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학규 노선을 연찬한다 (4) -민생대장정으로 복귀하라- 注目! Attention!

손학규 노선을 연찬한다 (4)
-민생대장정으로 복귀하라-

지금 진보 언론과 진보적 대중들의 관심은 2012년 진보의 대표선수가 누구며, 이를 어떤 방식으로 뽑느냐는 것이다.
또 하나 추가한다면 그것은 진보 대통합이나 진보(민주)대연합이다. 이것이 진보의 관심이 집중된, 사람이 북적거리는 광장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하는 일은 찾는 사람이 별로 없는 후미진 뒷골목 일이다. 2012년, 2016~17년에 진보가 사용할 사상,이념,전략,정책이라는 무기를 매만지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정치, 정책 담론은 지구상에서 석학 몇 명만 알아주면 되는 자연과학이론이 아니다. 이는 수백 수천만 대중이 알아주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그렇기에 사람들의 관심이 적은 후미진 뒷골목을 서성이는 것은 그 이유가 무엇이든 참 한심한 일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이렇게 후미진 뒷골목을 서성이는 것이 내 운명이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손학규 노선 연찬(4)이자 마지막 글을 쓴다. 사실 내가 몇 번에 걸쳐 정동영의 반성문과 손학규의 출사표를 까칠하게 연찬한 것은 두 분이 다른 민주당 의원에 비해 특별히 좌편향 적이거나 무식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정, 손 두 분은 한국 진보 동네에 거세게 흐르는 어떤 흐름을 대표하기 때문에 길게, 까칠하게 썼다고 할 수 있다.

2. 앞에서 나는 진보라는 말을 썼는데, 이는 민노당, 진보신당으로 대표되는 좌파 정치 세력을 지칭하는 개념이 아니다. 오히려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운동권으로 대표되는 거대한 정치세력을 지칭한다. 나는 진보를 민노당, 진보신당과 일부 시민단체로 대표되는 진보 좌파를 진보로 지칭하고,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진보 주류 세력을 민주, 개혁 세력으로 지칭하는 시도를 단연코 반대한다. 이는 무엇보다도 대중의 언어 습관과 다르기 때문이다. 또한 진보와 보수가 건곤일척의 승부를 벌이는 마당에서 진보=진보 좌파로 등치시키려는 것은 정치적으로 지극히 어리석고, 불순한 짓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국민들은 그 누가 뭐라 하든 보수는 한나라당으로 대표되는 정치사회세력을 지칭하고, 진보는 김대중, 노무현, 민주화 운동 세력으로 대표되는 정치사회 세력을 지칭한다.

3. 중후한 주장들이 너무나 많은 손학규의 출사표는, 대충 씹어 삼키려 해도 목에 걸리는 가시들이 너무나 많은 음식과 같다. 억누를 수 없는 묵직한 의문들이 너무나 많다는 얘기다. 내 목에 걸려서 넘어가지 않는 글의 ‘가시’ 혹은 씹다가 이빨 부러질 것 같은 ‘돌’을 골라내는 것으로 손학규 노선 연찬을 종결지으려 한다.

가치론
출사표에 따르면 시대가 진보를 요구하는 배경으로 지목한 신자유주의의 철학적 오류란다. 이 철학은 사람을 도구화 하고(사람을 단순히 경제행위나 돈벌이의 도구로 생각한단다), 노동의 가치와 자본의 가치 사이에서 자본의 가치만을 우선시하고, 개인주의를 절대화한다고 한다고 한다. 따라서 손학규는 새로운 진보의 중심 가치로 (1)사람 (2)행복 (3)공동체를 제시한다.

