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신조작(容新造作)을 넘어서 2004년 당시, 어디 내놓을 만한 국가 개혁 담론(컨텐츠) 하나 없이, 피해의식만 그득한 보수 우파들을 결집시키고 목청을 높이게 하는 결정적인 호재가 ‘국가보안법 철폐’시도였다.2008년 현재는 정 반대의 처지가 된 진보 좌파에게 비슷한 기능을 하는 호재가 ‘의료민영화’시도가 아닐까 한국민들은 가스, 물, 전기요금이 비싸서 죽을 고생을 해 본 기억은 거의 없지만, 의료비 문제로 인해 죽을 고생을 해 본 사람은 너무나 많다. 돈이 없어서 제대로 치료를 못 받아 유명을 달리한 어른들에 대한 기억, 논 팔고 밭 팔고 소 팔아 집안 어른의 중병 치료비를 댄 기억, 그럼에도 불구하고 잘못된 진단과 치료로 상태는 더 악화되어도, 어디 하소연 할 데도 없어서 분통을 터뜨렸던 기억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너무나 많다. 다큐멘타리 ‘식코’는 이런 악몽이 얼마든지 재연될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렇기 때문에 ‘의료민영화’의 공포는 가스, 물, 전기 민영화의 공포에 비길 바가 아니다.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이 6월19일 특별기자회견에서 ‘가스, 물, 전기, 의료보험은 민영화 대상이 아니다’고 공언했는지도 모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의료 민영화는 진보 좌파의 관념 속에 있는 신자유주의 정책의 전형으로 대단한 호소력이 있기에 이명박 정권의 성격을 설명하거나, 비난 할 때 약방의 감초처럼 거론된다. 마치 역대 군사독재 정권이 민주 진보 세력을 탄압하거나 고립시키려 할 때 용공조작을 해서라도 북한과의 연계 내지 유사성을 부각시켰던 것처럼...... 사실 국가보안법은 개폐에 따라 사회심리적(문화적) 영향 정도만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로인해 정당의 존립이나 언론사의 흥망이 좌우되는 것도 아니고, 남북관계가 크게 영향을 받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의료 제도는 그 개혁 방향에 따라 의료서비스의 질과 의료산업의 경쟁력, 서비스(무역) 수지, 의료보험 서비스 질, 일자리, 가계수지 등 개개인의 물질 생활이 크게 영향을 받는다. 그런데 이명박 정부는 광우병 촛불시위에 데인 경험이 있는데다가, ABR(Anything But Roh)과 보수이익집단 편향성(특히 친기업주의) 외에는 철학도 노선도 없고, 새롭고 복잡다단한 현실을 학습할 능력도 떨어지고, 토목공사라면 몰라도 유관 부처, 당, 청와대 등의 긴밀한 공조가 필요한 소프트웨어(제도) 개혁을 밀고 나갈 수 있는 통합적 리더십도 없기에 얼마 되지도 않는 진보 좌파의 용신조작(容新造作) 태클에도 걸려 넘어 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아야 한다. 제주도 외국 영리의료법인 허용(시범실시) 사업의 좌절은 그 가능성이 결코 기우가 아니라는 것을 말해 준다. 물론 제주도 영리의료법인 시범실시 사업은 얼마 안 되는 진보 좌파의 악선동이 주효해서 결정적으로 좌절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아무래도 가장 결정적인 것은 이명박 정부와 그 주변에 포진한 보수 우파의 사익집단 편향성과 찬성파(의료공급자 집단, 김태환 지사 등)의 정치적 무능 탓 일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盡人事待天命이라고, 사람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하늘의 심판을 기다리듯이 진보 개혁 세력이 할 수 있는 최선을 다하고, 국민의 선택을 기다려야 한다. 의료산업의 경쟁력과 서비스(무역) 수지와 보다 많은 일자리 창출을 위해! 그런 의미에서 한국 보수우파의 사익집단 편향성과 무개념을 경계, 비판하는 것과 더불어 진보 개혁 진영을 휩쓸고 있는 착각과 악선동(容新造作) 경계, 비판해야 한다. 