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언주 의원님
아마 작년까지 제 페친이었거나 페친의 페친이었을 겁니다. 당시 양식 있고 당찬 변호사로서 의원님의 글을 좋아했던 기억이 납니다. 어쩌다보니 국회에까지 진입하신 것도 축하드리고 기대 많이 했습니다. 젊고 패기 있는 여성이 국회를 바꿔 놓을 것이라는 기대가 있어서였습니다.
그런데 국회 개원한 지 몇 달 안 되어 하시는 일들이 어쩌면 이렇게 구태의연하고, 즉자적이며, 깊은 고민과 고려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지 황망하기 짝이 없습니다. 적어도 미국에서 법률을 공부한, 합리적인 법률 전문가로서의 면모는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미숙한 보좌관들 때문인가요? 아니면 초선 의원으로 어떻게든 언론을 타고야 말겠다는 정치적 고려에선가요?
그렇습니다. 소위 시신유기 의사에 대한 평생 면허박탈을 명문화한다는 의료법 개정안 이야기입니다. 저는 의료윤리를 업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그런 의사에 대한 변명을 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또 그런 처분을 당해도 싸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말입니다. 이언주 의원님, 면허가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리고 의사 면허와 국가와의 관계는 어떤지 아십니까? 의원님이 법을 공부한 미국에서 면허 관리를 어떻게 하고 있는지 아십니까?
아시다시피 우리 법에는 "과잉 금지의 원칙"이란 것이 있습니다. 국가가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하려면 목적의 정당성, 수단의 적합성, 침해의 최소성, 법익의 균형성이 있어야 한다는 정신입니다. 면허 취소는 행정처분이지 "기본권"의 제한이 아니라구요? 의사라는 직업은 그 사람의 정체성과 직업적 정체성이 가장 긴밀하게 연결된 직업입니다. 무슨 중장비 운전면허를 취소하는 것과 다르다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다면 의료법이 왜 별도로 있으며, 의사에게 그 많은 부담들을 국가가 강제로 요구하는 것일까요? 헌법상의 기본권인 "직업선택의 자유"가 가장 빡빡하게 적용되는 직업이 의사입니다. 양성할 때 커다란 사회적 비용이 들며, 또 아무나 이 수련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운전면허처럼 원하는 모든 사람에게 다 교육시켜 면허 발급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의사에겐 면허란 기본권과 같은 비중을 가지고 있습니다.
더 큰 문제는 이 문제를 법으로 명문화하는 순간, 법의 경직성으로 인해 선의의 피해자를 반드시 만든다는 것입니다. "살인"이면 평생 면허박탈이고, "중상해"면 안 그래도 되는 건가요? 때로는 중상해가 살인보다 죄질이 훨씬 더 나쁜 경우도 있는데? 또한 가정폭력에 시달리다 못해 아버지나 남편을 죽인 여성도 살인죄로 복역합니다. 보라매병원 사건에서는 그저 환자 부인의 원에 의해 퇴원을 시킨 의사도 살인방조죄로 유죄 판결을 받았습니다. 이런 의사도 평생 면허를 박탈해야 하는 건가요? 만약 어떤 여성을 잡아다가 변태적으로 죽기 직전까지 고문한 후 치료한 후 풀어주는 새디스트 의사가 있다 치면-이런 자야 말로 평생 면허를 박탈해야 할 거 같은데-"살인"이 아니기 때문에 그저 폭행 내지 중상해로 끝나는 건가요? 이게 말이 되는 법인가요?
성범죄를 저지른 의료인의 의료기관 취업 제한은-역시 이것도 문제 투성이지만-적어도 무슨 범죄를 예방하고자 한다는 취지라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건 뭔가요? 이 의료법 개정을 통해 얻는 법익이 무엇인가요? 의사에게는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된다구요? 그럼 성범죄를 저지른 목사는요? 몇 년 후에 본인이 회개했다 말하면 다시 목회를 하는 건 뭡니까? 대체 이 법의 목적(실익)이 뭡니까? 현실적으로 진짜 살인이나 사체유기를 저지른 의사가 의료기관에서 의사로서 활동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변호사는 일반인보다 높은 수준의 도덕성이 요구되지 않기 때문에 간통, 뇌물수수, 성추행 이런 걸 해도 계속 일할 수 있는 건가요?
이런 입법안을 내는 걸 보면 법률 전문가로서 이언주 의원님의 수준이 의심스럽습니다. 설마 정말 그런 건 아니겠지요? 이런 문제를 푸시려면 졸속으로 한 건 하려 하지 마시고, 오랜 기간 연구와 공청회 등을 거쳐 의료인 면허관리기구를 어떻게 만들지를 생각해 보시기를 건의드립니다. 국회도서관이 괜히 장식으로 있는 게 아닙니다. 법률은 꼭 필요한 경우에만 적정하게 적용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과잉금지의 원칙"입니다. 제발 성숙한 사회로 나아갑시다. 299명 의원이 모두 한건씩 하겠다고 미숙하기 짝이 없고 통과도 불확실한 입법안 내깔기는 건 정치 공해입니다. 적어도 법률전문가라면 그러지 말아야 합니다. 이번 기회에 언론 많이 타서 좋으시겠지만 의원님에 대해 양식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개를 저을 것입니다. 공부 좀 많이 하시고, 의료인들과도 대화 많이 하시기를 건의드립니다. 그리고, 모자란 보좌관들좀 바꾸십시오! 이런 식의 보좌라면 의원님 장래에 해만 될 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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