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를 혁파할 철학과 비전이 있는 정치집단은 어디 없나?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를 혁파할 철학과 비전이 있는 정치집단은 어디 없나?

- 김대호 (사회디자인연구소 소장)

 

오랫동안 비정규직 차별의 상징은 현대자동차 공장에서 있었다는 "오른쪽 바퀴를 끼우는 정규직과 왼쪽 바퀴를 끼우는 비정규직"이 작업복 색깔도, 이용하는 식당도 다르고, 임금과 복리후생의 차이가 2배가 넘는다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이렇게 무식하게 비정규직을 차별하는 곳은 없다. 일부 업무(은행 창구 여직원 업무)를 임금체계가 다른 별도 직군을 만들어 정규직화(실은 중규직화) 하거나, 아니면 일부 공정을 공장 밖으로 들어내어 외주화 하거나, 그것이 쉽지 않으면 기존 공장 안에 별도 (용역)회사를 만들어 사내 하청화 하였다.

물론 처절한 차별 철폐 투쟁=정규직화 투쟁이 벌어지는 곳은 주로 사내 하청이다. 하지만 중규직들도 차별 철폐 투쟁의 화약고다.

그런데 일부 공정을 공장 밖으로 들어내어 별도 회사를 만들어 버리면 "동일노동 동일임금' 깃발도 꼬리를 내려 버린다. 원래 이 깃발은 대기업-중소기업과 원청-하청을 뛰어넘고, 기업의 지불 능력조차 뛰어넘어 산업 차원에서 적용되는 논리임에도 불구하고......이 논리를 끝까지 밀고가면, 즉 원산지 유럽의 정신을 살리면, 일본과 한국에 뿌리내린 연공서열 임금체계를 부정하게 되어 있다. 노동의 가치가 동일하다면 30년 근속자나 3년 근속자나 처우가 거의 같아야 하고, 연봉이 7~8천만 원이 된다는 좋은 회사 30년 근무 정규직 경비원과 연봉이 1천만 원을 조금 넘는 아파트 경비원의 처우 격차가 거의 없어야 한다는 얘기다. 실제 복지국가의 모델국인 스웨덴이 이렇다. 비정할 정도로 노동 가치와 임금 수준이 연계되어 있다. 그래서 생산직은 30세 전후가 임금 피크다. 그러므로 현재 한국의 괜찮은 직장을 가진 사람 대부분이 반대할 수밖에 없는 논리다. 단적으로 대학 시간강사와 정교수의 경우, 노동 가치로만 보면 전자가 후자 보다 임금이 높아야 하는 경우가 적지 않을 텐데 이것이 현실에서 구현 되겠는가? 하지만 마냥 배척할 수는 없는 정의롭고 분명히 합리적인 원칙이다.

그런데 귤이 회수를 건너면 탱자가 된다고, 한국에서 통용되는 ‘동일노동 동일임금’ 논리는 원래의 정신은 온데 간데없고, 연공서열에 따라 지불 능력이나 교섭력에 따라 개념 없이 올라간 대기업 및 공공부문 정규직의 처우를 정상으로 여기고, 평등의 이름으로 비정규직의 처우를 여기에 맞춰야 한다는 논리로 재탄생하였다. 물론 여기에 소요되는 재원이 학부모 호주머니에서 나오는 경우는 슬그머니 꼬리를 내려버린다. 반면에 국민(납세자) 전체가 이 재원을 부담하는 경우는 반대 목소리가 약하기에 꼬리를 바짝 세운다. 대선 주자들이 이구동성으로 공공부문 비정규직부터 없애겠다고 하는 이유다.

‘동일노동 동일임금’이 뿌리 내리려면, 특정 직무, 직능의 근로조건 수준은 국가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과 산업의 생산성과 직무의 시장 가격과 연계되어야 한다. 이는 책임 있는 정치인 및 노조 지도자라면 깊이 고민해야 하는 간단치 않은 문제다. 물론 유럽 산별노조들은 이런 고민을 한다. 선진복지국가는 노조의 단결투쟁력 만으로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노조와 진보정치 세력의 사회와 산업에 대한 책임성과 기여, 부담과 권리, 이익 간의 균형감각(정의/공평 감각)에 의해 만들어진다고 보아야 한다. 노조의 높은 조직률도 노조의 넓은 안목과 균형감각에서 나온다는 것이 정설이다.

한국의 지독한 비정규직 차별과 남용이 정당하다는 얘기가 아니다. 문제의 뿌리를 바로 보고, 중장기적 해결 방향을 잡고, 실제 해법은 긴 호흡으로, 기득권의 반발과 충격을 고려해서 점진적, 절충적으로 실행하되 원칙은 잊지 말아야 한다는 것이다.

