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이 타고 갈 정책 플랫폼은? 정치와 통계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


플랫폼(platform)은 자동차 회사에서는 아주 많이 쓰는 단어다. 플랫폼은 원래 기차 역의 철로 주변, 그러니까 사람이 타고 내리는 곳을 의미했다. 최근에는 윈도우나 리눅스 같은 컴퓨터 운영체제를 지칭하는 단어로도 쓰인다. 이로부터 플랫폼은 뭔가 소품(사람, 물건, 응용 프로그램 등)를 올려서 운용하는 토대나 환경이라는 의미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자동차는 크게 차대(車臺)=샤시(chassis)와 차체=보디(body)로 구분한다. 이는 마차를 제조할 때부터 쓰인 구분법이다. 차대는 바퀴가 달린 단단한 프레임이었다. 소가 끄는 달구지가 차대와 가장 닮았다.(Chassis를 달구지로 번역 했으면 사람들이 훨씬 쉽게 이해했을 텐데……) 차체는 차대 위에 얹힌, 사람이 들어가 앉는 뚜껑(껍데기)이었다. 자동차의 핵심 기능 부품들, 즉 동력 발생 장치, 동력 전달(변속) 장치, 조향 장치, 제동 장치, 현가(서스펜션) 장치, 흡배기장치, 휠과 타이어 등은 단단하고 조화롭게 결합되어 있다. 이것이 바로 자동차 플랫폼이다. 과거에는 큰 철골 프레임에 이들 부품들을 붙였지만, 지금은 중량 저감을 위해서 차체에 바로 붙인다. 차대=플랫폼만 있으면 볼썽사나워서 그렇지 달리고, 돌고, 서는 자동차 기능을 다 할 수 있다.


한편 차체는 주로 보이는 부분 혹은 사람과 접하는 부분을 총칭하는데, 크게 외관(exterior)과 내장(interior)으로 나눈다. 차체의 주된 기능은 차대를 덮어 보기 좋게 하고, 바람의 저항도 줄이고, 운전석으로 들어오는 비, 바람, 햇살, 소음을 막고, 운전자가 편하게 앉도록 하는 것이었다. 요컨대 차대가 차량의 본질적인 기능부라면 차체는 주변적인 기능부인 것이다. 차대가 본체라면 차체는 껍데기고, 차대가 몸이라면 차체는 옷이라고 할 수 있다. 차대, 즉 플랫폼은 자동차의 정체성을 결정한다. 플랫폼은 쉽사리 바꿀 수 없지만, 차체(body)는 얼마든지 바꿀 수 있다. 자동차 회사들은 하나의 플랫폼을 가지고서 겉 모양(차체)을 바꿔서 완전히 다른 차처럼 보이게 한다. 과거 대우가 만든 티코, 다마스(승합차), 라보(트럭)는 외관은 완전히 달라도 플랫폼은 같았다. 현대자동차는 스타렉스 플랫폼으로 1톤 트럭도 만들었다. 기아 옵티마와 현대 EF소나타도 플랫폼이 같았다. 지금도 외관은 완전히 다르지만 플랫폼이 같은 차들이 많다. 하나의 플랫폼으로 소비자의 기호에 맞게 다양한 외관의 자동차를 만드는 것은 자동차 회사의 원가 경쟁력의 핵심적인 부분을 차지한다.


자동차 개발 비용의 대부분은 플랫폼 개발비다. 자동차 회사의 연구개발 능력의 핵심은 훌륭한 플랫폼을 개발하는 능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차의 핵심 기능 부품을 결합하고 조화시켜서 원하는 차 특성을 창조하는 것이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다. 예컨대 힘 좋은 차를 만들려면 배기량이 큰 엔진을 달면 된다. 하지만 고객이 차에 요구하는 품질(성능, 기능 포함) 특성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사실 고객이 자동차 회사에 들이미는 요구나, 국민이 정부에게 하는 들이미는 요구는 거칠게 표현하면 ‘돈 천원 주면서 좋은 술, 담배, 안주 사고 거스름돈도 남겨와라’는 식이다. 너무나 과도하고 모순적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동차 회사나 정부는 최대한 이 요구를 받아 안아야 한다.