그런데 내가 과문해서인지 사람, 행복, 공동체를 중시하지 않는 이념이 있는지 모르겠다. 하나마나한 소리라는 얘기다. 그리고 가치가 모호하거나 당위면 대중적 기대도, 감동도, 분노도 있을 리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이명박 대통령이 선진화, 공동체 자유주의, 747, 바른 사회 등을 앞세우지 않고 왜 “공정한 사회”를 내세우는지 곰곰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공정한 사회는 과거 진보가 대표 상품으로 삼아왔던 “민주주의”처럼, 불의가 있으면 “이게 공정한 사회냐?”는 대중적 항의를 불러일으킨다. 또한 사회 곳곳에서 “무엇이 공정한 사회냐”는 대중적 논란을 불러일으킨다.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초등학교 급훈 같은 가치보다, 자신을 채찍질하고, 대중의 생활 속에서 살아움직이는 가치가 좋은 가치 아니가? 그런 점에서 이명박 대통령이 큰맘 먹고 한국 사회에서 불공정의 압도적인 책임이 있는 보수 기득권 세력을 과감하게 읍참마속이라도 한다면, 가치/프레임 전쟁에서 압도적 우위에 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얄팍하기 이를데 없는 이대통령이 그것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지만…….

어쨌든 공정은 자유, 평등, 민주처럼 생활 속에서 살아 움직이는 가치다. 세상의 특정 측면(모순 부조리)을 선명하게 보게 하는 안경이다.

나는 진보 편에 서 있는 사람으로서, 당파적 이유로 보수가 사람을 진짜로 도구화하고, 자본가치만 우선시하고, 개인주의를 절대시 한다면 정말 좋겠다. 이따위 보수를 꺼꾸러뜨리는 것은 식은 죽먹기니까!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이런 단순 무식 하고 흉포한 보수는, 신자유주의와 양극화를 빼놓으면 정치적 문장 구성이 안 되는 진보 좌파들의 머릿속에만 들어 있는 유령이다. 그런 점에서 신자유주의를 열심히 두들겨 패는 손학규의 행태나 친북좌파를 열심히 두들겨 패는 한국 보수의 행태는, 북한에서 운동회 때 US라는 철모를 쓰고 코가 엄청 큰 미군 허수아비를 세워놓고 때리고, 찌르고, 거꾸러뜨리는 놀이를 하는 것과 다를 바 없어 보인다. 잠깐은 즐겁고, 같은 패거리들끼리 유대감도 다지겠지만 집단적 착각 속에 빠져들어 대사를 크게 그르치니까...... 상대(보수주의 정치 철학)를 너무나 단순, 무식 하게 보면 자신도 단순, 무식할 수밖에 없다. 

나는 아무리 단순 명쾌한 선동이 필요하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사실에 근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보를 빨갱이, 친북좌파라고 몰아붙이는 보수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적이 없고, 보수를 시장, 경쟁, 개인, 작은 정부만 절대시하는 신자유주의자라 몰이붙이는 놈 치고 제대로 된 놈을 본적이 없다.

제2의 르네상스와 문명사적 변화

손학규는 정치 지도자로서는 드물게도 무슨 도사 같은 문명사적 통찰을 내 놓았다. 주요 내용은 이렇다.

세계는 바야흐로 문명사적 변화를 경험하고 있습니다. 중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명이 싹트고 있으며, 가치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습니다. 물질만능의 성장주의가 동방 특유의 인문학적 전통을 중심으로 하는 새로운 가치, 인간과 물질, 인간과 환경의 조화를 추구하는 새로운 가치체제로 대체되고 있습니다.

그러면서 손학규는 “제1의 르네상스”가 신의 지배로부터 인간의 회복이었다면, “제2의 르네상스”는 물질과 효율과 경쟁의 레바이아탄으로부터 인간을 회복하는 것이라고 일갈한다. 출사표 끝에서 자신의 문명사적 통찰을 정리한다.

