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디자인연구소 신년 좌담 “10년의 성찰, 10년의 전망” (1) 서울.코리아 디자인

사회디자인연구소 신년 좌담 “10년의 성찰, 10년의 전망” (1)

-과거 10년을 돌아보고, 미래 10년을 전망한다-

 

<참석자> 김대호(사회디자인연구소장)-사회

임진철(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 청미래평화재단 대표)

정창교(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 전민주당정세분석 국장)

허 욱(사회디자인연구소 이사, 전UPKOREA 편집장)

김형석(필명 마케터)(마케터의 아이디어 LAB 운영자, ‘민주주의 2.0’기획자)

■ 일시 : 2011년 1월 4일 (화) 18 ~21시    장소 : 사회디자인연구소 회의실

 

김대호(사회)/ 2011년이면 새로운 10년이 시작되는 해다. 그런데 진보 진영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전체에 10년에 대한 논의가 너무 적은 것 같다. 지금 진보 진영은 이명박 정부의 폭정에 분노하여, 2012년 정권 탈환에 절치부심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자연스러운 일이다. 하지만 2012년에 의미 있는 정치적 성취를 위해서는 시야를 최소한 과거 10년과 미래 10년으로 확대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지난 10년 동안, 또 향후 10년 동안 우리 자신과 가족, 여기 앉은 우리와 우리 세대, 그리고 진보 진영, 대한민국, 코리아, 동아시아와 인류에게 어떤 도전이 있었는지, 또 어떤 거대한 도전이 있을지 전망해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2012년의 전망을 얘기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그런데 불행하게도 이명박 정권의 폭정과 혼미가 청년실업, 인구구조 변동, 주력산업의 위기, 중국의 정치, 경제적 비상, 남북관계의 근본적인 변화, 기후변화, 과학기술혁명 등 준엄한 도전을 목전에 두고 있는 우리 사회의 거의 모든 전망 역량 내지 정치적 상상력을 틀어막고 있는 것 같아 여간 답답하지 않다. 그런데 솔직히 우리의 지적 역량이나 통찰력이 대한민국과 인류의 지난 10년을 성찰하고, 향후 10년을 전망하기에는 아무래도 부족하니까, 자신의 얘기로부터 얘기를 풀어 나가는 것이 어떨까 한다. 과거 10년의 자신의 인생에서 어떤 큰 변화가 있었는지, 반성적 성찰의 핵심이 무엇인지를 중심으로 얘기를 풀어보자.

 

김형석(필명 마케터)/ 90년대 말과 2000년대 초반은 인터넷 활황 시기였는데, 나는 게임회사, 디지털 애니메이션회사, 광고마케팅 회사 등에 근무했다. 열심히 일했다. 직장인으로서 한 몫을 했다고 자부한다. 좋은 평가도 받았다. 물론 직업 안정성은 없었다. 직장에서 하는 프로젝트 기간도 짧았고. 지금 돌아보니 그 시기가 30대에서 40대로 넘어가는 시기였는데, 교육 훈련 받아야 할 많은 것을 제대로 받지 못했다는 생각이 든다. 선배세대들은 사내에서 인사관리, 재무관리 가족관리 등 회사와 가정에서 필요한 교육을 그런대로 받은 것 같은데 나와 우리 업종 내지 우리 또래는 전혀 그런 교육을 받지 못했다. 그래서 개인적 임기응변으로 때웠다.

 

어쨌거나 지난 10년은 책임져야 할 대상이 엄청나게 많이 늘어났다. 직장, 부하, 아이들, 부모, 사회 등. 한국 사회를 조망해 보면, 겉으로는 매우 역동적인 것처럼 보인다. 2002년 대선, 월드컵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데 경제나 산업의 내면적으로는 고립되고 정체된 측면이 강한 것 같다. 2000년 전후해서는 다음, 네이버, 사이월드, ILOVESCHOOL, 인터넷 전화 등 IT테스트베드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세계를 선도하는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속출했는데, 2003년부터 2007년까지는 그런 모델이 나오지 못했다. 그러다가 아이폰, 페이스북, 트위터 등 해외에서 개발된 기술이나 비즈니스 모델이 한국으로 상륙해서 휩쓸고 있다. 우리의 기술 표준이나 비즈니스 관행이 글로벌 스탠더드와 맞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가 IT 분야에서 독과점을 형성하면서 일종의 고립된 섬(갈라파고스)처럼 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지 않았으면, 2000년 전후한 시기의 분위기가 지속되었다면 아마 아이폰, 트위터, 페이스북이 한국에서 먼저 개발되지 않았을까?

 

