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 2030’ vs 한나라당 ‘뉴 비전’

비전 2030’ vs 한나라당 ‘뉴 비전’

-대한민국이 어디쯤 있는지를 모르고 있다-

이 글은 김대호 소장의 <2013년 이후>(백산서당)의 2부 8장(280~288쪽)에서 발췌한 글입니다.

 

역대 정부는 말할 것도 없고, 웬만한 정치집단도 자신들의 비전(이상), 전략, 정책, 중심가치 등을 집대성한 국가비전 혹은 비전체계도(vision house)를 가지고 있다. 이 핵심은 어디에서(from) 어디로(to) 가자는 것이다. 따라서 그 기초는 한국사회가 “어디쯤 와 있는지”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고, 멋지게 채색한 외벽과 지붕에 해당되는 것이 “어디로 가겠다”는 비전이다. 철학, 가치, 정책 등은 이 건물의 기둥, 대들보, 서까래 같은 골조에 해당된다. 건물도 외관만 멀쩡한 영화 세트장용이 있고, 2천 년 이상을 가는 걸작이 있는 것처럼, 국가비전도 좋은 단어를 얼기설기 엮은 일회성(선거 홍보물용)도 있고, 국민적 열망과 시대의 지혜를 집약한 정치집단의 영혼에 해당되는 것도 있다. 이는 대체로 위대한 나라를 만드는 시방서 내지 설계도가 된다.

국가비전의 기초에 해당되는 현실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 튼실하려면, 산업구조, 고용구조, 격차구조, 소비지출구조(가계부), 조세재정구조와 갈등, 질환, 범죄 등에 천착하는 수고로움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한국이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가 보이고, 성장과 통합을 가로막는 핵심 걸림돌(중심고리)도 보이고, 정치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와 그렇지 않은 문제가 분별이 된다. 하지만 이것이 흐릿하거나 부실하면 그 위에 올라가는 모든 비전, 정책이 그저 좋은 말의 유희 이상이 안 된다. 한국의 유력 정당이나 후보가 흔들어 댄 선거공약집에 약방의 감초처럼 들어가 있는 비전체계도 대부분이 단지 좋은 말의 성찬으로, 사실상 죽은 비전이 되어 버린 것은 무엇보다도 현실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 흐릿하거나 부실하기 때문이다.

먼저 역대 정부와 주요 정당의 비전체계도를 살펴보자.

김대중 정부는 국가이상으로 ‘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병행발전’을, 국정지표로는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 민주주의와 경제발전 병행, 21세기 정보화사회 준비’를 내걸었다. 한국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종합적 통찰의 핵심이자 성장과 통합의 최대의 걸림돌로 간주한 것은 ‘관치경제’였던 것으로 보인다. 여기에 입각하여 4대부문 개혁과 복지개혁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노무현 정부는 국가이상으로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 중심국가 건설’을, 국정지표로는 ‘국민과 함께하는 민주주의, 더불어 사는 균형발전 사회, 평화와 번영의 동북아시대’를 내걸었다. 그리고 이전 정부와 달리 ‘원칙과 신뢰, 공정과 투명, 대화와 타협, 분권과 자율’이라는 4대 국정원리를 내걸었다. 확신컨대 이것이야말로 노무현 정부의 정수로서, 한국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종합적 통찰이 집약되어 있는 것으로 보인다. 단적으로 원칙과 신뢰를 뒤집으면 반칙과 특권이 난무하는 사회가 되며, 분권과 자율을 뒤집으면 중앙집중 집권과 권위주의 사회가 된다. 공정과 투명을 뒤집으면 불공정과 불투명사회가 된다. 이와 같은 현실인식(주된 대립물)에 입각하여 대통령의 도덕적 신뢰 회복, 정경유착 폐절(대선자금 수사), 사정․정보기관의 정치적 중립화, 당정분리, 지역균형 발전(행복도시, 혁신도시 등)을 추구하였다. 이것이 현실의 벽에 부딪히면서 선거제도 개혁(대연정 등), 헌법개정, 언론개혁, 한미FTA 등에 정치적 화력을 집중한 것으로 보인다.