21세기가 문명의 주축의 대이동 시기라는 것은 국내외 석학 모두가 인정하고 있습니다.(중략) 미국문명은 어디까지나 산업사회의 모든 구조의 효율성을 획기적으로 제고시킨 축이지 근원적으로 질적인 변화를 수반한 새로운 축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미국의 주축이 중국으로 또다시 이동한다고 할 때에 중국문명은 단순히 이전의 구미산업사회의 효율을 개혁하는 수준의 문명이 되면 안 됩니다. 그것은 인류의 재앙이 될 수도 있습니다. 근원적으로 산업사회의 효율이나 경쟁의 개념과는 다른 인문과 화해와 건강과 조화의 인간적 문명이 되어야 합니다. 이렇게 질적으로 변화된 중국문명의 리더십을 선도할 수 있는 지정학적 위치에 있는 새로운 문명이 우리 한국문명입니다.

정말 대단한 인류문명사적 통찰이다. 도올 김용옥의 얘기를 빌리면 히말라야 산맥 서남쪽(인도, 중동, 지중해 연안)은 유일신이든 다신이든 신이 문명과 문화의 중심에 있다고 한다. 하지만 그 북쪽의 중국, 한국, 일본, 몽골 등지의 문명은 신이 없다고 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 한국, 일본 문명에는 인문학적 전통이 있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중국과 동아시아를 중심으로 새로운 문명이 싹트고 있다는 것은 중국공산당과 최고 수준의 사회주의 사회를 만들었다고 사기 치는 조선로동당이 좋아할 얘긴지는 모르지만, 솔직히 너무 오버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조선로동당은 너무 하니까 접어 두고라도) 중국공산당이 추구하는 철학과 가치에서 서구 문명의 한계를 뛰어넘는 새로운 문명의 징후를 나는 느낄 수 없다. 지금도 서구 문명은 저탄소 녹색 사회, 유연안정사회,글로컬리즘, 공정 무역, 종교성(영성), 민관 거버넌스 혁신 등 21세기적 인류적 가치를 선도하고 있는 것 아닌가? 계속 그럴 수야 없겠지만 적어도 당분간은 중국, 일본, 한국 보다 훨씬 앞서 가고 있다고 봐야 하는 것 아닌가? 나는 아무리 동아시아 문명이 초월적 신을 모시지 않는 문명이었다고 하더라도 이것이 서구 문명을 총체적으로 대체할 문명인지는 의문이다.

내가 손학규의 글이 목에 걸리는 것은 이런 고상한 의문 때문이 아니다. 그것은 한국이나 중국이나 공히 민주주의, 자유주의, 투명, 공정, 공평, 복지 등 서구가 일찍이 해결한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여 엄청난 고통을 겪고 있는데, 동아시아 문명이 인간적 문명이라는 이유로 이 문제를 건너뛰려고 하는 것 같아서다. 나는 중국은 어떤지 몰라도 한국은 아직도 정상국가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전쟁과 분단으로 인해 민주주의, 공화주의, 시장경제의 외상값이 너무 많이 남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질적으로 변화된 중국문명(새로운 문명)의 선도자로서 한국 문명을 봐준다면, 솔직히 듣기야 좋지만 현실의 모순부조리에 둔감하거나 이를 외면할 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한다. 북한이 저렇게 형편없는 국가가 된 것은 자유주의, 민주주의, 개인주의, 시장경제, 법치주의, 공정과 공평 등 인류 문명사적 상식을 부르조아적 인 것으로 치부하였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기본 중의 기본을 건너뛰고도  온 사회가 수령을 가부장으로 하는 하나의 가족처럼 될 수 있다는 거대한 사기극에 스스로 속아 넘어갔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나는 손학규의 담대한(?)통찰에서 일부 국수주의 종교 집단의 황당 가설이 자꾸 오버랩 된다.

비정규직 830만

손학규는 비정규직 문제에 대해서 이렇게 말했다.

민주당은 “서민과 중산층의 정당”을 표방합니다. 그런데 왜 비정규직 노동자가 830만이나 되도록 막지 못했는지 우리는 대답해야 합니다.

