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평- 청년에게 최악의 나라를 바꾸는 길 철학과 가치

공평- 청년에게 최악의 나라를 바꾸는 길

 

지난 12월 6일자 복지국가소사이어티 뉴스레터를 통해 홍기표(복지국가소사이어티 정책위원, 레디앙 기획위원)위원이 “역동적 복지국가가 공평을 위한 해법이다”라는 글을 발표했다. 드물게 보는 긴 비판 글이라서 감사히, 흥미 있게 읽었다.

 

결론만 먼저 얘기하면 홍기표의 글은 공평론의 기본 논지(fact)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비록 오독이긴 하지만 공평론이 '무차별적 기득권 파괴 내지 혐오론'으로 오해될 수도 있다는 사실을 발견한 것은 소중한 성과라고 생각한다. 다음 주 월요일 한겨레 신문 지상에서 원고지 14매 내외로 홍기표와 나는 ‘공평과 복지’ 우선론을 주제로 맞대면 논전을 벌인다. 원래 정책 담론은 논쟁을 통해서 다듬어지고, 실행을 통해서 검증되기에 홍기표의 길고 성의 있는 비판이 여간 반갑지 않다.

 

솔직히 나는 내 글을 읽어온 많은 독자들이 홍기표 논리의 문제점을 단박에 눈치 채리라 생각했다. 그런데 의외로 그런 사람이 적다는 것을 느꼈다. 그래서 홍기표의 오독 중에서 대표적인 것 몇 개만 먼저 논박하고 얘기를 할까 한다.

 

1. 제일 큰 오독 내지 몰이해는 지대와 관련 된 것이다.

 

홍기표는 “경제학적 맥락의 지대는 어떤 근거(주로 소유권)를 통해 그 구역에서 창출되는 생산물을 별 노동 없이 소유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나의 공평론을 무차별적 지대 폐지론으로 해석한다.

 

그런데 지대(地代=rent)는 무조건 없애야 할 악이 아니다.

 

실제 없앨 수도 없다. 지대는 혁신의 촉진자로, 우수한 인재를 끌어당기는 유인책으로 기능하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지대는 특허권과 비슷한 측면이 있다. 특허권은 적정해야 한다. 너무 강력해도 안 되고 너무 약해도 안 된다. 너무 강력하면 후발자의 혁신을 막아 버리고, 너무 약하면 발명할 동기도, 특허를 출원할 동기도 없애 버린다. 지대 개념과 그 효용은 내 책 <진보와 보수를 넘어>-정의와 공평의 반석 위에 코리아를 세워라-(백산서당, 2007)에 잘 정리되어 있다. 그 내용을 발췌해서 소개 한다.

 

“지대(地代=rent)는 원래 토지의 사용대가를 뜻하는 말이다. 그런데 토지는 공급이 고정돼 있는 생산요소라는 점에 착안해 지대는 “어떤 생산요소든 그 공급이 고정돼 있는 것에 대한 보수”(이준구, 경제학원론)를 뜻하는 개념으로 일반화되었다. 즉 경제적 지대는 “생산요소의 공급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추가로 지급되는 보수”로 정의되었다. 지대는 사회의 입장에서 보면 (수요와 공급의 시장원리가 잘 작동하지 않아서) 과도하게 지불되는 비용이라고 할 수 있다. 그래서 “노동의 공급이 비탄력적일수록 보수 중 경제적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다가, 완전히 비탄력적이 되면 보수 전체가 경제적 지대의 성격을 갖게 된다”고 한다. 역으로 노동공급이 탄력적일수록 보수 중 경제적 지대가 차지하는 비중은 적어지기 마련이다.

 

개념을 좀 더 쉽게 이해시키기 위하여 이준구의 경제학원론 교과서는 다음과 같은 예를 들었다.

