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 플랜인가? 보수집권플랜인가? 책 비평

<진보집권 플랜>과 ‘조국 현상’을 연찬한다(1)
-진보집권 플랜인가? 보수집권플랜인가?-

이 글은 [진보집권 플랜]에 대한 서평이자, ‘조국 현상’에 대한 시평이다. 총평을 먼저 말하면 이는 조국, 오연호와 진보(좌파)와 대한민국의 총체적 혼미와 부박(浮薄)의 기념비다. 진보집권 플랜은 이 책 속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이 책의 수많은 오류와 한계를 가려내는 비판적 책 읽기 속에 있다.

1. 지난 2월 18일 이후 일주일 넘게 프레시안 메인 화면 왼쪽에는
  
<조국에게 묻다 "대통령 꿈꾸고 있습니까?">라는 섹시한 제목의 인터뷰 기사가 걸려 있었다. 그것도 잘 보이게 박스에 넣어져. 이 기사의 소제목은 “[인터뷰] 조국, '조국 현상'을 말하다…"난 진보 부흥의 전도사"이다. 기사의 첫 문장은 ”이 정도라면 '조국 현상'이다“로 시작한다.

조선일보 박정훈 에디터는 한 칼럼(2월 19일자)에서 ‘진보집권플랜’을 “좌파가 차기 대선의 '바이블'로 채택했다”고 한다. 물론 정치콘텐츠로 밥을 먹고 사는 나로서는 금시초문이지만...... 어쨌든 조국 교수의 부동산 관련 입장을 반박하는 글; "조국 교수님! 그건 아닙니다"를 쓴 이태경 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조차도 “조 교수가 한국사회 각 부면의 문제점과 해법에 대해 깊이 있는 통찰을 하고” 있고, “조 교수의 식견과 혜안은 만만치 않은 것이어서 사회통념(?)상 알려진 법학교수의 그것을 훨씬 넘어선다”고 칭송하고 있다. 한 케이블 TV에서는 조국 교수를 “진보의 아이콘”으로 소개하며, 박경철-조국 교수 대담 프로그램을 방영하였다.

2. 나는 조국 교수와 일면식도 없지만,
 <진보집권 플랜>과는 인연이 좀 있다.
나는 최근 출간된 <창작과 비평> 2011년 봄호(통권 151호)에 <진보집권 플랜>과 <진보와 보수 미래를 논하다>(이창곤 엮음)를 한데 묶은 서평(촌평)을 썼다. 원고 청탁을 받은 것이 12월 말이고, 원고 마감이 1월 20일이어서 서평은 1월 중순에 썼다. 다른 잡지도 아닌 창비에 쓰는 서평이어서 -종이 책으로 찍고, 디지털 영인본으로 남기기에 100년 뒤에도 읽힐 책이라고 생각한다- 두 책 다 두어 번씩 줄치며 정독했다. 최소한 인터넷에 쓰는 글 보다 몇 배는 더 정성을 쏟았다. 그런데 200자 원고지 20매도 안 되는 지면에 두 책에 대한 서평을 압축하다 보니, 지면 제약 때문에 미처 쓰지 못한 소감이 많다. 그래서 지면 제약이 없는 인터넷을 통해서 긴 서평을 쓰고 싶었다. 두 책은 사실상 내 전공(?) 분야를 많이 다루었고, 정독하고 숙고한 만큼 할 말이 오죽 많겠는가? 무엇보다도 <진보집권 플랜>과 ‘조국 현상’은 진보가 집권 가능한 정치세력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짚고 넘어가야 할 오류나 편향들을 너무 많이 갖고 있으니!

