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스웨덴? 작은 미국? 큰 이스라엘은 어떤가? 책 비평

큰 스웨덴? 작은 미국? 큰 이스라엘은 어떤가?
2010년 10월 06일 (수) 16:31:08 [조회수 : 75]김대호 itspolitics@naver.com

  

                     (댄세노르, 사울싱어 지음, 윤종록 옮김, 다할미디어)

낚시꾼들은 묵직한 손맛으로 월척을 안다. 책 좀 읽는 사람들은 서점에 서서 책 몇 페이지 넘겨보면 그 책이 월척인지 아닌지 느낌이 온다. 과연 통독을 해 보니 <창업국가>는 월척이었다. 건져 올리고 보니 월척 중의 월척이었다. 최근 몇 년 간 읽은 책 중에서 “대한민국이 어떻게, 뭘 먹고 살 것인가”하는 고민이 만든 지적 갈증을 가장 확실하게 해소해 준 책이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모든 사람이 맛있어 하는 음식이 없듯이, 모든 사람이 월척이라고 생각하는 책은 없다. 다만 <창업국가>는 21세기 한국 사회의 활로를 모색하는 사람들, 특히 국가경영과 기업경영을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들에게는 월척으로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책의 부제는 “21세기 이스라엘 경제성장의 비밀”인데, 솔직히 주제 자체는 식상하다. 대체로 이런 유의 책들은 국가마케팅 전략의 일환으로 기획 되며, 천의 얼굴을 가진 한 국가의 긍정적인 면만 추출해서 보여주기에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경향이 있다. 세계 출판계에서 “경제성장의 비밀” 운운하며 자주 소개되는 국가 명단에는 독일(서독), 일본, 싱가포르, 중국, 아일랜드, 네덜란드, 핀란드와 함께 남한도 상위 순번에 올라가 있다고 알려져 있다. 1970년대까지는 사회주의권과 제3세계 국가에서는 북한도 모범 국가로 소개되었다고 한다. 그런데 북한과 남한을 잘 아는 우리는, 또 최근 아일랜드의 좌초를 아는 우리는, 저자의 의도와 시각에 따라 같은 나라가 미래가 창창한 나라로 비칠 수도 있고, 암울하고 혐오스러운 나라로 비칠 수도 있다는 것을 안다. 따라서 제목에서부터 이스라엘을 일방적으로 찬양할 것 같은 이 책을 곱게 볼 수가 없다.

게다가 1990년대 들어 전세계 진보성향의 사람들에게 이스라엘의 국가 이미지는 좋은 구석이라고는 별로 없다. 이스라엘 국가이미지는 팔레스타인 영토에 대한 불법적 강점, 가자 지구를 둘러싼 높은 장벽, 팔레스타인 청소년들의 투석 시위와 야만적 탄압 등으로 얼룩이 져 있다. 1970~80년대 까지만 해도 대다수 한국민들에게 이스라엘은 (유대인 학살과 아랍세계의 포위 압살 책동과 유대인들의 경탄할 만한 애국심 등으로 인해) 동정과 성원의 대상이었지만, 이제는 기독교인들 조차도 이스라엘을 곱게 보지 않는다. 이스라엘이 기독교 국가가 아니라,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부정하는) 유대교 국가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많은 한국 식자들에게 이스라엘의 경제적 성공의 비밀은 자명한 것이다. 그것은 유대인 언론 재벌과 로비 집단에 휘둘리는 슈퍼파워 미국의 후견과 편애요, 전 세계 유대인의 재력과 끼리끼리 상부상조하는 관계망이다. 세계 인구의 0.2% 수준임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의 22%를 차지하는 유대인의 두뇌도 빠질 수 없다. 이래저래 이스라엘이 거둔 엄청난 경제적 성공은 관심의 대상이 아니게 된 것이다.

그러나 이 책은 이스라엘의 경제, 사회적 활력의 내적 요인을 주로 짚어 내고 있다. 재밌는 대목 몇 개만 보자.

