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대 대선의 교훈과 향후 전망(5)

18대 대선의 교훈과 향후 전망(5)

-젊은 김대중, 말년의 노무현이 아쉽다-

 

  
 
지구 뒤쪽 탐험가

내 나이 또래에는 지도책 보는 것이 어린 시절의 취미였던 사람이 적지 않다. 당시 집안에 책 자체가 별로 없었고, 무엇보다도 컬러판 책은 지도책 뿐이었기 때문이다. 틈만 나면 지도책을 봤으니, 당시 백 수십 개 나라의 이름, 위치, 수도 등을 그야말로 소상하게 꿰고 있었다. 종종 찾기 놀이도 했다. 그래서인지 우리 애들에 비해 가장 잘 아는 분야가 바로 지리 아니 지도 지식이 아닐까 한다. 하지만 나는 지구 뒤쪽이 있다고 생각하는 헛똑똑이 였다. 초등학교 4학년 때인 1973년 일기장에 쓴 나의 장래 꿈은 지구 뒤쪽을 탐험하는 탐험가, 모험가였다. 지금은 좀체 들어볼 수 없는 직업(?)인 탐험가, 모험가를 꿈꾼 것은 관련 만화를 많이 본 탓이다. 그런데 지구 뒤쪽은 뭔가? 당시 나는 빙빙 돌아가는 구형 지구본을 본 적이 없었다. 벽에 걸려 있는 세계 지도야 수없이 보았지만, 그것은 둥근 지구의 보이는 반쪽만 펼쳐놓은 줄 알았다. 착각을 일으킨 요인은 몇 개 더 있었다. 아폴로 우주선이 달의 뒤쪽에 착륙한다는 얘기도 어디선가 주워들었다. 물론 지구와 달의 공전과 자전현상의 차이를 알리가 있나? 아무튼 이런 저런 착각과 무지와 사실이 버무려져 황당한 꿈을 만들어 낸 것이다. 일기 검사하던 선생님이 내 생각이 잘못됐다고 빨간 펜으로 뭐라 뭐라 적어 놓았지만 금방 이해하지 못하였다. 한번 굳어진 사고 체계가 금방 바뀌지 않았다. 구형 지구본을 한번만 봤으면 단박에 이해했을 텐데……

 

어릴 때의 어이없는 착각이 생각난 것은, 박근혜 당선인과 문재인, 안철수, 이정희 후보와 한국의 주요 정치세력의 머릿속에 각인된 기업관, 시장관, 고용·노동관과 정치관, 역사관 등에 어떤 거대한 맹점이 느껴져서다. 현실 인식이 너무 표피적, 분절적, 일면적이라는 느낌이 강하게 들어서다. 사물(현상)에 대한 디테일한 정보, 지식이 아무리 많아도, 초등학교 4학년 김대호처럼 대전제가 틀려버리면 수많은 착각과 오류를 범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자신의 신념이나 가설(가치, 정책)이 현실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 몰라서, 결과적으로 양극화 심화, 일자리 말살, 반서민, 반노동, 한마디로 죽는 길, 지는 길을 양극화 해소, 일자리 창출, 친서민, 친노동, 사는 길, 이기는 길로 착각하기 십상이다.

 