3. 사실 <진보집권 플랜>은 창비 원고 청탁 때문에 읽은 책이 아니다. 작년 11월 초에 이미 일독하였다. 내가 <진보집권 플랜> 출간 소식을 들은 것은 공식 출간 발표 하루 전인 작년 10월 28일이었다. 그 날 나는 ‘오마이뉴스 10만인 클럽’에서 특강-공정한 사회와 그 적들-을 하였는데, 마침 나와 오연호대표의 집 방향이 같았기에, 상암동 오마이뉴스 사옥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반포에 내려 단 둘이서 생맥주를 한잔 하게 됐다. 예정에 없던 2시간의 술자리를 가지게 된 것이다. 거기서 오대표가 출간 소식을 전했다. 나는 제목과 저자가 어울리지 않아 뜨악하였다. 원래 뿌리, 줄기, 토양 없이 피는 예쁜 꽃이 없는 법인데, 내가 알고 있는 조국 교수의 경력, 활동, 네트워크, 평소 글과 책에서 느껴지는 내공과 <진보집권 플랜>은 좀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곧 바로 대중의 열망을 잘 알고, 책 마케팅 감각도 빼어난 오연호가 만든 책 제목의 걸작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4. 내가 잘 모르는 조국 교수의 독특한 매력이 있는 것 같아서 오대표에게 물었다.

“내가 과문해서인지 몰라도 조교수는 박명림 교수처럼 국내외 학계가 인정하는 논문과 저술을 쓴 것 같지도 않고, 박세일처럼 여러 분야의 전문가 집단을 재단 등으로 조직하여 국가경영 전략을 연구해 온 것 같지도 않고, 오연호 당신과 박원순, 문국현, 안철수, 정주영처럼 모두가 인정하는 창의적 업적도 없고, 제정구, 노무현처럼 온 인생이 증거하는 가슴 뭉클한 어떤 가치도 없고, 그렇다고 해서 앤소니 기든스처럼 새로운 세계관, 가치관, 정책노선을 창시한 이데올로그도 아닌데 뭐가 그렇게 매력이냐?”고 물었다.

오연호의 얘긴 즉, 한국에서 남부러울 것 없는 서울대 교수로서 진보좌파적 스탠스를 취하는 것이 쉽지 않다나. 그리고 오마이뉴스 특강시 청중들의 신청도 폭발적이었고, 실제 강연에서 호응도도 매우 높았다고 하였다. 조국 교수의 특강은 100명 정원에 400명 신청하였고, 실제도 강의장을 꽉 채웠다고 한다. 그런데 내 특강은 100여명이 신청은 했지만, 실제 순수 참석자는 20~30명에 불과 하였다. 물론 농반진반 가까이서 보면 매력적으로 생겼다는 얘기도 빼놓지 않았다. 그 며칠 후 <진보집권 플랜>의 책 후기를 읽어 보니 오연호는 인터뷰를 하면서 조국 교수의 ‘준비된 시각, 준비된 컨텐츠’에 감동하고 있었고, 이것이 조국 대망론의 주요 기둥 중의 하나라는 것을 알았다. 어쨌든 그 날은 그런 얘기를 하지 않았기에, 나는 오연호의 답변을 듣는 순간 솔직히 좀 씁쓸했다. 오연호의 눈높이가 낮아도 너무 낮아졌다는 느낌을 받았다. 물론 나는 오연호가 조교수의 준비된 컨텐츠를 얘기했다 하더라도, 선거를 통해 심판 받지도 않았고, 정무직 경험도 없고, 공적 가치를 추구하는 시민단체를 주도적으로 만들어 본 경험도, 운영해 본 경험도 없이, 단지 나처럼 썰(가설)만 풀어 온 사람에게 너무 큰 기대를 한다고 비판했을 것이다.