“이스라엘 사람들은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나이나 아파트 또는 자동차 가격을 서슴지 않고 물어본다. 뿐만 아니라 상점이나 거리에서 날씨에 맞지 않게 옷을 입은 아이들을 보면 아이의 부모에게도 잔소리를 할 정도다. ‘유대인은 둘인데 의견은 셋’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것은 사실이기도 하다"(p 49)

"이스라엘 사람들은 성장하면서 학교에서나 집에서, 또는 군대에서 강한 주장을 내세우는 것을 올바른 가치기준이라고 배우고 오히려 그렇게 하지 않을 때 자기 발전과 경쟁상황으로부터 낙오자가 될 가능성을 염두에 두며 생활한다.(중략) “시민이 그 국가의 엘리트(권력자나 높은 사람-필자 주)를 어떻게 부르는지 보면 그 사회에 대해 많은 것을 알 수 있다. 이스라엘에서는 가장 높은 위치에 있는 사람들, 예를 들어 총리나 육군 대장에게도 별명이 있고 누구든 그 별명으로 통한다”(p 47)

"이스라엘 장성 여럿이 함께 모여 커피를 마시려 한다면 커피 통에 가장 가까이 앉은 사람이 커피를 만들었다. 그 사람이 어떠한 직위에 있던 상관없다. 장성이 사병에게 커피 서비스를 하는 것은 일반적이었고 이런 사소한 것에 대한 의전 규율이 없다. 그러나 미국 군대에서는 대위들과 함께 있을 때 소령이 들어오면 모든 대위들이 경직되고 그 후 대령이 들어오면 소령 또한 경직된다.(중략) 미국 군대에서 통상 하는 말이 ‘계급에 경례하지 사람한테 경례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p 73)

“(오렌 교수의 얘기) 내가 이스라엘군 사병이었을 때 장교를 내쫓은 일이 있었다. 사병들이 모여서 투표로 결정했고 이런 상황을 두 번이나 경험했다. 나는 그 장교를 개인적으로 좋아했지만 다수결에 의해 결정되었다”(중략) 이 이야기가 믿기지 않아 좀 더 자세히 말해달라고 요청하자 그는 말했다. ”당사자한테 가서 당신의 능력이 부족하니 우리를 지휘할 수 없다고 한다. 존칭어가 없다 보니 이름을 부르면서 말이다. 그리고 그의 상관한테 가서 그는 경질되어야한다고 말한다“(중략) 육군 총사령관을 지낸 모세 야론 장군도 비슷한 일화-미숙한 작전 능력으로 인해 부대에 큰 피해를 입힌 상관을 부하들이 집단 문제제기 하여 경질되도록 한 경험-를 들려줬다“(p 73~74)

"(오렌 교수의 얘기) 이 나라에는 묵시적인 사회적 계약이 하나 있는데 그 사회적 약속은 국가와 군대가 국민에 대해 책임감을 갖는다면 국민은 기꺼이 국방의 의무를 다한다는 것이다. (징병제인) 이스라엘 군대는 (모병제인) 2008년의 미국 군대보다 (자발성에 기초한) 1776년 독립전쟁 당시의 군대와 아주 흡사하다. 조지워싱턴은 ‘대장’이라는 계급에 별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고 대신 자신이 위대한 대장이 되어야만 그들이 자율적으로 따른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당시 미국 건국 초기 병사들은 거의 매일 자진해서 군에 계속 남을 것인지를 결정했다(중략)“ 이제 어떻게 해서 사병들이 계급에 개의치 않고 서슴없이 상위 계급자에게 “당신은 옳지 않습니다”라고 말 할 수 있는지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p 75)

재밌는 대목은 이외에도 숱하게 많지만 이 정도로 줄이자. 어쨌든 이런 특이한 현상 내지 문화의 역사적 뿌리는 어렵지 않게 짐작할 수 있다. 그것은 첫째로 국가와 군대가 없으면 개인의 자유도 행복도 없다는 확고한 컨센서스다. 이는 이스라엘 군대가 징병제임에도 불구하고 미국 독립전쟁 초기와 유사한 군대 문화를 만들었다. 둘째는 무능한 군 지휘관을 교체하거나, 잘못된 지시를 비판과 토론을 통해 교정하지 않으면 자신도, 동료도, 부대도 다 죽는다는 경험이다. 이는 “이스라엘 군인은 계급장이 아닌 무엇을 잘 할 수 있는지에 따라 역할이 결정”되는 조직 문화를 만들었을 것이다. 셋째는 유대교 특유의 평등주의다. 신 앞에서 인간은 그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다 별것 아닌 존재거나 지극히 존엄한 존재(다 최초의 인간 아담이자 하와이다)라는 자각이다. 이런 자각이 군대에서 조차도 지휘관에 대한 존칭어, 거수 경례, 부동자세를 없애버리지 않았나 싶다. 그리고 이스라엘 특유의 조직 문화는 오랜 박해와 홀로코스트 경험과 지난 60여 년 간의 군사적 긴장 상태 외에도 유대교 전통에서 발원하는 특유의 능력주의, 실질주의(쓸데 없는 위계, 권위, 간판, 형식 반대)와도 깊은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 책을 읽다 보면 이스라엘의 경제적 성공을 뒷받침한, 건강한 사회 기풍을 몇 개 더 발견할 수 있다. 그것은 군 작전이든 사업이든 행하고 난 이후의 철저한 평가반성이다. 외형적 성공이나 실패에 현혹되지 않는 기풍이다. 그래서 외형적으로 대단히 성공한 작전도 그 과정을 추적하여, 매 순간에 합리적인 판단과 결정을 했는지를 캐묻고, 필요하면 가차 없이 문책한다고 한다. 이는 한국민에게 너무나 아쉬운 기풍이 아닐 수 없다.

