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정은 진보가 입을 속옷이다. 철학과 가치

-민주당 강령 읽어 본 적 있소(2)-
2010년 09월 29일 (수) 12:55:58 [조회수 : 8]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지난 9월 16일 민주당 전당대회준비위(위원장 문희상) 전체회의에서 강령·정책 개정안이 의결되었다. 이는 당무회의 의결을 거쳐서 10월 3일 전당대회에서 공식 채택 될 것이다. 이 개정안의 구체적인 내용은 10월 3일 이전까지는 비공개인 것처럼 보인다. 당의 홈피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기자들에게는 개정안 전문을 공개했는지, 보도 자료만 돌렸는지 모르지만 어쨌든 주요 언론들은 9월 14일자 저녁 인터넷 판을 통해서 강령·정책 개정안의 주요 내용을 소개하였다. 9월 17일 오전에는 전현희 대변인이 강령·정책 개정안의 주요 내용에 대해서 브리핑 하였다. 브리핑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먼저 개정안은 기존의 강령정책의 구조와 개념도 기본 정책을 삭제하고 前文과 30대 강령으로 간결하게 내용을 구성하였다. 개정안의 핵심내용은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의 성과를 계승하는 것을 명시하였다. 그리고 중산층과 서민의 정당임을 명시하고 진보정책적인 노선을 강령에 적극 반영하였다. 또 전문에서 민주, 자유, 복지, 평화, 환경을 5대 가치로 압축해 규정하였다. 또 경제정책의 기본방향을 사람중심 시장경제라는 개념을 새로이 제시하고 일자리 창출을 모든 경제정책의 기본목표로 삼았다. 그리고 이를 통한 양극화문제 해결과 중산층의 확대를 달성하도록 강령을 채택하였다”

기존(2008.7.6) 강령과 비교하면, 21대 강령과 100대 기본정책이 30대 강령으로 통합되었다. 핵심 가치는 7대 가치(민주, 개혁, 번영, 통합, 평화, 환경, 행복)가 5대 가치로 정리되었는데, 개혁, 번영, 통합, 행복이 빠지고 새로이 자유, 복지가 들어왔다. 민주, 평화, 환경은 굳건히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한편 참여정부 성과 계승을 천명한 것도, 사람중심 시장경제라는 용어를 쓴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어쨌든 전현희 대변인의 발표 내용은 강령·정책 개정안과 관련하여 민주당이 알리고 싶은 내용이다. 그런데 주요 언론에는 강령개정안이 어떻게 비칠까?

9월14일 저녁 인터넷판 언론들은 개정 강령·정책 초안에 대해 보도하면서, 민주당 총 노선의 “좌클릭”-좌로 한걸음 더-을 간판 제목으로 뽑았다. 그 근거로 1995년 새정치국민회의가 출범하면서 당 강령에 삽입된 ‘중도개혁주의’란 용어를 이번 개정안(전문)에서 삭제한 것과 무상교육(대학등록금 부담 경감)과 무상의료(국민건강보험 보장 확대) 정책을 강조한 것을 들었다. 하지만 당의 이념적 색채를 규정짓는 용어로서 ‘진보’라는 단어를 민주당이 의식적으로 전문에 명시하지 않고, “중산층과 서민을 위한 민주당”으로 가기로 했다는 것도 주요하게 보도하였다. 그 외에 기자가 보도한 주요 내용은 “시혜·선택적 복지가 아닌 보편적 복지국가 실현을 위한 국가 복지 재정의 획기적 확충, 공평 과세 구현을 위한 부자 감세 반대,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지원, 시장 경제에서의 정부의 적극적 역할 강조, 민영화 반대, 동북아 평화, 번영 항목 신설, 언론·집회결사의 자유 등 국민의 기본권 보장도 명문화” 등이다.(서울신문 강주리 기자 jurik@seoul.co.kr)

물론 민주당 강령.정책 개정안에 내 의견이 0.1%도 반영되지 않았다. 아니 반영할 통로(시간, 장소)도 없었고, 기대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이번 전당대회를 앞두고 몇 번의 회의를 열어 관련 전문가들을 모셔서 분야별 강령을 검토, 논의 한 것을 높이 평가한다. 그래도 이전보다 진일보 한 것처럼 보이기 때문이다.