5. 이것은 대중 정치시대의 동력학을 체화하지 못한 나의 편향일 수도 있겠지만, 어쨌든 나는 각고의 노력으로, 온 인생을 바쳐서 사회적으로 절실히 필요로 하는 어떤 공적 가치를 생산한 경력을 공공 리더십의 기본으로 생각해 왔다. 또한 선거나 청문회를 통해서 대중과 적대적 언론에게 심사를 받고, 의정 활동이나 지자체 경영이나 정무직 관료 활동 등을 통해서 리더십을 검증 받는 것도 기본으로 생각해 왔다. 또한 거대하고 복잡한 대한민국 경영을 위해서는 이젠 단기 필마의 대중 스타로는 어림없고, (복지국가 소사이어티나 한반도선진화 재단처럼) 전문가(학자, 기업인, 관료), 활동가, 정치인 수백 명이 참여하여 집단지성을 발전시켜 나가는 이념정책 공동체 활동도 기본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왔다. 특히 나처럼 말(이념,정책)만 한 사람이나 정주영, 문국현처럼 공직 경험이 전무한 사람은 선거를 통해 심판 받거나, 정무직 관료로 검증 받거나, 공적 가치를 실현하는 시민사회 단체 활동을 통해 단련 된 연후에 비로소 중요한 공직을 맡을 수 있다고 생각해 왔다. 이것만으로도 오연호의 얘기는 나를 씁쓸하게 했을 텐데, 몇 개가 더 가세하였다.

6. 그것은 (사회통념상 사회의식이 없거나 보수적이라고 알려진 동네에서) 진보적 견해를 피력하여 대중을 열광하게 하는 유명 가수, 영화배우, 왕족(귀족), 부자, 기업인 반열에 있는 사람을 오연호가 차세대 진보 지도자로 급승격시키려는 것 같아서다. 또한 가난한 좌파가 아니라, 자유롭고 부유하고 멋있는 ‘강남 좌파’가 되고 싶어 하는 대중적 로망의 대리 충족 욕구에 영합한다는 느낌도 받았기 때문이다. 탁월한 실력이 있으나 줄이나 운이 없어서 50이 넘도록 시간 강사나, 이름도 들어 본 적이 없는 지방 대학을 전전하는 사람들을 좀 알아서인지 모르겠지만, 어쨌든 조국 교수의 대중적 매력의 상당 부분이 “서울대 교수”라는 자리에서 나온다는 사실도 불편했다. 서울대 교수가 아닌 울산대 교수였으면 매력이 반감되어 버리는 것은 비록 현실일지라도, 인정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쨌든 나는 유권자(선거)나 소비자(시장)가 부여한 권위(이것은 실력이 부여하는 권위다)가 아닌, “자리”가 주는 권위가 너무나 커서, 온통 좋은데 들어가기 위해 살인적 경쟁을 하는 한국 사회를 생각하니 씁쓸함이 더 했다. 게다가 SKY대학에서 좌파적 스탠스를 취하는 교수가 어디 한 둘인가?

한마디로 그날 오연호의 해명만으로는 조국 교수는 진보와 보수의 차이를 잘 모르는 일부 촛불 대중, 즉 MLB 클럽으로 상징되는 청년, 쌍코, 화장발, 82COOK 등으로 상징되는 여성, 사회역사의식이 생겨나는 강남좌파들에게 ‘진보’가 멋있는 정치세력이라는 것을 선전하는 역할은 확실히 할 수 있겠지만, 차세대 진보 지도자 그것도 대통령감으로서는 너무나 어울리지 않는 경력이라고 생각했다.

7. 그런데 조국 교수와 ‘조국 현상’에 대한 나의 문제의식의 핵심은 공직 경력이나 직업적(학문적) 성취에 그 위상이 너무 과대평가되어 있다는 사실이 아니다. 솔직히 조교수에 대한 대중적 열광과 그의 컨텐츠가 진보의 지적, 이념적 업그레이드(진화)에 이바지하고, 진보에 대한 대중적 신뢰를 제고하기만 한다면 그 위상이 좀 과대평가되면 어떠랴! 하지만 조국 교수는 진보의 대중적 이미지를 좋게 하는 단순한 아이돌(idol)-배우, 가수, 벤처기업인-이 아니다. 대중의 영향력이 갈수록 커지는 대중 정치시대에, 진보의 운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수도 있는 조타수나 선장으로 추앙되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의 컨텐츠가 진보의 이념,정책적 혼미와 퇴행에 단단히 이바지하니, 진보의 이념정책적 진화에 인생을 건 사람으로서 어찌 긴 서평/시평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는가?