 

한창 잘나가는 연예인이나 운동선수같이 탁월한 예술적․신체적 재능을 가진 사람들은 지극히 드물다. 그런 사람들의 공급은 매우 비탄력적인 셈인데, 이 때문에 그들이 얻는 소득 중 대부분이 경제적 지대의 성격을 갖게 되는 것이다. 그들뿐 아니라 변호사나 의사 같은 또 다른 고소득계층이 얻는 소득도 대부분이 경제적 지대의 성격을 갖는다. 그들의 경우에는 시험이나 교육과정을 통해 공급을 인위적으로 통제함으로써 비탄력적이 되도록 만들었다고 볼 수 있다. 의사나 변호사 수를 늘리자는 논의가 나올 때마다 누가 제일 먼저 반대하고 나서는지를 보면 잘 알 수 있는 일이다(이준구, 경제학원론, 법문사, 2003, 203쪽).

 

이렇게 본다면 한국 비정규직 임금은 경제적 지대가 거의 없는 완전 시장가격에 가깝다고 할 수 있다. 반면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대기업 정규직 임금의 경우는 똑같은 일을 한 비정규직 임금을 초과하는 나머지는 지대라고 할 수 있다. (중략) 인간은 누구나 지대 혹은 초과이윤을 추구한다고 해도 과언은 아닐 것이다. 따지고 보면 특허나 혁신적 신제품도 초과이윤을 획득하기 위한 수단이다. 물론 이런 방식으로 획득되는 지대는 어느 나라나 경제주체들에게 권장하는 사항이다. 그것은 사회 전체에 이익이 되고 최소수혜자에게도 이익이 된다고 판단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역시 너무 과도하면 사회 전체에도 최소수혜자에게도 해악이 된다. 일반적으로 문제 삼는 지대는 사회 전체의 이익과 배치되는 특정 이익집단의 ‘초과이윤’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대개 소비자나 유권자의 선택권과 심판권을 제약하는 시장적․비시장적 장벽이나 국가의 특혜적 자원할당의 소산이다.(중략) 지대는 자원의 기회비용(완전 시장 가격) 이상으로 지불된 금액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에, 동일한 자원이 어떤 집단에 끼느냐 못 끼느냐에 따라 가격, 처우, 권리, 혜택의 격차가 나는 현실을 정확히 감지하는 인식의 틀이다. 지대는 기본적으로 불공평을 감지하는 인식의 틀인 것이다. 따라서 프랑스대혁명이나 6월 민주항쟁이 주된 극복대상으로 삼았던 반칙과 독과점은 물론이고 오랫동안 관행화된 불공평까지 감지한다.

 

학문이나 교육업적, 사회공헌에 별 차이가 없음에도 교수와 시간강사의 처우가 엄청나게 차이가 나는 것은 선진국 시각에서 보면 대단히 부당한 일이지만, 한국은 오랜 관행 때문에 별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자동차공장에서 왼쪽 바퀴를 끼우는 정규직과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의 처우가 1 : 2 혹은 1 : 3의 격차가 나도, 그것이 자유계약인 한 별로 부당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런데 지대라는 인식틀은 이미 일반화․보편화된 질서 속에 숨어 있는 불평등, 불합리를 찾아낸다. 특히 지대라는 인식틀은 지금 한국의 공무원, 공기업, 교사와 강력한 노조의 보호를 받는 정규직 조합원의 권리처럼 과거에는 그리 큰 특권이 아니었지만 경제와 사회사정의 급변으로 엄청난 특권으로 변모한 것을 감지한다“(p126~129)

 

2010년 현재 현대중공업 생산직의 평균 연령은 47~48세, 사무직은 40세 쯤 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생산직 평균 연령은 44~45세, 사무직은 그 보다 좀 낮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20년 전 쯤 현대자동차 울산 공장의 생산직 평균 연령은 30대 초반, 사무직은 30대 중반 정도로 알려져 있다. 그런데 왜 지금은 역전이 되었을까? 그리고 생산직은 왜 초고령화 되었을까? (아마 전세계 자동차 공장 중에서 가장 평균 연령이 높을 것이다) 이유는 뻔하다. 시장임금에 비해 현대자동차 생산직은 월등이 높고, 사무직은 약간 높기 때문이다. 그래서 생산직은 퇴사자도, 신입 직원도 거의 없고, 사무직은 퇴사자도 신입 직원도 비교적 많기 때문이다. 이는 1987년 이후 약진해 온 한국 노조운동의 빛나는 성과이자 짙은 그늘이다.

