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속 집권할 비전과 실력 없이 집권하면 재앙이다 철학과 가치

스웨덴 사회민주당 118년 역사상 최초의 여성 당수 모나 살린(Mona Sahlin)은 2007년 총선 패배 직후 "인간의 자유를 위한 전제 조건이 고용"이라고 하였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정치의 핵심목표는 첫째,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 대부분에게 일자리를 제공하는 것이다. 둘째, 개인과 가족에게 닥칠 수 있는 각종 사회적 위험을 국가와 사회가 적절히 떠안아 주는 사회안전망을 구축하는 것이다. 좋은 정치는 일자리 사정을 소상하게 파악하고 이를 개선하는 비전과 해법을 모색하는데서 출발해야 한다. (5대, 7대) ‘불안’과 ‘양극화’ 등으로 한국 사회의 문제를 총괄(진단)하면 반신자유주의-규제-증세-보편적 복지를 대충 섞어서 대안을 도출하게 되는데, 이는 대체로 실효성이 없는 대안으로 귀결되기 십상이다.
 

한국은 실업률(2009년 현재 3.8%, 완전 고용 수준)이 실제 보다 훨씬 낮게 나오기 때문에 15~64세 인구에서 차지하는 취업자의 비중을 의미하는 고용률을 눈여겨보아야 한다. 2009년 현재 한국은 62.9%, 일본 70%, 프랑스 63.9% 독일 70.4%, 영국 70.6%, 스웨덴 72.2%, 덴마크 75.7%, 노르웨이 76.5%다. 고용률이 낮은 것은 어린 자녀를 둔 여성들의 고용률이 낮고, 높은 대학진학률과 군 의무복무와 고시, 공시 준비 등으로 15~29세의 청년 고용률이 낮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용률이 낮은 것은 노동력 공급 문제만은 아니다. 대학진학률이 떨어지고, 군복무 기간이 대폭 줄어든다 하더라도, 심지어 육아 부담을 덜어준다 하더라도 고용률이 올라갈 지는 의문이다. 낮은 고용률은 적은 노동력 수요(일자리 공급)와 관련이 깊기 때문이다. 이는 매년 줄어드는 ‘괜찮은 일자리’ 숫자를 보면 알 수 있다. 낮은 고용률과 더불어 또 하나의 한국에 특징적인 현상은 높은 자영업자 비율=낮은 임금근로자 비율이다.

한국 자영업자에는 고소득 전문직이 상당수 포함되어     있긴 하지만 한국은행 통계에 입각하여 자영업자와 임금근로자의 평균적인 소득을 비교하면, 자영업자 1인당 평균 소득은 임금근로자의 절반을 약간 넘는 수준에 불과하다. 그런 점에서 우리나라 자영업자의 대다수는 선진국의 자영업자와 달리 임금근로자가 되기를 갈망하지만 자본의 고용 의지와 능력 부족으로 인해 되지 못한 존재들이라고 봐야 한다. 일반적으로 경제가 성장하면 무급가족종사자와 자영업자가 줄어든다. 우리나라도 1991년 이전까지는 그런 경향을 보였다. 그런데 1991년 이후 2000년대 중반까지 자영업자 비중은 답보상태로 있다가 2007년 이후 다시 줄어들고 있다. 자영업은 대체로 내수에 크게 의존하고, 아무런 보호막(진입장벽, 경쟁제한 장벽 등)이 없기에 세계화(해외소비 활성화), 지식정보화(인터넷 유통, 홈쇼핑 등), 교통수단의 발달(KTX 및 자가용 대중화), 중국의 경제적 부상, 산업구조조정의 충격을 가장 많이 받았다고 보아야 한다. 물론 중국과 일본 관광객의 증가로 인해 경기가 좋았던 지역(서울, 제주 등)과 업종은 있지만 전반적으로는 세계화와 지식정보화로 인해 어려움을 겪었다고 보아야 한다. 이는 신용불량자나 저신용자의 숫자가 말해 주고 있다.