8. <진보집권 플랜>은 300페이지가 넘는 책이고, 진단(분석)과 대안의 오류가 너무 많아서 제대로 비판하려면 책 한 권이 필요할 것이다. 그래서 그의 핵심 주장만 시시비비 하려고 한다. 먼저 본격적인 비판에 앞서서 일부 공감하는 부분을 명확히 해야 할 것 같다. 나는 사법(검찰)개혁 문제에 대한 조교수의 견해를 존중한다. 많이 배웠다. 내가 그 분야를 잘 몰라서 그런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그 분야에 대한 조교수의 견해는 내가 아는 상식과 크게 어긋나지 않았다. 하지만 사법 개혁 문제를 제외한 나머지의 진단과 대안은 너무나도 많은 오류와 피상성, 일면성을 가지고 있었다.

책에서 조국 교수는 김대중・노무현 정부에 대한 평가, 부동산 폭등 원인 진단, 2007년 대선-2008년 총선-2010년 지방선거 평가, 진보와 386 세대의 한계와 오류 성찰(왕이 되기를 포기한 소영주론, 진보적 상상력 빈곤론 등), 한국 사회의 핵심 모순부조리 등에 대한 진단(불안 사회, 경쟁 총량 과잉)을 하였다. 여기에 입각하여 사회임금 상향-단위기업내 동일노동 동일임금(비정규직 문제 해소), 유한킴벌리/삼정P&A식 노동체제, 청년의무고용제, 불안하게 않게 살기 운동,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혹은 토지임대부 주택 분양, 노동(노조)강화, 신자유주의 반대, 민주당 좌클릭(뉴민주당플랜 우향우론), 한국 정치의 과잉 우편향 교정을 위한 민주노동당, 진보신당 등 진보정치세력 획기적인 강화론, (반신자유주의) 복지연합 혹은 무지개연대(우산정당=가설정당), 진보개혁진영의 드림팀 뽑기 놀이, 금강산에서 ‘남북 인권 토론회’나 ‘남북 인권 연석회의’ 제안, (통일 후 내전 방지 위해) 국가연합식 통일 과정에서 남북의 대대적인 군축 등 수많은 제안을 하고 있다.

9. 뒤에 자세히 설명하겠지만 조국 교수의 주요 진단들은 너무나 피상적이거나 일면적이다. 지향(대안)이 완전히 잘못된 것도 있고, 지향은 옳으나 해법이 없거나 엉뚱한 것도 있다. 대체로 조국 교수는 그 자신도 격렬하게 비판하는 처벌 위주의 낙태(저출산) 대책 같은 유의 오류를 자신이 숱하게 범하고 있다.

예컨대 조교수는 “여성의 자기 결정권이나 보육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분담 등의 문제는 고민 않고, 임신하면 무조건 낳아야 한다. 미혼모도 무조건 낳아라. 아니면 처벌한다” 식의 낙태 대책은 “참으로 무지막지한 대책”이라고 말한다. 그는 이 방식이 “저출산 문제를 사회제도의 개선이 아니라 형사처벌로 풀려고 하는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우파 방식”이라고 비판한다.(p85)

나도 낙태 문제에 관한 한 조국 교수의 견해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그가 책에서 제안하는 수많은 정책들은 현실을 아는 사람의 눈에는, 조교수 눈에 비친 ‘단무지’ 낙태 대책처럼 참으로 무지막지한 대책들이다. 단적으로 저출산 문제의 해법으로 조국 교수가 제시한 직장보육시설 의무설치 기준 대폭 하향 정책부터가 그렇다. 조국 교수는 (영유아보육법상) 직장보육시설 의무설치 기준을 현행 여성근로자 300인 이상 또는 근로자 500인 이상에서 이 기준을 절반(여성 근로자 150인) 이하로 확 낮추고, 이 비용을 국가와 기업이 공동 부담할 것을 제안했다. (p86)

