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강 산책을 하며

점심을 먹고 나면 거의 1시간 가량 여의도 주변 한강변 산책을 한다. 요즈음의 한강변이 좋기도 하고, 몸도 그것을 원하고, 걸으면서 생각할 거리가 너무 많아서다.

짧으면 6년, 길면 15년에 걸쳐 넘으려고 했던 산이 생각 보다 훨씬 높고 험한 태산준령이라는 느낌이 확연해지면서 시름도 깊고, 고민도 깊다. 올려다 보니 아득하기만 하다. 이게 걸으면서 주로 생각하는 것이다. 

이 높고 험한 산은 철지난 진보 이념이다. 이 놈이 강단에서만 굴러다니면 무시하면 그만인데, 문제는 민주통합당, 통합진보당, 노조, 진보매체, 학계, 시민단체 등의 일각에 강고한 스크럼을 짜고 버티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안철수의 생각>과 안철수 팀이라고 해서 철지난 진보 이념으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이 쯤 쓰고 나면, 나
더러 왜 (2004년의 뉴라이트처럼) 새누리당으로 넘어가지 않느냐고 힐난할지 모르겠다. 그런데 백번을 생각해 봐도, 내 생각은 바닥 현실을 아는 사람에게는 기본 상식이다. 김대중, 노무현이 견지했던 국가경영 컨셉이고, 진보 집권의 길이자, 대한민국과 한민족을 살리는 길이니 어쩌겠는가? 

게다가 한국 보수라는 푸석푸석한 벽에는 글씨를 쓸 수 없고, 두당의 정치적 독과점을 확실히 보장하는 선거제도로 인해 상식을 올곧이 체현한 제3당, 4당을 생각할 수도 없으니!!! (한국 보수가 썩은 벽이라면 진보는 너무 딱딱한 벽이다. 글씨를 새기기 너무 힘들다는 얘기다. 그래서 청년과 민초가 이렇게 죽을 고생을 하는 것이 아니겠는가?)

한강변을 걸으면서, 또 장시간 차를 운전하면서 우리 연구소와 생각을 공유하는 적지 않은 균형감과 통찰력이 있는 선수 네트워크가 그 동안 무엇을 했는지, 무엇을 해야 할지, 왜 이것 밖에 못했는지, 왜 그 허접한 사상이념적 앙시앙레짐을 이렇게 강성하게 놔뒀는지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뚜렷하게 드는 생각은, 컨텐츠 생산 문제 보다는 마케팅 문제가 훨씬 크다는 것이다. 반성할 점과 개선할 점이 무지무지 많은데, 결론 중의 하나는, 현안을 다르게 진단하고 다른 대안이 있다면, 이를 일점돌파 가능한 운동으로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예컨대 반값등록금이 아니라면, "고등학교만 나와도 살 수 있는 세상"이라는 비전을 실현시키는 일점돌파형 운동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 하나의 결론은 이젠 충분히 숙성시킨 담론을 관심있는 시민들과 널리 공유하는 학교(정책 아카데미)를 할 때가 됐다는 것이다. "차별화된 담론"도 없으면서 정치조직과 학교부터 만들려고 하는 사람이 부지기수인데, "진보 혁신파" 내지 "상식파"들은 차별화된 담론--물론 시민적 상식에 가장 가깝지만--이 있으면서도, 끼리끼리 연대와 조직과 학교와 매체에 너무 인색했다는 생각이 든다. 결과적으로 청년의 기회, 도전의 죽음의 시대를 방관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래서 10월18일 연구소 회원, 후원회원, 공감하는 분들을 모셔서 성찰과 모색을 나누고, 학교 운영 계획을 밝히고 조언과 협력을 구할까 한다. 양극화와 경제민주화, 고용노동문제, 복지 문제, 교육 문제, 정치 혁신 문제 등에서 충분히 숙성된 다른 진단과 대안이 있다. 

(사실 이 글을 처음 시작할 때만 하더라도 사람들을 현혹시키는 현실 모르는 모 교수의 헛소리 하나를 잡아서 깔까 했는데 글이 너무 무겁고 길어져서 다음에 할까 한다. 지난 몇년 동안 헛소리 까기를 참 열심히 했는데 효과가 신통치 않아서, 신이 나지 않기도 하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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