어쨌든 고객이 연비가 좋은 차를 원하면 배기량이 큰 엔진을 가져다 쓸 수가 없다. 가능하면 작은 엔진을 쓰고, 차대와 차체를 줄이고, 최대한 가벼운 소재로 만들어야 한다. 그런데 가벼운 소재를 쓰게 되면 원가가 올라가고 대체로 충돌 안전성이 떨어진다. 돈을 많이 들이면 거의 모든 품질 특성이 좋은 차를 만들 수는 있지만, 살 사람이 없어서 회사가 망해 버릴 것이다. 또 수 십만 대 이상 생산, 판매하는 회사는 엔진, 미션을 타 회사에서 사오는 경우가 거의 없다. 잘 팔지도 않을뿐더러, 용케 사온다 하더라도 원가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이다. 그래서 엔진 미션은 자회사 제품이 좀 후 지더라도 그것을 써야 한다. 이 경우 플랫폼 설계 시에 엔진, 미션은 기본 상수로 되는 것이다. 엔진, 미션으로 인한 품질(성능) 문제는 다른 것(변수)으로 커버해야 한다.


정책 플랫폼(패러다임)

연비를 개선한다고 자동차 차대(車臺)에 날렵한 자전거 바퀴를 끼우면 어떻게 될까? 뻔하다. 바퀴가 일그러져서 제대로 달리지도 못할 것이다. 오토바이 프레임에 비싸고 튼튼한 자동차 바퀴를 끼워도 비슷할 것이다. 잘 끼워지지도 않겠지만, 용케 끼웠다 하더라도, 돈은 돈대로 쓰고 오토바이 성능은 더 떨어질 것이다.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가 적절한 프레임에 주요한 기능시스템과 부품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되어 제 기능을 발휘하듯이 복지, 노동, 교육, 부동산, 재정, 금융 관련 제도, 정책들도 마찬가지다. 각각의 제도, 정책들은 자동차로 치면 일종의 기능 시스템(모듈)이다. 제동시스템(모듈), 조향시스템(모듈), 엔진(모듈) 같은…… 이 기능 모듈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것이 자동차 플랫폼인 것처럼, 국가를 지탱하는 주요 제도, 정책들이 유기적으로 통합된 것이 정책 플랫폼 혹은 정책 패러다임이다.


자동차, 자전거, 오토바이가 그렇듯이 복지, 노동, 교육, 부동산 관련 제도, 정책들도 국지적 선진화(개혁, 개선)가 주변 요소나 하위 요소들과 충돌하여 시스템 전체의 퇴행을 초래하는 경우가 드물지 않다. 국지적 개혁, 개선이 초래한 최악의 사고는 아마 김영삼 정부가 주도한 외환금융자율화와 대학설립 및 정원 자율화 일 것이다. 전자는 외환위기를 초래하였고, 후자는 세계 최고의 대학진학율, 콩나물 강의실과 부실 대학교육, 중.하층 노동력의 기근과 대졸 백수 폭증 사태를 초래하였다. 좋은 의도가 예기치 않게 나쁜 결과에 얻어터지는 사례는 이뿐 아니다. 


(조감도만 보여주고 아파트를 팔 수 있도록 허용한) 선분양제는 유지하고, 다주택 소유자에 대한 규제도 하지 않은 채, 그나마 총부채상환비율 규제(DTI) 등 금융규제도 하지 않고, 저금리와 분양가 자율화와 혁신도시, 행정복합도시 건설이라는 선진화(?)를 추진하자 부동산 폭등사태가 일어나 버렸다. 소득 파악 미비, 소득 신고 누락 등을 전제로 한 높은 세율을 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신용카드 사용이 확대되고, 세정이 투명화, 선진화 되자 자영업자들의 세금 부담이 빠른 속도로 늘어나면서 큰 폭의 민심 이반을 초래하였다. 하부 권력에 대한 민주적 통제장치를 제대로 만들어놓지 않고 대통령이 탈권위의 기치아래 제왕적 권력을 놓아버리는 정치, 정부 개혁을 추진하자, 유무형의 규제(처벌)권이나 자원 할당권을 가진 검찰, 관료 마피아, 공기업, 공단, 재벌대기업, 지방토호 등이 살판나버렸다. 당정분리와 탈권위주의로 인해 지배 주주가 없는, 소상점주연합회 비슷한 열린우리당은 콩가루 집안으로 운영되다가 끝내 해체되어버렸다.


