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민주당 선언 비평4 -'비전2030'과 비교- 선거,정당 비평

-노무현을 두 번 죽이려는가?-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참여정부를 넘어서려면 비전2030을 넘어서야

불과 11 페이지(A4, 10pt) 분량의 뉴민주당 선언과 156페이지의 ‘비전2030’은 같은 열에서 비교할 수 있는 문건이 아니다. 하지만 이들은 철학과 가치와 주요 정책은 공유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어떻게 보면 뉴민주당 선언을 계층별 정책과 재정계획으로까지 구체화 한 것이 ‘비전2030’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전2030은 참여정부 정책파트와 직업 관료와 그들과 가까운 진보/중도 학자의 지적 총화라고 할 수 있다. 집권 가능한 진보개혁 정치세력은 정치적으로, 정책적으로 참여정부의 한계와 오류를 확실히 넘어서야 한다면, 비전2030은 정책적으로 참여정부를 넘어설 수 있는지를 가늠하는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비전 2030’의 정식 명칭은 ‘비전2030-함께 가는 희망한국’이다. 2005년 6월경 추진이 시작되어, 한달 뒤 60여명의 전문가로 민간작업단을 구성하고, 근 1년에 걸친 합동 작업을 거쳐서 2006년 8월에 정부.민간 합동작업단 명의로 발표되었다. ‘비전2030’의 추진 동기와 핵심 문제의식은 A4로 1페이지 분량도 안 되는 머리말 속에 집약이 되어 있다.

 

‘비전 2030 - 함께 가는 희망한국’은 국민 누구나 희망을 갖는 기회의 나라를 만들기 위해 내놓는 국가 미래전략입니다.(중략) 우리나라의 복지는 경제규모에 비해 매우 낮은 수준입니다. GDP 대비 재정규모가 선진국에 비해 턱없이 작고, 그 중에서도 복지지출 비중은 이들 나라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합니다. 이러다 보니 국민의 삶의 질은 OECD 국가 중 최하위권에 머물고 있습니다. 특히 외환위기 이후 더욱 심화되고 있는 양극화가 장기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될 우려가 있고, 저출산•고령화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이제 복지가 제대로 되지 않으면 지속가능한 성장도 어려운 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성장과 복지가 함께가는 동반성장의 국가발전 패러다임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복지는 소비가 아니라 미래를 위해 사람을 키우는 투자라는 인식 전환이 중요합니다. 참여정부는 복지를 성장의 일환으로 채택하고 사회정책과 경제정책을 통합하여 이를 국가성장의 동력으로 만들고 있습니다.(중략) 비전 2030은……단순히 미래상만을 제시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를 실현하기 위한 구체적인 방법을 찾아내는 데 중점을 두었습니다. 5년, 10년 후의 모습뿐만 아니라 2030년까지 내다보는 국가경영지도를 만들어 체계적으로 준비해 나가자는 것입니다.

 

본문에는 비전 2030의 핵심 중의 핵심을 딱 두 줄로 요약해 놓았다.

 

“‘先성장 後복지’의 기존 패러다임으로는 성장자체가 한계에 봉착할 뿐 아니라 분배개선도 곤란. 동전의 양면관계인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으로 전환”

 

기존의 박정희식 성장 패러다임이 양적 투입위주, 불균형 성장, 정부 주도성장이라면 비전2030 패러다임은 혁신주도형, 균형 성장, 시장 주도라는 것이다. 이 패러다임에서 정부의 역할은 ‘성장과 복지의 조화’이다. 복지전략의 핵심은 ‘정부의 역할 제고와 미래를 위한 투자’이다. 여기서 말하는 투자는 주로 ‘인적.사회적 자본 투자’를 의미한다. 인적.사회적 자본투자는 영국 노동당 등 유럽의 집권 좌파 또는 신중도 정치세력이 케인즈주의 복지국가 패러다임과 신자유주의 패러다임을 지양하여 내놓은 ‘사회투자국가론’의 정수이다.

 

이는 뉴민주당 선언이 발전 전략으로 내놓은 ‘포용적 성장’(Inclusive Growth)과 ‘기회의 복지’(Opportunity Welfare)의 개념과 거의 일치한다. 포용적 성장은 “사람중심의 경제, 성장의 과실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돌아가는 경제, 환경을 두루 감싸는 질 좋은 성장”이며, 기회의 복지는 “만인에게 도전하고 재기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하는 복지를 뜻한다”고 한다.