시장을 통해 더 높은 공공성 구현 의료에 시장원리 자체를 배제하려고 하는 사고방식의 뿌리는 두 갈래다. 한 갈래는 시장 실패 경험에서 나온 우려이다. 이는 피해의식으로 응결되어 있기에 해빙되는데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다. 하지만 시장 실패 가능성을 줄이는 정책적 해법이 제시된다면 시장원리를 긍정한다고 보아야 한다. 다른 한 갈래는 의료에는 이윤 동기가 개입되어서는 안 되며, ‘공공성’은 공적 소유. 지배 구조나 국가를 통해서만 구현되는 가치로 보는 사회주의 철학이다.이 사고 방식은 의료에서 시장원리 자체를 배제하려고 하기에 영리의료법인과 민간보험 자체를 반대하고 공보험의 독점적 지위를 강화하려고 한다. 이런 사고 방식의 이면에는 보험 공단과 관료들의 이해관계가 깔려있다. 이 두갈래의 사고방식은 서로 얽히고 설키고 꼬여서 의료에 시장원리 도입을 막는 질긴 동아줄이 되고 있다. 만약 의료 기관이 이윤동기에 의해 움직인다고 해서 공공성(효과성)과 효율성이 낮다면, 사회주의 의료가 자본주의 보다 나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는 철학적으로도, 경험적으로도 틀린 생각이다. 물론 이윤동기에 의해 움직이는 민간의료기관 및 민간보험사가 주도하는미국 의료시스템은 GDP의 15%를 투입할 정도로 가계부담은 크지만 영아사망률, 기대수명 등 건강지표는 좋지 않다. 그런 점에서 시장 실패가 일어났다고 보는 것이 중론이다. 반면에 세계 최고 수준을 구가하는 의료(서비스)기술, 의약품 산업, 의료기기 산업은 시장의 힘, 다시 말해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과 공평한(합리적인) 상벌의 힘을 증명해 보인다는 것이 중론이다. 왼쪽 극단에는 국가실패가 명백한 사회주의 의료가 있다면, 오른쪽 극단에는 시장실패가 명백한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장의 힘을 보여주는 측면도 있다- 미국 의료가 있기에 의료 개혁 방향에 대한 사회적 합의를 어렵게 하는 측면이 있다. 그런 점에서 미국 의료의 실패와 성공를 타산지석으로 음미해 볼 필요가 있다. 미국 의료의 실패와 성공 미국이 겪고 있는 시장 실패는 기본적으로 전 국민을 대상으로, 저비용으로 일정 수준의 의료를 공급하는 국민건강보험이 아예 없어서 공공과 민간의 균형이 너무 어긋나 있기 때문이다. (유명 대형병원들은 대개 대학이나 종교단체가 세운, 이윤을 목적으로 하지 않는 공공병원이지만 전체적인 균형을 잡기에는 역부족이다) 게다가 의료 공급자의 방어 비용을 엄청나게 증가시키는, 미국 특유의 과도한 소비자(환자) 권리 보호와 의료 관련 소송을 조장하는 시스템(한국보다 변호사가 250배가 많다)도 의료비 폭증에 상당한 역할을 하였다는 것이 중론이다. 당연히 지난 미국 대선 과정에서 오바마도 힐러리도 미국 의료시스템 개혁을 최우선 과제로 내걸다시피 했다. 그런데 이들의 개혁기조는 어디까지나 시장원리가 거세게 흐르는 미국 의료시스템의 특장점을 유지하면서 -당연히 의료 소비자 보호를 후퇴시키려는 조짐은 별로 없다- 유럽의 합리적 핵심(특히 국민건강보험 도입과 의료 취약계층 보호)을 접목하는 것이지, 미국 의료 시스템을 통째로 유럽식으로 바꾸는 것이 아니었다. 의료는 시장이 실패하기 쉬운 특수한 상품임은 틀림없다. 어쩌면 이 사실을 인정하는 것이 합리적인 의료 정책 및 정치의 출발점인지도 모른다. 의료가 시장이 실패하기 쉬운 특수한 상품이라는 사실은 시장과 경쟁을 합리적으로 설계해야 할 근거이지, 시장과 경쟁을 배제해야 할 근거는 아니다. 아담스미스가 국부론에서 푸줏간 주인을 예로 들어 설명했듯이 -우리가 저녁 식사를 할 수 있는 것은 푸줏간, 양조장, 빵집 주인들의 자비 덕분이 아니라 그들의 돈벌이에 대한 관심 덕분이다. 우리는 그들의 인간성에 호소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이기심에 호소하는 것이다. 다른 수많은 경우에도 그렇듯이 (개인의 이기적인 행위는)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그가 전혀 의도하지 않는 목적을 달성하도록 유도 된다- 공공성은 ‘시장과 경쟁’을 통해 얼마든지 구현될 수 있는 결과이지 공적 소유. 