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격렬하고 살인적인 경쟁의 뿌리는? 책 비평

-진보집권 플랜과 ‘조국 현상’을 연찬한다(3)-

사실 이 글을 끝으로 더 이상 조국 교수와 <진보집권 플랜>을 소재로 글을 쓰지 않으려고 했다. 그런데 쓰고 보니 A4로 무려 15장이 넘었다. 글은 읽으라고 쓰는 것인데, 해도 너무했다는 생각이 들어서 고심 끝에 글을 잘라내어 연찬(4)로 돌렸다. 글을 쓰면서 조국 교수에게 한편 감사하고 한편 미안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사한 것은 진보의 유연화, 연성화를 통해 진보집권을 염원하는 최소 수십만 명의 비현실적이고 모순적인 생각을 잘 대변하여, 나에게 글감을 풍부하게 제공해 주었기 때문이다. 미안 한 것은 조국 교수와 그의 책은 내가 자유롭고 정의로운 대한민국을 열망하는 깨어있는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얘기를 하는 매개에 불과한데, 마치 조국 교수가 대단히 문제가 많은 사람인 양 질기게 비판을 해대기 때문이다. 사실 연찬 시리즈의 대부분의 내용은 조국과 <진보집권 플랜>이 없어도, 다른 계기를 잡아서 쓸 수 있는 것이다. 비슷한 생각을 하는 진보 정치 지도자들이 적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들은 자기의 생각(철학, 가치, 정책 등)을 책으로까지는 정리하지 않았기에 총체적 비판이 불가능했다. 나는 진보의 철학, 가치, 비전, 정책의 총체적 혁신 없이는 진보도 대한민국도 희망이 없다고 생각하기에 <진보집권 플랜>이라는 드물게 총론을 말한 책을 매개로 진보 혁신의 길을 말하는 것이다. 먼저 그 동안 제대로 연찬하지 않은 소소한(?) 정책적 오류에 대해 짚고 나서 본론(큰 오류)을 얘기할까 한다. 먼저 부동산 문제부터.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진보집권 플랜>을 읽다보면 아주 지엽적인 것이나 한참 후순위 가치를 주요하게 부각시키는 것을 숱하게 볼 수 있는데, 그 대표적인 것이 부동산 원가 공개다. 여기에 대해서는 이태경(토지정의시민연대) 사무처장이 프레시안 2월 15일자 기사; "조국 교수님! 그건 아닙니다"-“분양원가 공개는 反부패 대책, 부동산 대책은 아냐"-에서 잘 지적하였다.

먼저 <진보집권 플랜>에서 조국 교수의 부동산 관련 발언을 모아 보면 이렇다.

“(참여정부는)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도 할 것처럼 하다가 안 해버리니, 시장에서는 정부가 가격을 통제하지 않겠다는 신호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가격이 또 껑충 뛰어”(p 128)

“원가 공개를 하거나 ‘토지 임대부’ 주택을 지어서 분양하면 반값 아파트가 현실화 될 것”“원가 공개를 하여 집값을 떨어뜨려야......현재의 아파트 가격에는 거품이 너무 많아”(p 130)

“건설업체 눈치 보지 말고 노무현 정권 때 포기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실시해야......장기임대주택 대폭 늘려야.....재개발 할 때 의무적으로 끼워 넣는 소형 평수 비율 더 높여야”(p 126)

“노무현 정권의 실수는 집값 관련 대책을 한 개씩 찔끔찔끔 내놨다는 것......초반에 한꺼번에 다 내놓고 집값을 잡았어야 하는데”(p 127)

"위헌 결정이 난 종부세도 정밀하게 재구성하여 부활시켜야......그렇지만 핵심은 원가 공개"(p 128)

"(참여정부 시기) 대중은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실업, 집값 폭등 때문에 고통을 받고 있었다......대중의 고통의 근원을 직시하면서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등을 실현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부동산 원가 공개했더라면 상황이나 지지도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p 139)