이런 어리석은 정책의 행진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는 정권 출범 초기부터 사교육비를 잡겠다고 심야 교습시간 제한 등 꽤 과감(?) 황당한 구상을 내놓았다. 그러나 현실은 사교육비가 더 늘어나고 있다. 이유는 명백하다. 한국은 좋은 직업(학과), 좋은 직장, 좋은 대학이 가진 프리미엄(경제적 지대)이 너무나 크고, 10대 후반에서 20대 초반에 이 프리미엄 수혜 여부가 판가름 나기 때문이다. 설사 공교육이 학급당 학생 수를 지금의 절반으로 줄여도 사교육이 획기적으로 줄 수가 없다. 학업 성취도가 문제가 아니라 남보다 앞서는 것이 문제기 때문이다. 따라서 적어도 현재의 경제사회 구조를 근본적으로 뜯어고치지 않는 이상 사교육은 그 어떤 방식으로 교육을 개혁해도 결코 획기적으로 줄어들 수가 없다고 보아야 한다. 문제는 입시제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좋은 직업, 직장, 대학이 가진 프리미엄에 있기 때문이다.


노동정책이건, 교육정책이건, 복지정책이건 정상적으로 작동이 되려면 무수히 많은 제도, 정책들의 유기적 결합, 즉 정책혼합(policy mix)으로 나타나야 한다. 정책혼합은 곧 정책패키지(policy package)를 말한다. 단적으로 복지 정책은 조세.재정 구조, 산업.일자리 구조, 소득 분포, 인구 구조 변동, 세금과 공공부문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 이를 면밀하게 고려하지 않는 복지 정책은 사상누각이다. 정책 플랫폼은 여러 개의 정책 패키지(모듈)가 일관된 철학, 가치, 비전 위에서 유기적으로 결합한 것이다. 이 플랫폼을 타고 5년, 10년, 25년을 달리면 눈앞에 펼쳐지는 미래상이 바로 비전이다. 참여정부가 내놓은 비전2030은 장기 재정 계획과 (예산이 많이 소요되는) 주요 정책간의 모순을 해소하여 2005년부터 2030년까지 우리 삶의 개선 상을 주요 지표를 통해서 보여준 것이다. 그런 점에서 비전2030은 재정과 사회의 동태적 변화를 정밀 계산한, 한마디로 컴퓨터 시뮬레이션 정도는 거친 플랫폼이라고 할 수 있다. 물론 국민들은 삶이 팍팍하고 답답해서인지 관료적 정직성과 보수성이 짙게 묻어있는 비전2030을 받아 들이지 않았다. 그런데 한국 역사상 이 정도의 시뮬레이션이라도 거쳐서 만든 정책 플랫폼은 없었다. 다 뻥이고, 개념이고, 방향이었을 뿐이다.


자동차 플랫폼 개발 과정에서 고려하는 요소와 정책플랫폼(패러다임) 개발 과정에서 고려하는 요소는 매우 흡사하다. 자동차 플랫폼 개발 시 주요하게 고려하는 변수는 고객 요구의 우선 순위, 차 운행 환경, 경쟁사 제품의 강약점, (지역별로 다르고, 시간에 따라 변화하는) 법규, 제품 철학과 마케팅 포인트 등이다. 당연한 일이지만 먼지 자욱한 비포장 도로를 무거운 짐을 싣고 달리는 트럭 플랫폼과 아우토반을 고속으로 달리는 스포츠카 플랫폼이 다르다. 기름값도 싸고 도로도 넓은 미국에 맞는 차 플랫폼과 기름값도 비싸고 좁은 골목길이 많은 유럽에 맞는 차 플랫폼이 다르다. 소음진동(NVH) 특성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차 플랫폼과 운전성(R&H)을 마케팅 포인트로 잡은 차 플랫폼은 다르다. 플랫폼 개발이 어려운 것은 이처럼 고객이 요구하는 품질 특성이 대단히 다양하고, 상호 모순적이며, 자동차 회사가 쓸 수 있는 자원(엔진, 미션, 소재, 개발비, 기술력, 부품업체 등)은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자동차 개발은 조화의 예술이라고 한다.