지배 구조라는 수단 혹은 공적 지향(비영리의료법인)이 담보하는 결과는 아니다. 최근 네덜란드가 취한 의료보험 개혁 정책은 시장기능을 통한 공공성과 효율성을 상생적으로 결합한 모범 사례 중의 하나로서 참고할 가치가 있다. 네덜란드는 유럽 국가로서는 특이하게 한국처럼 민간의료기관이 85%를 넘는 나라이다. 네덜란드 정부는 지금 한국처럼 공보험과 민간의료기관이 줄다리기(관리, 통제, 유인)를 하는 구도를 혁파하여, 민간보험과 민간의료기관이 줄다리기를 하는 구도를 구현하였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기본 건강보험에는 모든 국민이 의무적으로 가입하되 치열하게 경쟁하는 복수의 민영보험사 중 하나를 통하여 가입하도록 했고, 동시에 민간보험 특유의 역기능인, 고위험 환자들을 받지 않으려는 보험사의 역선택을 방지할 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기본건강보험과 특별의료보험(장기요양 질병 및 장애인용)의 보장 영역을 넘어서는 부분은 민간보험사의 상품을 구매하여 해결하도록 하였다. 정부는 보험자 역할을 포기하고 단지 시장 실패가 발생하지 않도록, 의료소비자, 공급자, 보험자 상호간의 균형을 잡아주는 것으로 역할을 축소하였다. 합리적인 평가보상 체계로서 의료 보험의 역할 일반적으로 보험자는 중질환을 앓거나 불의의 사고를 당한 가입자로 하여금 재정적 위험을 분산, 회피 하는 기능을 제공한다. 그런데 의료 보험은 화재 보험이나 산재 보험과 달리 의료 공급자에 대한 상벌(평가 보상)체계로 기능한다. 이는 의료 보험만의 중요한 특징이다. 상식적으로 의료 산업의 발전도, 의료 공공성의 구현도 합리적인 평가보상체계가 관건이다. 이것이 제대로 작동해야 의료와 관련된 무한히 다양한 니즈에 조응하여 무한히 다양한 상품과 서비스를 개발 공급 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원래 기업이나 산업이나 사회 발전의 관건은 기본적으로 평가보상(상벌) 체계이다. 사실 자본주의와 사회주의의 결정적인 차이는 이 평가보상(상벌) 체계의 차이다. 제대로 작동하는 자본주의 시장경제는 소비자들에게 자유로운 선택권을 부여하고, 공급자들에게는 시장 메커니즘을 통하여 적절하게 평가보상 함으로서 생산력(경제. 사회 주체들의 창의, 열정, 사회적 협력)을 고도로 발전시켜 왔다. 그런데 이 중요한 보험자에 대해서는 의외로 관심이 적다. 그런 점에서 보건의료 문제를 다룰 때는 항시 공급자, 소비자, 보험자, 정부라는 4대 축을 중심으로 생각해야 한다. 한국에서 이 보험자는 압도적으로 국가의 통제 하에 놓인 국민건강보험공단이다. 부차적으로 민간의료보험이 있지만 내는 돈(한해 대략 8조원으로 국민건강보험료의 절반 수준)에 비해서는 역할이 매우 제한적이다. 사실상 ‘암 걸리면 얼마, 입원하면 얼마’하는 식(정액형)의 복권처럼 운영되었기에 중병으로 인한 가계의 재정적 위험은 어느 정도 완충했지만 합리적인 평가보상 체계로서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분명한 것은 평가보상체계가 국가의 통제 하에 있는 한 새로운 기술, 서비스나 특이한 니즈(고급 의료 니즈)에 대해서 결코 유연, 신속, 정확하게 보상 할 수가 없다. 아무래도 획일성, 보편성, 안정성=경직성을 추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는 사회주의가 보여준 강점이자 약점이다. 보건의료 재정, 의약품 기술, 의료기기 기술, 의료 인력의 양에서 많이 앞선 유럽의 의료서비스가 한국에 비해 후진적인 것은 의료서비스에 대한 평가보상 시스템이 압도적으로 국가의 통제에 놓여있는 현실을 빼놓고는 설명할 수가 없다. 원래 벤처 산업 중흥의 전제 조건은 처지가 너무나 다양한 벤처기업에 다양한 조건의 신용을 공급하는 벤처 금융시스템이다. 발달된 민간보험 없이 의료산업의 국제 경쟁력을 제고하려는 것은 벤처 금융시스템 없이 정부 정책금융과 은행 담보 대출에만 의존하여 벤처 산업을 중흥시키려는 것과 다를 바 없다. 물론 보건의료에 관한한 사회주의적 가치와 이상이 상당 정도 필요하다는 것은 문명국의 상식이다. 