좌클릭 우클릭 논쟁은 무의미한가?

민주당의 총선, 대선 평가 과정에서 약방의 감초처럼 터져 나오는 논란이 ‘좌클릭, 우클릭, 중도’ 논란이다. 그런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좀 모호하다. 아니 각자가 가진 개념이 상이하다. 좌클릭 때문에 패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좌클릭’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정책적으로 다가가는 것이라고 본다. 비판론자들이 구체적으로 거론하지는 않았지만, 이는 중도개혁주의를 표방한 구 민주당 강령(2008.7.6과 )과 민주통합당 강령(2011.12.16)을 비교해 보면 명확하게 알 수있다. 전자에는 “성장/경쟁 지상주의”니 “시장/개방 만능주의”니 “무분별한 세계화”니 하는, 피해/방어 의식을 표현한 단어가 단 한단어도 없었다. 오히려 무역・통상 관련 기본 입장은 “능동적 개방화”였다. 이는 열린우리당 강령(2003.11.11)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민주통합당 강령에서 정책 노선의 철학, 기조와 관련된 부분은 이렇게 서술되어 있다. 

“현재 대한민국은 위기에 직면해 있다. 성장과 경쟁 지상주의, 토건과 개방 만능주의에 기반을 둔 체제는 사회경제적 양극화의 심화와 특권․기득권 강화, 환경파괴라는 대재앙을 가져왔다. 중산층의 붕괴와 서민․농어촌경제의 파탄, 실업의 증대와 비정규직의 확대, 청년실업과 경쟁교육의 강화, 저출산과 고령화에 따른 문제 등으로 국민들의 삶은 더욱 피폐해지고 불안해졌다.(중략) 우리는......공동체의 갈등과 분열을 야기하는 무분별한 세계화와 시장만능주의를 극복하고......평화와 생태의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철학과 가치를 정립하고 추구한다”
 
그런데 한국에서 정당의 강령을 유심히 보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도 민주통합당 의원들 중에서 강령을 제대로 읽어 본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하지만 친노든 반노든, 의원들의 주류적 정서는 강령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국민들에게 민주통합당의 좌클릭이 비교적 뚜렷하게 느껴진 것은 2012년 3월10일 발표된 “4.11 총선,‘국민 승리를 위한’ 범야권 공동정책 합의문”일 것이다. 이 문건의 한미FTA와 제주 해군기지 관련 부분은 다음과 같다. 
 
“2-4. 이명박 정권이 체결한 한미 FTA의 시행 반대 
(중략)국회에서 날치기로 통과시킨 한미 FTA는......국가의 존엄과 국민의 자존심에 반하는 굴욕적인 협상으로 무효......재협상과 폐기라는 양당의 입장 차이에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체결․비준한 한미 FTA의 시행에는 전면 반대한다“ 
  
“2-5. 제주 강정마을 군항공사의 중단과 재검토 추진
 (중략)우리는 즉각적인 공사의 중단을 요구한다. 또한, 우리는 19대 국회에서 공사계획을 전면 재검토하고, 필요할 경우 책임규명을 위한 국정조사를 실시한다“
 
이는 평범한 국민들의 안보 및 경제 불안 심리와 당의 정책적 안정감과 신뢰감에 적지 않은 손실을 입혔을 것이다. 요컨대 대선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좌클릭’을 지목하는 사람들이 부여하는 의미는 ‘한미동맹, 안보, 개방, 경쟁, 경제(성장), 사회 질서(기강)을 경시하는 노선과 행태’이다. 
 
그런데 ‘좌클릭’ 시비를 당의 정체성을 흔드는 것으로 여기는 사람들은 ‘좌클릭’을 반기득권, 친서민, 친노동, 친복지 정책의 총체로 본다. 그렇게 되면 좌클릭은 민주당의 양보할 수 없는 이념적 정체성으로 된다. 대선 패배 원인도 오히려 ‘좌클릭’을 제대로, 과감하게 못해서란다. 이런 사람들은 대체로 우클릭을 “성장/경쟁 지상주의” “시장/개방 만능주의” “무분별한 세계화와 미국 추종” 정도로 본다. 중도노선은 기업인들과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 친서민, 친복지 정책을 살살, 점진적, 절충적으로 하는 것이라고 본다. 누구의 ‘좌클릭’ 개념이 맞을까? 
 
