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율스님과 각주구검 고사가 생각난다.

세월호 특별법과 유민 아빠의 단식을 계기로 분출하는 안타까움, 분노, 응원, 훈계의 목소리를 듣다 보니, 2003년 지율스님과 각주구검(刻舟求劒)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각난다. 지율스님은 2003년 천성산 도룡뇽을 살리자며, 죽기살기로 45일간의 단식 투쟁을 감행하며, 도룡뇽 대리 소송을 주도했던 분이다. 

각주구검은 (초나라 사람이) 배를 타고 가다가 칼이 물에 빠지자 뱃전에 칼자국을 내어 표시해 두었다가 나중에 칼자국이 난 뱃전 부근에서 칼을 찾았다는 고사에서 나온 말이다. 

이 고사성어는 한때 유효했던 가치, 이념, 문화(뱃전의 칼자욱)와 변해 버린 시대의 엇박자를 상징하기에, 큰 패러다임 교체기에 정치사회 운동을 하는 사람들의 머리 맡에 두고 비춰볼 만한 경구다. 

세월호 특별법과 유민 아빠의 단식을 가장 안타까워 하는 사람들은, 내가 알기론 민주화 투쟁에 앞장 섰거나, (앞장 선 사람들에게) 큰 부채 의식이 있는, 참 아름다운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광주항쟁과 유월항쟁에 앞장 섰거나, 그 항쟁의 세례를 가장 많이 받은 사람들이다. 한겨레신문과 '민주'자 붙은 다양한 조직들이 그 선두에 있다. 

그런데 야속한 말인지 모르지만, 이제는 뱃전에 금 그어 놓고 칼 찾겠다고 하는 초나라 사람과 뭐가 다른지 한 번 의심해 봐야 하지 않을까 싶다. 내가 알고, 나를 아는, 페북 등에서 열을 내는 수많은 친구, 선후배, 지인들에게 하는 말이다. 

우리 시대 민주주의에 대한 위협은 어디서 올까? 자유롭고 정의롭고 풍요롭고 안전하고 지속가능한 대한민국에 대한 위협은 어디서 올까? 과거에는 단연 휴전선 너머(내통 세력?)와 이 위협을 빙지한 이승만, 박정희, 전두환 독재로부터 왔다. 지금은 어디서 오나? 

긴 얘기 짧게 줄이면, 촛불-행진 좋아하고, 광화문, 시청 광장의 농성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질문을 치열하게 하지 않으면, 자칫 성조기-태극기 들고 애국가 부르며, 집회 방해나 일삼는 사나운 노인 '애국 폭력단'과 비슷한 존재로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아마 이들에게 많이 짜증내고 조롱하고 야유했을 사람이 많을 것이다. 그런데 그러는 나는, 또 당신은 이 분들과 얼마나 다를까? 

오늘 한겨레신문 1면 톱 제목은 "박대통령이 응답하라"다. 출근 길에 들은 라디오(mbc시선집중)에서는 (야권의 대변인을 자처하는 듯한) 교수가 박근혜 보고 결자해지하란다. 어제 한겨레신문의 이제훈 사회정책부장은 "대통령의 7시간, 그 기괴함에 대하여"라는 제목의 칼럼에서 박근혜의 근무태만, 일탈, 무능으로 인해 304명이 수장된 것처럼 얘기한다. 