지난 대선 과정에서 박, 문, 안 후보가 사실상 합의를 본 정책·공약이 적지 않다. 예컨대 공공부문이 솔선수범해서 비정규직을 해소한다는 것, 정년을 60세 이상으로 연장하고, 정리해고 요건을 강화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는 것, 최저임금 (대폭) 인상과 근로감독 강화(위반업주에 대한 처벌 강화) 등이다. 물론 모든 정책/공약은 현실에 존재하는 어떤 모순부조리를 개선하는 측면과 악화시키는 측면이 있다. 마냥 좋거나 나쁠 수가 없다는 얘기다. 그런데 수십 명의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연주하는 음악을 속속들이 듣고, 이해하면서 지휘를 하는 사람과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단지 손짓, 몸짓, 표정만 흉내 내서 지휘를 하는 사람의 차이는 금방 구별이 되듯이, 현실을 입체적, 종합적으로 이해하고 펼치는 정책과 (다른데서 재미 봤다고 해서) 그냥 흉내 낸 정책은 확연히 차이가 난다. 변화무쌍한 도로 사정을 모르고, 사전에 프로그래밍 된 대로 좌회전, 우회전을 하는 개념 없는 운전자(?)는 대형사고를 낼 수밖에 없다는 얘기다. 그래서 정책·공약의 대전제에 해당하는 현실 인식 내지 정책의 기본 개념을 묻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그러면 도대체 공공부문 솔선수범론과 정리해고 법적 요건 강화론 등의 현실 인식은 어떤 것일까?

 

공공부문 솔선수범론과 정리해고 법적 요건 강화론의 현실 인식

혹시 기업들의 단기적이고 과도한 탐욕(인건비 절감에 기초한 이윤 극대화) 혹은 신자유주의 사조가 비정규직과 사오정(45세 정년), 오륙도(56세까지 일하면 도둑놈)를 만들었다고 보는 것 아닐까? 정리해고 관련 법적 요건이 허술해서 정리해고가 남발되었다고 보고, 이를 강화하면 한진중공업, 쌍용자동차 분규를 막을 수 있었다고 보는 것 아닐까? 만약 현실을 이렇게 진단한다면, 이는 지구 뒤쪽 탐험만큼이나 황당한 발상이다. 상식적으로 공공부문에서 일하는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는 너무 쉬운 일이다. 무엇보다도 재원이 세금이다. 자기 재산 아니다. 그리스처럼 나라가 망하기 직전이 아니라면, 월급과 복리후생비는 재정 적자(채권 발행)를 내서 얼마든지 커버할 수 있다. 대체로 경기를 타지 않는 사업이고, 상시/지속적이라고 믿었던 직무 자체를 무용지물로 만들어 버리는 기술 발전이라는 괴물을 걱정할 필요가 없다. 물론 공공부문 정규직이 유럽처럼 전혀 선망의 대상이 아니라면 문제 될 것이 없다. 그러면 고용사정이 나쁠 때(경기가 나쁠 때)는 공공부문이 고용을 많이 해 주어야 한다. 마치 비가 많이 내리면 물을 가두고, 가뭄에는 방류하는 다목적 댐처럼…… 그런데 한국에서 공공부문 정규직은 고졸을 전제로 직무가 설계된 9급 자리 하나를 놓고 대졸자만으로도 수십 대 일의 경쟁률을 기록한다. 한번 정규직이 되면 거의 정년까지 가고, 민간(중소)기업으로 갈 산업 인재를 왕창 빨아가고, 민간(중소)기업 종사자들을 실패자, 2등국민(loser)처럼 자조하게 한다는 얘기다.

 

정리해고 법적 요건 강화도 고용불안의 원인과 보호의 대상을 오판한 것이다. 사실 기존의 대기업 정리해고는 한진중공업과 쌍용자동차에서 보듯이 일감 자체가 없거나, 재무적으로 거의 거덜 난 기업에서 벌어졌다. 정리해고 법적 요건이 허술해서 정리해고가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는 얘기다. 법적 요건은 한국이 충분히 강하며, 무엇보다도 대기업 노조는 그야말로 사생결단으로 투쟁을 하기에 법적 요건 보다 훨씬 강한 보호를 받는다고 보아야 한다. 또한 기업(자본) 자체가 취약하기 짝이 없는 대부분의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애초부터 이 혜택을 거의 볼 수 없다고 보아야 한다. 요컨대 정리해고 법적 요건 강화는 능력 있는 기업의 고용기피를 심화시킬 뿐이다. 이와 관련하여 김기원(방송대 교수)이 희망버스 운동을 소재로 다음과 같은 얘기를 했다.