노무현 정부는 2006년 8월에 ‘비전 2030’을 발표했다. ‘함께 가는 희망한국’이라는 총 비전 아래 정책적 목표, 전략, 실천수단을 체계적으로 정리하였다. 이는 참여정부의 3년여 국정경험과 지혜의 총화라고 할 수 있다. 만약 노무현 대통령이 연임을 했다면 한국사회는 ‘비전 2030’의 레일 위를 달려가고 있었을 것이다. ‘함께 가는 희망한국’은 성장과 복지의 선순환구조가 정착되고 국민 누구나가 ‘희망’을 갖는 ‘기회의 나라’라고 설명하였다. 목표는 ‘혁신적이고 활력 있는 경제, 안전하고 기회가 보장되는 사회, 안정되고 품격 있는 국가’이다. 전략은 ‘성장동력 확충, 인적자원 고도화, 사회복지 선진화’ 등이다.

 

<그림 8-2>] ‘비전 2030’ 체계도

 

  
 

 

 

<그림 8-3> ‘비전 2030’의 진단, 처방 개념도

 

  
 

그런데 이 비전의 기초에 해당하는 수많은 문제(증상)의 원인(주된 대립물) 진단은 어떨까? ‘비전 2030’은 ‘선성장 후복지’ 패러다임(박정희 패러다임)을 지목하였다. 즉 성장전략은 ‘정부주도, 불균형성장, 양적 투입위주’였고, 복지전략은 ‘가족․공동체에 의존, 구호적 복지’였고, 투자의 중점은 ‘물적 자본’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진단에 근거하여 ‘성장과 복지가 함께 가는 ‘동반성장’ 패러다임’을 대안으로 제시하였다. 하지만 이는 1970~80년대 한국의 성장패러다임에 대한 진단으로는 맞을지 모르지만, 2006년 당시 한국의 성장패러다임에 대한 진단으로는 크게 어긋났다고 보아야 한다. 그러므로 이런 부실한 비전으로는 설사 연임에 성공했다 하더라도, 우리가 목도하고 있는 양극화, 민생불안, 청년세대와 비기득권층의 절망과 분노 등은 해결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복지국가소사이어티’가 정식화한 ‘역동적 복지국가론’은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의 핵심을 ‘민생불안’과 ‘양극화’로 진단하고, 이 문제의 뿌리(핵심 대립물)를 “외환위기 이후 급속히 확산된 승자독식의 삭막한 경쟁지상주의(시장만능주의)와 복지결핍” 또는 “신자유주의 양극화 성장체제와 잔여주의 복지제도”에서 찾았다. 당연히 진단 속에 처방이 들어가 있다. ‘반신자유주의, 보편주의적 복지제도’가 그것이다. 하지만 이것이 얼마나 편협한 진단이고 부실한 처방인지는 앞에서 말하였다.

한나라당은 17대 대통령선거 공약집에서 자신들의 국가비전을 ‘선진일류국가 국민성공시대’라는 이름하에 3대 비전, 10대 희망, 43대 과제, 92개 약속으로 정말 멋들어지게 집약하였다. 3대 비전은 ‘잘사는 국민, 따뜻한 사회, 강한 나라’이다. 10대 희망은 3대 비전에 각각 3개(살아나는 경제, 중산층이 두터운 나라, 함께 번영하는 경제), 3개(생애 희망디딤돌 복지, 안전한 사회, 그늘과 차별이 없는 사회), 4개(소프트파워가 강한 나라, 아름답고 살고 싶은 국토 재창조, 당당한 외교, 평화로운 한반도, 일 잘하는 실용정부)로 나누어 넣었다. 그 아래 7% 성장, 일자리 300만 개, 예산20조 원 절약, 양극화 해소, 서민부담 경감, 생애주기별 맞춤형 복지, 가난이 대물림되지 않는 사회, 학교 만족 두 배 사교육비 절반, 한반도 대운하 정책 등을 배치하였다. 하지만 비전체계도의 토대에 해당되는 수많은 문제의 뿌리에 대한 통찰은 흐릿하고 부실하다. “건국, 산업화, 민주화를 제도적으로 완성했으나 문화와 의식의 내실화가 이루어지지 않는 현실”을 주요하게 지목한 듯하다. 그런데 아무래도 대선 공약집이다 보니 객관적 진단은 뒷전이고 상대에 대한 비난이 앞선다. “이 모든 문제는 무능한 정권의 분열주의적 사고와 독선, 밀어붙이기가 낳은 국가적 불행”이라고 한다.

한편 2011년 7월에 발표한 한나라당 ‘뉴 비전’은 ‘(모든 국민이 더불어 행복한) 선진복지국가’를 총비전으로 표방하고, 이를 선진경제, 평생안심복지, 선진정치 등 5개 범주로 나눠서 전개했다. 그 아래 자율, 책임, 공정, 법치, 상생, 통합이라는 원칙을 깔았다.