확신컨대 원래 좀 모호한 중도 노선은 몰라도, 좌클릭 개념은  길가는 사람을 붙잡고 물어보면 알 수 있을 것이다. 국민적 상식은 좌클릭을 (친북은 아닐지라도) 민주노동당/통합진보당에 정책적으로 다가가는 것으로 규정할 것이다. 하지만 친서민, 친복지 정책을 제대로 하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좌클릭’ 논쟁은 분명히 의미가 있다. 좌우가 아니라 아래로, 제대로, 앞으로를 부르짖는 것은 면피성, 초점 흐리기성 말장난이다. 
 
그런데 좌클릭-우클릭 논쟁이 놓치는 진짜 중요한 프레임(기준)이 하나 있다. 그것은 국민들이 정치 세력을 바라 볼 때, ‘좌-중도-우’라는 기준으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좌-우가 X축 이라면, 일관성, 진정성, 신뢰감, 안정감, 품격이 Y축이다. 매력과 실력(국가경영 경륜)도 Y축이다. 요컨대 X축이 정치노선이라면, Y축은 행태, 매력, 실력이다. X축이 계층적,지역적 이해관계나 지성의 영역이라면, Y축은 상도의(도리)나 영성의 영역이다. 흔히 상도의를 무시하고, 약속을 손바닥 뒤집듯 하고, 자기 이익만 밝히는 자를 ‘양아치’라고 부른다. 김대중 전대통령이 정치인의 핵심 자질로 강조한 ‘서생적 문제의식과 상인적 현실감각’은 X축 보다는 Y축에 가깝다. 그런 점에서 Y축은 좌클릭과 우클릭과 다른 차원의 문제이다. 따라서 민주당의 치명적 문제는 거친 좌클릭 못지 않게, 말과 행동의 일관성, 진정성, 신뢰감, 안정감, 매력이 없다는 것이 아닐까? 서로 다른 개념으로 좌클릭-우클릭 논쟁을 벌이는 것도 문제지만, 표심을 좌우하는 정말로 중요한 기준 하나를 놓치는 것은 더 큰 문제라는 얘기다. 
 
다시 좌클릭-우클릭 논쟁으로 돌아와서, 국민적 상식에 입각하여 이 개념을 정의한다고 해도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친서민, 친노동, 친복지와 친안보, 친경제(성장)을 위해서는 실력있는 좌클릭과 실력있는 우클릭 둘 다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왜 그런가?
 
그것은 한국 사회의 독특한 이중구조 때문이다. 이는 산업연관표 등을 통해 부가가치의 분배구조를 살펴보고, 1인당 GDP 대비 산업/직능별 처우 수준 등을 살펴 보면 알 수있다. 물론 국제 비교도 해 봐야 한다. 산업 현장과 바닥 현실 등 실물을 천착해 봐도 알 수있다.  
 