위 발언들은 하나 같이 피상적 진단과 부적절한 대안이지만, 일단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 문제부터 살펴보자. 이태경 처장의 비판의 요지는 다음과 같다.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이 지닌 치명적인 한계는 시장에서 가격이 형성되는 메커니즘을 오해하고 있다는 점이다. 부동산 시장 가격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들은 매우 다양하고 복합적이다. 우선 인구수와 분포, 도시화 정도, 산업구조의 변화 등의 요소, 거시경제(금리, 환율, 무역수지, 경제성장률, 1인당 실질구매력, 실질 GDP 등)지표, 수급 등이 큰 틀에서 부동산 (주택)가격을 결정”한다고 전제하고, 그 다음 변수로서 정부의 부동산 정책을 들었다. 그것도 공급정책(공급량-공급유형과 로케이션 등, 분양방식-원가공개, 후분양제, 청약제도 등), 수요정책(세제-보유세 및 양도세, 실질주택보급율 등), 금융정책(주택담보대출-LTV 및 DTI- 관리), 주거복지 정책, 개발이익환수장치(개발부담금, 재건축 규제 등)를 들었다. 부동산 분양원가 공개는 아주 작은 변수에 불과하다는 얘기다. 이태경 처장의 얘기를 더 들어보자.

“'분양원가 공개' 프레임은 이런 사정을 간과한 채
  
신규아파트를 공급하는 공급자가 분양가격을 임의대로 결정할 수 있다는 비현실적인 가정을 전제로 한다. 그러나 한 업체가 공급을 독점하는 상품이 아닌 한 그와 같이 극단적인 공급자 우위의 시장은 형성될 수 없다.(중략)
참여정부 내내 지속된 고분양가 행진이 가능했던 이유는 분양원가 공개 혹은 분양가 상한제를 전면적으로 시행하지 않았기 때문이 아니라, 투기적 가수요의 창궐로 말미암아 부동산 가격이 버블 세븐 위주로 상승했고, 그 결과 공급자들이 기존의 분양가는 물론이거니와 주변 시세 보다 한참 높은 가격에 주택을 분양해도 이를 시장에서 구매할 수요가 형성되었기 때문이다. 즉 주변시세보다 터무니없이 높은 분양가는 투기적 가수요의 결과이지 원인이 아니다. 이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중략) '분양원가 공개'는 건설업계의 부패 근절 및 투명성 제고 차원에서는 유효한 정책이겠으나, 이를 부동산 문제 해결의 해법으로 생각하는 것은 위험천만한 것이다. '분양원가 공개'없이는 부동산 시장을 정상화시킬 수 없다는 주장은 폭리를 취하는 건설업체를 희생양(?)삼아 대중들의 분노를 촉발시키는 데에는 효과적일지 모르나, 부동산 문제의 해결과는 별 상관이 없다“

지금 전세가격이 폭등하고 전세의 월세화가 급격히 진행되는 것은 부동산 매매 가격이 중장기적으로 오르지 않을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기 때문이다. 부동산 시장의 정상화 과정인 것이다. 그런데 이것이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때문이 아니라는 것은 삼척 동자도 알 것이다. 실제 지금은 아무도 분양원가 공개를 얘기하지 않는다. 미분양과 적자 누적으로 파산 위기에 몰린 건설사를 원가와 재무제표 공개를 전제로 구제하자는 얘기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 토지공사와 주택공사라는 공기업을 운영해 온 정부가 각 지역 별, 주택 유형별 분양 원가를 왜 모르겠는가? 또 모든 기업은 전체적으로 이익을 내는 것은 절대 양보하지 않지만 개별 사업(프로젝트) 단위에서는 적자가 뻔한 사업도 한다. 다양한 품목을 생산하는 기업들은 아예 20%의 품목이 수익의 80%를 낸다는 것을 경험 법칙으로 알고 있다. 주택사업도 그럴 가능성이 높다. 그러므로 "주택공사가 사업자 원리에 의해 움직이는 한 원가공개는 장사의 원리에 맞지 않는다"는 말은 분명히 맞는 말이다. 정치적 고려가 빠져서 그렇지.......
원가 공개를 통한 가격 통제나 가격규제(가격 상한제)는 ‘필수재’의 ‘독과점’ 상황에서나 쓸 수 있는 정책이다. 그런데 아파트는 필수재가 아니며, 아파트 분양 시장은 독과점 상황이 아니다. 당시 아파트 시장은 투기적 가수요가 불붙는 상황이었고, 쓸 수 있는 실효성 있는 정책이 여럿 있었다. 당시 토공과 주공의 문제는 유사시(폭등 또는 폭락시기) 시장의 가격 안정화 장치라는 사명을 잊고, 투기적 가수요로 아파트 가격이 폭등하는 시기에 민간기업처럼 덩달아 폭리를 취하는 대열에 동참했다는데 있다.

