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보집권 플랜>과 ‘조국 현상’을 연찬한다(2)

<진보집권 플랜과 ‘조국 현상’을 연찬한다(2)
-진보집권 플랜인가? 보수집권플랜인가?-

1.2008년 10월 미국 대선 전 막바지에 한 평범한 남자가 하루아침에 전국적 스타로 된 일이 있었다. 그는 ‘배관공 조’로 불렸다. 본명은 새무얼 제이 우젤바커. 당시 34세로 13살 아들을 둔 이혼남이었다. 그가 하루아침에 유명인이 된 계기는 우연히 유세장에 갔다가 오바마에게 ‘자신은 연간 수입이 25만 달러가 넘는데, 당신의 세금 정책으로 내가 더 많은 세금을 내야 하느냐’고 따져 물었고, 오바마가 보수층이 대립각을 세울만한 원론적 답변을 하는 장면이 포착되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매케인은 오바마의 세금정책으로 꺾어지는 아메리칸 드림의 상징으로 ‘배관공 조’를 부각시켰다. 오바마가 ‘배관공 조’처럼 작아도 자신의 기업을 직접 경영하기를 원하는 사람들에게 타격을 줄 것이라고 공격했다. 매케인은 오바마와 양자 TV토론에서 ‘배관공 조’가 바로 앞에 있는 것처럼 ‘조’의 이름을 부르면서 자신의 정책을 설명하고, 오바마 정책을 공격했다. 당연히 오바마도 ‘조’를 거명하면서 자신이 아메리칸 드림을 실현할 수 있는 적임자라고 응수했다. 그 때문에 TV토론 과정에서 ‘조’ 이름이 숱하게 나왔다. 매케인과 오바마가 ‘조’의 이름을 몇 번이나 언급하고, 그에게 정책을 설명한 것은 그가 대선 판세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스타라서가 아니다. 오히려 아메리칸 드림에 도전하는 지극히 평범한 사람의 상징이었기 때문이다. ‘조’라는 이름도 여섯 개가 한 팩인 맥주를 사들고 퇴근하는 평범한 서민을 일컫는 ‘조 six-pack’에서 따왔다고 한다.

2. 내가 꽤 괜찮은 진보 인사-민노당, 진보신당, 사회당으로 대표되는 진보가 아니라 김대중, 노무현으로 대표되는 진보-인 오연호와 조국을 길게 비판하는 것은 무엇보다도 이들이 ‘배관공 조’처럼 어떤 상징이자 정신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 두 사람이 민주당 대권・당권 후보군들, 한창 뜨고 있는 386정치인들, 민노당, 참여당 지도자들보다 정치사회적 영향력이 크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현실 정치에 금방 뛰어들 사람들도 아니라고 알고 있다. 하지만 이 두 사람은 나름대로 일가를 이룬 386(486)의 상징이다. 진보적 청년들이 닮고 싶은 “Role Model"이자 386의 미래상으로 간주되는 사람들이다. 이념적, 문화적 영향력은 의외로 크다고 생각한다.
둘째, 이들의 담론이 좌클릭한 민주당, 참여당과 우클릭한 민노당, 진보신당이 만나는 철학, 가치, 비전처럼 여겨지기 때문이다. <진보집권 플랜> 갖고 전국을 돌아다니면서, 강연도 하고 북 콘서트를 하는 것은 책 마케팅 전략의 일환이기 이전에 민주와 진보의 대통합을 위한 초석을 놓는다는 소명의식이 있기 때문이 아닐까? 그런데 문제는 이 두 사람 수준의 성찰과 대안으로는 진보집권이 어림없다는 것이다.
셋째, 두 사람은 많은 힘 있는 진보 정치인들과 달리 300페이지가 넘는 책으로 자신의 정견을 선명하고도 자세하게 풀어놓았기에 무엇이 잘못됐는지를 정확하게 지적할 수 있기 때문이다. 정말 <진보집권 플랜>은 이념정책적 진화가 1990년대 초중반쯤에서 멈춰버린, Version 1.5 수준-과거 NL, PD, 사노맹 등이 1.0이고, 민노당, 진보신당이 1.3이고, 노무현의 그것이 1.8쯤 된다면- 386운동권의 모습을 너무나 잘 보여주는 책이다. 그래서 이 책의 한계와 오류를 제대로 집어내고, 동시에 참여정부의 한계와 오류를 제대로 집어낸다면 Version 2.0 수준의 진보 이념을 체화할 수 있지 않을까 해서다.