 허욱/ 지난 10년을 조망한다면 인류사적으로 가장 중요한 일은 2001년 2월12일 인간 게놈 지도가 해석된 것, 미국의 안보전략을 근본적으로 바꾼 9.11테러, 2003년 이라크 침공이 아닐까 한다. 20세기 전체를 조망한다면 1914년 1차 대전과 1989년 베를린 장벽 붕괴, 1991년 소연방 붕괴를 들 수 있을 것이다. 1991년에는 월드와이드웹(WWW)가 세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경제적으로는 1945년 브레튼우즈 체제 출범, 1971년 닉슨의 금 불태환조치, 1985년 플라자 합의, 1995년 WTO체제 출범, 1997~98년 한국, 태국, 러시아 금융위기, 2008년 세계적 금융위기를 들 수 있을 것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2000년 5월 CBSi대표를 하면서 기업을 경영하다가, 2003년 8월부터 1년가량 upkorea 편집국장을 했다. 지금은 기업과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프리랜서로서 교육을 하고 있다. 지금 생각하면 upkorea는 중도, 실용적 스탠스와 정책 대안 중시 등 나름대로 방향을 잘 잡았는데, 결국 재정난과 운영 주체들의 생각 차를 해소하지 못하여, 지금은 별 의미 없는 매체로 되어 버린 것이 안타깝다. 내가 편집장으로 있던 시절, upkorea 운영위원에는 박세일 교수, 임현진 교수, 박은정 교수, 서경석 목사, 안병영 교수, 이삼열 교수, 강원일 변호사 등 청와대 수석, 국무위원 등을 역임한 대단한 분들이 많이 참여했는데, 결국 지식인 운동의 한계를 극복하지 못했다. 모여서 참여정부 걱정이랄까, 욕은 많이 했지만 의미 있는 것을 만든 것이 없다. 풍찬노숙 하면서 어떤 목표를 집요하게 추구한 경험을 가진 사람이 없어서인지 제대로 된 정론지나 민간 싱크탱크 하나 못 만들었다. 그래도 박세일 교수는 ‘한반도 선진화 재단’ 하나는 만들었다.

 

임진철/ 그러고 보니 좌담 참석자 중에 나 하나만 475세대고   나머지는 386세대다. 지금은 각각 575와 486으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봐야 하나? 나는 신학교를 나와서 30대에 구로동에서 이른바 민중교회를 설립하고 목사로 봉직했다. 당시 구로지역으로 수많은 활동가들이 몰려오던 시기였다. 그래서 60~70년대 기독교가 민중운동이나 노동운동에 대해서 했던 합법적 보호막 역할을 하려고 했다.

 

38세대 때는 조희연 교수, 이상연 국장과 함께 참여연대의 전신인 참여민주사회시민연대를 만들었다. 당시 조교수는 학계, 이국장은 노동, 나는 재야를 맡는 것으로 역할 분담을 했다. 당시 조교수가 1대 사무처장이었고, 내가 2대 사무처장을 맡아야 할 상황이었으나, 가족 부양 문제와 누적된 빚 문제 때문에 도저히 맡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박원순 변호사를 모셨는데, 돈 꽤 잘 벌던 변호사 일을 완전히 때려치우고 시민운동에 전념하는 것을 보고 놀랐다. 그래서 참여연대가 오늘 같은 위상을 가질 수 있었을 것이다. 

 

나는 참여연대 그만두고 보험 영업을 몇 년 해서 돈을 잘 벌었다. 7천만 원이 넘는 빚도 갚고, 조그만 집도 장만 했으니까! 그 이후에는 김진홍 목사(지금은 뉴라이트로, 이명박 대통령의 신앙적 대부로 유명하지만,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지금의 법륜 스님처럼 중도 진보적 포지션을 가지고, 사상이념을 초월하여 많은 사람의 존경과 신뢰를 받았다. 편집자 주)와 함께 나진선봉 지역의 20만평 영농조합법인 만드는 사업, 백두산 두레마을(생태문명촌) 건립 사업, 몽고와 연해주 두레마을 관련 사업, 흑룡강성 일대 오리농법 전수 사업, 동북아 한민족 네트워크 사업, 한국-중국벤처기업들의 교류 합작 사업 등을 했다. 그렇게 주로 중국, 몽고, 연해주, 북한 관련 사업을 하면서 10년을 보냈다. 지금은 두레 관련 일과 유한대 산학협력단 관련 일을 파트타임으로 하고, 지식PD씽크넷(1인 창조기업가와 독립 싱크탱크들의 네트워크) 활동으로 무게 중심을 옮겼다. 그런데 10년 동안 중국 등지를 돌아다니다 한국으로 관심을 돌려 시민사회 운동을 살펴보니 시민운동의 재생산 구조가 다 망가졌더라. 과거에 비해 기초체력이랄까 근력이 없어졌더라.

 

정창교/ 나는 1961년생 인데, 30대 청춘은 선배 잘못 만나서 허비했다(웃음) 새천년 민주당에서는 1급 기획조정국장을 했다. 그 계기는 새천년 민주당 전당대회 때 화상 대화를 시도한 것이었다. 새로운 시도였다. 당시 김대중 총재는 새로운 것을 좋아해서, 이런 획기적인 시도를 누가 주도했냐고 알아보고서는 무명의 나를 발탁하더라. 2000년 새천년민주당 전당대회 때는 전자투표를 처음 도입했다. 2001년 말에는 국민들이 민주당 대통령 후보를 뽑지 않으면 이길 수 없다는 판단이 들어 국민경선 아이디어를 사실상 최초로 기안했다. 그래서 엄청난 흥행과 노무현 당선이라는 대박을 터뜨렸다. 이렇게 한 때 잘 나갔는데 망했으니까 여기에 있다(웃음) 나는 2003년 민주당 분당에 원칙적으로 반대했고, 우여곡절을 겪다보니 민주당에 남게 됐고, 2004년에는 국회의원 선거에 출마해서 송영길과 붙어 참패하고(6.2% 득표) 선거 빚으로 인해 패가망신하다시피 했다.(웃음) 이후 김헌태와 한국사회여론연구소를 창업해서 2년 정도 했다. 2007년 때는 모바일 투표를 최초로 고안했다. 물론 2007년 선거판은 내가 주도한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BBK에 몰빵했고 다 같이 망했다.