내가 민주당의 현재 강령에서 특별히 주목하는 것은 강령 전체를 관통하는 시대 인식과 그 시대 그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핵심 질곡 내지 주된 대립물(주적이나 주 타격방향)에 대한 통찰이다. 주된 대립물은 사회 구조나 사조 일 수도 있고, 하나의 정치 세력 일 수도 있다. 정치인이나 정치세력의 시대(흐름) 인식과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에 대한 통찰이 정치적 이해관계(정치 전략)라는 터널을 통과하면 핵심 가치가 도출된다. 그것이 정치인과 정당의 정체성 아니겠는가?

한나라당의 주된 대립물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시대 인식, 주된 대립물, 핵심가치, 비전을 어떻게 강령에서 표현하고 있을까?

한나라당 강령은 이 시대를 “문명사적 전환기”로, “중진국과 선진국의 기로에서 표류”하는 시기라고 규정한다. 주된 대립물(퇴행적, 부정적 유산)은 “부정부패와 지역감정, 중앙집권과 관치경제, 권위주의와 물질만능풍조”와 “집단이기주의와 분배지상주의, 포퓰리즘”이다. 한나라당은 자신들의 핵심 가치를 “헌법을 수호하고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를 바탕으로 대한민국의 재도약과 국민통합, 그리고 남북통일을 위한 대장정에 일로 매진”하는 것이라고 선언한다. 강령에 표현된 한나라당의 핵심가치를 한 단어로 집약하면 대한민국의 “선진화”다. 그 실현 방도는 “헌법 수호”와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틀을 굳건히 하면서, 자율과 책임, 분권과 창의, 개방과 경쟁, 인간의 존엄성과 생태환경보전, 양성평등, 열린 민족주의를 진작하는)공동체 자유주의의 실천”이다. 요컨대 핵심 가치는 나라의 “선진화”고, “공동체 자유주의”는 그것을 실현하는 방도이자 이념이다.

민주당의 주된 대립물

10월3일까지 유지되는 민주당 강령은 강령 전문에 자신들의 시대인식과 주된 대립물을 좀체 알기 어렵게 적어 놓았다. 강령 전문은 민주당의 정체성(성격)을 “한국 민주주의의 구심체역할을 수행했던 민주․개혁․평화․미래 세력의 정치적 결사체”로서, “서민과 중산층의 권익을 적극 대변하고 국민의 여망을 받들어 변화와 개혁을 주도하며, 나아가 한반도 평화와 통일을 실현하는 진정한 국민의 정당임”이라고 밝히고 있다. 총 노선은 중도개혁주의다. 이는 “개인과 공동체, 시장과 정부, 자율과 책임, 사익과 공익의 조화와 균형을 통해 고른 경제성장과 서민․중산층의 복지향상을 함께 추구하고, 국민의 삶의 질 향상을 도모”하는 것 이다. 핵심 가치는 개념도에서 정식화 해 놓았는데, 그것은 “민주․개혁․번영․통합․평화․환경․행복”이다. 지향하는 국가 상(이른바 비전?)은 “민주주의와 선진경제강국” “선진복지국가” “교육과 문화강국” “성장과 분배가 조화되는 경제․문화강국과 복지․행복국가” “남과 북, 해외 동포를 포함한 8천만 한민족이 더불어 잘사는 국가”다. 이외에도 “지속 가능한 시장경제체제” “자유롭고 창의적인 경제활동과 공정한 시장질서” “소외된 사람이 없는 정의로운 사회” “노사협력과 사회통합, 안정된 일자리의 창출과 예방적 사회정책, 지방분권과 지역균형발전, 계층과 세대, 양성과 지역을 아우르는 국민통합” “소수의 권리를 포함한 다양한 가치와 사회경제적 권리가 반영되는 실질적 민주주의”와 “권력과 부의 독점을 배격하고 국민의 요구와 권익을 대변하는 대의정치와 책임정치” 도 주요하게 강조하고 있다. 대충 좋은 가치는 강령에 다 쓸어 넣은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성공하는 정치의 요체가 현실(시대인식과 주체 역량)과 이상을 종합하여 가치의 우선순위를 정확하게 설정하는 것이 맞다면, 다시 말해 정치가 메시지의 단순화, 구조화, 지속화를 통해 다수 대중에게 기대와 감동을 불러일으키는 예술이 맞다면, 어디에 집중하겠다는 것인지, 주된 대립물이 무엇인지 도통 알 수 없는 난삽하기 이를 데 없는 민주당 강령은, 한나라당이 죽을 쑤지 않는 한 미래가 없는 정당이라는 것을 말해 준다.