하지만 인간의 처지와 니즈가 무한히 다양하고, 새로운 기술과 서비스가 끊임없이 개발되고, 국경의 장벽이 낮아진 상황에서는 평가보상 체계가 국가에 의해 독점되어서는 도저히 이 니즈에 조응할 수가 없다는 것도 또한 상식이다. 민간보험의 순기능(대리인 기능) 회복 한국에서 오랫동안 민간보험은 복권처럼 운영되었다. 원래 복권 사업이 그렇듯이 사업 주관사(보험사)의 수익성은 엄청 좋고, (국민건강보험에 비해) 관리운영비는 매우 높다. 특히 민간보험을 ‘악’이나 ‘필요악’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은 공보험이 미처 커버하지 못하는 영역에 대한 합리적인 평가보상 체계로서의 민간보험의 순기능을 백안시하고, 사실상 음지로 몰아넣어 세련된 규제감독을 회피하는 바람에 더더욱 소비자 피해 등 역기능이 커졌다. 그런 점에서 민간 보험에 대한 혹독한 비판이 일리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민간 보험을 계속 백안시하는 것은 올바른 태도가 아니다. OECD Health Data(2006)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전체 보건의료비에서 민간보험이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는 것을 보여준다. 이는 대부분의 나라에서 조세나 사회보험료를 쉽사리 올리기 힘든 탓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민간보험이 자유화, 세계화, 지식정보화 등으로 표현되는 문명사적 변화로 인해 개인별로 천차만별인 건강니즈를 효율적으로 관리하고, 소비자의 합리적인 의료소비를 안내하는 ‘대리인’이기 때문이다. 가계 부담률과 민간보험 부담률은 본질적으로 개인 및 가계의 금융자산을 기관 투자가에 위탁하는 문제와 같다. 위탁할 기관투자가에 대한 불신이 높고, 이들의 투자 효율이 떨어진다면 당연히 모든 금융 자산을 개인이 직접 운용해야 할 것이다. 그 반대라면 합리적인 사람은 일정한 자산을 기관 투자가에 위탁할 것이다. 2004년 현재 스위스는 가계 부담률이 31.9%, 민간보험 부담률이 8.7%이다. 네덜란드는 7.8% vs 19.1%, 미국은 13.2% vs 36.7%, 한국은 36.9% vs 3.9%, 일본은 17.3% vs 0.3% 이다. 스위스, 미국, 한국은 가계+민간보험 부담률이 지나치게 높고, 일본은 민간보험 부담률이 너무 낮은 것이 확실하다. 문제는 진화 방향이다. 가계+민간보험 부담률을 낮추는 것을 전제로 한다면 이 포트폴리오를 어떻게 가져가는 것이 선진적일까답은 명확하다. 보험사가 좋은 기관투자가 역할을 한다면, 다시 말해 보험사가 ‘재정적 위험의 분산’과‘건강관리 및 합리적 의료 소비의 대리인’역할을 충실히 한다면, 아니 그렇게 하도록 법, 제도 혹은 상벌체계로서 강제한다면 네덜란드 식 포트폴리오가 선진적이라고 보아야 할 것이다. 물론 아직은 한국의 민간보험도 공보험도 신뢰받는 대리인 역할을 잘 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를 근거로 민간보험을 부정하고 공보험의 독점을 강화하려 할 수도 있겠지만, 현명한 정부는 보험의 순기능을 발현시키기 위해 공보험 내 경쟁과 민간보험사들끼리의 경쟁을 활성화시키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그리고 ‘암 걸리면 얼마’를 주겠다는 정액형 보험이 아니라 교통상해 보험처럼 치료비를 보장해 주는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에 대해서는 오해와 편견이 극심하다. 이는 실손형 민영의료보험 탄생 → 건강보험 이탈자 발생 → 건강보험 재정 악화 및 이탈자 급증 → 민영의료보험의 형태가 '실손형'에서 '대체형'으로 변화 → 건강보험 당연지정제 사실상 무력화-> 미국식 의료제도로 이행(‘식코’ 재현)이라는 도식으로 되어있다. 과연 그럴까 2006년 현재 총 국민 의료비 중 조세와 국민건강보험이 커버하는 비율은 55.1%이다. 그나마 분모인 국민 의료비에는 병에 따른 간접 비용과 기회비용은 반영되어 있지 않다. 급여율은 2006년 현재 64.3%이다.