 

저는 사실 2002년 대선 때 또 이회창 비리 폭로 등 네거티브 선거운동 전술을 짜고 운용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했다. 그런데 이기긴 했지만 한국 선거판을 혼탁하게 만드는데 일조한 것 같아 마음이 편치 않았다. 이런 반성을 계기로 매니페스토 운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강지원 변호사 등과 만나 한국매니페스토실천본부의 산파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이후 뉴민주당 플랜 입안하는데 역할을 좀 했다. 개인적으로 매우 획기적이고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뉴민주당 플랜을 제대로 읽고 평가하는 사람들은 없더라. 읽지도 않고 우경화 어쩌고 하는 사람들은 좀 봤지만.....

 

1990년대 후반 정당 판에 뛰어든 이후 386, 486 의원들 많이 만나봤는데, 참 공부 안하더라. 담론이나 국가 비전 고민 안하더라. 주로 이명박 까는데 집중할 뿐! 그리고 당내 기득권 문제에 관한 한 조금도 진보적이지도 전향적이지도 않았다. 2004년 출마하면서 보니 ‘사전선거운동 금지’조항이 있었다. 일본과 한국 선거법에만 있는, 말도 안 되는 조항인데, 철저히 현역의원의 기득권 때문에 생긴 법이다. 지금은 이 법은 개정되어 4개월 전부터 예비후보로 등록하여 가벼운 선거운동은 할 수 있다. 불공정, 불공평 얘기하는데 한국 사회에서 최악의 불공정과 불공평은 정치판에 있다. 이젠 586이 되겠지만, 486의원들, 정치인들 정말 공부해야 한다. 현장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

 

 김대호/ 지난 10년 또는 20년의 개인사를 살펴봤다. 개인사 속에 한국 사회의 주요한 역사적 사건과 모순, 부조리가 많이 녹아 있는 것 같다. 이제 좌담의 취지를 살려 우리 세대나 진보 진영의 관점에서 10년을 성찰하고 전망해 봤으면 한다.

 

 허욱/ 나는 지난 10년간 진보 진영에서 가장 의미가 있었던 정치 사건은 민노당의 정계진출을 뒷받침한 정치관계법 개정이 아닐까 한다. 이것은 2004년의 정개특위(위원장 박세일)가 선거법을 1인 2표제로 바꾸면서 생긴 일이다.

 

김형석/ 나는 무엇보다도 386들이 정치 전면에 등장한지 10년도 넘었는데, 왜 자기 색깔을 못 내는지, 왜 유력자 캠프에서 일이나 봐주는지 모르겠다.

 

김대호/ 과거에는 어땠을지 모르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제는 진보행동이라는 독자적 정치 블록도 만들고 담대한 진보라는 깃발도 들었으니까. 그런데 이 역시 오랫동안 숙성시킨 기치가 아니라 6.2 지방선거로 또래 단체장이 많이 생겨나고, 지난 10월 전당대회 때 이인영과 486의원들의 높은 지지율이 확인되니, 이젠 우리가 당권 도전해도 되겠네! 해서 정치 블록과 기치를 급조한 것이다.

 

생각해 보면 열린우리당 시절, 참정연의 기치를 들고 국회의원 20여명이 몰려다니던 그 좋던 시절 뭐했는지 모르겠다. 고작 기간당원제 투쟁이나 하고, 그 어떤 국가 비전이나 구조개혁 문제를 제시하고 숙성시키지 않았다. 2006~7년 열린우리당이 존망의 기로에 서고, 대선 판이 벌어진 시점에서도 그 어떤 독자 기치를 내걸지 않았다. 깃발은 난세에, 국민들과 진보가 어디로 갈지 헤맬 때 들어야 감동도 있고, 힘이 있는 법이다.

 

김형석/ 나는 민노당의 진출을 이뤄낸 2004년 정개특위는 선거법을 합리적으로 바꿀 수 있는 절호의 찬스였는데, 그만 놓쳐버렸다고 생각한다. 민노당의 진출을 이뤄낸 선거법 개정 은 그 절호의 찬스에 비해 작은 성과라고 생각한다. 사실 이것은 당시 헌법재판소의 위헌 결정으로 인해 개정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이었다. 나는 당시 권역별 비례대표제 등도 관철시킬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시민사회로부터의 반대가 심했다. 결국 2004년 그 절호의 찬스를 놓친 것은 힘의 한계 못지않게, 시민사회와 진보의 안목의 한계도 있었다고 생각한다.

 

김대호/ 물질적 재생산 구조인 하부 구조를 거의 손대지 않고, 상부 구조(문화, 상징)만 갖고 변죽을 올린 것은 참여정부를 포함한 범진보 전체의 안목의 한계가 아닌가 한다.

 

허욱/ 저들이 2007년 당시 주장한 것은 “잃어버린 10년론”이었다.  그런데 뭘 잃어버렸나? 뒤집으면 우리는 10년 동안 뭘 찾았나? 뭘 얻었나? 냉정하게 따져보면 우리가 얻은 것은 씁쓸한 국정 참여의 경험뿐이다. 물적 토대를 갖지 못했다. 저들은 10년 동안 잃어버린 것이 물적(이권 등) 토대였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하지만 우리는 명분 투쟁만 했다. 김대중 정부 때는 그래도 나라가 어떻게 돌아가고, 경제잉여가 어떻게 흐른다는 것 정도는 알았고, 그래서 약간의 흐름을 바꾸거나 조정은 했던 것 같다. 그러나 참여정부는 하부 구조를 잘 몰랐다. 당시 사회 전체가 민주화 됐다 하지만 그것은 정부만의 민주화였을 뿐이다. 경제, 사회, 문화, 종교, 검찰은 독과점이 심화 됐다. 민주적 통제력으로부터 벗어났다. 우리는 권력을 쥐고서도 뭘 얻어야 하는지 몰랐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형석/ 법․제도적 차원에서 본다면, 지난 10년 동안 구조적(법,제도적) 모순들이 거의 해소된 것이 없는 것 같다. 2004년 총선 직후 4대 개혁입법 개정에 실패하고 뭔가 의미 있는 법, 제도 개정도 기억나지 않는다. 대연정, 개헌, FTA등 뭔가 시도는 있었지만 성공한 것은 없다. 그리고 4대 개혁입법이나 개헌 등은 이젠 기억하는 사람도 별로 없는 것 같다.