나는 이 말로부터 비정규직 문제를 해소할 비방을 자신은 알고 있다고 자부하는 것 같은 뉘앙스를 느낀다. 마치 민노당 진보신당처럼. 그런데 민주당이 비정규직 문제 해법을 알면서도 실행하지 않았다면,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집권 할 자격이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나는 아직도 보수에서도, 진보에서도 비정규직 문제를 해결 할 비방을 제시한 정치세력을 본 적이 없다. 나는 아직도 비정규직 문제에 관한 한 이정우 전청와대 정책실장의 솔직한 토로-그 때나 지금이나 제대로 된 해법을 찾을 수 없었다-를 음미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가장 무식한 사람은 자신이 무엇을 모르는 지도 모르는 사람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나는 비정규직 문제가 불공정, 불공평, 불투명 이라는 화두를 제치고 이렇듯 큰 화두로 된 것도, ‘정규직이 정상, 비정규직이 비정상’이라는 이데올로기도 기본적으로 정규직 조직노동과 이들과 살을 맞대는 얼마 안 되는 비정규직의 이해와 요구가 과잉 반영된 탓이 아닌가 한다. 대부분의 비정규직은 중소기업, 영세기업에 있지만, 비정규직 철폐 투쟁의 과실은 오로지 튼튼한 자본이 고용하고 있는 일부 비정규직만 누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자본력이 취약한 중소.영세 기업에서는 사내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도 그리 크지 않고, 그 격차도 노동의 양과 질과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비정규직 문제는 문제 설정이 잘못되었다고 생각한다. 문제 설정을 제대로 한다면 비정규직 문제는 노동내의 불공정과 불공평 문제라고 생각한다.

인간의 수명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의 수명이 짧아진 상황에서 (만성적 불안을 안고 사는 대부분의) 민간 기업에게 무조건 정년 보장=정규직을 요구하는 것은 채용을 최소화 하거나 분사화, 외주화하라는 얘기와 다름 없다. 솔직히 나는 지금 한국은 정규직도 비정상, 비정규직도 비정상이라고 생각한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상향평준화를 의미하는 것도, 하향평준화를 의미하는 것도 아니라고 생각한다. 정규직-비정규직-청년실업-낮은 고용률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처우, 직무직능급을 실현하는 것이 첫째요, 한국형 유연안정성 시스템을 구현하는 것이 둘째라고 생각한다. 어쨌든 비정규직 문제와 청년 실업 문제와 낮은 고용률 문제는 그 누구도 해법을 모르는 난제 중의 난제라고 생각한다. 모른다는 것을 모르는 것은 심각한 무지다.


화합과 품격 타령

손학규는 이렇게 말한다.

한국의 진보가 가야할 방향이 서구 공동체의 정치궤적을 따라 출몰했던 특정 정책과 노선에 있는 것이 아닌, 우리 공동체 내부의 분열을 치유하고 공동의 번영을 가능토록 하는 “화합”의 문제이며, 또 그 화합을 가능케 하는 “품격”의 문제라고 생각합니다. “품격”이란 정치적 리더가 가급적이면 많은 사람들의 관점을 수용하고, 가급적이면 다양한 주장을 가진 사람들을 포용하고 설득할 수 있는 정책을 제시함으로써만 가능한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원래 투명, 공정, 공평은 기본적으로 부성적 가치(엄격하고 차가움)다. 공정과 공평은 저울(평가, 계량)과 칼을 내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에 복지, 화합, 품격은 기본적으로 모성적 가치다. 그래서 사람들은 모성적 가치를 앞세우기 마련이다. 그러나 원칙, 상식이 무참하게 짓밟힌다면, 다시 말해 불공정과 불공평이 횡행한다면 부성적 가치가 각광을 받을 수밖에 없다. 나는 지금 한국이 바로 그런 시기라고 생각한다. 그런 점에서 손학규가 오로지 모성적 가치만 강조하는 것을 보면 시대를 제대로 읽고 있는지 의심스럽지 않을 수 없다.