 

한편 비전2030은 장기 재정계획이다. 대한민국 역사상 처음으로 25년을 내다 본 장기재정계획이다. 사실 비전2030의 최대 의의는 이것이다. 동반성장 패러다임이 아니다. 만약 비전2030이 제시하는 주요 비전(목표 수치)이 장기 재정 할당 계획으로 뒷받침 되지 않았다면, 사회복지 학자들이 항상 하는 좋은 얘기 이상이 아니었을 것이다. 장기 재정계획은 김대중 정부에서 그 틀이 완성된 복지.교육 제도를 대체로 인정하고, 제도 혁신(연금의 소득대체율 하향, 보험료율의 상향, 비과세.감면 축소, 과세 투명성 제고, 세출 구조조정 등)과 선제적 추가 투자(총 GDP 2%)를 통해, 고용율을 올리고, 보장성도 올리고, 혁신형 중소기업과 세계 일류 상품도 늘리고, 인구 구조도 좀 더 젊게 하여 세원을 확대하고 재정 절감을 이루는 것을 전제로 한 것이다. 이렇게 도출된 장기 재정 추세선을 기본으로 각종 복지, 교육 비전(목표)를 을 그려 본 것이다. 2010년까지는 증세 없이 추진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이후에도 국민적 논의를 통해 국채 발행이나 증세를 통해 재원을 조달하는 것으로 되어 있다. 정말 장기간에 걸쳐서 너무나 점진적으로 앞으로 나아가는 비전이다. 2030년이 되어야 많은 복지.노동.경제 지표들이 2000~2005년의 선진국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다. 그런데 비전2030의 계획에 의하면 2010년의 1인당 국민소득은 2005년 가격기준으로 2만3천 달러-2020년 3만7천달러, 2030년 4만9천 달러로-되어 있는데 현재 대로라면 2013년에도 달성이 쉽지 않다고 보아야 한다.

 

박정희 패러다임이 아니라 김대중 패러다임 극복이 문제다

비전2030의 문제는 (가까운 미래조차) 크게 어긋나버린 예측이 아니다. 재원 조달 계획이 없는 장밋빛 비전이라는 비판도 어불성설이다. 세금 폭탄 운운하는 자는 비전2030을 단 한 페이지도 읽어 보지 않은 자다. 비전 2030의 문제는 무엇보다도 그 차별화 대상 내지 극복할 대상을 너무 후진 놈으로 잡은 데 있다. 오른쪽의 시장만능주의와 왼쪽의 정부만능주의를 주된 극복 대상으로 삼은 뉴민주당 선언처럼 의도적으로 왜곡한 후진 놈들과의 차별성을 통해서 자신의 정체성을 형성한 데 있다는 것이다.

 

비전2030의 차별화 대상은 ‘先성장 後복지’로 요약되는 박정희 패러다임이다. 이는 한나라당의 정치 공세-복지 확대 정책에 대해 좌파 시비를 한다-를 맞받아 칠 때나 존재하는 패러다임으로 실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극복할 대상을 너무 후진 놈으로 잡으면 거의 모든 것이 긍정된다. 김정일 정권을 극복할 대상으로 삼으면 조갑제도, 조선일보도, 이명박도 만만세다. 혁신을 할 필요도 없다. 현재로서도 충분하다. 그런 점에서 차별화 대상을 후진 놈으로 잡는 것만큼이나 자신을 편하게 하고, 따라서 후지게 만드는 사고방식은 없다.

 

뉴민주당 선언도 비전2030도 넘어서야 할 패러다임은 박정희 패러다임이 아니라 김대중 정부의 생산적복지 패러다임이었다. 양재진은 <노무현 시대의 좌절>(창비, 2008)에서 김대중 정부가 주도적으로 구축한 생산적 복지 패러다임의 문제점을 이렇게 정리하였다.