고객의 요구와 차 운행 환경 파악을 위해 목표 고객의 생활양식과 사용목적, 그 나라의 인구구성, 도로 사정, 운전 습관과 교통문화, 사회문화, 관련 법규, 소득 수준 등의 추이를 분석한다. 동시에 유가 동향(가솔린과 경유, 유가 전반), 이산화탄소 규제, 재활용 규제, 안전규제, 신기술 동향 등을 고려한다. 이는 대체로 미래학 영역이다. 또한 기술력(자체 기술력, 협력업체 기술력), 자금사정, 경영 전략, 차 판매가격 등도 중요하게 고려한다. 이런 정보를 기초로 차량의 대략적인 구도(lay out)을 잡는다. 운전자의 눈높이와 엉덩이 위치(heap position), 차대 높이, 축간 거리, 차폭, 무게중심, 중량, 연비, 엔진사양, 가속력과 최고 스피드, 휠과 타이어, 서스펜션 방식, 편의장치, 품질(성능) 목표치 등을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설계 상수와 변수가 생기고, 가이드 라인이 생긴다. 물론 이 모든 품질(성능), 기능, 가이드 라인 등은 차량을 개발하면서 조금씩 조정되고 향상된다.


정책 플랫폼을 개발시 주요하게 고려하는 요소도 비슷하다. 모든 것의 중심에는 국민, 유권자, 핵심 지지층의 요구, 기대, 고통, 불만이 있다. 이를 좀 더 정확하게, 또 동태적으로 알기 위해 이 요구와 불만을 생애주기별로, 계층별로 분석한다. 또한 인구구조, 산업.일자리 구조, 조세.재정 구조, 경제통상 환경, 자산.소득의 분포와 격차, 교육 수준, (정치, 행정, 사법, 언론 등) 공적 존재들에 대중적 신뢰 수준, 사회문화 등을 분석한다. 이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기후.환경.에너지 위기, 중국과 인도의 경제사회 발전 등 미래학이 제공하는 지식의 뒷받침을 받아야 한다. 물론 경쟁하는 정치 세력의 강약점에 대한 고려도 빠질 수가 없다. 헌법, 선거제도, 복지제도, 교육제도, 노동법규, 언론환경, 주요 이익집단의 특성과 갈등해결 방식 등 법률.문화적 환경도 역시 중요하게 고려되어야 한다.


자동차 플랫폼을 개발 할 때도 관통하는 어떤 철학, 가치(품질 특성의 우선순위), 제약조건이 있듯이 정책 플랫폼을 개발할 때도 마찬가지다. 정책 플랫폼은 철학, 가치, 비전, 제약조건과 모순 없이 결합된 주요 정책의 총체이다. 이는 정책 패러다임이라고 부르기도 하고 이념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박정희 플랫폼(패러다임)은 정부 주도의 자원 할당(주식회사 한국)-권위주의(국회의 통법부화)-반북 대결주의-관치금융-신중상주의-저곡가(농업인구 축소)-노동억압-산업 분야로 인재 집중 유도(공공부문에 대한 강력한 통제)-이공계 대학과 공업고등학교 육성 등의 정책이 나름대로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었다. 이는 한강의 기적을 연출했지만, 내적 모순과 1990년 중반의 급변한 외적 환경과 충돌하여 결정적인 타격을 입고 김대중 플랫폼(패러다임)에 의해 대체되었다. 김대중 플랫폼 -노무현은 이를 주로 관리, 개선 했을 뿐이다-은 외환위기 조기극복이라는 신화를 연출했지만, 이 역시 숱한 내적 모순과 외적 환경과의 충돌 문제를 안고 있었다. 물론 김대중(노무현) 플랫폼을 대체할 새로운 플랫폼은 그 기본 얼개가 어떠해야 할지 아무도 모르고 있다. 백가쟁명 상황이라고 할 수 있다. 


