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18일(목) 오후5시30분부터 11시까지 사)사회디자인연구소 후원회를 한다. 회원/독자/공감하는 분들과 막걸리 파티를 한다.
서울 신촌의 유명한 막걸리집을 하루 저녁 전세 내기로 했다. 당초 서울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출판기념회까지 엎어쳐서 폼 나게 하려고 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대관료 및 행사비 1백30만원으로 맛있는 막걸리 집을 빌려, 그 액수만큼 먹고, 마시고, 얼굴도 보고,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출범 6년 만에 처음으로 후원회를 하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 동안 어떻게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컨텐츠를 생산했는지? 연구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왜 후원을 해야 하는지? 150명 내외의 후원회원들은 왜 후원을 하는지? 왜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서울 신촌의 유명한 막걸리집을 하루 저녁 전세 내기로 했다. 당초 서울프레스센터 국제회의장에서 출판기념회까지 엎어쳐서 폼 나게 하려고 하다가 방향을 틀었다.
대관료 및 행사비 1백30만원으로 맛있는 막걸리 집을 빌려, 그 액수만큼 먹고, 마시고, 얼굴도 보고, 축하하고 격려하는 것이 나을 듯 해서다.
사회디자인연구소 출범 6년 만에 처음으로 후원회를 하려고 하니 만감이 교차한다. 그 동안 어떻게 사무실을 유지하면서, 컨텐츠를 생산했는지? 연구소의 존재 이유는 무엇인지? 왜 후원을 해야 하는지? 150명 내외의 후원회원들은 왜 후원을 하는지? 왜 그렇게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이 정도 밖에 못했는지?
2002년인가 2003년 경 내가 대우자동차 차장으로 근무할 때, 자신이 진정으로 가치있게 생각하는 일 내지 원하는 일을 알아보려면, 로또 당첨돼서 50~100억원이 생겼을 때, 뭘 하고 싶은지를 상상해 보면 된다고 하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다.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선명했다. 국가 경영 전략 연구소에 쾌척하고 싶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대우그룹의 몰락도(이건 자동차 사업의 실패가 결정적이다), 구조조정이 부도-정리해고-매각으로 끝난 이유도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무지, 무능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연구소의 전문 연구자가 된다거나, 운영자(이사장)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해봤다. 당시까지 나는 자동차 회사에서 내 미래를 찾았으니까. (한 1~2억 쯤은 여행 등 사적 경비로 써고 싶었다) 당시 정문술 미래산업회장이 300억원을 KAIST에 쾌척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2006년부터 전문 연구자에 운영자가 되었다. 그리고 국가 비전 전략을 연구하는 연구소 입장에서는 대목(?)인 2006~7년과 2011~12년에 별 재미(?)를 못 보고 지나가고 있다.
돈을 못 벌었다는 것이 아니라, 풍찬노숙하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생산한 담론을 민주진보 진영의 주류적 담론으로 못 만들었다는 얘기다. 2006년만 하더라도 진보혁신 담론 및 탄탄한 컨텐츠에 연구소의 미래도, 진영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달려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망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사회디자인연구소와 김대호의 문제의식, 꿈, 다양한 시도와 좌절, 그리고 지적 성과도 매우 가치있는 컨텐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18일까지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무튼 여의도에 와서 보니 의외로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 바른 앎의 문제, 지식과 지혜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가 쓴 돈과 시간과 에너지의 향방을 보면 안다.
1960년대 그 척박한 토양에서 '내외경제연구소'를 만들고, '대중경제론'을 쓴 김대중 같은 정치인이 있었다면 나랑 참 궁합이 잘 맞았을 것이다. 1990년대 초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한 노무현 같은 정치인도 그런대로 잘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과 안철수는 공적 담론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어떤 기여나 후원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이게 강점일 수도 있고, 약점 일수도 있는데, 어쨌든 나랑은 사고회로와 DNA 차이가 좀 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지난 6년을 돌아보니 회한이 참 많이 밀려온다. 미완의 과제들과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른다. 정책학교, 디자이너 클럽, 매체, 컨텐츠 등. 듣고 싶으면 18일 저녁에 신촌 막걸리 집으로 오시길. 전화질을 1000통 이상 할까 한다. 초청장도 보내고.