이는 병으로 인한 가계의 재정적 위험이 여전히 크며, 전문적 의료 지식과 구매력을 가진 존재(보험자=교섭 대행자)가 공급자와 협상하여 비급여 부분을 합리적으로 관리, 통제할 필요성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현재 한국의 민간의료보험은 중병으로 인한 가계의 재정적 위험은 어느 정도 완충하지만, 합리적인 평가보상 체계로서의 역할을 거의 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가입자로 하여금 사전 예방적 건강증진 행위를 추동하는 역할도 하지 못하고 있다. 본래 자본주의 시장경제가 가진 힘은 상충하는 욕심들이 서로 경쟁하고 견제하여 소비자의 이익이 극대화 되도록 하는 것이다.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경우 국민건강보험의 보장성을 확대하는 것이 민간보험사에 이익이며, 가입자의 건강 검진-조기 발견-건강 증진 행위도 이익이다. 하지만 정액형은 조기 발견은 조기에 거액의 보험금을 제공하는 계기 일 뿐이다. 그런 점에서 민간의료보험, 특히 실손형 민간의료보험의 순기능을 살려야 한다. 물론 복잡한 보험 약관을 이해하기 힘든 소비자들을 위하여 소비자 보호조치도 적극적으로 강구되어야 한다. 지금 한국에서 민간의료보험이나 실손형 보험을 드는 사람들은 호시탐탐 공보험 탈퇴를 노리는 고소득자들이 아니다. 전체 민간보험가입자 중에서 월 소득 100만원 이하 인 사람의 가입률이 23.8%, 100~200만원 인 사람이 28.2%이다. 2006년 8월 현재 총 취업자 중에서 이들의 비중은 34%, 37% 이기에 고소득자에 비해 해당 인구 중에서 민간보험 가입자 비중이 낮은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소득이 적음에도 불구하고 병으로 인한 재정적 위험을 심각하게 느끼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한편 한국이 사회적 연대성이 아무리 취약한 사회라 하더라도 특정질환을 민간보험에서 보장받는다고 해서, 공보험의 보장 영역 확대를 반대하는 사람이 없다. 이는 자신이 자동차로 출퇴근 할 수 있다고 해서 전철이나 버스가 들어오는 것을 반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과 같다. 자신도 필요하면 전철이나 버스를 이용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특히 실손형 보험을 판매하는 보험사는 건강보험의 보장성 확대를 지지하는 것이 이익이다. 물론 보장성이 지나치게 상향되어 민간보험 시장이 없어진다면 싫어하겠지만 새로운 의료 장비, 약품, 서비스가 끊임없이 나와서 비급여 영역을 마르지 않는 샘처럼 만들어 버린다면 시장이 없어질 것을 두려워 할 이유가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감정적으로만 생각하면 민간의료보험료를 내는 것 자체가 서글픈 일이다. 쓸데없는 공항 짓고, 도로 놓고, 건물 짓는데 드는 낭비되는 엄청난 재정을 생각하면 분통이 터지는 일이다. 국회와 토건족, 토호들의 집요한 유혹과 반대를 뚫고 국정 운영을 안 해봐서인지 모르지만, 어쨌든 나는 재정 배분 구조를 바꾸고 낭비를 막아서 증세 없이 10조원 정도의 보건의료, 교육 재정을 마련할 자신이 있다. 하지만 이것을 대안으로 들이 밀면서 민간의료 보험은 한국 땅에서 사라져야 할 필요악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사람마다 천차만별인 의료 니즈와 의료 재정의 한계, 보험 수가 체계로 미처 포괄할 수 없는 새로운 의약품, 의료기기, 의료서비스의 변화 발전, 그리고 공적보장률 상승 속도의 필연적인 지체, 서행을 감안하면 민간의료보험에 대한 니즈는 그 누구도 부인 할 수가 없다. 이는 보기 싫다고 눈을 감는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사실 민간보험은 무책임한 국가라는 전근대의 산물이기도 하지만, 무한히 다양한 의료 니즈 실현과 끊임없이 변화 발전하는 의료기술 조기(시험) 적용을 위한 담보이자, 탈근대의 산물이기도 하다. 