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통령 학교"의 시작

3~4년 전 쯤 마케팅에 일가견이 있는 한 선배(교수)가 나에게 "대통령 학교"를 해보라고 했다. 그런데 듣는 순간 내 느낌은 좀 황당했다. 대통령과 학교는 사회와 디자인 보다 훨씬 이질적이니까. 게다가 대통령을 파니 과대광고하는 사기꾼 냄새가 많이 풍겼다.
그런데 곰곰히 생각해 보니 말이 안되는 아이디어가 아니었다. 한국 최고의 정치인으로, 가장 폭넓게 보고, 멀리 보면서 역사와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고, 동시에 TV 연속극이나 보면서 눈물짓는 고달픈 삶을 사는 재래시장의 중졸 아줌마들과 영세기업에서 외국인 노동자들과 섞여서 일하는 월 100만원대 노동자들과도 끊임없이 대화를 나누는 대통령의 눈높이와 관심사에 부응하는 콘텐츠를 잘 가공해서 학교 형식으로 전달한다는 것이 의외로 그럴 듯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내가 발제자로, 토론자로, 방청객으로 참여하는 무수히 많은 토론회/심포지엄은 식자들이 모여서 "이게 길인지 저게 길인지"를 따지는 일을 한다. 복잡하고 장황하고 결론이 모호하다. 적어도 대통령이나 중졸 식당 아줌마들이 들을 만한 얘기가 아니다.
대통령이나 무지렁이 백성들에게 대한민국의 길을 말하려면 간단 명료하면서도 핵심을 찔러야 한다. 논리가 머리 속에 속 들어 오도록 구조화, 시각화 되어야 한다. 다양한 "썰"들이 일목요연하게 비교 분석 평가 되어야 한다.

한국 사회의 독특한 현실과 비전, 정책 패러다임의 혁신에 대해서 몇년에 걸쳐 수백 차례의 강연을 하면서 보니 내 얘기들이 그렇게 변모해 갔다. 그 과정에서 인수봉-남산, 맥주컵-안주접시 등 수많은 형상/이미지가 등장했다. 그래서 몇년 전까지 수많은 통계표로 가득찼던 강연 ppt에 그림이 엄청 늘어났다. 통계표 대신 그림이 들어갔다고 해서 깊이가 얕아진 것은 아니다.
그리고 업이 업(사회적 디자인)인지라 교육, 복지, 경제금융, 북한/통일 등에 대해서도 내가 각종 "썰"이나 "논객"에 대한 검증/감별사 역할을 하게 되었다. 그렇게 하다 보니 대통령(후보)가 들어도,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해서 관심있는 시민이 들어도 시간이 아깝지 않고, 졸리지도 않을 것 같은 강의를 구성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일(수요일) 세교연구소 회의실을 빌려 개강을 하는 "정책강톡-대한민국의 길"이 그렇게 탄생한 것이다. 당초는 교육, 정치, 복지, 경제민주화, 통일, 농업농촌 외에도 더 많은 분야를 다루려고 했으나 초기 수요자인 독서력이 왕성한 청년들을 고려하여, 경세서 저자와의 북토크를 넣었다.
어찌보면 강좌 개설 만큼 쉬운 것이 없다. 공간 빌려, (명망성 중심으로) 강사 섭외하고, 홍보만 하면 되니까. 대부분의 강좌가 이렇게 개설된다. 그래서 콘텐츠끼리 충돌하는 경우가 많고, 깊이가 없거나 헛발질 하는 (편향된) 콘텐츠도 많다.
그런데 대통령 학교가 되려면, 기획자들이 콘텐츠의 내용과 품질을 꿰고 있어야 한다. 다각도로 검증하지 않은 콘텐츠는 올리면 안된다. 무엇보다도 허명을 쫓으면 안된다. 진짜 선수를 초빙하고, 선수와 기획자가 서로 조율을 해야 한다. 또한 강사가 토론회나 심포지엄에서 발표하듯이 주저리주저리 얘기를 늘어놓게 하면 안된다. 시간은 없고, 고민은 깊고 넓고 구체적으로 해야 할 대통령(후보)에게 pt하듯이 집약화, 단순화, 구조화 해야 한다.

이렇게 준비한 프로그램을 내일 시작한다. 기획대로 될런지 모르겠다. 2012년 대통령 후보들이 하나 같이 좀 거시기 하지만 손을 쓸 방법이 없으니, 깨어있는 시민들의 수준을 올리는 것이 사회디자인연구소의 최소한의 의무라고 생각한다.
##사족 하나. 전쟁이 벌어졌는데 한가하게 학교 한다 하지마라. 안철수의 정책비전선언과 정치 혁신(?) 안에서 보듯이 기본 문제의식과 정책 기조가 다르면 손을 쓸수가 없다. "겐세이" 놓으면 안된다.

바둑 둬 본 사람은 알겠지만 이미 둔 덜컥수를 물릴 수 없다면 할 수 없이 그 수때문에 다음수와 그 다음수를 무조건 두어야 한다. 중원을 차지하는 수가 아니라, 대마가 2집 내고 사는 곤궁한 묘책을 내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면서도 한국 정치를 혁신할 탁월한 수라고 무조건 강변도 해야 하고........이는 문재인의 일자리 혁명(?) 정책에도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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