 

국민들이 쉽게 까먹을 정도로 갈급하지 않은 이슈를 요란하게 제기한 정치세력이 문제인지, 그런 이슈를 집요하게 틀어쥐고 나가지 않는 시민사회가 문제인지??? 아마 둘 다 문제가 아닐까 한다.

 

 하여간 의미 있는 구조 개혁의 실패가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각자 도생으로 질주하게 하지 않았나 싶다. 그런 점에서 참여정부는 뭔가 전략적 오류가 있었던 것 같다. 룰라 같은 터닝 포인트가 있었어야 했다고 생각한다. 사실 룰라나 참여정부나 준비 없이 집권하기는 마찬가지였으니까 초기에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었고, 실제 혼란스러웠다. 룰라는 1기 중반쯤에 연정을 잘 한 것 같다. 정치적 거래를 잘한 것 같다. 그런데 노대통령은 이유야 어떻든 못했다. 참여정부는 중후반기로 가면서 대통령의 국정 운영노하우는 늘었으나 주변에서 이를 뒷받침하고 협력할 수 있는 그룹은 별로 없었다. 2012년 집권 하더라도 꼭 같은 일이 반복되면 집권이 무슨 의미가 있을까?

 

허욱/ 솔직히 나는 2012년 집권은 안 될 것 같다는 느낌이 강하다. 한국은 국민들이 왠지 기대고 싶은 심리가 있는 것 같다. 잔다르크가 아니라 박다르크에 대한 열망이 있는 것 같다. 박근혜에 대한 지지율이 꺾이지 않고 치고 올라가는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이를 뒤집으면 진보에 믿을 만한 남성적 리더십이랄까 가부장적이고 안정적이고 추진력도 갖춘 리더십이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손학규, 유시민, 정동영 등 어느 누구도 유약함만 있지, 외교 안보 경제 등을 안정적으로 힘 있게 밀어붙일 수 있는 지도자로 다가오지는 않는 것 같다.

 

김형석/ 나는 지난 10년간 왜 의미 있는 제도적 변화가 없었는가가 진보의 핵심적인 반성지점이라고 생각한다. 개헌만 하더라도 원포인트 개헌은 무산 되었다. 2007년 4월 중순, 노전대통령이 개헌 발의를 철회 할 때, 6당 대표가 18대 총선 직후 개헌을 추진한다고 합의했지만 이 약속은 완전히 실종됐다. 하지만 아무도 이것을 거론하지 않는다.

 

김대호/ 우리는 개헌 할 능력이 안되는 것 아닐까? 모든 일은 제도 내지 시스템의 문제, 문화의 문제, 리더십의 문제가 있기에 이를 구분해서 봐야 한다. 그런데 한국 지식사회조차도 리더십 너머에 있는 시스템의 문제를 제대로 보지 못하는데 개헌 되겠나? 모든 것을 사람 즉 리더십의 문제로 돌리는데 왜 제도를 바꾸나? 나는 이것이 안타깝다. 나는 개인적으로 개헌이 절실하다고 생각한다. 하다못해 원 포인트 개헌이라도!

 

김형석/ 국회의 행태는 해가 갈수록 점점 심각해지는 듯하다. 정치의 혼미나 무능으로 인해 한국의 잠재성장률이 몇 %포인트는 깎이는 것 같다.

 

 허욱/ 정치에 너무 기대하거나 과잉 의미부여하는 것 아닌가? 사학법 때 보니까 저들은 목숨 걸고 달려들었다. 제도, 규제, 인센티브와 관련하여 엄청난 이해관계자가 있고 이들은 손해를 볼 것 같으면 필사적으로 저항한다. 이것은 명분론으로 못 이긴다. 로스쿨 종사자와 변협의 대결처럼 땅따먹기 판을 만들고 거기에 명분이나 여론이 붙어야 하지 않나 하는 생각이 든다.

 

김형석/ 로비로 치면 미국 의회라고 로비가 없겠냐? 그런데 우리는 아무것도 결정하지 않고 뭉개는 경우 많다. 그래서 우수한 대의자(의원)를 국회 내로 많이 집어넣어야 한다. 그것이 가능하도록 선거법이나 정당법을 바꿔야 한다.

 

임진철/ 현재 구도에서는 좋은 정치개혁안이 나와도 채택 안될 텐데........

 

정창교/ 제일 큰 변수는 국민의 여론이다. 여론을 업으면 된다. 한국은 국회의원수를 500명 정도로 늘려야 한다. 그래야 선거법이 개정된다. 정략 때문만은 아니다. 인구 규모로 보면 이것이 정상이다. 그리고 전체적으로 국회의 권한이 강해져야 한다. 그런데 이런 것은 국회의원은 하고 싶어도 못한다. 시민사회가 해야 한다.

 

김형석/ 동감한다. 국회의원 수 늘려야 한다. 나는 2004년에 왜 이런 개혁을 안했는지 모르겠다. 지역구 250명, 비례대표 250명 이렇게 하면 좋을 것 같다. 지금 헌법이나 선거법은 1노3김이 만든 것인데, 이젠 아무도 없다. 아무런 영향력도 없다. 좋은 점은 없어지고 나쁜 점만 남았다.