3. 나는 2012년 대회전은 진보가 져도 심각한 문제지만, 이겨도 그 못지않게 심각한 문제가 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다. MB정부가 너무나 형편없어서, 진보가 그와 대척점에 섰다는 이유 하나로, 거대하고 복잡한 대한민국을 경영할 수준이 도저히 안 됨에도 불구하고 반사이익으로 어찌어찌 이길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2013년, 2014년에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 진보 정책을 숱하게 쏟아낼 것이고, 참여정부 시기 이상으로 콩가루 집안이 되어 민심을 급격히 이반시킬 것이고, 당연히 2014년 지방선거부터, 2016년 총선, 2017년 대선 등 많은 선거에서 형편없이 깨질 수밖에 없을 것이다. 문제는 이번에 도래하는 “진보의 죽음의 시대”는 2020년대 중반 내지 후반까지 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 진보 진영은 2006~8년에 범진보의 동반몰락을 어떻게 성찰했는지는 몰라도(대충 신자유주의와 복지 결핍에 대해 소심하게 대응해서 망했다는 것 아닌가?), 결론은 “좌클릭” “신자유주의 반대” “보편적 복지 간판 상품화”다. 그리고는 온통 연대(연합, 통합)의 성사 여부에 사활이 걸려있는 것처럼 움직인다. 대통합민주신당-통합민주당의 교훈은 물에 흘려보내버리고, 야권 연대로 승리한 2010지방선거의 기억은 돌에 새긴 듯이...... 정치권이 조국 교수를 바라보는 시각도 강남 중산층에 먹히는 상품성을 재보선에 한번 활용해 보자 수준 아닌가? 이것은 진보의 총체적 퇴행이다. 보수가 한없이 퇴행한 마당에 ,진보마저 퇴행한다면 이는 진보의 위기 일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위기가 아닐 수 없다. 그래서 이런 글을 쓰는 것이다. 이제 다시 성찰이 제대로 안된 <진보집권 플랜>을 연찬해 보자.

5. <진보집권 플랜>출간 직후인 작년 11월 14일, 조국 교수와 오연호 대표는 독자 및 팬들과 트위터 대화 행사를 하였다. 75분간 진행된 '<진보집권플랜> 저자, 트윗과의 대화‘ 행사에서 조교수는 쉴 새 없이 쏟아지는 짧은 트윗 질문에 대해 모두 127개의 트윗 답변을 올렸다. 트윗 대화는 140자 이내의 단문 대화이기에 조교수의 핵심 메시지(정견)가 잘 드러난다. 이 대화에서 조교수는 진보란 “신자유주의 반대와 사회연대 정책 강화, 남북대결정책 반대 평화교류 정책 강화, 표현의 자유 등 정치적 기본권 신장 등으로 요약” 된다고 답변했다. 양극화 해결책으로는 “과감한 노동과 복지의 강화 정책”을 제시했다. 이는 진보의 정체성으로 든 “신자유주의 반대와 사회연대 정책 강화”의 주요 내용일 것이다. 나는 그 동안 “신자유주의 반대와 과감한 복지 강화 정책”의 문제점에 대해 지겹도록 많은 얘기를 했으니 이것은 기회가 있으면 재론하기로 하고, 이번엔 “과감한 노동 강화 정책”을 찬찬히 살펴보자.

6. 노동 강화 정책은 패러다임이 크게 두 갈래로 나뉜다. 하나는 고용률 제고-벤처중소기업 활성화(창업률 제고, 공정거래질서 확립)-유연안정시스템 구축(사회임금 상향, 적극적 노동시장 정책, 노사문화 혁신 등), 노동시간 단축-일자리 나누기-중소기업 근로자, 알바생, 영화산업 노동자, 청소아줌마 등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는 조합(노동조합, 협동조합 등)운동 활성화 등으로 이어지는 정책 패러다임이다. 다른 하나는 노조 조직률 상향-산별 교섭 활성화-비정규직 사용 억제(단위 사업장 내 동일노동 동일임금) 혹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청년고용의무제-청소아줌마 등 취약 노동자 보호-사회임금 상향으로 이어지는 민주노총 등에서 전통적으로 강조하던 정책 패러다임이다. 책에서 조국 교수는 “유럽은 노조의 힘이 강해서 친노동적 사회체제를 제도화한 사회민주주의를 가능하게 했다”면서 현재 10퍼센트 수준의 노조조직률 상향을 주요하게 강조한다(p 53) 이와 더불어 “굳이 노동시장에서 자기 노동력을 팔지 않아도 확보되는 (교육, 보육, 주거, 의료 등에서) 사회적 임금” 비중을 높여야 한다고 강조한다. 한편 조교수는 2011년 3월 2일자 민주노총 기관지 <노동과 세계> 인터뷰에서 “노동 있는 복지”와 “노동법 전면 재개정을 통한 동일노동 동일임금”도입을 강조했다.