참고로 현재 국가기관, 지자체, 학교, 공사, 민간기업 등 직장 보육시설 설치 의무 사업장운 790개소인데, 이들이 영유아보육법의 규정을 지키는 방법은 세 가지다. 시설을 직접 ‘설치’하거나, 외부위탁하거나, 직원들에게 ‘수당’으로 지급하는 것이다. 그 결과 지자체는 100%, 공사 등 유관단체는 95%, 국가기관은 82%, 학교는 82%, 민간기업은 48% 정도가 직장보육시설을 운영하고 있다. <시사in> 조사에 따르면 일반(민간)어린이집에 대한 정부 지원금은 1인당 126만원, 국공립은 306만원, 정부청사 319만원, 국회 어린이집은 394만원, 한전은 516만원이었다.

조교수의 제안대로 의무설치 기준을 대폭 낮추면 세금으로 운영하고, 망할 염려도 없고, 정년도 보장된 최고 선망의 직장들인 지자체, 공공기관, 학교 등은 ‘모범을 보인다면서’ 아니 법을 근거로 거의 다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할 것이고, 정부의 금전적 지원을 많이 받을 것이다. 하지만 중국, 일본, 유럽, 미국 기업과 경쟁 상황에 놓인 민간 기업들-한국은행이 집계하는 제무제표가 공개된 대기업의 평균 15%, 중소기업의 평균 35% 가량이 적자이다. 부채비율이 엄청 낮아진 상황에서도 영업이익으로 이자도 못내는 기업까지 합치면 40%수준이다-의 대부분은 여성근로자를 줄이든지, 도저히 피할 수 없다면 수당으로 지급할 것이다. 이 경우 세금 지원이 있을 리 없다. 요컨대 직장보육시설을 설치하든, 수당으로 지급하든 기업 규모에 따른 처우(기업 복지) 격차는 더욱 심화 될 수밖에 없다. 또한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처우 격차도 더욱 심화 될 수밖에 없다.

10. 우리 나라는 기업 복지(학위 취득, 보육 혜택 등)를 강화할 좋은 명분만 생기면 대체로 맨 먼저 그 혜택을 향유하는 곳이 공공부문(특히 공기업)이다. 단적으로 웬만한 중소도시에 가 보면 직장 어린이집은 시청, 군청, 공기업에만 있다. 이는 비정규직 정규직화 과정에서 그랬듯이 공공부문이 모범을 보여야 민간부문이 따른다는 논리로 만들었을 것이다. 그런데 시간이 흘러도 공공부문을 따라가는 민간기업은 별로 없다. 은행처럼 수익기반이 아주 안정된 곳이면 몰라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년에 한나라당과 정부는 공무원이 앞장서서 저 출산 문제 해결에 앞장선답시고, 2011년부터 공무원이 3자녀 이상이면 사실상 정년을 연장하기로 합의 했다. 이 법이 시행된다면 공무원은 셋째 자녀부터는 자녀 1인당 1년간 퇴직 후 재고용하게 되니 자녀가 넷이라면 2년, 다섯이라면 3년(최대)까지 더 연장 받을 수 있다. 물론 적용 대상이 공무원만 아니라면 자녀 1명에 정년 1년 연장은 그 자체로만 보면 싸게 먹히는 빅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문제는 아무리 공무원들이 박봉이라 죽겠다고 난리라 하더라도, 그래도 한국에서는 출산, 육아, 고용, 자기계발, 자녀교육, 노후 부담이 가장 덜한 직업이라는 사실이다. 고졸을 전제로 직무가 설계된 9급 자리에 대졸자들이 몰려들어 수백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하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출산 해소를 명분으로 최고를 더 최고로 만드는 일이 계속되고 있다. 게다가 정년 연장은 청년 실업이 극심한 상황에서 결코 좋은 선택이라고 할 수없다.