 

“김대중 정부는 노동시장의 유연화를 추구했고, 이로 인한 양극화 문제는 4대 보험의 전국민적 확대적용을 통해 1차적으로 해결하고자 했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 속에 퇴출당한 직장인들이 퇴직금을 털어 자영업자로 대다수 변신하여 영세사업장이 늘어나고 노동시장 유연화로 비정규직이 늘어가는 상황에서 사회보험이 제 기능을 할 리가 없다. 사회보험의 수혜자격은 사용자와 근로자가 일정기간 보험료를 납부할 때 주어지기 때문이다. 사용자가 보험료 지불 능력이 있는 사업장의 정규직 근로자인 경우, 큰 문제없이 사회보험의 혜택을 받는다. 그러나 그렇지 않은 경우, 사회보험은 ‘그림의 떡’이다. 게다가 고용불안정과 저임금에 허덕이는 비정규직이나 영세사업장 근로자는 전과 달리 일해도 빈곤을 벗어나지 못하는 근로빈곤에 빠지고, 청년실업과 실망실업자가 늘어나며, 소득격차도 늘어만 가는 부조리에 대해서도 무기력하기만 했다. 경제와 노동시장의 구조가 급변하는데 이에 걸맞은 사회보장체제를 고안해 내지 못했기 때문이다.”(p 112)

  

당연히 뉴민주당 선언도 비전2030도 특히 노인과 3비층(비경제활동인구, 비정규직, 비임금근로자)을 고통스럽게 하는 사회보험의 거대한 사각지대 문제에 대해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뿐만 아니라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고용.임금상의 큰 격차에 대한 해답을 내놓아야 했다. 한국의 생산력 대비 정규직, 대기업, 공공부문의 너무 높은 고용.임금 수준과 한국의 수많은 기업들의 취약한 경영사정을 종합하면 비정규직 문제나 청년실업 문제는 시간이 가면 해결될 수 있는 성질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청년 인재의 공공부문 및 전문 자격증 분야로 지나친 쏠림 현상, 중소기업의 구조적 인재 기근, 재벌.대기업.대형마트의 횡포, 정부의 재벌.대기업 편향성과 관리 편의주의 등을 감안 하면 벤처중소기업의 창업율과 생존률이 높을래야 높을 수가 없다. 당연히 고용율을 올리는 것이 너무나 어렵다.

  

교육 문제에 국한해서 본다면 전임교수와 시간강사 간의 너무나 불합리한 격차를 조정하여, 한마디로 공정한 경쟁과 상하 유동성이 높은 환경을 조성하여 소중한 지적 자원이 반노예적 삶으로 일관하다가 황폐화 되는 것을 막는 것도 너무나 중요한 일이다. 괜찮은 직업,직장이 가지고 있는 너무 높은 경제적 지대에서 발생하는 사교육(비) 문제, 과도한 대학진학율 문제, 과도한 유학 열풍 문제에 대한 해답도 내놓아야 한다. 사학 재단의 불투명한 경영, 사무행정 잘하는 교사가 교감, 교장이 되는 왜곡된 평가보상체계 등의 문제에 대해서도 해답을 내놓아야 한다. 또한 국제경쟁력을 심각하게 좀 먹는 부동산 가격=주거 비용을 획기적으로 낮추는 해법을 내놓아야 한다.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로 알려져 있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공무원 연금 적자에 대한 해법도 내놓아야 한다.

 

그런데 뉴민주당 선언은 이런 문제에 대한 해답이나 비전이 거의 없다. 비전2030은 노령 연금 수급율을 2005년 17%에서 2010년 30%, 2020년 47%, 2030년 66%를 비전으로 내놓았다. 노인들의 엄청난 자살률을 감안하면 너무나 안이한 해법이다. 그리고 개혁하지 않으면 조만간 한해 몇 조원의 재정을 들어먹을 공무원 연금 적자에 대한 얘기는 없다. 주거 문제 관련 비전은 노인 복지 차원에서 제시했는데, 공공임대주택 비율을 (’05) 5.1% → (’10) 10.1% → (’20) 16% → (’30) 16%로 늘리는 것을 비전을 제시했다. 주거 비용 자체를 획기적으로 낮추는 것이 아니라, 저소득층과 노인들의 주거 복지 차원에서 주택 문제를 바라 본 소치다.