 

허욱/ 아무리 그래도 국회에 권능은 안 늘려주고 숫자만 늘려서 되겠나?

 

정창교/ 당연히 국회권능은 강해져야 한다. 솔직히 나는 ‘백만민란’이 단일 정당을 부르짖기 보다는, 선거법 등 제도 개선을 요구하면 더 좋지 않을까 하는 아쉬움이 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힘이 세고, 따라서 패악도 큰 존재가 관료다. 그런데 이를 지휘하고 통제할 정치는 무능하다. DJ만 해도 한국 사회의 바닥 현실이나 속살을 좀 아는 편이었다. 하지만 노무현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지금 주미 대사로 잘 나가고 있는 한덕수 총리 봐라. 어쨌든 한국은 행정부 권능이 너무 크다. 입법권이 정부에 있는 나라는 한국 등 몇 나라 안 된다.

 

김대호/ 2010년대 거대한 도전 내지 변화 포인트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

 

김형석/ 개혁은 여유가 있을 때는 할 수 없다고 한다. 더 이상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 할 수 있다고 한다. 나는 10년 내 그런 상황 올 것 같아 두렵다. 대표적인 것이 재정적자(기금 등)다. 건보, 국민연금 등. 과거에는 20~30년 뒤 고갈 운운했으나, 2010년대는 고갈이 현실감 있게 다가올 것 같다. 이것은 지금의 10~20대의 부담으로 될 것이다. 이들이 유권자의 주력이 됐을 때 어떻게 행동할까? 아마 세대 간 충돌이 일어날 것이다. 독일은 젊은 사람들의 발의로 연금 제한 법도 만들어졌다고 한다. 재정이나 기금에 적신호가 들어왔을 때 그렇지 않아도 지금 40~50대에 의해 기회를 박탈당한 많은 자식세대가 높은 세금, 보험료 부담을 감내할까? 향후 10년 안에 세대 간 갈등이 극심해 질 것 같다.사실 지금의 분열과 갈등은 사실 싸울 일이 아닌데 싸우는 것이다. 지역 갈등, 이념 갈등이 그렇다. 연평도 포격사건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앞으로 우리 사회는 실질적인 이해관계를 가지고 분열하고 갈등 할 것 같다. 우리가 사용한 것이 아닌데 왜 우리가 내냐? 이런 식이다.

 

김대호/ 미래에 뻔히 보이는 거대한 도전 내지 위기는 그 외에도 많지 않나?

 

임진철: 국내와 국외로 나눠서 얘기하고 싶다. 10~20년 내다 보면 저출산 고령화가 심각해지리라는 것은 누구나 안다. 연기금 파탄은 명약관화 하다. 증세로 이 문제 해결할 수 있겠나? 안될 것이다. 나는 도시와 농촌의 상호순환시스템으로 대응할 필요성이 있지 않나 생각한다. 부탄이라는 나라는 1인당 GDP로는 세계 200개국 중 175위 정도지만, 행복지수는 1위다. 북한처럼 굶어죽지 않고, 농촌에 축제와 문화가 살아 있다.

 

내가 농촌과 도시를 오랫동안 오가면서 살아보니 나이든 세대와 어린 세대는 농촌에 사는 것이 여러 모로 좋다. 지금 농촌 사는 사람들은 두세 부류가 있다. 하나가 컨트리 노마드(4일 도시-3일 시골)다. 가장 멋있는 삶으로 각광받고 있다. 요즈음 돈 좀 있는 사람은 세컨 하우스가 있다. 요즈음은 타운하우스로 커뮤니티를 이룬다. 그런 점에서 1가구 2주택도, 농촌 주택이라면, 허용할 필요가 있지 않나 생각된다. 또 하나 어쩔 수 없이 농촌으로 온 사람도 있다.

 

내 친구 중견기업 사장하다가 일찍 퇴직했다. 14억 자산이 있었다. 강남 집 팔아서 강북으로 이사(6억 집)하고, 4억으로 애들 교육시키고, 다시 파주로 갔다. 조만간 전남 신안으로 간다고 한다. 내가 친구에게 그랬다. 이제 55세인데 앞으로 25년 어떻게 사나?

 

고령화 시대의 노인들의 로망은 70~80대까지 현역으로 뛰는 것이다. 그래서 고위직 하다가 택시 운전하는 사람도 꽤 있다. 농촌에서는 소규모 텃밭농사 가능하다. 별로 힘들지 않고 농업 노동 할 수 있다. 증세로 노령화 문제, 실업 문제를 완화하기에는 역부족이다. 녹색 일자리 굉장히 많다. 어린 세대 교육은 농촌이 오히려 괜찮다. 그런 점에서 도시와 농촌의 전면적인 상호순환 같은 비전을 잘 다듬을 필요가 있다. 대외적으로는 당연히 한반도 평화체제를 통해 유라시아대륙 경제권을 만드는 것이다.

 

허욱/ 고령화는 전 세계 공통인데 그것을 가장 중요한 문제로 꼽을 수 있나?

 

김대호/ 대공기업 생산현장의 초고령화는 한국에만 있는 현상이다. 아니 한국이 유독 심하다. 건강보험 수가체계(행위별 수가체계)도 비용 조장적이다. 그래서 영국은 여간해서 제왕절개 안하지만 우리는 웬만하면 한다. 영국 의사는 공무원이나 다름없지만 우리는 환자 적게 보고, 처방 적게 하고, 약 처방에 인색해서 병원이 파리 날리면 의사라도 신용불량자 된다.