정책 플랫폼(패러다임) 혹은 국가개조의 비전, 전략의 총체(이념)가 가시화, 구체화 된 것이 바로 사회경제모델이다. 이는 비전이라고 할 수도 있다. 한국 보수는 사회경제 구조의 큰 틀을 손 보아야 한다는 생각 자체가 없기에 비전으로 제시하는 사회경제 모델이 없다. 단지 좌파적 요소를 적출하면 좋은 나라가 된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반면에 한국 진보는 수입한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비전으로 제시하는 사회경제 모델이 있다. 또한 사회경제 구조의 큰 틀을 손 보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들이 가장 선호하는 모델은 북유럽모델 이거나 독일식 사회적(조정)시장경제 모델이다.


하지만 나는 이 모델들은 한국인의 성정, 문화와도 맞지 않고, 한국의 독특한 사회구조와도 맞지 않고, 시대의 거시흐름과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이는 한국 사회의 모순.부조리에 대한 분노는 쳐줄만하지만, 기본적으로 자기 전공의 한계를 거의 뛰어 넘지 못하는 책상물림들의 몽상이라고 생각한다. 


사회 컨셉 디자이너(Concept Designer)

자동차 플랫폼을 개발하기 위해서는 시장의 요구.지식과 각 분야 기술자의 요구.지식과 경영의 요구.지식을 총화, 조정하여 차의 기본 컨셉을 잡고 이를 기술자들을 동원하여 구현하는 사람이 필요하다. 이 사람이 바로 컨셉디자이너(Concept Designer) 또는 프로젝터매니저(Project Manager, 일명 PM)이다. 명실 공히 세계 최강의 자동차 회사인 일본 도요타 자동차는 세계 최강의 PM을 보유하고 있다. 아니 최강의 PM을 양성하는 교육훈련 과정을 가지고 있다. 도요타는 종합적 통찰력과 학습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있는 엔지니어를 뽑아서 근 20여 년에 걸쳐서  체계적으로 교육, 훈련시킨다. 차체설계, 샤시 설계, 기본 설계(package design) 등 주요 설계 파트와 상품기획팀 등을 몇 년씩 거치도록 한다. 그래야 장차 PM이 되어 각 분야 설계팀과 상품기획팀 등과 원활한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PM은 시장과 경영으로부터 나오는 수많은 모순된 요구를 적절히 거르고, 절충하여, 품질(성능) 목표치로 변환시켜 엔지니어링에 반영한다. 시장과 경영의 요구 중에는 차에 반영 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드는 것도 많다. 예컨대 자동차에 개발에 대해 제대로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던 1970년대 중반, 故정주영 회장은 원래 왼쪽 핸들 차량으로 개발된 포니(pony)를, (일본과 영연방 국가에도 팔 수 있게) 오른쪽 핸들 차량으로도 개발하라고 지시했다. 그것도 2주 내에! 그러나 이 간단해 뵈는 일은 아무리 짧게 잡아도 6개월 이상 걸리는 일이었다. 자동차 관련 기술과 프로세스를 잘 모르는 경영자 중에는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드는 일이나 사실상 불가능 한 일을 불쑥 불쑥 지시하여 차 개발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기도 한다. 정책에도 이와 비슷한 일이 많이 벌어진다.


정치인은 정책 컨셉디자이너(Concept Designer)이다. 정책 플랫폼 개발을 지휘하는 PM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자동차 플랫폼 개발을 지휘하는 PM이 핵심 기능 부품을 책임진 수많은 엔지니어들과 대화가 되듯이, 정치인도 국가경영을 떠 받치는 주요 분야(조세재정, 경제금융통상, 보건의료, 복지, 교육, 통일, 공공 등)의 전문가(학자, 관료, 컨설턴트)들과 대화가 되어야 한다. 종합적 통찰력과 학습능력과 커뮤니케이션 능력은 기본이다. 스스로가 PM이 되기 어렵다면 참모라도 두어야 한다. 그것도 없으면 정당에라도 두어야 한다. 아니 모셔야 한다. 그래야 정책의 개념 내지 기조(lay-out)를 잡고 수많은 학자, 관료, 기업인, 컨설턴트, 시민단체 활동가들과 풍부한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정책 플랫폼을 제대로 개발 할 수 있다.