그 원칙은 첫째, 대기업/공공부문의 정규직=정상, 비정규직=비정상 패러다임은 틀렸다는 것이다. 둘 다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이는 1인당 GDP를 기준으로 직무/직업의 처우 수준을 국제적으로 비교해 보면 알 수 있다. 아니면 외부 노동시장 수준(민간 중소기업 수준)과 비교해 보아도 알 수 있다. 따라서 둘 다를 비정상으로 보고 노동 내의 재분배 방식, 중향평준화 방식을 기조로 잡아야 한다. 여기에는 원-하청, 대-중소기업, 공공-민간 부문이 다 해당된다. 여전히 자본의 가혹한 착취가 일어나는 영역도 있지만--그러나 임금 근로자의 비중과 노동소득 분배율을 연계 분석해 보면, 총자본의 과도한 착취·수탈이 문제가 아니다-- 그보다 더 극심한 것은 공공부문의 대국민 착취·수탈이고, 대기업 및 원청의 노사 담합에 의한 중소기업, 하청, 소비자에 대한 착취·수탈이다. 이 역시 산업의 가치생산 생태계를 선진국과 비교해 보면 명약관화다.

단적으로 현대기아차 미국공장의 생산직 평균임금은 미국의 1인당 GDP의 1배지만, 한국 현대기아차의 동일 직능은 1인당 GDP의 3~4배다. 바로 그래서 미국은 2교대를 3교대로 바꾸면서, 1교대만큼 고용을 늘렸고 한국은 심야 노동 5시간가량만 줄여서 최고의 일자리를 최고 플러스로 만들었다. 이런 구조에서는 사내하청 이나 외주 하청화는 필연이다. 이것을 못하게 틀어막으면 자칫 중국으로 아웃소싱 할지도 모른다. 이건 전경련 논리만은 아니다. 실제 상황이다. 2007년 이후 폭증한 해외투자(연평균 230억 달러)에는 이런 요소가 분명히 있다. 기업의 생존전략 차원에서 나가겠다고 하면 누가 무슨 명분으로 막겠는가? 또 기업은 원래 중장기 생존전략과 이윤추구 전략이 구분이 되지 않는다.

한국의 고용률이 낮고, 임금근로자 비중이 낮고, 대기업 고용 비중과 노조 조직률이 한참 낮은 것은 기업과 산업은 비실비실하고 불안한데 반해 대기업과 공공부문 중심으로 조직된 노조는 힘과 연륜에 어울리지 않게, 사회 전체나 후세대에 대한 책임의식이 스며들기 어려운 사회적 약자 의식(권리, 이익의 확장은 무조건 좋은 것이다)에 사로잡혀 너무나 사납고, 공공부문은 자기 자신을 모르고(우리 생산력 수준과 민간 수준에 비해 얼마나 높은 권리, 이익을 누리는지?), 정치는 부실, 무능하고, 시험 잘 봐서 좋은 자리를 차지한 오피니언 리더(교수, 변호사 등)들은 바닥 현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둘째, 당분간 철밥통 트랙과 플라스틱 밥통 트랙으로, 2개의 트랙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다. 철밥통은 사회적 약자와 육체노동자에게, 플라스틱 밥통(계약직)은 강자와 지식노동자에게 적용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플라스틱 밥통에는 밥을 많이 담고, 철밥통에는 밥을 적게 담아서, 철밥통들이 차라리 능력을 키워서 플라스틱 밥통을 갖고 싶도록 해야 한다. 그런데 공공부문의 특수성(처우가 너무 낮으면 부정부패가 창궐하니)을 고려하여 밥통 재질을 바꾸는 것은 선거로 뽑힌 정무직(4년 계약직 내지 5년 계약직)과 그가 임명하는 직책을 많이 늘리는 방식으로 시작할 수밖에 없다.

또한 비정규직을 많이 쓰는 청소, 시설 관리, 운전 직무 종사자를 정규직으로 전환 할 때는 민간 중소기업에 비해 별로 매력적이지 않도록 근로조건을 다운하든지 아니면, 계약직을 선택할 경우, 손해 보는 느낌이 없을 정도로 근로조건을 더 올려 주든지 해야 한다.

"어떤 구청 공무원이 계약직, 즉 비정규직 공무원인 주차단속원에게 정규직으로 전환해 주겠다며 성상납과 금품"을 왜 요구 했겠는가? 그만큼 팔자가 피기 때문이다. 성상납과 금품을 주면서 차지할 가치가 있기 때문이다. 2006년인가?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다는 탄식이 튀어 나왔던 기아차 광주공장 채용비리도 비슷한 구조에서 불거진 것이다.

구청 하급 공무원의성상납 요구에 분개하면서 공공부문의 상시 지속업무라면 예외 없이 정규직 해야지 웬 비정규직이냐고 성토하는 사람이 있다. 또한 2년 근무하면 공공부문이라 할지라도 무조건 정규직 전환 해 줘야 한다고 역설한다. 이 말에 깊이 공감하는 사람은 따뜻한 마음을 가진 착한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차가운 이성을 가진 사람은 아니며, 특히 복잡다단한 사회현상에 대해서는 공부를 좀 더 하고 발언해야 할 사람임은 분명하다.