 

스웨덴 노총(LO)과 사민당은 최저임금을 높이고, 국가와 산업 차원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원칙을 관철하여, 기업 규모(소속)에 따른 임금 격차를 극소화 하였다. 임금에서 지대적 요소를 극소화 한 것이다. 더불어서 사회안전망을 강화하였다.

 

하종강(한울노동문제연구소) 소장은 최근에 일어난 현대자동차 비정규직 투쟁과 비정규직 문제 해결 방안을 얘기하면서 서구에서 통용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정책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스웨덴 같은 경우........국가단위로 동일임금 동일노동이 시행되면서 회사가 달라도 같은 일을 하면 임금이 같다. 스웨덴은 사민당이 장기간 집권하면서......높은 임금의 노동자들의 임금을 잠깐 묶어 놓기도 했다. 최고 임금을 받는 노동자들의 임금은 잠깐 묶어 놓고 대신 비정규직 차별을 없애자는 것이다. 그렇게 해서 수만 명이 일하는 볼보자동차의 선반공이나 작은 영세 공장의 선반공의 임금이 둘의 경력이 같다면 동일해졌다. 몇 천 명이 일하는 대학병원 간호사나 동네 작은 병원의 간호사가 경력이 같으면 임금이 같은 게 스웨덴 방식이다. 그러면 그런 높은 임금을 지급할 수 없는 한계기업들은 계속 도산을 하게 된다. 어떤 기업이 살아남겠는가? 높은 임금을 지급하면서 고부가가치 경쟁을 하는 기업만 살아남게 된다. 철저한 시장경제다.(중략) 하지만 스웨덴과 우리는 큰 차이가 있다. 스웨덴은 퇴출된 기업에서 실직한 노동자에 대한 사회안전망이 완벽하게 돼 있다. 쌍용자동차 노조가 격렬하게 싸울 수밖에 없었던 이유는 해고된 뒤 대책이 없는 사회이기 때문이다. 사회안전망을 쌓아가면서 한계 기업들을 정리하는 것이 오히려 철저한 시장경제라고 할 수 있다."(“동일 노동=동일 임금, 스웨덴 경제성장 비결" 오마이뉴스 2010.12.13)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492401

 

하종강의 주장은 현대차 정규직의 임금 수준에 하청협력 업체 노동자들의 임금 수준을 맞추고(상향평준화), 맞추지 못하면 회사 폐업 해라는 의미가 아니다. 그렇다고 하향평준화를 주문한 것도 아니다. 유추해 보면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이 수렴되는 지점은 현재의 현대차 정규직 임금과 수많은 협력업체의 비정규직 임금 사이 어딘가가 아닐까? 당연히 현대차 정규직들로서는 도저히 감내 할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하종강은 매우 완곡하게, 여러 유보조건을 붙여서, 중장기적 방향으로서 제시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종강의 기본 입장과 공평론의 기본 입장은 크게 다르지 않다. 나는 다만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의 절망과 한숨을 고려하여, 사교육, 고시, 공시 등 지대 추구 경쟁으로 소모되는 사회적 비용 등을 감안하여 좀 더 급진적으로 추진했으면 한다. 물론 이는 사회안전망의 급진적인 확충과 같이 가야 한다. 그리고 이는 단지 국가의 법, 제도로 되는 것이 아니다. 이해관계자들의 결단과 합의가 필요하다. 거듭 이야기하지만 지대는 경제사회 주체를 분발하게 하는 일종의 당근이기에 적정하게 제공되어야 한다.