일본 민주당의 시대 인식, 주된 대립물, 핵심 가치

일본민주당의 1998년 강령(우리의 기본 이념)을 읽어 보면 시대 인식, 주된 대립물, 핵심 가치가 잘 정돈되어 있다는 인상을 받는다. 일본 민주당의 시대 인식과 사명(미션)은 일본에 “본격적인 소자·고령사회”가 도래하고 있어서 “여유와 풍요” “개성과 활력이 살아나는 (일본)사회”를 창조하는 것이 시급하다는 것이다. 일본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은 “우리들의 현상인식”에서 정식화해 놓았는데 그것은 “관주도의 보호주의·획일주의와, 끼리끼리 기대·유착 구조, 구래의 사고와 권리구조로부터 빠져 나갈 수 없는 구체제”다. 핵심가치는 “목표”로 표현했는데 5개로 정식화 해 놓았다.

1) 투명·공평·공정한 룰에 근거하는 사회
2) 경제사회에 있어서는 시장원리를 철저히 하는 한편, 모든 사람들에게 안심·안전을 보장하고, 공평한 기회의 균등을 보장하는 공생 사회의 실현
3) 중앙 집권적인 정부를 「시민으로 ·시장으로 ·지방으로」라는 관점에서 분권사회를 재구축하고, 공동참획(사업.정책 계획에 참여) 사회
4)「국민주권·기본적 인권의 존중· 평화주의」라는 헌법의 기본정신의 한층 구체화
5) 지구사회의 일원으로서, 자립과 공생의 우애정신에 근거한 국제관계를 확립하고, 신뢰받는 나라 건설.

일본 민주당의 수십 개의 분야별 기본 정책 원칙들도 단지 좋은 말 모음이 아니다. 무엇을 하겠다는 것인지 분명하다. 대립각이 분명히 서 있다. 단적으로 한국이 더 심하면 심했지 덜하지 않을 관료 주도의 발전국가, 토건국가의 유산이 그득한 공공부문 개혁에 대한 입장을 비교해 보라. 일본 민주당의 입장은 선명하고 깊이가 있다.

“(관과 민) 정치·국민주도에 의한 간소하고 알기 쉬운 룰 책정, 관료의 기본적 역할을 사전조정으로부터 사후 체크로 전환, 기업 섹터나 시민 섹터 등 「국민」이 「관」으로부터 자립하여 사회의 중심으로, 행정수속법이나 행정사건소송법 등 정비·강화, 행정의 재량을 줄이는 동시에 공무원의 책임을 명확하게. 공무원윤리법 제정, (민간기업, 산하단체 등에 대한) 낙하산(인사) 규제 강화, 일괄 인사제도의 도입 등 국가 공무원 인사제도 발본적으로 개혁”

“(행정.재정)중앙 집권적인 정부를 「시민으로 ·시장으로 ·지방으로」 관점에서 재구축. 관과 국민의 관계, 중앙과 지방의 관계 등 본질적인 권한의 구조를 바꿈”