2002년인가 2003년 경 내가 대우자동차 차장으로 근무할 때, 자신이 진정으로 가치있게 생각하는 일 내지 원하는 일을 알아보려면, 로또 당첨돼서 50~100억원이 생겼을 때, 뭘 하고 싶은지를 상상해 보면 된다고 하는 얘기를 어디선가 들었다.
그래서 생각을 해 봤다. 곰곰히 생각할 필요가 없었다. 나는 너무나 선명했다. 국가 경영 전략 연구소에 쾌척하고 싶었다. 그것은 아무래도 대우그룹의 몰락도(이건 자동차 사업의 실패가 결정적이다), 구조조정이 부도-정리해고-매각으로 끝난 이유도 우리 사회의 총체적 무지, 무능에서 비롯됐다는 것을 절감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내가 그 연구소의 전문 연구자가 된다거나, 운영자(이사장)가 된다는 생각은 전혀 안해봤다. 당시까지 나는 자동차 회사에서 내 미래를 찾았으니까. (한 1~2억 쯤은 여행 등 사적 경비로 써고 싶었다) 당시 정문술 미래산업회장이 300억원을 KAIST에 쾌척했다는 기사를 봤는데, 나라면 그렇게 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했다.
그런데 어쩌다 보니 내가 2006년부터 전문 연구자에 운영자가 되었다. 그리고 국가 비전 전략을 연구하는 연구소 입장에서는 대목(?)인 2006~7년과 2011~12년에 별 재미(?)를 못 보고 지나가고 있다.
돈을 못 벌었다는 것이 아니라, 풍찬노숙하면서, 각고의 노력으로 생산한 담론을 민주진보 진영의 주류적 담론으로 못 만들었다는 얘기다. 2006년만 하더라도 진보혁신 담론 및 탄탄한 컨텐츠에 연구소의 미래도, 진영의 미래도, 국가의 미래도 달려있다고 굳게 믿었는데......
망했다고는 할 수 없어도, 소기의 성과를 거두지 못한 것은 분명하다.
사회디자인연구소와 김대호의 문제의식, 꿈, 다양한 시도와 좌절, 그리고 지적 성과도 매우 가치있는 컨텐츠가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18일까지 한번 정리해 보려고 한다.
아무튼 여의도에 와서 보니 의외로 너무 많은 정치인들이 바른 앎의 문제, 지식과 지혜의 중요성을 절감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그것은 그가 쓴 돈과 시간과 에너지의 향방을 보면 안다.
1960년대 그 척박한 토양에서 '내외경제연구소'를 만들고, '대중경제론'을 쓴 김대중 같은 정치인이 있었다면 나랑 참 궁합이 잘 맞았을 것이다. 1990년대 초에 지방자치실무연구소를 한 노무현 같은 정치인도 그런대로 잘 맞았을 것이다.
그런데 문재인과 안철수는 공적 담론을 연구하는 연구소에 어떤 기여나 후원을 했는지 나는 알지 못한다. 물론 이게 강점일 수도 있고, 약점 일수도 있는데, 어쨌든 나랑은 사고회로와 DNA 차이가 좀 날 것이라는 것 정도는 안다.
지난 6년을 돌아보니 회한이 참 많이 밀려온다. 미완의 과제들과 아이디어도 많이 떠오른다. 정책학교, 디자이너 클럽, 매체, 컨텐츠 등. 듣고 싶으면 18일 저녁에 신촌 막걸리 집으로 오시길. 전화질을 1000통 이상 할까 한다. 초청장도 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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