 

2. 1차 분배가 무엇을 의미하는지도 오독하였다.

 

홍기표는 “1차 분배=공정성이 중심이 된 시장 분배, 2차 분배=국가 분배”로 정식화하고, “불공정이 초래한 1차 분배의 실패를 바로 그 실패의 주체인 시장을 통해 바로잡겠다는 것은 방향을 잘못 잡은 것이다. 시장의 실패를 시장을 통해 교정하겠다는 주장은 말이 되지 않는다. 시장의 실패가 초래한 1차 분배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역동적 복지국가와 시민사회의 공적 개입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런데 내가 말하는 1차 분배의 장은 인재, 일자리, 부, 권력(자리), 명예 등 핵심 사회적 자원을 분배하는 시장, 국가, 사회를 다 망라하고 있다. 물론 여기서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는 것은 (경제적)시장이다. 그런데 이 시장은 기본적으로 국가가 만든 규제와 사회에 뿌리내린 다양한 문화, 관행 이라는 틀 속에서 작동한다. 국가의 규제나 이익집단이 설치한 유무형의 장벽이 없는, 경제원론에 나오는 완전 시장은 거의 없다고 생각한다. 단적으로 부동산 문제, 사교육 열풍, 고시, 공시 열풍, 공공부문으로의 인재 쏠림 현상 등은 압도적으로 국가의 제도, 정책의 문제이다. 따지고 보면 수많은 규제 속에서 움직이는 금융 문제도 마찬가지다. 최저임금 수준 같은 노동 관련 규제는 조세재정에 기반을 두지 않지만 중요한 복지제도이자, 시장질서를 규율하는 시장제도이기도 하다. 학위·학벌, 자격증에 대한 특권과 특혜 혹은 이와 관련된 배제와 차별은 국가나 사회가 만든 것이지만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어느 범위에서 수용, 적용하느냐도 시장에 미치는 영향이 크다. 내가 복지가 매우 중요하고 획기적으로 강화되어야 마땅하다고 생각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의와 공평 뒤에 위치해야 한다고 하는 이유는 인재, 부, 권력 등을 배분하는 시장, 국가/선거, 사회/문화에서 불공정과 불공평이 너무나 심각하기 때문이다.

 

솔직히 나는 현재 추가적으로 도입하려는 어떤 복지 정책 보다 국가, 산업 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노동의 양・질에 상응하는 처우), 노동시간 단축과 적절한 업무 분할을 통한 일자리 나누기, 최저임금의 상향, 불공정거래 근절이 오히려 한국 경제나 사회적 약자에 훨씬 이롭지 않을까 한다. 물론 시장과 사회를 뒤흔들 엄청난 힘이 있는 대한민국이라는 국가(특히 정치)를 제대로 작동 작동시키는 것, 한마디로 민주주의를 제대로 구현하는 것은 이보다 훨씬 더 이롭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해서 현재 거론되는 각종 복지 정책을 중단하거나 한참 뒤로 미뤄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3. “사회적 상벌체계 합리화”의 의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홍기표는 공평론의 핵심 주장이 “한국 사회에서 가장 중요하고도 우선적인 과제는 ‘사회적 상벌체계를 합리화 하는 것”이라고 제대로 독해하였다. 하지만 그 수단으로 “공정한 경쟁을 가로막는 각종 반칙과 특권을 철폐”하는 등 “시장 일변도의 대안을 추구”한다고 하면 오독한 것이다.