 

이래저래 한국은 고령화에 따라 폭발적으로 늘어날 수밖에 없는 의료비용을 통제하기 곤란한 체계다. 건보 적자는 어느 나라나 공통인데 한국은 훨씬 악성이 될 수밖에 없다. 국가 단일 보험-수많은 민간의료 공급기관이 주축인 현 시스템으로도, (미국처럼 의료 민영화 안해도) 10년 뒤에는 GDP대비 의료비용이 미국에 육박할 가능성이 높다.

 

공무원 연금 적자도 어느 나라나 공통이겠지만 우리는 유독 심할 가능성이 크다. 우리 공무원 연금은 애초부터 낸 만큼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저임금에 대한 퇴직 후 보상이자, 장기 청렴 근속에 대한 보상이었다(그래서 파면 당하면 왕창 날아간다.) 그래서 공무원 연금은 좋았고, 공무원 보수 현실화에 따라 연금은 조정이 되었어야 했다. 그런데 논의만 무성할 뿐 안 되고 있다. 게다가 누가 뭐래도 공무원은 한국에서 가장 선망의 직업의 하나이다. 박봉 박봉 하지만 1인당 GDP대비 처우(고용, 임금, 연금)로 보면 꽤 높은 편이다. 그런데 이들의 연금 적자를 몇 조씩 국민 세금으로 메워줘야 한다면, 상놈들이 양반 부양하는 모습이 오버랩 되지 않겠나?

 

 한편 다른 나라는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이 철밥통과 플라스틱 밥통으로 나뉘는 것이 아니다. 둘 다 성질이 비슷한 밥통이다. 그런데 한국은 철밥통대 플라스틱 밥통이다. 이것도 한국 특유의 현상이다. 그래서 저출산 고령화, 건보적자, 연금 적자, 재정적자, 청년실업. 고학력 실업 등은 대부분의 선진국에도 있고, 한국에도 있는 현상이지만 한국은 훨씬 악성이 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김형석/ 한국은 1982년 네덜란드가 했던 바세나르 협약 같은 것이 필요하다. 대타협하든지, 외환위기 같은 외적 충격에 의해 재편(구조조정) 당하든지 그 수밖에 없다. 한국은 노동시간은 길고, 단위 임금은 작다. 노동시간 단축과 단위임금의 점진적 상승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를 견인하기 위해서는 최저임금을 끌어 올려야 한다. 정치, 사회의 합의에 의해 향후 10년간 최저임금을 꾸준히 끌어 올리고 노동시간은 줄이고 단위임금은 약간 올리는 것을 합의해야 한다. 이런 방식의 타협 외에 다른 길이 없을 것 같다.

 

네덜란드 <바세나르 협약(1982)>-편집자 주 1970년대 후반 인플레이션, 재정적자, 기업 경영 사정 악화, 고실업 등을 경제, 사회적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1982년 중도-우익 연립정권하에서 노사 대표가 대타협을 하였다. 합의당사자는 경영계 대표(경제인연합회, 기독교사용자연합회, 왕립기업연합회, 왕립기독교기업인연합회)와 노동계 대표(농민 ․ 원예사 카톨릭연합, 노동조합총연맹, 기독교전국노동조합, 중간 ․ 고위급 직원 노동조합) 였다. 합의내용은 “임금인상 억제, 근로시간 단축(40시간→38시간)을 통한 고용창출, 물가연동 임금인상제 폐지, 노사 중앙교섭 강화, 세금 감면 및 기업보조 확대, 기업의 사회보장세 완화, 공공지출 및 서비스고용 증대를 통한 재정적자 해소 등” 이는 가이드라인, 공동의견, 권고, 합의 등 다양한 형태의 78개의 합의사항으로 구성. 이를 통해 업종 ․ 사업장별로 720여개의 단체협약을 맺었다. 그 결과 시간제와 임시직 등 비정규직 근로자들이 정규직과 똑같은 사회보장과 고용보장 권리를 가질 수 있게 됐다. 또 정규직 근로자들도 근무시간을 줄이거나 늘리는 등 고용조건을 탄력적으로 변경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육아와 일자리 사이에서 고민하는 여성들은 일주일에 이틀 또는 사흘만 일하는 방안을 택할 수 있다. 급여는 줄어들지만 자녀들에게 그만큼 더 시간을 투자할 수 있어 경력과 육아 사이에서 절충점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거꾸로 경력을 쌓아 간부가 되길 원한다면 규정시간을 다 채우는, 즉 일을 더 많이 하는 쪽을 택하면 된다. EU 통계청인 유로스타트에 따르면 지난 2006년 네덜란드 노동시장에서 시간제 근로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전체의 46%로 유럽에서 가장 높다. 2위인 독일이 25%로 한참 뒤쳐져 있다. 임시직 근로자들의 비율도 20%에 육박하고 있다. 임시직과 시간직 비중이 높다보니 근로자들의 주당 노동시간도 일주일에 33시간으로 유럽에서 가장 짧다.

 

허욱/ 나는 바세나르 협약이 가능할지 의문이다. 종종 비교 대상이 되는 현대기아차는 세계적인 경쟁력도 있고, 국내시장에서 독과점 기업이다. 삼성도 세계적으로 드문 최강 기업이다. 그런데 대부분의 기업은 이와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다. 우리는 다수의 비정규직을 토대로 굴러가는 구조이다. 미국은 자동차 산업이 쇠퇴내지 몰락했지만 이를 금융과 벤처(지식)산업으로 메웠다. 우리는 미래 산업을 성장 발전시킬 인프라가 너무 취약하고, 산업 구조조정은 너무 어렵다. 기업이나 산업 생태계의 황폐화가 훨씬 중요한 문제라는 것이다.