참여정부가 토공과 주공의 민간기업적 행태를 제어하지 못한 것은 분명히 잘못이다. 또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같은 특별한 경우에만 쓸 수 있는 정책을 2004년 열린우리당 총선 공약으로 넣은 것도 잘못이다. 이는 첫 단추를 잘못 꿴 사례로서, 당시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의 정책적 무능의 기념비의 하나이다. 그렇다고 해서 분양원가 공개와 관련된 노전대통령의 언급이 적절했던 것은 아니다. 확실한 대안도 없이, 여당의 권위를 뭉개면서, 잘못 꿴 첫 단추를 과격하게 풀어버리려고 한 시도였기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주공, 토공의 행태와 분양원가 관련 소동은 한국 진보와 참여정부와 열린우리당의 정책적 실패 내지 무능의 기념비다. 그러므로 이 실패와 무능의 전 과정이 치열한 성찰의 대상이 되어야 한다. 조국 교수의 진단과 대안은 문제의 핵심을 빗나가도 너무 빗나갔다.


너무 멀리서 본 관전자의 공상

그리고 참여정부 시기에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반값 아파트 등을 실현하는 법률을 통과시키고, 부동산 원가 공개를 했더라면 상황이나 지지도가 완전히 달라졌을 것"이라는 주장도 목에 ‘턱’ 걸리는 주장이다. 무엇보다도 부동산 원가 공개 정책을 뺀 나머지 정책들은 2010년 하반기부터 민주당이 전면에 내건 정책들인데, 참여정부 시기의 정치 지형과 경험 수준에서 과연 가능했는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사실 민주당이 복지 정책에 과감해 진 것은 기본적으로 정책에 대한 책임이 가벼운 야당이고, 또 부자 감세와 4대강 사업에서 보여준 이명박의 단순무식한 추진력을 봤기 때문이다. 이런 조건이 갖춰지지 않은 참여정부 시기에 “3무1반” 같은, 재원 조달이 방안이 만만치 않은 복지 정책을 구사한다는 것은 현실성이 거의 없는 탁상 공상 아닐까?

조국 교수가 대연정의 대안으로 제시한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의 소연정 주장도 -“열린우리당과 민노당의 연정으로 권영길, 노회찬, 심상정이 입각하여 노동이나 복지 개혁의 총대를 멨다면 어땠을까?”(p 140)- 참여정부 시기의 정치 지형을 감안하면 당치도 않은 공상일 뿐이다. 대연정, 소연정 문제로 시끄럽던 2005년 7월 초 비교적 유연하다는 민노당 심상정 의원단 수석부대표가 소연정 가능성을 일축하면서 이렇게 말했던 것을 기억하는지 모르겠다.

"열린우리당과 한나라당, 민주당 사이에는 '실개천'이 흐르지만 보수정치와 민노당 사이에는 '큰 강물'이 흐른다"

사실 열린우리당-민노당의 소연정은 무엇보다도
  
민노당이 절대로 수용할 수가 없는 안이었다. 당시 민노당은 열린우리당을 조만간 그 정체가 폭로되어 지지율이 추락할 가짜 진보(신자유주의+지역주의 세력) 내지 자유주의 세력으로, 자신들을 진짜 진보로 보았다. 그렇다고 해서 노전대통령의 대연정 시도가 옳았던 것은 아니다. 이는 노대통령조차도 임기말에 실패로 인정한 대표적인 정치적 오류였다. 하지만 열린우리당과 참여정부로부터 이반한 민심이 자신들에게 올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고, 참여정부를 왼쪽에서 두들기던 사람들의 회한 가득한 속내(반성)를 들어본 적이 없다. 이들은 그 때나 지금이나 자신들의 정치적 stance가 옳았고, 조만간 열화와 같은 국민적 지지를 확보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듯하다. 지난 시절 참여정부 못지않게 헛발질을 해대던 사람들의 깊은 성찰의 부재가 민주당의 좌클릭으로, 또 Swing Voter를 결집한다는 개념 자체의 상실로 귀결되지 않았나 싶다.