 

비전2030은 교육 문제와 관련해서는 교육 공급자들이 집요하게 주문해 온 초등학교 학급당 학생수를 줄이는 비전을 주요하게 제시하였다. (’05) 32 → (’10) 30 → (’20) 27 → (’30) 23명. 사교육비에 대해서는 방과후 활동 수혜율 향상으로 응답했다. (’05) 32 → (’10) 67 → (’20) 72 → (’30) 75%. 교육환경 관련해서는 학생의 다양한 학교 선택권이 보장되는 사회, 즉 공영형 혁신학교, 자립형 사립고, 대안학교 등을 활성화하겠다는 것을 주요하게 제시하였다. 대학 교육 문제에 대해서는 대학교육 사회부합도(IMD, 60개국)를 제시했다. (’05) 52 → (’10) 40 → (’20) 20 → (’30) 10위. 심각한 교육 문제와 정면 대결을 한게 없다.

 

기업 관련해서는 규제 완화를 대표 상품으로 내놓았다. “규제가 완화되어 기업하기 좋은 환경 조성”이 기업인에 대한 비전을 집약한 것이다. 세부 내용을 보면 이렇다.


(기업환경) 시장에서 공정한 경쟁이 보장되고, 기업규제가 적은 사회

(기업규제)(IMD, 60개국) : (’05) 43 → (’10) 30 → (’20) 20 → (’30) 10위

(협력적 노사관계) 협력적 노사관계가 정착되고 기업인이 존경 받는 사회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 : (’05) 56 → (’10) 42 → (’20) 26 → (’30) 15일

 세계일류상품 : (’05) 505 → (’10) 1,000 → (’20) 1,550 → (’30) 2,000개

부품개발 기술수준(일본=100) : (’05) 84 → (’10) 94 → (’20) 98 → (’30) 105

혁신형 중소기업 : (’05) 1 → (’10) 3 → (’20) 6 → (’30) 9만개

(대․중소기업 상생)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서로 도우며 협력하는 사회’

 

한국은 소수지만 잘 조직된 이익집단, 예컨대 재벌대기업, 조중동, (재경부) 모피아, 사학재단, 직능협회, 대기업.공기업 노조 등의 정치적, 정책적, 이념적 영향력이 강하다. 규제 완화 를 기업인 관련 비전으로 전면에 부각시키고, 학급당 학생수 줄이기를 교육 관련 비전으로 주요하게 제시한 비전2030은 잘 조직된 이익집단의 영향력을 절감하지 않을 수 없다. 또한 한국적 현실에서 진보 정치가 내놓아야 하는 비전은 우월적 지위에 있는 존재들의 불공정 거래 행위에 대한 가혹한 징벌과 공공구매시 벤처중소기업에 대한 배려, 벤처중소기업을 잘 이해하고 배려하는 금융시스템, 모든 경제사회 주체들에게 요구되는 투명성 등을 주요하게 포괄해야 한다.

 

또 양극화 원인 진단의 문제

또 하나 뉴민주당 선언과 비전2030의 치명적인 문제는 ‘양극화 심화’ 문제에 대한 진단이 진보의 고질병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는 것이다. 양극화 발생 메커니즘에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의 문제’를 빼놓았기 때문이다. 비전2030은 양극화 메커니즘을 이렇게 정식화 했다.

 

“세계화, 기술변화 등 환경변화에 대한 적응능력 격차로 산업․기업․지역, 고용․소득의 양극화 지속․심화. 즉 산업․기업간 격차 → 소득․고용격차 → 혁신기반 격차 →(다시) 산업․기업간 격차로 연결”

 

뉴민주당 선언은 이렇게 정식화 했다.