“최근 ‘복지’가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저는 노동 없는 복지는 매우 위험하다는 것을 지적하고 싶다. 정당을 비롯한 정치권에서 논의되는 3무1반, 즉 무상급식·무상의료·무상보육·반값등록금은 전형적 복지정책인데 여기에 노동이 빠져 있다. 민주노총이 이 논쟁에 노동의제를 포함시켜야 한다. 노조활동이 무력화되고 있는 상황에서 노동 없는 복지는 보수층의 것으로 귀결돼 빈곤층을 돕는 차원으로 전락할 수도 있다. 노동 있는 복지를 주창해 노동법 전면 재개정으로 비정규직법을 바꿔야 한다. 파견시간과 범위를 제한하고 동일노동 동일임금을 도입해야 한다.”

조교수가 책에서 주장하는 비정규직 관련 해법은 민주노총의 전통적인 입장과 다소 다르다.

“모든 사람을 정규직으로 만들면 새로운 인력의 취업이 매우 어려워집니다. 현 고용구조를 그대로 둔 상태에서 아버지의 직장을 모두 정규직으로 만들면 아들은 직장을 갖기 어려워진다는 겁니다. 비정규직 문제는 사회임금의 상승과 함께 풀어야 한다고 봅니다. 사회임금이 높은 나라에서는 비정규직이 많아도 큰 문제가 안 되거든요(p 111)” 그 몇 페이지 뒤에서는 비정규직이 문제가 없는 선진국은 “사회임금이 높다는 점 외에도 비정규직에 ‘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이 관철된다”는 것도 강조하였다.

종합하면 조교수의 노동강화 정책의 핵심 내용은 ‘노조조직률 상향-노동운동 활성화-(단위 사업장내)동일노동 동일임금-사회임금 상향’ 패키지임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조교수가 강조하는 현 시기 비정규직 해법의 핵심, 즉 진보.개혁진영이 단기간에 쟁취해야 할 목표는 (단위 사업장 내)‘동일노동 동일임금’ 원칙 구현이다.

7. 이렇게 자명해 보이는 진보적 입장은 현실에서 과연 작동할까? 이것은 가혹한 처벌위주의 낙태 대책과 얼마나 다를까?

조국 교수뿐만 아니라 수많은 진보 학자, 언론인들은 노조 조직률 10%를 들며, 노조가 더 강해져야 북유럽처럼 친노동적 사회제도가 만들어 진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이런 주장을 하는 분들은 하나같이 북유럽 노조와 한국 노조의 차이를 잘 모른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한국 노조와 북유럽 노조는 간판(Trade Union)은 같을지 모르지만 그 성격은 달라도 너무 다르다. 북유럽 노조의 시각에서 보면 한국은 노조 자체가 별로 없다. 종업원 조합이 있을 뿐이다. 노동의 계급적 연대 의식이 그 바탕에 깔려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조직률을 따지는 것이 무의미하다.