 

"2011년 희망버스로 사회가 요동치는 속에서도 약 10만 명의 노동자가 정리해고 당했다. 다만 한진중공업 같은 대규모 사업장 정규직 노동자가 해당되지 않은 탓에 사회적 이슈로 부각되지 않았을 뿐이었다. 결국 희망버스 운동이 우리사회 정리해고 관행에 미치는 영향은 거대사업장 정규직에 국한될 뿐이었다. 여기에 희망버스 운동의 한계가 존재한다. 앞으로 희망버스 같은 운동은 거대기업 정규직의 고용안정성을 강화시킬 것이다. 웬만한 각오 없이는 기업가가 정리해고를 단행할 결정을 내리지 못한다. 이런 격렬한 사회적 갈등을 어찌 쉽게 감당하겠는가. 반면에 기업가들은 더욱더 정규직 채용을 꺼리고 비정규직을 늘리는 방향을 취할 수밖에 없다. 정부가 비정규직 채용에 대해 이런저런 규제를 가하면 온갖 편법을 동원할 것이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기업의 생존이 어렵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거대기업 정규직과 중소기업 노동자(및 비정규직)사이의 분단구조는 더욱더 강화될 공산이 크다. ("한국의 진보를 비판한다". p129~p130)

 

한국의 비정규직과 정리해고 문제는 많은 이윤을 남기면서도 야박하게 구는 악덕 기업주의 문제가 아니다. 물론 악덕 기업주가 없을 리 있겠는가? 하지만 문제의 핵심은 앙상하고 비실비실하고 불안한 기업(자본) 자체이다. 그런데 정년 보장을 못할 거면(정규직 못 시킬 거면) 아예 채용 자체를 하지 말고, 좋을 일자리를 만들 능력이 안 되는 기업이라면 차라리 문 닫으라고?? 현실을 아는 사람은 여기에 대해 감히 '그래야 한다'고 하지는 못할 것이다. 아아 이는 프랑스 혁명 당시의 풍자인 빵을 달라는 굶주린 민중들에게 "빵 없으면 과자 먹으면 되지"라는 말과 동격으로 취급될 것이다.

 

아무튼 취약하고 불안한 기업 문제의 해결은 정말로 쉽지 않다. 민간(중소)기업의 경영, 기술, 자금 능력 부족과 불공정 하도급 거래, 중국의 거센 도전, 시장의 변덕 등이 어디 예사 문제인가? 그런 점에서 박, 문, 안 등 유력 후보가 사실상 합의한 공공부문의 솔선수범론도, 정리해고 요건 강화론도 너무나 순진하고 비현실적인 가정 위에 서 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사회의 현실을 직시한다면, 그래서 공공부문이 진정으로 솔선수범을 할 것을 꼽는다면 그것은 시대가 요구하는 미래가치인, 연대(자조)와 공평과 합리적 고통분담이 아닐까 한다. 비정규직 해소와 선진국에 보편화된 복리후생 먼저 잡수시는 것은 결코 아니라는 얘기다. 구체적으로, 기존의 인건비 총액 내에서 노동시간 단축 등으로 고용을 최대한 늘리고, 연공서열제 폐지하고, 직무직능급제 확실히 실시하고(올릴데는 더 올리고), 민간 전문가에게 많은 직무를 실질적으로 개방하고, 노동의 양질이 같다면 임시직, 계약직의 처우를 더 높이고, 4~5시간의 파트타임 노동을 보다 매력있게 만드는 등, 비정규직이라 하더라도 (불합리한 차별을 없애서) 억울하지 않고, 떳떳하고 행복하게 살 수 있는 사회를 만드는 첫걸음을 떼는 것이다. 좀 더 나간다면, (소득재분배기능이 너무 강한) 국민연금에 비해 너무 후한 공무원 연금도 손질 좀 하고, 특히 투명성을 선진국 수준으로 올려 부패의 소지를 근원적으로 없애는 등 솔선수범 하는 것이다. 이런 정책 기조가 반드시 옳다고는 할 수 없어도, 적어도 보수와 진보는 자신이 철석 같이 믿고 있는 오래된 가치, 정책의 대전제를 의심해 보아야 한다는 것은 확실하다.

