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노동조합이 어디 있나? 종업원 조합은 있어도...... 서울.코리아 디자인

폴리뉴스에 인터뷰 기사가 떴네요. 1월 18일 한 인터뷰 인데. 참 녹취를 잘 풀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대개 녹취를 풀고 나서 당사자에게 보내 확인을 하는데, 이 기사를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때문에 발음 잘못과 청취 잘못으로 인해 몇 단어 틀린 것이 있던데(수정 요청 했습니다) 전반적으로 제 워딩을 거의 정확하게 풀었더군요.
놀랐습니다. http://www.polinews.co.kr/viewnews.html?PageKey=01&num=1217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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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리인터뷰]김대호, “선별적 복지는 필수, 보편적 복지는 선택”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 져버린 ‘노동조합’은 ‘종업원조합’”
[폴리뉴스 정찬 기자 ]기사입력시간 : 2011-02-07 11:20:03
김대호 한국사회디자인연구소장은 복지를 통한 분배는 2차 분배라고 말하고 이보다 선차적인 시장을 통한 분배가 공평하고 정의롭게 하는 것이 중요함을 역설했다<사진 이은재 기자>
(중략)
국가가 작동하지 않아 생기는 ‘양극화’는 한국에만 있어


▶ 지난해 6.1%의 경제성장률에도 국민들의 삶은 더 팍팍하다. 경제지표가 좋아졌다 해도 생활은 더 어려운 현실이 10년 넘게 지속되고 있다. 이른바 ‘양극화’ 문제가 원인인데?

- 양극화는 격차의 크기가 점점 커지고 고착된다는 의미이다. 여기서 한 가지 놓치는 격차의 성격이 있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라 하더라도 양극화현상을 초래한다. 자유롭지도 공정하지도 않은 시장에 의한 양극화가 있다.

전자의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에 의한 양극화라면, 후자는 국가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양극화다. 앞은 당연하고 뒤는 부당한가? 그렇지 않다. 독점이라는 것은 출발선이 같고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이라 하더라도 발생한다. 그래서 ‘반독점금지법’이 있다.

그러나 양극화 방지법은 없지만 국민정서법에는 있다. 독점뿐만 아니라 양극화는 지속가능한 성장과 발전을 가로막는다. 자유롭고 공정한 시장에 의한 결과라 하더라도 양극화는 해소를 해야 한다. 이러한 양극화는 어느 나라든지 다 있다. 유럽도 있고 미국, 일본도 있다.

이 부분과 관련해 많은 경제학자들이 처방전을 제시하고 있다. 이른바 여러 가지 방법으로 복지범퍼를 가동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양극화는 전 세계에서 늘 있어왔고 이를 방지하기 위해 독과점을 해소하고 복지제도를 확충해 왔다.

저는 국가가 작동하지 않아서 생기는 양극화를 주목한다. 이는 한국에만 유별난 양극화이다. 대표적으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고용임금 격차가 이렇게 큰 나라가 없다. 공공부문은 조선시대로 치면 양반이다. 상대적 지위가 이렇게 높은 나라는 OECD국가 중에 없다.

전임교수와 시간강사의 임금격차에서도 이런 나라는 없다. 노동의 양과 질은 비슷하지만 어디 소속이냐에 따라서 처우와 격차가 크게 나는 나라는 한국이 유별나다. 바로 이 문제를 얘기하는 것이다. 여기서 저는 ‘불공평’이라고 이야기한다.

시장이 제대로 작동해서 생긴 양극화는 주로 복지로 해법을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시장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아 생긴 양극화는 국가의 합리적인 규제감독이 필요하다. 정리하자면 양극화에 두 가지 성격이 있고 각각에 따라 성격이 다르다는 것인데 특히 한국의 유별난 양극화에 주목해야 한다는 것이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원칙 져버린 ‘노동조합’은 ‘종업원조합’

▶ 공공부문, 대기업 노조 관련해 개혁을 얘기하면 미국의 신자유주의 경제정책인 공공부문 축소 논리와 비슷하게 받아들이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는데?

- 이는 유럽 노동계급적 전통이다. 스웨덴의 사민당과 노총이 했던 것과 흡사하다. 과거에는 스웨덴도 한국만큼은 아니지만 격차가 컸다. 그러나 지금 스웨덴에서 종업원수가 수만명인 세계적인 대기업의 노동자와 맨 끝 하청을 맡는 조그마한 협력업체 노동자들간 노동의 양과 질이 비슷하면 처우도 비슷하다.

그것을 ‘동일노동 동일임금’이라는 기치 하에 장기간에 걸쳐 조정해 비슷하게 만들었다. 마르크스주의의 임금관이 노동력의 가격은 노동력의 재생산비였다. 그 재생산비라는 콘셉트를 가지고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을 세운 것이다. 이것이 유럽 노동운동의 전통이다.

