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번은 읽을 펌글)알라스카와 인문학 두번은 읽을 펌글

알라스카와 인문학 / 김윤상

조회수 30 추천수 0 2010.01.29 12:46:28

 


알라스카와 인문학


김윤상 / 성토모 자문위원


졸업을 앞둔 인문학 전공 학생들이 읽을 글을 쓰게 되었습니다. 졸업을 앞두고 있다면 당연히 사회진출과 취업에 온 관심을 쏟고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학생들의 진로에 도움을 줄만한 뾰족한 아이디어가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런 답답한 현실에서 조금 벗어나, 미국 알라스카주의 이야기부터 먼저 해 볼까요. 알라스카 주민은 매년 일정한 배당금을 받습니다. 무슨 투자의 대가도 아니고 일을 한 대가도 아닙니다. 주민이기만 하면 무조건 받습니다. 2008년에는 1인당 3,269달러를 받았고,  2009년에는 1,305달러를 받는다고 합니다. 금액이 매년 다른 이유는 아래에서 언급하는 ‘영구기금’의 운용수익이 변하기 때문입니다.


알라스카 정부가 무슨 돈으로 ‘퍼’주는지 의아하지요? 석유가 많이 나는 알라스카에서는 원유 파이프라인이 완성 단계에 접어들었던 1976년에 주 헌법을 개정했습니다. 석유 관련 광권 수입의 4분의1 이상을 영구기금(Alaska Permanent Fund)에 넣고 이 기금의 운용 수익을 주민에게 무조건 나누어주자는 내용이지요. 석유와 같은 천연자원은 특정인이 생산한 것이 아니므로 그 수익 역시 당연히 모두의 것이라는 취지입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드는 좋은 세상


멋지지 않습니까? 이런 아이디어는 어디서 나올 수 있을까요? 상상력입니다. 인간은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에 매여 너무나 당연한 것을 못 보고 삽니다. ‘천연자원은 모두의 것’이라는 당연한 이치도 상상력이 있어야 겨우 눈에 보입니다. 그런데 먹고사는 데 급급하면 상상력을 발휘할 수 없습니다. 학문 중에서, 이해관계와 고정관념으로부터의 탈피를 강조하는 학문, 먹고사는 현실과 가장 무관한 학문, 인간의 인간다움을 추구하는 학문, 상상력이 생명인 학문이 무엇일까요? 물론 인문학입니다. 알라스카의 배당금 제도는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낸 작품입니다.


비슷한 예로, 유럽에서는 기본소득 운동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기본소득이란 미성년자를 포함한 모든 국민에게 아무런 자격조건이나 의무사항 없이 무조건 지급하는 소득입니다. 알라스카 배당금과 비슷하지만 재원이 일반 조세라는 점에서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도 민주노총에서 이 아이디어를 받아 2009년 초에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습니다. 이 안에 의하면, 어릴 때부터 청장년기에는 연 400만 원, 55세가 넘으면 연 600만 원 이상을 지급하는 걸로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기본소득의 재원이 일반 조세라는 점이 개운치 않습니다. 조세는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결국 국민의 소득에서 나옵니다. 갑은 열심히 노력해서 소득이 높고 을은 빈둥거리다가 소득이 낮은 경우에 갑에게서 세금을 거두어 똑같이 나눈다면 갑이 억울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소득은 본인의 노력 외에, 타고난 능력에 의해서도 크게 좌우되고 인생살이의 각종 행운과 불운에 의해서서도 영향을 많이 받습니다. 그러니까 소득 중에서는 징수해도 억울할 것이 없는 부분이 상당히 존재하는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개미의 소득을 떼어 베짱이에게 주는 경우도 적지 않게 생길 수 있다는 점도 부인할 수 없습니다.


국민 공동자산으로 사회보장을 하면


반면, 알라스카 배당금에 대해서는 개미-베짱이의 비유가 성립하지 않습니다. 인간이 평등한 생존권을 가진다면, 생산자가 따로 없는 천연자원에 대해서는 국민 모두가 동등한 지분을 가지는 게 당연하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국민 공동자산의 가치를 재원으로 하면 아무도 억울해 할 일이 없습니다.


석유처럼 누구도 생산하지 않은 국민 공동자산의 사례는 많습니다. 각종 천연자원, 토지 등 자연 일체가 국민의 공동자산입니다. 휴대전화 등 통신기술이 발달하면서 점점 희소해지는 전파 대역도 공동자산입니다. 깨끗한 환경도 국민의 공동자산이므로 환경을 오염시키는 자에게서 그 대가를 징수하면 역시 훌륭한 재원이 됩니다. 나아가서, 정부가 정책상의 필요에 의해 일부 국민에게 특권을 부여한다면 그 대가 역시 국민 공동자산입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 국민 공동자산의 금액이 얼마나 될까요? 토지만 해도 연간 100조 원 정도의 임대가치가 있으며 이는 국민 1인당 200만 원 꼴입니다. 토지 외의 가치를 모두 합한다면 두 세 배도 넘을 것입니다. 알라스카 배당금이나 기본소득처럼 모두에게 같은 금액을 나누어주는 대신 생활이 어려운 사람에게만 지원한다면 필요한 사람에게 훨씬 많은 금액을 보장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일단 혜택을 받은 사람이 나중에 잘 살게 될 경우에 수령액을 상환하도록 한다면 공동자산 기금의 크기는 더 늘어날 것입니다.