 

  
 
젊은 김대중과 말년의 노무현

1950~60년대의 젊은 김대중은 당시 진보(좌익) 및 야당의 주류적 통념과 관행에 많은 의문을 제기하였다. 예컨대 1955년, 김대중이 31세 때 사상계(창간호)에 기고한 <한국노동운동의 진로>제목의 글이 있다.

 

“자본주의의 제도 하에서는 노동자의 복리가 제대로 보장될 수가 없는 것은 이미 세계의 역사가 이를 증명하고 있는 바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나라에서는 한국 경제의 후진성을 지양하고 근대적 생산을 급속히 확충 발전시켜야 함을 서두른 나머지, 우선 자본주의를 발전시켜 놓고 그 후 서서히 노동자의 후생대책을 강구하여야 한다는 논자가 많은것 같다. 그렇지만 이것은 마치 수레바퀴가 지나간 자국에 고인 물속에서 구원을 호소하는 고기더러 동해 물을 끌어들일 때까지 기다리라는 개철지어의 장자고어와 마찬가지 모순으로서 그간에 있어서의 노동자와 전 근로계급의 고초와 희생을 무엇으로 감당해낼 것이며, 기술한바 공산당과 대항해서 노동자가 어떻게 굳센 민주 진영의 선봉으로서 싸우기를 기대할 수 있을 것인가?

 

그렇다고 필자는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당장에 한국에서 사회주의를 실시하도록 투쟁하여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 아니다. 아직 자본주의적 생산 양식의 초보조차 제대로 못 갖춘 우리나라 경제 형편으로 사회주의를 꿈꾼다는 것은, 그것이 노동자에 의한 생산수단만의 관장을 주장하는 소극적 사회주의건 생산, 소비 양면의 장악을 목적하는 적극적 사회주의건 도저히 현실을 무시한 공상에 불과한 것인 동시에 사회주의 그 자체 역시 각국에서의 실험의 결과 상당한 결함이 있다는 것도 이미 주지되어 있는 사실이다.

 

따라서 우리 나라 노동운동이 지향할 길은 죄악적인 착취와 지배를 자행하는 자본주의를 거부하는 일방, 우리의 실정이 용납지 않고 겸하여 전체주의적인 통제와 생산 능률의 후퇴를 면치 못하는 사회주의 자체도 이를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며, 결국 사유재산과 개인의 창의는 이를 어디까지나 존중하되 종래와 같은 자본만의 우위지배를 단연 배격하고 노동, 자본, 기술의 3자가 평등한 입장에서 서로 협동함으로써 생산의 급속한 향상을 기하고 그 이윤의 분배에 있어서도 노동자와 기술자 역시 응분의 참여가 허용될 것을 주장하여야 할 것이다“

 

김대중은 1965년을 전후하여 제1야당인 민정당의 윤보선 총재의 ‘한일회담 무조건 반대’ ‘한일회담은 매국’이라는 논리에 동의하지 않았다. “지금은 국가적 이익을 확보하면서 일본과 국교정상화를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때”라는 입장이었다. 이 때문에 윤보선 총재를 비롯한 강경파들로부터 “김대중은 여당 첩자다. 사쿠라다. 사쿠라 중에서도 왕사쿠라다”라는 비난을 들었다. 김대중은 이 시기를 오랜 정치 활동 중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로 술회하였다.