“(공공 사업) 입찰 제도 개혁, 공공 사업의 단가 인하. 국회의 공공 사업 관여 강화 위한 입법(불필요한 장기 계획이나 단년도주의 재검토), 포괄 교부금제도의 도입으로 공공 사업의 주체를 지방으로, 나라가 하는 사업은 대규모 사업에 한정, 토목형으로부터 신사회자본형으로 바꿈”

한국은 한나라당이나 민주당이나 공히 발전국가(관료 자본주의)의 유산에 대한 입장이 모호하고 혼란스럽다. 아무래도 민주당은 “민영화”를 발전국가 유산의 해체 과정으로 보는 것이 아니라 신자유주의의 일환으로 간주하는 것처럼 보인다. 그래서 강령에 “꼭 필요한 공공부문 민영화는 추진하되 과정과 절차는 투명하고 공정하여야 하며 반드시 사회적 합의를 거쳐 추진해야 한다”면서 극히 유보적 입장을 취하고 있다. 어쨌든 한국에서 일본 민주당식 개혁을 표방하면 신자유주의자 소리를 많이 들을 것이다. 특히 중앙 정부의 권능을 “시장으로” 내려 분권사회를 구축한다는 문구는 신자유주의의 확고한 증거로 삼지 않을까 한다..

미국 민주당 대선강령의 주된 대립물

미국 민주당 2008년 대선강령은 주된 대립물로 특수이익집단과 부시정부의 편향된 보수 이데올로기와 정치,행정적 무능 및 정치파탄을 지목하고 있다. 정치파탄은 지난 8년간 부시 정부가 (석유 회사들에게 에너지 어젠다를 맡기고, 신용카드 회사들에게 파산규정을 맡기는 식으로) “공익보다는 사리사욕을, 장기 이익보다 단기 이익을 우선시하고, 정부가 권력자들의 손에 좌지우지되었기” 때문이란다.

이외에도 미국 민주당 대선강령은 특수 이익집단에 대한 경계심을 표현하는 문구들이 매우 많다. 그런 점에서 바로 특수 이익집단을 미국 민주주의의 제1의 적으로 간주하고 있는 듯하다. 이 적을 제어하는 핵심 무기는 투명성(정보 공개)이다. “IV. 미국 민주주의의 회복”에서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다.

“(우리는) 특수 이익집단이 미국 정부의 어젠다를 설정하는 시대는 끝났음을 분명히 밝힐 것이다. 정부기관들로 하여금 주요사업을 공개적으로 진행하고, 관련정보 일체를 공개하도록 요구할 것이다……연방 교부금, 계약, 연방예산특별지출(earmark), 대출금 및 로비스트의 정부관리 접촉에 관하여 검색 가능한 온라인 정보를 공개함으로써 정부에서 이루어지는 비밀거래의 베일을 벗길 것이다. 그리고 정부 데이터를 온라인으로 제공하고, 정부기관의 주요 회의에 관한 온라인 비디오 자료실을 운영할 것이다. 또한 의회에서 통과된 비 긴급법안 일체를 5일간 인터넷에 게시함으로써, 법안이 법제화되기 이전에 미국 국민이 이를 검토하고 논평할 수 있도록 할 것이다……정부의사결정의 질을 개선하고 특수이익집단 및 로비스트에 대한 정부의 부담을 완화하기 위하여 최신의 가용 기술을 활용할 것이다……..미국 국민은 의료비 지급 부담을 완화하고 미국을 에너지 독립의 길로 인도할 진정한 개혁을 원하고 있으며, 더 이상은 로비스트의 방해를 참을 수 없는 상태이다. 선거보조금(public financing)과 무료 텔레비전 및 라디오 방송 이용 등 금전적 특수이익집단의 영향력을 축소하기 위한 선거자금개혁을 지지한다. 우리는 분별력을 발휘하여 특수이익보다 공익을 우선시할 것이다”

세법 개혁과 관련해서도 “[세법의 공정성 회복] 현행 세법은 수천 페이지에 달하며, 높은 몸값을 받는 로비스트들이 도처에 특수이익을 보호하기 위한 허점(loophole)과 세금은신처(tax shelter)를 만들어 놓은 기형적 제도이다”라고 선언하고 있다.