정말 <진보집권 플랜>에는 너무 멀리서 참여정부를 본 관전자의 공상이 적지 않다. “초반에 (집값 관련 대책을) 한꺼번에 다 내놓고 집값을 잡았어야 했다” “(재개발 정책도) 무상급식 정책처럼 ‘선공’을 했어야 했다” “(검찰개혁이라는) 칼을 휘두르려면 확실히 휘둘렀어야 하는데......(p 24) 같은 류의 비판이 그런 것들이다.
멀리서 산을 보면 경사도가 10~20도 밖에 안 되어 그저 위로만 올라가면 정상에 도달할 것 같지만, 가까이서 보면 절벽, 숲, 내리막이 수두룩하다. 비판을 하려면 이것까지 감안해야 참여정부의 실패와 좌절로부터 제대로 배울 수 있다.


목마른 사람에게 준 신발

한편 “3무 1반”정책은 총선, 대선 승리 이후의 정책으로서도 문제가 많다. 무엇보다도 “소득과 자산의 양극화, 실업, 집값 폭등” 으로 집약되는 대중의 고통과 관련성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마치 목마른 사람에게 최선이 물이나 음료수(그런대로 괜찮은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고, 차선이 물 많은 과일과 음식(실업 급여와 노령 연금 등)을 제공하는 것인데, 무상급식, 무상의료, 반값 등록금 정책은 목마른 대중들에게 신발이나 옷을 제공하는 격이기 때문이다. 이를 내가 자주 쓰는 개념으로 얘기한다면 일자리, 소득, 권력 등 1차 분배 구조의 불합리, 즉 너무 크고도 불공평한 격차 혹은 지나친 특권(지대)과 차별이 고통의 핵심인데, 2차 분배 구조인 복지에서 그 핵심 해결책(보편적 복지)을 찾고, 그 중에서도 주변적인 해결책인 급식비, 의료비, 대학 등록금 관련 고통 경감을 전면에 내걸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무상의료, 반값등록금, 심지어 무상보육 정책도 한국 특유의 전달체계상의 문제, 즉 돈벌이 야망(생존 본능)이 넘치는 민간 공급자(민간의료기관, 사립대학, 민간보육시설)의 과다로 인해 자칫 민간 공급자만 살찌워주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기에 함부로 내지를 정책은 아니다. 한국 복지(의료, 교육, 보육, 장애인, 노인 등) 공급 체계의 두드러진 특징인 민간공급자의 압도적 비중은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노태우, 김영삼, 김대중 정부에 이르는 긴긴 시간 동안 국가가 복지 공급에 거의 나서지 않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의사를 뒤늦게 공무원화 시키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하듯이, 국가의 복지 방임이라는 역사적 업보는 한국의 복지공급 체계에 엄청난 규정력을 행사한다. 복지시스템은 가전제품처럼 선진국의 좋은 제품을 돈 좀 주고 들여오면 되는 어떤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이 신자유주의 반대, 복지국가 건설의 의미를 알아듣게 했다고?
조국 교수가 “신자유주의 반대, 복지국가 건설의 의미가 무엇인지 대중이 바로 알아듣게 만들었다”(p 67)는 무상급식 논쟁도 그 의미를 너무 확대 해석한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여기에 대해서는 “학교 개조론”의 저자 이기정 선생(창동고 교사)의 비판으로 대신한다.

“무상급식은 우리 교육의 절실한 문제가 아니다. 무능한 학교교육이 유능해지기 위해 꼭 필요한 것이 아니다. 무상급식 했다고 학교가 조금이라도 더 유능해지지 않는다. 무상급식을 해도 학교교육은 여전히 무능한 상태 그대로 일 것이다. ‘무상 급식’이 교육감 선거의 최대 화두가 된 우리 교육을 위해 바람직하지 않은 것이다. (무상급식은) 진보 진영이 먼저 주장하여 선거에서 큰 재미를 보았지만 보수 진영이 먼저 주장하여 큰 재미를 볼 수도 있었던 것이다. 사실 무상급식은 언뜻 생각하면 진보 좌파적 가치를 담은 공약인 것 같지만 얼마든지 보수 우파도 내걸 수 있는 공약이다. 사실 무상급식이 진보의 파괴력 있는 무기가 된 데는 보수의 상당수가 무상급식을 반대했기 때문이다. ‘무상급식’을 교육의 가장 중요한 공약으로 부각시킨 진보의 문제의식도 썩 좋은 것은 아니지만 ‘무상급식’을 반대하고 나선 보수의 문제의식은 더더욱 좋지 않은 것이다. 그리고 무상급식을 반대한 보수의 논리는 그야말로 수준 이하이다“


너무 격렬하고 살인적인 경쟁의 뿌리

조국 교수는 한국 사회의 “너무 격렬하고 살인적인 경쟁”을 통탄하면서 그 처방으로 “사회임금” 상향, (단위사업장 내)“동일노동 동일임금” “게으름에 대한 찬양” “연차휴가 다 쓰기 운동” "경쟁 중독 해소“ “삼정피앤에이와 유한킴벌리식 노동체제” “잔업, 야근, 특근하며 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자는 패러다임을 깨기” 등을 제시하였다. 하나 같이 지당한 소리처럼 들린다.