그래서 한시적 필요악이 아니라 미래에도 필요한 존재이다. 그 비중은 지금보다 다소 줄어들지는 몰라도...... 국내 고급 의료 니즈 흡수가 국제경쟁력 강화의 첫걸음 유럽과 달리 한국 주변에는 의료 소비의 국제화, 맞춤화, 고급화 요구에 부응하여, 의료 서비스 산업을 전략 산업으로 육성하여, 해외 환자들을 대거 유치하려고 하는 나라들(태국,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중국 등)이 많다. 따라서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의 필요성은 유럽보다 훨씬 절박하다고 할 수 있다. 의료 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의 첫걸음은 해외 의료 쇼핑객으로 변신할 가능성이 있고, 고급의료 기술 적용을 선도할 고급 의료 소비자들의 요구를 국내화 하는 정책은 매우 중요하다. 이들의 요구를 국내화해야 중국 등지로부터 쏟아져 나올 의료 쇼핑객을 유치할 수 있고, 의료기술 발전을 촉진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서는 민간의료 보험 활성화 정책이 절실히 필요하다. 세계화의 진전에 따라 많은 부문에서 비용 다운사이징 경쟁이 일어난다. 그러나 의료 산업의 경우는 오히려 고급화 경쟁이 거세다. 게다가 이는 한국의 지상과제인 양질의 일자리 창출에 크게 기여한다. 그런 점에서 중국과 비용 측면에서 도저히 경쟁을 할 수 없는 한국으로서는 의료산업의 국제경쟁력 강화는 너무나 중요한 과제가 아닐 수 없다. 인간의 욕망이 무한하고, 천차만별이며, 자원은 한정돼 있어 전 국민에게 골고루 높은 수준의 의료보장이 불가능한 이상 고소득층이나 민간 보험에 가입한 중산층이 국내에서 더 많은 양질의 의료소비를 하는 것 합리적 불평등은 이 아닐 수 없다. 최소 수혜자(빈곤층)에게도 이익이 되고 전체에게도 이익이 되기 때문이다. 근대적 개혁과 탈 근대적 개혁의 동시 병행 유럽은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케인즈주의의 영향으로 의료, 실업 등에 대한 국가의 책임성을 지나치게 높이 잡았다가 1970년대 중반 이후 본격화된 경제침체, 재정적자로 인해 전반적으로 복지를 축소. 재편하는 국면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이는 개인의 책임성을 강화(국가의 책임성을 약화)하는 한편, 복지(의료) 공급자들의 경쟁도 강화하고, 개인의 선택권과 소비자 권리도 강화하는 정책을 축으로 개혁이 진행되었다. 이는 세계화, 자유화 추세로 인해 더욱 촉진되고 있다. 그런데 한국은 개인의 위기에 대해 국가가 거의 책임지지 않았던 야만(천민자본주의) 상태로부터, 국가의 책임성을 늘려나가는 역사적 국면이다. 이는 전근대적 시스템이 근대적 시스템으로 진화해 가는 단계라고 할 수 있다. 이런 국면 인식이 공적보장률 향상과 의료공급에서 국가의 주도적인 역할을 의심할 여지가 없는 보건의료 선진화 로드맵으로 만들었다고 할 수 있다. 문제는 세계화, 자유화, 지식정보화, 중국의 부상이라는 문명사적 변화가 한국이 복지국가를 완성할 때까지, 다시 말해 근대를 완성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밀어닥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의료공급 및 소비의 국제화, 의료의 산업화, 의료기술의 급격한 발전과 타 부문 기술과의 융합, 의료와 복지의 융합, 맞춤의료의 확산을 비롯한 다양한 의료복지 니즈의 분출, 계층 간 소득격차의 확대 등의 추세가 한국을 비껴가지 않는다. 이런 추세는 기본적으로 소비자든 공급자든 자율적 선택권을 강화하며, 공급자간 경쟁을 격화시키는 한편 국가의 통제를 축소. 합리화 할 것을 요구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근대의 산물인 너무 낮은‘사회적 최소한’은 지속적 상향을 요구한다. 요컨대 개인의 자율, 책임과 민간의 역할을 강조하는 탈 근대적 개혁과 공적보장률의 상향 혹은 사회적 최소한의 상향이라는 근대적 개혁이 동시에 요구된다고 할 수 있다. 