 

1965년 6월22일 한일협정 정식 조인이후, 야당 강경파들은 의원 총사퇴를 제안했지만 김대중은 반대하였다. 베트남 파병에는 반대하였지만, 파병이후인 1966년 9월에는 박순천 대표, 고흥문 의원과 함께 베트남 군부대를 맨 먼저 위문차 방문하였다. 1967년 공화당의 압승으로 끝난 7대 총선 과정에서 드러난 엄청난 부정에 항의하여 학생들이 시위를 하고, 신민당이 등원거부를 하자, 박정희 정권은 야당의 개헌 의구심을 불식시키기 위해 자진해서 15~20석을 내 놓겠다고 하였다. 김대중은 이를 받아들이고, 이참에 지방자치제 실시를 관철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그러나 신민당 내 강경파들은 선거의 전면 무효와 재선거를 요구하였다. 그런데 여야 대치 기간이 장기화 되고, 학생들의 시위가 수그러들자, 결국 대통령 사과는 ‘유감 표명’으로 바뀌고, 부정선거구의 재선거는 국회내특별조사위원회에서 처리하는 것으로 종결되었다. 여기에 대해 김대중은 이렇게 평가했다.

 

“나는 이 나라의 정치를 망쳐 독재정치를 초래한 것에 야당에게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한일협정 문제에 이어 이번에도 거의 실현 불가능한 ‘선거 재실시’를 요구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이는 ‘한일회담 절대 반대’ 주장과 궤를 같이 한 것이다. 이러한 야당의 불행한 체질이 이번에도 일을 그르치게 했던 것이다. 강경론과 극한투쟁이란 공허한 명분주의로 야당이 국민으로부터 멀어지고 독재정권을 돕는 결과를 몇 번이나 초래했는지 모른다.(중략) 1967년 말에 국회가 정상화 되었지만 극심한 부정선거가 있었던 2, 3개 선거구에서만 재선거의 길이 열리는데 그치고 말았다”(<역사와 함께 시대와 함께-김대중 자서전1>, 인동, 1999)

 

김대중의 정신과 방법을 가지고 지난 몇 년간의 민주당과 진보의 행보를 반추해 보면, 확신컨대, 적어도 김대중이라면 한미FTA에 대해 (민주통합당처럼) 말 뒤집기를 결코 하지 않았을 것이고, 제주해군기지와 관련해서도 안보 불안을 조성하는 언행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통합진보당과 선거 연대는 했겠지만, 정책 연대까지는 하지 않았을 것이다.

시대에 대한 거시적 통찰과 정치와 자신의 소명에 대한 치열한 물음을 주요하게 담고 있는 선비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에 입각한 행보는 유연한 진보, 새로운 진보를 화두로 삼던 말년의 노무현에게서도 뚜렷하게 보인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진보 진영에는 1950~60년대에 이어, 지금이 또 한 번의 시대적 전환기 징후가 역력함에도 불구하고 거시적 통찰과 근본적 의문을 제기하는 지적 풍토는 사라져 버렸다. 어쩌면 이것이 18대 대선에서 진보의 가장 결정적인 패인인지 모른다. 왜 이렇게 됐을까?

 

문제는 간절히 소망하는 공적가치의 부재 혹은 시대착오

내가 볼 때, 가장 핵심적인 문제는 진보와 보수, 여와 야, 초선과 다선을 막론하고, 간절히 소망하는 공적가치가 없거나, 잘못됐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의원 배지나 당권(공천권)이나 심지어 대통령 자리나 목숨과도 바꿀 수 있는 공적가치 내지 소명이 없거나 시대착오이기 때문이다.

 

노무현은 목숨을 걸고 공적가치를 추구하는 정치인의 대명사다. 김대중도 간절히 원하는 가치가 명확한 정치인의 전형이다. 김대중은 ‘목포의 전쟁’으로 명명한 1967년 선거에서 김구 선생의 ‘나의 소원’을 연상시키는 연설을 통해 간절히 원하는 가치를 피력하였다.

