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8.15 담화를 보고-‘공정’과 ‘공평’을 오염시키지나 않을지 걱정이다- 철학과 가치

-이명박을 위해 메시지 아르바이트라도 했냐?-

 

이명박 대통령의 8.15 경축 담화를 보고 일요일 낮에 몇몇 지인들이 문자를 보내기도 하고 전화를 하기도 하였다. 이유인 즉, 이명박이 구사하는 논리와 개념이 김대호의 평소 지론과 너무나 흡사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요즈음 생활이 어려워서 잠시 아르바이트라도 했냐?" “너 청와대 들어가야겠더라” 등 농담을 건넸다. 한참 웃었다. 어쨌든 부랴부랴 인터넷에 접속해서 8.15 경축사 전문을 읽어 보았다. ‘공정한 사회’를 언급한 대목은 이랬다. (이것이 8.15 경축사에서 가장 중요한 대목의 하나였다.)

 

“이 시점에서 우리는 `공정한 사회'라는 가치에 주목해야 합니다.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입니다. 

공정한 사회는 개인의 자유와 개성, 근면과 창의를 장려합니다. 공정한 사회에서는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가 주어집니다. 넘어진 사람은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일어선 사람은 다시 올라설 수 있습니다.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습니다.  

이런 사회라면 승자가 독식하지 않습니다. 지역과 지역이 함께 발전합니다. 노사가 협력하며 발전합니다. 큰 기업과 작은 기업이 상생합니다.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습니다. 

공정한 사회야말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입니다. 저는 앞으로 우리 사회 모든 영역에서 `공정한 사회'라는 원칙이 확고히 준수되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정부가 이미 시행하고 있는 활기찬 시장경제를 위한 규제 개혁, 사교육비 절감을 포함한 교육 개혁, 가난의 대물림을 끊기 위한 든든학자금, 서민의 내 집 마련을 돕는 보금자리 주택, 소상공인을 위한 미소금융과 햇살론, 각 계층별 맞춤형 일자리 창출,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 정책 등은 바로 공정한 사회를 위한 구체적 실천입니다. 

정부는 앞으로도 친서민중도실용 정책과 생활공감 정책을 더욱 강화하여 공정한 사회가 깊이 뿌리 내리도록 최선을 다할 것입니다“

 

일독 소감은 이렇다.

 

1. ‘양극화 해소’ 못지않게, 아니 그 보다도 더 중요한 시대적 화두이면서도 담론 세계에서 제대로 대우 받지 못한 ‘공정’이라는 가치를 대통령의 입으로나마 정치사회적 화두로 만든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다. 역시 대통령의 입은 엄청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실감했다.

 

2. 하지만 담화를 자세히 읽어 보면 이명박과 그 참모들은 ‘공정’과 ‘공평’이라는 가치에 대해서 너무 모른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이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내 책과 글을 읽은 흔적이 없었다. 그리고 8.15 특사 등 ‘공정’을 짓밟는 일련의 정치 행위를 보면 전두환의 ‘민주정의당’이 ‘정의’라는 소중한 가치를 기피 단어로 만들었듯이, 이명박도 ‘공정’이라는 가치를 도저히 쓸 수 없을 정도로 오염시키지나 않을까 걱정스럽다.

 

3. 영어에서는 ‘공정한 사회’도 ‘공평한 사회’도 다 'fair society'다. fair 또는 fairness는 대체로 공정으로 번역한다. 영어에서 ‘공평’을 뜻하는 단어로 'equity'가 있지만 'equity society'라는 말은 거의 안 쓴다. equity는 '자산'이라는 의미가 압도적으로 강한 것처럼 보인다. 어쨌든 한국도 영어 용법에 따라 공정과 공평을 거의 구분하지 않고 쓴다. 이명박의 담화도 그렇다. 그리고 공평은 균등 내지 평등과도 혼동하는 사람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이는 단어 사용자의 문제가 아니라 단어의 용법 자체가 혼돈스럽기 때문이다.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보인다.   