금융개혁과 관련해서도 부시 정부는 “[금융규제개혁 및 기업지배구조]생산성과 건전한 사업관행 대신 재무정보조작에 이득을 안겨주는 관행을 막아내지 못하였고, 특수이익집단이 경제규모를 좌지우지하도록 하였다”고 갈파하고 있다.

“2만 5천 달러 이상의 거의 모든 발주에 대하여 경쟁 입찰을 실시하고, 수의계약의 남용을 중단하며, 제약회사, 석유회사 및 보험업계에게 미국정부기관 회의에서 한 좌석을 차지할 수 있을지는 모르지만 의장을 모두 매수할 수는 없도록 할 것이며, 로비스트가 행정부 관리에게 아부할 수 없도록, 선물금지령을 제정하고, 정부 내 직위를 자신의 로비스트 경력 발전을 위한 발판으로 악용하는데 사용한 회전문을 폐쇄할 것”이라고 한다.

한국의 대선 강령과 비교하면 이 얼마나 거칠고 단호한 표현인가? (그래도 요즈음은 “부유세” 주장에서 보듯이 실현 방도와 그 실효성은 의문스럽지만 구호는 과격해졌다)

그런데 달리 생각하면, 4권 분립(입법, 행정, 사법, 언론)이 확고하고, 투명성도 한국과 비할 바 아니고, 각종 감시, 감독, 사정 장치도 잘 작동하는 미국도 특수이익 집단의 정부와 의회 포섭으로 인해 골머리를 앓는데, 한국은 오죽 할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정당들의 강령이 두루뭉수리 한 것은 (삼성 등 재벌, 조중동과 방송, 종교, 사학, 각종 직능협회, 모피아, 토건족, 검찰 등) 특수이익집단의 “공작 정치”를 모르거나 아니면 감히 맞장 뜰 용기가 없어서가 아닐까?

역동적 복지국가론의 주된 대립물

요즈음 정동영의원 등에 의해 한창 날리고 있는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비록 사물(한국 사회)의 한 단면(시장 실패와 시장 과잉)만 보고 구성하긴 했지만, 어쨌든 정치 이념이 갖춰야 할 논리적 구성 요소를 체계적으로 갖추고 있다. 현실 정합성은 몰라도 논리적 정합성은 있다는 얘기다. 예컨대 역동적 복지국가론이 파악하고 있는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핵심 모순)의 이름은 ‘민생불안’ 및 ‘양극화’다. 그 원인이자 한국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대립물은 ‘승자독식의 삭막한 경쟁지상주의’ 혹은 ‘시장만능주의와 복지결핍’이다. 약간 학술적으로 표현하면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제도’라고도 할 수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는 자신들의 이념(처방전)을 집에 비유하곤 하는데, 지붕이 3대 가치(존엄, 연대, 정의)라면 기둥은 4대 원칙(보편적 복지, 적극적 복지, 공정한 경제, 혁신적 경제)이다. 물론 나는 이들이 내민 처방전에 담긴 중병에 대한 정의, 원인진단, 처방이 모조리 틀렸다고 생각한다. 오류의 핵심은 누누이 강조하지만 한국사회의 독특한 이중구조에 대한 몰이해다.

물론 역동적 복지국가론도 자신들의 핵심 주장에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가 포함되어 있기에 ‘보편적 복지 만능주의’는 아니라고 한다. 맞다. 그런데 그런 식으로 얘기하면 신자유주의조차도, 아니 이들이 훨씬 더 강하게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를 강조한다. 국가의 역할도 강조한다.