 

“한국사회의 최대문제는 양극화 심화이다. 양극화 해소는 시대정신이 되었다.……세계화와 글로벌 무한경쟁은 혁신과 기회를 확대함으로써 성장의 동력으로 작용하기도 하지만, 사회안전망이 제대로 갖추어지지 않은 나라에서는 양극화를 심화시킨다”

 

물론 세계화, 기술변화, 글로벌 무한 경쟁이 양극화 압력으로 작용한다는 것은 세계 문명국이 공통적으로 경험하는 사실이다. 또한 복지를 통한 재분배와 기회균등 기능이 원활하면 이 격차가 완화되는 것도 사실이다. 한국은 이 기능이 약하기에 양극화의 충격이 큰 것은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전2030의 동반성장 정책과 뉴민주당 선언의 기회의 복지 정책은 백 번 지당하다. 문제는 한국의 양극화는 너무 잘 작동하는 시장 뿐 아니라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시장, 즉 각종 각종 불합리한 장벽과 우월적 지위에 있는 존재들의 약탈에 크게 기인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것을 보지 못하면 양극화 해소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구부러진 동전을 볼록한 면을 그대로 두고, 오목한 면을 피려는 것처럼……

 

왜 비전2030이 주목 받지 못했는가?

비전2030이 쏟아 부은 노고와 잘 정리된 자료에 비해 별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은 한나라당과 조중동의 왜곡, 폄하와 열린우리당과 민주당의 무지.무시 때문만은 아니다. 그것은 태생적으로 현장의 부글부글 끊는 고통, 불만, 획기적인 개혁 요구, 아이디어에 둔감하고, 기존의 패러다임에서 약간의 개선과 관리에 익숙한 ‘직업 관료’의 상상력을 거의 넘어서지 못하였기 때문이다. 노무현 대통령 역시 2005~2006년 시점에서는 최상위 ‘직업 관료’ 였을 뿐이다. 민간 전문가(거의 학자겠지만) 60명이 관계했다고 하나, 정치인의 대담한 상상력을 제도, 정책으로 구체화, 정교화하기 위해 관료와 학자들을 지휘하지 않는 한, 직업 관료가 불러모은 전문가들은 그들의 (문장, 자료) 도우미 이상이 되기 힘들다고 보아야 한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된다. 한국의 중장기 비전, 전략의 문제는 직업 관료와 학자들의 무능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압도적으로 정치의 무능에서 오기 때문이다. 지금 대부분의 정치인들은 비전2030에 관계했던 사람들 보다 정치적 상상력과 문제의식이 낫지는 않을 것이다.

 

유시민은 비전 2030을 한 정당의 기본 정책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한 정책 조합으로 여긴다. 이것이 실현되지 않은 것은 이를 받아 안는 정치세력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노무현 대통령은 열린우리당 부설 정책연구원이 장기 정책 비전을 만들 역량이 없다는 사실을 고려해 직접 '국가비전 2030'이라는……한 정당의 기본 정책으로 써도 손색이 없을 만한 정책 조합을 만들었다. 그런데 여당 국회의원이나 정책연구원 실무자들이 작업에 참가지 않았다. 여당 지도부는 '국가비전 2030'을 세금 폭탄으로 규정한 보수 언론의 보도가 난무하는 상황을 보고 너무나 위축된 나머지 이것을 공식 발표하는 보고회에 참석하기를 거부해버렸다. 결국……'국가비전 2030'은 정치 무대에서 완전히 자취를 감추었다……확고한 정치세력이 없이는 어떤 정부의 정책 지향도 제대로 실현하기 어렵다는 사실을 생생하게 입증하는 사례라 하겠다.(p 345)

 

그러나 비전2030은 직업 관료 특유의 조심스러움과 치밀함을 바탕에 깔고, 김대중이 주도적으로 만든 경제사회의 기본 틀을 크게 건드리지 않고, 점진적으로 재정을 늘려서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전략이다. 따라서 다수 국민들을 옥죄는 모순.부조리의 심각성에 비추어 보면 너무나 안이한 방식이다. 이 방식이 크게 호응을 받았다면 지난 대선과 총선 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았을 것이다. 물론 유권자들 중에서 ‘국가비전 2030’을 읽어 본 사람이 거의 없겠지만, 범진보개혁 세력의 정치 행태를 보면서 문제의 핵심을 파악했다고 보아야 한다. 평범한 사람이라 할지라도 사람의 인상(얼굴)을 보고서 그 사람의 인생과 영혼을 보고, 정당이 하는 행태 몇 건만 봐도 그들의 이념적, 정책적 본질을 본다. 정당의 영혼을 본다.