 

"나는 정치인으로서 소원이 있습니다. 여러분! 나는 나의 비원이 있습니다. 내 소원은 돈이 아닙니다. 2억도 싫고 20억도 싫고 200억도 싫습니다. 내 소원은 이런 것입니다. 나는 신라 삼국통일 이래 1500년 동안 처음으로 이렇게 국토가 갈라져 있는 사실을 그대로 둘 수가 없습니다. 해방 후 국토가 20여 년이나 분단된 이 사실이, 나는 통일이 없으면 우리에게 영원한 자유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평화가 없고, 절대로 영원한 건설이 없다고 확신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또 하나의 소원이 있습니다. 박정권 아래에서 건설입네, 수출입네, 증산입네, 하면서 몇 사람만 잘살게, 몇 사람만 부자 되게, 몇 사람만 배 떼기 부르게 만들고 부익부...... 재벌은 더욱 더 대재벌을 만들고 모든 국민은 헐벗은 가난뱅이요, 모든 국민은 더욱 빈익빈하게 만드는 이 특권경제를 타파하고, 내가 주장하고 우리 당책으로까지 채택된 중산층과 근로대중을 중심으로 한 대중경제체제를 실현해서 나라의 혜택이 국가의 혜택이 여기에 앉아 계신 여러분들 모든 사람의 피부와 뼈끝까지 골고루 돌아갈 그러한 올바른 경제정책이 이 나라에서 실현될 수 있도록 하는 것을 나의 절대적인 소원으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올시다."

 

간절히 소망하는 공적가치가 없거나 흐릿하면 양극화, 일자리, 지속가능성, 평화, 정치부실(불신) 등 핵심 현안 문제의 원인과 해법을 치열하게 연구, 고민하지 않는다. 정작 치열하고 집요하게 연구, 고민하는 것은 배지, 당권, 대권 쟁취 전략 전술이다. 국가경영 비전, 전략이 아니라, 선거 승리 전략, 전술 이라는 얘기다. 그것이 간절히 원하는 가치이기 때문이다. 당연히 정파나 의견 그룹이 존재할 수가 없다. 당권이나 공직 후보를 뽑는 전당대회를 계기로 개인적 인연,정실,후견 중심의 친노, 비노, 반노, 486, 이대, 호남, 최고위원 아무개파 등 계파만 난무하게 된다.

 

그런데 정치인이 신봉하는 공적가치 혹은 소명의식은 어디서 오는가? 그것은 시대와 현실에 대한 대관소찰(거시적 통찰과 미시적 살핌)과 자신에 대한 앎(통찰)에서 온다.

 

대관소찰은 논리적, 종합적, 입체적 사고와 실사구시, 가설검증 습성과 사회역사적(거시적) 통찰력에서 오는 듯하다. 이것이 잘 안되면 지구 뒤쪽 탐험 꿈을 꾸거나, 공공부문 솔선수범론이나 정리해고 법적 요건 강화론 같은 어이없는 정책을 내 놓게 된다. 그리고 나이 들면서 보니 사회역사적 통찰력도 바둑, 화투, 운동, 언변, 글재주, 수리, 음악, 미술 재능처럼 사람마다 편차가 큰 재능처럼 느껴진다. 노력해도 잘 안 되는 것은 조금만 노력해도 되는 사람을 존중하거나, 그런 사람에게 빌리면 된다는 얘기다.

 

자신에 대한 바른 통찰은 자신의 당위, 연민, 아픔, 분노, 책임의식의 결(흐름)을 알아야 하고, 동시에 자신의 특기·적성과 욕망, 기쁨을 알아야 한다. 소명은 어렴풋이 느끼는 것이고, 동시에 의식적으로 부여하는 것이다. 또한 말과 행동과 습관을 통해서 강제하고, 공고히 하는 것이다. 아무튼 시대와 현실에 대해 의문을 가지지도 않고, 아파하지도 분노하지도 않는 자는 공적 책임의식이 없고, 당연히 소명의식이 없다고 보아야 한다.

 

정치를 할 의사가 없는 사람을 끌어낸 결례!