 

공평론은 (상품, 서비스, 정치, 행정)소비자, 유권자, 납세자의 선택권과 심판권을 중시하는 것은 사실이다. 그런 점에서 경제적 시장이나 정치적 시장을 제대로 작동시키는 것을 매우 중시한다. 공평론이 정치적 시장이라는 말을 쓴데서 보듯이 경제적 시장에 거의 모든 것을 맡기자는 (경제적) 시장근본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자원 배분을 좌지우지해야 한다는 것은 아니다. 경제주체들의 자유, 창의, 탐욕이 분출하는 시장을 다루는 것은 물을 다루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물은 생명의 근원이지만, 잘못 다루면 큰 재앙을 초래하듯이, 시장도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공평론은 다양한 형태의 시장을 중시하지만, 가장 중시하는 것은 가치생산생태계의 풍요와 지속가능성이다. 그래서 존재들의 기여, 부담, 의무와 권리, 이익, 혜택의 균형을 중시하는 것이다.

 

한편 시장, 국가, 사회를 규율하는 합리적 상벌체계는 합리적 게임규칙과 거의 같은 의미인데, 그 지주는 4개다.

첫째는 정해진 규칙을 경쟁 참여자들이 준수(승복)하는 것이다. 반칙을 배제하는 것이다.

둘째는 경쟁 방식과 목적의 부합이다. 한국에서 경쟁 방식과 목적의 불합치는 합법적 제도적 불의의 온상이다.

셋째는 경쟁 입구=출발선(starting line)에서의 평등이다.

넷째는 경쟁 출구(finish line)=결과에서의 합리적 불평등이다. 이는 흔히 공평성(fairness)원칙으로 불리는데, 승자・강자의 이익 수준과 패자・약자에 대한 배려 수준 혹은 사회적 최소한의 수준(최저임금제, 기초연금제 등)을 결정하는 어렵고 복잡한 문제를 내장하고 있다.

 

합리적 게임규칙이나 합리적 상벌체계의 핵심을 출발선의 평등(공정)으로 보는 사람들이 있다. 여기에다가 불로소득 환수를 덧붙이는 사람도 있다. 출발선의 평등을 위해서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계급 차별이나 출신 배경은 어찌 할 수 있어도 유전적 배경(소질과 적성)과 개인적 선호도는 어찌할 수가 없다. 소질과 적성이 맞지 않는 영역에서 스타가 되어 보겠다고 설치는 사람이 소질과 적성의 열악함을 보정해 달라고 하는 경우의 난감함을 생각해 보면 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출발선의 평등을 이루기 위해 노력하는 것은 필요하다. 하지만 이는 결코 이룰 수 없는 꿈이다. 뿐만 아니라 용케 출발선의 평등을 이루었다고 해서 그 결과는 어떻게 되든 승복하라는 것은 있을 수 없다. 로또나 러시안 룰렛 식의 게임규칙이 많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출발선의 평등을 중시하는 공정을 대포에 비유하면, 결과의 합리적 불평등을 중시하는 공평은 유도탄에 비유할 수 있다. 대포는 쏘는 지점에서 정밀하게 계산하지만 쏘고 나서는 컨트롤 하는 수단이 없다. 하지만 유도탄은 쏠 때 계산도 하지만, 쏘고 나서는 레이저 빔 등으로 탄두를 목표(결과)로 유도한다. 요컨대 공평은 공동체의 성장과 통합을 위해 경쟁 방식(장)을 설계하고, 상과 벌과 개평을 설계한다. 승자・강자의 이익 수준과 패자・약자에 대한 배려 수준과 사회적 최소한의 수준을 결정한다. 물론 이 결정은 항시 잠정적이다. 결과의 영향을 보고 끊임없이 수정한다. 특히 지대를 적정 수준으로 조정한다.

 

 

4. 이제 본론을 말한다.

 

1) 나이가 들면 싱그럽고 아름다운 꽃을 보고 감탄할 줄도 알지만, 동시에 그 꽃을 피어나게 한 토양과 뿌리・줄기와 농부의 땀 냄새도 안다. 전쟁사를 읽을 때도 무기나 전술뿐만 아니라 보급의 문제를 살핀다. 고대 유적을 살필 때도 건축과 예술작품 뿐만 아니라 상하수도 등 도시 인프라를 주요하게 살핀다. 이런 시각은 유럽 복지국가를 볼 때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높은 사회적 연대성, 투명성, 신뢰성, 높은 세금에도 감탄하지만, 동시에 경제산업 구조와 정치문화 풍토도 살핀다. 무엇보다도 인재, 부, 권력, 명예, 관심 등 각종 사회적 자원의 흐름을 규율하는 사회적 상벌(incentive-penalty)체계를 빼 놓지 않는다. 이것이 한 사회를 지탱하는 물질적, 문화적 인프라의 핵심이기 때문이다.