한국에서 정치를 하거나 정책에 관여하려고 하는 사람들 상당수는 시대에 맞고, 한국 체질(현실)에 맞는 정책 플랫폼(패러다임) 개발을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잘 모르는 것처럼 보인다. 아니 정책은 정책플랫폼 위에서 구현되어야 한다는 사실조차 모르는 사람도 많은 것처럼 보인다. 이런 사람들은 강단에 자리 잡은 사회복지학자가 사회복지 정책을 설계 할 수 있고, 노동경제학자가 노동관련 정책을 설계할 수가 있다고 생각한다. 게 중에는 선진국 정책 모델 가져와서 베끼기만 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다. 사실 이렇게 베껴 만든 정책의 실효성만 있다면야 굳이 PM이 필요 없다. 그런데 한국은 이런 단계를 벌써 지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난 민심의 격렬한 요동(스윙) 현상은 정책 플랫폼의 존재의의를 모르고 힘차게 내지른 정책과 관련이 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엔진과 바퀴만 좀 아는 사람이 좋은 차를 만들겠다고 덤빈 꼴이다. 비전2030도 뉴민주당 선언도 따지고 보면 컨셉디자이너 훈련이 전혀 안된 사람-이런 훈련이 제대로 된 사람은 없다. 나를 포함해서-의 졸작이라고 할 수 있다.


좋은 PM의 지휘를 받지 않는 자동차 플랫폼 개발은 회사를 망쳐먹는 길이고, 좋은 컨셉디자이너(정치인)가 관계하지 않는 정책 플랫폼 개발은 나라와 정치세력을 망쳐먹는 길이라고 할 수 있다. 참여정부와 이명박 정부에서 일어났거나 일어난 일은 바로 좋은 컨셉디자이너 없이 획기적인 개혁을 해보려는 시도의 후과라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에서 북유럽 모델, 독일식 사회적 시장경제 모델, 미국 모델 등 경제사회 모델(패러다임)을 얘기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딛고 서 있는 경험적, 지적 기반을 냉철하게 뜯어 보아야 한다. 과연 복지 정책의 대전제인 조세.재정 구조와 현실에 대해서, 일자리 구조와 노동 내 엄청난 격차에 대해서, 특히 기업과 산업 현장에 대해서, 사회적 신뢰 수준 및 갈등해결 실태에 대해서 얼마나 알고 있는지? 등등 이 경제사회 모델들의 작동의 전제조건에 대해서도…… 또 새로운 정책 플랫폼(패러다임)을 내오기 위해 요구되는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습득하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했는지? 그 방면을 꿰고 있는 전문가를 얼마나 알고 있는지? 과연 자신의 타 분야에 대한 지식이 신문을 통해 얻은 지식을 얼마나 넘어서고 있는지?


확신컨대 장님코끼리 만지기가 횡행하고, 이론과 실물의 벽이 높고, 이념.정책의 오퍼상들이 설쳐대는 한국적 현실에서 자신의 눈(편견)과 뇌(경험.지식)와 관계(지식인 네트워크)의 구조적 한계를 인정하지 않는 자는 대한민국이 가야 할 길에 대해서 목소리를 낮추는 것이 현명하다고 생각한다. –끝-


 http://www.goodpol.net/discussion/progress.board/entry/204


덧글

  • 나이샷 2009/07/01 22:15 # 답글

    저는 김대호님이 강조하는 "한국적 특수성"에 있어 "재벌"이 가장 본질적인 요소이며, 이를 위해서는 인위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봅니다. 미국에서 록펠러등이 주도했던 강도남작 자본주의가 테디 루즈벨트와 같은 공화주의자에 의해 셔먼법으로 스탠다드 오일이 해체되는 식으로 결딴 난것처럼 말이지요.
  • 유치찬란 2009/07/02 00:49 # 답글

    저는 정책플랫폼이라는 개념을 들여오려고 하는 순간, 정책결정에 있어서 모델을 들여온다고 생각하게 되는데 말이죠. 물론 한국은 북유럽이나 어디나, 사실 모델 적용에 있어서 가용한 국가가 아닙니다. 해외의 성공한 모델을 직접적으로 적용 가능한 국가가 아니죠.