단적으로 신자유주의(시장 만능주의)의 화신이라는 마가렛 대처도 ���‘세계화로 인해 국가가 종말을 맞게 되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들의 생각은 틀렸다. 세계화는 국가의 종말을 가져오지 않는다. 사실 세계화는 국가가 애당초 결코 하지 말아야 할 일을 하지 않도록 예방해 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 국가가 지금도 근본적으로 중요시되고 있는 것은 첫째, 오로지 국가만이 법적 틀을 세울 수 있기 때문이다. 올바른 법적 틀을 갖는다는 것은 사회와 경제 모두에 엄청나게 중요하다. 아마도 역사상 그 어느 때보다 지금이 더 중요할 것이다(마가렛 대처, <국가경영>, 2003, 경영정신, 11-12쪽).

그것이 진보 이념이든 보수 이념이든 논리적 정합성을 띠기 위해서, 무슨 무슨 근본주의자(만능주의자) 소리를 듣지 않기 위해서 이것저것 건드린다. 그래서 주의주장의 논리만 봐서는 흠을 잡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그 이념이 상정하는 그 시대 그 사회의 발전을 가로막는 주된 질곡(대립물) 또는 정치적 에너지의 집중 점을 보면 그 이념의 현실적 의미 내지 본질을 알 수 있다. 특히 무엇으로 적군과 아군을 나누는 지를 보면 알 수 있다.

대처리즘(Thatcherism)의 주된 대립물은 분명하다. 대처리즘의 핵심 컨셉은 “개인을 국가로부터 자유롭게 하고, 기업을 정부와 노조의 간섭으로부터 자유롭게 하며, 정부를 복지부담의 굴레로부터 자유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대처 정부의 자체 평가이기도 하고, 외부 전문가의 평가이기도 하다. 이는 당시 영국의 사회 발전을 가로막는 존재, 즉 주된 대립물을 노조와 케인즈주의적 복지국가(큰 정부)로 보았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역동적 복지국가론자들의 주된 대립물은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제도’이다. 따라서 시장의 건강한 힘을 강조한다든지, (수혜자와 부담자가 다를 수밖에 없는 엄청난 소득격차와 공공부문의 능력, 체질을 들어) 잔여주의 복지제도라도 제대로 하자고 주장하면 적이 되는 것이다. 나에게는 재벌개혁, 부동산 개혁, 공공부문 개혁, 각종 자릿세(지대) 개혁을 추구하는 사람만큼이나 보편적 복지든 선별적 복지든 개인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성 강화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다 우군이지만.......

나의 주된 대립물

나의 주된 대립물은 무엇보다도 1차 분배구조(가치 생산 과정)의 지독한 불공정과 불공평이

  
다. 그 다음이 2차 분배구조, 즉 복지의 미약함과 엉성함이다. 이 점에 관한 한 복지국가를 부르짖는 분들의 견해를 존중한다. 하지만 나는 어디까지나 1차 분배구조 개혁을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또한 1차, 2차 분배구조 전체를 규율하는 공공(정치, 행정, 사법, 언론, 교육 등) 개혁을 압도적으로 중요하게 생각한다. 그래서 복지를 진보의 제1의 가치로, 진보의 집권 전략으로 전면에 내걸자는 견해에 동의할 수 없는 것이다. 내가 문제 삼는 1차 분배구조의 불공정과 불공평은 한마디로 노동의 양과 질 또는 사회적 기여와 부담에 상응하지 않는 성과 보상 체계다. 물론 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 대-중소기업과 원-하청의 불공정거래, 독과점의 횡포, 사법적 불의는 이제 세상이 다 안다. 하지만 선진국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소속에 따른 엄청난 격차(정규직과 비정규직, 전임 교수와 시간강사, 공공부문과 민간부문 등)는 이상하게도 별로 문제시 되지 않는다. 불공정과 불공평을 유지 온존시키는 사회 전반의 불투명성도 마찬가지다. 또한 선진국과 비교하면 단박에 알 수 있는, 우리가 선망하는 직업.직장들의 1인당 GDP(생산력)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은 처우와 낮은 고용임금 유연성과 지나친 장시간 노동의 문제도 마찬가지다. 사실 이것의 동전의 양면이 1인당 GDP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낮은 처우와 불안한 고용임금을 누리는 층이 너무나 많은 현실 아닌가? 또한 거대한 3비층(낮은 고용률=높은 비임금근로자 비율, 높은 자영업자 비율 등), 비정규직이나 시간 강사가 꽤 유능해도 위로 올라갈 수 없는 계급 사회 같은 낮은 유동성, 과도한 대학진학률, 지독한 사교육, 고시, 공시, 유학 열풍, 그리고 급속한 저출산 고령화 역시 동전의 양면 아닌가?