 

2) 한국 사회의 후진성을 보여주는 지표나 현상들은 무수히 많다. 가장 많이 거론 되는 것이 취약한 복지, 낮은 세금(국민부담률=28위/OECD30개국), 토건위주의 재정 등 일 것이다. 그런데 튼실한 복지와 재정건전성이라는 꽃을 키워내는 뿌리, 줄기에 해당하는 요소의 피폐(후진성)에 대해서는 이상하게도 관심이 적다.

 

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 원하청간 불공정거래, 취약한 소비자 보호, 극심한 수도권 집중, 과도한 대학진학률 등은 누구나 잘 아는 후진적 일면이니까 접어두자. 한국의 미래를 극히 어둡게 하는 후진적 요소임에도 불구하고 잘 거론되지 않는 것이 몇 개 있다. 대표적인 것이 고시, 공시 열풍과 우수 인재의 이공계기피, 공공부문에 대한 높은 선호이다. 이는 개인차원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고 합리적인 선택이지만, 국가 차원에서는 수백조원의 금융 자산 이상으로 중요한 청년 인재들이 치열한 국제 경쟁의 최전방이 아닌, 후방으로 집중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10대 중 후반에 집중된,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은 경쟁으로 인한 손실(사교육비)도 매년 수십조 원은 족히 될 것이다. 지식정보화 시대일수록 창의와 열정이 빼어난 인재의 역할이 큰 만큼 이 현상이 지속된다면 국가적 재앙이 될 것이다.

 

3) 국가나 산업 차원의 ‘동일 노동-동일 임금’ 원칙의 실종도 한국 특유의 후진성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국가, 기업, 노조의 공동 책임인데, 노동자들의 근로조건이 노동의 양・질과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수익성과 노조의 교섭력에 비례하는 현상이다. 또한 대기업, 공기업 노조의 잦아들지 않는 전투성과 노동의 양・질에 비해 월등히 높은 근로조건으로 나타난다. 취업과 실업의 낙차가 너무 커서 유사시 구조조정의 어려움으로, 생산현장의 급격한 노령화로, 힘센 노조에 대한 기업의 공포로 나타난다. 당연히 대기업, 공기업은 신규 인력(특히 생산직) 채용에는 소극적이고, 외주·하청 화에는 적극적일 수밖에 없다. 결국 대기업의 종업원 수의 감소-좋은 일자리의 절대 부족-극심한 청년실업-사교육, 고시, 공시 열풍으로 악순환 한다. 2009년 쌍용차 사태는 이 악순환의 기념비다.

 

4) 대졸 실업자들을 양산할 수밖에 없는 지나치게 높은 대학진학률도 여간 후진적인 현상이 아니다. 이는 대학을 나오지 않으면, 부모 세대와 달리 결코 좋은 일자리를 구할 수도 없고, 심지어 사람대접도 제대로 받을 수 없다는 사회적 인식 내지 현실의 반영이다.

 

5) 또 하나의 심각한 위기적, 후진적 일면임에도 불구하고 잘 거론되지 않는 것이 있다. 그것은 우리가 당연시 하는 좋은 직업・직장의 임금 수준이 1인당 GDP 수준에 비해 지나치게 높고, 근로시간은 너무 길다는 사실이다. 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공공부문과 전문직 처우의 바로미터로 되는 교사 근로조건을 보면 알 수 있다. 물론 국제 비교 통계인 <OECD 교육지표(2007)>(표 참조)까지 찾아보지 않아도 선진국에서 살아 본 수십만 명의 주재원, 유학생들의 체험을 통해서도 실감한다. 좀 과장해서 말하면 선진국에서는 고졸이 할 일을 한국에서는 대졸이 하고, 두 명이 할 일을 한 명이, 두 명이 받아갈 임금을 한 명이 받아간다고 할 수 있다. 낮은 고용률과 청년실업은 필연이다.