8. 북유럽 노조는 종업원이 수만 명이 넘는 수출대기업의 고용임금과 종업원이 5명도 안 되는 3차, 4차 협력업체의 고용임금이 노동의 양과 질이 비슷하면 비슷하도록 만들었다. 산업별 노동자 평균임금은 1인당 GDP를 기준으로 하면 1배(5만 불 나라에서는 5만 불, 4만 불 나라에서는 4만 불) 내외이며, 높다고 해도 2배를 넘지 않는다. 보편적 복지국가의 모델처럼 된 스웨덴의 경우 1930년대 이전에는 산업별 수익성 차이와 산별노조의 교섭력 차이에 따라 임금 격차가 지금 보다 많이 컸다고 한다. 그러나 노조와 사민당 주도로 수십 년간에 걸쳐서 연대임금제 실시(수익성과 교섭력이 좋은 곳의 임금 투쟁 억제, 최저임금 상향), 노동시간 단축, 보편주의적 복지제도 등을 도입하여 이 격차를 줄였다고 한다. 물론 이 과정에서 상향평준화나 하향평준화를 한 것이 아니라 중향 평준화 했다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 한국 노조운동의 관점에서 보면 연대임금제를 통해, 수익성 좋고 교섭력 있는 노조의 근로조건 개선 투쟁을 억누른 스웨덴 LO는 전형적인 어용노조이다. LO는 1933년 건설산업 쟁의에 개입하여 성과급 비율을 억제시켜, 당시 스웨덴 산업노동자 평균 임금의 170%이던 건설노동자 임금을 130%까지 눌렀다. 또한 산하 노조(지부)의 파업을 엄격히 통제하였다. 그 때문에 (한계 기업주들은 아니었겠지만) 많은 기업주들이 노조를 무서워하기는커녕 좋아했다. 잘 나가는 기업이 낸 수익을 노조가 임금인상 투쟁으로 왕창 가져가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 외에도 몇 가지 요인이 복합적으로 작용했겠지만, 어쨌든 스웨덴 노조의 조직률이 급상승한 것은 이 시점을 전후 한 시기이다. (<복지국가 전략> p81~84, 미야모토 타로 지음, 논형) 북유럽의 높은 고용율과 노조조직률, 높은 세금과 큰 공공부문, 높은 사회적 신뢰도와 낮은 경쟁 강도, 비교적 두터운 보편주의적 복지혜택의 비밀은 바로 여기에 있다. 보편적 복지국가를 날로 먹으려 해서 안 된다.

9. 한국의 힘 있는 노조는 대체로 기업이나 산업의 수익성과 노조의 교섭력이 허용하는 한, 노동의 양과 질에 상관없이 1인당 GDP의 3배든 4배든 5배든 올리는 것을 당연시 한다. 당연히 이 과정에서 파업 투쟁이 끊이지 않았다. 이 경향은 산별노조의 지부로 되어도 거의 달라지지 않았다. 그 결과 수익성이 좋고, 노조의 교섭력이 강한 기업/산업의 처우는 외부 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다.

한편 1987년 이후에는 정치에 비해 상대적으로 관료의 힘이 세졌기 때문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의 처우(고용,임금,기업복지,연금 등) 격차도 점점 커졌다. 이는 공공부문의 처우가 외부 노동시장에 비해 상당히 높아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1987년 이후 상대적으로 힘이 세진 존재는 관료만이 아니다. 재벌, 대기업과 거기에 올라탄 노조, 정치적 영향력이 강한 전문 직능(단결력과 로비력이 강한 전문직 등)의 처우 역시도 1인당 GDP 기준으로 선진국과 비교했을 때 한국이 월등히 높다. 이는 공공부문과 대.공기업 근로자들은 담장 밖을 나가면, 그 낙차가 너무 커서 구조조정이 거의 불가능 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쌍용차 해고・퇴직 노동자와 그 가족들이 겪는 참극이 보여주듯이 “해고는 살인”이자 “가정파괴”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대기업의 노조에 대한 기업 측의 공포감과 고용에 대한 부담감은 OECD최고를 넘어 세계 최고 수준이 되어 버렸다.

10. 지금 한국 민간 기업들은 세계화, 지식정보화(과학기술혁명), 중국의 경제적 비상 등으로 인해, 1987년 이전에 비해 훨씬 강력한 인력,사업 구조조정 압력을 받고 있다. 시장 상황에 따라 매출이익이 요동칠 수밖에 없는 민간기업들은 유사시 구조조정이 불가능하게 되면, 다시 말해 신규 채용자에게 외부 노동시장 보다 훨씬 높은 임금을 정년까지 보장(정규직)해야 한다면 정규직 신규 채용에 극히 소극적일 수밖에 없다. 당연히 대기업 고용비중은 지속적으로 축소되고, 좋은 일자리를 둘러싼 경쟁을 더욱 격화될 수밖에 없다. 대기업 생산현장의 고령화도 필연이다. 그래서 외부 (제조업)노동시장의 처우 수준에 비해 많이 높은 현대중공업의 생산직 평균연령은 48세, 약간 높은 사무직 평균연령은 40세가 된 것이다. 유럽은 파트타임 노동은 많아도 한국식 비정규직은 거의 없는 것은 기업 규모, 수익성, 교섭력에 따른 고용임금 격차가 거의 없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유럽은 외부 노동시장의 고용임금 수준과 “좋은 직장”의 수준차가 거의 없기 때문에 유사시 인력사업 구조조정이 어렵지 않고, 정규직=정년보장직도 기업에 그리 큰 부담이 아니다. 또한 경제활동인구 대부분이 세금(소득세)을 내기에 (내가 세금내고 내가 혜택 받는) 보편적 복지 시스템을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것이다.