지금 한국 사회는 대기업과 국가라는 성벽(보호막)을 가진 20%의 성안 사람(주로 대출 금리 10%이하)과 시장경쟁에 완전히 노출된 80% 성 밖 사람(주로 대출금리 20%이상)으로 양분되어 있다. 20%는 혁신 능력이 있는 기업의 임직원이거나, 노조처럼 단결력이나 직능협회 및 공무원처럼 로비력이 있거나, 권력이 있는 존재들이다. 이들은 우리의 생산력 수준(1인당 GDP)이나, 실제 하는 일에 비해서 너무 높고 안정적인 권리, 이익을 누린다. 이것은 선진국의 동일 직능(직업)과 비교해보면 안다. 민간중소기업 수준과 비교해 봐도 안다. 20% 성안 사람에는 공무원, 교사, 대기업 및 공기업 정규 직원과 국가가 수량과 업역을 정하는 변호사 등 ‘사’자 직업과 철저한 규제 산업인 금융산업과 도심 요지에 부동산이 있는 사람들이 주요하게 포함되어 있다. 이들은 한마디로 과보호, 과소 의무/부담(세금 등) 상태다. 한번 들어가면 중간에 나오지 않고 정년까지 가기에 함부로 늘리지 못한다. 일감이 없어서 구조조정이라도 하려고 하면 ‘해고는 살인이다’고 절규하며 결사 항전을 벌인다. 물론 이것은 취약한 사회안전망의 문제만은 아니다. 핵심은 과도하고 불합리한 격차 때문이다. 따라서 일감이 늘어나도 잘 나가는 산업/기업은 고용을 늘려서 대응하는 것이 아니라 장시간 노동으로 대응한다. 그래서 이 곳에서는 과로 상태가 된다. 아니 그것을 즐기는 측면도 있다. 연장근로 수당이 쏠쏠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80% 성밖 사람들은 일할 기회도 적지만, 기본적으로 하는 일에 비해 너무 낮은 처우를 누린다. 국가의 보호도 너무 적게 받는다. 시장경쟁의 파도에 알몸으로 노출되어 있다. 이는 너무 후한 공무원 연금에서, 너무 빈약한 고용보험에서 너무 낮은 고용률과 너무 높은 노인고용률에서 드러난다. 세계 최악의 출산률과 자살률과 교육시험 경쟁과 전쟁을 방불케하는 구조조정 갈등으로 불거진다.  
 
국가의 개인과 가족에 대한 책임성 강화가 좌클릭이라면, 또 자율 책임(경쟁) 개방 경쟁(소비자 선택권) 유연성 강화가 우클릭이라면, 지금 한국은 더 과감한 좌클릭과 더 과감한 우클릭이 필요하다. 실력은 기본이다. 실력 없는 과감한 개혁(좌우클릭)은 이전 보다 더 나쁜 상태를 초래하기 때문이다. 
 
독특한 이중구조를 가진 한국 사회는 더 과감한 사회안전망 강화, 노동시간 단축, 일자리 나누기, 고용임금 격차 축소가 필요하다. 동시에 더 과감한 (중소/영세 기업의 부담을 덜어주는) 고용임금 유연성 강화 정책, (학위/학벌/자격주의가 아니라) 실력주의, 성과주의 문화, 더 튼튼한 안보도 필요하다는 얘기다.
공정거래 정착, 독과점 해소, 소비자 보호 등을 통해 자본 간 재분배와 시장사다리의 복원도 필요하고, 동시에 노동-노동 재분배와 노동-비노동의 재분배(고용률과 임금근로자 비율의 상향)도 필요하다. 공공부문, 금융부문, 비교우위산업 등은 임금 감하를 포함한 노동시간 단축을 통해 격차를 줄이고 고용의 양을 늘리는 쪽으로 가야 한다. 2류, 3류들 혹은 루저들만 마지못해 중소기업을 가고 창업으로 내몰리는 구조, 교육시험 사다리를 통하지 않으면 좋은 직업, 직장을 가질 수 없는 구조를 혁파해야 한다. 또한 특수직연금 가입자도도, 국민연금 납입자도 기존에 납입하던 사회보험료 일부(3%)를 조세로 전환하고, 이를 기초로 두터운(월30~40만원) 기초노령연금을 만들고, 국민연금은 소득재분배 기능을 없앤 소득비례형으로 바꾸고, 기초생활보호대상자에게 가는 너무 많은 복지 혜택을 다소 얇게 하면서 대상자를 늘리는 방향으로 가야 한다. 
 
좌파적 정책과 우파적 정책의 결합 병진이 우리 시대의 정의요 상식이다. 이것이 진정한 진보요, 진정한 보수요, 진정한 중도다. 이것이 국민들이 고대하고 갈망하는, 대한민국을 책임질 정치 세력의 노선이다. -끝-
 

 


덧글

  • 2013/03/26 18:15 # 답글 비공개

    비공개 덧글입니다.
  • 2013/03/26 18:29 # 비공개

    비공개 답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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