 

6) 이 시대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자유화, 중국의 경제적 비상, 높은 무역의존도 등으로 말미암아 고용을 담보하는 산업, 기업, 상품, 기술, 기계, 작업장 등의 수명이 무척 짧아졌다. 설상가상으로 세계 경제산업적 지각 변동의 진앙인 중국에 너무 가까이 있다. 제대로 작동하는 국가라면 기업과 개인, 가족에게 불가항력적으로 밀어닥치는 이 충격을 이전보다 훨씬 많이 받아 안아 주어야 한다. 정확히 말하면 지경학상, 경제산업 구조상 엄청난 구조조정 압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것이 한국의 숙명이기에 국가, 기업, 노동이 이 충격(고통)을 분담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로 그 부담을 타자에게 전가 하려고 발버둥치는 것이 한국적 후진성이라고 할 수 있다.

 

이 후진성은 노동 쪽에서는 수익성과 교섭력에 따른 임금 격차를 당연시하고, 정년 보장직=정규직을 너무나 당연시 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실제 한국에서 ‘동일노동-동일임금’원칙이 고창되는 경우는 튼실한 기업 내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이 정규직과 동일한 대우를 요구하는 투쟁을 벌일 때이다. 하지만 유럽 등 선진국에서 이 원칙은 개별 기업 차원이 아니라 사회 전체나 최소한 산업・업종 차원에서 고창되는 원칙이었다. ‘노동 계급’ 혹은 ‘노동자는 하나’라는 구호는 기업이나 산업을 초월하여 비슷한 가치의 노동을 제공하는 노동자는 그 처우가 비슷할 수밖에 없다는 인식을 깔고 나온 것이다. 그런데 현대자동차에서 정규직화 투쟁을 결사적으로 벌이는 비정규직 노조와 이를 지도하는 민주노총의 머릿속에서조차도 이런 의미의 ‘동일노동-동일임금’ 원칙은 실종 상태이다. 당연히 노동의 양・질에 비해 열악한 처우를 받는 수많은 협력업체 노동자들과 업종은 다르지만 취약한 기업에서 비슷한 가치의 노동을 제공하는 수백만 비정규직의 처우를 어떻게 개선할지에 대한 대책이 있을 리 만무하다. 하종강은 바로 이 문제를 지적한 것이다.

 

한편 기업과 국가(특히 이명박 정부)는 복지병 타령이나 하면서, 시대적 추세를 빙자하여 (사회안전망의 담보 없는) 지나친 노동유연성을 당연시 한다. 먹지 못하여 피골이 상접한 환자의 비만을 걱정하는 격이다. 어쨌든 노동이나 기업이나 이명박 정부나 시대착오 내지 번지수 착오적이기는 매 한가지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년도 보장되고, 근로조건도 좋은-1인당 GDP를 감안하면 세계 최고 수준-일자리를 구하는 일이 하늘에 별 따기가 될 수밖에 없다. 당연히 청년이 좋은 일자리를 쟁취하는 비용은 선진국의 몇 배가 될 수밖에 없다. 공공부문을 늘리는 것도, 고용률을 올리는 것도 엄청나게 어렵게 되어 있다.

