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두번 놀라다

<안철수의 생각>을 읽고 두번 놀랐다. 하나는 의외로 생각의 기본 틀과 디테일에 결함이 많기 때문이다. 다른 하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논객, 식자들의 뜨거운 찬사, 공감이 넘쳐났기 때문이다. 

내 평가 기준은 CEO안철수나 교수 안철수가 아니다. 대통령 후보 안철수다. 안철수도 책을 빌어 자신의 대통령으로서의 자격과 능력을 물었기에 나는 그런 시각에서 평가하는 것이다. 

디테일이야 실사구시 해서 교정하면 되지만, 생각의 기본틀은 간단히 교정할 수 있는 어떤 것이 아니다. 연옥을 통과하는 고통이 필요할 수도 있다. 몇개만 지적한다. 

먼저 안철수 현상에 대한 이해부터. 안철수는 이렇게 말했다.
p11 “변화에 대한 국민의 열망이 자신에 대한 기대로 나타나는 것” .

p36 "저에 대한 기대는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 정당에 대한 불만이 제게 쏠린 것" "정당정치가 아니라 정당이 문제라는 것"

이는 대부분이 공감하는 진단 일 것이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그런데 p5에서는 이렇게 말한다.

“총선 전에 야권의 승리를 의심하는 사람이 별로 없었고, 그렇게 되면 야권의 대선후보가 제자리를 잡으면서 나는 자연스럽게 원래의 자리로 돌아가는 수순이 될 가능성이 크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총선이 예상치 않게 야권의 패배로 귀결되면서 나에 대한 정치적 기대가 다시 커지는 것을 느꼈을 때 사람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이 열망이 어디서 온 것인지에 대해서 무겁게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묻는다. 야권이 승리했으면 (민심을 대변하지 못하는)정당과 정치의 문제가 해소되나? 야권이 승리했다면 안철수에 대한 기대가 사라졌을까? 지극히 비생산적인 한국의 정치적 갈등과 대립이 해소되나? 누구나 알고 있듯이 안철수 현상의 절반은 지역에 기반한 거대 양당, 그리고 철지난 보수와 진보의 적대적 의존체제에 대한 염증의 표현이다. 나머지 절반은 야권에 마땅한 박근혜 대항마가 없어서다.

초기 멘토 그룹이 안철수에게 제3당을 만들라, 4월 총선에 적극적인 역할을 하라고 간곡히 부탁/권유한 것은 안철수의 개인적 욕심을 챙겨라는 얘기가 아니었다. 한국 사회의 만악의 근원인, 비전정책 경쟁을 할 필요가 없는 정치독과점 체제, 지역주의에 뿌리 박은 양당의 적대적 의존 체제, 부실 정치의 뿌리인 부실한 정치생태계를 혁파하는 시대적 소명을 수행하라는 것이었다. 이것은 안철수가 대통령 되는 것 보다 훨씬 크고 중요한 일이다. 기독교식으로 말하면 십자가 고행이다. 사막에 길을 내는 일이다. 모세에게 내린 소명--네 민족을 구하라-- 같은 것이었다. 

물론 이는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는 너무나 힘겨운 대역사 이기에 이를 안철수가 거부했다고 해서 욕하는 사람은 없다. 다만 아쉬워 하고 실망할 뿐이다. 혼돈과 분열의 역사를 바꾸는 대통령을 하겠다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몸을 던져 정치적 신기원을 열어제낀느 책임의식과 결기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안철수는 이런 부탁/권유를 자신은 "개인적으로 무엇을 얻거나 무엇이 되겠다는 욕심이 전혀 없었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한다. 아무튼 나는 책에서 안철수가 역사적 기회를 놓치고, 역사적 소명을 저버린데 대한 아쉬움이나 부채감을 찾을 수 없었다. 1980년대 민주화 운동에 적극 참여하지 않은데 대한 약간의 부채감과 소명은 있었지만......

안철수 현상을 낳은, 후진적 정당 정치에 대한 이해도 낮다. 아니 나이브하다. 안철수는 p36에서 이렇게 말한다. 

"유권자들이 정당 위주로 투표를 하다 보니 정당은 국민을 두려워하지 않고 자기들 내부의 이해관계에 따라 후보를 공천하고, 정치인들도 국민보다는 소속 정당의 눈치를 봤죠. 그러니 정당 자체가 또 하나의 강고한 기득권이 되고, 민심에서 멀어지게 된 것"

"정당정치를 복원하기 위해서는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의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냉정히 평가해서 투표하는 게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죠.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꼼꼼하게 따진다면 정당이 국민을 무서워하면서 유권자의 눈높에 맞는 좋은 사람을 영입하려 노력할 것이고, 그러면 정당정치가 복원될 수 있으리라 생각한 것" 

"흠이 많아도 특정 정당의 ‘텃밭’에서 공천만 받으면 자동적으로 당선되는 구조에서는 정당들이 민심을 살릴 이유가 없어" 

안철수가 정당정치를 부정하지 않고, 정당정치 복원 방안을 내놓은 것에 대해 감동하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한국 정당 정치가 유권자들이 "지지 정당의 후보라고 해서 무조건 찍어주는 것이 아니라 인물을 냉정히 평가해서 투표"하고 "과연 자격이 있는 사람인지 꼼꼼하게 따지"는 정도로 정상화 되겠는가? 물론 깨어있는 시민, 훌륭한 청년멘토, 영혼이 있는 CEO로서는 지당한 소리다. 하지만 대통령 후보로서는 너무 무책임하고 나이브한 소리다. (지역주의와 결합한)소선거구제 단순다수득표제-결선투표 없는 5년 단임 대통령제-기형적 선거법과 정당법, 황폐한 정치생태계 등의 문제를 너무 의식하지 않기 때문이다. 안철수 현상의 뿌리인 한국 정당과 정치의 모순부조리 구조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한다는 것은 여간 심각한 일이 아니다. 

자신의 역사적 소명을 의식하지 못하는 사람도 얼마든지 대한민국 대통령이 될 수 있다. 정당과 정치의 불합리한 구조를 알지 못해도 대통령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성공한 대통령은 될 수는 없다. 나는 성공하는 대통령을 원하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쓴다. 

이 외에도 생각의 기본틀의 문제가 한 둘이 아니다. 가장 심각한 것은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에 대한 파악이다. 역사적 감각 혹은 사회역사적 통찰력이 문제라는 얘기다.이는 "정의 개념"에 대한 협소한 이해로, "소통과 합의"에 대한 과잉 의미 부여 등으로 나타난다. 따지고 보면 노무현의 실패 내지 좌절도 바로 "역사적 감각"의 문제,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는지에 대한 오판이 결정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참여정부의 4대 국정원리는 "소통과 합의"보다 훨씬 정교하게 만들어졌고, 그 내용을 거의 다 포괄하고 있었다. 대화와 타협, 원칙과 신뢰, 분권과 자율, 공정과 투명.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찌됐나??? (오늘은 이만. 조만간 길게 쓰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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