을 의식하면서, 대의나 정도를 위해 자신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양보할 줄 알고, 필요하면 무대뽀 정신으로 풍찬노숙 할 줄 아는 것이다. 그런데 생태계 개념이 없고, 단기적 투입대비 산출만 따진다면 더 이상 운동권이 아니다. 영혼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그러면 운동했다고 하면 안 된다. 완전히 다른 사람으로 바뀌었기 때문이다. 솔직히 운동권의 영혼이 있다면, 현재의 민주당을 민주개혁 세력의 소중한 자산으로는 인정을 해야 하지만, 대표체로 인정하지 않아야 정상이다. 따라서 제대로 된 정당과 정치생태계를 만들기 위해 형극의 길을 가야 정상이다.
20대 초심의 회복
사실 나도 1990년대 중반쯤부터는, 정치를 하려면 민주화투쟁(총학생회장) 경력으로는 태부족이고, 전문가나 경영자나 시민사회단체 지도자로서 경력과 명망이 절실히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이는 당시 우리 세대의 상식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렇게 생각해서 그런대로 돈을 좀 만지게 해 주던 학원을 접고, 수입이 대폭 줄어들면서도 세계경영을 표방하는 대우에 입사했다.) 그것이 한국 사회와 세계를 깊고 넓게 이해하도록 해주고, 새로운 물적, 인적 기반을 제공해주고, 무엇보다도 대중의 신뢰도를 높이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의 ‘민주화운동-1등 토목기술사-10년간 CEO’는 그 때 생각을 완벽하게 실천한 것이다. 그런데 2003~2008년의 거대한 정치사회적 실험을 지켜보면서 그것만으로도 부족하다는 것을 느꼈다. 물론 기존 틀 내에서 생산성 향상만 하려고 한다면, 한마디로 보수 정치나 진보를 표방한 수구 정치를 하려면 그 경력이 차고도 넘칠 것이다. 하지만, 한국 사회를 획기적으로 바꾸려고 하면 그 경력으로는 태부족이라고 생각한다. 이제는 시대가 요구하는 지적, 대중적 실천 경력이 하나 더 필요하다. 민주화투쟁 경력이 없는 오세훈은 90년대 초.중반에 환경운동연합의 상담실장이었다는 것을 내세웠다. 그런데 지금은 그 경력이 더 어필하는 층이 넓다고 보아야 한다. 그래서 민주화 훈장에다가 견실한 전문가/CEO/샐러리맨/자영업자 경력에다가, 국민들이 국가경영을 맡을만하다는 느낌을 주는 또 하나의 경력과 새로운 진보이념이 필요하다. 이는 정말 2010년 2012년에 정치를 하러 나올 수많은 386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다. 시대가 바뀌면 시대가 요구하는 경력과 이념이 필요하다.
2012년 쯤 가면 어디서 뭐하다 나왔는지, 곳곳에 설치된 대선 캠프에 참여정부와 범진보의 동반 몰락이라는 엄청난 역사적 사건으로부터 아무런 교훈을 얻지 못한 돈 좀 있는 386들이 과거의 낡은 훈장을 쩔렁거리면서 차고도 넘칠 것을 생각하면 정말 악몽이다. 그렇게 되면 386세대는 역사의 퇴물들의 매립장으로 고속으로 달려갈 수 밖에 없다.
그러므로 지금 진보 동네의 당면 과제는 제대로 된 진보개혁 이념, 문화와 그것을 구현하는 정당, 그리고 이를 떠받치는 건강한 정치생태계의 형성이다. 이 관건은 386등 민주화세대의 20대 초심의 회복이다. 이 모든 것을 기반으로 일본의 메이지 유신에 버금가는 개혁을 해야 한국이 살고, 청년세대와 미래세대가 살고, 민주화 세대가 산다.-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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