임금 근로자들은 기업이라는 보호막이 있는데 반해 자영업자는 홀로 모든 충격을 감내해야 한다. 따라서 임금근로자의 비중이 높으면 아무래도 국민들의 삶의 안정성이 높고, 그만큼 정치적 역동성이 낮다. 그러나 임금근로자 비중이 낮으면, 특히 농민이 아닌 자영업자 비중이 높으면 삶의 안정성은 떨어지는 반면에 정치적 역동성은 높기 마련이다. 그런데 우리나라는 임금근로자들조차도 삶이 그리 안정적이지 못하다. 고용과 임금이 불안정한 중소기업 종사자와 비정규직 비중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임금근로자 중에도 일용직이나 도급제 노동은 자영업자와 성향이 조금도 다를 바 없다. 어쨌든 자영업자는 한국 정당 구조에서 그 인구 비중보다 훨씬 큰 힘을 발휘한다. 양대 정당은 공히 약국, 미용실, 식당, 유흥주점, 부동산중개업소, 슈퍼, 택시운전수 등 자영업자(도급제 노동 포함)들이 말단 당조직을 형성하고, 이들의 여론 주도력은 막강하다. SSM규제가 큰 정치현안으로 부상한 것은 이 때문이다. 하지만 자영업자는 농민을 제외하면, 국가의 규제나 (사회보험 제도에 근거한) 복지를 통해 생활을 개선하기가 쉽지 않기에 사회경제적 구조 개혁에 큰 목소리를 내지 못했다고 할 수 있다.


고용률, 낮은 임금근로자 비율=높은 자영업자 비율과 더불어 또 하나의 주요한 특징은 노동내 엄청난 격차이다. 정규직과 비정규직간에, 대기업과 중소기업 간에, 공공부문과 민간부문간에, 선발자(전임교수)와 후발자(시간강사) 간에, 독점권을 부여 받은 자격증 소지자와 그렇지 않은 사람 간에 엄청난 격차가 있다. 물론 이 격차는 노동의 양과 질에 따른 것이 아니다. 그리고 좋은 직장, 직업, 부문은 우리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 또는 외부 노동시장 수준에 비해, 또 요동이 심한 시장 상황에 비해, 우리의 기업 능력에 비해 매우 높고 안정적이기에 사실상 (유사시에도) 구조조정이 불가능하다. 당연히 고용 확대는 어렵고, ‘괜찮은 일자리’는 감소 추세다. 얼마 되지 않는 좋은 곳(일종의 계급)에 진입하기 위한 엄청난 ‘관문’ 통과 경쟁이 일어난다. 한국 교육 문제, 저출산 문제, 지나친 경쟁 문제의 70% 이상은 과도할 뿐 아니라 불합리한 사회의 격차 구조에서 발원한다.


집권 세력의 도살장

21세기를 전후한 한국사회는 엄청난 수압이 걸린 가는 호스와 같다. 이 수압의 근원은 구조적으로 채워지기 힘든 괜찮은 일자리에 대한 뜨거운 열망, 불공정과 불공평에 대한 불만(억울함), 높은 교육 및 정보화 수준이 낳은 날카로운 비판의식과 높은 기대수준, 4.19, 광주항쟁, 유월항쟁, 촛불시위 등 승리(혁명)의 경험이 낳은 높은 행동성 등이다. 가는 호스는 구조적으로 무능하고, 강한 이익집단에 휘둘리는 공공(정치, 관료, 언론)과 지식사회이다. 이 수압을 단기간에 쉽게 낮출 수 없고, 호스 역시 크게 늘릴 수 없기에 격렬한 좌우 요동은 필연이다. 정치 지형이나 패러다임이 급격히 바뀌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은 그 때문이다. 그런 점에서 21세기를 전후한 한국 사회는 집권세력의 도살장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김영삼, 김대중, 노무현, 이명박이 바보라서 집권 말기에 험한 꼴을 당한 것이 아니다. 따지고 보면 이승만부터 노태우까지도 마찬가지였다.