"세월호가 침몰한 4월16일, ‘박근혜의 사라진 7시간’의 진상은 철저히 규명돼야 한다. 그 뒤 살아 돌아온 세월호 승객이 단 한명도 없기 때문이다..... 국민 304명이 수장될 절체절명의 순간에 대통령이 챙겨야 할 다른 중대사가 도대체 뭔가? 청와대 참모들이 언제 무엇을 어떻게 보고했는지, 그에 따라 대통령은 어떤 판단을 하고 무엇을 어떻게 하라고 지시했는지, 반드시 밝혀져야 하는 이유다. 그래야 책임 소재를 정확하게 가려 대참사의 재발을 방지할 수 있다"

박대통령은 말할 것도 없고, 그 경쟁자와 정치권 전체의 무능과 시대착오에 대한 비판 올림픽이 연다면 나는 아마, 지속성과 집요함에 관한 한 메달권에 들 것이다. 대선 전부터 박, 문, 안의 무능에 대한 비판의 글들을 얼마나 쏟아냈던가! 지금도 마찬가지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박근혜의 부적절한 대처에서 이 참사의 책임을 묻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생각한다. 사건 초기 몇 시간을 복기해 보라. 전원 구조 속보도 떴고, 또 그것이 상식에 완전히 부합되었다. 적어도 4.16 당일 오전 11시 이후의 대처 잘못으로 추가적으로 사망할 사람이 있는 것 같지가 않다. 유족들과 국민들을 손에 땀을 쥐게 한 에어포켓 생존자 가능성은 어디에도 없다. 슬프게도 11시 이후는 구조가 아니라 인양 이었던 것이다. 따라서 11시 이후 정부 수뇌부와 안행부, 해경 등이 우왕좌왕 하는 등 부적절하게 대처한 것은 분명하지만--당연히 여기에 대한 책임을 물어야 한다--, 이 때문에 살 사람이 죽은 것 같지가 않다.  

나는 우리 시대 민주주의에 대한 커다란 위협 중의 하나도, 사회의 성장과 통합, 안녕과 질서의 강적 중의 하나도 오로지 대통령이라는 사람과 권력 주체(여당)만 바라 보는 협소한 안목이 아닐까 한다. 

사나운 애국 할배들이 이북과 그 내통 세력만 바라보듯이, 야권과 진보는 청와대만 바라 보다 보니, 세월호 승무원, 선주, 해경, 구난업체, 규제감독자, 관료, 정치인, 대통령, 언론, (스스로 선의 편이라 자부하며 책임추궁을 해 대는) 인터넷 왈왈이 등 모두에게서 공공 의식, 직업윤리, 직무능력/소명, 긴 안목, 이성적-실사구시적 사고력 등을 모조리 앗아가 버린 이 저주받은 시스템과 문화가 책임추궁 대상에서 빠져나간 것 처럼 보인다. 이 중에는 깊이 파헤쳐야 할 것들도 많지만 수사기소권으로 단죄할 대상이 아니다. 한겨레신문의 이런 태도가 수사기소의 대상이 아니듯이...... 

도대체 대통령이 전지전능한 신인가? 대통령이 무능한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지만, 대통령이 그 시간에 집무실에 있었다면 참사가 안터졌나? 한 두명이라도 더 구했을까? 사건과 사고의 인과관계를 따지지 않고, 매사를 대통령 책임으로 돌리는 이 악습이 지긋지긋하지 않나? 골프공만 안맞아도 '놈현' 때문이라는 놈들과 뭐가 다른가? 

등잔 밑이 어둡다고, 온통 수사기소권과 대통령의 7시간에 주목하다 보니 진짜 찬찬히 살펴야 할 진짜 강적들--잘못된 시스템과 문화가 만들어낸 평범하지만 무서운 악덕들--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내가 수사기소권과 유민 아빠의 초췌한 얼굴에 발을 구르는 사람들에게서 불편함을 느끼는 이유다. 아니 통탄하는 이유다. 

또 하나 민주주의에 대한 거대한 위협이 있다. 그것은 바로 지율 스님과 유민 아빠 식의 행동이다. 불의가 정의와 상식과 민주주의를 무참히 짓밟고 있다면 한 목숨 초개처럼 바쳐 악을 응징하고, 대중을 일깨우는 것은 전적으로 정당하다. 