 

4. 하지만 일본이나 중국은 ‘공정’과 ‘공평’을 구분한다. 일상에서는 얼마나 엄격하게 구분하는 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중국 공산당이 정식화한, 국가=중국 공산당이 추구하는 3대 핵심 가치 중의 하나가 ‘공평’이다. 나머지 두 개는 ‘안보’와 ‘복지’다. 중국공산당의 ‘복지’ 개념은 한국에서 통용되는 ‘복지’개념 보다 더 넓은 개념이다.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의미한다. 이는 2004년 중국 갔을 때, 중국 공산당 간부학교 조선족 교수에게 물어서 안 것이다. 하지만 아직 중국의 정치학 사전을 들춰보지 않았다.

 

5. 일본의 경우, 일본 민주당의 기본 목표(1998.4.27 발표) 중에서 첫 번째가 “투명·공평·공정한 룰에 근거한 사회”다. 두 번째가 “경제사회에 있어서는 시장원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안심·안전을 보장하고, 공평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공생 사회의 실현”이다. 세 번째가 “중앙 집권적인 정부를 「시민으로 ·시장으로 ·지방으로」라는 관점에서 분권사회를 재구축하고, 공동참획(사업.정책 계획에 참여) 사회”를 이룩한다는 것이다. 이로부터 일본 민주당이 투명과 더불어 공평과 공정을 얼마나 중시하는지 알 수 있다.

 

6. ‘공정’이라는 개념은 대체로 경쟁의 출발선(starting line)의 평등을 의미한다. ‘공평’은 경쟁의 결과(finish line)의 합리적 격차=불평등을 의미한다. ‘공정’과 ‘공평’은 ‘정의(justice)’의 양대 지주라고 할 수 있다. 나는 정의를 '지속가능한 사회 발전을 담보하는 원리.원칙'으로 定意하고 있다. 그런데 '정의' 개념이 워낙 넓어서-한국에서는 거의 道義와 같은 개념인 것 같다-, "경쟁 참여자 모두가 존중하는 게임규칙"을 의미할 때는 '정의' 대신 '공정'을 대표 개념으로 쓰는 것 같다. 이명박은 그렇게 쓰고 있다.

 
이명박이 말하는 ‘공정한 사회’는 “출발과 과정에서 공평한 기회를 주되, 결과에 대해서는 스스로 책임을 지는 사회”이며 “승자가 독식하지 않고, 패자에게 또 다른 기회를 주고, 넘어진 사람이 다시 일어설 수 있고, 서민과 약자가 불이익을 당하지 않는 사회”이다. 이는 정확히 말하면 공정하고 공평한 사회이다. 게임규칙이 합리적이어서 경쟁 참여자들이 마음 속 깊이 그 규칙을 존중하는 사회이다. 한마디로 ”억울함이 없는 사회“이다. 더 줄이면 “정의 사회”이다. 
 

7. 이번 담화문에서 가장 잘 쓴 개념이자, 앞으로 널리 유통시켜야 할 개념은 '공평한 기회'이다. ‘공평한 기회’는 경쟁에 나서는 다양한 부류 사람들의 처지, 조건의 격차를 보정하여 경쟁 기회를 평등하게 준다는 의미다. 흑인, 인디언, 장애자, 극빈자, 때론 여성 등에게 일정한 ‘보정 이익’을 주어서 백인, 정상인, 남성, 부모 잘 만난 사람과 대등하게 경쟁할 수 있게 해 준다는 의미다. 그래서 ‘공평한 기회’는 사실상 ‘평등한 기회’와도 ‘공정한 기회’와도 같은 의미다. 아니 그 보다 더 강력하다. '평등한 기회'를 만들기 위해 강자에게는 불평등=합리적 격차를 강요하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기 때문이다.   


