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여년 동안 블로거, 홈피, 사내 게시판 등에 쓴 글이 수백개는 족히 될 것 같은데, 이번 글만큼 댓글에 많은 욕이 달린 적은 없었다. 욕에 상처 받는 여린 심성이었다면 아예 공개적으로 글쓰기를 포기했을 것이다.
유독 이 글에 대해 욕질이 심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발산하는 핵심 메시지가 "대우는 가치있는 브랜드인데 죽여버려서 유감이다"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그런데 내 핵심 메시지는 "(1998년~2003년) 우리가 대우자동차 위기를 잘 수습했다면, 한마디로 구조조정을 잘했다면 자동차 회사의 국적을 유지하든지, 적어도 브랜드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다"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메시지와 독자들이 받아들인 메시지가 잘 구분이 안될 것 같다. 1998~2003년에 대우자동차 처리 과정을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지켜본 이해관계자라면 쉽게 이해되겠지만 대부분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얘기는 실패한 기업경영과 국가경영(김영삼)의 유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또 한번 큰 실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대우자동차 이해관계자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욕질의 배경에는 브랜드에 대한 이해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대우 브랜드의 살처분이 통탄할 일이라는 것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GM의 정통 브랜드인 '쉐보레'로 바뀐다는 데 있다. 한국 회사 내지 한국 자동차산업 네트워크(R&D, 협력업체)가 주도적으로 생산한 차임을 명확히 하는 다른 브랜드라면 전혀 통탄할 일이 아니다. 브랜드 가치는 앞세대가 흘린 땀의 댓가를 후대가 받는 방식의 하나이다. 대우 브랜드 상실로 인해 한국 자동차 산업 네트워크가 흘린 땀 후대가 받을 그릇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이제 제품만 판다. 그 이익은 제무제표로 환산된다. 그 뿐이다.
브랜드로 쌓이는 이익은 쉐보레 계좌에 차곡차곡 쌓인다.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댓글(페북)은 이거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 사랑을 안답니다 안타깝지만 내려놓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그러나 잊지말아야겠죠!"
맞다. 나는 지난 1999년 중반부터 2001년 3월까지 근 2년에 걸친 연구 모색 작업을 통해 “이 책 한권만 한국 사회에 던지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으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책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소한 곳에 목숨을 거는 심정이 어이가 없지만, 그 땐 진심이었다.
그 책은 손이 아니라 발로 쓴 내 처녀작으로, 내 인생 행로를 바꾸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그 책은 대우자동차와 한국 자동차 산업에 밀어닥친 미증유의 위기 타개책이자 중장기 발전 방안을 꽤 괜찮게 정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우자동차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극심한 혼돈과 갈등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갈등은 지식의 문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의 일개 과장이 쓴 책이 무게감을 가질 리가 만무했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과 위기감을 에너지로 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달려왔다. 그 뒤에 쓴 책 5~6권은 그 통찰과 위기감을 구체화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 전에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사회디자이너(정치 컨텐츠 생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난 10년의 내 삶은 그 전 10년(1990년대) 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삶이다.
사실 1990년대 중후반쯤 내가 그린 5~10년쯤 후의 미래(지금 시기)는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대우자동차 해외 법인에 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우자동차에 뼈를 묻으려고 했다. (그 땐 그리 선망의 직장도 아니었다. 지금은 엄청 선망의 직장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던데......) 그런데 1999년에 터진 대우사태로 인해, 아니 그 원인을 밝히고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인생 행로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돌아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정말로 있어야 할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유독 이 글에 대해 욕질이 심한 이유를 곰곰히 생각해 보았다. 그럴만도 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이 발산하는 핵심 메시지가 "대우는 가치있는 브랜드인데 죽여버려서 유감이다"로 읽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기때문이다. 그런데 내 핵심 메시지는 "(1998년~2003년) 우리가 대우자동차 위기를 잘 수습했다면, 한마디로 구조조정을 잘했다면 자동차 회사의 국적을 유지하든지, 적어도 브랜드 정도는 유지할 수 있었는데 너무나 아쉽다"이다. 그런데 아무래도 이 메시지와 독자들이 받아들인 메시지가 잘 구분이 안될 것 같다. 1998~2003년에 대우자동차 처리 과정을 분노와 안타까움으로 지켜본 이해관계자라면 쉽게 이해되겠지만 대부분은 그럴 것 같지가 않다.