그런데 지금이 그런 시대인가? 
사람의 생각은 제각기 다르다. 천차만별이다. 나도 내 목숨과 바꾸는 한이 있더라도 실현하고 싶은 가치가 있다. 엉뚱한 데서 에너지 소진하는 정치권을 보면 확 쓸어 버리고 싶은 충동이 불끈불끈 솟는다. 바로 그래서 선거라는 절차가 있고, 국회와 법원과 정부가 있는 것 아닌가? 게다가 지금은 저비용으로 자신의 생각을 널리 피력하고 공유할 수 있는 sns 도 있지 않나? 

정토회와 인연이 있어서, 2003년 지율 스님 단식 초기에 '지율 스님을 살려야 한다'는 다급한 이메일 요청에 '도룡농 소송' 서명을 했다. 그런데 그 때도 지금도 목숨 가지고 사람들의 안타까움과 동정을 받아서 자신의 가치를 강요, 관철하는 것은 (독재라는 절대악이 사라진) 지금 시대의 민주주의와는 절대 같이 갈 수 없다는 생각은 변함없다. 이는 분신, 투신 자살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20대에 박영진열사추모사업회 실무를 보면서, 분신 자살한 분들의 분향소를 숱하게 다녔는데, 분향하고 묵념은 하면서도 분신자살 뿐 아니라 내가 하는 일에 대한 근본적 회의를 느낀 것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그리고 살아서 질기게 설득하고 투쟁하는 것이, 분신으로 항거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고 힘들고 가치있고 정의롭다는 확신이 생겼다.) 

목숨걸고 단식하는 유민 아빠와 세월호 유족에게는 거대한 힘이 있다. 두 차례에 걸친 여야 합의조차도 엎어버릴 수 있으니.......대한민국 역사에서 선거를 통해 위임을 받지 않고, (아무리 후지다고 해도 그래도 선거와 법률를 통해 확립된) 민주적 절차를 크게 흔들 수 있는 이런 큰 힘을 행사한 존재가 몇이나 있었던가? 

유민 아빠와 세월호 유족들이 가진 거대한 힘은 세월호 참사를 보면서 비통의 눈물을 흘린 수천만 국민이 보태 준 것이다. 특별한 사건이니 특별하게 처리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특별법 제정에 서명한 수백 만 국민이 보태 준 것이다. 하지만 지율스님이 요청한 소송단에 서명한 사람들이 지율스님의 뜻에 다 동의하지 않았듯이, 특별법에 서명한 사람들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그래서 나는 거대한 힘이 더더욱 민주적 절차를 존중했으면 한다. 자신들이 생각하는 방식만 진상규명-책임자처벌-재발방지를 가능하게 한다는 고집도 좀 내려놔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대중적 지지세 있다고 민주적 절차를 짓이겨 버리고 , 자신의 가치, 고집을 관철하는 풍토가 정말로 걱정스럽다. 자신의 가치, 이념에 목숨을 거는 사람들을 너무 많이 봐서다. 하지만 민주적 절차를 존중하면서 자신의 가치를 질기게 다듬고, 간절하게 피력/설득하는 사람은 별로 못 봐서다. 

정말로 위대하고 오래 가는 힘은 민주적 절차를 개선하고--이 여지가 너무 많다--, 대의 민주주의든 직접 민주주의든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도록 하는데 있는 것 아닌가?

한국의 민주주의와 민생 위협을 오로지 청와대와 권력에서 찾는 그것이 가장 무서운 적이 아닐까 한다. 지율스님식 투쟁과 각주구검식 어리석음을 더 이상 보고 싶지 않다.

덧글

  • ∀5 2014/08/22 11:56 # 답글

    다수를 거대한 하나로 만들어서 권력을 누리겠단 것도 하나의 독재가 아닌지
  • 이명준 2014/08/22 12:01 # 답글

    역시 글쓰는거 보면 여전하구만.
  • plastic욱이 2014/08/22 12:30 # 답글

    예전과는 다른 먼가가 느껴집니다. 잘보았습니다.