그 외에도 승자독식 사회론이라는 진단도, 작은 정부-적극적 정부론도 목에 잘 넘어가지 않지만, 이전에 연찬한 적이 있기 때문에 더 이상 언급하고 싶지 않다.

통합과 복지가 능사인가?

나는 지금 손학규, 정동영을 포함한 진보 동네에서 들려오는 소리의 대부분이 혁신이 아니라, 통합(연합)과 복지라는 사실을 우려한다. 또한 내딛는 발걸음의 대부분이 좌클릭, 즉 거대한 중원의 포기라는 사실을 우려한다. 내가 말하는 혁신은 곧 진보의 사상,이념,정책,조직,문화,리더십의 총체적 혁신이다. 진보의 혁신이 늦어지면, 그래서 오로지 복지와 정치공학에 매달린다면, 국민들의 자유와 행복을 담보하는 1차 분배구조(생산과정)-이것을 개혁하는 핵심 원리가 공정과 공평이다-의 지독한 모순 부조리는 해결되지 않는다. 그렇게 되면 한국에서 진보와 보수의 명운을 가르는 수백만 swing voter를 진보 편으로 결집시킬 수 없다.

그런 점에서 나는 한국 진보의 제 정치사회 세력들은 당분간은 진보의 대통합을 잊어야 필요한 시기에 진보 대통합을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한다. 다시 말해 진보 동네 제 정당들은 차라리 통합을 잊고, 그 시간에 대중이 무엇을 절실히 원하는지, 무엇으로 인해 고통을 겪는지, 이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지를 치열하게 고민하여 민생을 알고, 될 일과 안될 일을 알고, 그래서 민심을 얻으면, 마치 해류와 바람이 배를 움직이듯이 민심과 지지자들의 힘으로 통합을 이뤄낼 수 있다고 생각한다.  나는 진보 정치 지도자들 보다 그들을 따른 대중들이 훨씬 유연하고 상식적이라고 생각한다. 무조건 민주당, 무조건 민노당, 무조건 진보신당, 참여당을 찍겠다는 사람은 그리 많지 않고, 하는 짓을 봐서 지지정당을 바꿀 수 있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나는 지난 경기지사 선거에서 심상정이 유시민과의 단일화에 응했던 것은 심상정의 고독한 결단인 측면도 있지만 그 못지않게 심상정을 믿고 따르는 수많은 진보 대중들의 상식적 판단과 절절한 염원 때문이었다고 생각한다.

요컨대 한국 사회의 중차대한 민생 현안들에 대해 고개를 끄덕일 수 있는 적절한 해법을 제시하고, 실천하여 진보와 보수간에, 진보 내 제 정파간에 존재하는 수백만 swing voter의 지지와 신뢰를 얻으면, 해류와 바람이 배를 밀고 가듯이 swing voter들이 진보 제 정파를 통합으로 밀고 갈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한국 사회는 진보든 보수든 청년세대에게 너무 적은 기회가 주어지는 현실, 결과적으로 압축적으로 조로하는 한국 사회에 대한 대책이 없다. 비정규직 문제에 대한 대책도 없다. (사용 사유 제한이 해법이 될 수 없다) 영세 자영업에 대한 대책도 없다.(SSM규제가 장기적인 해법은 아니다) 고용률을 획기적으로 증대시킬 대책도 없다. 수많은 관료(검찰 포함) 마피아 집단을 제어할 대책도 없다. 빠른 속도로 늘어나는 국가(공공) 부채에 대한 대책도 없다. 정말 진보와 보수 주류 정치사회세력에게 대책이 없는 난제가 한 둘이 아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차라리 통합을 잊고, 자기 가게(정당, 정파)로 손님(민심)이 구름처럼 몰려오는 방안을 고민하는 것이 통합을 이루는 첩경이라고 하는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통합에 대해 입을 닫을 필요는 없겠지만......손학규가 사는 길은 지적 자만심을 버리고, 과거 민심대장정 할 때의 정신과 방법으로 복귀하는 길이 아닐까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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