드물게도 ‘국가비전 2030’을 꼼꼼히 살펴본 전병유 교수(한신대)는 이에 대해 “성장전략이 제시되지 않은 채 복지국가의 비전만 보여주는데 급급”했으며, “복지가 투자적 성격을 가진다는 점을 강조하는 ‘사회투자국가’에서도 구체적인 성장전략은 찾아보기 어려웠다”고 평가한다.(<노무현 시대의 좌절>, p 92)

 

거칠게 보면 지난 대선 때 참여정부와 정동영은 ‘갈아 봐야 별 수 없다’ ‘민주적이고 도덕적인 우리 이상 국가경영을 잘 할 자가 없다’며 ‘참고 기다리면 비전2030의 세상 온다’는 메시지를 보냈다고 할 수 있다 .물론 정동영은 비전2030을 전혀 존중하지 않았지만 그의 정책은, 손오공이 부처님 손바닥에서 놀듯이 비전2030 안에서 놀았다. 하지만 대중은 ‘이대로는 못 살겠다’ ‘그렇게는 못 기다리겠다’면서 이명박을 통한 획기적인 변화를 도모하였다. 그런 점에서 ‘국가비전 2030’은 이를 뒷받침하는 정치세력이 없어서 죽은 것이 아니라, 이 자체가 대중에게 꿈과 기대를 주지 못해서 죽었다고 보아야 한다.

 

비전2030에서 보듯이 참여정부는 직업 관료의 상상력과 문제의식(현실감각)으로 운영되었다. 그래서 직업 관료에 의한 직업 관료를 위한 직업 관료의 정부라는 비판이 나오는 것이다.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호랑이 없는 곳에 여우가 스승이라고, 제대로 된 정치인과 정당이 없는 상황에서는 관료가 스승을 하는 것이 당연하다. 어쨌든 참여정부는 직업 관료의 창의와 열정을 꽤 높은 수준에서 발휘하도록 하였다. 나는 이것이 참여정부의 잘 알려지지 않은 위대한 치적 중의 하나라고 생각한다. 물론 이는 참여정부의 한계이기도 하다. 바로 이 때문에 직업 관료의 상상력을 뛰어넘고, 나아가 이들을 휘어잡아 청계천 복원과 버스중앙차로제를 밀어붙인 ‘일 할 줄 아는’ CEO 대통령을 뽑았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슬프게도 이 CEO 대통령은 서울시장이 한계인지, 대중의 기대를 무참히 배신하고, 국가경영에 요구되는 대담한 상상력은 거의 발휘 못하고 있다. 설상가상으로 공무원을 휘어잡느라 참여정부가 겨우 살려놓은 그들의 적지 않은 창의와 열정을 죽여버리고 있다. 더군다나 이명박 주변에는 권력을 무슨 비즈니스 모델로 생각하는 듯한 먹튀 이권세력이 겹겹이 포진하고 있다. 이들의 재정, 자리 노략질은 정말 가관이다. 참여정부는 권력을 갖고 좌지우지 할 수 있는 재정, 자리가 어디에 얼마나 있는지 알지도 못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이명박 주변 세력들은 이를 너무나 잘 찾아낸다. 정연주를 몰아내고, 노무현 측근들 초토화 할 때 보여주었듯이 검찰, 감사원, 국세청의 합동작전도 잘도 조직한다. 구석구석 먹을 것을 잘도 찾아낸다. 절차, 관행 무시하고 예산에 잘도 반영한다. 전국 일주 자전거 도로 구상이나 4대강 개발 관련 예산이 불과 몇 개월 사이에 5조원 가량 뻥튀기 되는 것은 먹튀 이권 세력의 위대한 합동작전을 빼놓고는 설명하기 어렵다.

 

노무현 정부가 내놓아야 할 비전은 비전2030 수준이 아니었다. 박정희가 만들고 김대중이 크게 뜯어고친 경제사회(복지)모델을 또 크게 뜯어고쳐서 내놓았어야 했다. 양재진은 이를 노무현 정부의 시대적 과제였다고 말한다.