한국은 이 개념이 없다. 노동자 임금은 기업 수익성이 좋고 노조 교섭력이 있으면 얼마든지 임금을 올릴 수 있다는 인식이다. 이는 주주적 성격이다. ‘노동자+주주’를 종업원이라고 하는데 한국은 ‘노동조합’이 아니라 ‘종업원조합’이라고 해야 맞다. 민주노총, 한국노총이 아니라 ‘민주종총’, ‘한국종총’이다. 이 사람들의 사고방식은 종업원 의식에 기반하고 있다. (중략)

덧글

  • 지나가다 2011/02/10 10:14 # 삭제 답글

    선별적 복지는 필수, 보편적 복지는 선택이라는 말씀에 큰 틀에서 동의하지만, 뭔가 미진한 부분이 느껴져서 댓글답니다. 저는 아무런 복지도 없는것보다는 선별적 복지가 낫고, 능력이 되는 부분에서는 보편적 복지로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선별적으로 시행하든 보편적으로 시행하든 어떤 경우에도 서민층의 복지는 확보가 되는 것이죠. 그럼 왜 선별과 보편이 충돌하고 논쟁이 되느냐하면 결국 상류층과 중간층의 복지재정 마련을 위한 세금분담율때문에 벌어지는 현상이죠. 선별적 복지는 필연적으로 상류층과 중간층이 서민층 복지 재정을 분담하는 구조를 띠게 됩니다. 왜냐면 중간층은 세금은 내지만 혜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죠. 즉 중간층이 손해를 보는 구조입니다. 반면 보편적 복지는 보다 더 상류층에 재정 마련의 부담을 지우는 구조를 가지게 됩니다. 왜냐면 중간층이 내는 세금은 대부분 본인들이 받는 혜택으로 상쇄되기 때문입니다. 이런 계층간의 세금분담율 구조가 특히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이 무상급식입니다. 서민층 자녀는 어떤 방식이든지 무상으로 급식을 받을 수 있는 반면에 중간층 자녀들은 보편적 무상급식이 훨씬 유리한거죠. 즉 보편적 복지일때 상류층의 소득이 보다 더 많이 서민층에게 이동할 수 있습니다.

    물론 똑같은 재원이라면 보편적 복지가 당연히 얇게 깔리게 됩니다. 그래서 최초 선별적 복지로 서민층 복지를 마련한 다음, 능력이 되면 재정을 늘려 보편적으로 시행하는 순서를 밟아야 한다고 봅니다. 즉 서민층 복지는 필수이고, 능력에 따라서 선별과 보편을 선택해야 한다는 생각입니다. 어떤 것이 더 우월하다 효율적이다라고 따질 부분이 아니라는 거죠. 능력이 안되는데 보편복지를 하자는 주장이 어리석은 것처럼, 능력이 되는 부분인데도 선별로 남아야한다고 주장하는것도 그리 현명해 보이지 않습니다.
  • 지나가다 2011/02/10 10:27 # 삭제 답글

    결국 지금의 상황은 복지의 개념을 약자에 대한 시혜와 온정으로 파악하느냐 아니면 세금을 내는 국민이 국가에 요구할 수 있는 권리로 보는가라는 인식의 전환점에 놓여있다고 봅니다. 저는 당연히 후자로 가야한다고 봅니다. 시혜와 온정은 지속불가능하기 때문입니다. 시혜와 온정은 개인의 기부로 구현되고, 권리는 공평한 제도와 시스템으로 구현되는거겠죠. 또한 당연히 권리는 보편적 속성을 띠게 됩니다. 주인장님의 복지에 대한 인식이 시혜와 온정주의에 머물러 있는 거 같아서 눈팅을 접고 글 남겨봅니다.
  • 김대호 2011/02/10 21:42 # 답글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는 대립개념이 아닙니다. 결합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왜 선별과 보편이 대립하는 것처럼 되어 버렸느냐 하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측에서 보편적 복지를 대표 간판 상품으로 팔면서 선별적 복지는 시혜,온정적 복지고, 보수적 복지라고 낙인을 찍어 왔기 때문입니다. 물론 한나라당측에서는 거꾸로 보편적 복지는 낭비성 부자 복지라고 맞받았죠. 둘다 잘못 대응했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이런 대립구도를 거부합니다. 실제 현장에서는 (단적으로 보육서비스 등에서)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가 결합되어 있습니다. 맞춤형은 세대에만 적용되는 개념이 아니라, 계층에도 적용되는 개념입니다. 선별 복지라는 개념보다 맞춤형 복지라는 개념이 훨씬 잘 쓴 개념입니다. 박근혜가 안상수 보다 한수 위죠.