 

김형석/ 예를 들어 1조원정도 규모의 시장이 있다면 가장 이상적인 것은 2~3천억 원 정도의 시장을 점유하는 3~4개 기업이 경쟁하는 것이다.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교육도 하고 R&D도 한다. 그런데 우리는 이런 시장이 100~200개 회사로 쪼개져있다. 기술과 창의적인 아이디어로 회사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오더를 따온 사장이 먼저 생겨야 회사가 만들어 진다. 기술이나 경영능력이 아니라, 특수한 연고에 의해 생긴 오더가 회사를 만든다. 이런 회사는 2차, 3차, 4차, 5차 아웃소싱을 하고, 고용은 3~4명이 고작이다. 문제는 잉여의 상당 부분이 오더를 흘리는 사람들에게 간다는 것이다. 이런 구조를 혁파 하려면 임금 착취 방식이 불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최저임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얘기다. 최저임금을 높여서 임금착취 산업을 곤란하게 만들어야 한다.

 

허욱/ 지적은 맞다. 문제는 로봇, it,바이오, 에너지 산업 관련 생태계다. 세계와 비교해 보면 우리 기업 생태계는 매우 불건전하다. 다수 산업이 과점화 되어 있다. 하청 구조가 너무나 중층화 되어 있고 잉여의 흐름도 건전치 못하다. 기술 개발 여력도 없고, 할 이유도 없는 경우가 많다. 중소기업청을 출입하면서 보니, 공공자금은 떼이지 않을 곳, 믿을 만한 기업에 지원해야 하기에 경쟁력 좀 있다 하면 중복지원을 많이 받았다. 중복 지원을 체크하는 시스템도 없더라. 그나마 연고로 나눠 먹었다.

 

뿐만 아니라 한국은 산업, 문화, 종교 등에도 비민주화 과점화가 심각하다. 양반과 상놈, 한마디로 반상이 확 갈리는 사회다. 부의 대물림, 부익부 빈익빈 사회다. 문제는 이것이 시장이 만든 것도, 복지 부족으로 생긴 것도 아니라는 것이다. 그 점에서 김대호의 정의론이나 공평론이 먹히지 않나 싶다. 나는 대중들에게 약간의 내용 설명을 한 후 복지냐 공평이냐를 놓고 묻는다면 당연히 후자가 먼저고 훨씬 중요하다고 할 것 같다.

 

김형석/ 나는 공공자금은 아무래도 회수를 전제로 해야 하기에 경쟁력 있는 중소기업에 편중될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런 기업은 또 국가의 정책 자금을 넣어야 하는지 의문을 제기할 수밖에 없다. 어찌됐든 가능성은 있으나, 담보가 없는 곳에 국가 정책자금이 가기는 어렵다고 생각한다. 한마디로 가치생산생태계를 건전화해서 가장 밑바닥에 있는 사람의 수준을 올리는 것은 정말로 바람직하긴 하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가장 확실하고 무식한 방법은 최저임금 인상을 통해서 밑바닥의 수준을 끌어올리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대기업의 잔업, 특근이 곤란하도록 만들고 파트타임 고용이 쉽도록 해야 할 것이다.

 

김대호/ 두 방향 다 필요한 것 아닌가? 허욱님의 가치생산 생태계의 건전화 정책과 김형석 님의 고임금 브레이크-노동시간 단축-고용확대-최저임금 인상 정책이!

 

정창교/ 최저임금인상과 복지국가는 수많은 사람이 다 얘기 하고 있다. 남이 다 하는 얘기를 우리까지 나서서 강조할 필요가 있나? 지금 필요한 것은 복지에 너무 매몰되면 곤란하다는 것, 복지 못지않게 정의와 공평이 정말로 중요한 문제라는 것 아닌가? 정의와 공평과 관련하여 대중이 크게 공감할 수 있는 몇 가지 이슈를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임진철/ 박근혜가 복지국가를 주장한다고 온 방송이 다 떠들어대고 있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일찍부터 제기 했지만 그것은 우리만 알고 있다. 강한 것이 옳은 것을, 강한 것이 먼저 난 것을 이긴다고 했던가? 어쨌든 박근혜 복지나 진보 복지나 그게 그거라고 느끼지 않을까? 그런 점에서 정의와 함께 가는 복지를 얘기해야 박근혜와 대립각을 세울 수 있지 않을까?

 

허욱/ 복지가 불공정을 못 잡는 다는 것을 강조해야 한다. 미디어법안에서 종편 4개 나눠줬다. 있는 놈끼리 나눠 먹는 것을 유지 온존하는 것이 이명박과 박근혜의 공통점이라는 것을 지적하고 이것을 깨는 것이 정의와 공평이라는 것, 그것이 복지보다 먼저라는 것을 강조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특히 고령자 전체에게 근로의 기회를 주는 비전, 나이 들어서 일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비전, 개천에서 용이 나오는 비전이 훨씬 파워가 있지 않을까?

 

정창교/ 클린턴은 "it's the economy, stupid" "바보야 문제는 경제야"로 이겼다. 마찬가지로 “바보야 문제는 공평이야” 같은 구호가 필요하다. 복지를 강조하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가짜 복지, 70% 복지 대 진짜 복지, 보편복지로 논쟁할 것임. 이쪽은 수준 낮은 논의 하지 말아야 한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순서가 틀렸다! 여론 조사 해보면 복지가 우선이냐 정의와 공평이 우선이냐? 물으면 당연히 후자가 많이 나올 것 같다.