    첨언하자면 예전과는 다르다는거지..글이 전체적으로 동의되는게 아니라는거..일단여기까지만 하죠..
  • 솔까역사 2014/08/22 12:25 # 답글

    뻘글 길게 쓰는거도 재주...
  • 이글 2014/08/22 12:28 # 답글

    촛불시위집회좋아하는놈들이 어버이연합 같은 보수단체보다 도를 넘은지가 언젠데 뭔 비슷한 존재가 될지도 모른다고 하시는지?
  • 김치찌짐 2014/08/22 12:39 # 답글

    1950~60년대 한국전쟁과 북한의 무력도발에 맞서 대한민국을 지켰던 세대가 성조기-태극기 들고 애국가 부르며, 집회 방해나 일삼는 사나운 노인 '애국 폭력단'이 되었듯이 1980년대 민주화 세대가 촛불 들고 민중가 부르며, 불법 시위나 일삼는 사나운 깨시민 '애국 폭력단'이 된거죠.
  • 지나가는 객 2014/08/22 13:32 # 삭제 답글

    좋은 글 잘 읽었습니다.
  • jklin 2014/08/22 14:33 # 답글

    한걸레 수준이 어련하나요. 대통령이 왜 응답해야 합니까? 세월호 "특별법"은 애시당초 입법부 관할 문제입니다. 유족들은 입법부와 세월호 특별법 관련 논의를 하는 게 당연한 겁니다. 여기에 행정부 수반인 대통령이 응답하라? 번짓수를 잘못 찾아도 한참 잘못 찾은 겁니다.

    또 여기에 대통령이 응답한다? 왕조국가 왕이거나 독재자거나 둘 중 하나겠죠.

    아무리봐도 깨시민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대통령은 독재자인듯.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들은 프롤레타리아 일당 독재 하는 것인지도 모르겠네요. 헐헐.
  • 대공 2014/08/22 15:37 # 답글

    아직 80년대에 사시는 분들 있죠. 수주대토라 생각했는데 각주구검이 더 적절한 것 같습니다.
    민주주의적 절차 무시하려는게 하루이틀이 아니죠.
  • 쿠라사다 2014/08/22 17:45 # 답글

    http://bfgr555t.egloos.com/9425064


    하지만 현실은 진보정당 수뇌부라는 양반도
    제왕적 대통령을 원하죠.
  • gnt 2014/08/22 19:37 # 삭제

    중앙당 조직 없는 미국에서도 대통령은 집권당의 정책에 주요한 참여자이자 영향자입니다. 의원들은 특정법안에 대해서 대통령에게 지지를 호소하고, 역으로 대통령이 입법부에 특정법안의 통과를 호소하죠. 더군다나 대한민국은 현직 대통령이 여당의 전 당대표로서 한 계파의 수장이며, 대통령이 대표하는 행정부는 법안발의권을 지니고 있습니다. 정당이 움직이는 않는다면 또다른 입법발의자이자, 전직 당대표에게 협조를 요청하는걸로 보이는데요?
  • 零丁洋 2014/08/23 09:24 # 답글

    사건의 무게가 힘을 만들었고 그들도 의회에 요구할 뿐이지 의회를 무시하고 직접 권력을 행사하는 것은 아니지 않나요? 만약 정치권이 자신있다면 자신들의 합의대로 실행하면 됩니다. 그런데 그러지 못하고 있습니다. 바로 여기에 우리 민주주의의 한계가 있습니다. 시민의 삶을 녹여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당은 공허한 원칙과 형식만 말하고 야당은 눈치만 봅니다. 형식만 말하는 이유는 하기 싫다는 표현이고 눈치를 보는 이유는 편승하여 이익을 보기 위해서 입니다. 이러니 민주주의의 주체인 시민이 배제되고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는 불능의 정치가 되는 것입니다.
댓글 입력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