    하지만 그 이전의 문제를 생각한다면, 한국의 정치는, 즉 정당체계는 포괄정당이고 선거전문정당입니다. 애초에 정당이 갈등축을 제대로 반영하지도 못하고 반영 하려는 생각도 없는 정당들이지요.
    세계에 어느 정당이 이정도로 포괄적으로 나가고(지네들은 민생편이면서 부자편이면서 약자편이면서 강자편이랍니다.-_-) 선거전문정당으로 나갈려고 할까요. 미국정도 있겠군요.
    애초에 한국은 립셋로칸식의 정당론 적용이 어렵고 유럽체계는 정당구조의 문제상 도입이 어렵다는 면도 있습니다만...

    아직 한국은 플랫폼. 즉 모델도입이라는 이름 자체가 나오기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한국의 시민은 아직 대통령이란 것에 많은 기대를 걸고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언제나 대통령은 기대를 모으더군요. 뭐든지 바꿔줄 것이다.. 라고)
    언제나 바꿔주는것은 없었지만 바꿔줄 것이다라는 초반의 기대는 없어지지 않습니다. 그 큰 기대, 그리고 그것은 종국에 실망으로 이어지고, 절망으로 이어지고, 무관심으로 이어진 뒤에, 다음 대통령이 집권할 때 쯤에는 다시 큰 기대로 이어집니다.

    한국에서 플랫폼을 운운하게 된다면 정당의 플랫폼이 아닌 대통령의 플랫폼이 됩니다. 그것은 4년만의 꿈이 되지요. 다음 대로 넘겨줄 수 없습니다. 가장 간단한 예로 노무현이 해 놓은 플랫폼은 꽤 많이 깨져 나갔죠. (뭐 김대중이 생각했던것들도 마찬가지긴 하지만...)
    한국에서 플랫폼이 제대로 운운되기 위해서는 건강한 정당체계가 완성되어야 합니다. 대통령한테 기대를 거는것이 아닌 정당에 기대를 걸게 되어야 합니다. 그것을 위한, 갈등축 반영을 위한 정당이 정답이고요. 한국은 그저 선거전문양성정당일 뿐입니다. 그것은 그저 아무것도 아닌 엘리트층의 응집을 위한 정당일 뿐이죠.

    컨셉디자인은 정당을 중심으로 일어나야 합니다. 물론 그것을 위한 학계의 연구와 움직임도 있어야 할 겁니다. 하지만 한국은 너무 대통령 중심입니다. 이건 타파되어야 할 문제입니다.
    물론 한국 정당은 병신이고, 기대 걸기에는 너무 병신이라 뭐랄까 실망에 절망을 겹치게 되지만, 한국 체계에서 일단 변화시켜야 할 것이 있다면 그것은 정당이 아닐까 싶습니다. 기대를 거는것이 있다면 점점 변화하고 있는... 걸까..요..;;;;;;;;;;;;;;;;;;;;;;;;;;;;;;;;;
    일단 기대하는 것이 있다면 정치인들의 (진정한 의미의) 세대교체가 점진적으로 일어나고 있다는 것 정도입니다만, 세대교체 이후에 변화가 있을지는.. 하아..

    대통령에 참모체계를 이어서 정책플랫폼을 결정한다는 류의 방식은 잘 이루어진다해도 4년만의 꿈이되기 쉽다는 것이 아쉬울 것 같습니다. (물론 가장 빠르고 실행 가능한 방식입니다. 효과도 좋고요. 즉각적인 반응이 나오기 좋다는 것이지만, 근데 어찌보면 지금도 하고 있는것이 아닐까 싶네요. MB의 방식으로요...이분은 의중을 잘 모르겠어서 말이죠. 이분의 시민기준은 누구인지;;; 녹색정책이니 뭐니 정책을 봐도 그렇고..;;;;;;;;;;;)

    생각해보면 이명박대통령의 참모진도 있다는데 이 사람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모르겠군요-_-;
  • 드래곤워커 2009/07/02 15:14 # 답글

    너무 길어서 내렸습니다.
    세줄요약부탁드립니다.^^
  • 드라곤워커 2009/07/07 16:52 # 삭제 답글

    너무 길어서 내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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