 

김대호/ 과거 10년, 미래 10년을 얘기해 보자고 했는데, 역시 2012년의 무게에 눌려 또 2012년으로 스르르 미끄러져 내려오고 말았다. 어쩌겠는가? 그것이 우리의 현실인 것을! 끝으로 마무리 말씀 한 말씀 부탁한다.

 

정창교/ 향후 10년은 한마디로 예측 못할 변화가 많은  불확실성 시대다는 것이 정답 아니겠나?(웃음) 지난 10년 전을 생각해 보라. 오늘 같은 기술, 문화, 정세 예측이라도 했나? 어쨌든 도전에 응전을 잘 하면 흥하고, 못하면 망할 것이다. 2012년 대회전은 만만치 않을 것이다. 오로지 한국 특유의 역동성이 위안일 뿐이다. 2012년에는 정권을 잡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 정권과 함께, 향후 10년의 미래를 끌어갈 정치사회 주체를 준비하는 것도 중요하다. 담대한 진보? 복지가 시대정신? 장하준 류? 솔직히 담론과 비전 수준이 낮다.

 

 10년을 준비(담론과 비전)하는 결사체가 필요하다. 영국 노동당과 미국 민주당은 10년을 준비하는 주체가 있었고, 그들이 만든 정권이다. 그런 점에서 올 1년은 10년을 끌어나갈 비전과 주체를 준비하는 시기가 아닌가 한다. 그렇게 해서 대한민국의 오바마를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그 전에 올 한해 열심히 노력해서 10만 부 이상 팔리는 책도 만들고, 트위터에서 공평당도 하나 생기게 하고, 스타 마케팅도 하고, 개그 콘서트에서 공평 얘기가 나오게 하자.

 

 임진철/ 나는 중국에 오래 있어서 중국을 좀 아는데, 지금 중국은 중화학, 석유, 금융 등 주요 산업은 100% 국영기업이 하거나 국가와 민간이 각각 50%의 지분을 가진 회사를 만들어 운영한다. 사영기업은 경공업, 문화, 창의산업 분야다. 벤처기업에는 엄청난 자금을 밀어준다. 대학과 벤처 기업은 산학 협력 정도가 아니라 산학일체다. 벤처기업이 성과만 내면 강의하지 말고 그 쪽으로 전념하라고 편의를 봐 준다. 대학이 일종의 벤처 기업의 지주회사로 되었다. 좋은 기술이나 아이디어가 있으면 바로 창업할 수 있다. 그런데 한국은 재벌에게 가져가지 않으면 안 되게 되어 있다. 벤처기업은 시장에서 좀 클만하면 재벌이 다 주워 먹어 버린다. 그런 점에서 민간 부문(PRIVATE SECTOR), 공공 부문(PUBLIC SECTOR), 시민사회 섹트의 역할과 거버넌스 문제가 중국보다 훨씬 심각한 것 같다. 중국은 시민사회 역할은 별로 없지만, 중국 공산당과 국가에는 청렴하고 유능한 정책가들이 많다. 청년 시절부터 제대로 검증하고, 교육하고, 훈련시킨다.

 

이대로 가면 한국은 중국과 경쟁 할 수가 없다. 국가적, 민족적 위기가 온다. 이제는 가치와 비전을 다듬는 것뿐만 아니라, 이것을 정책과 제도 설계로 받아 내는 것도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런 가치, 비전, 정책을 널리 유통시켜야 한다. 이 과정에서 문화 예술인들이 붙어야 한다. social미디어를 통한 유통과 문화 예술인을 통한 유통이 특히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지식PD들의 네트워크로 이런 일에 도전해 볼까 한다.

 

허욱/ 나는 제도, 정책 설계의 중요성을 쓰레기 분리수거 문제 해결하는 것을 보면서 절감했다. 쓰레기 종량제 봉투 하나로 해결했잖은가? 나는 당시 안 될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쓰레기봉투가 엄청난 변화를 초래했다. 이렇게 작은 것을 바꿔서 엄청나게 큰 것을 바꿔 낼 수 있다. 정의와 공평의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들도 이런 케이스를 만들어야 한다. 문제가 맨홀 뚜껑 만하다고 해서 대책도 맨홀 뚜껑만할 필요가 없다.

 

김형석/ 최근에 백낙청 선생이 오마이뉴스에서 하신 말씀; “복지문제도 민주주의 문제와 결합되지 않으면 성공하기 어렵다”는 것, “단순히 세금을 더 걷어서 국가와 지자체가 더 많이 나눠주겠다는 방식으론 관료조직만 키우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선대인씨가 세입 세출 합리화를 통해서 각각 50조씩 만들 수 있다는 얘기는 일부 과장은 있겠지만, 증세 이전에 합리화해야 할 영역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 유권자들은 공공부문에 대한 불신 크다. 이것이 해소 안 된 상태에서 증세로 바로 넘어갈 수 있을까? 공공이 먼저 자기 개혁 모습 보여야 한다. 아니 개혁 하도록 해야 한다. 이런 것을 하지 않고 증세와 복지로 문제를 해결하려는 것은 수많은 문제를 복지라는 신문지로 대충 덮는 꼴 아닌가?

 

김대호/ 기회가 되면 10년 성찰, 10년 전망이라는 주제로 좀 영역을 좁혀서, 좀 더 전문성을 보강해서 심도 깊은 얘기를 나눴으면 한다. 장시간 좋은 말씀 주셔서 감사하다.  <정리 : 김대호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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