참여정부는 정치의 구조적 무능과 복잡하게 얽히고설킨 강고한 모순부조리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고, 광복이후 60년의 작폐를 일거에 정리하여, 정치적 신기원을 이룩하려고 하였다. 그러나 전임 정부들과 차별화 하려고 하면 할수록, 획기적인 무언가를 과감하게 하면 할수록 무능, 교만, 독선은 더욱 돋보이게 되었다. 이는 이명박 정부에게도 그대로 해당된다. MB정부는 더 나쁘게도 국가경영과는 차원이 다른 기업과 서울시 경영 경험을 잘못 해석하여 너무 오버(교만)하였다. 당연히 국가경영에 대해서는 제대로 정리되지 않은 영역이 너무 많았다. 설상가상으로 MB정부는 권력을 무슨 비즈니스 모델로 여기는 보수 세력에 둘러싸여 있었다. 한국 사회는 원래 좋은 의도조차도 나쁜 결과로 갚는, 복잡하고 역동적이기 이를 데 없는 사회인데 MB정부처럼 이권 추구에만 능한 세력이 집권하면 말해 무엇 하랴!

대한민국을 희망과 활력이 없는 조로 사회로 만들고, 억울함과 불신과 증오와 환멸이 넘치는 사회로 만든 것은 한국 사회를 끌어가는 힘 있는 개인 및 집단이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이들을 규율하는 사명을 부여 받은 정치세력이다. 그런데 범 진보도 범 보수도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필요한 지적, 정치적 역량을 갖고 있지 않다. 아니 한국 정치와 지식사회 전체가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역량을 가지고 있는지도 의문이다. 따라서 집권세력은 지지율의 롤러코스터를 타게 되어 있다. 이를 더욱 악화시키는 것은 수많은 문제를 한칼로 해결 할 수 있다는 교만이다. ‘도덕적 신뢰’라는 한칼(참여정부), 기업과 서울시에서 보여준 ‘결단력과 추진력’이라는 한칼(MB정부). 혹시 다음 진보 정부는 ‘보편적 복지’와 ‘노동권 강화’ 한칼로 수많은 문제를 일도양단 할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까 두렵다. 그렇다면 용케 진보가 집권하더라도 2014년 선거부터는 기나긴 죽음의 세월이 펼쳐질 수밖에 없다.

진보 집권 이후 몇 년 만에 또 도살당하지 않는 길이자, 3연속 집권의 길은 명확하다.


무엇보다도 고용률을 대폭 끌어올리고, (억울하고 해결할 수 있는) 양극화완화 하는 것이다. 일자리가 많이 만들어지려면 인간의 창의, 열정, 도전 정신이 꽃필 수 있는 환경, 다시 말해 사회적 동기부여체계,게임규칙이 바로 서야 한다. 독과점과 불공정거래, 과도한 불로소득 등은 건강한 동기부여체계의 공적이다. 또한 복지는 개인 및 가족의 책임과 국가 및 사회의 책임이 균형을 이루어야 한다. 책임은 곧 ‘남용’이나 ‘도덕적 해이’를 방지하기 위한 비용 통제 혹은 자유 통제를 의미하기 때문이다. 요컨대 건강한 동기부여체계도, 개인과 공동체 간의 책임의 균형 문제도 다 정의 혹은 공정과 공평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이 같은 철학적 인식을 기반으로 정책기조는 다음과 같이 가져가야 한다.

1인당 GDP 수준의 임금을 받는 일자리 수백만 개창출하고(기존의 수백만 개의 일자리를 장기적으로 그 수준으로 수렴시키고), 산업/기업 간, 노동간, 부문 간 격차를 전반적으로 줄이면서 합리화해야 한다. 이는 경제사회적 자원(에너지)의 흐름을 건전하게 만드는 동기부여 체계 또는 상벌 체계의 합리화(공평화)를 중심에 놓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기회, 창의(일거리), 도전, 활력, 연대가 넘치는 사회를 만드는 것이다. 한국은 보호할 부분, 더 엄격하게 규제할 부분도 많이 있지만, 동시에 더 유연하고 유동적이고 개방되어야 할 부분도 많다. 공공부문과 전문직능이 대표적이다.