솔직히 나는 지금 한국민이 겪고 있는 극심한 고통은 결국은 1인당 GDP 수준의 처우(대략 2000만원 내외)를 누리는 사람이 압도적 다수가 되고, (주거, 교육, 의료의 공적 보장 수준이 높아지고 각종 생활물가가 떨어져서) 그런 소득 수준으로도 먹고 살만하기에 ‘루저(loser)'로 느껴지지 않고, 연평균 노동시간도 1500~2000시간 정도로 떨어져 결과적으로 고용율(현재 60%수준) 및 임금근로자 비율(68~69% 수준)이 지금보다 10~15%p 쯤 높아지고(자영업자 비율은 지금의 절반 이하로 떨어지고), 사회가 투명해져서 각종 불로소득과 탈루소득이 획기적으로 줄어들지 않으면 해결되지 않으리라 생각한다. 상하간 자리바꿈은 영국 프로축구처럼, 2부 리그의 상위팀과 1부 리그의 하위 팀이 끊임없이 자리 교체를 하는 방식으로 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10부 리그 소속팀이라도 실력만 좋으면 끝내 1부 리그로 진입할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장대비 쏟아지는 휘영청 밝은 달밤

사실 경제활동인구와 임금근로자 비율이 대폭 늘어나고, 그 압도적 다수가 1인당 GDP수준으로 수렴한다면 한국은 세금.보험 부담자와 복지 수혜자가 거의 일치하기에 북유럽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보편적 복지제도 등을 거의 그대로 채택할 수 있다. 지나친 대학진학율과 각종 입시.고시 경쟁률은 자동적으로 떨어질 것이다. 엄청난 격차에서 발원하는 수많은 갈등도 획기적으로 해소될 것이다. 그런데 이처럼 높은 평등사회가 되기 위해서는 최소 1000만명의 기득권자들(우리가 선망하는 모든 직업, 직장인들)의 큰 양보가 필요하다. 이는 단적으로 노동현장에는 연대임금제(정신과 문화)가 널리 받아들여져서 전임교수-시간강사간, 전문직업인-단순 근로자간, 원-하청간, 대-중소기업간 처우격차가 획기적으로 줄어든다는 것을 의미한다. 자본이 파이를 더 내놔서가 아니라 현재 노동 전체가 가져가는 파이로 自助적으로 그렇게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여기에 높은 세금에 기반을 둔 다양한 복지제도에 의한 재분배가 가세하여 사회를 더욱 평등하고 안정되게 만드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북유럽이다.