11. 그 어떤 나라든 외부 노동시장과 “좋은 직장”의 고용임금의 수준 차가 크면 기업도 노조도 유사시 완충판(안전판)으로서, 구조조정이 용이한 비정규직을 일정 정도 필요로 한다. 현대차에 오랫동안 노사합의로 생산라인에 비정규직이 15% 가까이 있었던 이유이다. 그런데 사내 비정규직이 현대차 비정규직 투쟁이나 조국 교수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비를 만나게 되면, 돈 잘 버는 은행들이 했던 것처럼 새로운 직군을 만들거나(이른바 중규직) 아니면 공정분할과 외주하청화를 통해 사외로 내 보내야 한다. 더 많은 이윤을 위해서라기보다는 유사시 기업의 생존을 위해서다. 기업 파산으로 인해 수많은 임직원, 협력업체, 지역주민 등 기업 이해관계자들의 대량 자살, 대량 가정파괴 사태를 막기 위해서다. 그래서 비정규직의 압도적 다수는 대기업이 아니라 중소기업에 존재하게 된 것이다.

이렇게 되면 조국 교수를 비롯하여 진보 인사들이 문제 삼는 ‘동일노동 동일임금’은 ‘닭 쫓던 개 지붕 쳐다보는 격’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개가 닭을 잡으러 지붕으로 올라가면 어떻게 될까? 다시 말해 하청중소기업을 포함하여 산업 차원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비를 하게 되면? 그렇게 되면 외부 노동시장의 고용임금 수준에 비해 그 처우가 월등히 높은 곳의 기득권이 시비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불행히도 유럽 노조의 시각에서 보면 너무나 상식적인 모순부조리에 대해 시비하고, 이를 고쳐보려는 진보를 거의 보지 못하였다. 나는 한국에서 산업 차원에서 동일노동 동일임금 시비를 하고, 수십 년이 걸리더라도 현실적인 중향평준화 전략을 추진하는 자가 진정한 진보가 아닐까 한다.

12. 내 주장을 “좋은 직장”의 고용임금을 당장 왕창 깎자는 얘기로 곡해하는 사람이 있어서 그 요지를 간명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는 것 같다. 내 주장의 요지는 기업(부문) 간의 고용임금 격차를 20~30년의 시간을 두고 중향평준화하는 것을 기조로 하되, 그 격차는 노동의 양・질을 반영하도록 하고, 근로장려세제 강화와 최저임금 상향 등을 통하여 노동 시장의 전반적인 임금 수준을 높여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외부 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곳은 연대정신을 발휘하여 최소한 상승률이라도 낮추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기업의 극심한 노조 및 고용 공포증을 해소해 줘야 하며, 이를 위해서는 스웨덴 LO같은 진정한 산별노조가 필요한 것이다. 세계 노조운동사에 유례가 없는 일이지만, 필요하다면 노조의 파업찬반 투표시 가치생산 사슬을 담당하는 노조원 아닌 이해관계자(지역 주민 등)에게도 투표권을 주는 것도 고려해 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정당이 당원이 아닌 지지자들에게 투표권을 주는 것처럼.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는 문제는, 다른 나라에 유례가 없는 창의적 방식으로 풀어야 한다는 것은 상식이다. 이와 더불어 조국 교수의 말대로 사회임금(사회안전망)을 상향시키는 조치도 절대적으로 필요할 것이다.