각론으로 들어가면, 첫째로 시장을 제대로 작동시켜 창업이 활성화 되도록 하고, 자본(기업) 간 양극화를 완화해야 한다. 독과점 타파, 공정거래 질서 확립은 기본 중의 기본이고, 벤처중소기업 친화적이고 고용과 창업 친화적인 조달 정책, R&D 정책, 금융정책, 교육정책을 구사한다. 그리고 재벌대기업 및 그에 포섭된 관료식 신성장 동력 정책이 아니라 우리식의 신고용 동력(녹색 산업, 서비스 산업, 농업, 해외 진출 등 ) 육성 정책실행해야 한다. 부동산 불로소득 환수도 기본이다.


둘째
, 노동(취업자)내 분배 문제개선해야 한다.    

이는 단지 분배 문제가 아니라 동기부여 체계 의 문제로서, 핵심은 성장/고용 정책이다. 또한 엄청나게 많은 패악을 개선하는 중심고리다. 현재 기업의 수익성과 노조의 교섭력에 비례하는 임금체계를 연대임금제 정신을 살려 중향평준화를 사회적 합의로 추진해야한다. 이는 국가 권력으로 강제하는데 한계가 있다. 어쨌든 국가는 이를 위해 최저임금제와 근로장려세제로 이를 유도하고 뒷받침해야 한다. 분명한 것은 노조와 진보가 중향평준화에 동의 한다면 최저임금은 빠른 속도로 평균임금의 50% 수준까지 올릴 수 있을 것이다. 이를 거부한다면 고용률 때문에 조심스럽게 올릴 수밖에 없다. 더불어서 공공부문 및 전문직의 부당한 특권-이것은 누리는 처우를 1인당 GDP의 배수로 환산해서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을 합리적으로 조정한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 해법도 적절히 결합한다. 기존 노동의 기득권을 조정하는 것이 현실적으로 어렵다면, 새로운 고용에 대해서는 사회적 합의를 통해 다른 제도(정년 보장=정규직을 포기하고 유기 계약직으로 가는 방안 등)를 적용할 수도 있을 것이다.


셋째
, 조세 재정을 통해, 특히 사회임금 상향을 통해서 분배 문제를 개선한다. 이와 관련해서는 민주당이 충분히 연구 고민했을 것이기에 중언부언 하고 싶지 않다. 다만 강조하고 싶은 것은 집권을 꿈꾼다면 첫째, 둘째 문제와 관련해서, 대중에게 감동과 기대를 주는 비전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노동의 나라가 아니라 실은 불안정한 기업가와 자영업자의 나라라는 것이다. 이들은 총취업자의 30%가 아니라 (처지와 성향으로 보면) 실제 60~70% 이상으로 보아야 한다. 전근대적 요소(과다한 농민, 소매점, 음식점 등)와 탈근대적 요소(1인 기업 내지 소기업화, 창의산업화, 성과-보상 연동화, 디지털노마디즘 등)가 중첩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노동자의 가장 가까운 친구로 자처하는 민주노동당이 그 오래 기간 활동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지지율이 좀체 올라가지 않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사실 한국에서 노동자 계급-계급이라면 삶의 조건이 비슷해야 한다-이라는 말만큼 허위의식은 없다.


요컨대 시장=경쟁 질서를 잘 세우는 것, 산업과 기업을 정확하게 이해하는 것, 기여・부담과 권리・이익의 균형을 확보하는 것이 정말로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진보가 얼마 되지도 않는 조직 노동의 이해와 요구(핵심은 안정)를 중심적으로 대변하고, 시장, 경쟁, 개방, 유연성 등을 백안시 하는 한, 보수가 아무리 형편없어 뵈도 아주 힘겨운 싸움을 할 수 밖에 없다. 보수는 아무리 그래도 시장, 경쟁, 개방 등에 전향적이기 때문이다.

불안정한 기업가와 자영업자의 나라에서는 사회보험 방식의 복지 시스템은 아무래도 거대한 사각지대를 만들 수 밖에 없다. 따라서 가능하면 조세에 기반하여 보편적으로 복지는 제공되어야 한다. 그렇다고 해서 사회보험방식과 조세방식이, 또 선별적 복지와 보편적 복지는 대립하는 것은 아니다.


넷째
, 이 모든 문제는 정치와 정당을 제대로 작동시켜야 해결 가능하다. 사실 난마처럼 얽힌 이 많은 문제를 해결하는 관건은 바로 정치, 정당, 선거제도 개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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