그런데 깨 놓고 말해 이렇게 적은 격차 사회-대부분의 공공부문 종사자의 처우가 1인당 GDP의 1.0배 수준에 수렴하고, 전문직과 단순직의 격차도 2대 1 수준-가 가능하겠는가? 또 바람직할까? 현재와 같은 엄청난 격차 사회를 만든 한국민의 성향도 성향이지만, 한국은 빼어난 자, 전문직업인, 사회적 승자에 대해 꽤 높은 보상을 하는 미국, 중국이 지리적으로 심리적으로 너무 가까이 있다. 일본은 한국 보다는 평등하긴 하지만, 북유럽만큼은 아니다. 그래서 실업급여와 노령연금 등 돈 많이 드는 복지제도에서는 보편적 복지로부터 멀다. 한국민 다수가 생각하는 승자, 강자, 정상인의 처우 수준이 1인당 GDP의 2.5~4배 수준(연봉 5000~8000만원)이라면 북유럽에서 잘 작동하고 있는 각종 복지시스템의 상당수는 그림의 떡으로 생각해야 한다. 선별적 복지라도 잘해야 한다는 얘기다. 만약 한국민 다수가 생각하는 정상(보편적) 처우 수준이 1인당 GDP의 1.5~2.0배 수준이라면, 그래서 전문직과 단순직의 처우 수준 격차가 2~3:1수준이라면, 프랑스 독일에서 잘 작동하는 정책의 상당 부분을 한국이 수용해도 되지 않을까 한다. 사회 구조, 특히 사회적 격차, 공공의 능력/관행/신뢰도, 사회문화 등을 고려하지 않고 선진국 복지제도를 탐낸다면, 그야말로 “장대비 쏟아지는 휘영청 밝은 달밤”을 꿈꾸는 몽상가와 다를 바 없다. 영화 “300”에서 보았듯이 페르시아군대와 백병전하는데 빤스와 망토만 걸치고, 근육질 몸매 자랑하면서 칼을 휘두르는 그리스 전사를 그려낸, 게임 캐릭터 작가들의 상상일 뿐이다.

MB가 한창 떠들어 대는 공정은 1차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가치의 하나이다. 투명, 공평, 지속가능성이 나머지. 복지는 2차 분배 구조를 개선하는 가치의 핵심이다. 한국 사회의 지독한 모순부조리를 감안하면 1차 분배구조를 개선하는 가치가 훨씬 대중적 호소력이 있다. 단적으로 공정과 복지가 대선에서 맞붙으면 공정이 이길 가능성이 훨씬 높다고 생각한다. 제대로 하는 공정이라면 그렇다는 얘기다. 그런 점에서 MB의 안목이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공정은 정말로 괜찮은 속옷(MB말대로 대한민국 선진화의 윤리적 실천적 인프라니까!) 임이 분명하다. 그런데 불행히도 한나라당과 한국의 보수는 불투명, 불공정, 불공평의 비곗살이 너무나 많아서 공정이라는 멋진 속옷을 입을 수 없다. 살빼기 운동, 단식, 지방흡입수술을 해도 공정이라는 예쁜 속옷을 도저히 입을 수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공정이라는 몸에 맞지 않는 속옷을 입으려고 피나는 다이어트(유명환, 김태호 낙마, 대-중소기업간 상생 등이 그것이다)를 하는 MB에게 아낌없이 박수를 쳐줘야 한다고 생각한다. 얼마 못가서 “도대체 어떤 놈이 이렇게 몸에 안맞는 옷을 가져왔어!”하고 벗어던지겠지만...... 나는 한국 보수가 그야말로 환골탈태하여 투명, 공정, 공평의 칼로 수많은 보수 동족(?)을 학살한다면,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보가 계속 정치적 헛발질로 국민들의 여망을 외면한다면 보수의 재집권은 필연일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공정, 공평, 투명은 진보가 입을 속옷이다.

사실 1차 분배구조와 공공 개혁을 중시하는 노선은 그리 새로운 것이 아니다. 반칙과 특권의 철폐, 원칙과 상식의 회복을 부르짖던 참여정부와 지금 경제개혁, 부동산 개혁, 사법개혁, 사회 투명성 강화를 주장하는 분들의 오랜 주장이다. 참여정부 노선을 답습만 하면 된다는 것이 아니다. 그것이 버전 1.0 이라면 지금은 2.0 이나 3.0이 나와야 한다는 얘기다.

이 업그레이드 버전은 경제개혁, 부동산 개혁, 사회 투명성 제고, 정치 개혁을 주장하면서 참여정부를 가열차게 비판해 온 분들의 합리적 핵심과 참여정부의 합리적 핵심과 획기적 복지확대를 주장해 온 분들의 합리적 핵심을 결합하면 쉽게 나오지 않을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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