13. 지금 한국은 노조 조직률이 10%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공공부문은 거의 100% 조직이 되어 있고, 민간 대기업의 경우 포스코와 삼성을 제외하고는 거의 100% 조직되어 있다. 힘 있고 안정된 노조는 예외 없이 힘 있고 안정된 자본 위에 올라타고 있다. 이는 현대차 노조와 쌍용차 노조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문제는 힘 있고 안정된 자본이 많지도 않지만, 있다 하더라도 고용 인원을 늘리기는커녕 줄여가며, 이런 경향이 구조적이라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한편 전체 노동의 90%를 안고 있는 중소기업의 노조 조직률은 1989년을 고점으로 하여 지속적으로 줄어들어 왔다. 폐업, 해외/지방 이전, 조직 대상(인원) 자체의 감소, 노조 탄압(와해), 신성장(지식・문화・서비스) 산업에서의 조직화 지지부진 등이 겹쳐서 조직률이 극히 미미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노조 조직률이 1989년 20%에 육박하다가, 점진적으로 줄어들어 결국 10% 이하로 떨어진 것이다. 여기에는 거의 매년 임금 투쟁, 단협 투쟁을 통해서 좋은 근로조건을 더 좋게 만들어 온 힘 있는 노조의 활동 모델이 중소기업주와 중소기업 노조에 준 부담도 일조 했을 것이다. 아무리 봐도 현재 한국 대・공기업 노조의 활동 모델(철학, 가치, 기풍 등)로는 중소기업 노조조직률이 올라갈 것 같지가 않다. 북유럽이 구가하는 노조 조직률 60~70%는 어느 정도 자본측, 아니 국민적 지지를 받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고 보아야 하지 않을까?

14. 선진국과 비교하면 한국은 국가도, 정당과 국회도, 언론도 제 역할을 못하지만, 노조(한노총, 민노총)도 다르지 않다. 역사를 들춰보면 유럽은 전통적 복지국가 건설 과정에서도, 최근 20여 년간 진행된 복지국가 개혁 과정에서도 노조의 역할은 지대했다. 그러나 한국에서는 그 역할이 너무나 미미하다. 그래도 김대중 정부 기간에는 주도적 행위자는 아니었을지라도 주요한 논의파트너 정도는 되었다. 하지만 최근 복지 국가 논쟁에서는 노조의 역할이 거의 없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노동 없는 복지”에 대한 조국 교수의 우려는 바로 이 점을 지적한 것이다.

한국에서 노조가 제 역할을 한다면 건강보험 보장성 확대와 대학등록금 인하가 전면에 오는 것이 아니라 고용률 상향과 노동시장의 양극화 해소 및 유연안정화 조치가 전면에 왔을 것이다. 다시 말해 근로장려세제와 최저임금 상향으로 대표되는 근로빈곤 해소제도, 유연안정성 강화를 위한 고용보험 및 직업교육 활성화와 평생교육 강화를 통한 2모작, 3모작 인생 지원, 대학진학률 하향(고졸로도 먹고 살만한 세상과 직장 생활 하다가 그 필요를 강하게 느낄 때 대학진학 할 수 있는 제도), 산업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구현 운동(법,제도로는 곤란하니까), 여기에 더하여 다양한 사회임금 상향을 담보하는 법・제도 도입 등이 전면에 왔을 것이다. 하지만 한노총, 민노총이 이 같은 공세적 역할을 거의 못하는 이유는 명백하다. 외부 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너무 높아진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고용임금을 방어하는데 급급하기 때문이다. 노동 전체의 역량이나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선봉부대(조직노동)가 너무 많이 돌진하여, 고립, 포위, 섬멸 위기에 노출되어 있기 때문이다. 전쟁사를 들춰보면 본대에 비해 너무 나간 선봉 부대가 포위 섬멸된 사례를 무수히 보여주고 있다. 한국 노동의 선봉부대를 공격하는 논리 중의 하나가 '민영화, 규제완화, 유연화'로 상징되는 신자유주의 논리다. 신자유주의 반대론이, 물적 기반이 조직 노동 외에는 별로 없는 가난한 진보의 핵심 이념이 된 이유다. 참여정부 초기 12대 국정과제에 '영세자영업 문제'나 '비정규직 문제' '청년 실업 문제' 등을 제치고 '필수공익사업 범위 외국수준으로 축소' '노사분규 관련 법위반자 불구속수사' '노동사건 손해배상 가압류 청구 남용 방지' '공공부문 구조조정 노동자 참여 제도화' 등이 전면에 배치된 이유도, 전체 비정규직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얼마 되지 않는 대기업과 공공부문의 비정규직 문제가 엄청나게 큰 노동현안이 된 이유도 너무 나간 선봉 부대의 생존논리 때문이다. 조국 교수가 노동법 개정을 통해서 해소하자고 하는 것도 바로 대기업, 공기업 내에 있는 얼마 안되는 비정규직이다. 그런데 상식적으로 너무 나간 선봉 부대가 고립, 포위를 면하는 길은 전략적, 조직적 후퇴와 더불어 본대를 강화하고,전진시키는 것이다.