 

“노무현 정부가 성립된 2003년은……’한강의 기적’을 가져온 개발연대식 발전모델은 수명을 다했으므로 새로운 발전전략이 필요한 상황이었다.(중략) 김영삼 정부는 ‘세계화’를 모토로 신자유주의를 적극 받아들이고, 김대중 정부도 시장질서 확립과 투명성 제고라는 질서자유주의 틀에서 경제개혁에 나섰지만 경제, 노동, 복지, 교육 등을 포괄하는 새로운 발전 패러다임 속에서 이루어 진 것은 아니었다. 노무현 정부의 시대적 과제는 새로운 경제발전모델과 이에 부응하는 복지모델을 제시하는 것이었다. 새로운 성장과 복지모델을 통해 경제의 활력과 사회 안정의 기틀을 다지는 것이었다.”(p 111~112)

 

양재진은 지난 대선과 총선에서 진보개혁세력이 맥도 못 추고 무너진 이유도 “산업화 시기 발전국가시대에 형성된 우리나라의 경제발전체제와 복지체제의 패러다임적 변화를 이뤄내지 못하여, 인상적인 경제성장도 사회양극화 대체에도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것”에서 찾는다. 박정희 모델을 확실히 대체할  ‘새로운 성장과 복지모델’은 여러 분야에 걸쳐 오래 –헌법, 선거법부터 교육.부동산.조세 제도, 재정 할당 관행, 노동 관행 - 바꾸는 대담한 외과수술적 개혁과 생활 습관, 마음가짐 개선 기존 내에서 생산성을 최대한 높이는 운동요법과 식이요법에 비견되는 개혁도 병행해야 한다. 물론 다양한 분야와 층위에서 일관되고, 통일되고, 장기지속적인 개혁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곳에 깊이 뿌리를 내린 정치사회 세력이 있어야 한다. 당연히 이들을 묶어내고 일관성, 통일성, 지속성을 부여하기 위해서는 서로 공유하는 이념이 있어야 한다. 정치적 동원(지지층형성) 위해서도 새로운 이념이 절실히 필요하다. 그런데 한국 정치권이나 지식사회에서 대체로 새로운 이념의 중요성을 간과하고 있다. 국가경영 컨텐츠(노하우) 중요성을 강조하는 사람들은 있지만, 대체로 개별적 전문성, 특히 경제정책 관련전문성에 대한 강조에 그치고 있을 다양한 개별 정책들을 총화한 새로운 이념 정립의 중요성까지 인식하는 사람은 드물다. 더군다나 이념을 유지, 발전시키고, 구현할 정치조직과 정치생태계의 중요성까지 인식하는 사람은 더더욱 드물다.


외주.하청을 줄게 따로 있다.

뉴민주당 선언은 일종의 강령적 선언이다. 강령적 선언은 시대와 한국현실에 대한 통찰을 담고 있어야 한다. 국가비전은 더 말할 것도 없다. 세계사(문명사)적 흐름을 꿰뚫고, 한국 사회가 당면한 심각하고 중대한 위기와 국민들 및 지지층의 절실한 요구, 불만, 고통을 꿰뚫어야 한다. 그래야 가치와 정책의 우선순위와 기조를 잡을 수 있다. 본래 시대와 한국 현실에 대한 통찰은 정치인의 전문 영역이다. 결코 외주.하청을 줘서는 안되는 고유 핵심 업무이다. 그 누구보다도 정치인이 잘 할 수 있고, 잘 해야 하는 것이다. 이것을 대중의 삶의 현장을 누비면서 손을 잡고 눈을 맞추고 볼을 부벼 보지 않은 직업관료나 백면서생이나 다름없는 교수에게 의존해서는 제대로 된 물건(강령적 선언과 비전)이 나오기 어렵다. 강령적 선언이나 국가비전의 핵심 컨셉을 직업 관료나 (교수 출신 직업 정치인도 아닌) 직업 교수에게 통째로 외주를 주고 품질 검사만 하는 정당은 결코 정상이 아니라고 보아야 한다. 뉴민주당 선언의 핵심 문제도 비전2030의 핵심 문제도 파 들어가 보면 결국 시대와 한국 현실에 대한 통찰의 허술함에서 나왔다. 이로부터 가치와 정책의 우선순위가 틀어지고 정책 기조도 헛발질을 하게 되었다. 한마디로 정작 가려워하는 곳을 긁지 못하고, 엉뚱한데서 변죽을 올리게 된 것이다.

 

노무현을 두 번 죽이려는가?