11. 요컨대 조국 교수의 제안은, 노동의 양・질이 아닌 소속(부문, 직능, 기업 규모・수익성)에 따른 엄청난 처우(근로조건, 사회적 지위/권위) 격차를 더욱 심화시켜 조교수가 성토하는 한국병(좋은 직장과 직업을 갖기 위한 살인적인 경쟁)을 더욱 악화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밖에 없다. 사실 기업(종업원) 규모와 복지 및 근로기준(최저선)을 연동시키는 제도는-사회 보험제도의 확대와 법정근로시간 단축에서는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지만-대체로 “복끌복”제도 혹은 준계급사회를 만드는 제도로 기능한다. 그렇다면 이는 보편적 복지주의자들이 가장 먼저 해소해야 할 불평등 아닌가?

더군다나 한국은 좋은 직업, 직장은 우리의 생산력(1인당 GDP)과 경제산업구조에 비해 너무 높고 안정적인 처우를 누리는데 반해, 민간부문과 대다수 중소기업 종사자와 취약근로자들은 글로벌 경쟁에 온전히 노출되어 사실상 “독박”을 쓰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 설마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로 인해 인간의 수명을 제외한 모든 존재들(기술, 기계, 상품, 기업, 산업 등)의 수명이 짧아진 상황에서, 직원에게 예외 없이 정년보장을 하는 공공부문이 정상이고, 그것도(?) 못하는 민간부문이 비정상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겠지? 그것도(?) 못하는 한계 기업들은 최저 기준을 높여서 모조리 문을 닫게 하여 스웨덴처럼 생산성 높은 부문으로 이전시켜 가야 한다는 사람도 없겠지?

12. 나는 한국이 세계 경제산업 구조조정의 진앙인 중국에 인접한 이상, 격렬한 구조조정은 숙명이라고 생각한다. 마치 파도가 거센 바다를 항해하는 배의 요동은 피할 수 없듯이...... 그래서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발 구조조정 압력, 기후변화 등은 적응하거나 완충하는 방법이 있을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런데 한국 진보(좌파)는 이 숙명을 지나치게 부정하다 보니-사회안전망을 유럽 복지국가 수준으로 갖추기 전까지는 이 부담을 안을 수 없다는 입장이다- 결과적으로 취약한 자본과 그 위에 있는 취약한 노동(이들이 노동인구의 대부분이다)과 영세자영업자, 비경제활동인구, 청년세대들만 이 부담을 과도하게 안는다고 보아야 한다. 그런데 이들의 고통에 귀 기울이는 사람이 의외로 없다. 지금도 쌍용차 해고・퇴직 노동자들의 죽음과 고통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높지만, 쌍용차 사태로 인해 그 몇 배수는 더 되는 해고・퇴직 당한 협력업체 노동자들의 고통을 성토하는 목소리는 거의 없다. 평소 모기업에 비해 근로조건도 더 열악했고, 사회보험 혜택에서도 더 소외되었고, 퇴직금조차 없는 사람들이 대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런 점에서 나는 지금 한국 진보는 진보집권을 말하기 전에 진보가 도대체 무엇인지? 진보의 핵심 정책이 현실에서 진짜로 작동할지? 쌍용차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쌍용차 노조투쟁을 어떻게 보았는지? 왜 저 형편없는 보수에게 참패했는지? 왜 가난한 사람들이 진보를 압도적으로 지지하지 않는지를 정말로 치열하게 캐물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것을 깊이 성찰하지 않는 진보집권 플랜은 의도와 다르게 보수집권 플랜으로 기능할 수가 있다.

13. 조국 교수의 지론인 노동(노조)강화론도 직장보육시설 의무설치 기준 대폭 하향과 비슷한 문제를 가지고 있다. 정신은 고귀하지만 현실과 동력학을 모르면 전혀 예기치 않은, 심지어 반동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계속)

덧글

  • d 2011/03/08 11:54 # 삭제 답글

    그래도 어차피 국회의원 한 자리 할 껄?
  • 새벽산 2011/03/08 18:50 # 삭제 답글

    잘 읽었습니다..계속 기대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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