15. 대학 시간 강사 문제가 악화된 것은 시간 강사를 의사 인턴이나 사법연수원생처럼 잠시 머물다 가는 직업으로 생각한 탓이 크다. 쌍용차 해고.퇴직 노동자들과 그 가족들이 엄청난 고통(자살, 스트레스성 급사, 이혼, 정신이상, 자살 미수 등)을 겪는 것은 민노총과 쌍용차 지부가 정리해고를 “노동과 자본의 대리전”으로 간주하고, 요컨대 개연성있는 현실로 인정하지 않고, 옥쇄 투쟁에 몰빵하여 이들에 대한 치밀한 보호, 충격 완화 조치를 취하지 않은 탓이 크다. 마찬가지로 비정규직 문제가 정도 이상으로 악화 된 것도 비정규직을 용납할 수 없는 비정상으로 여기고, 다시 말해 비정규직으로 지내는 것이 비기득권 노동에게는 10년이고, 15년이고 계속될 수 있는 현실로 받아들이지 않고, (구조적으로 곤란한) 정규직화로 방향을 잡은 탓이 크다. 인간은 절대 인정할 수 없는 현실에 대해서는 대책을 치밀하게 세우지 않는 법이다.

##이런 얘기를 하면 책임을 과도하게 노조에게 돌린다고 반발할 것 같다. 그렇게 느껴지는 것이 무리가 아니다. 물론 나도 이런 사태에 대해 노조에 너무 많은 책임을 묻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나는 작은 책임이나마 노조가 인정하는 것을 별로 본 적이 없다. 그래서 이런 얘기를 하는 것이다. 분명한 것은 역사를 주도하겠다는 자신감이 있는 자는 자기 책임을 좀 과도하게 인정하며, 약자는 온통 면피 논리로 무장한다. 문제는 책임은 적게 지면서 권한은 엄청 많이 행사하려는 경향이다.

16. 한국에서 노조 기반 정당이 힘을 받지 못하고, 진보가 호남에 크게 의존하지 않으면 안 되는 이유도 따지고 보면, 노조가 제 역할을 못하기 때문이다. 특히 한 사람이 열 걸음을 가는 “전투적 종업원 의식”이 아니라, 열사람이 한걸음을 가는 진정한 “노동계급 의식”을 제대로 구현하지 체현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나는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는 한나라당과 민주당의 행태로 인해, 새로운 정당이 들어설 거대한 정치공간이 생겼듯이-소선거구제 단순다수제만 아니면 정말 많은 정당이 생겼을 것 같다-, 기득권 지키기에 여념이 없어서 정말로 보호가 필요한 취약노동(중소기업 노동, 비정규직, 자영업자, 실업자, 비경제활동인구에 숨어있는 실업자)을 방치하는 한노총과 민노총의 행태로 인해, “유럽식 산별 노조”가 들어설 수 있는 거대한 공간이 생겼다고 생각한다.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거칠게 보면 민노총류의 노동운동에 쏟아 부은) 20대 청춘을 돌려받을 수 있다면, 제대로 된 산별노조 건설 운동에 쏟아 붓고 싶다.

17. 결론적으로 조국 교수는 노조조직률을 상향시키는 방법도, 노조가 국민의 지지와 신뢰를 받는 존재로 거듭나는 방법도, 노동운동 활성화 방법도, 노동 없는 복지를 극복할 방법도, 동일노동 동일임금의 진정한 의미도, 진보 소수당의 지지율을 대폭적으로 끌어올릴 방법도, 진정한 진보집권 방법도 모른다고 생각한다. 

여태까지 노동과 관련된 조국 교수(나름대로 업그레이드 됐다고 자부하는 진보의 상징)의 입장을 살펴보았다. 그런데 내가 볼 때 조국 교수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는 이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신자유주의 주적론', '진보정당 선통합론', '무지개 연대론', 부동산 대란에 대한 너무나 피상적인 진단과 대안도 아니다. 정말 <진보집권 플랜>의 오류는 너무나 많아 비판하려면 책 한권 분량이 족히 되겠지만,  남 비판하는 글은 쓰는 사람도, 읽는 사람도 지겹다. 그래서 조교수의 가장 치명적인 오류이자, 진보 진영에 해악도 큰 오류 하나만은 지적하고 글을 마칠까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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