8. 공평은 '합리적 불평등'을 의미한다. 경쟁 결과로서의 상벌(incentive & penalty)을 다루는 원리.원칙인 것이다. 이것이 잘못되면 ‘유전무죄-무전유죄’라는 소리를 듣는다. 
‘공평한 사회’는 격차=불평등이 합리적이어서 패자도 승자도 억울해 하지 않는 사회이다. 승자 독식 사회도 아니요, 패자에게 개평(?)을 너무 많이 줘서 승자가 되려고 노력할 이유가 없는 사회도 아니다. 패자는 도전의지를 꺽지않고, 승자는 패자가 범접할 수 없는 다른 계급으로 점프하지 않고, 당연히 나태하지 않은 사회이다. 한마디로 ‘공평한 사회’는 승자도 패자도 억울함이 없는 사회이다. 역시 줄이면 '정의 사회'이다.

 

9. 그래서 나는 사회적 강자들에 의해 게임규칙이 너무나 왜곡된 이 시대 한국의 흥망의 관건으로 '정의'를 꼽아 왔던 것이다. 그런데 정의라는 단어가 포괄하는 의미가 너무나 다양하고 넓다 보니, 내가 중시하는 가치를 좀 더 날카롭게 표현하기 위해서 '공평'을 잡았다. 공정은 공평에 포함되기 때문이다. 합리적 불평등=공평은 합리적이지 않으면 평등해야 한다는 의미를 담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회디자인연구소 직전에 잠깐 연 개인 연구소의 명칭이 공평사회연구소였다. 대표 도메인이 fairsociety.kr이었다. 그리고 내 담론을 '공평주의'라고 명명했다.

 

10. 다시 이명박의 담화로 돌아와서, 왜 '공정한 사회'가 시대적 과제로 되는가? 그것은 힘센 존재들이 반칙과 특권을 밥 먹듯 행사하기 때문이다. (민주당 경선 규칙이나 입시제도 등이 보여주듯이) 게임규칙 자체가 합리적이지 않기 때문이다.  (검찰과 법원과 부동산 제도 등이 보여주었듯이) 상벌이 공평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 땅에 억울함에 우는 존재들이 너무나 많기 때문이다. “유전무죄-무전유죄, 유권무죄-무권유죄”는 한국에서 억울함을 표현하는 가장 보편화된 표현이다.

11. 그런 점에서 이번 815특별 사면이 '공정한 사회'에 부합되는지 묻고 싶다. 뿐만 아니라 역사상 최악의 외교.안보 참사를 초래한 외교부장관과 국방부장관을 유임시킨 것이 공정한 사회에 부합되는지 묻고 싶다. 남북관계를 불필요하게 소모적, 대립적으로 만든 통일부 장관 유임도 마찬가지다.
또한 대기업의 불공정 거래에 우는 하청 중소기업들이 수없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활기찬 시장경제'를 위해 '공정 거래 위원회'의 내실화를 강조하지 않고 '규제 개혁'을 앞세우는 것이 '공정한 사회'에 부합되는지 묻고 싶다. 

 

12. '공정한 사회'는 재벌, 대기업, 시장 지배적 언론, 검찰, 국세청, 관료, 대학재단 등 힘센 존재들의 반칙특권을 막는 것이 기본 중의 기본이다. 노무현 전대통령은 바로 이것을 하려다가 죽임을 당한 것이다. 그런데 이명박 대통령과 한나라당은 지금 어느 편에 섰는가?

 

이것이 중요하다. 약자와 빈자들을 위해 내 놓은 약간의 ‘든든학자금’이나 ‘미소금융’보다 이것이 천백 배 더 중요하다. 모든 정권이 해 온 ‘사교육비 절감을 위한 교육 개혁’을 한 번 더 복창하는 것 보다, 대학재단의 투명성을 제고 하고, 대학의 평가 보상 체계를 합리화 하고, 더 나아가 학과 학벌 고시 공시가 만들어내는 격차(불평등)를 합리화 하는 것, 한마디로 자릿세(지대) 개혁이 훨씬 중요하다. 하지만 자릿세 개혁 같은 고난도 개혁은 바라지 않겠는데, 학교 돈 이리저리 빼 먹다가 걸려서 쫓겨난 상지대 비리재단의 복귀는 뭐하는 짓인가?