박정희패러다임과 김대중패러다임을 뛰어넘는 새로운 진보 패러다임을 만드는 것은 참여정부와 범진보 세력의 실력에 비해, 아니 대한민국 전체의 실력에 비해서 너무나 어려운 과제이다. 물론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이명박 정권도 참여정부처럼 맥도 못 추고 무너질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좋아할 일이 아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가 맥도 못 추고 무너지는 통에 계속 대한민국은 가라앉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그래도 쟤들 보다는 덜 가라앉혔다고 자랑할 일이 아니다. 노무현은 새로운 진보주의 연구로, 또 노무현으로 상징되는 위대한 가치, 기풍, 세력을 뿌리채뽑으려 드는 야만 세력에 맞서 자결로서 대한민국이 가라앉는 속도를 늦췄다. 그런데 당신은 무엇으로 가라앉는 대한민국을 구할 것인가? 이명박 퇴진 투쟁으로? 반한나라 투쟁으로? 신자유주의 반대투쟁으로? 노무현과 참여정부와 비전2030은 대한민국의 길이요 빛이요 진리라고 부르짖어서? 몽땅 글쎄다.

  

노무현의 계승자는 그의 정신과 성과는 확실히 계승하고, 한계와 오류는 확실히 극복하는 자이다. 노무현을 신처럼 모시는 자들, 노무현 후광 효과로 뭔가 하겠다는 자들은 노무현을 두 번 죽이는 자들이다. 참여정부 시절에는 노무현의 한계와 오류를 시정하지 못하여 한 번 죽이고, 지금은 그가 온 힘을 다해 하려고 하다가 끝내 못한 ‘새로운 진보’ 패러다임 정립이라는 숙제를 외면한 채 그의 후광만 이용하려는 얍삽한 짓으로 그를 욕되게 하여 또 한번 죽이는 격이기 때문이다. -끝-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201


덧글

  • Moonseer 2009/06/25 12:26 # 답글


    결국 그 동전의 볼록한 면을 어떤 식으로 펴야 좋을 지가 관건이라고 생각합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이런 문제를 인식하면서도 변화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로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라고 말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만, 정치 활동에 필요한 자금이 기업으로부터 나오는 체계가 남아있는 한 그 돈을 받아 당선되는 정치가들이 돈을 주는 손을 물 수는 없습니다. 반면에 자금을 기업이 아니라 민간의 모금 등을 통해서 마련하는 정치 조직은 상대적으로 자금력이 약할 수 밖에 없고, 설사 당선이 된다 하더라도 이후에 개혁을 추진하는 과정에서 능력에 비해 버거운 책임을 강요당할 수 밖에 없습니다.

    방법이야 여러 가지 목소리로 이야기가 되긴 합니다만, 어느 것도 현실적이지 못하다는 게 걱정이네요. 세상사가 다 이런가 봅니다.

    잘 읽었습니다.
  • L 2009/06/25 15:18 # 삭제 답글

  • 인디아나 2009/06/25 16:14 # 삭제 답글

    글 잘 읽었습니다.

    어제 친구와 한국 경제 어떻게 될것 인가에 대해서 얘기했었는데...
    여기에 과거의 문제와 현재 다루어야할 핵심을 다 적어 놓으셨네요.

    감사합니다.
  • 콜미 2009/06/26 14:26 # 삭제 답글

    노무현 전대통령이 비리있을때는 관계없다고 버릴때는 언제고
    이제와서 노무현이라는 이름을 이용하다니
    달면 삼키고 쓰면 아무런 거리낌없이 버려버리는 깽깨이새끼들.
    진짜 이놈들은 말로만 버지르르하고 답이없다.ㅁㅈㄷ
  • Livgren 2009/06/26 18:21 # 답글

    김대호님...
    사회디자인 연구소라는 뜻은 이전 사회를 넘은 새로운 사회를 설계하자는 뜻입니까?
  • 김대호 2009/06/26 20:37 # 삭제 답글

    유효기간이 지난 박정희-김대중(노무현) 패러다임을 넘는 정치, 경제, 사회 패러다임을 설계하자는 것입니다. 사회주의와도 상관없고, 폴라니 류도 아니고....제3의 길의 한국 버전(크게 수정된 버전) 쯤 된다고 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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