그런데 한국의 “너무 격렬하고 살인적인 경쟁의 뿌리”는 무엇일까? 교육 관련 극심한 고통의 뿌리는 무엇일까?
그것은 1차적으로 경제사회적 활력(일자리) 자체를 죽이는 과도하고도 불합리한 격차(차별) 구조 때문이다. 학과, 학벌, 사원증(소속), 공무원증, 자격증의 위력(과도한 특권 특혜=과도한 배제 차별)이 영속적이고 강력하다는 얘기다. 이는 실력이 같다고 할지라도 서울대 교수 조국과 울산대 교수 조국의 권위와 매력의 차이를 상상해 보고, 시간 강사 조국과 전임교수 조국의 처우의 차이를 상상해 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한국에서는 지방대교수나 시간강사가 서울대 교수나 전임교수에 비해 실력이 처진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2차적으로는 사회의 소박한 소망(기대 수준)이 너무 높은 탓도 있겠지만, 어쨌든 이를 만족시키는 일자리가 너무 적기 때문이다. 이는 한국 일자리(취업자) 구조의 특수성에서 나온다. 선진국은 총 취업자에서 차지하는 임금근로자의 비중이 90% 내외이고, 나머지 10%를 차지하는 자영업자와 고용주는 대체로 임금근로자보다 처지가 낫다. 임금근로자들의 처우는 외부 노동시장의 수준과 큰 차이가 없다. 규모나 수익성이나 교섭력이나 부문(공공, 민간)에 따른 격차가 상대적으로 적기에 대기업 및 공공부문 종사자들의 비중이 상대적으로 많다. 전반적으로 노동내 격차가 적기도 하고 그 처우는 대체로 노동의 양,질에 상응한다. 그러나 한국은 임금근로자 비중이 70%이하다. 그런데 비경제활동인구에 숨어있는 사실상 실업자까지 감안하면(경제활동인구를 2700~2800만 명으로 잡으면) 그 비중은 60%로 줄어든다. 신자유주의를 만악의 근원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높은 자영업자 비율이 1997년 외환위기 때문이라고 사기를 치는데, 통계를 보면 한국의 자영업자 비율은 1980년대 내내 줄어들다가 1991년 즈음에서 딱 멈췄고, 외환위기 직후 1~1.5%p 소폭 늘었다가 다시 줄어들고 있다. 이는 1987년의 그늘과 중국의 충격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어쨌든 무급가족 종사자를 포함한 자영업자의 평균적 소득은 임금근로자의 절반 수준이다. 문제는 1600만 명 수준의 임금근로자들의 처우도 노동의 양,질에 비례하는 것이 아니라 소속과 연동되어 있다는 것이다. 대기업, 공공부문 등 좋은 곳의 처우(임금, 연금, 안정성 등)는 외부 노동시장의 수준에 비해 월등히 높고, 우리의 생산력(1인당 GDP)에 비해서도 꽤 높다. 임금근로자와 자영업자를 통틀어(2100~2200만) 괜찮은 일자리-주당 36시간 이상 근로, 정규직, 100인 이상 사업장, 중위소득 이상 등-는 대략 500만개 남짓으로 추정한다.(박상현(고용정보원 고용조사분석센터장)의 분석) 노조원의 절대 다수는 여기에 속하며, 당연히 자신들이 누리는 처우를 정상으로 간주한다. 대기업, 공공부문의 얼마 되지도 않는 비정규직 문제가 엄청나게 중요한 진보(노동) 현안이 되고, 비정규직 고용이 무슨 악마적 행위처럼 되어버린 것은 한국 조직노동의 처지(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너무 높다)와 이데올로기적 영향력과  국민 전체를 살필줄 모르는 진보의 혼미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  어쨌든 500만 명, 아니 넉넉잡고 1천만 명을 제외한 나머지는 세계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부상에 따른 격렬한 산업구조 조정에 휘말리고, 인터넷 유통, 홈쇼핑, 자가용의 대중화, KTX, 수도권 집중의 충격에 그대로 노출되고, 각종 불공정 거래로 인한 착취와 억압을 온전히 감내하게 되었다. 물론 진보는 여기에 대해서는 보편적 복지 외에는 별다른 대책이 없다. (유럽에는 없는 한국 특유의 고통 및 불안 증폭 구조는, 취약한 사회안전망 뿐만 아니다. 너무 높은 자영업자 비율=너무 낮은 임근근로자 비율, 기업생태계 및 노동 시장의 극심한 불합리성(이중구조), 기업별 노조 체제와 힘센 노조들의 과도한 지대추구 행위, 중국의 경제적 부상과 너무 빠른 지식정보화 및 수도권 집중의 충격, 허술한 불공정거래 감시, 응징 체제 등이다.)