 

<그림 8-4> 한나라당 뉴 비전

 

  
 

‘뉴 비전’이 제시한 ‘원칙’은 당위를 늘어놓은 듯하지만, 참여정부의 4대 국정원리처럼 한국사회의 현주소, 핵심적인 모순부조리에 대한 종합적 진단이라고 보아야 한다. ‘뉴 비전’이 제시한 ‘원칙’은 자율․책임, 공정․법치, 상생․통합이다. 설명은 이렇다.

 

‘자율’은 개인의 자유와 개성이 존중되는 가운데, 스스로의 노력과 의지로 자신의 삶을 개척하고, 근면과 창의를 장려하는 정신이다. ‘책임’은 국민 모두가 자유롭게 사고하고 행동하되, 그 결과에 대해서 스스로 책임을 지는 정신이다. 자신의 자유를 위해 남의 자유를 침해하는 사고나 행위가 용납되어서는 안 된다. ‘공정’은 모든 국민에게 공평한 기회가 보장되고, 자신이 사회에 기여한 만큼 정당한 보상을 받는 원칙이다. 특권․부정․부패와 같은 불공정이 용인되어서는 안 된다. ‘법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은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하고 그것을 위반할 땐 엄격한 처벌을 감수하는 원칙이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이 필요하다. ‘상생’은 경쟁은 장려하되 패자가 부활할 수 있고 약자를 배려하는 정신이다. 사회 각 영역 간에 불균형과 격차를 줄이고 동반 성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통합’은 다원화된 민주사회에서 서로의 차이를 존중하며 같음을 찾아가는 포용과 공존의 정신이다. 분열을 지양하고 통합을 추구하는 정신의 구현은 선진화의 기본 전제이다.

 

그런데 이들 원칙은 공정과 법치를 제외하고는 대립물이 좀 모호하다. 타파하려고 하는 모순부조리가 선명하지 않다. 특히 상생, 통합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그냥 좋은 말이고, 자율, 책임은 주로 개인에게 책임을 돌리는 뉘앙스가 강하다. 단적으로 참여정부의 4대 국정원리에 들어 있던 (분권과) ‘자율’은 지방분권, 당정분리, 탈권위, 검찰․경찰․국정원․국세청의 정치적 중립화 및 자율화를 함축하고 있었다. 그런데 ‘뉴 비전’의 자율, 책임은 국가(복지)에 의존하지 말고, 근면하고, 공중도덕 잘 지키고(남의 자유 침해하지 말고), 경쟁 결과에 승복하라는 뉘앙스가 강하다. ‘뉴 비전’의 현실에 대한 종합적 통찰의 부실함은 ‘법치’에 대한 해석에서 극명하게 드러난다. ‘뉴 비전’은 ‘법치’를 준법과 거의 동일시한다. 그런데 법치는 원래 권력자의 자의적 권력행사를 견제하는 데 초점이 맞춰져 있는 가치이다. 요구의 대상이 권력자인 것이다. 그런데 독재시대의 이데올로기적 관성을 다 씻어내지 못해서인지, ‘법치’는 “사회적으로 합의된 법은 국민 모두가 지켜야 하고 그것을 위반할 땐 엄격한 처벌을 감수하는 원칙”으로 변질되었다. ‘법치’가 국민에 대한 ‘준법’ 요구로 바뀐 것이다. ‘사회 지도층의 솔선수범’은 이를 힘 있게 요구하기 위한 것임은 길게 설명할 필요가 없다.

더 큰 문제는 ‘법치’든 ‘준법’이든 한국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오판의 산물이라는 것이다. 지금 한국사회의 핵심적인 모순부조리는 있는 법을 안 지키는 불법, 탈법이라기보다는 오히려 합법적․제도적․관행적 불의이기 때문이다. 이것은 상식이라는 잣대로 보면 분명히 보인다. 1953년 체제와 1987년 체제의 그늘은 여기에 속한다.

한나라당의 현실인식과 정치․정책적 지혜의 총화인 ‘뉴 비전’은 한나라당의 야심작인 17대 대선 공약집과 별로 상관이 없어 보인다. 이명박 정부의 한계, 오류에 대한 성찰이 거의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이는 대통령제 특유의 정부, 대선캠프, 정당의 분리․단절 현상과도 관련이 있지만, 더 결정적인 것은 이것이 기본적으로 기초가 부실한 불량 고층건물(비전)이기 때문일 것이다.