 

13. 세계 최고수준의 정보화가 이뤄진 한국 사회에서 힘센 사람의 반칙특권을 제어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 무엇인가? 그것은 정치와 사회 전반의 '투명성 강화'이다. 많은 것을 정확히 드러내기만 하면, 힘센 존재들의 반칙, 특권, 불공정/불공평 행위도, 상식에 어긋난 게임규칙도 현저하게 줄어들 것이다. 만에 하나 적발되면 수백만 네티즌들이 봉기할 것이다. 정보화 사회에서 네티즌은 총(키보드)을 든 민병대이다. 이것은 때론 조용한 정치 혁명을 일으킨다. 역동적인 한국, Dynamic Korea를 만든다.

 

14. '공정한 사회'의 기초는 '투명한 사회'이다. 일본 민주당이 공정과 공평보다 투명을 앞세운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명박의 ‘공정한 사회’론이 공염불인 이유도 바로 ‘투명성 강화’와 담을 쌓고 있기 때문이다. 

아주 사소한 사례지만, 이명박 정부 출범이후, 정부의 예산=분담금 전액 삭감으로, 2005년부터 가동되어 온 '투명사회협약실천협의회'가 사실상 와해되었다. 투명사회협약의 정부 쪽 창구인 국민권익위원회는 2008년 5월29일 실무기구인 투명사회협약 실천협의회에 공문을 보내 “새 정부의 국정철학에 부합하는 실효성 있는 민관 협력 패러다임 정립을 위해 공공부문 분담금 지원을 2분기부터 중단한다”고 통보하였다. '투명사회실천협의회'가 친 진보개혁 기구라고 판단했기 때문일 것이다. 어쨌든 이명박 정부가 이토록 무식하고 거칠게  나올 줄은 몰랐다. 물론 이는 약과 일 것이다. 이외에도 이명박 정부가 '투명성'과 담쌓은 예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15. 확신컨대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공정과 공평보다 사회발전에 더 긴요한 가치가 '투명'이다. 더 진보적이고 더 혁명적인 가치가 투명이다. 투명하면 공정과 공평은 자동으로 따라온다. 당연히
힘센 존재들의 지배구조와 의사결정 체계의 투명성을 제고하는 정책이 없는 '공정한 사회'는 공염불이다. 힘센 존재들의 반칙특권에 대한 단호하고 엄격한 징벌 정책 없는 '공정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외교장관, 국방장관을 유임시킨 '공정한 사회'도 마찬가지다.

16. 이명박 대통령이 정말로 '공정한 사회'를 바란다면, 반칙특권 없는 사회, 투명성 높은 사회를 이루기 위해 혼신의 힘을 다해 노력한 노전대통령의 노력에 아낌없는 경의를 표해야 할 것이다. 그
리고 내년 연초 담화에는 공정한 사회 이전에 '투명한 사회'를 담고, 공정한 사회를 넘어 '정의로운 사회' 구상을 담고, 이를 위해 단호한 '반칙특권' 척결 의지를 담았으면 한다. 아니 선언에 앞서서 먼저 '투명성 제고'와 '반칙특권 척결' 실천부터 하고 뒤에 실적을 발표 했으면 한다. -끝-


덧글

  • 희망의빛™ 2010/08/20 17:51 # 답글

    공정한 사회를 위해선 투명성 확보에 주력해야 한다는 의견에 매우 공감합니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들어 이 투명성의 가치가 많이 훼손됐다는 사실도 동의합니다. 예산안 홍보자료만 봐도 예전 국민의 정부나 참여정부와 비교했을 때 많은 정보가 누락된 흔적이 역력합니다. 투명성! 중요한 얘기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명박 정부는 이 투명성을 보장하는데 어느 때보다 노력해야 합니다. 허나 최근 국책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불거진 은폐/왜곡 의혹을 보고 있으면 과연 이 정부가 투명성을 제일의 가치로 여기고 있는지부터가 의심스럽습니다. 정말 가장 중요한 가치일 수 있는데 말입니다. 글 잘 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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