이는 선진국을 수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쫒아가는 것이 한국의 보건의료 개혁의 로드맵(Road map)이 될 수는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다시 말해 정보통신 분야에서 흔히 보이듯 유선전화망도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후진적 인프라가 중간단계를 점프해 곧바로 최선진적 인프라(무선전화망)로 변신하는 것처럼 현재의 보건의료 시스템의 합리적 핵심을 계승, 발전시키면서 유럽 복지국가의 진화방향(개인의 자율, 책임과 민간의 역할 확대)으로 점프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런데 대표적인 복지정책인 연금과 의료에서 한국 관료들과 공공부문 종사자(노조)와 사민주의에 매혹된 현실감각이 없는 학자들은 공적 보장률 상향을 중심축으로 선진 복지국가를 수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그대로 뒤따라가는 것을 로드맵으로 설정하는 경향이 있다. (OECD 평균과 한국을 비교하는 언술의 이면에는 대개 이런 사고방식이 작동하고 있다) 그러나 한국의 독특한 현실과 문명사적 변화 등을 고려하면 이는 방향 착오 내지 시대착오다. 전근대성은 근대성을 거쳐 순차적으로 탈근대성으로 진화하는 것이 아니라, 전반적으로 전근대에서 근대로 이행하되, 부분적으로 전근대에서 탈근대로 건너뛰기 때문이다. 그래서 창조적 캐치업(catch up)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근대적 개혁은 보건의료 공급에서 국가의 주도적 역할과 책임성 강화를 의미하기에, 경쟁과 시장원리를 배제하고, 결과적으로 관료와 보험관리 공단 등 공공부문의 규모와 권능을 키우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탈 근대적 개혁은 민간의 주도적 역할과 개인의 책임성 강화를 의미하고, 소비자 만족도 제고를 위해 경쟁과 시장의 강화를 의미한다. 상반된 두 개혁 방향이 충돌하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단기적이고 협소한 이익을 전투적으로 추구하는 한국 이익집단 특유의 문화를 체화한 관료와 공공부문 노조의 강력한 힘으로 인해 근대적 개혁 방향만 중시된다는 것이다. 한국의 낮은 복지 수준과 비교적 괜찮은 경제/재정 상황과 당위론에 이끌리는 국민 정서는 개인의 삶에 대한 국가와 사회의 책임성 상향과 의료 배분의 평등을 요구한다. 이는 선진국을 수십 년의 시간차를 두고 뒤따라 갈 것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화와 중국의 약진 그리고 조세 저항과 재정 압박, 주변국의 의료 산업화 전략 등은 개인의 자율적 선택권 및 책임성 강화와 의료 배분의 합리적 불평등을 요구한다. 이는 선진국이 지금 채택하고 있는 이른바 신자유주의적인 보건의료/복지 정책의 수용을 요구한다고 할 수 있다. 분명한 것은 한국의 보건의료 선진화 전략은 이 두 가지 모순된 요구를 통합해 내야 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보건의료 시스템 선진화 전략은 선진국과도 다르고, 한참 뒤처진 후발 개도국과도 다른 독특한 로드맵(Road Map)일 수밖에 없다. 보건의료 정책은 관료, 전문가, 이익단체의 영역이 아니라 정치가 확고한 중심을 잡고 나머지 이해관계자들을 통합 조정해야 하는 문제이다. 그야말로 정권적 차원의 문제라고 할 수 있다. 전문가, 의료 공급자 단체들은 비이성적 공황(恐慌)이 종종 내습하고, 포퓰리즘이 짙게 드리운 독특한 보건의료 정치를 배워야 한다면, 정치, 특히 진보 정치는 이상주의적 열정이 너무나 자주 좌절하는 보건의료의 독특한 바닥 현실을 냉철하게 인식하고 이에 기초하여 가치, 비전, 목표와 로드맵을 세워야 할 것이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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