요컨대 괜찮은 일자리와 높은 소득을 절실히 원하는 열악한 처지의 고학력 인구가 엄청나기에 “커피전문점” “지입제 화물자동차 사업” “노래방” 등 돈 좀 벌리는 자영업이 생기면 하겠다는 사람이 엄청나게 몰려들어 살인적인 경쟁이 일어나는 것이다. 또한 심야시간에 단돈 1만원이라도 벌겠다는 대리운전자들이 넘치고, 원래 고졸자를 전제로 직무가 설계된 9급 공무원 자리 하나를 놓고 대졸자 수백명이 경쟁하고, 대학진학률이 OECD 최고 수준이 된 것이다. 뿐만 아니라 한국의 엄청난 정치적 역동성(참여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촛불사태, 이명박 정부에 대한 민심이반 등)의 뿌리도, 정당에 대한 자영업자의 막강한 영향력의 뿌리도 여기에 있다. 내가 복지(2차분배구조)가 아니라 정의(공정, 공평)/경제활력/일자리(1차분배구조)가 먼저라고 주장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또한 정규직(실은 대/공기업 직원과 공무원)을 정상, 나머지를 비정상으로 간주하여 비정규직을 정규직화 하겠다는 정책 패러다임이 잘못된 패러다임이라고 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좌파적 가치와 우파적 가치의 결합을  얘기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고용율과 임금근로자 비율 상향, 괜찮은 일자리가 아니라 그런대로 괜찮은 일자리 양산, 산업차원의 동일노동 동일임금 문화 확산(제도로는 곤란하니까!), 노동시장의 전반적 수준 상향(최저임금과 근로장려세제), 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너무 높은 곳의 자제, 양보, 근로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불공정 거래 엄단, 벤처활성화, 농업의 부활, 더 나아가 적극적인 해외 진출(이민 등)까지 얘기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조국 교수가 윤종용 삼성전자 상임고문의 발언에 공감한다면서 제시한 “중국.베트남 등지에서 10~15년에 걸쳐 아시아계 남녀 100만 명씩 모두 200만 명의 이민을 받아야”하고, “이민청을 신설하고 이민국가로 나아갈 비전과 정책을 세워야 한다”(p 220~221)는 제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다. 오히려 나는 전혀 다른 의미의 이민청을 신설해서 최소 100~200만 명을 연해주, 중앙아시아 등 후발 개도국 등지로 내 보내서 한국인의 세계사적 사명(척박한 환경의 개척자)을 이행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3차적으로는 사회와 학교의 평가, 선발 제도의 불합리성과 오랜 편견 때문이다. 입시제도, 노동 시장(입사, 승진), 결혼 시장, 정치 시장 등의 평가, 선발=배제 역량이 부실하다 보니 간판에 과도하게 의존하게 되고 이것이 대학 서열 구조를 초래한 것이다. 또한 영어, 특히 말하기에 대한 과도한 가중치로 인해 부모 잘 만난 수많은 어린애들을 조기 유학으로 내 몰았다. 내신, 수능, 논술, 입학사정관제, 특목고, 국제고 등으로 인한 몸살도 평가,선발 제도의 불합리성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상식이다. 그래서 평가, 선발제도를 합리화 하면 사교육은 획기적으로 줄어들지는 않겠지만 어느 정도는 줄어들 수 있지 않을까 한다.