생활고 없는 세상의 모습


국민 각자가 무슨 일을 하든, 심지어 아무 일을 하지 않더라도, 생활고를 걱정할 필요가 없는 세상은 어떤 모습일까요? 인문학적 상상력을 발휘해 보십시오. 빈둥거리는 사람이 넘쳐날 것이라는 걱정도 있을 겁니다. 물론 그런 사람도 있겠지요. 그러나 사람이 제일 못 참는 게 심심한 것이라는 말도 있듯이, 대부분은 막연히 빈둥거리기보다는 무언가 자기가 좋아하는 일을 하려고 할 겁니다. 좋아하는 일은 자꾸 하게 되고, 자꾸 하면 잘 하게 됩니다. 사람마다 생계 걱정 없이 좋아하는 일을 한다면 인생이 행복해질 뿐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지금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뛰어난 성취가 이룩될 것입니다.


고흐는 평생 예술을 위해 살았고 위대한 작품을 수없이 남겼지만 생전에는 자기 그림을 단 한 점 팔았을 뿐입니다. 동생 테오가 주는 생활비로 근근이 살았지요. 마르크스도 엥겔스가 주는 돈으로 살면서 인류사를 바꾼 업적을 남겼습니다. 누구나 기본 생계를 걱정하지 않는 제도를 만들면 모든 국민이 테오나 엥겔스와 같은 후원자를 두는 셈입니다.


국민 공동자산에 대해서는 모두가 평등한 지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런 제도는 결국 자기 돈으로 자기 생활을 보장하는 겁니다. 세금으로 빈곤층에게 사회보장을 하는 현재의 복지제도와는 아주 다른 개념입니다. 그러면 먹고사는 데 급급해서 재능을 발휘하지 못하고 있는 수많은 잠재적 고흐, 마르크스는 떳떳하게 자기 돈으로 생활하면서 인류에 커다란 기여를 할 수 있을 겁니다.


또 사람들이 자기 좋아하는 일만 하고 경제적인 일을 아무도 하지 않으면 어떻게 하느냐고 걱정하는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농사는 누가 짓고, 공장에서는 누가 일하려고 하겠느냐는 것이지요? 특히 3D 업종의 일은 아무도 안 하게 되지 않겠느냐고 걱정할 것입니다. 지금과 같은 사회에서는 먹고살기 어려운 사람들이 많기 때문에 험한 일의 임금이 낮습니다. 그러나 기본생활이 보장되는 사회에서는 임금이 지금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올라갈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런 일을 하려는 사람도 많이 나타나겠지요. 또 지금도 사람들이 하는 돈벌이 중에서 의식주 해결과 직접 관련되지 않는 일이 많습니다. 이승엽과 김연아, 유재석과 소녀시대가 하는 일은 국민의 경제적 생존과 거리가 멀지 않습니까? 고흐나 마르크스가 일생을 바쳤던 일도 물론 마찬가지입니다.


인문학이 꽃 피는 세상


생계 걱정 없는 세상이 되면 사람들이 물질적 생존보다 인간의 내재적 소질을 발휘하는 쪽에 큰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그 결과 인문학에 대한 수요가 폭발적으로 늘어날 것입니다. 인문학적 상상력이 만들어내는 좋은 세상이 되면 인문학도의 경제적 전망도 밝아진다는 겁니다.


졸업을 앞둔 인문학 전공 학생 여러분. 사람이 사람답게 사는 좋은 세상, 인문학이 저절로 꽃 피는 좋은 세상은 가능합니다. 그런 세상을 위해서는 인문학적 소양과 상상력이 꼭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고 자신의 전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십시오. 그리고 졸업 후에도 인문학도로서의 긍지를 잃지 마십시오. 알라스카 배당금보다 훨씬 더 좋은 제도를 만드는 데 힘을 보태십시오.


핑백

  • 2시 27분 : 기본소득제도가 당면할 아주 기본적인 문제 2010-02-04 03:50:53 #

    ... 기본소득 문답두번은 읽을 펌글)알라스카와 인문학낭만주의자의 사회학케인즈주의적 총수요관리정책의 효력이 상당부분 상실된 현 시점에서역사상 가장 강력한 케인즈주의적 처방을 제시한다는 사실 자체가이 ... more

덧글

  • 파파라치 2010/01/30 13:32 # 답글

    맑시즘 혹은 "기본소득운동"은 인문학도의 계급적 이해를 반영한 운동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군요. 슘페터도 비슷한 얘길 했었지요.
  • 김대호 2010/01/30 15:28 # 답글

    펌글은 원래 이오공감 추천을 하지 않는 줄 알고, 저와 소수 방문객만 읽을까 하고 스크랩 차원에서 가져다 놓은 글입니다. 제가 이 글에서 주목하는 것은 인문학에 대한 애정과 거대한 (부동산) 불로소득을 재원으로 기본 소득을 보장하자는 원칙입니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어떤 국가든지 금전 형태는 아니지만 국방, 안전, 도로, 전력, 행정서비스 등이 보편적으로 제공되고는 있지요. 기본적인 삶의 조건을 보장하는 것이지요. 문제는 이를 금전적 소득 보장까지 끌어올리느냐(올릴 수 있느냐) 문제지요. 추측컨대 약간은 끌어올릴 수는 있겠지만, 보편적으로 제공된다면 아마 언발의 오줌누기 이상이 되기는 힘들 것입니다. 차라리 광범위한 근로계층에 대한 조세감면과 선별적 복지를 결합하는 것이 낫다고 할 수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현실이지요.

    그리고 제가 시장, 경쟁, 자율을 강조하는 이유를 다시 한번 밝히자면, 저는 더 큰 복지, 더 따뜻한 사회를 위해서는 더 차가운 정의와 효율을 세워야 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특히 한국은 복지 보다는 정의가 먼저라고 생각합니다. 정의를 세우면 복지는 자동으로 늘어날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시간 되시는 분들은 여기를! http://www.goodpol.net/inquiry/statistics.board/entry/33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