다시 한번 강조하지만 내 얘기는 실패한 기업경영과 국가경영(김영삼)의 유산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또 한번 큰 실책을 저질렀다는 것이다. 물론 가장 큰 책임은 대우자동차 이해관계자에 있다.
그리고 또 하나 욕질의 배경에는 브랜드에 대한 이해의 문제도 있는 것 같다.
대우 브랜드의 살처분이 통탄할 일이라는 것은 100년 가까운 역사를 가진 GM의 정통 브랜드인 '쉐보레'로 바뀐다는 데 있다. 한국 회사 내지 한국 자동차산업 네트워크(R&D, 협력업체)가 주도적으로 생산한 차임을 명확히 하는 다른 브랜드라면 전혀 통탄할 일이 아니다. 브랜드 가치는 앞세대가 흘린 땀의 댓가를 후대가 받는 방식의 하나이다. 대우 브랜드 상실로 인해 한국 자동차 산업 네트워크가 흘린 땀 후대가 받을 그릇 자체가 없어져 버렸다. 우리는 이제 제품만 판다. 그 이익은 제무제표로 환산된다. 그 뿐이다.
브랜드로 쌓이는 이익은 쉐보레 계좌에 차곡차곡 쌓인다.
가장 가슴에 와 닿는 댓글(페북)은 이거다.
"사랑을 해본 사람이 사랑을 안답니다 안타깝지만 내려놓는 용기도 필요하다고 생각되네요 그러나 잊지말아야겠죠!"
맞다. 나는 지난 1999년 중반부터 2001년 3월까지 근 2년에 걸친 연구 모색 작업을 통해 “이 책 한권만 한국 사회에 던지면 내일 죽어도 여한이 없겠다”는 심정으로 <대우자동차 하나 못 살리는 나라>라는 책을 썼다. 지금 생각하면 그 사소한 곳에 목숨을 거는 심정이 어이가 없지만, 그 땐 진심이었다.
그 책은 손이 아니라 발로 쓴 내 처녀작으로, 내 인생 행로를 바꾸는데 적지 않은 역할을 했다. 지금 다시 읽어도 그 책은 대우자동차와 한국 자동차 산업에 밀어닥친 미증유의 위기 타개책이자 중장기 발전 방안을 꽤 괜찮게 정리했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대우자동차를 둘러싼 한국 사회의 극심한 혼돈과 갈등을 정리하는데 많은 도움이 되리라 생각했다. 물론 착각이었다. 갈등은 지식의 문제만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자동차 회사의 일개 과장이 쓴 책이 무게감을 가질 리가 만무했다.
어쨌든 나는 이 책을 쓰는 과정에서 얻은 통찰과 위기감을 에너지로 하여 지난 10여 년 동안 달려왔다. 그 뒤에 쓴 책 5~6권은 그 통찰과 위기감을 구체화 한 것이었다. 그 과정에서 나는 그 전에는 꿈에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사회디자이너(정치 컨텐츠 생산자)의 길을 걷게 되었다. 지난 10년의 내 삶은 그 전 10년(1990년대) 동안 전혀 생각하지 못한 삶이다.
사실 1990년대 중후반쯤 내가 그린 5~10년쯤 후의 미래(지금 시기)는 (폴란드? 우크라이나? 루마니아? 우즈베키스탄?) 어디가 될지 모르지만 대우자동차 해외 법인에 나가 있지 않을까 생각했다. 대우자동차에 뼈를 묻으려고 했다. (그 땐 그리 선망의 직장도 아니었다. 지금은 엄청 선망의 직장으로 되어 있는 모양이던데......) 그런데 1999년에 터진 대우사태로 인해, 아니 그 원인을 밝히고 대안을 도출하기 위해 몸부림을 치는 과정에서 인생 행로가 완전히 바뀌어 버렸다. 하지만 돌아보면 볼수록 생각하면 할수록 내가 정말로 있어야 할 곳에 왔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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