    저는 한국은 선별적 복지를 후진적인 어떤 것처럼 여기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이것을 잘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원래 1차분배구조에서의 (소득) 격차가 스웨덴처럼 적으면 더 많은 복지 서비스를 보편적으로 제공할 수 있습니다. 말씀대로 중간층은 낸만큼 받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한국은 소득/자산 격차가 엄청나게 큽니다. 무엇보다도 조세 저변은 작은데 반해 복지수요층이 엄청나게 큽니다. 저는 보편적 복지를 부르짖는 분들이 비정규직, 영세자영업자, 비경제활동인구에 숨어있는 실업자 등의 규모를 제대로 못보고 있다고 알고 있습니다. 이 구조에서는 보편적 복지를 많은 영역에 적용하면 상류층은 10을 내고 1을 받고, 중산층은 3을 내고 1을 받고, 하층은 0.5를 내고 1을 받습니다. 이런 구조에서는 중산층조차 스웨덴과 달리 보편적 복지에 감사하기 보다는 높은 세금에 분통을 터뜨릴 가능성이 높습니다.
  • 지나가다 2011/02/11 18:33 # 삭제 답글

    뻘스러운 댓글에 주인장님께서 친히 답글을 주시니 감사합니다.

    사실 맞춤형 복지가 제대로만 구사된다면 최선일 수 있겠죠. 하지만 현재 한국에서 맞춤형 복지의 전형이라 할 수 있는 실업급여 같은 경우만 보아도 굉장한 모럴 헤저드가 발생하고 있고, 고비용은 물론 근로 의욕을 감소시키는 복지병의 징후까지 보이고 있는것만 봐도 저는 맞춤형 복지 개념에 대해 회의적인 입장입니다. 기초단체마다 있는 고용안정센터의 유지비용과 부정급여 색출과 처벌비용, 위장 실업, 의도적인 취업 지연 등의 문제를 봐도 그런거죠. 저는 동일한 현상이 박근혜식 맞춤형 복지에서도 발생할 거라고 봅니다. 맞춤형 혹은 선별적 복지의 가장 큰 단점이죠. 즉 고비용과 도덕적 해이와 복지병입니다. 거기다 소득의 역전 혹은 차상위계층 문제까지 더하면 문제는 더 심각해지겠죠. 가령 미소금융에서 신용7등급은 어디에서도 대출을 못받는 반면 8등급 이하는 대출받을 수 있기 때문에 일부러 자기 신용을 훼손해서 8등급으로 떨어지는 문제 같은거죠)

    말씀하셨듯이, 우리나라는 소득격차가 굉장히 큰 나라입니다. 그러나 제가 한국에서도 보편적 복지가 충분히 가능하다고 믿는 이유는 이미 한국은 건강보험이라는 굉장히 큰 보편적 복지제도를 훌륭하게 운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건강보험이 소득에 따라 누진적으로 보험료를 납부하고, 혜택은 동일하게 적용받지 않습니까? 그럼에도 우리나라 중산층들이 건강보험 제도에 분통을 떠트리는 것 같지는 않습니다. 만약 주인장님의 말씀대로 상류층은 10을 내고 1을 받고, 중산층은 3을 내고 1을 받고, 하층은 0.5를 내고 1을 받는것이 맞다면 건강보험제도는 진작에 파탄이 났을거라고 봅니다. 소득격차를 파악하는 부분에서 선별쪽과 보편쪽 쌍방이 서로 과장된 근거를 제시하고 있다는 느낌이네요. (물론 정부가 무소득자나 탈북자 유공자들에게 건강보험 예산을 별도로 지원하고 있지만 건강보험제도를 포편적 복지의 모델로 삼는데 큰 지장을 줄 것 같지는 아닌듯 합니다.)

    저는 그래서 보편적 복지제도가 외형은 세금으로 운영되는 것이지만, 건강보험과 유사한 방식으로, 생활보장보험의 개념으로 충분히 운영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드네요. 전면적인 확대는 당근 어렵겠지만 차근 차근 하나씩 늘려가면서, 더불어 소득격차를 선진국형으로 바꿔가는 정치경제적 노력도 병행한다면 한국이 보편적 복지국가로 거듭나는 것이 마냥 불가능한것 만은 아닐거라고 생각합니다.
  • 1111 2011/02/13 17:55 # 삭제

    저... 제가 알기로는 건강보험은 매년 1조원씩 적자가 누적되고 있습니다만;;;;;;;이걸 근거로 보편적 복지가 훌륭하게 유지될수있다고 주장하는것은 레알 설득력이 없는거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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