 

7) 사실 세계 최저의 출산율의 뿌리는 바로 여기에 있다고 보아야 한다. 출산, 육아 비용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담보, 즉 복지가 약해서 악화되는 측면도 있지만, 근원적으로는 결혼-출산-육아-교육을 가능하게 하는 정상적(?) 생활 수준에 도달하는 것이 너무나 힘들기 때문이다. 한해 50만 명 이상이 노동시장에 진입하지만 그 중에서 그럴듯한 직업이나 직장을 가지는 승자(winner)가 10%나 될까? 그 어떤 나라도 한국만큼 많은 심리적 패자(loser)를 양산하는 나라는 없을 것이다. 또 현재의 처지에 만족하는 사람이 적은 나라가 없을 것이다. 정말 한국은 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수준은 너무 높고, 좋을 일자리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기업과 국가가 처한 제반 조건은 너무나 열악하다. 기득권이 없는 청년세대와 미래세대에게 최악의 나라가 바로 지금 한국이 아닐까 한다.

 

8) 문제의 근원을 보자. 과도한 부동산 불로소득, 원하청간 불공정거래, 취약한 소비자 보호, 과도한 대학진학률이 왜 나타나는가? 시간강사 문제, 고시, 공시 열풍과 우수 인재의 이공계 기피, 공공부문 선호, 극심한 청년실업, 저출산 사태의 원인은 무엇인가? 사회안전망이 취약해서? 시장에 너무 많은 것을 맡겨서? 이는 병폐를 악화시키는 요인은 될지언정 핵심적인 원인은 아니다. 한국이 앓고 있는 고질병의 핵심은 인재, 부, 권력 등 주요한 자원을 배분하는 원리가 지속가능한 성장과 통합의 원리가 아니라, 힘센 존재(기득권자)들의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해관계에 의해 너무 심하게 편향, 왜곡되어 있기 때문이다. 그 어떤 선진국도 힘센 존재들에 의한 자원 흐름의 왜곡이 없지는 않겠지만, 한국은 그 정도가 심하고, 이 문제를 개선하려는 움직임이 너무 미약하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가나 산업 차원의 ‘동일임금-동일노동’ 원칙의 실종이 대표적이다. 대부분의 나라들이 공공부문의 처우를 민간부문에 비해 결코 월등하게 유지하지 않는 것도, 국가 공인 자격증의 숫자와 특권을 시의적절하게 조정하는 것도 국가의 중장기적 인재 배분 및 공공부문에 대한 신뢰 제고 전략이 흔들림 없이 견지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국은 이런 논의조차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부와 일자리 분배 전략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최저임금 수준, 노동시간 규제, 다양한 근로 형태 인정 문제도 튼실한 기업의 얼마 되지도 않는 비정규직 문제에 가려 제대로 논의 되지도 않고 있다. 앞에서 거론한 주요 과제들은 불공정거래 근절, 부동산 불로소득의 원천 봉쇄와 환수, 사회적 약자 배려, 삼권분립 원칙과 더불어 선진적 상벌체계의 핵심 지주들이다.

 

9) 사실 지금 한국의 시장, 국가, 사회에 흐르는 게임규칙 내지 상벌체계는 애초부터 성장과 통합의 핵심 질곡이 아니었다. 오히려 재벌・대기업, 수출기업, 대졸자, 전문직, 공무원에 대한 특권 특혜는 한 동안은 압축적인 경제사회 발전의 동력으로 기능하였다. 대기업, 공기업 노조의 근로조건 개선 투쟁 내지 노동권 강화 투쟁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지금은 그 유효성을 다했다. 그런 점에서 과거 성공신화의 짙은 그늘을 직시하지 않고, 과거에 유효했던 가치에 매달리는 것이 대한민국의 총체적 혼미와 극심한 갈등의 핵심 원인 인지도 모른다.

 

한국 사회의 대부분의 병폐는 후진적인 상벌체계에서 발원한다. 공정과 공평을 핵심 지주로 하는 게임규칙, 즉 正義의 훼손에서 발원한다는 얘기다. 그러므로 시장, 국가, 사회에 걸쳐 합리적인 상벌체계, 특히 공평성을 바로 세우는 것이 청년과 미래세대에게 최악의 나라인 대한민국을 도전과 희망과 활력과 통합의 나라로 바꾸는 관건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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