그런 점에서 정치를 할 의사가 거의 없었던 문재인을 끌어내어 대통령 후보로 만든, 진보 진영의 발상 자체가 여간 심각한 문제가 아니다. 이것은 역사와 국민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냉정하게 보면 문재인은 노무현의 절친이자, 비서실장이었지만 노무현과 너무 다른 사람이었다. 문재인은 노무현과 달리 모순부조리의 가시덤불 숲을 온 몸이 상처투성이가 되더라도 과감하게 헤쳐나가는 신념과 강단이 없었다. 그런 점에서 문재인은 노무현의 정신과 방법을 구현하는 비서실장이 전혀 아니었다. 물론 박근혜처럼 모두가 만류하는 어떤 것(세종시, 당명, 당 칼라 변경, 좌클릭 등)을 강단 있게 밀어붙인 사령관도 아니었다. 어쩌면 자신의 두터운 업보도 잘 모르고, 자신의 두뇌와 마음 수준도 잘 모르면서, 권력 쟁취를 통해 생계를 해결하려는 (가치와 소명을 상실한) 생계형 정치 집단의 비서실장이었는지도 모른다.

 

한명숙 프로젝트(2010 서울시장, 2012년 당대표)와 문재인 대선 프로젝트(민주통합당 후보 쟁취, 12.19 본선)의 총괄 기획자는 이해찬으로 알려져 있다. 물론 4.11총선과 12.19 대선전은 그가 전적으로 지휘하지 못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하지만 한명숙, 문재인 프로젝트의 총괄 기획자라는 것은 확실하다. 이 프로젝트의 이면에는 한, 문을 내세워 충분히 승리할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었기 때문이다. 물론 이 판단을 수만, 수십만 명이 동조, 공유했기 때문이다. 따라서 깊게 성찰, 반성해야 할 것은 이런 근거 없는 낙관과 명백한 변칙수 내지 꼼수에 동조하거나 휘둘린 진보의 심리적, 사상적 뿌리다. 물론 나를 포함하여 한명숙, 문재인 프로젝트는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 사람들은 왜 이따위 변칙수를 막아내지 못하였는지 성찰, 반성해 보아야 한다. 이해찬도 문제지만 그에 휘둘린 나머지의 실력이 더 큰 문제라는 얘기다. 역사를 살펴봐도, 내 오십년 삶의 경험으로 봐도, 거대한 싸움 한번을 패한 장수는 지휘봉을 주면 두 번 세 번 네 번 계속 패한다. 진보의 운명을 갈랐던 키잡이 이해찬, 손학규, 박지원, 백낙청 등의 성찰과 반성을 듣고 싶다.

 

우리 시대가 요구하는 정치인은 윤동주 시인이 식민지 조국의 현실을 생각하면서 ‘잎새에 이는 바람에도 괴로워하듯이’ 한국 사회에 홍수처럼 흐르는 절망감, 불신감, 불안감, 결핍감, 억울함 등에 대해 괴로워하고, 자나 깨나 그 원인과 대책을 화두로 고민하고, 토론하는 사람이다. ‘잎새에 이는 바람'에서 민중의 한숨 소리를 듣고 괴로워하기도 하지만, 동시에 풍력 발전과 신재생에너지 산업(일자리)과 동아시아 에너지 협력과 인류의 미래를 생각하고, (공직이 없어도 스스로) 정책대안을 연구하는 모임과 이를 실천하는 시민운동을 조직하는 사람이다. 또한 좋은 의도(가설)를 무참히 배신하는 현실에 겸허하고, 진실에 용감하고, 올바른 길(노선)에 치열하고, 무엇보다도 ’역사신‘을 제대로 섬기는 사람이다. 이제 다시 끌려나오는 후보는 없어야 한다. 김대중, 노무현처럼 깊은 고뇌와 치열한 공부에 바탕을 둔 소명의식과 권력의지를 가진 사람 중에서 후보를 찾아야 한다. 그리하여 국민 다수가 권력을 믿고 맡길 수 있겠다는 느낌을 주는 실력 있는, 믿음직한 ’진국 후보‘를 만들어야 한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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