또 하나 이스라엘의 경제적 성공을 뒷받침한 요인으로 학연, 혈연, 군대 및 예비군 인연 등이 그물망처럼 얽혀서 “모두가 서로를 아는 사회”(높은 투명사회)에서 기인하는 낮은 거래 비용을 빼놓을 수 없다. 이는 작은 나라인데다가 긴 의무복무제(남자 3년, 여자 2년)와 강력한 예비군제에 힘입고 있다고 할 수 있다.

그 외에도 적대적 국가들에게 둘러싸여 바다나 하늘을 통하지 않으면 해외로 나갈 수 없는 지정학적 조건, 절대적으로 부족한 자연 자원, 좁은 국토 등 한국도 공유하는 열악한 환경을 성공의 조건으로 만든 예도 볼만하다. 그런 점에서 이 책은 그 어떤 나라보다 한국이 이스라엘에게서 배울 것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진보는 이스라엘 뒤에 있는 미국과 이스라엘 군홧발에 짓밟히는 팔레스타인만 보며 분개할 뿐이다. 보수는 이스라엘을 성지 순례지나 복음화(기독교화)의 종착지로 바라볼 뿐이다. 설상가상으로 이스라엘이 선진국이면서도 OECD 국가(30개)에 들지 않아 각종 OECD 통계에 등장하지 않는 것도 이스라엘에 대한 무지와 무관심에 일조하는 것처럼 보인다. 한국이 그 어떤 나라보다도 배울 게 많은 나라가 이스라엘인데.......

한국 진보 지식인들에게 제시된 미래 한국의 경제사회 모델은 거칠게 말하면 “작은 미국”(small America)과 “큰 스웨덴”(big Sweden)이었다. 그런데 이 책을 읽고 나면 어쩌면 “큰 이스라엘”이야 말로 한국이 가장 진지하게 연구해야 할 모델이 아닌가 하는 느낌을 준다. 정말 아프리카가 시장 개척자의 신대륙이라면, 이스라엘은 정치인과 국가경영 담론 연구자의 신대륙 같다는 느낌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 사회의 발목을 잡아온 고질병을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결했는지를 더 심층적으로 연구해 보려고 한다. 단적으로 소련 동구 붕괴이후 이미자가 폭증했음에도 불구하고 토지, 주택 문제를 이스라엘이 어떻게 해결했는지? 사회주의, 집단주의 전통과 발전국가적 유산이 한국 이상으로 많은 나라에서 공공부문 및 각종 규제 문제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폭증하는 이민이 초래한 엄청난 사회복지 수요를 어떻게 해결했는지 등. 그런 점에서 스웨덴, 핀란드 등 북유럽 복지, 교육제도 벤치마킹 여행보다는 이스라엘 복지, 교육, 주택(부동산), 기업/산업 정책, 공공개혁 정책, 국방정책 벤치마킹 여행이 훨씬 더 가치가 있지 않을까 한다. 정말 내가 10년만 더 젊었다면 이스라엘로 유학 가서 몇 년간 경제사회 정책을 심층적으로 연구하고 돌아왔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었다. 대한민국의 길을 고민하는 사람들의 일독을 권한다.-끝-

이 글은 시사인 156호(2010.9.6 발간)에 쓴 본인의 서평을 기초로 내용을 보강한 글입니다.
원 글은 http://www.sisainlive.com/news/articleView.html?idxno=8335#


덧글

  • 른밸 2010/10/07 16:17 # 답글

    비단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해외에 대한 우리나라의 관심은 그리 크지 않은 것 같네요. 관광을 제외하면...시사in 서평 보고 이 책 읽었는데, 이번 포스팅도 잘 봤습니다.
  • 김대호 2010/10/07 16:55 # 답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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