채용에 영향을 행사하는 하급 관리자가 성상납과 금품을 요구 할 정도의 일자리, 영혼을 팔아서라도 취직하고 싶은 일자리는 그만큼 특권, 특혜가 있기에 존재 자체가 문제다. 선진국일수록 이런 자리가 적다. 그런데 기득권 조정이 힘들어 이런 존재를 인정해야 한다면, 최대한 공정하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경쟁 절차를 거쳐서 분배해야 한다. 구청공무원이 멋대로 채용하고 2년 기다리면 슬그머니 팔자 피는 정규직이 되도록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교장이나 이사장이 멋대로 임시 교사 채용하고, 2년 있으면 정식 교사가 되도록 하면 안 된다는 얘기다. 채용만 되면 2년 뒤에 자동으로 팔자가 피는 임시, 일용직 자리가 있다면, 필연적으로 채용 비리가 생기기 마련이다. 취직을 위해 영혼을 파는 사람이 있게 마련이다.

상시 지속 업무라면 예외 없이 정규직 해야 한다는 말도 상식은 아니다. 사실 이런 업무 드물다. 상시지속 업무라고 생각했는데 2년 있다가, 혹은 3~4년 있다가, 혹은 5~10년 있다가 없어지는 업무 많다. 스마트폰 등장으로 사라진 일자리를 생각해 보라. 지하철 무가지, 전자수첩, 소형 카메라, 플래시 등등. 그런 의미에서 고용유연성이 담보되지 않는다면 계약직 노동이 정상이고, 공정한 심사를 통해서 연장해 가는 방식이 보편화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이것이 세 번째 원칙이다.

한국 수출 품목 1위인 조선 산업의 수주 상황을 보자. 2007년 수주량이 32백만CGT였다. 하지만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 여파로 2009년 2백만CGT로 급감했다가 2010년 8백만CGT, 2011년 12백만CGT로 회복되는 듯하다가 2012년에는 상반기 3백만CGT(전세계 발주량의 34.5%)로 다시 급감했다. 고용보험조차 가입되지 않은 협력업체 노동자들은 물량 끊어서 소리 소문 없이 자르고(여기서는 해고는 살인이라는 단말마가 터져 나오지 않는다), 현대중공업 등 모기업은 엄청난 명퇴금을 지급해서 구조조정 하는 것은 잘못돼도 한참 잘못됐다. 이렇게 되면 좋은 직장일수록 신규 채용에 인색하게 되어 있다. 대기업 고용 비중이 줄어들 수밖에 없다.

유럽에서 구조조정 저항이 적은 것은 사회안전망이 튼실하기 이전에, 대기업의 근로조건이 민간 중소기업 수준과 비슷한 것이 핵심이다. 그런데 한국의 일부 진보 세력은 사회안전망만 본다. 높이(1인당 GDP대비 임금 수준), 격차, 사다리, 매트리스(사회안전망)를 종합적으로 보지 않는다.

한국은 단순 무식한 논리의 산실인 평등=상향평준화 프레임을 깨야 한다. 기여, 부담, 의무, 생산력과 권리, 이익, 혜택, 처우의 균형이자, 지속가능한 사회발전 원리인 공평 프레임 즉 합리적 불평등 프레임이 보편화 되어야 한다. 공평은 합리적으로 차별할 이유가 없으면 평등하게 대우해야 하기에 평등 가치를 그 안에 내장하고 있다. 공평은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격차만 문제 삼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산력 수준에 비해 대기업, 공기업, 공무원, 전문직, 교수 등의 처우(임금, 복리후생, 연금 등)가 적정한지, 지속가능한지, 고용률과 임금근로자 비율과 노조조직률 등이 올라 갈 수 있는지, 지식정보화 시대의 국가 흥망의 관건인 인재가 (공무원, 변호사 등 국가가 수량과 업역 등을 보호하는 영역이 아니라) 글로벌 경쟁이 일어나는 민간기업 분야로 갈 유인이 있는지 등을 묻는다. (네 번째 원칙은 고용보험과 기초노령연금을 급진적으로 강화하는 것인데 생략한다)

북한의 청년들은 음식을 못 먹어서 발육이 좋지 못하다. 총 보다 키가 조금만 크면 입대할 수 있다고 한다. 가슴이 찢어지는 비극이다. 그런데 관점을 달리하면 남한의 청년들은 능력을 발휘할 기회를 못가져서 정신 발육이 좋지 못하다. 대기업에서 혹은 벤처기업에서 사원, 대리로 펄펄 날아야 할 청년들이 기회 자체를 갖지 못해서 속절없이 삭아간다. 자신의 잠재력을 발양시키지 못하고, 패기가 죽어 간다. 가슴이 찢어지는 비극이다.

지금 한국은 진보나 보수의 철학, 가치, 정서 자체가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를 만들고 있다. 진보와 보수가 합작하여 청년의 기회와 희망을 목조르기를 하고 있다. 문재인, 안철수, 박근혜의 고용노동 비전, 정책을 보면 하나 같이 이 저주 받은 체제를 연장하려 하고 있다. 청년에게 최악의 체제를 혁파할 비전과 전략이 있는 정치인과 정치집단에 코리아의 희망이 있지 않을까?

* 본 칼럼은( http://www.chamyeo.net/846 )에도 게재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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