4차적으로는 ‘과거 제도’와 ‘중앙집권적 관료 제도’ 등으로 대표되는 유교 문화권의 전통 때문일 것이다. 5차나 6차쯤에는 한국인 특유의 경쟁 유전자나 경쟁문화도 등장할지 모르겠다. 여기에 대해서는 “게으름에 대한 찬양” "경쟁 중독 해소“ “잔업, 야근, 특근하며 일 많이 해서 돈 많이 벌자는 패러다임을 깨기”운동이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2004년에 대한 복기와 성찰

나는 조국 교수의 이 말에 깊이 공감한다. 조금도 이의가 없다.
“10년 민주정권은....사회경제적 민주화에 대한 비전과 정책이 약했다.2004년 탄핵정국 종결이후 진보개혁 진영이 행정부와 입법부의 다수파가 되었을 때 진보 개혁진영이 비전을 가지고 단결했다면.....‘불판’을 갈 수 있었을 텐데(중략)”(p 138)

이 말에도 깊이 공감한다.
“진보개혁 진영이 2004년을 제대로 복기하고 그 속에서 교훈을 얻어야 한다..... 노대통령도 유시민도 당시 진보정당 지도자와 시민사회단체 활동가들도 이걸 외면하고 있지 않았나 싶다”(p 140)

하지만 이 말에는 약간의 유감이 있다. 이 비판은 유시민과 당시 진보정당 지도자들에게만 해당되는 것이 아니라 조국 자신에게도 해당되기 때문이다. 나는 <진보집권 플랜>을 암만 봐도 조국 교수가 2004년을 제대로 복기, 성찰한 흔적을 찾을 수 없었다. 2004년을 깊이 성찰했다면 정치노선 상의 헛발질, 주요 정책의 허접함, 지적 나태, 과도한 정치공학 편향 등으로 점철된, 보수집권 플랜인지 진보집권플랜인지 헷갈리는 이런 책을 결코 쓰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여태까지 주로 노동과 부동산 관련 조교수의 견해를 살펴보았다.
  
그런데 이런 식으로 조교수의 반신자유주론, 교육 정책, 대북(통일)정책, 가설정당론(드림팀 뽑기 놀이 등 무지개정당)등을 연찬하면 글이 한없이 늘어날 것이다. 그래서 조국 교수가 뿌리고 다니는 담론 중에서 가장 해악이 큰, 2006~8년의 범진보 동반 몰락에 대한 그의 진단과 민주당 좌클릭 노선에 대해서만 언급하고 글을 마무리해야겠다. 결론만 먼저 말하면 진보집권을 위해서는 고성국 박사의 말대로, 민주당의 좌클릭이 아니라 진보(좌파)정당의 우클릭이 필요하다. 사실 조국 교수의 핵심 메시지의 절반은 민주당의 좌클릭이고, 나머지 절반은 진보(좌파)의 우클릭이라고 봐도 그리 틀리지 않다. 그런 점에서 고성국 박사의 제언이 그리 놀라운 것이 아니다. 내가 볼 때 조국 교수에 대한 대중적 환호의 절반 이상은 진보좌파의 지독한 시대 지체(version 1.3)에 대한 부드럽고 애정어린 비판(version 1.5)에서 오지 않나 싶다. 그런데 내 얘기는 진보 집권을 위해서는 복지 확대, 국가의 책임성 강화, 고용 안정(노동권 강화) 등 좌파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과 시장 원리(소비자 선택권, 소유권, 경쟁, 차등) 강화, 고용임금 유연성 제고, 경제사회 주체들의 자율책임성 강화, 창의성 중시, 자본권 강화 등 우파적 가치의 합리적 핵심을 결합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거칠게 말하면 좌클릭과 우클릭의 병진을 통해, 경제사회적 활력과 통합을 이뤄낼 수 있는 능력을 보여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민주당은 중도에 확고히 뿌리를 내리고, 좌우측으로 확장해 들어가야 한다. 이를 위해서  가장 필요한 것은 우파적 가치든 좌파적 가치든 제대로 구현할 수 있는 '진영의 전반적인 실력 향상'이다. 실력은 국가경영 노하우와 인재(인적 네트워크)와 다양한 시민사회운동과 공동체의 이익을 너무 배신하지 않는 진보적 이익집단에서 나온다. 이를 위해서는 정당과 선거제도의 선진화가 관건이다. 강력하고 유능한 정당은 정치가, 전문가, 시민운동가, 언론인 등이 국가경영 노하우를 공유하고, 다듬고, 필요에 따라 시민운동으로 구현하는 영국의 Fabian Society 와 어깨를 겨룰 수 있는 한국형 이념정책 공동체들이 뒷받침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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