박세일은 <대한민국 선진화전략>과 <대한민국 국가전략>을 통해 ‘선진화’, ‘부민덕국’ 등으로 명명된 국가비전을 제시하고, 철학, 가치, 전략을 체계화한 ‘공동체 자유주의’를 주창하였다. 하지만 내용을 뜯어보면 성장과 통합의 주된 대립물을 무능정치와 포퓰리즘(대중영합주의)으로 설정하고, 대안은 진보와 보수의 대통합 정치(1.5당 체제), 철인정치(국가전략원) 등을 제시하고 있다. 하지만 진단의 추상수준이 너무 높고, 대안은 책상물림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김대중의 표현을 빌리자면 ‘서생적 문제의식’에는 부합되지만, ‘상인적 현실감각’에는 전혀 맞지 않다는 얘기다.

비전 2030도, 뉴 비전도, 민주노동당 등 모든 정당들도 하나같이 한국사회가 앓고 있는 중병의 다양한 증상은 열거한다. 양극화, 민생불안, 중산층 붕괴, 경제사회적 활력(역동성) 저하, 괜찮은 일자리와 사회안전망 부족, 저출산 고령화, 과도한 사교육비와 높은 등록금, 높은 대학진학률, 과도한 해외의존도, 에너지자원 위기, 극심한 대립갈등, 사회적 불신 등등. 또한 세계화, 지식정보화, WTO, FTA, 경제블록화 등 세계적 추세도 잘 알고, 북한, 북핵위기의 심각성도 잘 안다. 하지만 산업․고용구조 등에 대한 천착이 결여되어 있고, 결과(증상)와 원인 간, 주된 원인과 부차적 원인 간의 복잡한 상호관계에 대한 이해가 얕다. 다시 말해 한국사회가 어디쯤 와 있고 어디로 가야 하는지, 무엇에 발목이 잡혀 있는지, 수많은 고통, 불안, 갈등을 해결하는 중심고리가 무엇인지에 대한 통찰이 흐릿하고 부실하다. 또한 나름대로 열심히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국민들에게 엄청난 실망감을 안겨 주고 사라진 역대 정부들의 좌절과 실패에 대한 성찰도 결여되어 있다. 결국 문제해결의 중심고리를 제대로 찾아내지 못하고 있다.

아니,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키는 경우가 많다. 고환율에 근거한 수출촉진 정책, 4대강사업, 김진숙과 희망버스에 대한 환호, 한미FTA 매국론, 반값등록금 정책 등이 대표적이다. 더 나은 미래를 향해 도약하기 위해 힘차게 발을 구르는데, 딛고 서 있는 발판이 푸석푸석하거나, 아예 허공이면 어떻게 되겠는가? 푸석푸석한 토대 위에 서 있는 유럽풍 또는 미국풍 고층건물이 온존할 리 있겠는가?

지금 한국에서 굴러다니는 국가비전은 기본적으로 ‘좋은 말과 당위의 성찬’일 뿐이다. 그러다 보니 비전, 목표, 전략 등 상부구조는 약간의 첨삭, 보완만 하면 10~20년 뒤에도 쓸 수 있지 않을까 한다. 참여정부의 비전체계도에 약간만 덧칠하면 이명박 정부도 쓸 수 있고, 2007년 한나라당의 3대 비전․10대 희망․43대 과제 중 한반도 대운하 등 몇 개만 손보면 2012년 민주당의 비전으로도 쓸 수 있다는 얘기다. 하지만 대중에게 감동과 기대를 주고 집권 후에는 정책의 바이블이 되는 그런 비전은 되지 못한다.

현재 한국 정치집단이나 정부(관료)가 제시하는 국가비전의 주된 문제는 당파성, 이념성(진보성, 보수성)이 아니다. 논리적 정합성 문제도, 목표․원칙의 우선순위 문제도 아니다. 그것은 비전하우스의 초석(주춧돌)에 해당하는, 한국사회의 현주소에 대한 통찰이 부실하고, 원인과 결과가 난마처럼 얽히고설킨 데서 문제해결의 중심고리와 급소를 정확히 찾아내지 못하는 것이다. 그 다음 문제가 다양한 역풍을 뚫고, 비전을 구현하기 위해 흔들림 없이 전진하는 뚝심과 실행력이다.


덧글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